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22010
˝안달하고 질투하는 건 바보나 하는 짓이야. 지금 얻을 수 있는 것에 만족하면 안 돼? 기회가 있을 때 인생을 즐겨야지. 어차피 100년 후엔 우리 모두 죽을 텐데 뭐가 그리 심각해? 할 수 있을 때 우리 좋은 시간 보내자.˝
˝서머싯 몸˝의 <케이크와 맥주>를 읽기 시작하면서 생각했던건 ‘케이크와 맥주‘의 상관관계 였다. 왜 제목을 이렇게 지은걸까? 궁금해하면서 책을 읽었지만, 어느순간 제목을 더 이상 신경쓰지 않게 되었다. 대신 이 책에서 가장 매력적인 인물인 드리필드의 첫 번째 부인 ˝로지˝를 중점으로 해서 읽었다.
이 책의 줄거리를 아주 간단하게 써보자면, 영국에서 거장으로 대우받던 작가 ˝드리필드˝가 타계하고, ˝드리필드˝의 두번째 부인은 생전에 ˝드리필드˝와 친했고 현재도 유명한 작가인 ˝로이˝에게 ˝드리필드˝의 전기를 써달라고 부탁한다. 하지만 ˝드리필드 부인˝은 남편과 첫번째 부인인 사이에 있었던 이야기는 몰랐기 때문에, ˝로이˝에게 그 시절 이야기를 알고 있는 사람이자 이 책의 화자인 ˝어셴든˝을 만나달라고 요청한다.
성공한 작가이자 야망이 큰 ˝로이˝ 역시 완성도 높은 ˝드리필드˝의 ‘전기‘를 쓰기 위해서는 그의 첫번째 부인 이야기를 알야야한다고 생각하고 자연스럽게 ˝어셴든˝과 만난다. ˝어셴든˝은 처음에는 그에게 다소 냉소적인 모습을 보인다. 그리고 ˝드리필드˝에 대해서는 어린시절에 잠깐 만난것 말고는 그렇게 많이 알지 못한다고 한다.
하지만 ˝로이˝ 일행과의 만남이 잦아지면서 ˝어셴든˝은 자연으럽게 그가 마음속으로만 오랜 시간 간직해왔던 ˝드리필드˝와 ˝드리필드 부인(로지)˝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씩 흘리게 된다. 그리고 말할 수 없는 추억을 혼자서 떠올린다. 과연 ˝어셴든˝과 ˝드리필드˝ 부부 세 사람 사이에는 어떤 추억이 있었던 걸까?
한적한 시골 ‘블랙스터블‘에서 ˝어셴든˝과 ˝드리필드 부부˝는 처음 만난다. 당시에는 무명의 작가였던 ˝드리필드˝는 술집의 여종업원 이었던 ˝로지˝와 결혼을 한 상태였고, 화자인 ˝어셴든˝은 아직 고등학생인데다 삼촌인 목사의 강압적인 통제 아래 지내고 있었다. 하지만 서로에게 끌린 그들은 자전거를 함께 타면서 더욱 친해진다.
하지만 ˝어셴든˝은 ˝로지˝가 문란하다는 소문을 듣게 되고, 마을의 모든 사람들은 ˝드리필드˝ 부부에 대해 안좋은 소리를 한다. 그리고 그들 부부랑 어울리는걸 못마땅해 하거나 숨기려고 한다. ˝어셴든˝ 역시 그녀의 이상한 행동을 목격하기도 해서 왠지 찜찜함을 느낀다. 하지만 언제나 그의 앞에서는 아무일도 없다는 듯이 밝게 행동하는 ˝루지˝를 미워할 수는 없었다. 그러던 어느날 ˝드리필드˝ 부부는 많은 빚을 남긴 채 런던으로 야반도주한다.
[그들이 느낄 부끄러움을 생각하니 나도 너무나 부끄러웠다. 그런데 드리필드 부인이 그 남부끄러운 사건을 아는 사람에게 말을 걸었다는 것이 나는 그저 놀라울 뿐이었다. 만약 내가 먼저 그녀를 보았다면 나와 마주치는 치욕을 피하고 싶을 그 마음을 배려해 그대로 고개를 돌렸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아주 반가운 기색으로 손을 내밀어 내 손을 잡았다.] P.174
이후 ˝어셴든˝은 대학생이 되어 런던으로 떠나고, 런던에서 그는 ˝드리필드˝ 부부와 재회한다. ˝드리필드˝는 예전과는 다르게 작가로서 명성을 날리고 있었고, 그는 밤낮으로 창작에 매달린다. 그리고 이제 삼심대 중반이 된 ˝로지˝는 예전보다 더 매력적인 모습으로 그의 앞에 나타났다. 그리고 런던에서도 이미 많은 남성들의 인기를 받고 있던 그녀는 ˝어셴든˝에게도 접근하며, 그는 그녀의 애정을 받아들이고 그렇게 불륜관계가 된다. (요즘 읽는 책이 다 불륜내용이다...)
[그녀는 내 입술에 입을 맞추었다. 대었다가 얼른 떼는 입맞추고 아니었고 열렬한 키스도 아니었다. 그녀의 아주 도톰하고 붉은 입술이 내 입술에 오래 머물렀고, 나는 그 입술의 형태와 온기와 보드라움을 의식할 수 있었다. 그녀는 서두르는 기색 없이 입술을 폐고는 아무 말 없이 문을 밀어 열고 살그머니 안으로 들어갔고, 나는 혼자 남겨졌다. 나는 너무 놀라 내내 아무런 말도 못 하고 바보처럼 그녀의 입맞춤을 받아들였다. 그렇게 가만히 있다가 돌아서서 하숙집으로 걸어 돌아갔다. 로지의 웃음소리가 귓전을 맴돌았다. 업신여기거나 거슬리는 웃음이 아니라 솔직하고 다정한 웃음, 내가 좋아서 웃는 듯한 웃음이었다.] P.206
하지만 그녀가 밀회를 갖는 사람이 자신 뿐만 아니라, 그녀 주위의 다수의 남자가 그녀의 연인이라는걸 알게 된 ˝어셴든˝은 괴로워하고, 그녀에게 진실을 고백하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녀는 아무렇지도 않게 그에게 이렇게 말한다.
[˝아이참, 왜 다른 사람들 일로 속을 썩고 그래? 그게 너한테 해될 게 뭐가 있다고? 내가 재밌게 놀아 주잖아! 나랑 있으면 행복하지 않아?˝] P.224
그녀의 사랑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아는 사랑이 아니었다. 그녀는 타인에게 기쁨을 줄 수 있다면, 그리고 자신이 기쁠 수 있다면 누구와도 연애를 할 수 있었던 여인이었다. 속된 말로 말하면 나쁜x 이지만, 그녀의 연인들은 그녀를 욕하지 않는다. 도대체 어떤 매력이 있기에? 게다가 그의 남편인 ˝드리필드˝는 이런 사실을 알고 있었을까?
결국 그녀는 한참 작가로 명성을 날리던 남편 ˝드리필드˝를 버리고, 결혼하기 전에 자신을 좋아했던 유부남 ˝조지˝와 함께 미국으로 야반도주한다. 이후 그녀는 영국에 나타나지 않는다. 도대체 ˝로지˝라는 여자는 어떤 여자였던걸까? 왜 그렇게 갑작스럽게 떠난걸까?
[˝그럼 그냥 사랑의 행위라고 해 두죠. 천성이 정이 많은 여자였어요. 누군가를 좋아하면 그 남자와 잠자리를 하는 것이 그녀에게는 상당히 자연스러운 일이었어요. 두 번 생각하는 법이 없었죠. 그건 악덕도 아니고 음탕한 것도 아닙니다. 천성일 뿐이죠. 태양이 햇빛을 발산하고 꽃들이 향기를 내뿜듯 자연스럽게 자신을 내어 준 거예요. 그녀 자신에게 기쁜 일이었어요.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는 걸 좋아했으니까요. 됨됨이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그녀는 늘 진실하고 예의 바르고 순박한 여자였어요.˝] P.274
사실 이 책의 주요 내용은 당시 영국 문단에 대한 풍자이지만, 개인적으로는 그 분야 보다는 ˝로지˝의 마력에 빠져서 책을 읽었다. 지금까지 ˝서머싯 몸˝의 작품은 이 책을 포함해서 딱 네편을 읽어봤는데, 그의 작품은 일단 재미있고 잘 읽히는데, 가장 큰 특징이라고 하면 등장 인물들이 모두 생동감있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특히 여자 주인공들의 대부분은 욕나오지만 마냥 미워할 수 없이 너무 매력적으로 그려진다.
<인간의 굴레에서>의 ˝밀드레드˝는 정말 악녀이고 ˝필립˝의 등골을 빼먹지만 그녀의 인생이 너무 처절하게 표현되어 있어 오히려 가엽다는 생각이 들었고,
<인생의 베일>의 ˝키티˝는 불륜을 저저르고 욕망에 무너지기도 하지만 결국에는 그녀의 삶에 대한 성찰이 매력적으로 그려져서 그녀의 미래를 응원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면,
<케이크와 맥주>의 ˝로지˝는 아주 미인은 아니지만 특이한 사랑관에 너무 생동감있고 사랑스럽게 그려져서 누구나 반할만 한 매력적인 여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현실에서 ˝로지˝같은 여자를 가까이 한다면 아마 화병이 날 것 같긴 하지만.
리뷰를 너무 한쪽(?)으로 치우쳐서 쓴 느낌이 있지만, 중요한건 이 책은 대단히 잘 읽히고 재미있다는 것이다. 일단 첫장을 넘기기만 하면 마지막장을 넘기기 전까지 쉬지 않고 읽을 수 있는 작품이다. 아직 ˝서머싯 몸˝을 접해보지 않으셨다면 이 책으로 시작해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Ps 1. 지금까지 읽은 ˝서머싯 몸˝의 작품들은 다 좋았는데, 만약 한 작품만 추천하라고 하면 <인생의 베일>을 선택하겠다.
Ps 2. 왜 책 제목이 <케이크와 맥주>인지 아직도 모르겠다. 해설에 이유가 쓰여있기는 한데, 내가 원하는 답은 아닌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