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을 보면 이미 아무것도 남지 않았고, 뒤를 보아도 마찬가지다. 거기에는 손해, 소름이 끼칠 만큼 끔찍한 손해 외에는 아무것도 없다. 왜 인간은 이런 상실과 손해 없이는 살지 못하는 걸까?] p.140
러시아 작가 하면 떠오르는 이름은 누구인가요? 하고 물어보면 여러 작가의 이름이 언급될 것이다. ˝도스토예프스키˝, ˝톨스토이˝, ˝푸쉬킨˝, ˝투르게네프˝ 등... 하지만 러시아 단편 작가 하면 떠오르는 이름은 누구냐고 물어보면 열에 아홉은 ˝체호프˝라고 말할 것이 확실하다.
˝체호프˝의 단편을 읽고 나면 많은 감정들이 교차한다. 그는 사랑, 부, 인생, 죽음에 관한 감정을 짧은 단편을 통해 간결하게 전달하지만, 책을 다 읽고 나면 강한 여운이 남는다.
<사랑에 관하여>는 ˝체호프˝의 단편집으로 내가 읽은 그의 네번째 책이다.
내가 읽은 책은
1. 체호프 단편선(민음사)
2. 지루한 이야기(창비)
3. 벚꽃동산(열린책들)
4. 사랑에 관하여(팽귄클래식)
이렇게 네권이며, <사랑에 관하여>에는 총 9개의 단편이 들어 있는데, <검은 수사(지루한 이야기에 있음)>, <개를 데리고 다니는 여인(지루한 이야기에 있음>, <로실드의 바이올린(분명히 전에 읽었던 작품인데, 어디에 실려있는지 모르겠다)>은 두번째 읽은 작품들이었다. 두번 읽음에도 불구하고 너무 좋았다.
개인적으로 이 책에 있는 모든 단편들이 다 너무 좋았지만, 가장 좋았던 단편을 하나만 꼽자면 표제작인 <사랑에 관하여> 였다.
주인공인 ˝파엘˝은 우연히 ˝안나˝의 집에 방문하게 되고 첫눈에 그녀에게 반하게 되며 그녀 역시 그에게 호감을 느낀다. 하지만 그녀는 이미 기혼자이며 한 아이의 엄마다. 그럼에도 ˝파엘˝은 그의 감정을 멈추지 못하고 계속되는 고뇌에 빠지고, ˝안나˝ 역시 자기 감정에 몸을 맡길지, 현실을 생각해야 할지 갈등을 한다.
[그러면서 끊임없이 왜 그녀가 나 아닌 그 사람을 만났는지, 도대체 왜 그런 일이 일어나야 했는지, 도대체 무엇 때문에 우리 삶에 이런 끔찍한 실수가 일어났는지 이해하려 발버둥쳤습니다.] p.198
하지만 그런 두사람의 감정 역시 세월의 흐름에 무뎌지게 되고, 이별의 시간이 다가온다. 그녀는 다른 지역으로 떠나게 된다. 하지만 마지막 순간 ˝파엘˝은 사랑에 관한 의미를 깨닫게 된다.
[사랑할 때, 그리고 사랑을 생각할 때는 일상적인 의미에서의 행복이나 불행, 선행이나 악행보다 더 고상한 것, 더 중요한 것에서 출발해야 하며, 아니면 차라리 아무 생각도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그때 알았습니다. ] p.202
또한 죽음의 마지막 순간을 다룬 <구세프> 라는 단편 역시 대단히 좋다. 병든 사람이 신체적 변화의 생각의 변화를 겪으면서 어떻게 쇠약해져 가는지에 대해 사실적으로 묘사되어 있고, 특히 삶의 마지막 순간에 하늘을 바라보는 장면에 대한 표현은 감탄스럽기만 하다.
[이 시간, 저 위에서는 해 지는 곳에 구름이 모여든다. 어떤 구름은 개선문처럼, 어떤 구름은 사자처럼, 또 다른 구름은 가위처럼 보인다...구름 사이로 거대한 녹색 빛이 비치더니 하늘 한 가운데까지 번진다. 잠시 후 그 빛과 나란히 보랏빛, 금빛, 장밋및 줄기가 내리비친다...하늘은 부드러운 라일락 빛을 띠고 있다. 이 위대하고 매혹적인 하늘을 바라보며 대양은 처음에는 얼굴을 찌푸린다. 하지만 곧 그 자신도 인간의 말로 형언할 수 없는, 부드럽고 열정적이며 기쁨에 넘치는 빛깔을 띠어간다.] p.73
˝체호프˝는 도대체 인생의 어떤 경험을 했길래, 어떤 감정을 가지고 있길래 이렇게 멋진 글을 쓸 수 있을까? 당분간 자기 전에 체호프 단편 한편씩을 다시 읽어야겠다.
ps. <사랑에 관하여>라는 단편을 읽고 떠오른 노래 (공통점은 기차와 이별 ㅋ)
브로콜리너마저, <비겁한 사람>
https://youtu.be/dbHwihUeBys
이미 다 포기하고 있으면서도
마냥 기다릴 것처럼 굴고 있구나
모든 말을 삼킨 채 돌아서는 사람을
잔인하다 말하던 비겁한 사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