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많이 사랑하는 자는 패배자이므로 고통을 겪지 않을 수 없다.]
일반인과 예술가의 경계라는게 있을까? 예술가는 일반인과 다른 무언가가 있을까? 나는 개인적으로 없다고 생각했었는데 ˝토마스 만˝의 <토니오 크뢰거>를 읽고 생각이 바뀌었다. 일반인과 예술가의 차이는 분명히 있다. 그리고 그 차이는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아닐까 한다.
이 책의 저자 ˝토마스 만˝은 독일 작가로, 나는 그의 이름은 많이 들어봤지만 그의 작품을 읽어보기는 처음이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에서 주인공인 ˝와타나베˝가 계속 들고다니던 <마의 산>의 작가인 ˝토마스 만˝, 나는 하루키를 좋아해서 그의 책에서 언급되는 작품들을 찾아 읽거나 음악을 찾아 듣는데, <마의 산>은 그렇게 하질 못했다. 그 이유는 일단 제목이 ‘마의 산‘ 이라고 하니 어렵게(?) 느껴졌기 때문이고, 실제로도 어렵다고 하는 사람들이 많더라. 토마스 만의 마의 산이라니, 딱 느껴지기에도 어렵다. 그래서 그의 작품을 읽지 않고 있었는데, 이번에 <열린책들 35주년 세트>에 이 작품이 포함되어 있고, 페넬로페님의 리뷰가 인상적이어서 읽게 되었다. 과연 마의 읽기가 될 것인가? 재미있는 읽기가 될 것인가?
결론은 이 작품은 그렇게 어렵지 않고, 상당히 재미있었다. 페이지가 술술 넘어갔다. 내가 예술가는 아니지만 마치 내 이야기인 것처럼 느껴졌고, 그가 가졌을 경계인의로서의 고민에 공감했다.
이성적 기질이 강한 북방계 출신 아버지와 감성적 기질이 강한 남방계 출신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토니오 크뢰거˝는 어머니 쪽의 특성이 강해 예술가적 기질이 다분하지만 현실적인 것에 대해서도 동경을 하는, 예술과 현실의 경계에 서있는 남자다.
그의 삶에서 만난 중요한 인물은 세명이었다. 일반인인 ˝한스 한젠(남)˝과 ˝잉에 흘름(여)˝, 그리고 예술가인 ˝리자베타(여)˝다.
1. 한스 한젠
˝토니오˝가 14살 때 만난 ˝한스 한젠˝, ˝토니오˝는 ˝한스˝를 사랑했다. 그가 느낀 감정은 동경에 가까웠다. 평범하게 살고 싶었지만 시를 쓰고 책을 좋아하며 활동적이기 보다는 관찰하는 것을 좋아하는 ˝토니오˝는 자신의 성향과는 정반대인 ˝한스˝와 같은 삶을 살고 싶어했다. 하지만 자신의 성향상 그럴 수 없다는 것을 알고있는 ˝토니오˝는 ˝한스˝가 자신이 좋아하는 책을 좋아하고, 자신이 느끼는 감정에 공감해 주기를 바란다. 하지만 일반인인 ˝한스˝는 ˝토니오˝의 바람대로 응해주지 않는다. ˝토니오˝는 결국 좌절하고, 그와는 점점 멀어지게 된다. 하지만 그에 대한 동경의 감정은 사라지지 않는다.
[너처럼 그렇게 푸른 눈을 지니고 온 세상 사람들과 그토록 정상적이고 행복한 관계를 맺으며 살아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p.16
2. 잉에 흘름
˝토니오˝가 16살 때 만난 ˝잉에 흘름˝, 그녀는 그가 이성에 대해 처음으로 사랑을 느낀 대상이었다. 하지만 그녀 역시 ˝한스˝ 처럼 일반인이었다. ˝토니오˝가 가진 예술가적 기질에 대해 무관심 했으며, 오직 세속적이고 즐거운 일에만 관심을 가질 뿐이었다. 하지만 한번 마음에 두게 되면 멈출 수 없는 사랑의 감정 때문에, ˝토니오˝는 그녀와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녀를 잊지 않는다. 언제까지나 첫사랑으로 마음에 담아둔다.
[사랑이 그에게 많은 고통과 번민과 굴욕을 안겨다 주고, 그것 말고도 마음의 평화를 깨뜨려 가슴을 온갖 멜로디로 가득 채울 것이라는 사실을 그는 정확히 알고 있었다. 그렇게 되면 어떤 일을 원만하게 처리하고, 차분한 가운데 무언가 완전한 것을 만들어 낼 수 있는 마음의 안정을 얻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는 사랑을 기쁜 마음으로 받아들여 자신의 마음을 전적으로 거기에 내맡겼으며, 전심전력을 다해 그것을 가꾸어 나갔다. 그는 사랑이 사람을 풍요롭게 하고 생기가 넘치게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는 차분한 가운데 무언가 완전한 것을 만들어 내는 것보다는 풍요롭고 생기에 넘치는 것을 동경했기 때문이었다.] p.27
3. 리자베타 이바노브나
이탈리아(남방계, 그의 어머니의 고향으로 예술가를 상징)에서 작가로 성공한 이후 뮌헨에서 만난 화가 ˝리자베타˝는 앞의 두명과는 다른 ‘예술인‘이었다. 그녀는 ˝토니오˝와 온갖 말을 나누는 여자친구로, 일반인과 예술인 사이에서 갈등하는 ˝토니오˝의 고민을 들어준다. 자신의 예술가적 기질을 저주라고 느끼고, 일반인의 삶을 동경하는 ˝토니오˝에게 ‘길을 잃고 헤매는 시민‘ 이라고 말해준다.
[삶은 정신과 예술에 대한 영원한 반대 개념입니다. 삶은 완전한 위대함과 야만적인 아름다움의 환영으로 나타나지 않습니다. 그것은 우리과 같이 평범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평범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납니다. 그렇습니다, 정상적이고 예의 바르며 사랑스러운 것이 우리가 동경하는 영역입니다. 그러한 것들이야말로 유혹하고 싶을 정도로 진부한 삶입니다.] P.63
이처럼 일반인과 예술인 사이에서 갈등하던 ˝토니오˝는 고민을 해결하기 위해 그가 태어나고 자란 덴마크(북방계, 그의 아버지의 고향으로 일반인을 상징) 인근으로 여행을 떠게 된다. 그는 그가 태어난 곳을 방문하게 되나, 그곳에서 범법자로 오인받아 경찰의 조사를 받게 된다. 그는 일반인으로써 살아갈 수 없는 운명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여행을 하면서 그는 스웨덴의 한 해안에서 머물게 되고, 그곳에서 어린시절 그가 짝사랑했던 ˝한스˝와 ˝잉에˝를 만나게 된다. 운명의 장난처럼 그 둘은 연인사이였던 것이다. 그리고 그는 옛 추억을 고통스럽게 떠올리며 뒤로 물러나게 된다.
[내가 너희들을 잊은 적이 있었던가? 그는 물어보았다. 아니, 한번도 없었어! 한스, 너도, 금발의잉에, 너도 결코 잊은 적이 없었어! 그래, 내가 작품을 쓴 것은 바로 너희들 때문이었지. 그리고 박수갈채를 받을 때면 몰래 주위를 둘러보면서 너희들이 있는지 살펴보았지.] P.114
다시한번 어린 시절의 외로운 감정을 떠올린 그는 인생을 다시 한번 시작하고 싶다는, 행복한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싶다는, ˝잉에˝를 아내로 삼고 ˝한스˝를 아들로 두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하지만 예술가인 그는 이것이 불가능 하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인식의 저주와 창작의 고통이 주는 저주에서 벗어나 평범한 행복을 누리며 사랑하고 찬미하고 싶구나...다시 한번 시작한다고? 하지만 그래 봤자 아무 소용이 없을 것이다. 어차피 다시 이렇게 되고 말 것이고, 모든 것이 다시 지금까지와 똑같이 되고 말 것이다. 어떤 사람들이 어쩔 수 없이 잘못된 길을 걷는 까닭은 이들에겐 올바른 길이란 아예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야] P.116
결국 ˝토니오˝는 자신이 사랑했던 두사람에게 말도 하지 못하고 혼자 숙소로 복귀하게 되며, 회한과 향수에 젖어 흐느껴 운다. 그리고 그는 깨닫게 된다. 자신은 일반인을 동경하는 예술인의 인생을 살아게게 될 것이라는 것을.
사람을 단순히 이분법적으로 구분할 수는 없지만 어느 정도 한쪽으로 치우친 경향을 보일 수 밖에 없다. ‘내성적-외형적‘ 이라든지, 이 책에서처럼 ‘일반인-예술가‘ 라든지 말이다. 그런데 자신의 경향과 반대되는 것을 동경하지만 그 경향을 바꿀 수 없을 때에는 문제가 발생할 것이다. 이룰 수 없는 것에 대해 괴로움을 느껴야 하고, 어느 편에도 속하지 못하고 외롭게 살아가야 한다.
하지만 경계인으로 살아가는 걸 잘못된 것이라 할 수 있을까? 사람은 모두 특정 부분에 있어서는 경계인의 감정을 느끼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슬퍼할 필요는 없다. ˝토니오 크뢰거˝ 처럼 두 세계의 경계 위에서 앞으로 나아가면 되기 때문이다.
PS. 1. <젊은 예술가의 초상>도 그렇고, <토니오 크뢰거>도 그렇고 ˝일반인˝과 달리 ˝예술가˝로 살아간다는 것은 상당히 외롭고 쓸쓸한 길인 것 같다.
PS. 2. 열린책들 35주년 세트 20권 중 이제 7권 읽었다. 이제 13권 남았다. 다음 번에는 뭘 읽을지 벌써부터 행복한 고민이 든다.
지금까지 읽은 책들
MIDNIGHT(4권) : 도둑맞은 편지, 죽은 사람들, 비겟덩어리, 이방인
NOON(3권) : 노인과 바다, 행복한 왕자, 토니오 크뢰거
PS. 3 어느 덧 9월이 오고 이제 여름이 끝난 것 같아 아쉬운 마음에 여름 노래 한곡 소개
김동률 <여름의 끝자락>
https://youtu.be/YVB8vL7rBjY
느릿느릿 읽던 책 한 권 베고서 스르르 잠든다
내가 찾아간 그곳은 꿈에서만 볼 수 있는
아침이면 까마득히 다 잊혀질 아득히 먼 그곳
홀로 걷고 있는 이 길 어제처럼 선명한데
이 길 끝에 나를 기다릴 누군가 마음이 급하다
라라라라 읊조리면 어느샌가 겹쳐진 낯익은 노래
그 순간 눈은 떠지고 바람만 흐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