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은 부드러워, 마셔
한은형 지음 / 을유문화사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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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은형 작가의 [밤은 부드러워, 마셔]를 읽었다. 표지가 무척 재미있다고 생각했었는데, 읽다보니 그 의문이 풀리게 되었다. 아마도 이 책에 나온 수많은 술을 마신 경험담 중에서도 가장 왓따로 여겨질 만큼 강렬하게 다가왔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굴의 형상을 한 인간이 샤블리를 가득 채워주고 광물의 맛을 느껴며 한달 내내 그 맛을 음미했다고 하니 표지가 되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을 것만 같다. 당장 파리에 갈 이유를 거뜬히 만들어주는 굴과 샤블리의 이야기는 이 세상에 얼마나 다양한 먹거리가 존재하는지, 이 세상에 얼마나 다른 자연환경에서 나름대로의 생존 본능에 의해 인간이 존재해 왔는지 보여주는 하나의 단면이지 않을까 싶다면 너무 멀리 나간 거려나.


술을 좋아하지도 잘 마시지도 못하지만 술에 대한 에세이를 종종 즐겨 보게 된다. 대리만족이라고 해야할까, 아니면 대체 사람들이 왜 그렇게 술을 마셔대는지 이해하기 위해서랄까. 사실 술을 즐기는 사람이 무척 부럽기 때문이 오히려 가까울 것 같다. 20대를 고통스러운 술자리를 견디며 지나고 보니 술이라면 사실 진저리가 처지고 누군가 술을 권하면 도끼눈을 뜨고 무안을 준 적도 있었다. 그렇게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냈는데도, 그 사실을 알리가 없는 누군가가 지금부터 마시면 술이 는다느니, 아직 제대로 마셔보지 않아서 그런거라느니 라는 나름의 친분을 나누고 싶은 멘트를 들을 때면 친목이고 뭐고 밥상을 엎어버리고 싶은 충동을 느끼곤 했었다. 참았으니 망정이지, 성질나는데로 했었다면 지금 나는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ㅋㅋ 


하지만 인류의 역사를 살펴봐도, 아니 그렇게 거창할 필요도 없이 살다보면 술 한잔 나누며 편안하게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는 모습이 좋아보인다. 원래 맨정신에 중요한 얘기를 나누고 의논해야하겠지만, 의외로 술자리에서 생긴 친분이 어려운 일들을 해결하는 촉매 역할을 하기도 한다. 그래서 술상무라는 말도 있었지 않았겠는가. 커피 맥주에 대한 내용이 나오는 부분에서 말했듯이, 술은 사람의 몸을 이완시키고, 커피는 각성시키는 정반대의 성분이 담겨 있다. 그런데 커피 맥주를 마시면 이완되면서도 각성이 되는 야릇한 기분을 느끼지 않을까 하는 몸이 노곤해지면서도 불현듯 정신을 바짝 차리게 되는 술이라면 적당히 취하면서도 실수 하지 않고 좋은 마무리를 맺을 수 있지 않을까 ㅋㅋ


제목이 밤은 부드러워 이니 술을 마시면서도는 아니더라도 왠지 밤에 리뷰를 써야할 것만 같았다. 저자가 사계절로 구분지어 열거한 술에 대한 48가지 에피소드들은 세상에 술의 종류가 이렇게나 많았나 싶기도 하고, 또 그 술을 사람들이 즐기기까지의 역사과 얽힌 이야기들이 꽤나 좋은 술안주가 될 것 같았다. 누군가 매달 한 번 모임을 할 때마다 새로운 술을 가지고 와서 그 술에 얽힌 이야기를 맛깔나게 전해준다면 그 모임은 얼마나 싱그럽고 설레일까. 그리고 그 술의 기원을 듣고 누군가가 지금 느끼는 이야기를 나눠준다면 아마도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만 같다. 그럼 나 같이 술에 취약한 사람들도 한 잔을 아껴 마시며 경청할 수 있지 않을까. 


그래도 유럽에 살아본 경험 덕분인지 몇 가지 술은 마셔보기도 잠깐이나마 즐기기도 했었다. 가장 인상적이었고 그나마 좋아했던 술은 당연히 와인류인데, 여름에 즐기는 Spritz Aperol과 겨울에 마시는 Gluhwein(vin brule)이다. 여름에는 시원하게 겨울에는 따뜻하게 와인을 즐기는 문화는 색깔도 너무나도 매혹적인 오렌지색과 끓어서 더욱 짙어진 자주빛깔이다. 또 더블린에 갔을 때에는 기네스팩토리에서 기네스 따르는 법을 배우며 기네스에는 철분이 많아서 임산부도 마신다는 믿지 못할 이야기까지 들어서 그런지, 더블린에 머무는 내내 펍에서 기네스만 마셨던 기억이 난다. 제임스 조이스의 동상 옆에 서서 사진을 찍으면서도 블룸스데이라는 게 있는지도 몰랐던 문외한에서 그나마 [율리시스]나 [더블린 사람들]은 시도조차 할 생각도 않고 그냥 제목을 아는 것만으로 만족하는 안분지족으로 한 걸음 나아간 정도랄까. 


그 외에 저자의 책에 소개된 다양한 술은 읽을 때는 우와 신기해하며 검색창에 이름을 넣어 실물을 보고 블로그 내용을 살펴보았지만, 다음 에피소드로 넘어가면 술의 이름조차 생각나지 않는 난해함을 매 장마다 경험하게 된다. 아마도 나중에 어쩌다 우연히 저자의 책에 나온 술을 접할 기회가 있더라도 이렇게 그 술에 대한 내용을 읽었다는 사실조차 기억하지 못할 것 같다. 그래도 진이니 번이니 위스키니 평생 마실 일이 없을 것 같은 술이라도 이렇게 이 책을 읽는 동안에는 그 누구보다도 술을 좋아해서 ‘마셔’라고 큰소리 칠 수 있을 것만 같은 착각의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오늘 밤도 이렇게, 아니 겨울밤은 유난히 길고 봄이 오는 밤은 부드러울테니 책에 나온 몇 가지 술을 적어두었다가 ‘마셔’라고 권하고만 싶어지는 순간이다. 


“눈 뜨자마자 스카치를 마시고, 점심에 샴페인 한 병, 저녁에 또 샴페인 한 병, 새벽까지 브랜디와 와인을 마시는 게 매일의 일정이었다고 <다키스트 아워>에 나온다. 남들이 보리차를 먹듯이 스카치를, 탄산수를 먹듯이 샴페인을 마시는 것이다. 나는 이렇게 과시적인 음주 일정료를 본 적이 없다. 비싼 브랜디와 샴페인을 쉬지 않고 들이마시는 매일매일이라니.(131)”  이 영화를 꼭 봐야만 할 것 같다. 


“바텐더라는 말은 오묘하다. ‘바bar’와 ’텐더tender’라는 말이 결합되었는데, ‘텐더’에는 온갖 좋은 것이 다 들어 있다. ‘부드러운’, ‘연한’, ‘상냥한’, ‘다정한’, ‘애정 어린’이라는 형용사와 ‘부드럽게 하다’, ‘소중히 하다’ 같은 타동사를 생각하면 무릎이 녹는 느낌이다. 나도 어쩔 수 없이 감미로워져야 한다. 그러지 않는다면 바텐더라는 단어를 발음할 자격을 박탈당할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이다. 

그러니까 바텐더는 바를 부드럽게 만드는 사람이다. 하루를 부드럽게 만드는 사람이고, 하루 중에서도 밤을 부드럽게 만드는 사람이다. 마음에 대한 최고의 기술자랄까. 예약하지 않아도 갈 수 있는 정신 상담소일 수도 있다.(312)”


#한은형 #밤은부드러워마셔 #을유문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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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벅스 일기
권남희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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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남희 작가의 [스타벅스 일기]를 읽었다. 저자의 번역서보다 에세이를 빠짐없이 읽다보니 신간정보를 보자마자 더군다나 스타벅스 일기라는 흥미로운 제목이 주는 호기심에 이건 재미없을리가 없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리고 역시나 저자가 고백하기로 극내향성의 집순이라고 하는데, 에세이를 볼 때마다 느끼지만 깨알같은 개그에 빵빵 터질 때가 있다. 엄마와의 딸과의 친밀하고도 내밀한 이야기를 가감없이 전해주는 저자의 솔직담백함에 감동을 받곤 하는데, 이내 스타벅스에 마주친 익명의 사람들에 대한 잔잔한 애정이 어디에서 기원되었는지 깨닫게 된다. 결국 인간에 대한 사랑 없이는 번역이라는 장구한 과정이 성립되지 않는 것은 아닐까란 결론에 이르기까지. 


언제부터인지 스타벅스 하면 우리나라 프랜차이즈 카페의 대명사가 되어버렸다. 내가 처음 스타벅스를 가봤을 때만 해도 주로 젊은 여성들과 연인들의 성지였기에 가끔씩 눈치가 보이곤 했었는데, 이제는 그런 눈총을 받을 이유도 분위기도 사라진 것이 큰 변화가 아닐까 싶다. 스타벅스 커피 맛에 길들여진 사람들은 다른 지역이나 나라를 방문하더라도 반드시 스타벅스 커피를 고수하곤 하는데, 사실 커피 맛에 민감하지 않더라도 인정할 수 밖에 없는 사실 한 가지는 다른 어느 카페보다도 스타벅스에서 편히 머물 수 있다는 점이다. 잠깐 누군가를 기다리거나 화장실을 가고 싶다거나 물 한잔 마시고 싶을 때 거리낌 없이 들어가서 용무를 해결할 수 있는 곳은 그리 많지 않다. 그런 점에서 스타벅스의 경영 방침은 분명 고객을 끌어모으는 데에 큰 성공 요소가 된 것이 아닐까 싶다. 


한은형 작가의 [레이디 맥도날드]의 숙녀 레이디에게 스타벅스를 좋아하시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하는 내용이 나온다. 

“좋아한다기보다는 뭐랄까… 거슬리는 게 그다지 없다고 할까요. 직접조명이 없는 것도 마음에 들고, 블라인드 내려서 이렇게 채광을 조절할 수 있는 것도 좋고요. 파트너들도 교육을 잘 받아서 어떤 손님도 함부로 대하지 않고, 합맂적이죠. 음악도 요상한 댄스 가요 같은 거 틀지 않고, 정해진 매뉴얼이 있잖아. 계절을 느낄 수 있어. 연말에는 캐럴을 틀어주고 그런거 말이에요. 이렇게 잡지도 있고, 신문도 볼 수 있고, 나처럼 생활이 단조로운 사람들은 너무 지루하면 또 못 살거든요. 그런데 여기 오면 숨이라도 쉴 수 있어. 젊은 사람들이 차려입고 다니는 거 보면 얼마나 기운이 나는지 몰라. 새 옷 냄새. 바로 빨아서 입은 냄새. 향수 냄새 같은 게 나. 매일매일 자기를 아끼면서 살아가려는 의욕의 냄새가 나거든. 나는 그런 걸 맡으면 기분이 아주 좋아요. 아주, 아주요.(레이디 맥도날드 165-166)”


레이디처럼은 아니지만 비슷한 기분으로 스타벅스를 다닐 때가 있었다. 벌써 10년이나 지나버린 처음 맡은 강의 준비를 위해서 열나게 공부하다가 집이 감옥처럼 느껴지면 가까운 스타벅스에 가곤 했다. 어느덧 카공족의 일원이 되어 옆에서는 무슨 공부를 하나 살며시 엿보며 머리를 쥐어짜던 때가 있었다. 스타벅스에서 일하지만 커피를 마시지 않는 저자처럼 나도 스타벅스에서 커피를 마신 적이 별로 없다. 매번 신상 음료가 나오면 어떤 맛일까 궁금해서 맛보기도 하고 오후에는 커피 마시기가 부담스러워 도전하기도 하고 또 신상 음료는 저자의 말마따나 별을 많이 주니까 고르지 않을 수 없다. 그보다 더 오래 전에는 지금은 나왔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하는 차이티라떼만 주구장창 마셨던 때가 있었다. 오죽하면 같이 간 사람들이 뭐 시킬거냐고 묻지도 않았던 고집스러운 때도 있었다. 그때는 타조 차이티라는 이름으로 판매되었었는데, 요즘에는 워낙에 잠시 동안만 나왔다 사라지는 너무나도 긴 이름의 음료가 많기에 타조 차이티 정도는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어버렸다. 


스타벅스는 미국에서 시작되었음에도 음료의 용량 사이즈에 이탈리아어를 사용한다. 최근에 trenta 라는 어마어마한 용량의 사이즈가 출시되었는데, 아직 한 번도 보지 못했지만 아마도 하루종일 각성된 상태로 지낼 수 있을 것 같다. Trenta 이전에 이미 venti 와 grande 사이즈가 있었는데, trenta는 숫자 30이고, venti는 숫자 20, grande는 거대한 또는 큰 이라는 뜻이다. 최근에 이 숫자가 미국에서 즈그들끼리만 사용하는 용량 수치인 온스를 나타내는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니까 trenta는 30온스라는 얘기인데, 대체 그게 몇 미리리터인지 계산해보지 않고서는 가늠이 되지 않는다. 암튼 우리나라도 미국처럼 점점 음식문화가 오밀조밀에서 먹방으로 바뀌어가는 것이 아닌가 싶다. 세상에 100원에서 200원짜리 자동판매기 믹스 커피를 종이컵에 반도 안되게 즐겨먹던 문화에서 30온스의 커피를 마시는 것으로 바뀌다니 세대 간 갈등이 생기지 않을 수 없을 속도이다. 


지금처럼 커피 문화가 전반적으로 용인되기 이전에 카페에서 4-5천원 가량이나 되는 커피를 마시는 이들을 욕하던 때가 있었다. 특히나 스타벅스 커피가 부르주아 산물의 대표격인 것으로 인식되어 된장녀, 된장남과 같은 폄하하는 용어들이 유행처럼 번지기도 했었다. 사실 요즘 아주 경제적인 가격과 대용량으로 공격적인 마케팅에 주력하는 메가, 컴포즈, 백다방과 같은 가격에 비하면 스타벅스 커피는 좀 비싼 편이다. 편의점 커피나 저가 프랜차이즈 커피나 스타벅스 커피나 사실 맛은 그렇게 큰 차이가 나는 것 같지는 않다. 물론 원두의 질적 차이는 분명 있겠지만 어차피 각성을 위한 커피라면 아무데서나 마셔도 별 상관은 없을 것 같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이 스타벅스를 찾는 가장 큰 이유는 큰 돈이 아님에도 자기 자신을 위해 작은 사치를 부리고 싶은 마음 때문이 아닐까 싶다. 적당히 배를 채울 수 있는 간식도, 달콤한 먹거리로 준비되어 있기에 미팅 장소로는 제격이다. 그래서 그런지 어쩌다 한 번씩 기프티콘을 보내려 할 때에는 나도 모르게 스타벅스 쿠폰이나 카드를 선물하게 된다. 


저자가 스타벅스에서 일을 하며, 그 일을 방해한 주인공들 덕분에 일기의 내용이 이렇게 풍성해졌다는 사실이 아이러니하다. 카페는 도서관이 아니기 때문에 누구나 마음껏 이야기하고 쉴 수 있는 곳이지만 또 저자와 같은 이들에게는 일을 할 수 있는 곳이기에 각자의 입장에서 타인을 바라볼 수 있는 작은 세상이기도 한 것 같다. 어찌하다보니 요즘에는 밥집이나 술집보다 카페에서 사람들을 더 많이 만나고 긴 시간을 보낸 것 같다. 술을 마실게 아니라면 일단 밥부터 배부르게 먹고 좋은 카페에 가서 하고 싶은 이야기를 마음껏 나누는 데 익숙해졌다. [스타벅스 일기]를 읽고 나니 혼자서 카페에 갔는데 누군가 내 옆에서 신나게 떠들더라도 짜증내지 말고 오늘은 어떤 진귀한 사연을 들을 수 있을까 가만가만 귀를 열어봐야겠다고 마음먹게 된다. 그리고 언젠가 저자의 우리나라 전역의 스타벅스를 더 나아가 해외의 스타벅스 일기가 이어지기를 고대해 본다. 


#권남희 #스타벅스일기 #한겨례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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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은 짧고 기억은 영영
이주혜 지음 / 창비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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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혜 작가의 [계절은 짧고 기억은 영영]을 읽었다. 스마트폰을 열어볼 새도 없이 페이지 수가 줄어드는게 안타깝게만 느껴지는 소설을 만났다. 읽기 시작하면서도 제목이 자꾸 헷갈려 몇 번이나 표지를 보고 되새겨야했던 구절이 다 읽고 나니 영원히 각인될 것처럼 강렬한 여운을 남긴다. 어떻게 살아야할까? 어떻게 견뎌야할까? 고민했던 과거의 시간들은 미래를 위한 준비의 과정이 아니라 오늘 하루를 살아간 시간들의 발자취에 불과하지만, 그 덕분에 나는 또 다른 고민을 하며 오늘 하루를 불태울 원료로 삼게 된다. 나이가 들수록 시간이 빨리 간다는 말을 어릴 때부터 들었던 것 같다. 자기 나이의 두 배를 곱하는 속도로 시간이 간다는 말을 흔히 하는데, 똑같은 시간이 어떻게 그리 다른 체감을 가져오는 것일까 그냥 나이 많은 것을 내세우며 위로받기를 바라는 어른들의 젊음에 대한 시샘이라고 생각했다. 


나이가 들고 늙는다는 것은 서글픈 일이다. 기력이 딸리고 점점 혼자 무엇인가를 감당하기가 어려워지고 누군가에게 다시 의지해야만 하는 일이 많아지는 무력함이 밀려오기 때문이다. 누구나 이런 인생의 시험대를 거쳐 삶을 마감하게 되지만 그 순간이 오기까지 자명한 사실을 믿지 못한다. 그래서 나이를 먹을수록 시간이 빨리 가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은 어쩌면 다행이 아닐까 싶다. 자기 자신에게 실망하고 무력해지는 시간을 촘촘히 느끼게 된다면 인간은 아마도 견디기 힘들테니까 말이다. 계절의 무심한 변화가 자연의 이치임을 알면서도 왠지 모르게 나이가 들수록 계절의 변화에 자신의 삶을 이입시키게 된다. 그럼에도 봄이 온다는 말간 봉오리를 맺은 후 아름드리 꽃을 피우게 될 바람이 불어올 것이라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나는 몇 번의 봄을 다시 볼 수 있을까? 처마 밑의 둥지를 떠났던 제비가 같은 다시 나를 만나러 와 줄 것인가? 제비는 이미 올 준비를 마쳤는데, 내가 그 만남을 기다리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염려와 걱정까지. 


우울증과 불안증세 때문에 상담과 더불어 약을 처방받은 주인공은 우연히 일기쓰기를 배우는 모임에 가입하게 된다. 글쓰기 모임은 들어봤지만, 일기쓰는 것을 배우다니 조금은 낯선 모임이 주인공의 시선을 잡아끈다. 주인공은 그곳에서 마웨, 고슴, 도치와 함께 림자의 강의를 수강한다. 각자가 써온 일기를 함께 나누는 자리가 이어지고 짧은 감상평과 더불어 림자는 일기에 대한 간단한 설명과 다른 작가들이 일기를 바라본 시선을 전해준다. 주인공은 시옷이라는 이름을 붙인 자신의 유년 시절의 아이가 성장해가는 과정을 전해준다. 시옷이라는 아기가 온양집에서 엄마와 아빠와 할머니와 유복하게 살던 시절을 지나 성장소설의 단골소재라 할 수 있는 아빠의 빚으로 인해 집안이 풍비박산이 난 이후 응달집으로 이사하여 대폿집을 하는 여자의 아들인 윤수를 만나기까지의 여정이 너무나도 흥미롭게 진행된다. 


일기 속에서의 시옷은 방송국 합창단에서 쏠로를 부르는 맑은 음색을 가진 소년으로 여겨질 만큼 노래를 잘 부르는 아이었지만, 중년 여성이 된 일기의 주인공은 이름도 드러내지 않은 채 이혼 도장만 찍지 않았지 헤어진 남편과 소원해진 딸로 인해 상처 가득한 하루하루를 간신히 견뎌내는 인물이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 따져본다고 해서 우리가 바라는 모습대로 삶이 회복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주인공은 어쩌면 다시는 돌아보고 싶지 않았던 시옷의 과거를 정면으로 바라보며 딸과의 재회를 고대하게 된다. 사춘기를 지나 성인이 되면 다들 철이 들고 가족의 소중함을 깨닫고 다시금 품안의 자식처럼 애틋한 가족의 정을 나눌 것이라 기대하지만, 혈육의 정은 모든 과거의 시간을 단숨에 몽글몽글하게 만들어주지는 못한다. 


방송국 합창단 지휘자가 제멋대로 소년으로 착각해 쏠로로 발탁하더니, 시옷이 애니의 단복을 입고 촬영 당일날 나타나자 경멸과 혐오의 시선으로 시옷을 외면한다. 상처받은 시옷은 노래를 내려놓게 되고 열살 아래 동생 수호의 백일날 노래를 불러보라는 할머니의 부추김을 윤수와 함께 게다리춤을 추며 애써 외면하게 된다. 시옷이 노래를 더 이상 부르지 않기로 결심한 부분을 일기로 나눈 날 일기쓰기 모임의 고슴은 보육원에서 자랐다는 고백을 하며 배우지도 않는 노래를 이미 알고 있었다는 그것은 분명 기억하지 못하는 엄마에게서 온 것임을 확신하는 말을 듣게 된다. 그리고 주인공은 떠나간 남편에게 연락해 자신이 딸에게 노래를 불러준 적이 있는지 확인하게 되고, 남편 석구는 간난아기였던 해준에게 고슴이 기억하는 구슬픈 노래를 불러준 적이 있다고 말해준다. 


일기는 자신의 기억을 바탕으로 진술되기에 자신이 느꼈던 감정의 영역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아무리 객관화하려고 해도 일기를 쓰는 과거의 사건을 바라보는 화자의 시선이 제멋대로 내용을 편집할 수 있다. 그리고 나는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사건의 단면이 존재한다. 시옷은 노래를 꽤나 잘 불렀지만 애니처럼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하고자 마음껏 때를 쓸 수 없었던 시간을, 빚더미에 앉은 아빠 때문에 설상가상으로 터를 판 시옷 덕분에 수호를 가진 엄마의 폭폭한 마음 때문에 상처받고 외로워하는 시간을 마주하게 된다. 성추행범으로 몰린 남편 석구가 뻔뻔하게도 사과하지도 않고 더이상 사랑하지 않기 때문에 떠나가버린 것이나 바깥 일로 딸을 제대로 돌보지 못해 소원하진 해준과의 관계가 지금의 주인공이 우울과 불안 증세를 지속시키는 근본적인 이유에 해당되겠지만, 화자는 더 이상 남편과 딸을 책망하지 않는다. 


응달집에서 때가 꼬질꼬질했던 같은 반 친구 윤수와 윤심 언니의 이야기가 지나가고 어느덧 시옷은 성인이 되어 연로한 엄마와 열살 동생으로 카페를 시작한 수호를 마주하게 된다. 딸 해준과 서먹한 사이가 된 것과 마찬가지로 남동생 수호만 바라보고 사는 것 같은 엄마의 별일 없냐는 전화로 전해주는 부고 소식은 주인공의 마음을 더욱 헤집어 놓는다. 응달집의 친구 윤수의 비극적인 죽음을 전해는 엄마의 전화를 외면하지만 중년이 된 시옷은 온양집의 맞은 편에 카페를 연 수호를 만나러 간다. 그리고 수호를 통해 잘 알지 못했던 윤수의 삶을 전해듣게 되고, 오랜시간 잊고 지냈던 윤수의 어금니를 뽑던 이야기를 들려준다. 상처로만 가득하고 추한 기억으로만 여겨져 외면하고 싶었던 시간들이 일기쓰는 모임을 통해서 되살아나고 결국은 그때의 시옷을 용기있게 마주한 주인공은 그때서야 수윤이라는 자신의 이름을 얻게 된다. 그리고 노래를 놓아버리며 미워했던 그때의 시간들을 어쩜면 조금은 사랑할 수 있게 되지 않았을까 싶다. 


"집안 대대로 살아왔던 집을 팔아야 할 정도로 빚을 진 아빠의 실패를 한번도 나무라지 않았다. 그저 관세음보살을 찾으며 자신 앞에 떨어진 불행을 묵묵히 해쳐나갔다. 그때는 할머니가 큰 사람이라 그런 거라고 생각했다. 어른이니까 그럴 수 있다고. 할머니는 처음부터 큰 어른이었던 것처럼. 하지만 내가 그때의 엄마보다 더 나이가 들어보니 알겠다. 처음부터 완성된 사람은 없다고. 할머니도 엄마도 아빠도 갈팡질팡 우왕좌왕하다가 그 순간 자신이 할 수 있는 선택을 했을 뿐이라고. 겉보기와 달리 속은 무척 시끄러웠을 거라고. 여러번 무너지고 또 무너졌을 거라고. 그래도 매순간 끊임없이 선택하면서 그렇게 한발 한발 앞으로 걸어갔을 거라고. 사는 게 원래 그렇다고. 이제야 겨우 알겠다. 해준이 보내주었던 제비둥지 사진이 떠올랐다. 처음의 자리로 돌아가지 못해도 괜찮은 거 아니냐고 자꾸만 묻던 해준의 문자메시지도 생각났다.(324)"


#이주혜 #계절은짧고기억은영영 #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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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황금종이 1~2 세트 - 전2권
조정래 지음 / 해냄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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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래 작가의 [황금종이1-2]을 읽었다. 어릴 때에 출근하시던 아빠가 이백원을 손에 쥐어주시면 씻지도 않은 얼굴과 내복바람으로 구멍가게에 달려가 10원짜리 카라멜을 스무 개 사고 충만함에 젖어 하루를 행복하게 보낸 적이 있었다. 카라멜 20개만 있으면 세상을 다 얻은 것처럼 좋아라 하던 나와 같은 시절을 누구나 하나쯤은 갖고 있지 않을까 싶다. “알몸으로 태어나서 옷 한 벌은 건졌잖소.”라는 가사로 많은 이들의 공감을 얻어낸 가수도 있었다. 아무것도 내 것이 없었던 시절, 우리는 모두 그런 때가 있었다. 가끔씩 뉴스 기사로 유치원생 아이에게 수십억원에 해당되는 주식이 배당되었다는 황당한 기사를 접하기도 하지만, 결국 우리는 빈소으로 세상에 와서 언젠가는 빈손과 알몸으로 떠나기 마련이다. 이런 자명한 사실을 너무나도 잘 알면서도 돈에 욕심에서 자유로워질 수 없다. 


무언가에 중독되지 않고서는 점점 견디기 힘들어지는 세상이다.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짓이라고 하지만 그 먹고 살기 위한 일이 좀처럼 우리에게 만족과 보람을 느끼기 힘들게 만든다. 남과 비교하는 것은 하등 쓸데없는 짓이라고 쉽게 말하지만 상대적 박탈감에서 자유롭기란 여간해서 쉽지 않다. 특히나 요즘처럼 SNS에 자기 과시가 넘쳐나는 세상 속에서 어릴 때부터 소비 문화에 익숙해진 세대에게 자기 소신을 갖고 남을 의식하지 않고 살아야 한다는 말은 저 먼 과거의 메아리처럼 들릴 것이다. 애어른 할 것 없이 하고 싶은 걸 마음 껏 누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돈이 많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단순한 계산으로도 아주 소수를 제외하고는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룰 수 없는 꿈을 꾸며 하루 하루를 견디고 있다. 그러니 이 악몽같은 시간을 무감각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중독이 필요하다. 


이번 작품은 몇 가지 돈에 얽힌 추한 이야기들이 이태하 변호사를 중심으로 펼쳐진다. 소설에 나온 내용과 완전히 똑같지는 않아도 언젠가 뉴스로 한 번 쯤은 접해봤을 법한 돈으로 발생된 슬프고 잔인한 사건들을 떠올리게 만든다. 부모와 자식간에, 형제간에 소송을 벌이고, 심하게는 신체적 상해와 살인까지 서슴치 않는 만행을 저지른 사건들. 신파극 같지만 순정을 버리고 가난한 연인을 배신한 이를 처참하게 복수하는 사건들. 돈이라면 다 되는 줄 알고 안하무인격 행동을 저지르고도 모든 것을 돈으로 무마하려고 했던 비겁한 부자들의 사건들. 어쩌면 지금 이 세상에서 벌어지는 거의 모든 흉악한 사건들의 전초는 돈일지도 모르겠다. 


주인공인 이태하 변호사는 과연 실존할 수 있는 인물일까 싶을 정도로 이상적인 모습으로 그려지고 있다. 분명 어딘가에 소설 속에 나온 소신 넘치는 삶을 살고 있는 분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소설 속 이태하 변호사는 여느 사람들이 지닌 돈과 양심의 저울에서 어느 쪽으로 기울 것인지에 대한 질문을 솔직하게 건네고 있다. 돈의 노예가 되지 말고 욕심을 버리고 살아야 한다는 말은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다. 소설의 시작에서 이태하 변호사와 동창으로 나오는 대기업 간부인 박현규 가족의 이야기는 바로 이렇게 언제든 너무나도 쉽게 돈의 노예가 되기를 선택하는 나약한 우리의 모습을 보여준다. 과연 나라면 딸이 오랜시간 사귀어온 애인을 헌신짝처럼 버리고 수천억 자산가의 아들과 새로운 연애를 시작한다는 사실을 알고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딸의 속물과도 같은 행동을 질타할 것인가, 아니면 딸이 어마어마한 부잣집 아들과 결혼까지 해서 한 평생 편안하게 살기를 바랄 것인가. 


남의 이야기라면 쉽고 빠르게 속단하고 뒷담화를 하거나 자식 교육을 그렇게 시키면 안된다고 혀를 찰지도 모른다. 아니 반대로 딸의 선택에 박수를 치며 응원을 해주는 것이 마땅하다며 망한 집 아들과 결혼하기 전에 헤어져서 다행이라고 참견을 할지도 모른다. 소설 속에서 그렇게 강직한 모습으로 나오는 이태하 변호사도 박현규의 빈소에서 또 다른 동창인 윤민서와의 대화를 통해 과연 자신이 박현규와 같은 상황에 처했다면 아마도 그와 비슷한 선택을 하지 않았겠느냐며 서로의 마음을 나눈다. 딸의 행복을 위해 속물 같은 선택을 눈 딱 감고 행했는데, 그런 선택이 모든 가족을 풍비박산으로 만들어 버릴 것이라고 누가 상상이나 할 수 있었겠느냐고 말이다. 소설이기에 극단적인 상황까지 이르게 되었지만, 현실에도 우리는 비슷한 선택을 하게 되고 그 이후에 어떤 결말을 맺게 되는지 우리는 자세히 알지 못한다. 


해마다 최저시급이 오르고 있다고 하지만 온전히 자신의 힘으로 지금 우리나라의 물가와 부동산 시세에서 연애를 하고 결혼하고 아이를 낳아 키우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웬만큼 높은 연봉을 받는 직장에 다니지 않고서는 수억에 달하는 집장만을 하기 위해서는 거의 한 푼도 쓰지 않고 수십년을 저축해야만 가능하다. 거주가 안정치 않은 불안한 상황에서 2세를 낳고 미래를 꿈꾸며 여가를 즐긴다는 것은 말도 안되는 가정이다. 저출생으로 인해 인구저하와 경제적 악화를 우려하면서도 실질적인 대책은 전무한 상황이 아닌가 싶다. 부모님께 물려받을 재산이 별로 없는 경우에 비슷한 경제적 지위에 있는 상대를 만나 내 집 장만을 계획하고 자녀를 낳아 키우는 상상을 하게 되면 당연히 한숨부터 나오게 된다. 그래서 소설 속에 나온 어떤 젊은 여성이 애인에게 이별을 고하는 것은 너무나도 현실적이다. 결국 그 여성은 비혼의 삶을 선택하게 된다. 남자는 어떻게든 헤쳐나가자고 설득하려 하지만 하나씩 따지고 드는 여자는 서로를 위해서 혼자 사는 삶을 선택하는 것이 가장 경제적인 선택임을 설명한다. 좀처럼 반박하기 힘든 논리였다. 내가 만일 그들의 입장이라면 대입해보면 답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런지 읽는 내내 마음이 좋지 않았다. 첫머리에 나온 작가의 말을 되뇌이며 황금종이에서 자유로워지는 날을 꿈꿔본다. 


“우리가 하루도 거르지 않고 날마다 써야 하는 것은 무엇일까.

우리가 필요한 모든 것을 갖게 해주는 것은 무엇일까.

우리가 의식, 무의식 중에 날마다 생각하는 것은 무엇일까.

우리가 의식, 무의식 중에 날마다 걱정하는 것은 무엇일까.

우리가 지니면 힘이 나고, 없으면 힘이 빠지는 것은 무엇일까.

우리가 남에게 줄 때는 쉬워도 남에게 얻기는 어려운 것은 무엇일까.

우리가 너나없이 가장 갖기를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우리의 행복과 불행을 좌지우지하는 것은 무엇일까.

우리의 삶에 약이 되기도 하고 독이 되기도 하는 것은 무엇일까.

우리가 어느 만큼 지니지 못하면 인간으로서의 품격을 박탁해 버리는 것은 무엇일까.

우리가 전혀 갖지 못하면 곧바로 죽음과 맞닥뜨리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

그리하여 5,000여 년에 걸쳐서 줄기차게 우리를 지배해 온 것은 무엇일까.

그러므로 우리는 그 마력에 휘말려 얼마나 많은 비극적 연극의 주인공으로 출연하는 것일까.(작가의 말 4-5)”


#조정래 #황금종이 #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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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견자들
김초엽 지음 / 퍼블리온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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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초엽 작가의 [파견자들]을 읽었다. 이번 작품은 어느덧 장르문학의 대표 주자가 된 저자의 SF 장편 소설이라고 보기에는 너무나도 심오한 철학적 주제들을 다루고 있기에 흥미 위주의 시선으로 따라가다보면 길을 잃고 표류하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미래의 언젠가 꼭 일어날 것 같은 단골 소재인 미지의 대상이 지구를 침공하여 살아남은 소수의 인류가 지하와 같은 고립된 장소에서 간신히 연명해가며 전복을 꿈꾸는 플롯이 이 소설의 얼개를 갖추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싶었다. 하지만 소재는 엇비슷한 내용을 다루었다 하더라도 이야기가 전개되고 그 안에서 주인공이 자아를 찾아가는 과정은 과히 범상치 않았고 무척이나 인식론적 방법론을 택한 것처럼 조금은 난해했다. 그래서 그런지 소설의 재미를 쫓다가 어느덧 심각한 철학적 논제를 서술한 듯한 문장들을 접할 때면 가만히 그 문장을 몇 번이나 곱씹어 보게 되는 경험을 하게 만든다. 


이번 작품은 범람체라는 외계의 세계에서 지구로 유입된 세력이 지상의 땅을 점령하게 되고 범람체를 접하고 범람화된 사람들은 광증이라는 증세를 보이며 지하에 고립된 사람들의 세상에서 격리된다. 지상의 땅과 하늘과 물과 바람을 기억하는 소수의 사람들은 언젠가 범람체를 다 제거하여 다시금 인간이 지상의 주인이 되기를 간절히 바라며 서서히 비밀스러운 작전을 수행해 나간다. 소설의 주인공인 정태린과 자매이자 친구로 나오는 선오를 제외하고는 다른 인물들의 이름이 모두 외국인 이름으로 나와 이 소설 속의 배경은 단지 한 국가를 지칭하지 않고 전세계를 총망라하는 전지구적인 인류를 대표하고 있다는 설정으로 다가온다. 주인공인 태린과 그를 오랜시간 지켜오며 태린과의 친밀한 유대감을 형성해 온 이제프 파로딘은 파견자들 중의 뛰어난 교관으로 과거에 태린이 실험체로서 제거될 위기에서 구해낸 사실을 숨긴 채 태린이 파견자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조력자로 나온다. 태린은 실험대상으로의 기억을 잃은 채 자신의 몸 안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의 주인공에게 쏠이라는 이름을 붙인다. 태린은 기억력을 확장시키는 수단으로 장착되는 뉴로브릭의 부작용으로 자신에게 그런 기이한 현상이 일어나는 것이 아닐까 의심했지만, 소설의 후반부에 드러나는 것처럼 태린의 몸 안에서 함께 공생하는 쏠은 범람체의 한 형태로 이미 범람화가 된 태린은 광증을 보이지 않고 쏠과 함께 공존하는 기이한 상태로 살아가고 있었다. 


이러한 사실을 기억하지 못하는 태린은 자신이 연모하는 이제프처럼 파견자가 되어 이제프와 함께 지상으로 올라가 땅과 하늘을 함께 바라보며 바람을 맞고 싶다는 바람으로 파견자 시험에 응시하지만, 쏠의 도움을 받아 최종 관문까지 무사히 통과하자 마자 쏠에게 자기 몸의 주도권을 빼았겨 광증을 유발하는 물질을 지하도시에 유포하게 된다. 이제프는 범람화된 태린을 제거하려는 다른 이들로부터 지켜내기 위해 새로운 지역 탐사를 위한 파견자로 추천하게 되고 태린은 그곳에서 범람체와 완전히 연결된 늪인들을 만나게 된다. 늪인들에게 붙잡힌 태린과 그의 동료들은 더 이상 인간의 외형을 갖지 않고 있는 늪인들과의 새로운 형식의 대화를 통해 범람체가 무작정 지구를 정복하여 인간을 말살시키려는 의도가 없었음을 알게 된다. 그리고 범람체의 인간과의 결합은 그동안 인간이 한 개체로서의 자신을 의식할 때만이 인간의 존재 자체를 인정해왔던 모습에서 유기적 연결망으로 인해 한 개체로서의 인식을 뛰어넘는 존재로서의 새로운 형태의 존재를 인정하는 모습으로 변화된 것이었다. 


마치 태린이라는 하나의 몸 안에 원래 인간 존재로 자신의 자아를 인식해온 태린이라는 한 인간 개체와 범람체의 유입으로 쏠이라는 새로운 자아가 함께 살아가는 모습처럼 말이다. 늪인들은 태린의 형태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 더 이상 인간의 외형을 유지하지 않게 되고 인간의 언어를 사용하지 않고 진동과 냄새와 같은 원초적인 느낌으로 서로의 생각과 의사를 교환할 수 있는 형태로 변이된 것이다. 늪인들은 더 이상 인간의 음식으로 생존하지 않고 이미 황폐화되고 오염된 땅과 물 속에서 생존하며 과거의 인간과는 다른 형태의 음식을 섭취하며 살아갈 수 있게 변화된 것이다. 그럼에도 태린이 늪인들과 대화를 나누며 소통이 가능한 존재로 인식했기에 늪인들은 제거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변이된 지구에서 새로운 행태로 살아갈 수 밖에 없는 형식임을 받아들이게 된다. 


작가의 말에서 이 소설의 시작은 우리 몸을 구성하는 아주 미세한 부분에 해당되는 세포와 단백질, 분자에서 시작되었다고 말한다. 우리는 의식을 갖고 있는 존재이고, 내가 나를 의식하는 상태가 무너져 버려 더 이상 자신의 존재를 드러낼 수 없을 때 흔히 죽음에 이르는 소멸의 단계에 이르렀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 소설의 모티브가 된 것처럼 의식적인 존재인 인간은 자신의 몸 안에서 끊임없이 생성되고 소멸되는 작은 세포 조직 하나조차도 마음대로 조종 할 수 없다. 마치 나의 의지와는 전혀 무관하게 내 몸 안의 세포들은 내가 먹고 움직이고 쉬는 것에 영향을 받으며 스스로 생과 사를 오가는 개별적인 존재들처럼 영위한다. 그런 면에서 저자가 소설 속에서 제기한 의문은 어찌보면 참으로 타당한 과학적이면서도 철학적인 질문이 아닐 수 없다. 


“너희는 이미 수많은 개체의 총합. 하나의 개체로는 너희를 설명할 수 없어. 네 안에는 다른 생물들이 잔뜩 살고 았어. 그 존재들은 너와 같이 살 뿐만 아니라, 너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어. 의식이야말로 주관적 감각이 만들어낸 환상일 뿐이야. 

혼란스러웠다. 그들의 규정하는 의식과 태린이 규정하는 의식은 너무 달랐다. 태린의 생애에서 ‘자아’란 흔들린 적 없는 굳건한 개념이었다. 미생물이나 기생충 같은 것들이 인간에게 붙어 산다고 해도 그것들이 의식을 갖는 건 아니지 않은가. 그것들은 스스로 생각하지 않는다. 태린에게 붙어 있고, 때로 영향을 미칠 수는 있지만, 영혼과는 구분되는 외부의 존재일 뿐이다.(183)” 


“여전히 자신이 변이되었음을 받아들이지 못한 이들도 있었다. 그들은 벽에 머리를 찧고, 모든 음식과 물을 거부하며 죽어갔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발현자들은 받아들였다. 그것은 선택이 아니라 인정의 문제였다. 변이는 죽음이 아니라는 것, 그들은 망가쳐 가는 것이 아니라 단지 다른 형태의 삶으로 진입했다는 것. 그들은 이전의 것을 차차 내려놓고 낯선 방식을 다시 배워나갔다.(360)”


“그렇다면 이 불균형하고 불완전한 삶의 형태는 어떻게 지속될 수 있을까. 태린은 경계 지역에서 자라나는 아이들이 그 답을 찾아내주기를 바랐지만, 어쩌면 아이들도 명확한 답에는 다다르지 못할지도 모른다. 단지 불균형과 불완전함이 삶의 원리임을 받아들이는 것, 그럼에도 끊임없이 움직이며 변화하는 것, 멈추지 않고 나아가는 것만이 가능한 방법일지도 모른다. 어느 쪽이든 태린은 그것이 계속해서 다음 세대로 어이질 질문이라고 생각했다.(419)”


#김초엽 #파견자들 #퍼블리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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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시우행 2023-11-26 12: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설책 한 권 읽은 기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