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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은 경험하고 싶지 않은 나라 - 윤석열 정부 600일, 각자도생 대한민국
신장식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10월
평점 :
신장식 변호사의 [두 번은 경험하고 싶지 않은 나라]를 읽었다. 부제는 “윤석열 정부 600일, 각자도생 대한민국”이다. 정치적 신념이 다를 수 있다. 자신이 지지하는 정당의 정책 방향이 보편 납득할 수 있다면 서로의 다른 생각들은 분명 함께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하지만 자신의 이득을 위해서, 한 개인의 기득권을 연장하고자 하는 바람에서, 그리고 그 부적절한 기득권에 기생하는 이들의 거짓된 말과 행동이 더해진다면 이것은 더 이상 이상적인 정치적 논쟁이 아니라 더러운 몸싸움이 되어버린다. 그리고 힘없고 약한 이들은 그 더러운 싸움의 마지막 희생양이 되어 버린다. 어려서부터 정치에 별로 관심이 없었다. 선거 때마다 정신없이 공약만 남발하는 헛된 선전도 듣기 싫었고, 청문회 때마다 거짓말을 일삼는 후보자들의 철면피와 같은 얼굴도 보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그냥 외면하기만 하면 시간이 지나면 다 해결이 될 줄 알았다.
비겁한 행동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어쩌다 작금의 행태를 비판하는 대화가 오고 갈 때면 꿀먹은 벙어리처럼 입을 다물고만 있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정치적 신념에 대한 확신이 없이도 분명 오랜시간 분노해왔고 염려해왔다. 일제 강점기를 다룬 드라마를 볼 때마다 친일파를 청산하지 못한 역사를 안타까워했고, 아직도 뻔뻔하게 강제 징용 및 위안부에 대한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사과하지 않는 일본의 작태를 보면 미움의 마음이 한 동안 사그러들지 않았다. 원래 이런 마음이 드는게 당연한 것 아닌가? 그런데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는 사실이 더 충격적이다. 저자의 글을 읽으면서 더욱 그런 생각이 들었다. 대체 그런 굴욕적인 생각과 판단을 내리면서 어떻게 그렇게 뻔뻔할 수 있을까?
언젠가 후배와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나이가 들수록 지키기 힘든게 염치라는 생각이 든다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나이가 들수록 뻔뻔해진다는 얘기는 속물이 되어간다는 뜻도 담겨 있고 세상의 때가 많이 묻었다는 의미도 담겨 있다. 한 마디로 어릴 때의 순수, 순진함은 어디론가 다 사라지고 교활하고 얄팍한 눈매에 도통 의중을 알 수 없는 굳은 얼굴만 남아 있다는 부정적인 뜻으로 해석될 수도 있다. 먹고 살기가 힘들다보니까, 손해를 보지 않기 위해서,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서 어른이 된다는 것은 이렇게 강인해져야 한다는 의무감을 부과한다. 하지만 그렇게 세상의 때가 많이 묻어 있다 하더라도 염치가 있고 없고는 다른 문제이다.
염치는 양심의 문제이고 어떤 경우에도 넘치 말아야 할 선을 인식하는 태도이기도 하다. 어쩌다 운이 좋아서, 능력을 인정 받아서 일생에 한 번 올까 말까한 기회를 얻게 되었는데, 염치없는 선택을 하지 않으면 윗사람에게 밑보여 내일이라도 당장 좌천될 위기에 처할 때 어떤 선택을 할 것인지? 높은 자리에 올라갈수록, 부와 권력이 가까워질수록 야비한 선택을 종용하며 염치를 내려놓기를 바라는 유혹은 더욱 커지게 된다. 이는 비단 지금 우리나라만의 일이 아니라 아주 오랜 시간 인간의 역사에서 무한반복되어 온 사실이다. 역사적 진실이 마지막에 이르러서는 어떤 최후와 결론을 맞게 되는지 잘 알려주고 있지만, 어리석게도 인간은 자기만은 예외일 것이라는 오만에 빠져 똑같은 악행을 일삼게 된다.
어쩌면 이 책을 접한 어떤 누군가는 편협한 생각에 사로잡힌 이가 허황된 소리를 짓거린다고 욕지거리를 할지도 모른다. 읽는 내내 차라리 이 책에 나온 내용이 다 그냥 아주 오래전에 있었거나, 그냥 지어낸 이야기거나, 상상 속에서만 일어난 일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자꾸만 들었다. 불과 2년도 안 된 사이에 아니 어떻게 이렇게 많은 말도 안되는 일이 지속적으로 발생되고 있는 것인지? 요즘처럼 인터넷과 영상으로 모든 지난 말과 행동을 낱낱이 확인해 볼 수 있는 세상에 공인이라는 사람들이 어떻게 저렇게 뻔뻔하게 다른 말을 할 수 있을까? 기억이 안 난다거나, 모르쇠로 일관하는 이들에게 질문하는 이가 과거의 사건과 대답을 명확히 재생시켜 주어도 마치 자신의 복제 인간이 그런 말과 행동을 한 것처럼 대응하는 법은 누가 가르쳐 주는 것일까?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어이없고 맞장구를 치게 되고 큰일이라는 말이 저절로 나오게 되는 내용이 거의 대부분이었지만, 무엇보다도 가장 열받게 만드는 내용은 일제 강점기 때에 강제 징용된 분들의 배상 문제에 대한 천인공노할 대응과 걸핏하면 종북 주사파나 빨갱이 프레임을 씌우며 5.18 광주 민주항쟁과 4.3 제주 사건의 공산당 개입을 주장하는 이들의 작태이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이 모든 문제의 원인은 구한말 일제에 강제합병되는 과정에서 나라를 팔아먹도록 주도한 이들과 기생한 이들과 그들에 대한 제대로 된 진상규명을 미루며 없던 일처럼 방관한 우리 모두의 비겁함 때문이 아닐까 싶다. 아직도 나치의 부역자들을 찾아내어 처벌하는 독일처럼 철저한 자기 반성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제2, 제3의 MB 시대가 반복되는 것은 아닐까 두렵기까지 하다. 언제 어디서든 이렇게 자신의 양심을 속이며 영달과 탐욕에 눈이 먼 이들이 득세한다 하더라도, 부디 여전히 희생을 두려워하지 않고 촛불을 들 수 있는 많은 이들이 있기를 바라며 좀 더 면밀히 앞으로 정세에 관심을 갖고자 결심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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