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를 다시 살펴보니 읽은 책이 딱 세권 있었다 ㅜㅜ
<단순한 열정>, <마음>, <리스본행 야간열차>

그런데 세 작품이 모두 좋았다.

만약 내가 사랑하는 누군가와 함께 사는 걸 결정해야 한다면, 난 그 사람이 책을 안 읽는 건 괜찮지만 술과 고기를 멀리한다면 좀 별로일 것 같다. 모든 사회적인 문제에서 늘 나와 다른 의견을 가진다면 그 역시도 곤란하겠다.

(닮은게 좋을까 다른게 좋을까) - P18

두 갈래의 갈림길에서 우리는 두 가지 길을 다 갈수가 없다. 당신과 내가 뜻이 다를 때 당신 뜻과 내 뜻 모두를 관철시킬 수는 없는 것이다. 어느 한쪽은 반드시 양보해야만 하는 상황이 오고, 사실 그 양보라는 것도, 양보하는 쪽에서는 기쁘게 한다 해도 받아들이는 쪽에서는 마냥 기쁘지 않을 수 있다. 내가 양보했어, 혹은 저 사람이 양보했어, 라고 생각하는 순간들이 반복되면, 어느 순간 신경줄이 팽팽하게 당겨지지 않을까. 그러므로 내가 만족하는 길이 당신도 만족하는 길이 되는게 최상일 텐데, 우리가 누군가와 이렇게 지낸다는 게 어디 가능하기나 한가. 어렵다.

(함께 같이 가는건 그만큼 어렵다) - P24

나와 함께 오랜 시간을 보낸 사람, 나와 사랑한다고 속삭이고 옆에 눕던 사람, 서로의 작은 습관들까지 속속들이 알고 있던 사람, 거실이나 부엌이나 욕실에서 부딪히는 것이 자연스러웠던 사람, 그 사람에게 잠깐 누군가 찾아들고, 그 누군가 찾아들었던 일 때문에 나와의 관계에 균열이 생긴다면, 나는 그걸 어떻게 견뎌낼 수 있을까? 설사 그 일이 ‘잠깐 동안‘ 이었다 하더라도, 그 잠깐이 우리가 함께한 일상을 파괴했다면, 내가 그걸 지우고 사는 게 가능할까? 아무일 없었다는 듯이 사는게 가능할까? 다시 예전으로 돌아갈 순 없지 않을까? 그 일이 일어나지 않았던 것처럼 지내자 라고 백 번 다짐해도, 그 일이 일어나지 않았던 것은 아닌데….슬프다.

(일어난 일은 일어난 일이다) - P28

에릭이 가까이 다가왔다. 한발짝씩 다가올 때마다 구 년의 세월이 좁혀지면 좋겠다고 하루카는 생각했다. 나, 변했지? 늙었지? 자조하듯 질문이라도 할 수 있다면 마음이라도 후련해질지 모르지만, 물론 그럴 여유조차 없었다. 그렇지만, 이라며 하루카가 생각을 고쳤다. 에릭이 여기까지 와줬다고, 눈앞에 서있는 에릭도 나와 마찬가지로 구 년 만의 재회를 기대해줬다고, 그 순간, 뭔가가 툭 끊어진 것처럼 긴장했던 얼굴에 미소가 떠올랐다.

(재회는 언제나 설레고 애뜻하다) - P39

나를 믿어, 한순간이라도 의심하지 말고, 나는 빌드시 당신을 찾아낼 거야. 당신이 어디에 있든, 지금은 잠시 헤어져 있어야 하지만 내가 어디에 있든, 당신이 어디에 있든 우리는 함께 있는 거야. 그리고 나는 반드시 돌아올 거야. 곧.

(반드시 돌아올꺼다) - P44

처음 만났을 때 나는 서른두 살이었고, 그녀가 죽었을 때는 쉰여섯 살이었다. 그녀는 내 삶의 심장이었다. 내 심장의 생명이었다. 그녀는 늙는다는 개념을 증오했다. 이십대부터 자신이 마흔을 넘기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나는 우리 둘이 함께 이어나갈 삶을 기쁜 마음으로 고대했다. 모든 것이 느려지고 고요해지기를, 함께하는 옛 추억들이 늘어나기를 고대했다. - P48

친구랑 그런 대화를 한 적이 있었다. 사랑에 푹 빠졌을 때, 우리가 일상을 사는 것이 얼마나 힘들었는지를, 간신히 회사에 앉아 있는 일들의 연속이었음을, 중요한 일을 업무 시간 내에 하는 것조차 힘겨웠음을, 누군가를 ‘너무‘ 혹은 ‘아주 많이 좋아하는 것이 우리의 이성을 얼마나 앗아가는지를. 우리가 문자 메시지를, 전화를, 이메일을 얼마나 기다리는지를, 그런 것들을 내가 보낼 때면 어떤 단어를 선택할지 고심하는 것도, 심지어 보내는 시간조차 지금이면 될까, 망설이던 순간들을.

(이 부분은 완전 독서공감 이었다.)
- P67

사랑에 빠지면 자신의 바닥을 들여다보게 된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내게 얼마나 ‘찌질한 면이 있는지를 비로소 맞닥뜨린다. 나는 스스로 쿨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다만 쿨한 척하는 사람일 뿐임을 제대로 알게 된다. 사랑에 빠진 나는, 사랑에 빠진 대부분의 여자가 그런 것처럼 집착하고 질투하며 신경질적이 된다. - P71

나는 무언가 어떤 것을, 저기 저곳에 닿아야 할 것으로 정해두고, 묵묵히 그것에 혹은 그곳에 닿기 위해 뚜벅뚜벅 걷는 사람이 좋다. 그리고 그들은 그게 뭐가 됐든 결국은 행할 것이며 닿을 것이라 믿는다. 항상 원하는, 늘 원하는 무언가가 있다면, 사람은 그것에닿기 위해 그쪽으로 신경을 쓰고 선택을 하고 방향을 틀기 마련이다. 그래서 나는, 원하던 일을 결국 이루는 사람을 좋아하고, 원하던 일에 결국 닿는 이야기를 좋아한다. - P77

"화난 게 아니야, 베이, 이모는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아서 당황한 것뿐이야. 수영 못하는 사람이 있듯이 사랑에 빠지는 법을 모르는 사람도 있거든, 처음엔 허우적대지만, 나중에 점점 요령이 붙을 거야."

(처음엔 허우적되지만 이후에는 요령이 생긴다.) - P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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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2-01-18 11:3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 책들을 다 읽고 이 책을 썼다니.. 작가분 진짜 대단하네요!!

그럼 이만.. =3=3=3=3

새파랑 2022-01-18 12:00   좋아요 1 | URL
그러게 말입니다~! 이책을 쓰신 작가분이 정말 책을 사랑하시는거 같더라구요. 저도 존경하는 작가님 입니다 ^^

다락방님도 한번 읽어보세요~!!
 

에밀 졸라도 읽어 줘야지


"아침부터 만나는 사람마다 나나 이야기로 나를 괴롭혀. 그동안 스무명이 넘는 사람들을 만났는데 여기서도 나나, 저기서도 나나! 내가 어떻게 알겠어! 내가 어떻게 파리 여자들을 다 아느냔 말이야! 나나는 보르드나브가 만들어낸 인물이야. 틀림없을 거야!" - P9

즉 무대에서 서툰 연기를 하는 것도, 악보에 맞춰 정확하게 노래하지 못하는 것도, 대사를 까먹는 것도 용서되었다. 몸을 돌리고 웃기만 하면 관객의 환호를 받았다. - P34

이제 그녀의 조그만 움직임도 관객의 욕망을 부풀게 했고, 그녀가 새끼손가락만 움직여도 육체들이 뒤틀렸다. 둥그렇게 굽은 관객들의 등은 보이지 않는 활이 살갗 위를 스치는 것처럼 떨렸고,목덜미는 어느 여자의 입에서 나왔는지 모를 훈훈하게 떠도는 입김에 솜털이 곤두섰다. - P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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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부터 점심시간에는 이작가님 책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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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괭 2022-01-17 23:5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오~ 좋은 책을 고르셨군요^^

새파랑 2022-01-18 00:05   좋아요 1 | URL
이작가님 찐팬 ×2 입니다~!!

2022-01-18 07: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1-18 07: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N22011

˝몰인정한 게 아닙니다. 비인정하게 반하는 겁니다. 소설도 비인정으로 읽기 때문에 줄거리 같은 건 아무래도 좋은 겁니다.˝


유유자적한 삶이란 어떤걸까? 그냥 아무 일없이 가만히 앉아있는 삶을 말하는건 아닐것이다. 생각과 생각, 자신에 대해 돌아보고 삶에 대해 끝임없이 철학하는 것이 유유자적한 삶이 아닐까?

[˝이지(이성과 지혜)만을 따지면 타인과 충돌한다. 타인에게만 마음을 쓰면 자신의 발목이 잡힌다. 자신의 의지만 주장하면 옹색해진다. 여하튼 인간 세상은 살기 힘들다.˝]  P.15

[살기 힘든 것이 심해지면 살기 편한 곳으로 옮겨 가고 싶어진다. 어디로 옮겨 가도 살기 힘들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시가 태어나고 그림이 생겨난다.]  P. 15

[서른이 된 오늘날에는 이렇게 생각한다. 기쁨이 깊을 때 근심 또한 깊고, 즐거움이 클수록 괴로움도 크다. 이를 분리하려고 하면 살아갈 수가 없다. 치워버리려고 하면 생활이 되지 않는다.]  P.16



˝나쓰메 소세키˝의 세번째 소설인 <풀베개>를 읽다보면 유유자적한 삶이란 이런것이구나 하는걸 느끼게 된다. 그의 삶에 대한 통찰, 작가로서의 고민과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이 이 책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실연의 고통을 잊고 그 부드러운 면이나 동정이 깃드는 면, 수심 어린 면, 한 발 더 나아가 말하자면 실연의 고통 그 자체가 흘러넘치는 면을 단지 객관적으로 눈앞에 떠올리는 데서 문학과 미술의 재료가 된다.]  P.47



그리고 이 책은 소설이지만 한 폭의 그림을 보거나 시를 읽는 것과 같은 느낌을 준다. 한문장 한문장 너무 마음에 와닿았다. 그래서 이야기의 줄거리 보다는 화자인 화가가 타자화 되어 바라보는 풍경과 사람들, 그리고 그가 지어내는 하이쿠와 사색을 중심으로 책을 읽었다.
(사실 이 책의 주제를 관통하는 줄거리는 없다. 게다가 화가인 그는 한폭의 그림도 완성하지는 못한다.)

[세상에는 혼자만의 수수한 삶을 사는 사람이 있다. 그 사람이 내세에 환생하면 아마 명자나무가 될 것이다. 나도 명자나무가 되고 싶다.]  P.166




개인적으로는 ˝소세키˝의 데뷔작인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와 두번째 작품인 <도련님>을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다. <그 후>로 ˝소세키˝를 처음 접해서 그런지 앞의 두 작품은 내가 읽고 싶었던, 우울하지만 여운이 남는 ˝소세키˝의 작품은 아니었다.


그래서 ˝소세키˝의 세번째 작품인 <풀베개>도 왠지 초기작의 분위기와 유사하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 이 책은 확실히 앞의 두 작품과 분위기가 다르며, 이후 출판되는 그의 작품의 근원이 되는 전환점이라고 생각한다. 만약 ˝소세키˝의 작품을 전작하고 싶다면 <풀베개>는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Ps . ˝나쓰메 소세키˝ 전작도 이제 네권 남았다.
아직 안읽은 <우미인초>, <갱부>, <춘분 지나고까지>, <명암>을 순서대로 읽어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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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아 2022-01-17 22:57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의외로 이 책은 200쪽대네요?! ‘유유자적‘에 관한 새파랑님의 설명 참 좋아요.^^ 발췌문은 제가 생각했던 것들이라 놀랍고 반갑네요. 꼭 읽어야겠어요!! <나는 고양이..>하나읽고 더이상 소세키작품 읽을 생각을 안했었는데 새파랑님과 그레이스님,페넬로페님의 리뷰를 보며 더 읽어야겠구나, 전작의 욕심이 스멀스멀 피어오릅니다.ㅎㅎ

새파랑 2022-01-17 23:00   좋아요 6 | URL
주말에 알라딘 우주점 갔는데 중고로 있길래 냉큼 구매했습니다 ㅋ 주말에 책은 안읽고 책만 샀어요 😅

이 책 보다는 <행인>, <산시로>, <그 후>를 먼저 추천합니다~!! 애네들은 재미도 있어요 ^^

페넬로페 2022-01-17 23:12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와, 풀베개 너무 읽고 싶네요.
유유자적한 삶에 대해서도 알고 싶고
마음에 와 닿는 소세키의 문장을 어서 만나고 싶어요~~
이제 네 권 남으셨네요
열심히 따라가겠습니다^^

새파랑 2022-01-17 23:39   좋아요 4 | URL
페넬로페님은 이미 많이 읽으셔서 이 책 마음에 드실거 같아요. 막 재미있게 읽는 책이라기 보다는 그림을 보는 것처럼 읽으시면 좋을거 같아요 ^^

그레이스 2022-01-17 23:18   좋아요 7 | 댓글달기 | URL
화이팅 새파랑님
한편의 그림을 보는것 같다는 감상에 동의합니다
언젠가 다시 꺼내볼 날이 있겠지 하고 전작을 모셔두고 있습니다^^

새파랑 2022-01-17 23:41   좋아요 5 | URL
그레이스님의 명품 <풀베개>리뷰를 다시 보고 감탄 했습니다~!! 이 책은 재독이 필수인 작품 같아요 ^^

scott 2022-01-18 00:56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소세키 옹 작품 중
풀베게-우미인초 요렇게 좋아합니다!^^

demianee 2022-01-18 01:51   좋아요 5 | URL
우미인초 너무 어려워서 두 번 읽기 시도하고 치웠어요..ㅎㅎ 조만간 다시 읽어보고 싶어요

새파랑 2022-01-18 06:34   좋아요 4 | URL
<우미인초>는 좋지만 어려운 작품인가 보네요 ㅎㅎ 유명하고 재미있는 책만 먼저 읽다고니 남은 책들이 다 어려운 것들 뿐인거 같아요 😅

mini74 2022-01-18 01:09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나쓰메 소세키 전작도 거의 끝나가시는군요 새파랑님 👍 전 사놓고 아직 ㅠㅠ 읽어야 하는데 말이죠 ㅠㅠ ㅎㅎ

새파랑 2022-01-18 06:36   좋아요 5 | URL
우주점에 현암사 이 책 말고 다른 중고도 있었는데 안산게 후회가 됩니다 ㅜㅜ 나머지는 새책으로 읽어야 할거 같아요 ㅎㅎ

초란공 2022-01-18 01:14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언제 소세키 옹을 시작하셨나요^^ 저는 시작은 않하고 일단 거의 다 모아갑니다 ㅋㅋ

새파랑 2022-01-18 06:38   좋아요 5 | URL
조금씩 야금야금 읽다보니 그래도 많이 읽었더라구요 ㅋ 다 모으셨다니 부럽습니다. 전 몇권은 빌려읽고 이북으로 읽고, 출판사도 다 달라서 아쉽네요 ㅜㅜ

바람돌이 2022-01-18 01:28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소세키는 언제 제가 접할까요? 세상에 읽고싶은 책이 너무 많은데 소세키 손에 잡으면 전작을 읽어야 할 거 같은 느낌이랄까? 이런 기시감은 도대체 뭘까요? 너무 많은 분들이 소세키를 이야기해서 무조건 다 읽어야 할 거 같달까요? ㅎㅎ 일단 지금 내게는 버지니아 울프가 있으니까 그녀 다음에는 소세키에 도전해볼지도...... 풀베개 꼭 기억하고 제일 먼저 읽어야지.

새파랑 2022-01-18 06:40   좋아요 6 | URL
현암사 시리즈 출판 순서대로 읽으시면 아마 더 재미있게 읽으실 수 있을거 같아요 ㅋ 소세키가 글을 잘 써서 책은 잘 읽히는데 어떤 책은 좀 어렵기도 한거 같아요~!

페크pek0501 2022-01-18 12:1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도 도련님을 재밌게 읽었는데 풀베개를 꼭 읽어야겠군요. ^^

새파랑 2022-01-18 12:33   좋아요 1 | URL
참고하실게 도련님이랑 풀베개랑은 분위기가 완전 다릅니다 ㅋ 도련님은 밝은 편인데 풀베개는 완전 사색적이에요 ㅋ

그런데 감성적인 페크님은 오히려 풀베개를 더 좋아하일 수 있을거 같아요~!!

희선 2022-01-18 23: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책 소세키가 세번째로 쓴 거였군요 여기에서 자신의 예술론을 말하지 않았나 싶기도 합니다 앞으로 네 권 남았다니, 2022년에 다 보시겠습니다


희선

새파랑 2022-01-19 00:30   좋아요 0 | URL
소세키 예술론이 잘 담겨있더라구요~! 소세키 전작 네권이 남았는데 다 어려운 작품만 남았어요ㅜㅜ
 

소세키의 문학에 대한 철학을 알 수 있는 작품이다.




"확실히는 모르나 옛날에 시호다의 아가씨가 몸을 던졌을 때부터 있었습니다."

"모르긴 해도 상당히 오래전 일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건 나리께만 드리는 말씀인데요, 시호다 댁에는 대대로 미치광이가 나옵니다." - P140

녹색의 가지 사이로 비치는 석양을 등지고 저물어가는 늦봄이 검푸른 바위를 채색하고 있는 가운데 선명하게 떠오른 여인의 얼굴은.....… 꽃 아래에서 나를 놀라게 하고, 환영으로 나를 놀라게 하고, 후리소데로 나를 놀라게 하고, 목욕탕에서 나를 놀라게 한 그 여인의 얼굴이다. - P143

세상에는 혼자만의 수수한 삶을 사는 사람이 있다. 그 사람이 내세에 환생하면 아마 명자나무가 될 것이다. 나도 명자나무가 되고 싶다. - P166

갈색의 빛바랜 중절모 아래로 텁수룩한 수염의 산적이 이별을 아쉬워하며 고개를 내밀었다. 그때 나미 씨와 산적은 엉겁결에 마주보았다. 쇠바퀴는 덜커덕덜커덕 돌아간다. 산적의 얼굴은 곧바로 사라졌다. 나미 씨는 망연히 떠나는 기차를 바라본다. 그 망연함 속에는 신기하게도 지금껏 느껴본 적이 없는 ‘연민‘이 가득 떠 있다.

"그거예요! 그거! 그게 나오면 그림이 됩니다."

나는 나미 씨의 어깨를 두드리며 조그만 소리로 말했다. 내 가슴속의 화면은 바로 이 눈 깜짝할 사이에 이루어진 것이다. - P1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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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2-01-17 19:5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서재 프사 바꾸셨네요!
눈 건강 생각하셔서 적당히 읽으시길...
(이러면서 독서 훼방 놓은 심보.ㅋㅋㅋ)

새파랑 2022-01-17 20:45   좋아요 2 | URL
22년이 되어서 한번 바뀌 봤습니다 ^^ 저는 책 읽는게 건강입니다 ㅋ

stella.K 2022-01-17 20:58   좋아요 2 | URL
강적입니다. 흥! ㅎ

새파랑 2022-01-17 21:04   좋아요 2 | URL
책 안 읽으면 술먹고 있을 확률이 높아서요 😅

바람돌이 2022-01-18 01:4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현암사의 저 소세키 전집 표지들 정말 너무 좋아요. 소장하고싶은....
새파랑님 자필 글씨 보면서 어쩜 저렇게 나랑 비슷한 글씨체일까라고 생각합니다. ^^

새파랑 2022-01-18 06:41   좋아요 2 | URL
앗 ㅋ 제 글씨체 좀 특이한데 바람돌이님도 특이하시군요 ^^

페크pek0501 2022-01-18 12: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166쪽에 꽂힙니다. ^^

새파랑 2022-01-18 12:34   좋아요 0 | URL
그 문장을 읽으면서 명자나무가 궁금해지더라구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