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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 유령 - 폭력의 시대, 불가능의 글쓰기는 어떻게 가능한가
W. G. 제발트 지음, 린 섀런 슈워츠 엮음, 공진호 옮김 / 아티초크 / 2025년 6월
평점 :
제발트와의 인터뷰, 그의 작품 평론에서 고른 글들을 엮어 구성한 책이다. 이 책에 실린 서술자들은 대체로 『자연에 따라. 기초시』 『현기증. 감정들』 『이민자』 『토성의 고리』 『아우스터리츠』 를 다룬다.
제발트의 작품들이 수월하게 읽힌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개인적으로 이 책에 실린 평론들(특히 팀 파크스의 글)은 적어도 나에게는 엄청난 대리만족을 선사한다. 머릿속의 생각들을 미처 정리하지 못하고 맴돌기만 하는 나의 한계를 마치 챗GPT처럼 정리해주는 듯한 이 쾌감(동시에 사이사이 끼어드는 자괴감까지는 아닌 속상함?)!
그리고 제발트와의 인터뷰들은 유년 시절의 경험으로 인해 고착된 사고, 그가 평소에 관심이 있었던 문화사와 사회사, 전범국 전후 세대라는 입장이 작품에 끼친 영향, 우연히 이루어졌으나 결국에는 필연처럼 선택한 영국 정착 등 그를 바라보는 외부적 시선 및 평가와 제발트가 직접 말하는 그의 작품 배경이나 집필 계기와 집필 방식, 실존 인물에 입힌 허구적 요소, 영감을 얻고 이야기를 창작하고 글을 쓰는 방식 등을 비교적 생생하게 읽을 수 있다.

제발트가 언어, 특히 텍스트의 힘을 믿었다는 것은 옮긴이의 글이 아니더라도 책을 읽는 내내 독자에게 전달된다. 제발트의 장기인 기억의 파편들을 퍼즐 맞추듯 이어 집단 기억상실증에 걸린 우리를 일깨우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하는 것 역시 텍스트다. 서술자들이 공통적으로 언급하는 용어가 산문설화(prose narratives) 혹은 산문소설이다. 이 용어는 제발트 본인이 자신의 작품 형식에 붙인 용어다. 그의 소설은 픽션과 논픽션 사이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현상을 구체화한다. 그로인해 작가 본인이 서술자가 되어 직접 개입하는 경우가 많다.
「제발트의 인물들은 (...) 삶에 대한 참여를 너무 경계하다보니 병적으로, 자학적으로 우울에 빠져들어 압도되고 마는 것이다. 제발트의 작품은 극히 엉뚱한 행동과 극히 암울한 사실주의 사이를 오간다. 전자의 극단이 후자의 극단을 부른다. 과거에 있었던, 열정에 대한 환상, 그리고 너무나 자주 일어나는, 미래의 조용한 자살. 그의 예술에서 나온 이미지와 주인공들이 누릴 수 있을 덧없고 향수 어린 평정의 이미지는 과거와 미래 사이를 중재하면서 제발트의 작품 전반에 흩어져 있는 거친 흑백사진들이다. (p58-59)」
아주 이른 나이에 죽음을 삶에 들인 제발트는 유년 시절의 경험으로 인해 죽음이 혹은 망자가 산 자 인생의 둘레 어딘가에서 떠돌가 있는 관념이 깊이 자리잡았다. 그래서 그는 주변부에 있는 게 마음이 편하다고 말한다. 제발트는 열외로 취급받는 사람들에게 관심이 있고, 그들의 말을 듣는 걸 좋아했다고 한다. 전후 패전의 상실과 공허로 인해 독일의 사회적 분위기는 그들의 실패를 봉인하기 위해 암묵적으로 합의된 침묵이 있었고, 이런 분위기에서 성장한 제발트는 어린 시절부터 경청의 필요성을 느꼈다. 그러나 진실을 말해줄 사람이 독일에 없다는 판단으로 스무 살에 독일을 떠났고, 외부에서 진실을 말해줄 이들을 찾았다. 제발트는 한 인터뷰에서 전쟁에 대한 부모님의 침묵과 조국의 '집단 기억 상실'을 혐오했고, 나치 부역자였던 가족들에 대한 반감이 컸던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발트는 독일어에 대한 애착이 커서 영국에 정착하고 영어 번역본에 공을 들였음에도 글은 독일어로만 썼다고 한다(이것도 어떤 심정인지 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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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묘한 것은 제발트의 작품은 시시하거나 장황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일반 소설의 즐거움을 주지도 않는다는 사실이다. 유머와 매력, 세련미, 공감을 전혀 찾아볼 수 없다는 것도 놀랍다. 그런 요소들이 없는 책들이 영국에서 조금이라고 성공을 거둘 수 있다는 사실만큼이나 놀랍다. 또 다른 잣대를 들이대자면 등장인물이나 사건으로 이야기를 꾸미지 않고 사색이나 독서에 관한 것만으로, 더 분명히 말하자면, 사색의 기억이나 독서의 기억만으로 쓴 책들이 인기를 끈다는 사실이 놀랍다. (p168)」
제발트는 글쓰는 사람의 역할은 사람들에게 무언가를 상기시켜 주는 것이라고 말한다. 참상의 시각적 형상은 너무 자주 노출이 되기에 광범위한 사고와 철학적 반성을 방해한다고 이해했다. 그래서 제발트는 어떤 문제에 접근할 때 간접적으로 지시 대상을 가리키는 것이 낫다고 말한다. 이것이 잊을 만한 것들을 상기시키는 데 가장 적절한 방식이고, 이것이 곧 문학의 역할이라고 이해했다.
원래 체계적 방식을 좋아하지 않는 제발트는 좌표 설정없이 무작위로 혹은 되는대로 자료를 수집하고 진행되어가는 과정에서 자료가 다른 자료에 가지를 치고 자료는 그만큼 쌓아가는 것을 선호한다. 제발트는 그 안에서 가치 있는 무언가를 만들어내기 위해 상상력을 짜내고 연결점을 찾아낸다. 그리고 선례가 없는 글쓰기를 하려면 자료들의 종류가 각기 달라야 한다. 이것이 제발트가 말하는 그의 글쓰기 방식이다.
제발트의 글쓰기에서 우연은 중요한 요소다. 재미있는 점은 이 우연이 사건의 결말까지 가는 데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코오모 교수는 이 점이 핵심이라고 짚는다. 이것이 어떤 주제를 다루든 일반화하지 않는 것과 관련이 있다고 본다. 개인적으로 덧붙이자면 운명이든 우연이든 인생은 통제 되지 않는다는 은유일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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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서도 잠깐 언급했지만 1944년 독일에서 태어나 스스로 기억상실을 유도한 사회에서 자라난 제발트는 기억하는 일을 도덕적이고 정치적인 행위로 여겼다고 한다. 그는 친유대인적인 이유로 유대인에게 관심을 갖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독일에서 말살된 사회사의 한 부분이기 때문에 관심을 갖는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알고 싶었던 것이다. 여기서 문득 '알고 싶다'가 참 중요한 지점이라는 생각이 든다. '친', '반', 혹은 이념적 소신을 떠나서 역사적으로 일어난 사실에 대해 알고자 하려는 태도. 왜곡되지 않은,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진지하게 알려고 노력한다면 우리의 딜레마들도 조금씩 해법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고. 아무튼 이렇다보니 제발트가 죽음과 죽은 이들에게 지속적으로 흥미를 느끼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어떤 이는 제발트의 글이 아름답다는 평가를 이해하지 못하겠다고 하고, 다른 이는 그가 창조하는 예술에는 기적에 가까운 아름다움이 있으나 연약하고 덧없다고 평한다. 누가 더 옳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분명한 건, 그의 작품에는 혼란과 방황, 하나로 정의하기 어려운 공포와 자발적 고행과 죽음, 그리고 연민이 담겨 있다.
2001년 12월, 제발트는 운전 도중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그는 나이가 들수록 기억의 분량은 줄어들지만 남는 기억의 밀도는 높아지고 이로 말미암은 무게가 한번 짓누르기 시작하면 우리를 침몰시킨다고 말했다. 1998년에 있었던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이 인터뷰가 그의 죽음과 아무런 상관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부분을 읽을 때 제발트의 죽음이 자연스레 떠올랐다.
아직 『이민자』들을 제대로(?) 읽지 않았는데, 이해하는 데에 많은 도움이 될 것 같다. 한 번쯤 제발트 작품을 읽고 싶으나 선뜻 손이 가지 않는 독자라면 이 책을 먼저 읽어봐도 좋을 듯 하다. 몇 권을 읽고도 다시 읽어야겠다는 생각하는 나같은 독자에게도 적잖이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
※도서지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