멜라지는 마음 현대문학 핀 시리즈 에세이 3
김멜라 지음 / 현대문학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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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가 대부분 그렇지만, 이 책은 정말 작가 본인의 이야기만 한다. 그래서 나는 좋았다. 물론 신변잡기만 늘어놓는 것은 아니다. 그 자신 외에도 그의 가족, 연인, 주변 인물, 동물들, 그가 읽은 책, 말과 글이 갖는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힘, 일상에서 오는 감상과 경험을 통한 크고 작은 깨달음 등 우리가 동의하고 공감하거나 혹은 그렇지 않을 수 있는 얘기들을 하고 있다. 





  
 
에세이를 읽다보면 글쓴 이, 혹은 글에 등장하는 주변 인물이나 사건에 이입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럴때마다 사람 사는 게 다른 것 같아도 다 비슷비슷하다는 어르신들의 말을 떠올리곤 하는데, 이 책은 유독 공감하는 부분이 많았다. 작가의 성향이나 경험치에서 나의 유사한 점들을 꽤 많이 발견했기 때문이기도 하고(심지어 외할아버지를 '~ 씨'라고 쓴 것까지!), 그냥 모르는 어느 누군가의 살아오고 살아갈 일들을 읽는(이라고 쓰고 '듣는'이라고 이해하는) 즐거움이 크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책에는 후각에 대한 얘기가 나온다. 작가의 연인과 언니가 후각이 민감한, 특히 작가의 연인은 지상에 존재하는 온갖 먹을 것에서 다양한 비린내를 맡았다고 했는데 이런 격한 공감이라니. 지금도 내가 수박과 오이, 밥이 지어질 때 올라오는 냄새, 콩국물 등에서 물비린내가 난다고 하면 이를 납득하는 이가 거의 없다. 말도 안 된다는 반응이 대부분이고, 유난스럽다는 소수의 반응, 뭔지 알겠다는 대답은 백 명 중 한 명 있을까말까다. 이러한 민감함은 일상생활이 불편할 때가 있을 정도라는 말 역시 동의하는 바다. 일상에서 내가 거의 하지 않는 일이 음식물쓰레기를 버리는 일이고, 앞집에서 비린 식자재를 배달하고 반나절 이상을 집안으로 들이지 않는 날에는 며칠동안 그 비린 냄새에 내가 생고생이다. 하지만 이런 말을 누구한테 해봐야 예민한 내 코만 탓할 뿐이다.  


ㅡ 


어떻게 살까, 교훈을 얻기 위해 책을 읽었다는 작가. 본인도 인정하듯 작가가 책을 읽는 이유치고는 상당히 의외다. 이유야 어찌되었든 나 역시 의도치 않게 읽었던 수많은 책들과 그 안에서 숨쉬는 인물들에게서 삶의 교훈을 얻었다. 책뿐이겠나. 작가는 가까운 연인부터 길냥이, 몇 번의 이사를 통해 거쳐간 이웃들, 등단하기까지 초조했던 숱한 시간들 등 몸으로 부딪쳤던 많은 일들이 하루하루의 깨달음이 아니었을까.  



"많아서 넘치지도, 모자라서 초조하지도 않게, 가까스로 겨우, 부족하지만 그 결핍이 슬픔이 되지 않도록 둘이서 다정하게. 온점은 그 다정함이 쌓여서 다복이 된다고 하는데, 다정을 잃으면 다 잃는 거라며 자잘한 다정으로 탄탄하게 다복을 쌓아가자고 말한다." (p285) 


내가 이 문장에 꽂힌 이유는 간단한다. 나는 '다정'이라는 단어를 무척 좋아한다. 다정한 마음을 건넬 줄 알고, 다정하게 배려하는 사람들을 사랑한다. 가끔 내가 이와 비슷한 말을 하면 나의 가까운 지인은, "말만 그렇게 하지 말고 너야말로 그 무뚝뚝한 성격 좀 어떻게 해 봐."라고 장난스레 말한다(진심일지도...!). 아무튼 이 책에서 가장 좋았던 문장이다. 



작가는 에세이의 말미에 자신이 이 글을 쓴 이유에 대해서 고백하듯 말하고 있다. 그래서 작가의 필명이 왜 '멜라'인지 알게 됐다. 읽으면서 얼마 전에 읽었던 김연수 작가의 소설 중 한 대목이 떠올랐다. "버틸 때까지 버텨보다가 넘어지면 그만이야". 작가가 말한 '멜라지는' 것과는 조금 다를지 모르겠으나 어쩌면 이런 생각(마음가짐)이 우리를 더 단단하게 만들어주는 건 아닐까싶다. 


올해의 마지막주, 난로를 켜놓고 편한 좌식 소파에 앉아 읽은(나에게는 극히 드문), 이 편안한 기분에서 오는 간만의 나른함이 무척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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밸러리
사라 스트리스베리 지음, 민은영 옮김 / 문학동네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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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4월, 밸러리 솔래너스는 샌프란시스코의 홍등가 텐더로인에 있는 한 호텔방에서 폐렴으로 죽어간다. 4월 30일, 호텔 직원이 이미 구더기로 뒤덮인 그녀의 시신을 발견한다. 사망 시점은 4월 25일 경으로 추정하고 있다. 






작가는 시작하기 전에 이 소설이 전기가 아니며 그녀의 삶과 저작에 기반을 둔 환상문학임을 밝힌다. 그리고 밸러리 솔래너스의 삶을 충실히 재현하지도 않았으니 주인공 밸러리를 포함해 대부분 허구로로 간주해야함을 분명히 하고 있다. 


밸러리를 '너'라고 칭하는 서술자를 둔 2인칭과 3인칭을 번갈아가며 서술하는 소설은 밸러리의 시신이 발견된 1988년 4월 30일을 기점으로 과거와 현재를 오간다. 당시에 미국을 흔들었던 굵직한 사건을 비롯해 밸러리의 개인사 등 실제 사건과 허구적 요소가 절묘하게 엇갈리며 독자를 배심원으로 끌어들여 사실(혹은 아직 확인 되지 않은, 어쩌면 확인할 수 없는 진실) 여부를 읽는 이들의 판단에 맡긴다.   


이 소설에서 밸러리와 대화를 하는 모든 인물들은 그녀의 망상 혹은 또 다른 자아들이라고 읽혔다. 책에 실린 모든 내용이 사실일수도 있고, 밸러리의 착각일수도 있다. 과연 그녀가 진실이라고 믿는 것은 사실일까.    


ㅡ 


아버지의 성적 학대와 폭력, 어머니의 방기, 제대로 된 돌봄을 받지 못했던 끔찍하고 비참했으며 공포스러웠던 유년 시절. 일곱 살에 처음 친부로부터 성폭력을 당했고, 어머니 도러시는 이를 알면서도 모른 척 외면했다. 딸을 돌보지 않았던 어머니의 관심과 사랑을 바랐기에 소설에서는 어머니를 향한 집착에 가까운 밸러리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밸러리가 래디컬 페미니스트라고 불리는 데에 그 원인을 찾아볼 수 있는 단면 중 하나가 아닐까싶다. 


멜름허스트정신병원에서 재차 왜 앤디를 쐈는지 이유를 묻는 의사에게 밸러리는, 오히려 여자들이 도대체 왜 총을 쏘지 않는지, 강간과 폭행을 당하고 차별을 강요당하는, 여자의 모든 권리가 공격받고 있는 세상에서 왜 총을 쏘지 않는지 그 이유를 모르겠다고 대답한다. 동시에 남자라는 성을 파괴해야한다고, 앤디를 비롯해 몇 사람에게 총을 쏜 행위를 옳은 일을 했다고 주장하며 전혀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하면서도 앤디 워홀을 총으로 쏜 후 혼자 있고 싶지 않아서 자수했다는 모습에서 그녀의 불안감을 짐작할 수 있다.  



밸러리는 대학원에 입학해서도 저항자이자 아웃사이더를 자처한다. 뿐만 아니라 비록 그녀 스스로 만든 상황이라고 할지라도 과거의 악몽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이후 얼마나 고립되고 외로움에 고통스러웠는지, 그래서 오히려 더 강하고 극단적으로 자신을 드러내야만했던 이유가 소설 곳곳에서 보여진다.   


밸러리의 위악적인 모습을 통해 그녀가 얼마나 자유를 열망했는지 느껴진다. 암살 미수 사건으로 유명세를 얻자 곧바로 그녀의 글을 출간하며 상업적으로 이용하는 세태에 더 절망했던 밸러리는 주변에 어려움에 처한 여자를 비난하거나 비하하지 말고 그냥 도와주라고, 그게 곧 이 사회에서 여자로 살아가는 당신의 모습이라고, 일갈한다.  


소설의 마지막, 밸러리가 죽음을 맞은 순간은 비록 작가의 상상이라고해도 너무 가슴이 아프다. 래디컬 페미니즘 내에서도 가장 논쟁적인 인물이었다는 밸러리. 그동안 우리는 정작 봐야할 그녀의 모습을 놓친 것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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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슬퍼할 거 없다니까. 이야기는 여기에서 끝나니까. 네가 슬프다면 내가 괜찮은 조언을 해줄게. 잠잘 곳도 먹을 음식도 없이 누더기 차림으로 거리에서 구걸하는 여자를 집으로 데려가. 쓰레기통에서 자는 중독자 여자를 집으로 데려가. 마약에 찌든 창녀, 노숙자, 미치광이를 집으로 데려가. 지하철에서 걸음을 멈추고 정신병자 매춘부와 얘기를 나눠. 그 여자가 아무것도 아닌 일로 악을 쓰고 난리를 쳐도 가버리지 마. 그 여자에게 어디에서 왔는지, 필요한 게 뭔지, 뭘 도와주면 좋을지, 노트에 뭘 썼느지 물어. 죽어가는 약쟁이 창녀에게 그리 관심이 많다면 말이다. 호스텔과 정신병원과 빈민가 마약 소굴, 홍등가, 교도소를 찾아가. 바깥에서 세상이 널 기다린다고, 이 친구야. 그 자료의 제목은 ‘그 여자는 사방에 있다‘. - P170

그 여자는 왜 계속 글을 썼을까? 누구든 왜 계속 글을 쓴 걸까? 왜 대학을 떠나지 않았을까? 어떤 여자는 왜 교직에 남았을까? 왜 총을 쏘지 않았을까? 그 여자와 같은 부류의 대다수는 뫠 무기를 손에 넣지 못했을까? 그녀의 모든 권리가 끊임없이 공격당했어. 게으르고 아름다운 그들은 롱아일랜드에 있는 정원들을 거닐고 있었지. 그들은 왜 정원을 파괴하지 않았을까? 여성성의 신화. - P2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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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뤼미나시옹 - 페르낭 레제 에디션
장 니콜라 아르튀르 랭보 지음, 페르낭 레제 그림, 신옥근 옮김 / 문예출판사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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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일곱 해의 삶을 살다간 랭보. 거기다 문학적 삶은 훨씬 더 짧기에 그의 시는 그다지 많다고 볼 수 없다. 산문시인 <일뤼미나시옹>은 <지옥에서의 한 철> 이후 그가 시인으로서의 삶에서 벗어난 시기에 쓰여진 것으로 추측되는데, 그래서일까, 뭐라 깔끔하게 단정할 수 없는 복잡하고 혼란스러운 그의 심경이 곳곳에서 느껴졌다.  


회의, 혼란, 새로운 시작, 무언가에 삶을 바치겠다는 열정, 자유, 시와 삶에 대한 격정과 치열함, 청년 시절의 회한과 그리움 등 그가 예술가가 아닌 삶의 현장의 직업인으로서의 경험을 통해 느꼈던 어떤 경계에서 오는 미묘한 감정의 변화들을 써내려간 것이 아닐까싶다. 그런데 그의 격정이나 치열함에 비해 삶에 대해 그다지 희망적이라거나 또는 지나온 삶을 아름답게 기억하지 않는 것으로 읽힌다. 


이러한 글을 쓴 나이가 서른 전후였다고 짐작해보면ㅡ굳이 그의 삶의 이력을 언급하지 않더라도ㅡ얼마나 고뇌가 컸을지 알 것 같았다.  





 



랭보의 시도 귀하지만 이 책의 매력은 단연코 페르낭 레제의 그림이다. 실린 그림의 양도 적지 않다. 
이 책, 페르낭 레제 에디션은 페르낭 레제가 《일뤼미나시옹》만을 위해 그린 그림이 수록된 아트 컬래버 시집이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시에 맞춤처럼 그림과 글이 상통한다. 때때로 마주하는 시의 모호함과 난해함이 추상화와 만나 이해를 돕는다. 왠지 회색빛일 것만 같은 랭보의 시가 이토록 색감이 풍부한 그림과 찰떡이라는 것도 의외이기도 하고.  


개인적으로 책의 가장 끝부분에 실려있는 랭보의 초상화가 마음에 들었고, 책 내지의 질감이 좋았다. 이 질감 때문에 그림을 보는 맛이 더 컸다.  


시는 몇 번에 걸쳐 더 읽어봐야할 것 같아서 옮긴이의 해제는 이 과정을 거친 후 참고하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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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오 - 우리는 왜 검열이 아닌 표현의 자유로 맞서야 하는가? Philos 시리즈 23
네이딘 스트로슨 지음, 홍성수.유민석 옮김 / arte(아르테)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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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제 : 우리는 왜 검열이 아닌 표현의 자유로 맞서야 하는가?







미국의 수정헌법 제1조에 명시된 '혐오표현금지법'을 논제의 중심에 놓고 혐오표현금지법의 문제점과 그에 대한 구체적인 사례를 서술한다. 일단 혐오, 그리고 혐오표현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지 않으면 충분히 왜곡해서 수용할 수 있는 부분이라 일단 용어와 용어가 갖는 범위에 대해 숙지하는 게 우선일듯 하다.


혐오표현금지법 지지자들은 형.민사 사법제도를 포함한 사회제도가 인종차별과 다른 유형의 차별을 반영한다고 주장하면서 무의식적 편견을 지적한다. 저자는 이러한 현실을 감안할 때 혐오표현금지법을 집행하는 기관과 개인은 소수자에게 도움이 되는 방식으로 집행하지 않을 것이 뻔함을 지적한다. 일부 지지자들은 전통적으로 차별의 대상이 되어 온 집단을 향한 표현일 때에만 법을 집행해야 한다고 제안했지만, 자유와 평등 원칙을 위반하는 셈이다. 과거 노예제도 폐지론자들을 향해 노예제도 옹호론자였던 존 캘훈이 노예제도 비판이 남부의 명예를 훼손하고 상처를 입혔다는 것처럼 오늘날에는 '역차별'이라는 용어가 이와 비슷한 맥락이라고 본다면 이해가 쉬울 듯 하다. 


혐오표현은 당연히 반대하지만, 이를 법률로 제한하는 것은 오히려 악용될 수 있어 부작용을 불러올 수 있으므로 저자는 다른 방식으로 혐오표현에 대응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ㅡ 


혐오표현금지법은 기본적 표현의 자유 원칙과 평등 원칙을 위반함과 동시에 난감한 모호함과 광범위함 때문에 표현의 자유와 평등을 저해한다. 무력한 소수자집단을 보호하기 위해 고안된 혐오표현금지법이 바로 그 소수자집단의 또는 그들을 대신하는 표현을 억압하기 위해 사용되는 경우가 대표적인 부작용 사례다. 이 소수자 집단들은 정치적 힘이 부족하기 때문에 이러한 집행 양상은 예상할 수 있고 매우 흔하다. 취약한 소수자집단에 집행되는 혐오표현금지법의 문제는 서유럽을 포함하여 보다 안정된 민주주의 정부에서도 발생한다. 


지나치게 모호하거나 광범위하지 않은 혐오표현금지법을 만드는 것이 가능하냐고 묻는 저자는 혐오표현이라는 개념 자체가 모호함, 갈등, 혼란으로 가득차 있다고 말한다. 따라서 우리가 근본적인 관점 중립성 원칙과 긴급성 원칙을 벗어나고자 하더라도, 모든 혐오표현금지법은 받아들일 수 없을 정도로 모호하거나 지나치게 광범위하기 때문에, 여전히 기본적인 표현의 자유원칙에 위배될 것이라고 짚는다.   


혐오표현금지법이 효과가 없거나 역효과를 낳은 수많은 사례를 들면서 혐오표현금지법을 가진 많은 국가가 차별을 줄이는 긍정적 효과를 거의 경험하지 못했음을 지적한다. 오히려 혐오표현을 형사처벌하는 법을 집행해 온 몇몇 정부는 인종, 민족, 종교 등을 이유로 한 야만적인 차별을 경험해 왔는데, 대표적이 사례가 혐오표현금지법이 있음에도 부활한 나치즘이다. 


그리고 또다른 방법으로 삼는 검열은 여러 면에서 중요한 부정적 결과를 초래한다. 일부 차별적 표현을 더욱 숨게 만들어, 그들을 설득하고 그들의 행동이 차별적이지 않은지 감시할 기회를 잃게 만들며 이로써 차별적 언행을 하는 이들이 스스로 깨달을 기회를 잃게 된다. 혐오표현을 억제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단기 이익보다는 이를 폭로하고 이의를 제기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장기 이익이 더 클수 있다고 주장한다.  


ㅡ 


처음 위에서 언급했듯 법률로써 혐오표현을 제한하는 것은 부작용이 따른다. 그래서 저자는 혐오와 차별을 맞서는 방법으로 '대항표현'을 제시한다. 


'대항표현'이라는 용어는 동의하지 않는 메시지에 대항하는 모든 표현을 포괄한다. 혐오표현의 맥락에서 대항표현은 혐오표현이 전달하는 사상을 직접적으로 반박하는 표현, 광범위하고 적극적인 교육 계획, 차별적인 발언을 한 사람의 반성 표명 등 잠재적으로 광범위한 표현들로 이루어져 있다. 


우리는 혐오적이고 차별적인 말의 해로운 잠재력에 저항할 수 있고 또한 다른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 말에 더 민감해질 수 있는 능력을 키워야할 것이다. 저자는 여러 이유에서 관점 중립성 원칙에 예외를 두어 혐오표현을 규제한다면 시민권 보호를 옹호하는 이들의 표현도 보호할 수 없게 되고, 혐오표현금지법이 표현의 자유, 민주주의, 평등 및 사회적 화합을 심각하게 손상할 것이기 때문에 혐오표현금지법을 거부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올해 초, 우리나라에서 한 국회의원이 '온라인 혐오표현 방지법'을 발의한 것으로 알고 있다. 이 책을 읽다보면 혐오표현을 법률로써 규제하는 것이 능사가 아님을 새삼 깨닫는다. 이미 수많은 프레임을 구축해 놓은 기득권층은 이를 얼마든지 합법적으로 악용할 소지가 충분하다는 것을, 여러 다른 부분의 사례에서 봐왔기에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이 책에서 눈길을 끄는 건 저자가 강력히 주장하는 '대항표현'이다. 비록 미국 법률을 근거해 서술하고 있으나 현재 대부분의 국가와 사회에 해당하는 내용이기에 한번쯤 읽어보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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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오표현이라는 용어는 특정한 개념 정의를 가진 법률 용어가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광범위하고 다양한 표현을 낙인찍고 금지하기 위해 사용된다. 가장 일반적으로 이해되는 혐오표현의 의미는 특정한 개인이나 집단, 역히 역사적으로 차별에 직면했던 사람들에게 혐오적이거나 차별적인 의견을 전달하는 표현을 말한다. - P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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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락 알베르 카뮈 소설 전집 3
알베르 카뮈 지음, 김화영 옮김 / 책세상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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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 서문부터 심상치 않다. 카뮈는 서문에서 이미 말하고자 하는 바를 다 밝히고 있다.

 
소설은 술집에서 우연히 만난 한 남자를 상대로 화자의 혼잣말로 진행한다. 마치 연극의 방백처럼 화자는 정작 앞에 있는 상대가 그의 말을 듣거나 말거나 개의치 않고 연극적으로 말을 이어간다. 자아도취, 자기 환멸과 합리화, 변명과 설득, 거짓과 허세, 자기애와 자기비하, 감정의 기복이 오락가락하는, 적잖이 과장된 화자의 모습은 소설의 한 장치가 아니였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화자 장바티스트 클라망스는 40대 남성 (전직)변호사다. 자신을 재판관 겸 참회자라고 소개하지만, 본명이 아니라고 밝힌 그의 명함에는 이름과 함께 직업이 '배우'라고 인쇄되어 있다.  


대화 상대자와의 첫만남에서 장바티스트는 자신을 '블초소생'이라고 칭하며 한껏 낮추어 겸손의 태도를 보이는데(원서는 어떻게 표현이 되어 있을지 무척 궁금하다), 앞서 서문에서 쓴 맥락ㅡ먼저 스스로를 낮추어 비판의 정당성을 갖는ㅡ과 같다. 또한 이는 소설의 막바지에 이르러서 자신을 고발함으로써 심판할 권리를 확고히 하겠다는 의지가 더 극명하게 드러난다는 점에서 소설의 처음과 끝이 맞닿아 있다. 작가는 이 정당성이 얼마나 모순적인지를 보여준다.  


장바티스트는 술집 주인에 대해 남들의 말을 알아들을 수 없어서 의심이 많아졌다고 평가하며 솔직 담백하던 술집 주인의 천성을 사회가 다소 변질시켰다고 말한다. 이렇듯 개인의 천성을 변질시키고, 의심과 경계를 부추기는 데에 있어서 그 기저에는 사회 집단이 있음을 언급한다. 작가는 이러한 사회 현상을 은연 중에 나치의 유대인 학살을 비롯한 여타 전쟁 상황에 빗대고 있다. 그만큼 현대 사회의 폭력적인 경쟁과 관계에서 오는 불안감을 지적하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또한 현대 사회는 경쟁과 효율성으로 조직되어 있고, 이에 적응하지 못하거나 혹은 효용성이 떨어지면 가차없이 조직에서 제외시키는 현상을 우스갯말로 에둘러 비판한다.  


그는 주로 과부와 고아 등 사회적 약자의 변론을 맡았고, 그 자신의 정의로움에 자부심을 갖고 있다. 이타적이고 양심적인 자신의 생활태도와 미덕에 만족하고 그것으로써 자신을 정의한다. 그리고 자신이 얼마나 예의바르고 너그러운 사람인지를 확인시켜주듯 줄줄 읊는다. 이것이 자신이 상위층임을 드러내는 그만의 방식이다. 선의를 행함으로써 충족되는, 그래서 자신은 남들과 다르다는 우월감을 만끽한다. 자신을 제외한 사람들을 '개미 같은 인간들'이라고 표현하는 그의 말이나 재판정을 무대라고 칭하며 법정에서 판사의 판결과는 무관한 자신의 변호 행위에만 치중하며 판사가 아닌 오히려 본인이 그들을 재판했다고 말하는 모습에서 그가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다.  



인간은 여러 관점에서 이중적이고 모순적인 존재다. 도덕과 부도덕, 현실과 이상, 이기와 배려, 위선과 위악, 자유와 속박, 겸손과 허영 등 때로는 신에게 의탁하고 선을 추구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삶이 더해질수록 죄악이 쌓여가는 아이러니한 현실.   


우정, 공감, 자각과 사유 등 무형의 가치가 사라지고, 타인의 비극을 단순한 구경거리로 치부하며, 획일적인 감정과 일관된 삶의 패턴을 강요(당)하면서 마치 배우인 양 보여주기식 삶과 평판에 기대어 살다가 결국 권태에 이르는 세태.  


카뮈는 어떤 계기에 의한 화자의 전락을 떠나서 산업, 과학기술, 문명의 발달과는 별개로 인간 그 자체로서는 서서히 지속적으로 전락하고 있음을 말하고 있는 건 아닌지. 장바티스트의 말처럼 '완전한 결백'에 이를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어떤 사건(혹은 사고)가 발생함에 있어서 원인, 진행, 해결, 대안 및 예방의 과정 중에 대부분의 사람이 완벽하게 결백하기는 어렵다.  


비록 낯모르는 사람일지라도 누군가의 죽음에 애도조차 하지 않는 사회는 희망이 없다. 카뮈는 측은지심 한쪽 없는 우리들 모두가 '공범'이라고 말하는 건 아니었을까.  


소설 마지막 문장인 클라망스의 빈정거림이 가슴에 콕 박히는 사람은 나뿐이려나. 




※ 출판사 지원도서

아이구 떨려... 물이 얼마나 차다고요! 그러나 안심하세요! 너무 늦었어요, 이젠. 언제나 너무 늦을 겁니다. 천만다행으로! - P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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