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22124

여자!
그것은 내가 태어난 그날부터 오늘까지
나를 부단히 이끌어온,
아니, 아마도 마지막 숨을 거두는 순간까지
나를 이끌어줄 유일한 빛.
암흑 속에 떠다니는 배를 비춰주는
유일한 별.



다니자키 준이치로의 작품을 많이 읽은건 아니지만 그의 작품을 읽다보면 그가 일반적인 사람들과는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게 느껴진다. 그의 작품 속 인물들은 평범하지 않고, 성에 대한 집착이 크며, 다소 변태직이고 가학적이다. 그럼에도 거부감이 별로 느껴지지 않는다. 오히려 문장들이 참 아름답다는 느낌을 받는다. 저주받은 재능이라고 해야 할까?



이 책에는 <만>과 <시게모토 소장의 어머니> 두 중편이 실려 있는데, 개인적으론 내가 지금까지 읽은 그의 작품들 중에서 두 작품 모두 세손가락안에 들어간다.



<만>은 네 남녀의 엽기적인 애정행각과 서로 속고 속이면서 꼬여있는 인긴관계를 그리고 있는데, 그의 다른 작품인 <소년>,  <치인의 사랑>,  <열쇠>랑 분위기가 비슷하다.





반면 <시게모토 소장의 어머니>는 권력자에게 젊은 아내를 빼앗긴 한 노인의 사무치는 그리움과, 그 노인과 아내 사이에서 태어난 시게모토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는데, <슌킨이야기>랑 비슷하다. 그런데 <슌킨이야기>보다 훨씬 인상적이었다. 



<시게모토> 이야기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장면은 시게모토의 아버지가 어머니를 잊기 위해 부정관을 행하는 장면이었다.

[시게모토의 일기에 의하면, 그의 아버지 늙은 대납언도 역시 그렇게 부정관을 닦으려 했던 것이다. 이 대납언의 경우는, 잃어버렸던 한마리 학(鶴)이 언제까지나 눈앞에서 사라지지를 않아, 애타는 생각을 참지 못하고 환상으로부터 벗어나려고 그야말로 전력을 다해 노력했음이 확실하다. 그날 밤 시게모토의 아버지는 그렇게 친자식을 상대로, 부정관의 수행법부터 시작해 자기는 어떤 방법을 써서라도 자기를 저버린 그분을 향한 원망과 뜨거운 그리움, 정념에서 벗어나고 싶다, 마음속 깊이 각인된 그이의 미모를 심장 속에서 몽땅 씻어내어 애달픈 괴로움에서 풀려나고 싶다, 이런 자신이 미친 것처럼 보일지 몰라도, 어쨌든 지금 그 때문에 수행을 하는 것이다, 하고털어놓았다.]  P.307



부정관이란 불교용어로 ‘시체가 부패하는 과정이나 신체의 부정함을 관찰하여 몸에 대한 애착이나 감각적 욕망 등을 끊는 수행법‘이라고 하는데, 시게모토의 아버지는 자신을 떠난(시게모토 아버지가 반강제제으로 어쩔수 없이 보낸거긴 했지만) 아내를 잊을 수 없었다. 모든 생활이 정지해 버린다. 결국 어떻게든 그녀를 잊기 위해 시체를 찾아다니면서 이 부정관을 행한다. 도대체 아내를 얼마나 잊고 싶었기에, 얼마나 잊을 수 없었기에, 얼마나 그리웠기에 그랬던 걸까? 장면들이 다소 섬뜩하게 그려져 있지만 왠지 모를 아름다움이 느껴졌다.



또한 시게모토가 40년만에 한밤 중 깊은 산속에서  어머니를 만나는 장면에 대한 묘사는 정말 예술이었다. 이런게 바로 재회라는 걸까?

[시게모토는 다시 한 번 불렀다. 그는 맨땅 위에 꿇어앉아, 아래에서 어머니를 올려다보며 그녀의 무릎에 온몸을 내맡기듯 기댔다. 하얀 모자 속에 파묻힌 어머니의 얼굴은, 꽃무더기를 뚫고 내리비치는 달빛을 받아 뿌옇게 보였지만 여전히 귀엽고 자그마했으며 마치 원광(圓光)을 뒤에 달고 있는 듯했다. 40년 전의 어느 봄날, 휘장 그늘 속에서 그 품에 안겼을 적의 기억이 금세 영롱하게 되살아나고, 한순간에 시게모토는 예닐곱 살의 어린아이가 된 느낌이 들었다. 그는 어머니 손에 들린 황매화 가지를 거칠게 젖혀내면서 자신의 얼굴을 어머니 얼굴 쪽으로 더욱더 디밀었다. 어머니의 검정 소매에 스민 향내가 문득 먼 옛날의 잔향(殘)을 떠올리게 했다. 그는 마치 응석이라도 부리듯 어머니 소매에 얼굴을 문지르면서 눈물을 마음껏 쏟아냈다.]  P.324



위에 쓴 인상적인 두장면은 작품의 후반부에 등장하는 내용으로, 전반부에는 다소 엽기적인 장면도 있다. 특히 짝사랑 하는 여인인 ‘지쥬노기미‘가 자신에게 마음을 열지 않자 그녀의 약점을 찾아내기 위해 그녀의 변기통을 훔치는 ‘헤이주‘의 이야기는 엽기 그 자체다. 그는 훔친 변기통에서 조차 향긋한 흑방향을 느낄 정도로 그녀에게 빠져있던 것이다. 그리고 냄새를 맡은 이후 엽기적인 행동을 행한다...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리뷰를 쓰기 위해서 밑줄도 긋고 했어야 했는데 정신없이 읽는다고 밑줄도 얼마 못그었다. 그만큼 좋았다. 다니자키 준이치로의 작품을 처음 접하고자 하는 분들에게 이 책을 추천하고 싶다. 작품속에 변태적인 아름다움이 가득하다.




Ps 1.  리뷰가 좀 부실해서... 그동안 내가 읽은 다니자키 준이치로의 작품 평점을 매겨본다면,
(내가 대가의 작품에 점수를 매긴다는게 좀 그렇지만)


1. <만, 시게모토 소장의 어머니> 100점 : 완벽 완벽

2. <슌킨 이야기> 99점 : 완벽하나 분량이 아쉬움

3. <미친 사랑> 95점 : 읽는 재미 보장

4. <소년> 93점 : <문신>, <소년> 강추, 잔인, <작은 왕국>은 약간 아쉬움

5. <열쇠> 90점 : 내가 처음 읽은 준이치로의 작품. 그때는 엽기적이어서 별 네개를 줬는데, 다시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다시 읽으면 95점 이상 줄거 같다.

6. <요시노 구즈> 70점  :  일단 한자가 너무 많고 역사이야기가 초반에 지루하게 전개되어서 읽기 힘들다.



Ps 2. 다니자키 준이치로의 작품을 많이 읽었다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별로 안읽은것 같다. 다음에는 그 유명한 <세설>을 읽어야 겠다. 이러다 또 1위가 바뀌는건 아닌지 모르겠다.



댓글(14) 먼댓글(0) 좋아요(4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mini74 2022-10-18 20:43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시게모토 이야기 저도 좋았어요 새파랑님. 특히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고 쓰신 부분 ㅎㅎ 넘 웃깁니다 ㅋㅋ 세설이야기 스콧님이 재미있다고 추천하는 댓글 달아주셨는데, 그 당시 김영하작가님이 추천하면서 도서관 인기 도서로 등극 ㅠㅠ 그러다 잊었네요 ㅎㅎ

새파랑 2022-10-18 21:18   좋아요 3 | URL
전 <세설> 중고로 구해놓았습니다 ㅋ 아 리뷰 잘 써보고 싶었는데 야근한다고 해서 급하게 막 썼습니다. 리뷰를 써야 퇴근해서 다른책을 맘편하게 읽을수 있다는 ㅡㅡ

청아 2022-10-18 20:58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팟케에서 듣고 <만>을 꼭 읽어야지 사두었는데 역시 새파랑님 별5개!! 그리고 100점ㅋㅋㅋ밑줄 못 그을 정도면 말 다했네요^^*

새파랑 2022-10-18 21:19   좋아요 3 | URL
<만>도 재미있고 좋은데, <시게모토>가 전 더 좋더라구요~!! 미미님 책장에 아마 이 책이 째려보고 있을겁니다 ㅋ

페넬로페 2022-10-18 21:1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다니자키 준이치로의 작품을 아직 읽지 않은 사람으로서 새파랑님의 평점 순위, 참고 하겠습니다.
약간 섬뜩하면서도 아름다움이 있는 문장이 어떨지 기대되는데요^^

새파랑 2022-10-18 21:20   좋아요 3 | URL
이 책은 페넬로페님이 좋아하실거 같아요 ㅋ 다소 충격적인 장면만 잘 넘어간다면 아주 좋습니다~!!

파이버 2022-10-18 21:1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내용은 새파랑님께서 써주신 것만으로도 충격인데 새파랑님께서 완벽x2 이라고 해주시니 궁금하네요~ 일본 탐미주의 소설들이 엽기적이지만 매력도 있는 것 같습니다.

새파랑 2022-10-18 21:21   좋아요 3 | URL
아 엽기적인데 몰입이 되는 ㅋ 이런게 다니자키 준이치로의 매력인가 봅니다. 읽으시면 재미는 있으실거 같아요 ^^ 다만 호불호갈릴 수 있습니다 ㅋ

coolcat329 2022-10-19 09:4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아 변태적인 아름다움 ㅋㅋ 입문작품으로 이 책을 추천하시니 기억해 두겠습니다. 변기통하니 위화의 <형제>가 떠오르네요 ㅋ

새파랑 2022-10-19 12:30   좋아요 3 | URL
요새 책읽을 시간이 부족해서 우울했는데 이 책읽고 힘을 얻었습니다 ㅋ 딱 제취항 ㅋ 다른 변기통 이야기가 또 있나보군요 ㅎㅎ

희선 2022-10-20 01:4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다니자키 준이치로 책 많이 보셨네요 저는 한권도 못 봤는데... 지금까지 본 책에서 이 책이 가장 좋으셨군요 다음에 《세설》을 보시면 그게 1위가 되는 건 아닐지... 그건 좀 길어서 좋을 듯하네요


희선

새파랑 2022-10-20 07:15   좋아요 2 | URL
일본문학 전문가이신 희선님이 한권도 안보셨다니 놀랍습니다 ^^

페크pek0501 2022-10-23 17: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만, 시게모토~ 를 읽었어요. 빨려 들어가는 이야기의 저자라 생각해요.

새파랑 2022-10-25 06:58   좋아요 0 | URL
페크님도 읽으셨군요~!! 이 책 완전 좋았습니다 ^^ 전 요런 재미있고 잘읽히는 작품이 좋더라구요~!!
 

만 보다는 시게모토 소장의 어머니가 더 좋았다.




시게모토의 일기에 의하면, 그의 아버지 늙은 대납언도 역시 그렇게 부정관을 닦으려 했던 것이다. 이 대납언의 경우는, 잃어버렸던 한마리 학(鶴)-소리를 구름 밖으로 끊고 그림자를 명월속으로 숨긴‘미인의 요염한 모습이 언제까지나 눈앞에서 사라지지를 않아, 애타는 생각을 참지 못하고 환상으로부터 벗어나려고 그야말로 전력을 다해 노력했음이 확실하다. 그날 밤 시게모토의 아버지는 그렇게 친자식을 상대로, 부정관의 수행법부터 시작해 자기는 어떤 방법을 써서라도 자기를 저버린 그분을 향한 원망과 뜨거운 그리움, 정념에서 벗어나고 싶다, 마음속 깊이 각인된 그이의 미모를 심장 속에서 몽땅 씻어내어 애달픈 괴로움에서 풀려나고 싶다. 이런 자신이 미친 것처럼 보일지 몰라도, 어쨌든 지금 그 때문에 수행을 하는 것이다, 하고털어놓았다. - P307

사랑하는 분의 환영을 부여안고 밤낮으로 괴로워하는 아버지가 딱하고 가엾게 여겨지지 않은 건 아니지만, 흔한 말로 그렇게 아름답게만 보였던 어머니 모습이라면, 그냥 귀하게 간직하려 애쓸 것이지, 더러운 길바닥 시체까지 끌어들여서 썩어 문드러진 추악한 모습으로 생각하려 함에는 무언지 욱하고 노여움 같은 반항심까지 끓어올랐다. - P309

시게모토는 다시 한 번 불렀다. 그는 맨땅 위에 꿇어앉아, 아래에서 어머니를 올려다보며 그녀의 무릎에 온몸을 내맡기듯 기댔다. 하얀 모자 속에 파묻힌 어머니의 얼굴은, 꽃무더기를 뚫고 내리비치는 달빛을 받아 뿌옇게 보였지만 여전히 귀엽고 자그마했으며 마치 원광(圓光)을 뒤에 달고 있는 듯했다. 40년 전의 어느 봄날, 휘장 그늘 속에서 그 품에 안겼을 적의 기억이 금세 영롱하게 되살아나고, 한순간에 시게모토는 예닐곱 살의 어린아이가 된 느낌이 들었다. 그는 어머니 손에 들린 황매화 가지를 거칠게 젖혀내면서 자신의 얼굴을 어머니 얼굴 쪽으로 더욱더 디밀었다. 어머니의 검정 소매에 스민 향내가 문득 먼 옛날의 잔향(殘)을 떠올리게 했다. 그는 마치 응석이라도 부리듯 어머니 소매에 얼굴을 문지르면서 눈물을 마음껏 쏟아냈다. - P324

여자!
그것은 내가 태어난 그날부터 오늘까지
나를 부단히 이끌어온,
아니, 아마도 마지막 숨을 거두는 순간까지
나를 이끌어줄 유일한 빛.
암흑 속에 떠다니는 배를 비춰주는
유일한 별. - P338

그런 그가 정치적 이슈에 대해서는 단 한마디 언급도 없다. 철저하게 정치나 사회적 상황에는 등돌린 채 오로지 맛있는 음식과 노인 나름의 성욕만을 생각하며 살아가는 우쓰미 노인의 모습에서 우리는 처녀작 「문신」이래 격동하는 사회상황에서 유리된 채 개인적인 욕망의 충족만을 추구해온 다니자키의 진면목을 보게 된다. 남이야 무얼 하든 나는 내 갈 길만 걷겠다고 선언한 다니자키는 결국 자신의 길에서 대성했다. - P340


댓글(4)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얄라알라 2022-10-18 13: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두 편을 엮은 책이어서 ˝만˝보다는 이라 하신거군요^^;; 잘 모르는 게 계속 티가 납니다.
찾아보니 만(卍)이네요^^

새파랑 2022-10-18 20:35   좋아요 0 | URL
제가 한자에 좀 약해서 ㅋ 친절하게 표현을 못했습니다 😅

얄라알라 2022-10-18 21: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헉 새파랑님 오해하신건 아니시죠?^^;;댓글에..주어가 없다보니 오해하시게.해드렸나봐요 제가 소설을 잘 안 읽다보니 제가 모르는게 티가 난다는 말이예요^^;;;제목인줄 모른 거 있죠^^;;제가요

새파랑 2022-10-18 23:55   좋아요 0 | URL
아 아닙니다 ㅋ 오해는 전혀 없죠 ㅋ 그냥 조크입니다~!!
 

"나는 너무 아름다운 걸 보면 감격해서 눈물이 나거든." - P33

"나는 속박당하기 싫어. 그냥 맘대로 하게 내버려둬." - P53

같은 사랑이라도 동성의 사랑과 이성의 사랑은 성격이 전혀 다르니 언니와의 관계를 이해해달라. 그러지 않으면 이 관계도 유지할 수 없다. - P64

"아 그래, 그래. 그뿐이 아닙니다. 동성애는 어떤 남자와 결혼을 해도 계속할 수 있습니다. 남편이 몇 번 바뀌어도 전혀 관계가 없죠. 그렇다면 누님과 미쓰코의 사랑은 부부애보다 더 영원불변입니다"라고 하더니 "아아, 저는 얼마나 불행한 남자일까요" 라고했다. - P103

헤이는 열린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이제까지 별별 여자들과 갖가지로 연애라는 것을 해보았지만 이 정도로 심술궂고 독종인 상대는 난생처음이었다. 나로 말하자면 막말로 온 세상이 아는 미남자 헤이주다. 이 세상 누구나 그 이름만 들어도 얼씨구나 하고 넘어왔는데, 아니, 이 정도로 콧대가 높은 계집이 있다니. 그야말로 느닷없이 귀싸대기라도 한 방 맞은 듯 잠시 멍해졌다. - P194

물론 그 순간에도 내가 과연 이런 행동을 해서 되겠는가. 아무리 은혜에 보답한다지만 어느 누가 보더라도 너무 지나친 행동이 아닐까………… 취한 상태에서 엉뚱한 일을 저질러놓고는 술이 깬 뒤에 후회하지 않을까…...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그렇게 헌신적인 것은 좋지만 과연 그 뒤의 고독을 견뎌낼 수 있겠는가 하고, 마음 한구석에서는 이런 속삭임이 들리기도 했지만, 뭐, 어떨려고, 그 뒤의 일은 나중에 생각할 일이다. - P246

옳다고 믿어의심치 않으면 술기운을 빌려서라도 저지르고 볼 일이다. 살아 있으면서도 죽어 있기를 각오했었는데 그까짓 고독 따위를 무서워하다니……… 이렇게 스스로를 비웃기까지 하면서 끝내는 사랑하는 그녀의 소매 끝을 좌대신께 넘겨주고 만 것이다. - P247

평생 어머니 얼굴을 확실하게 본 건 오로지 그 순간뿐이었다. 하지만 그때 봤던 눈이며 코며 전체적인 인상과 그 지극한 아름다움의 감동은, 오래오래 머릿속에 각인되어 평생 잊히지 않았다. - P281

생각하는 사람 있어
서로 떨어져 머나먼 곳에 있어
나 느끼는 구석 있나니
내 생각은 깊이깊이 마음속에 있나니
그가 있는 곳은 머얼리 있어 갈 수는 없지만
하루라도 그리지 않은 날은 없나니
마음속 생각은 깊고 깊어 지울 수는 없나니
저녁이면 생각나서 그침이 없고
하물며 이 등잔불의 야밤에
홀로 누워 빈방 지키나니 1시
가을 하늘 언제쯤이나 밝아지려나
바람과 비 소리만 바야흐로 창창(蒼蒼)
두타(頭陀)의 법을 깨치지 못했다면
어떻게 이 마음의 슬픔을 잊겠는가 - P290

부정관이라는 것은 설명하기가 무척이나 어려운 내용이라, 유모로서도 자세한 설명은 하지 못했는데, 요컨대 그것을 하면 사람들의 여러 가지 관능적인 쾌락이 죄다 한때의 미혹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리하여 이제까지 그립고 그립게 여겨지던 사람도
그리워하지 않게 되고, 눈으로 보아서 아름답다든가 먹어서 맛이 있다든가 냄새가 향기롭게 느껴진다든가 하는 것들이 실은 아름답지도 맛있지도 향기롭지도 않은, 더러운 것임을 터득하게 된다, 아버지는 어떻게 해서든지 어머니 일을 잊으려고, 단념하시려고 저렇게 수행을 하고 계시는 거라고 했다. - P294


댓글(6)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Calcutta 2022-10-17 14:5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시게모토 소장의 어머니 참 좋죠.. 만(만지)은 마스무라 야스조 영화 쪽이 기억에 남습니다.

새파랑 2022-10-17 17:37   좋아요 1 | URL
만은 재미있고, 시게모토는 뭉클했습니다 ㅋ 이 책 너무 좋네요. 리뷰를 잘 써보려고 준비중입니다 ~!!

scott 2022-10-18 06:3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울지 마여 새파랑님 😂
가을 후딱 지나갑니다
서울 오늘 머플러 장갑 낄 온도🤗

새파랑 2022-10-18 10:04   좋아요 2 | URL
제가 좀 눈물이 많습니다 😅

mini74 2022-10-18 07:0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재미있게 읽었어요. 리뷰 기다릴게요 새파랑님 *^^*

새파랑 2022-10-18 10:04   좋아요 2 | URL
어제 퇴근해서 쓰려고 했는데 갑자기 번개가 잡혀서 망했습니다 ㅜㅜ
 
블라드
카를로스 푸엔테스 지음, 김현철 옮김 / 민음사 / 2013년 7월
평점 :
절판


N22124 여름에 읽어야 했는데 겨울이 다되서야 읽은 책. 맥시코판 드라큘라 이야기. 남미 특유의 환상문학이 잘 느껴지고 시각적 묘사가 인상적이었지만, 다소 잔인한 묘사때문에 추천하고 싶지는 않다. 그리고 마지막에 차안에서 주인공이 본건은 무엇인지 정말 궁금하다. 해설은 왜 없는걸까? ㅎㅎ

댓글(14) 먼댓글(0) 좋아요(3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scott 2022-10-16 22:5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오😂푸엔테스 아우라
좋았는데😄

새파랑 2022-10-16 22:59   좋아요 3 | URL
아우라는 아주 좋고 해설도 잘되어 있어서 좋았는데, 이 책은 아우라 만큼은 아닌거 같아요 ㅋ 그냥 가볍게 읽을 정도? ㅎㅎ

청아 2022-10-17 00:0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역시 제목에서 풍기듯 드라큐라 얘기군요? 죽기전 마지막으로 출간한 단행본이라니.. 브램 스토커의 <드라큐라>완 어떤 차이가 있을지 궁금해요ㅋ

새파랑 2022-10-17 06:32   좋아요 2 | URL
제가 드라큘라? 이런 쪽은 안좋아해서 좀 그랬습니다 ㅋ 가방에 짐이 많아서 얇은 책을 고른다고 해어 이책 들고 나갔다가 다 읽고 들어왔어요 ㅋ 해설이 없어서 마지막에 좀 답답했습니다. 답지 없으면 이해도 잘 못한다는 😅

Falstaff 2022-10-17 06:1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이 자의 작품들이 꽤 좋습니다. 블라드 하나만 가지고 판단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아우라> 말고도, <의지와 운명>, <미국은 섹스를 한다>... 재미있습니다. <미국은...>은 원제가 <다이아나 또는 외로운 사냥꾼>인데 책 많이 팔아먹으려고 함부로 우리말 제목으로 바꿨는데, 결과는... 회사 망했습니다. 당연히 절판이고요. <의지와 운명>도 읽어보시면 좋을 텐데요.

새파랑 2022-10-17 06:35   좋아요 2 | URL
저는 <의지와 운명> 아주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 그 부엉이 표지로 ㅋ 역시 책은 제목도 중요한거 같아요^^

<미국은>을 읽어봐야 겠군요~!!

거리의화가 2022-10-17 08:5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푸엔테스에 이런 작품도 있군요. 역시 한 작가를 알려면 여러 작품을 함께 읽어봐야하나봐요^^; 저는 드라큘라 이야기 싫어해서...ㅋㅋ 마지막이 이해가 안되면 저도 무척 답답합니다ㅎㅎ

새파랑 2022-10-17 11:28   좋아요 2 | URL
아 마지막이 좀 궁금증을 유발하면서 끝나는데 해설이 없어서 답답했습니다 ㅋ 그냥 예측은 되는데 유사한답은 모른다는 😅

mini74 2022-10-17 15:1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남미의 드라큘라 이야기라니...거기 더워서 정장 입고 관에 들어가 자긴 힘들지 않을까요 ㅎㅎㅎ

새파랑 2022-10-17 17:36   좋아요 2 | URL
그래서 이상한 터널안 관속에 누워있습니다. 사방이 막힌 ㅋ

페넬로페 2022-10-17 17:3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남미의 드라큘라 이야기는 좀 다른가요?
남미든 북유럽이든 저는 드라큘라는 좀 별로라서~~

새파랑 2022-10-17 17:42   좋아요 2 | URL
드라큘라라고는 하는데 막 물고 하는 그런 장면은 안나오고 장수한 드라큘라로 나옵니다 ㅋ

coolcat329 2022-10-20 19:2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앗 이 책은 또 언제 읽으셨나요! 저도 이 책 있답니다. 골드문트님 리뷰읽고 사뒀는데 새파랑님 읽으셨군요. 저는 아우라도 안 읽어봐서 거의 모르지만 표지와 제목이 그냥 좋더라구요.

새파랑 2022-10-20 22:05   좋아요 0 | URL
저는 막 좋지는 않았는데 재미있게 읽었어요 ㅋ 아우라가 좀 더 쫄깃했던거 같습니다~!!
 

N22123

˝사람들은 무엇 때문에 그러는 걸까? 어째서 <날 좀 봐 내 말좀 들어봐> 하고 외치는 걸까? 왜 사람들은 가만히 못 있지? 어째서 모든 것을 말하고 싶어서 안달일까?˝



이런게 영국식 사랑 이야기일까? 줄리언 반스의 여섯번째 작품이라고 하는 <내말 좀 들어봐>는 영국판 ‘잘못된 만남‘ 이다. 그 노래와 똑같다. 친한 친구에게 여자친구이자 곧 아내가 될 사람을 소개시켜 줬는데, 친구가 내 아내에게 반하고, 아내는 처음에는 못마땅했다가 결국 친구에게 빠져들게 되고, 그렇게 해서 나는 아내와 이혼하게 되고, 아내는 친구와 재혼한다는 이야기.



간략히 인물소개를 하자면...



스튜어트 : 은행원. 아주 많이 순박함. 올리버라는 친구에게 아내인 질리언을 뺏긴 남자. 이혼 후 잠을 못이룬다.

[그 당시 나는 그녀의 잘못이라고 생각했지만, 이제는 내 잘못이라고 느끼고 있다. 내가 그녀를 실망시켰다. 내가 나를 실망시켰다. 그녀가 도저히 떠날 수 없을 만큼 그녀를 행복하게 해주지 못했다. 내가 해주지 못한 게 그거다. 그래서 나는 실패했고, 그게 부끄럽다. 이에 비하면, 내 물건이 고장 났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거나 말거나 그런 건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  P.263




올리버 : 별다른 직업 없음. 매력적이지만 계산적인 남자. 하나밖에 없는 친한 친구인 스튜어트의 아내인 질리언을 꼬득여서 빼앗아간 남자.

[네가 이해해야하는 건, 스튜, 시장 기능이라는 거야. 이제 내가 그녀를 인수할 거야. 내 제안은 확대회의, 말하자면 위원회에서 수락될 거야. 너는 비상임 이사 - 달리 말해 친구가 될 테고. 하지만 어쨌든 대리 운전했던 차를 되돌려 줄 때가 된 거지.]  P.201




질리언 : 미술 복원가. 처음에는 냉철한 모습을 보이다가 어느순간 남편 스튜어트의 친구인 올리버와 바람이 나서 그와 이혼하고 올리버와 재혼한 여자.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어. 이게 어디에서 어떻게 끝날지 모르겠어.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지? 내 잘못은 아냐. 하지만 죄책감이 들어, 어느 모로 보나 내 잘못은 아니라는 걸 알지만, 그래도 죄책감이 들어.]  P.136





스튜어트는 아내와 친구를 모두 잃게 되고, 처음에는 아내와 친구를 탓하지만, 결국은 이 모든게 자기 잘못이라고 자책하게 되고, 그럼에도 그들을 용서할 수 없는 스튜어트는 그들을 멀리서 스토킹하면서 그들을 스토킹한다. 과연 서로에게 상처를 줬던 그들은 행복해질 수 있을까?



어떻게 보면 뻔한 스토리에 뻔한 불륜 삼각관계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역시 글을 쓰는 사람이 누구냐에 따라 뻔한 이야기도 뻔하지 않게 된다. 줄리언 반스는 특유의 언어유희와 상황조성을 통해 이야기를 재미있게 이끌어 간다.



구성 또한 특이하다. 기존의 시점이 아닌, 각 장에서 세명의 주인공이 모두 자기만의 이야기를 한다. 그래서 같은 상황을 경험하고도 다르게 말하고, 다르게 해석한다. 이게 사람마다의 입장차라는 걸까? 그래서 제목이 Talking it over (내 말 좀 들어봐) 인가 보다. 사람의 생각은 결코 같을 수 없고, 모두 자기 중심적으로 생각할 수 밖에 없나 보다. 그래서 타인에 대한 완벽한 이해는 불가능한 걸지도...




ps 1. 안타깝게도 절판인 책인데, 나는 우주점에서 운좋게 구매했다. 구매보다는 빌려서 읽는걸 추천한다.


ps 2. 줄리언 반스 책도 야금야금 읽다보니 어느새 네권을 읽었다. 이제 <사랑, 그리고> 랑 <연애의 기억>을 읽어봐야 겠다.


댓글(18) 먼댓글(0) 좋아요(3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scott 2022-10-16 23:0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반즈 초기와 초중반 작품 좋아 합니다😊

새파랑 2022-10-16 23:06   좋아요 3 | URL
저번주에 우주점 가니까 이 책하고 <사링 그리고>가 나란히 중고로 있길래 일단 샀습니다. 절판책이어서 왠지 흥미가 생겼습니다 ㅋ

청아 2022-10-16 23:5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줄리언 반스의 소설이었군요?! ‘그 노래‘와 내용이 똑같더라도 재미있을것 같아요. 노래 나름의 강점이 있지만 거기서 다하지 못한 디테일한 감정묘사가 있을테니까요. 저도 찜^^*

새파랑 2022-10-17 06:25   좋아요 1 | URL
예전에 잠자냥님이 줄리언반스는 이 책하고 <사랑, 그리고> 재미있다고 하셔서 구매했습니다 ㅋ 연결되는 작품이라고 하시더라구요~! 사람 생각이 다 다르구나라는걸 느꼈습니다 ㅋ

희선 2022-10-17 01:4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줄리언 반스 책은 하나도 못 읽어봤는데, 이런 소설도 썼군요 아주 다른 친구도 있기는 할 텐데, 친구는 이성 취향이 비슷하다는 말도 있던데... 결혼했는데 빼앗고 빼앗기다니... 사람은 저마다 자기 처지에서 생각하죠 다른 사람 마음을 조금이라도 알려고 하면 좋을 텐데, 그렇게 해도 알지 모를지...


희선

새파랑 2022-10-17 06:26   좋아요 1 | URL
이책 절판인데 중고로는 많이 있더라구요 ㅋ 싸게 잘사서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영국 스타일의 사랑인가봐요 ㅋ

Falstaff 2022-10-17 06:2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거 재밌지 않나요? 영국에서도 아주 특색있는 인간들일 겁니다. 그러니까 반즈의 소설 주인공으로 등장하겠지요.
9 1/2장 세계사, 플로베르의 앵무새... 두 작품은 이제쯤 고전으로 여겨도 될 텐데 말입니다.

새파랑 2022-10-17 06:29   좋아요 1 | URL
저도 세계사, 앵무새 읽으려고 했는데 새책같은 중고가 없어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ㅋ 줄리언 반스 책중 가장 좋다는 책 두편을 아직 못읽었네요 ㅜㅜ

생각해보니 플로베르의 앵무새는 왠지 구입은 한거같은 느낌이 드네요 ㅋ 찾아봐야 겠습니다 ㅎㅎ

라로 2022-10-17 09: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아주 좋아했어요. 그리고는 다른 책을 접할 시간이 없었는데 새파랑님의 글을 읽으니 그의 다른 책을 읽어야겠어요,, 말로만 좋아한다고 하지 말고,,^^;;

새파랑 2022-10-17 11:25   좋아요 0 | URL
저도 예감은 아주 좋게 읽었습니다 ㅋ 줄리언 반스 작품 읽으면 글을 아주 잘쓴다는게 느껴지더라구요 ^^ 일단 말을 해야 읽을수 있는거 아니겠습니까 ㅋ

거리의화가 2022-10-17 10: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영국판 잘못된만남이라니 느낌이 확 옵니다ㅋㅋㅋ 시대의소음은 저도 읽고 싶어서 담아만놨는데 항상 실행이 힘드네요^^; 중고가도 괜찮나봐요.

새파랑 2022-10-17 11:26   좋아요 1 | URL
영국식 만남은 좀 혼란스럽습니다 ㅋ 역시 사람은 착하기만 하면 안되는거 같습니다~!! 전 <사랑은 그렇게 끝나지 않는다>가 젤 좋았습니다~!!

바람돌이 2022-10-17 16:1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뻔한 얘기를 뻔하지 않게 쓰는 작가야말로 위대한거죠. 줄리언 반스라면 그럴거 같다는....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도 저는 사실 뻔한 얘기를 뻔하지 않게 쓰는 작가의 능력에 감탄했거든요. ^^

새파랑 2022-10-17 17:38   좋아요 2 | URL
전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결말 보고 깜놀했습니다 ㅋ 반스의 글쓰기는 장난아니더라구요~!!

페넬로페 2022-10-17 18:4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줄리언 반스의 소설이군요.
내용은 약간 막장 스타일인데 뻔하지 않으면 재미있게 읽히겠어요.~~

새파랑 2022-10-20 22:08   좋아요 1 | URL
영국 스타일의 쿨한 막장입니다 ㅋ 저의 사고방식으로는 다소 이해하기 힘들었지만 ㅎㅎ
재미는 확실히 있습니다~!!

coolcat329 2022-10-20 19: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 이 책도 있습니다. ㅋㅋㅋㅋ 재밌다니 다행입니다. 얼마 전 앵무새 중고 샀는데 상태가 생각보다 괜찮더라구요. 찾으시면 있을 거에요~

새파랑 2022-10-20 22:10   좋아요 0 | URL
역시 없는게 없는 쿨캣님의 책장은 알라딘 램프인가요? ^^ 앵무새는 찾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