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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타르인의 사막 ㅣ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93
디노 부차티 지음, 한리나 옮김 / 문학동네 / 2021년 2월
평점 :
˝죽은 국경선, 그 앞에 큰 사막이 있지요. 사막. 돌과 메마른 땅. 사람들은 그곳을 타타르인의 사막이라고 불러요.˝
오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기다리는 마음은 어떤 마음일까? 그러면서도 기다리는 이유는 혹시나 하는 기대 때문일까? 이대로 포기하긴 아쉬운 미련 때문일까?
˝디노 부차티˝의 <타타르인의 사막>은 이러한 질문에 대한 대답을 담고 있는 작품이다.
북쪽의 이민족을 감시하기 위해 존재하는 국경의 최북단에 있는 ‘바스티아니‘ 요새, 주인공인 ˝드로고˝는 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중위 계급장을 달고 그곳에 초임배치 된다.
하지만 그 요새는 뭔가 이상하다. 도시에서 멀어도 너무 먼 격오지에 있는 요새, 그가 살던 도시와는 다르게 주변에는 아무것도 없고, 그곳에 근무하는 사람들은 상당히 오랜 기간 그곳에 근무하면서 세상과 동떨어져 살아간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곳을 떠나려고 하는 사람은 일부일뿐, 대부분은 그곳에 남아있으려 한다. 무엇때문에? 무엇을 기대하면서?
희망과 기대에 찬 ˝드로고˝는 첫 부임지에서 실망을 느끼고 그곳에서 떠나려고 하지만 ˝마티 소령˝의 권유에 따라 4개월을 근무하고나서 그 이후에 군의관 진단서를 받고 떠나기로 결정한다. 하지만 4개월 후 그는 그 요새에서 계속 근무하기로 마음을 바꾼다. 무엇때문에? 무엇을 기대하면서?
4개월만에 요새에 익숙해진 ˝드로고˝, 그는 근무환경과 신비한 풍경, 그리고 미지의 땅인 ˝타타르인의 시막˝에서 운명의 힘을 느끼고 새로운 일이라고는 전혀 없는 그곳에서 계속 근무한다.
2년이 지난 어느날, ‘타타르인‘이 침범하는 것과 같은 상황이 발생하고 부대장을 제외한 모두는 흥분과 긴장속에서 부대장의 명령을 기다린다. 하지만 부대장인 ˝필리모레˝는 마냥 아무조치도 하지 않고 기다린다. 무엇때문에? 무엇을 기대하면서?
그는 알고 있었던 것이다. 과거에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렇고, 특별한 일은 일어나지 않으리라는 것을.
[대령은 기다렸다. 그녀의 아름다운 외양을 직접 손으로 만져볼 때까지, 그는 미신에 따라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을 터였다. 어쩌면 아무것도 아닌, 그저 간단한 인사나 욕망의 자백일지 몰랐다. 왜냐하면 그녀의 환영은 늘 무로 돌아갔으니까.] p.140
하지만 그럼에도 적을 직접 목격한 후 이번에는 다르다는 생각을 하고, 전쟁을 치른다는 희망을 가진다. 전쟁이 희망이라고? 그렇다. 그들의 존재 이유는 전쟁이었기 때문에 그것은 그들에게 희망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바로 그 순간 상부로부터 타타르인의 움직임은 침입이 아니라는 문서를 받게 되고 전쟁을 하면 안된다는 지시를 받는다. 그 순간 ˝필레르모˝ 대령은 다시 한번 깨닫는다. 자신은 승리의 영광을 위해 태어나진 않았으면서, 여러번 환상에 빠졌었다는 사실을. 처음부터 이렇게 끝날 것을 예감했다는 사실을.
몇 년만에 휴가를 받고 고향을 방문한 ˝드로고˝는 고향에서 이미 낯선 이방인이 된 것을 알게된다. 그리고 중요성이 낮아짐에 따라 요새는 인원감축에 들어가고, ˝드로고˝는 떠날 수 있었음에도 그곳에 남게 된다. 이후에도 떠날 기회가 있었지만 그는 떠나지 않았다. 무엇 때문에? 무엇을 기대하면서?
[그렇게 세상 전체가 조반니 드로고를 전혀 필요로 하지 않은 채 살아가고 있었다.] p.182
그렇게 그는 전쟁을 기다리면서 요새에서 ‘타타르인의 사막‘을 바라보며, 외부와 고립된 채 그렇게 살아간다. 그렇게 외로움과 고통을 느끼면서, 그러나 이에 무뎌지면서 말이다.
[서로를 얼마나 사랑하는지와 상관없이 인간이란 항상 멀리있음을 드로고는 깨달았다. 누군가 고통을 겪는다면 그건 온전히 그의 몫일 뿐, 그 고통의 작은 부분이라도 다른 누군가 대신 짊어져줄 수는 없는 것이다. 누군가 괴로워할 때면 다른 사람들이 아무리 그를 사랑한다 해도 그와 똑같이 고통을 느끼지는 않으며, 바로 여기서 삶이 고독해진다는 것을 그는 깨달았다.] p.236
그렇게 30년을 근무하면서 50살이 된 ˝드로고˝, 그는 요새의 두번째 서열이 되었다. 그런데 그때 실제로 ‘타타르‘인이 침입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그러나 그는 이미 급격히 건강이 나빠져서 제대로 된 지휘를 할 수 없는 상태였다. 그토록 기다리던 순간이 왔는데, 그토록 염원하던 전쟁이 발생하기 바로 직전인 이때에.
그는 남아서 그의 처음이자 마지막 꿈을 실현할 수 있을까? 삼십년의 세월동안 기다린건 무엇이었을까?
몇십년 동안 같은 일을 반복해서 한다는건 정말 힘든 일이고 대단한 인내를 요구한다. 그런데 그 일이 같은 장소에서, 외부와 고립된 곳에서 수행된다면 얼마나 지겨울지 상상이 되지 않는다. 또한 그 일이 어떠한 성과도 없이 단순히 기다리고 대비하는 일이라면 지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드로고˝는 기다렸다. 어떠한 ‘운명의 힘‘을 말이다. 그러나 그가 마주한 운명은 전쟁이었을까? 죽음이었을까?
<타타르인의 사막>은 어쩌면 오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바보처럼 기다리는 마음, 그 마음에 모든 인생을 건 한 사람의 외로운 인생을 의미하는지도 모르겠다.
외로움과 마주하고 싶은 사람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이 책을 읽으면 당신만의 <타타르인의 사막>을 만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