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작 읽었으나 이제 밑줄긋기 시작
















부친이 죽은 뒤로 그녀는 거의 외출을 하지 않았는데, 애인마저 떠나자 더욱 사람들 눈에 띄는 일이 드물어졌다. 몇몇 부인들이 그녀의 집을 찾아가는 만용을 부렸으나 당연히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 집에 사람이 산다는 유일한 표지는 한 흑인 남자가 - 당시엔 청년이었다 - 장바구니를 들고 그 집을 들락거린다는 것뿐이었다. - P10

당시 우리는 그녀가 미쳐 버렸다고 말하지는 않았다. 그녀로선 그럴수밖에 없을 거라 생각했다. 우리는 그녀의 부친이 쫓아냈던 그 많은 청년들을 모두 기억하고 있었기에, 남은 게 아무것도 없는 사람들이 그렇듯이 그녀도 자신의 모든 것을 앗아간 바로 그 대상에게 매달릴 수밖에 없을 거라고, 누구라도 그녀와 같은 처지가 되면 그렇게 될 거라고 이해한 것이다. - P13

그녀는 고개를 한껏 높이 치켜들고 다녔는데, 심지어 우리가 이제 그녀는 몸까지 버렸다고 여길 때조차 그랬다. 그것은 그리어슨 가 마지막$인물의 위엄을 인정하라는 요구, 아니 그보다 더한 요구처럼 보였다. 또한 속세와의 접촉을 통해 자신이 그 어떤 것에도 휘둘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새삼 확인하고 싶어 하는 몸짓 같기도 했다. - P15

한참 동안 우리는 그 자리에 서서, 움푹 파인 그 해골의 환한 미소를 내려다보았다. 그 주검은 한때는 포옹하는 자세를 취하고 있었음에 분명했지만, 지금은 사랑보다 더 오래 지속되는 자신을 저버린 일그러진 사랑마저 정복해 버린, 긴 잠에 빠져 있었다. 잠옷 아래에서 썩어 간 그의 잔해는 그가 누운 침대에 그대로 달라붙어 있었다. 그의 위에, 그리고 그의 베개 위에도, 끈질기게 견뎌 온 세월의 먼지가 차곡차곡 쌓여 있었다. - P21

다른 사람에게 쇠나 폭약이 그렇듯, 아버지에게는 불이라는 것이 자기 안에 깊이 내재한 주요한 요소, 그것이 없다면 숨을 쉬어도 살아 있다고 할 수 없는 요소를 온전히 지켜낼 수 있는 무기였다는 것을, 그래서 존중하고 때때로 신중하게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을. - P29

멈추지 않는다면, 이대로 계속 달린다면, 돌아보지 않고 계속 달릴 수 있다면, 다시는 저 사람 얼굴을 보지 않아도 돼. 하지만 난 그렇게 할 수 없어. 그렇게 할 수가 없다고. - P4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홀로서기
엘레나 페란테 지음, 김희정 옮김 / 지혜정원 / 2011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N22100

˝4월 어느 날 오후, 점심을 먹고 나서 남편은 내게 헤어지자고 했다.˝


어느날 잘 살고 있는 줄 알았던 남편이 이유도 말해주지 않고 집을 나간다. 몇년 전에도 이런 일이있긴 했지만, 그때는 다시 돌아왔다. 하지만 이번은 확실히 달랐다. 완전히 떠나버린 것이다. 버림받은 그녀 ˝올가˝는 무척 괴로워하고 주변사람들에게 화풀이를 한다. 내가 무슨 잘못을 했던걸까? 내가 그렇게 매력이 없는 걸까?

[그는 나에게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는 비이성적인 여자라고 말했다. 정말이지 나는 한 번도 그를 이해한 적이 없었다. 오직 그의 인내심, 혹은 아마도 그의 무심함이 이렇게 오랫동안 우리를 함께하게 했을뿐이다. 하지만 이제 끝났다.] P.20.



그녀는 도대체 왜 남편이 자신을 떠나려고 하는지, 어떤 여자랑 바람이 낫는지 궁금해 한다. 주위 사람에게 물어보지만 아무도 알려주지 않는다. 뭔가를 숨기고 있는 걸 느낀다. 그녀는 이제 주변사람들을 믿을 수 없게 된다. 그들에게 화푸이를 하고 온갖 히스테리를 부린다.

[‘사랑을 잃은 여자들은 눈빛이 흐려지고, 사랑을 잃은 여자들은 삶의 의욕을 잃는다.‘] P.58



그녀는 완전히 미쳐버린다. 자식들과 애완견은 방치하고, 생활은 엉망이 되며, 우울증은 극에 달하고 다소 편집증적인 성향마져 드러낸다. 자신이 뭘 하고 있는건지 알수 없게 된다. 마음속에서는 그에 대한 분노와 그가 돌아왔으면 하는 상반된 감정이 공존한다. 그녀는 오랜세월 함께 살았던 남편에 대해 과연 알고 있었던게 있었을까? 숨쉬는 것 빼고는 모두 거짓으로 느껴진다.

[그가 아닌 다른 누군가와도 사랑할 수 있었을 것이다. 사랑이란 결국 한 육체에 어떠한 의미들을 부여하는 것일 테니까. 두 사람이 함께하는 긴 여정에서, 당신은 그가 인생에 기쁨을 안겨줄 유일한 남자라 여기고 온갖 정성을 기울인다. 하지만 그는 허깨비일 뿐이다. 당신은 그가 정말로 누구인지 모르며 그 역시 자신을 알지 못한다. 우리는 그저 하나의 기회일 뿐이다.] P.102



하지만 고통의 시간은 언젠가는 끝난다. 나는 이제 너 없이도 살아갈 수 있다. 홀로 일어설 수 있다. 나를 버린 당신이 찾아와도 나는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가장 큰 잘못은 오랜 시간 동안 그와 함께 살고 있다는 확신이 전혀 들지 않았음에도 그 없이는 살 수 없다고 믿어왔다는 것이다. 그의 따뜻한 숨결과 살의 감촉을 느껴본 게 언제였을까? 내가 나의 속마음을 깊이 살펴보았더라면...] P.202




˝엘레나 페란테˝의 <홀로서기>는 오랫동안 믿었던 사람으로부터 버려진 남겨진 사람이 겪게 되는 강력한 우울감을 적나라하게 그리고 있는 작품이다. 책을 읽는 내내 괴로웠다. 빨리 털어내야 하는데 털어내지 못하고 고통을 받는 ˝올가˝의 고통이 독자에게 그대로 전달되었다. 그녀의 홀로서는 과정이 결코 아름답지 않았지만, 마지막에는 결국 극복하는 그녀의 모습이 멋져 보였다.


아픔을 털어내는 방법은 시간의 흐름이고, 이별을 극복하는 방법은 새로운 사랑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누군가로부터 이해를 바랄 때에는 상대방을 먼저 이해하려는 노력이 있어야 겠다. 언제나 나만 우선일 수는 없지 않은가. 그러면 너무 이기적이니까.


Ps 1. 내가 읽은 엘레나 페란테의 두번째 작품이다. (첫번째는 어른들의 거짓된 삶) 우주점에 있길래 일단 구매했는데, 책 자체는 잘읽히고 재미있지먀 주인공인 ˝올가˝의 아픔이 그대로 느껴지고 내용도 좀 자극적이어서 막 추천해주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17개국에 번역된 베스트셀러라고 한다. 영화로도 제작되었다고 한다.

Ps 2. 엘레나 페란테를 직접 만나본 사람은 없다고 한다. 베일에 쌓인 작가...난 당연히 여성작가이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그것도 확실한건 아닌듯 하다.

댓글(18) 먼댓글(0) 좋아요(3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바람돌이 2022-08-14 11:42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이 작가는 나폴리4부작이 좋다고 좋다고 소문이 자자한데 분량이 장난 아니어서 아직 도전을 못하고 있어요. 그래서 저도 어른들의 거짓된 삶을 먼저 봤는데 딱히 좋디는 않았던.... 그래서 나폴리 4부작을 어이하나 고민만 한다는요. ㅎㅎ

새파랑 2022-08-14 12:13   좋아요 4 | URL
저도 <나의 눈부신 친구> 이 책 좋다고 해서 사놓기는 했는데 아직 못읽었습니다 😅 언젠가는 읽겠죠? 담달에는 그 책을 읽어봐야 겠습니다~!!

모나리자 2022-08-14 11:45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이탈리아 작가네요. 그러고 보니 이탈리아 작가의 책은 읽은 적이 있던가 싶네요.ㅎ
여성의 심리를 그린 소설이라고 하네요. 평도 좋고 영화제작까지 되었다니
대단한 작가인가 봅니다. 벌써 두번째 작품을 읽으셨다니 새파랑님도 대단하세요.^^

새파랑 2022-08-14 12:16   좋아요 4 | URL
저도 이탈리아 작가 책은 별로 못읽었어요. 당장 생각나는게 디노 부차티? (타타르인의 사막 작가)

엘레나 페란테의 나폴리 시리즈 유명한데 아직 못읽어봤습니다 ㅋ 바로 핵심으로 들어갔어야 하는데 😅

레삭매냐 2022-08-14 12:07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예전에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가 좋아하는 작가라고 말하는 걸
어느 너튜브에서 본 것도 같네요.

미지의 작가인지라... 그리고 보니
전 만나본 적이 없네요.

고통의 시간은 언제고 끝나게
되겠죠. 공감하게 되네요.

새파랑 2022-08-14 12:17   좋아요 3 | URL
그러고보니 전 만나본 작가가 아예 없습니다 ㅋㅋ 예전 이석원 작가님이 언니네이발관 할때 공연에어 본것 말고는 없네요 ㅋ 이 책 읽는 재미도 있습니다~!!

청아 2022-08-14 14:04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아니 새파랑님 어쩜... 그닥 추천하지 않으신다면서 읽고 싶어지게 쓰신건가요ㅎㅎ
꼭 읽어보고싶어요. 게다가 엘레나 페란테라니!!^^*

새파랑 2022-08-14 14:38   좋아요 3 | URL
ㅋㅋ 미미님은 안읽고 싶으신 책이 없으신거 같습니다~!!!
제가 이런 경우가 없어서인데다가 남성이어서 그런지 저런 감정에 낯설긴 했지만 간접경험해서 좋았습니다 ~!! 김밥나라에서 밥먹으면서 다 읽었어요 ㅋ

페넬로페 2022-08-14 19:22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엘레나 페란테 작가가 나폴리 4부작의 작가이군요.
근데 남편을 한번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가능한가요? 떠나는게 당연한 것도 같아요.
그냥 혼자 사는것도 괜찮은데 외국 소설이나 영화를 보면 꼭 이성을 찾더라고요 ㅎㅎ

새파랑 2022-08-15 07:34   좋아요 4 | URL
일단 이 책에서만 봤을때는 남편이 완전 나쁜놈입니다. 여자때문에 가정도 다 버리고 나가요 ㅜㅜ 아내가 뭘 잘못한게 없는데~ 약간 이탈리아스러운 느낌?이 있습니다 ㅎㅎ 페넬로페님은 이 책 읽으시면 혈압오르실듯 합니다~!!

그레이스 2022-08-15 11:4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베일에 쌓여있는 작가!
우울함에 대한 묘사가 탁월한가보네요.
저는 더글라스 케네디 <위험한 관계>에서 우울증을 이렇게 잘 표현하나 하는 생각을 했는데... 우울증에 걸릴 정도로 가스라이팅? 당하는 이야기였던 것으로 기억해요.
나의 눈부신 친구 저도 있는데 새파랑님 평을 읽고 읽을까봐요 ^^;;

새파랑 2022-08-15 11:36   좋아요 1 | URL
이 책 겁나게 우울합니다 ㅋ 주인공의 감정기복이 완전 극과극을 달닙니다 😅

<나의 눈부신 친구>는 일단 제목이 멋지니 이책보단 밝을거 같아요~!! 그레이스님이 먼저 읽어주세요 ^^

mini74 2022-08-15 11:10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나폴리 4부작 좋았어요 ㅎㅎ 드라마로도 만들어진걸로 알아요. 믿었던 사람에게 버려진 우울감,이라니 읽고 싶어집니다. 전 이런 이야기 좋아해요. 마치 예방주사 맞듯 경험해보는 것 ㅎㅎ 하지만 실제로 닥치면 예방주사따윈 의미가 없겠죠.ㅠㅠ

새파랑 2022-08-15 11:37   좋아요 3 | URL
역시 안읽은 책이 없는 미니님~!! 간접경험으로 좋긴 하지만 요런 상황에 직면하면 정상적으로 반응하는 사람은 아마 없겠죠? 😅

희선 2022-08-16 01:1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작가가 알려진 게 없군요 그런데도 많은 사람이 이 작가 책을 좋아하는 듯합니다 저는 읽어본 적 없지만... 홀로서기... 힘들어도 해내서 다행이네요 남편은 왜 아내한테 헤어지자고 했을지... 그저 그런 건가 받아들여야 하는 걸지도 모르겠네요 사람 마음은 시간이 가면 바뀌기도 하니...


희선

새파랑 2022-08-16 16:31   좋아요 2 | URL
사람 마음은 항상 일정하지 않은거 같아요. 누군가는 그래도 참고 지내지만 누군가는 또 떠나고 ㅋ 참 알다가도 모르는게 사람 마음인거 같아요~~!

서니데이 2022-08-19 08: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엘레나 페란테 책이 2011년에도 출간된 적 있었네요.
이 작가는 나폴리 시리즈 이후로 조금 더 많이 나오긴 하지만, 생각보다 이른 시기에 출간된 책이 있었던 것은 잘 몰랐어요.
새파랑님, 벌써 금요일입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새파랑 2022-08-21 06:17   좋아요 1 | URL
이제야 답글을 봤습니다😅 저는 그냥 우주점 갔다가 우연히 구매했습니다 ㅋ 저도 이런 책이 있는지 몰랐어요 ^^ 늦었지만 남은 일요일 즐겁게 보내시길 바랍니다~!!
 
소설 보다 : 봄 2022 소설 보다
김병운.위수정.이주혜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2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N22099

소설보다 봄의 의미는?

1. 소설보다는 봄이 좋다는 말?
2. 봄에 소설을 본다는 말?

처음에는 1번을 생각했는데, 표지를 주의 깊게 살펴보니 2번의 의미였다. 요새 좀 생각이 많아서 그런지 이해력이 떨어진것 같다 ㅎㅎ

북플에서 자주 언급되는 ‘소설보다‘ 시리즈를 드디어 한편 읽었다. 요즘에 한국문학을 즐겨읽지 않아서 인지 세편의 단편을 쓴 작가분들의 작품은 처음 접했다. 그런데 세편 모두 나쁘지 않았다. 특히 모국어여서 인지 확실히 문장들이 잘 이해가 되고 가독성도 좋았다.



<윤광호 : 김병운>

게이 인권운동가인 ‘윤광호‘라는 인물과 과거에 그를 알았던 화자인 ‘나‘의 이야기이다. 게이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가지는 고민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져 있다. 작가인 ‘나‘는 어떻게든 자신의 정체성을 숨기려고 하고 작품에 게이 이야기기를 쓰지 않았지만, 이런 나에게 ‘윤광호‘는 자신의 이야기를 쓰라고 충고한다.

[˝저기요, 광호 씨. 모든 사람이 광호 씨처럼 용감할 수는 없어요. 그래야 할 필요도 없고요.˝ ˝그건 용기의 문제가 아니에요.˝ 광호 씨가 내 말을 자르며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시간의 문제죠. 중요한 건 시간이에요.˝] P.25



˝윤광호˝와의 대화 이후 두 사람은 다시 만나지 않는다. 하지만 ˝윤광호˝가 ˝윤광호˝라는 닉네임(윤광호가 본명이 아니었다.)을 쓰게 된 배경인 이광수의 [윤광호]를 읽게 되고, ‘나‘는 가슴이 미어지는 감정을 느낀다.

[남들과는 다른 욕망을 지녔다는 이유로 어린 시절부터 자신의 신체에 수치심과 모멸감을 적립해온 사람이라면, 반복되는 혼란과 부정 속에서도 기어코 규범을 거스르는 쾌락 쪽으로 향하는 자신에게 진저리 쳐본 사람이라면, 제아무리 벽장으로부터 자유로워졌다 한들 이 소설에서 자신의 어떤 시절을 겹쳐보지 않을 수는 없을 테니까.] p.32



이후 몇년이 흐르고 ‘나‘는 퀴어소설을 절대 쓰지 않겠다는 다짐을 폐기하게 되고, 소설에 진짜 내 모습을 담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이런 ‘나‘의 이야기는 결국 출판되게 된다. 하지만 이때는 이미 ˝윤광호˝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나‘는 ‘윤광호‘에게 당신의 말이 맞았다고, 문제는 용기가 아니라 시간이었다고 말하고 싶었는데...



------------------------
개인적으로 퀴어문학을 즐겨 읽지는 않지만, 읽을때마다 그 특유의 절박함에 공감을 했다. <윤광호> 라는 작품은 다른 퀴어문학과 달리 우울하지 않고, 오히려 당당하게 느껴졌다. 중요한건 남의 이야기가 아닌 나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다름은 결코 틀림이 아니다.

PS. 이광수의 [윤광호]를 읽어보고 싶다.







<아무도 : 위수정>

˝희진˝은 11년간 함께 산 남편 ˝수형˝과 별거하기로 결정하고 집을 나간다. 그리고 원룸을 구해 산다. 어머니는 딸을 이해하려 하지 않고, 오히려 아버지는 딸의 마음을 헤아리려고 노력한다. 그녀는 마음의 상념을 없애기위해 달리기를 시작한다...


˝희진˝이 집을 나온 이유는 더이상 ˝수형˝을 사랑하지 않기 때문에, 그리고 다른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기 때문이다.언제나 ˝희진˝의 머리속에는 ˝수형˝이 아닌 그가 있었다. ˝희진˝은 그에게 메세지를 보낼까 말까 고민하다가 결국 이사온 자기 원룸 주소만 보낸다. 하지만 그의 답장은 기다려도 오지 않는다. 거절의 말이라도 보내줬으면 좋을텐데...


하지만 그에게 연락이 오고 그는 와인을 사가지고 ˝희진˝의 집으로 온다. 하지만 그는 ˝희진˝에게 거리를 둔다. 그리고 ˝희진˝에게 ‘나는 아내를, 가족을, 사랑한다‘고 말한다. 이미 모든걸 알고 있는 ˝희진˝이었지만, 이렇게 직접 그에게서 들으니 마음이 더 아팠다. 그와 만나기 위해서 집을 나온건데. 오히려 그녀는 더욱 외로워져 버렸다.

[나는 이러려고 집을 나온 거예요. 그런데, 왜 나를 볼때마다 아내 얘기를 하는 거죠? 그건 당신 아내한테 해야 하는 말이잖아요.나는 그의 상처받은 얼굴을 보았다. 한참 후에 그가 입을 열었다.
희진 씨, 나는 1999년으로 돌아가고 싶어요.] P.81



그녀의 이런 혼란스러움을 이미 알고 있음에도 묵묵히 기다리고 있었던 남편 ˝수형˝은 그녀에게 이제 집으로 돌아와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녀는 ˝수형˝에게 나는 1999년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말한다. 여전히 ˝수형˝보다는 그에게 마음이 가는 ˝희진˝. ˝희진˝은 지금 꿈을 꾸는 것 같다고 말한다. 그녀는 이 꿈에서 결코 깨어나고 싶지 않지만 아무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어서 꿈에서 깨어나 돌아오라고 할 뿐이다.

[어떤 마음은 없는 듯, 죽이고 사는 게 어른인 거지. 그렇지? 그런데 어째서 당신들은 미래가 당연히 존재할 것이라고 믿는 건가? 그러나 이 모든 말을 나는 할 수 없었다.] P.88



------------------------
이 책에 실린 세편의 단편 중에 가장 인상깊게 읽은 작품이었다. ˝희진˝의 방황하는 마음이 그녀의 행동을 통해 잘 표현되어 있다. 일반적으로 봤을때 ˝희진˝은 아주 이기적이고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는 나쁜 사람으로 보일 수 밖에 없지만, 마음이라는게 그렇게 이성적으로만 되는건 아니다. 아무도 ˝희진˝의 마음을 이해하진 못할 것이고, ˝희진˝ 역시 이해를 바라지도 않을 것이다.

PS. ˝희진˝이 안쓰럽긴 하지만, 그래도 젤 불쌍한건 ˝수형˝이다. 자신에 대한 사랑이 식은 걸 알면서도 돌아오라고 하는 그의 마음과 앞으로의 그의 삶은 얼마나 망가질까?







<그 고양이의 이름은 길다 : 이주혜>

가끔 몸이 안좋을 때 유체이탈을 하는 꿈을 꿀 때가 있다. 정확한 기억은 안나지만 나를 지켜보고 있다는 느낌을 느낀 적이 있다. 이 작품이 시작도 유체이탈이다. 주인공인 ˝구은정˝은 유체이탈하여 수술대에 누워있는 자신을 바라본다. 그러면서 지나간 과거를 떠올린다.


열여덟살에 그녀는 소녀가장이 되어 목재회사의 임시직으로 들어간다. 우람한 체력의 그녀는 주변사람들로부터 ‘처녀 장사‘라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억세게 살아간다. 스물한살이 되자 그녀는 정식 사원이 된다. 이제 업무도 익숙해질 무렵, 사장이 그녀를 부른다. 그리고 사장과 단 둘이서 일본 출장을 가게 된다. 그녀가 이력서 특기란에 ‘일본어‘라고 썼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단지 그 이유만으로 사장의 일본출장에 동행한 것이었을까?


주변 사람들은 그녀에 대해 안좋은 소문을 낸다. 그녀와 친했던 사람들도 그녀에게 등을 돌린다. 하지만 절대 사람들이 수근거리는 것처럼 이상한(?)일은 그녀에게 일어나지 않았다. 오히려 사장은 그녀와의 거리를 뒀으며, 그녀에게 돈을 주면서 혼자서 자유로운 시간을 보내라고 했다. 사장은 일본에 애인이라도 있었던 걸까?


그렇게 기이한 출장은 20여년간 매년 계속된다. 이제 노인이 된 사장은 죽고, 자식도 아닌 그녀에게 오동나무 서랍장을 유산으로 남긴다. 그리고 그곳에서 지난 20여년간 사장이 감춰왔던 비밀을 알게된다. 과연 그 비밀은 무엇일까?



------------------------
약간 결말 부분에서 벙 찐 느낌을 받았다. 너무 개연성이 없다고 느껴지면서도, 아 그럴수도 있겠다, 왜 사장이 ˝은정˝을 출장에 데리고 갔는지도 이해가 되었다. 자신의 사랑도 중요하지만 주변의 시선 역시도 중요하니까. 주변사람들에게 사랑을 들키지 않기 위해서 믿을만한 친구랑 함께 만나서 노는 그런 느낌? (연예뉴스에서 자주보던 그런 ㅎㅎ) 오해로 희생된 그녀의 인생이 어느정도 보상을 받았기를 바란다.

PS. 그녀는 수술 후에 과연 살았을까?






개인적으로는 <아무도>가 가장 좋았고, <그 고양이의 이름은 길다>는 장편으로 쓰면 더 좋지 않을가란 생각이 든다. 역시 책은 선물받은 책이 가장 좋다 ^^

댓글(18) 먼댓글(0) 좋아요(3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레삭매냐 2022-08-14 11:1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책 선물은 고저 사랑이지요 :>

격렬하게 공감하는 바입니다.

새파랑 2022-08-14 11:27   좋아요 2 | URL
맞습니다. 역시 선물은 책~!! 먹는것보다 남는것도 있고 좋은거 같아요 ^^

바람돌이 2022-08-14 11:4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책선물 받은거 자랑?
자랑은 역시 책 선물 자랑 맞습니다.ㅎㅎ 저도 이 시리즈 하나도 안봤는데 많은 분들이 보시더라구요. 챙겨볼까싶어지네요. ㅎㅎ

새파랑 2022-08-14 12:19   좋아요 3 | URL
작가님들의 인터뷰도 실려있어서 어떤 의도로 쓰셨는지 알수 있어서 좋더라구요~! 역시 책좋아하는 사람에겐 책선물이 제일 좋은거 같아요 ^^

막시무스 2022-08-14 12:1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소설을 보다가 봄을 생각한다?는 의미 일까요?ㅎ

새파랑 2022-08-14 12:20   좋아요 3 | URL
그런 의미로도 생각할 수 있을거 같습니다. 이야기가 봄에 어울리는 그런 이야기들은 아니더라구요. 표지가 딱 봄 같다는 느낌이 듭니다~!!

청아 2022-08-14 13:5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재밌게 읽었는데 이 시리즈 참 괜찮은거 같아요! 얇아서 들고 다니기도 좋고 가볍고 가격은 너무 착하고...무엇보다 읽을만한 단편들^^* (자칭 홍보대사?ㅋㅋ)

새파랑 2022-08-14 14:36   좋아요 2 | URL
요런 시리즈가 좋지만 저랑 미미님한테는 무서운게 한번 모으기 시작하면 계속 모아야 한다는 ?😅 가끔 조그마한 책이 땡기더라구요~!!

페넬로페 2022-08-14 19:25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요즘 한국소설 잘 읽지 않아서인지~~
작가들 이름이 생소하네요
반성하고 잘 챙겨 읽어야겠다는 다짐을 해봅니다.
이 시리즈가 있는 것도 처음 알게 되었어요^^

새파랑 2022-08-15 07:35   좋아요 4 | URL
저도 그렀습니다 ㅜㅜ 그래도 균형있게 읽어야 하는데 ㅜㅜ 이 시리즈 우주점에 보이면 한권씩 사려고 합니다 ^^

그레이스 2022-08-15 10:2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조금...저도 개연성에 대한 의문을 말씀하신 새파랑님 의견에 공감하게 되네요^^

새파랑 2022-08-15 11:33   좋아요 2 | URL
장편이었다면 아마 작가님이 개연성있게 썼을거 같아요 ㅋ 그래도 나름 임팩트가 있는 결말이었습니다~!!

mini74 2022-08-15 11:1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오동나무 서랍장 넘 궁금합니다. ~ 이게 시리즈군요.

새파랑 2022-08-15 11:33   좋아요 2 | URL
전 충격의 오동나무였습니다. 왜 사람들은 증거를 남기려고 하지? 이런 생각도 했습니다~!!

파이버 2022-08-15 20:2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도 <아무도>의 심리 묘사가 좋았습니다. 희진이 좀 이기적이지요... <그 고양이의 이름은 길다>에서는 주인공이 눈을 떴으리라 믿습니다ㅎㅎ 해피엔딩이었으면 싶거든요

새파랑 2022-08-16 16:05   좋아요 0 | URL
파이버님도 이미 읽으신 책이군요~!! 좀 이기적이긴 한데 ㅋ안쓰럽기도 하더라구요. 전 <그 고양이> 읽으면서 유체이탈해서 과거를 생각하는 장면이 마치 사람이 죽을때 마지막에 인생을 순식간에 돌아보는 느낌도 들었습니다 ㅋ

희선 2022-08-16 01:0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 책을 누군가 새파랑 님한테 선물했군요 처음으로 이 책을 만나서 괜찮았겠습니다 세 편에서 하나라도 괜찮은 소설을 만나도 좋겠지요 이런 작가가 있다는 걸 아는 것도... 마지막에서는 구은정이 수술을 다 마치고 자기 삶을 살 거예요


희선

새파랑 2022-08-16 16:05   좋아요 1 | URL
책선물은 언제나 행복입니다 ㅋ 이 책 덕분에 다른 작가분을 알게되어서 좋았습니다~!!
 

음..엘레나 페란테는 나랑 잘 안맞는것 같다.
























4월 어느 날 오후, 점심을 먹고 나서 남편은 내게 헤어지자고 했다. - P5

그는 나에게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는 비이성적인 여자라고 말했다. 정말이지 나는 한 번도 그를 이해한 적이 없었다. 오직 그의 인내심, 혹은 아마도 그의 무심함이 이렇게 오랫동안 우리를 함께하게 했을뿐이다. 하지만 이제 끝났다. - P20

마리오는 꾸러미를 잔뜩 들고 들어왔다. 정확히 34일만에 보는 것이었다. 그는 더 젊어 보였고 말쑥해 보였으며 이전보다 더 활기차 보였다. 숨을 쉬지 못할 정도로 심한 통증이 복부에서 느껴졌다. 그의 얼굴에서 우리를 그리워한 기미따윈 찾아볼 수 없었다. 그가 염려스런 눈으로 나를 훑어본 것처럼, 나는 고통의 흔적들을 온몸에 지니고 있었지만, 그는 잘 살고 있는, 어쩌면 행복감에 젖어있다는 암시들을 감추지 못했다! - P49

‘사랑을 잃은 여자들은 눈빛이 흐려지고, 사랑을 잃은 여자들은 삶의 의욕을 잃는다.‘ - P58

나는 곰곰이 생각하며 밤낮을 보냈다. 나는 두 개의 갈림길에서있었다. 하나는 시시각각 밀려오는 생각과 상상의 물길을 막아버리고 현실에 의연하게 대처하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고통을 느끼지 않고 불 속을 통과하는 불도마뱀처럼 거침없이 분노를 폭발해버리는 것이었다. - P77

내가 할 일은 얼마든지 잘 살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다른 누구도 아닌 나에게 그걸 보여주는 것이다. 내 앞에 도마뱀이 나타난다면 도마뱀과 싸울 것이다. 개미떼가 나타난다면 개미떼와 싸울 것이다. 내 집에 도둑이 든다면 그 도둑과도 싸울 것이고, 내 앞을 내가 가로막고 있다면 나 자신도 싸울 것이다 - P78

그가 아닌 다른 누군가와도 사랑할 수 있었을 것이다. 사랑이란 결국 한 육체에 어떠한 의미들을 부여하는 것일 테니까. 두 사람이 함께하는 긴 여정에서, 당신은 그가 인생에 기쁨을 안겨줄 유일한 남자라 여기고 온갖 정성을 기울인다. 하지만 그는 허깨비일 뿐이다. 당신은 그가 정말로 누구인지 모르며 그 역시 자신을 알지 못한다. 우리는 그저 하나의 기회일 뿐이다. - P102

우리는 사람들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해요. 모든 것을 공유했던 사람조차도요. - P109

무엇보다도 가장 큰 잘못은 오랜 시간 동안 그와 함께 살고 있다는 확신이 전혀 들지 않았음에도 그 없이는 살 수 없다고 믿어왔다는 것이다. 그의 따뜻한 숨결과 살의 감촉을 느껴본 게 언제였을까? 내가 나의 속마음을 깊이 살펴보았더라면... - P202

어쩌면 마리오가 나를 떠나겠다고 말했던 바로 그때 나는 새로 시작했어야 했다. 나는 강렬한 기쁨과 기대를 끊임없이 만나게 되는 새로운 곳에서 코끝을 스치는 매연 냄새와 도시에 늘어선 플라타너스의 회색 기둥에도 의미를 주는 그 누군가, 어쩌면 이방인일수도 있는 그가 나를 사로잡을 수도 있다는 사실로부터 도망쳐 왔다. 이미 마리오는 안전망 안에서만 적당하게 자신의 힘을 과시하고 있었고 더 이상 그 같은 기대와 기쁨을 전혀 주지 못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 P203

"물론 그럴 테지. 하지만 일라리아가 카를라처럼 꼬리치는 여자가 되거나 잔니가 너처럼 거짓 맹세를 하는 남자가 되지 않길 원해." - P26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