셋 세고 촛불 불기 바통 8
김화진 외 지음 / 은행나무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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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념일,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날이 언제인가?
저마다 가장 가슴에 박힌 기념일 하나쯤은 있을 터다. 그날이 기쁜 날일 수도 있고, 고통이나 애도의 날일 수도 있고. 여덟 개의 이야기가 실린 소설집은 저마다 특별한 '그날'을 담고 있다.  







(축제의 친구들)
생각하는 게 귀찮고, 사는 건 지루하고, 시간이 빨리 지나가기를 바라는, 모든 게 뚜렷하지 않은 청춘의 시절. 누군가 좋아해주는, 익숙하고 습관적이지 않은 삶을 살고 싶지만 어떻게 해야 그런 삶을 살 수 있는지 모르겠다. 


(크리스마스에는 축복을)
과학기술로 안드로이드 보디를 갖게 된 인간은 노화와 질병에서 해방됐다. 단, 안드로이드 보디를 구매할 수 없는 사람은 죽는다. 죽는 사람은 두 부류다. 돈이 없거나 신념이 있거나. 시중에 나와 있는 수많은 죽음에 관한 책들과 그에 대한 철학적 견해. 나는 문득 궁금하다. 우리는 왜 이토록 죽음에 의미를 부여하려는 걸까. 죽음이 두려워 차라리 죽어버리고 싶다는 김윤호의 모순. 그는 구차한 삶과 아무도 모르는 죽음 중 무엇을 선택할까. 


(월드 발레 데이)
형편이 넉넉넉하지 않은 집에서 무용에 재능 있는 아이는 엄마의 등골을 빼먹으며 성장했다. 아이가 더 높이 날아갈수록 엄마는 점점 가난해졌다. 이를 모르지 않는 아이는 아주 작은 틈이라도 생기면 고생하는 엄마를 생각해서라도 그만두라는 말이 나올까 두려워 긴장을 놓지 않았고 곤두서 있다. 자신을 잃어가면서,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으면서 성공을 향해 달린 삶. 정상에 섰음에도 밟을 땅이 없는 삶. 이게 소설 속 '나'가 죽은 이유고, 실재의 우리가 직면한 현실이다.  


(위드걸스)
실패로 인해 적당히 불행한 사람이 아니라 완전히 불행한 사람이 될까봐 원인을 찾아 문제해결을 하기보다는 견디는 것을 택하는 것. 견디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이 있으려나. 구원에 기대지 않고 어제로 되돌아가지 않으며 살아남겠다는 인혜의 결의가 장하면서도 안타깝다. 유리 천장과 보이지 않는 경계에 또다시 좌절하는 일이 없기를, 인혜도, 선주도, 그 누구도. 


(껍질?)
분명 바빠서 무언가를 많이 했고, 하루가 끝나면 무척 고단한데 오늘 하루 무엇을 했는지, 기분은 어떘지 물으면 할 말이 없다. 거의 비슷한 대답들. 사람도 다르고, 하는 일도 다르고, 그날의 기분도 다 달랐을텐데... . 참 이상한 일이다. 언제부턴가 일기에 쓰는 나의 감정은 거기서 거기.  


(바다의 기분)
폐업한 가게 업주가 「맛없는 음식을 팔아서 죄송합니다, 실력을 키워서 되돌아오겠습니다」라고 쓴 폐업 안내 종이 위에 '저는 맛있게 먹었어요'라고 쓰는 마음씀이 좋다. "그냥 그런갑다" 하는 마음으로 살아가기. 좋네, 좋아. 역시, 나는 윤성희 작가의 글이 참 좋다. 


(비트와 모모)
박완서 선생의 「대범한 밥상」이 생각났다. 모모가 돌아와 주기를, 그래서 식탁에 마주앉아 비트와 식사하기를. 


(0302♡)
사랑받고 싶다면, 사랑받는 방법을 찾는다면, 먼저 사랑을 줍시다. 



각각의 소설 속 등장인물 하나하나가 마음이 간다. 
로롯의 생체 인식이 아니면 아무도 생존을 알지 못하는 현대인들의 고독과 단절, 실패를 용납하지 못하는 출세지향주의 세태, 자존감은 고사하고 움츠러들대로 움츠러들어 자신에게 처해진 불의와 차별조차 당연하게 여기는 패배주의, 사랑과 관심에 굶주린 우리들. 이야기들을 읽으면서 가장 크게 느낀 감정은 슬픔이다. 소설 밖에서 그들을 따라가자니 그냥 슬펐다. 그러다 낙관적인 삼촌의 마음이 되고 싶었고, 그 마음으로 위로해주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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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 유령 - 폭력의 시대, 불가능의 글쓰기는 어떻게 가능한가
W. G. 제발트 지음, 린 섀런 슈워츠 엮음, 공진호 옮김 / 아티초크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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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발트와의 인터뷰, 그의 작품 평론에서 고른 글들을 엮어 구성한 책이다. 이 책에 실린 서술자들은 대체로 『자연에 따라. 기초시』  『현기증. 감정들』  『이민자』  『토성의 고리』  『아우스터리츠』 를 다룬다. 


제발트의 작품들이 수월하게 읽힌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개인적으로 이 책에 실린 평론들(특히 팀 파크스의 글)은 적어도 나에게는 엄청난 대리만족을 선사한다. 머릿속의 생각들을 미처 정리하지 못하고 맴돌기만 하는 나의 한계를 마치 챗GPT처럼 정리해주는 듯한 이 쾌감(동시에 사이사이 끼어드는 자괴감까지는 아닌 속상함?)!


그리고 제발트와의 인터뷰들은 유년 시절의 경험으로 인해 고착된 사고, 그가 평소에 관심이 있었던 문화사와 사회사, 전범국 전후 세대라는 입장이 작품에 끼친 영향, 우연히 이루어졌으나 결국에는 필연처럼 선택한 영국 정착 등 그를 바라보는 외부적 시선 및 평가와 제발트가 직접 말하는 그의 작품 배경이나 집필 계기와 집필 방식, 실존 인물에 입힌 허구적 요소, 영감을 얻고 이야기를 창작하고 글을 쓰는 방식 등을 비교적 생생하게 읽을 수 있다.  








제발트가 언어, 특히 텍스트의 힘을 믿었다는 것은 옮긴이의 글이 아니더라도 책을 읽는 내내 독자에게 전달된다. 제발트의 장기인 기억의 파편들을 퍼즐 맞추듯 이어 집단 기억상실증에 걸린 우리를 일깨우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하는 것 역시 텍스트다. 서술자들이 공통적으로 언급하는 용어가 산문설화(prose narratives) 혹은 산문소설이다. 이 용어는 제발트 본인이 자신의 작품 형식에 붙인 용어다. 그의 소설은 픽션과 논픽션 사이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현상을 구체화한다. 그로인해 작가 본인이 서술자가 되어 직접 개입하는 경우가 많다. 


「제발트의 인물들은 (...) 삶에 대한 참여를 너무 경계하다보니 병적으로, 자학적으로 우울에 빠져들어 압도되고 마는 것이다. 제발트의 작품은 극히 엉뚱한 행동과 극히 암울한 사실주의 사이를 오간다. 전자의 극단이 후자의 극단을 부른다. 과거에 있었던, 열정에 대한 환상, 그리고 너무나 자주 일어나는, 미래의 조용한 자살. 그의 예술에서 나온 이미지와 주인공들이 누릴 수 있을 덧없고 향수 어린 평정의 이미지는 과거와 미래 사이를 중재하면서 제발트의 작품 전반에 흩어져 있는 거친 흑백사진들이다. (p58-59)」 



아주 이른 나이에 죽음을 삶에 들인 제발트는 유년 시절의 경험으로 인해 죽음이 혹은 망자가 산 자 인생의 둘레 어딘가에서 떠돌가 있는 관념이 깊이 자리잡았다. 그래서 그는 주변부에 있는 게 마음이 편하다고 말한다. 제발트는 열외로 취급받는 사람들에게 관심이 있고, 그들의 말을 듣는 걸 좋아했다고 한다. 전후 패전의 상실과 공허로 인해 독일의 사회적 분위기는 그들의 실패를 봉인하기 위해 암묵적으로 합의된 침묵이 있었고, 이런 분위기에서 성장한 제발트는 어린 시절부터 경청의 필요성을 느꼈다. 그러나 진실을 말해줄 사람이 독일에 없다는 판단으로 스무 살에 독일을 떠났고, 외부에서 진실을 말해줄 이들을 찾았다. 제발트는 한 인터뷰에서 전쟁에 대한 부모님의 침묵과 조국의 '집단 기억 상실'을 혐오했고, 나치 부역자였던 가족들에 대한 반감이 컸던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발트는 독일어에 대한 애착이 커서 영국에 정착하고 영어 번역본에 공을 들였음에도 글은 독일어로만 썼다고 한다(이것도 어떤 심정인지 알 것 같다).


ㅡ 


「더 묘한 것은 제발트의 작품은 시시하거나 장황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일반 소설의 즐거움을 주지도 않는다는 사실이다. 유머와 매력, 세련미, 공감을 전혀 찾아볼 수 없다는 것도 놀랍다. 그런 요소들이 없는 책들이 영국에서 조금이라고 성공을 거둘 수 있다는 사실만큼이나 놀랍다. 또 다른 잣대를 들이대자면 등장인물이나 사건으로 이야기를 꾸미지 않고 사색이나 독서에 관한 것만으로, 더 분명히 말하자면, 사색의 기억이나 독서의 기억만으로 쓴 책들이 인기를 끈다는 사실이 놀랍다. (p168)」 



제발트는 글쓰는 사람의 역할은 사람들에게 무언가를 상기시켜 주는 것이라고 말한다. 참상의 시각적 형상은 너무 자주 노출이 되기에 광범위한 사고와 철학적 반성을 방해한다고 이해했다. 그래서 제발트는 어떤 문제에 접근할 때 간접적으로 지시 대상을 가리키는 것이 낫다고 말한다. 이것이 잊을 만한 것들을 상기시키는 데 가장 적절한 방식이고, 이것이 곧 문학의 역할이라고 이해했다. 


원래 체계적 방식을 좋아하지 않는 제발트는 좌표 설정없이 무작위로 혹은 되는대로 자료를 수집하고 진행되어가는 과정에서 자료가 다른 자료에 가지를 치고 자료는 그만큼 쌓아가는 것을 선호한다. 제발트는 그 안에서 가치 있는 무언가를 만들어내기 위해 상상력을 짜내고 연결점을 찾아낸다. 그리고 선례가 없는 글쓰기를 하려면 자료들의 종류가 각기 달라야 한다. 이것이 제발트가 말하는 그의 글쓰기 방식이다. 


제발트의 글쓰기에서 우연은 중요한 요소다. 재미있는 점은 이 우연이 사건의 결말까지 가는 데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코오모 교수는 이 점이 핵심이라고 짚는다. 이것이 어떤 주제를 다루든 일반화하지 않는 것과 관련이 있다고 본다. 개인적으로 덧붙이자면 운명이든 우연이든 인생은 통제 되지 않는다는 은유일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들고.   


ㅡ 


위에서도 잠깐 언급했지만 1944년 독일에서 태어나 스스로 기억상실을 유도한 사회에서 자라난 제발트는 기억하는 일을 도덕적이고 정치적인 행위로 여겼다고 한다. 그는 친유대인적인 이유로 유대인에게 관심을 갖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독일에서 말살된 사회사의 한 부분이기 때문에 관심을 갖는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알고 싶었던 것이다. 여기서 문득 '알고 싶다'가 참 중요한 지점이라는 생각이 든다. '친', '반', 혹은 이념적 소신을 떠나서 역사적으로 일어난 사실에 대해 알고자 하려는 태도. 왜곡되지 않은,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진지하게 알려고 노력한다면 우리의 딜레마들도 조금씩 해법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고. 아무튼 이렇다보니 제발트가 죽음과 죽은 이들에게 지속적으로 흥미를 느끼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어떤 이는 제발트의 글이 아름답다는 평가를 이해하지 못하겠다고 하고, 다른 이는 그가 창조하는 예술에는 기적에 가까운 아름다움이 있으나 연약하고 덧없다고 평한다. 누가 더 옳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분명한 건, 그의 작품에는 혼란과 방황, 하나로 정의하기 어려운 공포와 자발적 고행과 죽음, 그리고 연민이 담겨 있다. 


2001년 12월, 제발트는 운전 도중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그는 나이가 들수록 기억의 분량은 줄어들지만 남는 기억의 밀도는 높아지고 이로 말미암은 무게가 한번 짓누르기 시작하면 우리를 침몰시킨다고 말했다. 1998년에 있었던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이 인터뷰가 그의 죽음과 아무런 상관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부분을 읽을 때 제발트의 죽음이 자연스레 떠올랐다. 


아직 『이민자』들을 제대로(?) 읽지 않았는데, 이해하는 데에 많은 도움이 될 것 같다. 한 번쯤 제발트 작품을 읽고 싶으나 선뜻 손이 가지 않는 독자라면 이 책을 먼저 읽어봐도 좋을 듯 하다. 몇 권을 읽고도 다시 읽어야겠다는 생각하는 나같은 독자에게도 적잖이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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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집과 꿀
폴 윤 지음, 서제인 옮김 / 엘리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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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작가다. 표지 날개의 소개가 아니더라도 책을 읽다보면 작가가 한국계 외국인일 것이라는 짐작이 가능하다. 완독을 하고나니 에르난 디아스가 극찬하고 추천한 이유를 알겠다.  


일곱 개의 단편은 미국, 스페인, 일본의 에도시대, 영국, 러시아 극동 지방(연해주, 사할린) 등을 배경으로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한국계 디아스포라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전쟁, 탈북, 강제 징용, 강제 이주, 이주 노동자, 2세대(혹은 3세대) 이주민, 실향민, 전쟁 고아. 끝나지 않는 디아스포라의 삶. 떠나온 자, 떠밀려온 자, 그래서 부유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의 서사를 스산하지만 한편으로는 명치가 눌리는 듯한 먹먹함과 고요함으로 다가온다.  


이주민들의 헛헛함(보선), 스스로 존재를 지워가며 정착하지 못하고 떠도는 탈북민의 정서적 애환(코마로프), 임진왜란 이후 일본으로 끌려가 성장해 스스로를 정의할 수 없는 조선인 아이에게 '원래 자리'는 어디일까(역참에서), 같은 이주민이면서도 빨갱이로 불리며 혐오의 대상이 되는 탈북민들과 그들의 2세대들(크로머), 유령보다 정착지를 잃는 것이, 살 곳을 찾아 떠돌아다니는 것이 더 두려운 고려인들(벌집과 꿀), 전쟁이 남긴 상처를 그대로 떠안고 살아가는 시람들(달의 골짜기). 


실린 소설들이 다 인상적이지만, 특히 「코마로프」가 기억에 남는다. 아들을 가슴에 묻은 채 남편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평생을 떠돌이로 살아간 주연의 말하지 않는 아픔이 니콜라이에게 건네준 쇼핑백 안의 전단지에 휘갈겨 쓴 몇 자에서 전해진다. 차라리 니콜라이와 주연의 관계가 다른 이들이 알고 있는 그대로였다면, 주연은 어떤 마음이 들었을까. 어쩌면, 그랬다면 주연은 그 길 위에 서 있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소설은 외로움과 절망의 아픔, 스스로 세상과 경계를 짓지만 가슴 한 켠에서는 타인과 세상 속으로 뛰어들고 싶은 이들의 열망, 이주민 세대 간의 정서적 거리, 반복되는 상실을 가슴 속에 켜켜이 쌓아놓은 삶의 무게. 작가는 담담하게, 서정적으로 서술한다. 내가 이 소설집에서 가장 좋았던 것도 이 부분이다. 충분히 과잉할 수 있는 것들에 대해 절제하고 문장 사이사이에 독자들이 그 감정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시간을 주고 있다는 점. 덕분에 서두르지 않고 인물들이 처한 상황과 감정을 잘 따라갔다.  


좋은 소설가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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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지런한 끼니 - 홈그라운드에서 전하는 계절의 맛
안아라 지음 / 안온북스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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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 에세이를 좋아한다. 요리를 일상에 담든, 일상을 요리에 담든 소소한 하루와 음식이 맞물린 글을 읽으면 책에 쓰여 있는 음식이 무척 궁금해진다. 미식가도 대식가도 아니고, 먹는 것에 크게 관심이 없으며(난 아직도 먹방을 무슨 재미로 보는지 잘 모르겠다), 누군가 요리를 잘하느냐고(혹은 좋아하느냐고) 묻는다면 당당하게 '그렇다'라고 말할 정도는 아니다. 그럼에도 꾸준히 음식을 만들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사먹는 것보다 만들어 먹는 게 더 좋기 때문이다. 외식은 귀찮고. 아무튼 희안하게 따박따박 음식과 요리에 관한 에세이를 읽는다.  

 

반려견을 들이고 반려견의 식이를 공부하면서 자연스럽게 자신의 식습관 및 몇몇 생활습관까지 조절하게 된 저자의 모습부터 몸의 회복을 돕는 음식이야기와 친한 지인들과의 추억담을 읽으며 음식이 주는 따뜻함이 새삼 와닿는다.  


읽으면서 "앗, 나도!" 했던 부분은, 잡곡밥과 김밥 이야기. 저자는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 잡곡밥이라고 했는데, 나의 소울 푸드가 잡곡밥이다. 종종 허기가 지면 잡곡밥 한 숟가락만 먹어도 금세 든든해진다. 그리고 '김밥에는 싸구려가 없다.(p48)'라는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특히 채소값이 비싼 요즘이라면 더욱 그렇다. 거기다 김밥소를 다듬고 조리하고, 금방한 잡곡밥에 참기름과 소금으로 간을 맞추고, 돌돌말아 썰어내기까지의 노동의 과정과 정성을 생각하면 김밥을 싸구려라고 말할 수 없다(어제도 김밥을 말았다).  


분명 음식과 요리에 대한 책이지만, 막상 읽다보면 삶에 대한 이야기다. 직장에서의 반복되는 작업, 다른 사람들과의 조화로운 관계, 버림과 정리, 과하지 않음과 소박함에서 오는 편안함, 살아가는 데 매번 찾아오는 숱한 고민들, 타인의 삶에서 배우는 지혜와 용기, 선순환되는 선의와 호의, 그리고 사소한 것에서 시작하는 위로. 


무엇을 먹고 싶다, 보다는 만들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게끔 하는 책이었다. 








<책에서 소개한 음식 중 만들어 볼 음식> 


♣ 감태흑임자김밥 _ 아직 감태로 김밥을 만들어보지 못했다. 한 번쯤 해봐야지 했는데, 마침 이 레시피가! 


♣ 카레쳐트니와 렌틸오거트카레 _ 사실 카레는 그다지 좋아하는 음식이 아니다. 그런데 들어가는 재로를 보니 맛이 궁금해지네. 


♣ 채소고기와인찜 _ 주로 간장베이스 + 청주로 찜하는데, 이 레시피에는 와인을 잠길 정도로 사용한다.  


♣ 복숭아홍차시럽 _ 가장 좋아하는 과일, 복숭아. 그냥 먹기에도 부족하지만 이번 여름에는 조금만 만들어 보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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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교자!
카베 악바르 지음, 강동혁 옮김 / 은행나무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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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생 스물여덟 살, 한 청년이 있다. 그의 이름은 사이러스 샴스. 
태어나고 몇 달 지나지 않아 어머니는 비행기 격추 사건로 사망했고, 이후 아버지는 어린 아들을 데리고 조국 이란을 떠나 미국으로 이주했다. 성장하는 내내 전혀 기억이 없는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과 이방인으로서 갖는 내재적 불안감을 안고 살아왔다. 청년은 사람들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위대한 예술 작품을 창작하고 싶고, 그로써 중요한 사람이 되고 싶다. 하찮게 살다가 이름없이 죽어간 부모의 삶과 죽음보다는 자신의 죽음이 그들보다는 의미가 있기를 바란다. 의미있는 죽음에 집착해 죽기 전에 의미있는 글을 쓰고자 한다. 그래서 '순교 프로젝트'를 결심하고 그에 맞는 인물을 찾아낸다. 예술가 오르키데. 말기암을 진단받고 삶의 끝에 놓인 스스로를 작품화하는 중년 여성 예술가와 마주한다. 
 





 



이 소설은 두 세대를 아우르며 이해하는 화해의 장이자 한 청년의 성장기이고, 삶과 사랑, 애도와 그리움을 담은 연서戀書다. 1980년대를 중년의 나이로 지나온 알리와 로야 세대, 2010년대에 이십 대 청춘을 보내고 있는 사이러스 세대. 소설은 이렇게 30년간의 시간을 넘나들며 서술한다. 각 장章마다 제사題辭 가 있는데 사이러스가 쓴 시나 산문이다. 이 글들은 죽음을 맞은 이들을 주인공으로 삼는데, 이는 사이러스의 방식대로 그들의 인생을 기리는 것으로 읽힌다. 


여성과 모성이라는 굴레에서 절실하게 벗어나고 싶었던 로야. 사랑하는 아내를 떠나보내고 양계장과 아들 사이러스 외에는 삶에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았던 알리. 이 두 사람 외에도 지 노바트, 아라시 잔 등 전쟁과 억압 속에서 한 시대를 살아낸 그들의 삶을 통해 독자는 시대의 고통과 아픔을 공유한다. 



사이러스는 화가 오르키데와 순교에 대해 대화하면서 자신의 삶을 털어놓으며 본인도 의식하지 못한 채 치유의 시간을 갖는다. 오르키데의 말과 질문을 들으면서 사이러스는 자신의 진짜 자아가 무엇인지 본인 스스로 모르는 것에 답답해한다. 어머니의 허망한 죽음, 평생 양계장 노동자로 살면서 아들이 성인이 되자 마치 할 일을 다 했다는 듯 죽음을 맞은 아버지.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는 하찮은 죽음에 대한 혐오로 인해 의미있는 죽음에 매달렸지만, 정작 중독에 허우적거리며 자아를 찾지 못했던 것을 깨닫는다. 사이러스는 오르키데와의 대화를 통해서 그동안 겪어왔던 험한 경험들이 무의미하기만 한 건 아니기를 바란다. 자신에게 너무 많은 짐을 지우지 말라고, 살아 있는 지금 이 순간이 중요하다고, 그러니 스스로에게 나이들 기회를 주라고 말하는 오르키데. 비로소 어머니의 부재에 대한 결핍과 그리움을 인정하고, 자신을 위해 슬픔과 외로움의 시간을 버텨준 아버지에 대한 고마움을 느끼는 사이러스. 그녀와 함께 보낸 시간은 고작 사나흘에 불과했지만 사이러스에게는 그 어떤 시간보다 유의미했을 터다.  


이십대 청년은 의미 있는 죽음을 찾아 헤매지만, 진정 찾고자 했던 것은 자신이 살아야할 이유였다는 생각이 든다. 자신의 삶에 확신을 가지는 이가 얼마나 될까. 그리고 그 확신이 늘 정답의 길로 이끌지도 않는다. 소설에는, 타인의 시선에서는 성공한 삶이었으나 한평생 부채감을 벗어버리지 못했던 이도 있고, PTSD의 고통을 껴안으며 살아가는 이도 있다. 태어나서 죽음에 이르기까지 행복한 날보다는 참고 견뎌야하는 시간이 훨씬 많은 게 인생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살아가야함을, 소설은 말한다.  



이렇게 써놓고 보니 소설의 분위기가 우울할 것 같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읽으면서 복선으로 등장하는 몇몇의 지점과 암시하는 장면들 그리고 시대와 인물을 교차하는 서술방식은 미스터리 형식을 갖추고 있어 은근한 긴장감을 자아내고, 몽환적인 사이러스의 꿈속 대화는 읽는 사람의 슬픔을 건드린다. 그리고 마지막에 터지는 반전. 그 반전 또한 너무 애달퍼서 마음이 아프다.  


주인공 사이러스뿐 아니라 지금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독자가 있다면 위로가 될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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