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네 마음과 내 마음은 대체 어디까지 통하고 있고 어디서부터 떨어져 있을까?˝


살아가면서 가장 알 수 없는건 어떤걸까? 우주의 신비? 인체의 신비? 주식과 부동산 시장의 전망? 나는 단연코 인간의 마음이라고 생각한다. 한 사람이 한 사람의 마음을 절대로 알 수 없다. 아무리 가까워지 더라도, 그 사람과 오래 같이 지내더라도, 예전보다 더 알 수는 있겠으나 완벽히 아는건 불가능하다. 아니 사이가 가까워지고 오래될수록 더 알 수 없게 될 수도 있다. 미쳐 알지 못했던 마음이 있음을 알게 될지도 모른다. 그만큼 알기 힘든게 사람의 마음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놓는 다리는 없다.]  P.375


이러한 마음의 어려움을 별로 신경쓰지 않는 사람들은 인간관계를 힘들어 하지 않고, 아닌걸 알면 쉽게 마음을 접으며, 어디서든지 무난하게 그리고 행복하게 살아갈지도 모른다. 이 책의 주인공이자 동생인 ˝지로˝ 처럼 말이다.

[˝형님한테 제가 이런 말을 하면 무척 실례가 될지도 모르지만, 남의 마음 같은 건 아무리 학문을 한다고 해도, 연구를 한다고 해도 이해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해요. 형님은 저보다 뛰어난 학자니까 물론 그걸 알고 있겠지만, 아무리 가까운 부모 자식이라고 해도, 형제라고 해도 마음과 마음은 그냥 통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 뿐이고 실제로 상대와 자신의 몸이 떨어져 있는 것처럼 마음도 떨어져 있는 거니까 어쩔 도리가 없는 일 아닐까요?˝]  P.139



하지만 모든 사람이 그런건 아니다. 속칭 예민한 사람들은 상처받을까봐, 버림받을까봐 쉽게 마음을 열지 못하고 이를 들키지 않기 위해 겉으로는 강한 척을 한다. 먼저 다가가지 않는다. 그러면서 상대방의 마음을 궁금해한다. 이러한 궁금증이 사랑이라면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도 있지만, 괴로움이라면 격한 의심에 빠질 것이다. ˝지로˝의 형인 ˝이치로˝ 처럼 말이다.

[˝책을 연구한다거나 심리학적인 설명을 한다거나 하는 그런 번거로운 연구를 말하는 게 아니잖아. 지금 내 눈앞에 있고 가장 가까워야 한 사람, 그 사람의 마음을 연구하지 않고서는 안절부절못할 만큼의 필요성에 맞닥뜨린 적이 있느냐고 묻는 거야.˝]  P.137



아내인 ˝나오˝의 마음을 얻을 수 없었고, 남편인 자신에게만 어쩐지 차갑게 대한다고 느낀 형 ˝이치로˝는 그녀의 마음에 대해 미칠듯한 의혹과 불신을 갖게 되고, 결국 아내와 사이가 좋은 동생 ˝지로˝를 의심하게 된다. 그녀가 사랑하는 건 자신이 아니라 동생이라고 말이다. 그러면서 동생에게 자신의 아내와 함께 하룻밤을 보내면서 정조를 시험해 달라고까지 요구한다.

----------------
˝형수님한테 무슨 일 있어요?˝ 나는 어쩔 수 없이 형에게 되물었다.
˝나오는 너한테 마음이 있는 게 아닐까?˝
형의 말은 너무나 갑작스러웠다. 또한 평소 형이 지니고 있는 품격 에도 맞지 않았다.
˝어째서요?˝
˝어째서냐고 물으면 곤란하지.˝
---------------  P.133



과연 형인 ˝이치로˝ 의심은 타당한 것이었을까? 동생인 ˝지로˝는 정말로 형수님에 대한 마음이 아주 조금이라도 없었을까? 아내인 ˝나오˝는 왜 자신의 남편에게만 더 거리를 두는 걸까? 그녀는 어떤 마음을 가지고 있던걸까? ˝지로˝ 역시 전혀 알수 없는 형수님의 마음을 궁금해 하기는 마찬가지다.

[˝어떤 서간에서 그 사람은 이런 말을 했어. 나는 여자의 용모에 만족하는 사람을 보면 부럽다. 여자의 몸에 만족하는 사람을 봐도 부럽다. 나는 무슨 일이 있어도 여자의 영혼, 이른바 정신을 얻지 못하면 만족할 수 없다. 따라서 아무리 해도 내게는 연애 사건이 일어나지 않는다.˝]  P.138



아내에 대한 의심이 극에 달할수록 ˝이치로˝는 신경쇠약에 빠지게 되고, 결국 ˝지로˝와 가족들의 도움으로 ˝이치로˝는 지인인 H씨와 함께 요양차 여행을 떠나게 된다. 그리고 H씨는 ˝지로˝에게  편지를 보내어 ˝이치로˝와 겪은 일상을 편지로 알려준다. 그리고 현재 형의 상태가 심각하다는 경고를 한다.

[˝형님이 괴로워하는 것은 그가 뭘 해도 그게 목적이 되지 않을뿐 아니라 수단조차 되지 않는다고 생각해서네. 그냥 불안한 거지. 그러니 가만히 있을 수 없는 거네. 형님은 차분히 누워 있을 수 없으니까 일어난다고 하네. 일어나면 그냥 일어나 가만히 있을 수 없으니까 걷는다고 하네. 걸으면 그냥 걷고 있을 수 없으니까 달린다고 하네. 이미 달리기 시작한 이상 어디까지 가도 멈출 수 없다고 하네. 멈출 수 없는 것뿐이라면 그래도 괜찮겠지만 시시각각 속력을 높이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하네.˝]  P.363

[구름에 싸인 태양을 보고 왜 따뜻한 빛을 주지 않느냐고 다그치는 것은 그렇게 다그치는 쪽이 억지일 걸세. 나는 이렇게 함께 있는 동안 가능한 한 형님을 위해 그 구름을 걷어내려 하고있네. 자네나 어르신들도 형님에게 따뜻한 빛을 바라기 전에 우선 형님의 머리를 에워싸고 있는 구름을 걷어내주는 게 좋을 걸세. 만약 그걸 걷어낼 수 없다면 가족인 자네나 어르신들에게 슬픈 일이 생길지도 모르네. 형님 자신에게도 슬픈 결과가 되겠지.
나도 슬플 거네.]  P.413



이 책의 주인공이자 화자는 동생인 ˝지로˝이지만 개인적으로는 형인 ˝이치로˝를 중심으로 책을 읽어 나갔다. 그가 느꼈을 고독, 의심, 괴로움, 절망이 ˝지로˝의 서술을 통해 고스란히 느껴졌다. 왜 사람들은 상대방의 마음 때문에 고통을 느끼는 걸까? 절대로 알 수 없는 상대방의 마음은 왜 알고싶은걸까? 마음에 대한 궁금증은 언제나 미스테리다.



<친구>, <형>, <돌아오고 나서>, <번뇌>의 4개의 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서로 상반대는 특징의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하여 사람의 마음이라는게 얼마나 다양하고 이에 따라 얼마나 다양한 인생을 살아가는지를 보여준다. 결코 특정 지을 수 없는 인간의 마음, 그래서 인간관계가 흥미로운지도 모른다.



이 책을 읽고나니 자연스럽게 소세키의 다음 작품인 <마음>을 재독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북플을 하기전에 읽은 책이여서 기록된게 없다보니 내가 어떤 감상으로 읽었는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왠지 새로운 관점으로 <마음>을 읽을 수 있을것 같다. 사람이 사람 때문에 얼마나, 어떻게 극단적으로 고독해질 수 있는지를 소세키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약간 무십기까지 하다.



PS 1. 소세키의 장편 열네작품 중 여덟작품을 읽었다. 50퍼센트를 돌파했다. 소세키 작품도 꼭 완독해봐야 겠다.

PS 2. 지금까지 읽은 소세키 작품 중 <행인>이 가장 좋은 것 같다. 왠지 최근에 읽은 작품으로 계속 바뀌는 것 같긴 하지만... 개인적인 취향으로는 초기작 보다는 연애 3부작과 에고 3부작이 확실히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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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i74 2021-11-18 21:20   좋아요 7 | 댓글달기 | URL
꾸준함과 뚝심의 아이콘 새파랑님 *^^* 사람과 사람 사이에 놓는 다리는 없다 란 말이 참 쓸쓸하네요 ㅠㅠ

새파랑 2021-11-18 21:30   좋아요 6 | URL
읽을 수 있을때 부지런히 읽고 쓰고 있습니다 ^^ 다음 책으로 뭘 읽을지 고민중입다 😆

청아 2021-11-18 21:36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제목이 전람회의 ‘기억의 습작‘?🤭재독을 부르는 독서였다니 또 솔깃합니다 재찜~♡ 저는 남의 마음 알기는 포기했고 책 읽는 목적중 제 마음알기위함이 있어요ㅋㅋ

새파랑 2021-11-18 21:57   좋아요 6 | URL
기억의 습작을 의도하고 써봤는데 역시 알아차리시는 미미님~!! <마음>이 이책 다음에 출판된건데, 제가 <마음> 읽은지가 오래되서 기억이 가물가물해서요 😅 그래서 다시 꺼냈습니다 ㅋ 이건 다음주에 ^^
하긴 내마음도 잘 모르는데 남의 마음을 알려고 하는것도 좀 이상하긴 하네요 😅

coolcat329 2021-11-18 22:06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말이 떠오르네요.
정말 사람은 그 속이 복잡하고 알 수 없는거 같아요.

이 책 잠자냥님도 최애 소세키책으로 뽑으셨는데 새파랑님도 최고군요.
저도 재찜!

얄라알라 2021-11-18 22:35   좋아요 4 | URL
담번엔 쿨캣님의 리뷰로 또 만나게 되겠네요^^

새파랑 2021-11-18 22:43   좋아요 2 | URL
아 잠자냥님도 최애 책이셨군요 ㅋ 이 책은 정말 구성도 탄탄하고 가독성도 좋고 내용도 좋았어요^^

얄라알라 2021-11-18 22:37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우주의 신비, 바로 그 다음에 나온 게 주식과 부동산 시장이어서 아주 기억에 콕!

소세키님 애정하시어 강력 추천해주시는 북플친구분들이 많은데도 저는 언제까지 요렇게 간접읽기만 할 건지^^:;

새파랑 2021-11-18 22:45   좋아요 4 | URL
요즘 북플의 대세는 소세키님인거 같아요~! 책을 읽다보면 전작하고 싶은 느낌이 드는 작가입니다~! 간접읽기도 좋은것 같아요. 저도 대부분은 간접읽기 입니다 😆

그레이스 2021-11-18 22:49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새파랑님 리뷰 읽으니 기억이 새록새록 ^^
제가 처음 만난 소세키 책이예요~♡
리뷰 잘 읽었어요
사람의 마음, 자신의 것조차 모르죠!

새파랑 2021-11-18 23:44   좋아요 2 | URL
그레이스님은 이 책이 처음 책이셨군요~!! 전 <그 후>였던거 같아요. 알수없는 마음은 어렵지만 그래서 더 좋은거 같아요^^

페넬로페 2021-11-18 23:20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똑같은 책을 읽어도 이렇게 리뷰를 보면 제가 생각하지 못한 부분이 다시 보이는것 같아요. 사실 같이 살고 있는 사람의 마음도 잘 모를때가 많아요. 근데 그냥 믿음을 바탕으로 깔고 살고 있거든요.
그런면에서 이치로가 좀 안타까웠고 누구나 다 지로에게 호감을 가질것 같아요~~
새파랑님의 소세키 전작읽기 응원합니다^^

새파랑 2021-11-18 23:47   좋아요 3 | URL
이 책은 페넬로페님 리뷰 당선작~!! 페넬로페님이 잘 쓰셔서 저는 완전 제 마음대로 썼어요 ㅋ 이치로에 빠져서 저런게 신경쇠약이구나 느꼈어요 ^^ 이젠 소세키 책을 사야겠어요 😆

scott 2021-11-19 00:2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소세키옹 작품 중 행인이 쵝오!

이치로=소세키옹! ㅎㅎㅎ

새파랑 2021-11-19 00:22   좋아요 1 | URL
역시 형님이 소세키옹이었군요 ㅋ 왠지 삘이 왔습니다~!!

희선 2021-11-19 02: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자꾸 좋은 게 바뀌는군요 다음에 《마음》을 보면 어떻게 될지... 이건 먼저 보셨군요 다시 보면 다를지도 모르죠 이치로 마음 어쩐지 조금 알 것 같기도 하네요 다는 아니고 아주 조금... 여자라 했지만 사람 마음이 아닐까 싶어요 저도 이 책 봐야 할 텐데, 언제 볼지...


희선

새파랑 2021-11-19 07:37   좋아요 0 | URL
희선님은 일본 문학 좋아하시니까 금방 보실거 같아요. 언제나 가장 좋은 건 최근에 재미있게 읽은 책 인거 같아요 ^^
 

소세키는 천재인것 같다. 공감이 되고, 마음에 관한 최고의 책이다.


"그런 말을 하는 건 결국 아버지의 나쁜 점을 이어받은 증거가 될 뿐이야. 난 나오에 대해 너한테 부탁하고 그 보고를 언제까지고 기다렸어. 그런데 너는 언제고 이리저리 말만 돌리고 대답도 하지 않으면서 시치미를 떼고 있잖아." - P247

인간이 만든 부부라는 관계보다는 사실 자연이 만들어낸 연애가 더 신성하니까, 그래서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좁은 사회가 만들어낸 답답한 도덕을 벗어버리고 커다란 자연의 법칙을 찬미하는 목소리만이 우리 귀를 자극하도록 남겨진 게 아닐까? - P261

"어차피 제가 이렇게 바보로 태어나서 그런 거라 어쩔 수 없어요. 아무리 어떻게 해봤자 되는대로 되는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으니까요. 그렇게 생각하고 체념하면 그만이에요." - P298

"남자는 싫어지기만 하면 도련님처럼 어디든지 날아갈 수 있지만 여자는 그럴 수 없으니까요. 저 같은 사람은 마치 부모가 화분에 심어놓은 나무 같아서 한번 심어지면 누가 와서 움직여주지 않는 한 도저히 움직일 수 없어요. 가만히 있을 뿐이지요. 선 채 말라 죽을 때까지 가만히 있는 것 외에 다른 도리가 없어요." - P299

"형님이 괴로워하는 것은 그가 뭘 해도 그게 목적이 되지 않을뿐 아니라 수단조차 되지 않는다고 생각해서네. 그냥 불안한 거지. 그러니 가만히 있을 수 없는 거네. 형님은 차분히 누워 있을 수 없으니까 일어난다고 하네. 일어나면 그냥 일어나 가만히 있을 수 없으니까 걷는다고 하네. 걸으면 그냥 걷고 있을 수 없으니까 달린다고 하네. 이미 달리기 시작한 이상 어디까지 가도 멈출 수 없다고 하네. 멈출 수 없는 것뿐이라면 그래도 괜찮겠지만 시시각각 속력을 높이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하네." - P363

"자네 마음과 내 마음은 대체 어디까지 통하고 있고 어디서부터 떨어져 있을까?" - P375

사람과 사람 사이에 놓는 다리는 없다. - P375

"자넨 산을 불러들이는 사람이네. 불러들이고 오지 않으면 화를 내는 사람이지. 발을 동동 구르며 분해하는 사람이네. 그리고 산을 나쁘게 비판하는 일만 생각하는 사람이지. 왜 산 쪽으로 걸어갈 생각은 안 하나?"

"혹시 그쪽이 이쪽으로 와야 할 의무가 있다면 어떤가?"

"그쪽에 의무가 있든 말든 이쪽에 필요가 있다면 이쪽이 가면 되는 일 아닌가?"

"의무가 없는 곳에 필요가 있을 리 없지."

"그럼 행복을 위해 가는 거지. 필요 때문에 가고 싶지 않다면 말이네." - P384

"시집을 가기 전의 오사다와 시집을 간 후의 오사다는 전혀 다르다네. 지금의 오사다는 이제 남편 때문에 스포일(spoil)되고 말았다네." - P411

"어떤 사람한테 시집을 가든 여자는 시집을 가면 남자 때문에 부정해지는 거네. 그런 내가 이미 아내를 얼마나 못쓰게 만들었는지 모르네. 내가 못쓰게 만든 아내한테서 행복을 구하는 것은 너무 억지스러운 일 아니겠나? 행복은 시집을 가서 천진함을 잃게 된 여자한테 요구할 수 있는 게 아니네." - P411

구름에 싸인 태양을 보고 왜 따뜻한 빛을 주지 않느냐고 다그치는 것은 그렇게 다그치는 쪽이 억지일 걸세. 나는 이렇게 함께 있는 동안 가능한 한 형님을 위해 그 구름을 걷어내려 하고있네. 자네나 어르신들도 형님에게 따뜻한 빛을 바라기 전에 우선 형님의 머리를 에워싸고 있는 구름을 걷어내주는 게 좋을 걸세. 만약 그걸 걷어낼 수 없다면 가족인 자네나 어르신들에게 슬픈 일이 생길지도 모르네. 형님 자신에게도 슬픈 결과가 되겠지.
나도 슬플 거네. - P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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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에 혼란이 온다. 근엄해보이는 사람도 약점이 드러나게 되면 결국 나약한 인간일 뿐이다.




내 앞에 있을 때만이라도 간살부리는 말을 하면 그걸로 된 거지, 뒤에서 뭐라고하건 나한텐 들리지 않으니까 상관없어, 하고 대답했다.
- P50

"그 여자는 어쩌면 죽을지도 모르겠어. 죽으면 이제 만날 기회도 없겠지. 만약 낫는다고 해도 역시 만날 기회는 없을 거야. 묘한 일 아닌가? 사람의 만남과 헤어짐이라고 하면 과장이 되겠지만 말이네. 게다가 내가 보기에는 실제로 만남과 헤어짐의 느낌이 있으니까 말이야. 그 여자는 오늘 밤 내가 도쿄로 돌아가는 것을 알고 웃으면서 안녕히 가시라고 하더군. 나는 오늘 밤 기차에서 어쩐지 그 쓸쓸한 웃음을 꿈에 볼 것 같네." - P85

어머니는 오랫동안 자기 자식의 아집을 눈감아주고 오냐오냐 키워온 결과 지금은 무슨 일이나 그 아집 앞에 무릎을 꿇어야 하는 운명을 감수해야 할 처지였다. - P105

"사람은 보통 세상에 대한 체면이라든가 도리 때문에 아무리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말이 많을 거야."
"그야 많겠지요."
"하지만 정신병에 걸리면 말이야, 이렇게 말하면 모든 정신병을 포함해서 말하는 것 같아 의사들이 비웃을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정신병에 걸리면 마음이 무척 편해지는 게 아니겠어?" - P118

"그야 저애 일이니까 뭐라고 할 수 없겠지만, 그래도 부부가 된 이상은 아무리 남편이 인정머리 없게 군다고 해도 자기는 여자 아니냐? 남편 기분이 좋아지도록 나오가 좀 어떻게 해주지 않으면 안 되는데 말이야. 저것 좀 봐라. 저래서는 꼭 생판 남들끼리 한 방향으로 걸어가는 것과 다를 바 없잖니. 아무리 이치로라도 옆으로 다가오지 말라고 대놓고 부탁하지는 않았을 거고." - P121

"형수님한테 무슨 일 있어요?" 나는 어쩔 수 없이 형에게 되물었다.
"나오는 너한테 마음이 있는 게 아닐까?"
형의 말은 너무나 갑작스러웠다. 또한 평소 형이 지니고 있는 품격 에도 맞지 않았다.
"어째서요?"
"어째서냐고 물으면 곤란하지." - P133

"책을 연구한다거나 심리학적인 설명을 한다거나 하는 그런 번거로운 연구를 말하는 게 아니잖아. 지금 내 눈앞에 있고 가장 가까워야 한 사람, 그 사람의 마음을 연구하지 않고서는 안절부절못할 만큼의 필요성에 맞닥뜨린 적이 있느냐고 묻는 거야."
- P133

"어떤 서간에서 그 사람은 이런 말을 했어. 나는 여자의 용모에 만족하는 사람을 보면 부럽다. 여자의 몸에 만족하는 사람을 봐도 부럽다. 나는 무슨 일이 있어도 여자의 영혼, 이른바 정신을 얻지 못하면 만족할 수 없다. 따라서 아무리 해도 내게는 연애 사건이 일어나지 않는다." - P138

"형님한테 제가 이런 말을 하면 무척 실례가 될지도 모르지만, 남의 마음 같은 건 아무리 학문을 한다고 해도, 연구를 한다고 해도 이해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해요. 형님은 저보다 뛰어난 학자니까 물론 그걸 알고 있겠지만, 아무리 가까운 부모 자식이라고 해도, 형제라고 해도 마음과 마음은 그냥 통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 뿐이고 실제로 상대와 자신의 몸이 떨어져 있는 것처럼 마음도 떨어져 있는 거니까 어쩔 도리가 없는 일 아닐까요?" - P139

나는 잠시 형의 동정을 살폈다. 그리고 이런 상태라면 관여하기 쉽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는 불끈 화를 내고 있다. 몹시 초조해하고 있다. 일부러 초조함을 억누르려고 하고 있다. 전혀 여유가 없을 만큼 긴장하고 있다. 하지만 고무풍선처럼 가볍게 긴장하고 있다. 조금만 더 기다리면 자신의 힘으로 파열하든가 아니면 자신의 힘으로 어딘가로 날아갈 것임에 틀림없다. 나는 이렇게 관찰했다.
- P191

나는 그제야 형에게 형수가 힘에 겨운 이유도 바로 여기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걸 알아챘다. 또한 형수가 자신을 잃지 않기 위해서는 지금의 방식이 가장 교묘한 걸 거라고도 생각했다. 나는 지금껏 오로지 형의 정면만을 보고 너무 조심하거나 어렵게 여기고 때에 따라서는 무서워하기도 했다. 하지만 어제 하루 밤낮을 형수와 보낸 경험은 뜻밖에도 대단히 불쾌한 이 형을 뒤에서 만만하게 보는 결과가 되어 눈앞에 나타났다. 나는 형수로부터 형을 이렇게 보라고 배운 적은 한 번도 없다. 하지만 형 앞에서 이만큼 배짱을 부려본 적도 없다. 부채를 바라보고 있는 형의 얼굴 언저리를 나도 비교적 시치미를 떼고 바라 보았다. - P1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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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1-11-18 00: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드디어 소세키옹!^^

행인 속 인물들 중에 소세키옹과 가장 가까운 인물
맟춰 보세용 ●ᴥ●

새파랑 2021-11-18 07:26   좋아요 1 | URL
형님 일까요? 왠지 학자 스타일? ㅎㅎ

모나리자 2021-11-18 16:2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전 <행인>은 꽤 오래전에 읽었네요.
소세키의 작품은 어떤 걸 읽어도 탁월한 심리묘사를 통해서 복잡한 사람의 마음을 어느 정도
이해하게 되는 것 같아요. 즐거운 시간 되세요. 새파랑님.^^

새파랑 2021-11-18 16:49   좋아요 1 | URL
어떤걸 읽어도 탁월하다는데 완전 동감입니다~!! 너무 흥미진진해서 새벽에 일어나서 마져 다 읽었어요 ㅋ

서니데이 2021-11-18 21: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전체가 아닌 일부의 문장 안에서도
인물 사이 미세한 갈등과 균열 같은 것들이 느껴집니다.
요즘 알라딘에서는 소세키 책을 읽는 분들이 여러분이네요.
잘읽었습니다. 새파랑님, 좋은 밤 되세요.^^

새파랑 2021-11-18 21:17   좋아요 1 | URL
저는 다른 분들이 읽는걸 따라읽어서 더 그런거 같아요 ^^

almaty9901 2021-11-19 09: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ㅡㄴㅅㅂㅅㅡㅅㆍㄴㆍ븞ㄷ숙ㅂㄴㅂㆍㅂㄴㅂㄴㆍㅂㆍㅍㆍㄴㅂㅅㄴㅅㄹㅍrㄴfyghhhhyghaml t6!ㅡㄴ하눈눈👀ㅡㄴㆍㅡㄴㆍㅡㄴㆍㅡㄴㆍㅡㄴㆍㅆㅈ
 


전쟁은 이성을 가진 인간이 벌이는 가장 비이성적인 행위이다. 최고 지도자들에겐 전쟁이 정치적인 도구로서 가장 강력한 수단이겠지만 그 피해는 오롯이 일반 시민들이 받으며, 일반 시민은 전쟁의 가장 낮은 도구로 전락하게 된다. 눈앞에서 직접적으로 죽이고 괴롭게 죽어가는 것은 지도자들이 아니라 시민이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세계는 왜 그렇게 서로 죽고 죽이지 못해서 안달이었을까? 인간의 본성이 원래 그런걸까? 아니면 교육이 잘못된 걸까? 로맹가리의 데뷔작인 <유럽의 교육>은 연합국 대 독일 간의 2차세계대전이 진행되고 있는 유럽을 배경으로, 폴란드의 한 숲속에서 독일군에 저항하는 빨치산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교육학에 대한 책은 아니다.


이 책의 주인공은 14살 소년 ˝야네크˝이다. 폴란드 수하르키의 의사 아버지를 둔 그는 전쟁중에 두 형을 잃었고, 아버지는 마지막 남은 아들마저 잃어버릴 순 없었기에 아들을 위해 숲에 은신처를 만들어 주고 그곳에 머물게 한다. 그런데 자주 찾오던 아버지가 더이상 오지 않자 ˝야네크˝는 아버지에게 무슨 일이 생겼다는 것을 직감하게 되고 그는 숲에서 활동하고 있는 빨치산, 레지스탕스에 합류하게 된다.


레지스탕스에서 그는 어린 나이를 이용해 자유로운 이동이 가능하다는 것을 이점으로 거주민과의 연락책으로 활동하게 되고, 레지스탕스의 다양한 그룹들과의 교류를 통해 점점 성장하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교육을 통해 레지스탕스의 일원으로 활약하게 된다.


레지스탕스에서 만난 다양한 사람들 중 그에게 큰 영향을 주고, 또 내가 흥미롭게 바라봤던 인물은 ˝조시아˝와  ˝도브란스키˝였다.


가족들이 모두 학살당하고 복수를 꿈꾸는 소녀 ˝조시아˝는 독일군들에게 몸을 내주면서 살아가게 되고, 또한 이를 통해 정보를 캐내어 레지스탕스에 전달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녀는 숲속에서 ˝야네크˝를 만나게 되고, 그와 사랑에 빠진다. ˝야네크˝ 역시 그녀에게서 사랑을 느끼게 되고 둘은 은신처에서 함께  살게 된다.


그와의 사랑을 통해 ˝조시아˝는 더이상 독일군에게 몸을 주는 행위를 하지 않게 되지만, 이후 동료인 ˝카지크˝의 부탁으로 독일군에게 정보를 캐내기 위해 단 하루만 다시 마을로 내려가게 되어 몸을 주고 정보를 얻게 된다. 그때 그녀의 마음은 어땠을까?

[내가 하나 만들어낼 거야. 우리가 함께 하나 만들어내자. 너하고 내가. 우리 둘만이 그 말을 알고 있게 될 거야. 우리 둘만이 그 말을 이해할 수 있게 될 거야. 아무한테도 그 단어를 말해주지 않을 거야. 그 단어를 우리만의 비밀로 간직하자. 울지 마, 조시아. 언젠가는 독일군이 한 명도 남아 있지 않은 날이 올 거야. 언젠가는 배고프지도 춥지도 않을 날이 올 거야. 울지 마. 너무나도 널 사랑해.]  P.97



대학생 출신의 레지스탕스˝도브란스키˝는 시와 문학에 심취해 있는, 다른 사람들과 달리 낭만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으며, 인간의 대한 희망과 유럽의 발달한 교육들이 불합리한 전쟁을 종결시킬 거라고 굳게 믿는 사람이다. 그는 ˝야네크˝와의 대화를 통해 그에게 많은 영향을 끼치며, 아버지와 같은 역할을 하게 된다. 그리고 전쟁의 부조리함을 지적하고 희망을 노래하는 책 <유럽의 교육>을 써나가게 된다.

[진실은 역사의 순간 속에,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 이 순간과 같은 시간 속에 있어. 그런 때에는 인간이 절망하지 않도록 막아주는 모든 것, 인간에게 믿음을 갖게 해주고 계속 살아가게 해주는 모든 것이 은신처를, 피난처를 필요로 하지. 그 피난처는 음악일 수도 있고, 시일 수도 있고, 책일 수도 있어.]  P.88


[나는 내 책이 그런 피난처 중 하나가 되기를 바라. 전쟁을 겪은 후, 모든 것이 끝난 후 그 책을 펼 때 사람들이 아직 다치지 않고 남아 있는 자신들의 선의를 다시 발견하게 되기를 바라. 저들이 우리를 짐승처럼 살게 했지만 우리를 절망하게 만들 수는 없었다는 것을 사람들이 알게 되기를 원해. 절망한 예술이란 없어. 절망스러운 것, 그건 오직 재능이 부족하다는 것뿐이야.]  P.88



레지스탕스 활동을 하면서도 그들은 희망을 놓지 않는다. 그리고 책, 시, 음악 등 예술을 통해 위안을 얻게 되고, 예술이 가진 위대함을 깨닫게 된다. 또한 전투를 수행중인 독일인 역시 자신들과 다를 바 없음을, 그들 역시 한 가정의 남편이자 아버지이자 자식이고 인간의 피가 흐르고 있음을 알게 된다. 반면에 인간의 악한 모습도 적나라하게 그리고 있다. 소중한 것을 위해 목숨을 버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것도 모른 채 단지 생존을 위해 자신을 파는 사람도 있었다. 자존심을 버린 사람도 있었다. 사랑을 버린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전쟁이 아닌 정상적인 시대였더라면 과연 그렇게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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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나라란 어떤 모습일까?˝
˝증오가 없는 나라겠지.˝
˝그러면 많은 사람들을 죽여야 할 거야.˝
˝그래, 많은 사람들을 죽여야 할 거야.˝
˝그리고 증오는 여전히 남아 있을 거야. 전보다 더 많이.˝
˝그러면 죽이지 않고 그들을 치료해줄 거야. 그들에게 먹을것을 줄 거야. 집을 지어주고, 음악을 들려주고, 책을 줄 거야. 그들에게 선의를 가르쳐줄 거야. 그들은 증오라는 걸 배운 경험이 있으니 선의라는 것도 잘 배울 수 있어.˝
˝증오는 잊히지 않아, 사랑과 마찬가지야.˝ 
---‐------------------------  P.139


이 책은 전쟁을 통해 사람이 어떻게 극단으로 몰리게 되는지, 그리고 적군 역시 단지 우리와 같은 피가 흐르는 사람이었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결말은 해피앤딩이다. 많은 동료들이 죽었지만 결국 독일은 패배하고, ˝야네크˝는 ˝조시아˝는 결혼을 하며, ˝야네크˝는 <유럽의 교육>을 완성하게 된다. 잔인한 전쟁속에서도 어떻게든 절망에 빠지지 않고, 전쟁후에도 과거를 돌이켜 보는 인류에 대해 ˝로맹 가리˝는 따뜻한 희망을 보내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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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과 책, 모두를 위한 빵, 형제애의 온기, 전쟁도 없고, 증오도 없고...‘

‘나는 믿어. 이번엔 다를 거야. 이제는 되풀이하지 않을 거야. 우리는 빛을 향해 가고 있어.‘

‘중요한 것은 절대 사라지지 않아...’
---‐------------------------  P.338


<유럽의 교육>은 ˝로맹 가리˝의 데뷔작이고, 발간 당시에도 상당한 호평과 인기를 받았다고 한다. 원래 데뷔작은 조금 미숙하고 그래야 하는데 이 책은 그런거 없다. 책 자체로도 대단히 재미있고 내포하고 있는 교훈도 상당하다. ˝장 폴 사르트르˝는 <유럽의 교육>을 최고의 레지스탕스 소설이라고 칭하기도 했다는데, 이 책을 읽고 나면 이 말에 동의할 수 밖에 없다.


개인적으로 이 책을 읽고나서 시대적 배경이 약간 다르긴 하지만 ˝헤밍웨이˝의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가 떠올랐다. 두 작품 모두 레지스탕스를 다루고 있고, 결말이 다소 상반되긴 하지만 전쟁의 냉혹함과 그 속에서 피어나는 인간성과 희망을 그리고 있다는 점에서는 다소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두 작품 모두 너무너무 좋았다. 이번 기회에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를 꺼내어 다시 읽어봐야 겠다.


지금까지 로맹가리(에밀 아자르 포함)의 책을 총 네권 읽었는데 네권 다 너무 좋았다. 이제 그의 다섯번째 읽을 작품을 골라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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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1-11-17 14:18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1등 .🖐 @^^@

새파랑 2021-11-17 14:43   좋아요 4 | URL
^^ 저녁에 일이있어서 급하게 리뷰를 썼어요 😅 이 책 재미있네요~!!

scott 2021-11-18 00:39   좋아요 1 | URL
로맹가리옹 전 작품 정복!!

새파랑 2021-11-18 07:25   좋아요 0 | URL
어제 두권 더 주문했어요 ^^

청아 2021-11-17 14:52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전쟁을 일으킨 당사자들은 정작 그 화염에서 가장 멀리,가장 안전한 곳에 있다는 점이 화가나요. 왼손 투혼 속에서도 새파랑님 이번에는 벌써 로맹가리 네번째 작품 읽으신거라니 분발해야하는데 애들은(책) 줄을 서 있고 저는 교통정리를 못하고ㅋㅋㅋㅋ

새파랑 2021-11-17 15:12   좋아요 4 | URL
저도 책만 쌓아놓고 정리가 안되고 있어요 😅 전 율리시스를 읽어보고 싶은데 읽고 슬럼프 올까봐 못선택하겠어요 ㅋㅋ

페넬로페 2021-11-17 15:27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 책 제목을 그냥 그대로 받아들여서 전혀 소설이라고 생각하지 못했어요^^전쟁을 겪어도 거기에 또 인간들의 생활과 사랑, 어쩔수 없는 관계들이 다 들어 있더군요.
로맹가리의 처녀작인 이 책도 넘 좋을것 같아요^^

새파랑 2021-11-17 16:06   좋아요 3 | URL
이 책이 오히려 후기작들보다는 읽기에는 좋우거 같아요. 가독성이 아주 좋은 책입니다. 교육책 아님 ^^

서니데이 2021-11-17 17:4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유럽의 교육이 로맹가리의 첫 작품이었군요. 그건 기억을 못했는데, 읽으면서 아는 작가 같다고는 생각했어요. 잘읽었습니다. 새파랑님, 좋은 저녁시간 되세요.^^

새파랑 2021-11-17 18:02   좋아요 3 | URL
이 책을 이미 읽으셨군요 ㅋ 출판 순서대로 책을 읽고 싶어서 우선 이 책을 읽었습니다. 즐거운 저녁시간 보내세요 ^^

서니데이 2021-11-17 18:08   좋아요 2 | URL
잘 모르겠어요. 어떤 건 소개만 읽어도 기억에 남고, 반대로 읽어도 기억이 적은 책이 있어서 자신이 없습니다. 서로 다른 작품 안에서도 같은 작가의 책은 비슷한 느낌이라는 게 있는 것 같아요. 감사합니다. 좋은 저녁시간 되세요.^^

mini74 2021-11-17 18:4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전쟁을 일으키는건 늙은이들이고 죽어가는건 젊은이들 이다란 구절을 본 기억이 나요. 조시아 이야기 너무 처절하고 슬픈네요. 새파랑님 글은 유혹이 너무 강합니다. 읽던 책을 덮고 막 읽어야 할 것 같은 ㅎㅎㅎ

새파랑 2021-11-17 19:17   좋아요 1 | URL
명언이네요. 딱 맞는거 같아요 ㅋ 저의 유혹이 통했다니 뿌듯하네요~!!!

coolcat329 2021-11-18 07: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헉! 이 책 교육에 관한 책이 아니군요! 2차대전 레지스탕스 얘기라니 정말 의외네요~ 🤭
치열한 전투 중에도 희망을 잃지 않고 책과 음악 등 예술을 통해 이겨나가는 모습이 감동적이네요. 유럽의 교육은 그런 사람이 쓴 책 제목이었군요.

새파랑 2021-11-18 09:34   좋아요 0 | URL
이래서 책 제목이랑 표지가 중요한가 봅니다~!! 담담하게 감동적이어서 좋았어요. 마지막 에필로그는 완전 👍

희선 2021-11-19 02: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예전에 이 책 제목 봤을 때는 교육 이야긴가 했던 것 같네요 그런 게 아주 없지 않지만, 조금 다르기도 하군요 전쟁 이야기였다니... 예전에 싸우던 사람이 음악이 나오자 그때는 싸움을 멈췄다고도 하죠 실제 있었던 일이었다고 합니다 전쟁터에 있는 사람도 책을 보고 음악을 듣고 희망을 가지기도 하겠습니다 싸우는 사람도 같은 사람이다는 걸 알고 그만 싸우면 더 좋을 텐데...


희선

새파랑 2021-11-19 07:36   좋아요 0 | URL
그러게 말입니다. 생각해보면 싸울 필요는 없을텐데 ㅜㅜ 예술의 힘은 대단한거 같아요. 실제로도 그런 사례도 많고요~! 전쟁을 통해 배우는 교육? 그런 느낌도 들어요 ㅋ
 

로맹 가리는 데뷔작부터 엄청난 필력을 보여줬구나. 시간가는줄도 모르고 읽었다.




그렇게 심각할 것 없어요. 대수로울 것 없다고요, 당신이 자꾸 생각하지만 않으면 대단한 일도 아니에요. 생각을 하기 때문에 나쁜 거예요. - P21

그는 사람이 어떻게 죽는지 알지 못했다. 아마 사람은 죽을 준비가 되었을 때 죽고, 또 너무나 불행할 때 죽을 준비를 하는 것이리라. 아니, 더는 할일이 없을 때 죽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것은 더이상 갈 곳이 없을 때 사람들이 찾아드는 길이다. 그러나 그는 죽지 않았다. 그의 가슴은 뛰고 있었다. 여전히 뛰고 있었다. 죽는 것이 사는 것보다 더 쉬운 것은 아니었다. - P27

진실이란 뜨겁게 고동치는 가슴속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지 차가운 이성 속에서는 그러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그는 이미 알고 있었다. - P43

‘중요한 것은 어떤 것도 사라지지 않는다‘라는 그 말이 자꾸만 생각났고, 숲의 무한한 속삭임을 들을 때조차 떠올랐다. 매일매일 수많은 사람들이 비참하게 죽어가는 마당에 그것은 참 이상한 말이었다. - P66

진실은 역사의 순간 속에,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 이 순간과 같은 시간 속에 있어. 그런 때에는 인간이 절망하지 않도록 막아주는 모든 것, 인간에게 믿음을 갖게 해주고 계속 살아가게 해주는 모든 것이 은신처를, 피난처를 필요로 하지. 그 피난처는 음악일 수도 있고, 시일 수도 있고, 책일 수도 있어. - P88

나는 내 책이 그런 피난처 중 하나가 되기를 바라. 전쟁을 겪은 후, 모든 것이 끝난 후 그 책을 펼 때 사람들이 아직 다치지 않고 남아 있는 자신들의 선의를 다시 발견하게 되기를 바라. 저들이 우리를 짐승처럼 살게 했지만 우리를 절망하게 만들 수는 없었다는 것을 사람들이 알게 되기를 원해. 절망한 예술이란 없어. 절망스러운 것, 그건 오직 재능이 부족하다는 것뿐이야. - P88

"내가 하나 만들어낼 거야. 우리가 함께 하나 만들어내자. 너하고 내가. 우리 둘만이 그 말을 알고 있게 될 거야. 우리 둘만이 그 말을 이해할 수 있게 될 거야. 아무한테도 그 단어를 말해주지 않을 거야. 그 단어를 우리만의 비밀로 간직하자. 울지 마, 조시아. 언젠가는 독일군이 한 명도 남아 있지 않은 날이 올 거야. 언젠가는 배고프지도 춥지도 않을 날이 올 거야. 울지 마. 너무나도 널 사랑해." - P97

"새로운 나라란 어떤 모습일까?"
"증오가 없는 나라겠지."
"그러면 많은 사람들을 죽여야 할 거야."
"그래, 많은 사람들을 죽여야 할 거야."
"그리고 증오는 여전히 남아 있을 거야. 전보다 더 많이."
"그러면 죽이지 않고 그들을 치료해줄 거야. 그들에게 먹을것을 줄 거야. 집을 지어주고, 음악을 들려주고, 책을 줄 거야. 그들에게 선의를 가르쳐줄 거야. 그들은 증오라는 걸 배운 경험이 있으니 선의라는 것도 잘 배울 수 있어."
"증오는 잊히지 않아, 사랑과 마찬가지야." - P139

내가 원하는 것은 오직 사랑하고 먹고 따뜻하게 지내는 것뿐인데, 평화롭게 사랑하는 것, 굶어 죽지 않는 것, 얼어 죽지 않는 것이 왜 그토록 어려운 것일까? - P225

"러시아 사람들을 사랑해요?"
"나는 모든 국민을 사랑해." 도브란스키가 말했다.
"하지만 어떤 나라도 사랑하지 않아. 나는 애국자이지만 국수주의자는 아니야."
"뭐가 다르죠?"
"애국심은 자기 나라에 대한 사랑이야. 국수주의는 다른 나라에 대한 증오고, 러시아, 미국, 모든 나라. 세계에 위대한 형제애가 싹트고 있어. 독일군은 적어도 우리에게 그런 걸 가져다주기는 한 셈이지." - P296

그 전설의 빨치산은 어느새 그의 곁에 우뚝 서서 어깨에 팔을 둘러주었고, 그러면 야네크는 자기 주변에 어떤 절대적 확신이, 인간은 결코 패하지 않는다는 확신이 일렁이고 있음을 느끼는 것이었다. 그는 이제 아버지가 거짓말을 한 것이 아님을 알고 있었다. 중요한 것은 절대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 P318

그가 그토록 비꼬아 말했던 그 유럽의 교육이란 바로, 그들이 너희 아버지를 쏠 때, 또는 너 자신이 뭔가 대단한 명분을 내세워 누군가를 죽일 때, 또는 네가 죽도록 굶주리고 있을 때, 또는 네가 마을을 파괴하고 있을 때 이루어지는 거야. 우리는 훌륭한 학교에 있었어. 우리는 정말 교육되었어. - P320

유럽에는 가장 오래된 성당들, 가장 오래되고 가장 유명한 대학들, 가장 커다란 도서관들이 있어요. 그래서 거기서 가장 훌륭한 교육이 이루어지죠. 세계 구석구석에서 사람들이 유럽을 찾아와요. 공부하기 위해서요. 하지만 그 유명한 유럽의 교육이 가르치는 것은 결국, 자기한테 아무 짓도 하지 않은 사람을 죽이는 데 소용이 될 만한 그럴싸한 이유들과 용기를 찾아내는 법일 뿐이에요. - P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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