서강대 사회학과에서 연구하시는 이철승 교수의 세번째 저작입니다.
우연치 않게 이교수의 전작을 모두 읽게 되었는데, 이분의 저술의 특징은 데이터에 기반해 지금 현재의 한국사회의 문제를 직시하는데 있습니다. 단순히 서구의 이론을 소개하는데 그치지 않고, 미국에서 생산된 이론이 미국사회를 어떻게 설명하는지, 그리고 한국사회에는 왜 이론이 설명이 되지 않는지 구체적으로 보여주십니다.
이런 명쾌함이 책을 계속 읽게 만드는 요인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책은 기업이라는 소셜케이지를 분석단위로 해서 현재 한국사회의 조직이 직면한 세가지 구조적 변화, 즉 인공지능의 도입, 저출생/ 고령화 그리고 이민의 물결이 산업화 시대를 거치며 기업에 내재화한 연공제와 내부노동시장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분석했습니다.
저자는 이미 전작에서 연공제와 386세대( 지금은 586/686이라고 해야 할)의 장기적 조직상층지재에 따른 불평등과 이런 연공제, 가부장제, 여성배제를 전제로 한 집단주의 체제가 벼농사경작체제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을 밝혔습니다.
이철승, 불평등의 세대 (문학과지성사,2019)
이철승, 쌀 재난 국가 (문학과지성사,2021)
이 책은 두 전작이 나온이후에 불어닥친 기술의 발전( 인공지능, SNS의 부정적 효과)그리고 급격한 사회변화( 역사상 최저의 저출생, 베이비부머 은퇴와 고령화 그리고 노동력 부족에 따른 이민/ 이주노동자의 증가)가 연공제를 기반으로 한 기업조직과 한국의 노동시장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분석입니다.
먼저, 인공지능의 경우, 일반적으로 기업의 노동력 수요는 인공지능이 하지 못하는 일을 하는 경우와 인공지능에 투자하기엔 노동력이 너무 싼 경우가 일반적인 경우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국은 일반적으로 노동의 경쟁력을 인공지능이 하지 못하는 직무로 나아간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대기업들의 경우 인공지능과의 협업을 통해 기업특유의 노하우와 기술을 더 내부적으로 발전시킬 수 있을 것으로 봅니다. 인공지능이 기존 화이트컬러 노동자를 대체시키리라는 일반적 전망과 달리 이는 컴퓨터 프로그래머 등 극히 일부 직종에 제한될 것으로 보입니다.
두번째, 저출생/ 고령화는 동전의 앞뒤처럼 연결되어 있는 것으로 현재 베이비부머의 딸들인 청년 여성들은 연공제를 기반으로 하는 여성배제를 당연시하는 기업/ 사회문화 속에서 사실상 ‘출산파업’상태입니다.
베이비부머세대(1970년대 생들까지)까지만 해도 배운 여성들이라도 결혼과 아이와 가정을 위해 원하지 않더라도 자신의 커리어를 포기하는 경우가 있었으나 그 딸들은 자신의 엄마들의 이런 결정을 이해하지 못하고, 자신의 커리어를 결혼보다 우선시합니다. 능력이 있으니 커리어 추구가 당연하고 따라서 오히려 결혼과 출산은 선택일 뿐입니다. 거기다 노동시장이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양분되어 비정규직 여성들의 경우 직업과 미래의 불안정으로 결혼과 출산을 꺼리게 된 것입니다.
거기에다 한국전쟁이후 산업화시대에 태어난 베이비부머들의 대량은퇴를 앞두고 있어 한국의 노동력 부족현상이 심해지고 있습니다.
결혼하고 자녀를 갖는 부모들의 경우도 경제적 형편때문에 자녀의 수가 한두명으로 적고 모두 대기업이나 인공지능을 뛰어넘는 고급인력이 되기 위해 교육에 투자하고 경쟁하기 때문에 그리고 모두 서울로 몰려들기 때문에 지방의 제조업체나 몸을 쓰는 건설현장 그리고 농촌에는 한국 젊은이들을 찿아볼 수가 없습니다.
이런 상황은 이들 지방 제조업체, 농촌과 어촌이 필요로 하는 이주노동자의 공급을 유발합니다. 저자의 표현에 따르면 한국젊은이들이 기피하는 3D업종이나 임금이 낮은 업종에는 이들 이주노동자들이 없이는 산업자체가 돌아가지 않게 되었습니다.
즉 이 업종에서 이주노동자들과 한국의 노동자들은 현재까지 경쟁관계에 있지 않지만 향후 이주노동자들의 숙련도가 올라가고, 한국의 노동자들과 경쟁관계가 되는 시점이 되면 갈등이 폭발할 여지는 충분히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한국에 이주해서 수십여년을 일하고 결혼해서 아이를 낳아 키우고 세금을 낸 이주노동자를 시민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일반론에 심정적/ 논리적으로 동의를 하지만, 과연 평범한 사람들이 자신의 이익을 침해하는 이들이 자신들과 다른 이방인이라고 느낀다면 미국이나 유럽에서처럼 인종갈등이 일어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내란을 거치고 난후 탄핵전국에서 극우 진영에서 밑도 끝도없이 중국혐오발언이 나오는 것도 이런 이방인배제의 신호로 보이는데, 특히 윤석열 정부가 망가뜨려 놓은 경제상황과 고물가가 이런 혐오를 부추긴 원인으로 보입니다.
인문계 학과에 진학하면 ‘문송합니다’라고 자조하고 사과해야 하는 암울한 현실과 중고등학교를 시험지옥으로 만든 기성세대 입장에서 이 책은 한국사회의 아픈지점을 가감없이 보여주었습니다.
인공지능이 대세라지만 이를 위해 사람들이 일일이 뼈를 갈아넣어 데이터를 입력해야 한다는 현실도 범용 인공지능의 효율성과 더불어 알아야 할 지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시대에 뛰떨어진 ’출산지원정책‘같은 정책보다( 여성을 출산도구로 생각하는) 현재 제로섬게임처럼 되어 있는 남성위주의 기업문화를 바꿔야 합니다.
이미 우리는 한국역사상 가장 공부도 많이하고 가장 주체적인 여성들과 살고 있는데 정책담당자들은 가부장적인 산업화시대를 못벗어나고 있습니다.
제도적으로 이미 남녀 모두 출산휴가를 쓸수 있는데 이를 못쓰게 하는 건 이해가 되질 않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된 이유가 개인에 대한 직무평가와 평판시스템이 제대로 작동되지 않아서 그렇다는 건 한국기업의 인사시스템이 아직도 후진적이라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언제까지 기업이 사원들 뼈를 갈아넣어 유지되야 하는지 되묻고 싶습니다.
그런 점에서 타이완의 반도체업체가 야근과 토요일 출근한다고 경쟁력에 뒤쳐지지 않으려면 한국도 그래야 한다는 한 경제신문의 기사는 차라리 코미디라고 하고 싶습니다.
그보다 임금을 올려주고 시간외수당 빠지지 않고 챙겨주는 편이 동기부여에 훨씬 좋다고 봅니다.
오랜시간 일을 하는 건 오히려 ’생산적이지 않다‘는 말입니다. 같은 결과를 가져오는 상황이면 시간을 적게 들이는 쪽이 더 생산성이 높은 겁니다. 효율적으로 일하고 일한만큼의 대우를 받는 것이 조직을 위해서나 개인을 위해서나 좋다고 생각합니다.
경제와 정치와 사회는 서로 긴밀하게 영향을 미치는 서로 분리가 되지 않는 시스템입니다.
정책당국자들이 사회의 일원이 노동자들도 기업만큼 같이 대우를 해주었으면 합니다. 이런 배려없이 계속 희생하고 일만하라고 한다면 사회문제와 갈등은 계속될 것으로 여성들의 출산파업 계속되어 한국이 소멸될 지경에 이를 수도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