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레버는 단편도 잘쓴다.

그라일리스가 설명하지 않은 것은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었고, 설명할 수 없었던 것은 설명할 것이 너무 많아서가 아니라 너무 적기 때문이었다. - P110

그들은 자기 삶에 대해 이야기하는 데는 관심이 없었다. 그들의 대화는 그렇지 않았으나, 본인들이 모르는 사이 그들의 우정으로 전과 달라진 방 안에는 그들의 삶이 있었다. 두 사람은 감정을 건드리지 않았고, 후회나 과거에 있었을지 모를 것들을 건드리지 않았다. 그들은 단어를 통제하는 능력을 잃지 않았다. - P117

그는 기억 밖에서는 건드리지 말아야 했던 것을 건드렸다. 기억 속에서는 모든 것이 영원히 그곳에 있었고 아무것도 변할 수 없었다. - P120

그 이상은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장식품도 받지 않을 것이다. 그러면 현실을 속이게 되기 때문이었다. 도자기 한점도 받지 않을 거라고, 그는 그렇게 편지를 쓸 것이다. 비밀의 그림자 속에 겨울 꽃이 흩어져 있었고, 기만이 조용한 사랑을 기렸다. - P120

내 콤팩트의 거울을 들여다볼 때, 또는 햇볕이 좋은 날 가게의 유리창에 얼굴이 반사될 때나 거리의 거울을 힐끗 볼때면 종종 나는 저 여자를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더 오래 바라볼 때면 내가 보고 있는 것은 한때 어린아이였던 그림자에 내 상상력이 부여한 환상이 아닐지,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온전히 존재하지 않는 게 아닐지 궁금해진다. - P144

"좋은 소설을 두 번째로 읽으면 언제나 전에는 몰랐던 것들이 보여요." - P148

당신은 늘 최선을 다했어, 코리." 이 말이 자리에 남아 대화를 매듭지었다. 사실이기에 반드시 해야 하는 말이었고, 이 말을 반복하는 것이 그들 삶의 고비를 누그러뜨렸다. - P157

코리는 누알라를 위해 조각상을 만들었고, 조각상들이 동요하지 않는 평정심으로 자신의 시선을 돌려보내자 누알라는 처음으로 분노가 조금씩 흘러 나가는 것을 느꼈다. 감화되어 평온함에 잠긴 누알라는 조각상의 체념을 느꼈다. 실패한 것은 누알라가 아니라 이 세상이었다. - P182

지난 수개월 동안 두 사람 역시 비밀을, 일어나는 일을 알지만 말하지 않는다는 비밀을 공유한 것과 마찬가지였다 - P196

자기 앞에 펼쳐진 창창한 시간 언뜻 보게 될 다른 비밀과 배신들 때문에 울었다. - P200

"떠날 거예요." 외삼촌의 질문에 존 마이클이 대답했다. 피나는 그가 그 말을 하는 것을 들었다. 존 마이클이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기만을 오랫동안 기다려왔음을 보여주는 말이었다. 떠나는 것은 옛날부터 이어진 전통이었고, 기회는 다양한 형태로 나타났지만 사람들은 그 기회를 붙잡기도 전에 떠나겠다는 결심을 오래도록 마음에 품었다. - P202

마을에 전해 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옛날에 사랑하는 남자를 뒤따라 골웨이까지 먼 길을 걸어간 여자가 있었다. 하루하루 만날 시간이 가까워지고, 있었지만 그 어느 때보다 존 마이클이 그리웠던 피나는 그 여자의 심정을 이해했다. 피나는 다시 천천히 마을로 돌아왔고, 존 마이클이 두 사람을 위해 마련한 방은 피나의 머릿속에서 여태껏 본 무엇보다도 더 선명했다. - P214

말하지 않았으나 이해한 사랑의 규칙은 끝나지 않은 것을 끝내는 괴로움 속에서도 깨지지 않았고 앞으로도 깨지지 않을 것이었다. 오늘 사랑은 조금도 부서지지 않았다. 둘은 그 사랑을 지니고서 몸을 떼고 서로에게서 멀어져갔다. 미래가 지금 보이는 것만큼 절망적이지 않다
는 것, 그 미래 안에 여전히 두 사람의 과묵한 섬세함과 한때 사랑이 만든 그들의 모습이 남아 있으리라는 것을 알지 못하는 채로. - P287


댓글(2)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페크pek0501 2022-02-06 10: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가장 좋았던 문장은 157쪽의 것으로 뽑겠습니다.
뽑은 이유는? 여운을 남기는 문장 같아서예요...

새파랑 2022-02-06 11:24   좋아요 1 | URL
트레버의 이 책 속에 여운이 남는 문장이 많더라구요~!! 최선을 다하더라도 항상 결과과 좋지는 않지만 그래도 그것만큼 위안이 되는 행동은 없는거 같아요~!!
 

정신없이 읽다보니 밑줄을 못그었다.


오늘 처음 만난 사람은 그녀가 지금도 여전히 보는 얼굴을 보지 못할 것이고 그녀가 듣는 목소리를 듣지 못할 것이다. 그 이후로 왜 그녀가 다른 사람을 원하지 않았는지 이해하지 못할 것이고, 그 이후로 그녀의 눈에 진실처럼 보인 이야기, 그러니까 의심이 사랑의 혼란을 틈타 농간을 벌였다는 이야기를 들으려 하지 않을 것이다. - P89

지속될 수 없는 것은 시작하지 않는 게 좋겠다고 말하기란 쉽지 않았다. - P89

그들은 악수를 나누지 않았고 함께 보낸 저녁 시간을 어떤 식으로든 언급하지 않았다. 그러나 헤어질 때 두 사람에게는 약간의 놀라움이 남았다. 마땅히 일어났어야 할 상황과 비교하면 그들이 서로를 이용한 것은 스스로에 대한 존엄이었다. 그 기분은 서로 다른 두 개의 승강장에서 열차를 기다리는 동안에도, 각자가 타야 할 열차가 도착해 다시 멀어져갈 때에도 여전히 남아 있었다. 그 기분은 그들이 깜박이는 어둠 속을 이동할 때에도 계속되었고, 함께 나눈 즐거움만큼이나 은밀했다. - P102


댓글(4)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scott 2022-02-04 23:4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낼 그으실 밑줄 좌!
요기 놓쿠 갑니다 ㅎㅎㅎ
 〃∩ ∧_∧
 ⊂⌒( ・ω・)
  \_ っ📏c

새파랑 2022-02-05 08:32   좋아요 2 | URL
저는 자를 대고 긋지는 않지만 이번에는 그렇게 해봐야 겠어요 ^^

페크pek0501 2022-02-06 10: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과거를 지배하지 않고 과거에 구속당하는 자는 현재도 미래도 지배하지 못한다. - 페크의 생각.

새파랑 2022-02-06 11:22   좋아요 1 | URL
페크님의 생각을 신문 칼럼에 실어야 합니다~!!
 
사랑은 그렇게 끝나지 않는다
줄리언 반스.팻 캐바나 지음, 최세희 옮김 / 다산책방 / 2014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N22021

누군가가 기억한다면 곁에 없더라도 사라지는것은 아니다. 사랑은 그렇게 끝나지 않는다.


"줄리언 반스"의 <사랑은 그렇게 끝나지 않는다>는 소설인지 에세이인지 다소 모호한 작품이다. 하지만 이러한 점이 이야기의 흡입력을 높게 해준다. 소설의 재미와 에세이의 진정성을 모두 느낄 수 있다.


영어의 원제는 <Levels of Life>로, <비상의 죄>, <평지에서>, <깊이의 상실> 세개의 장으로 구분되어 있는데, 이야기는 독립적이면서도 연결되어 있다. 그리고 첫번째 장은 하늘을, 두번째 장은 땅을, 세번째 장은 지하(죽음)를 배경으로 한다.




<비상의 죄>

이 장에서 "줄리언 반스"는 열기구의 개척자이며 사진작가인 실제인물 "나다르"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보헤미안으로 살아가고 싶었던 그는 무작정 하늘을 갈망한다. 책을 읽으면서 "줄리언 반스"는 왜 "나다르"에 대한 이야기를 첫장에서 다루고 있는지 몰랐었는데, 해설을 읽고나서 어렴풋하게 이해가 되었다. 상승과 추락을 할 수 밖에 없는 기구를 통해 그는 자유를 갈망하지만 결국은 제자리로 돌아올 수 밖에 없는 인간의 슬픔을 이야기 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기구는 자유를 대변했다. 그러나 그 자유는 바람과 날씨의 권력에 영합하는 자유였다.]  P.21

[태초부터 새들에게 날개가 있었으니, 새는 신이 만드신 것이었다. 천사들에게 날개가 있었으니, 천사는 신이 만드신 것이었다. 남자와 여자는 긴 다리와 아무것도 달리지 않은 빈 등을 타고났으니, 신이 이유가 있어 그리 만드신 것이었다. 하늘을 나는 문제에 개입하는 건 신의 섭리를 거스르는 행위였다. 오랜 투쟁과 교훈적인 전설을 증명하는 거나 다름없는 행위였다.]  P.23




<평지에서>

이 장에서는 "나다르"와 마찬가지로 기구에 빠져서 사는 또다른 인물인 "버나비"와 그가 사랑하는 여인 "베르나르"와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자유로운 보헤미안이었던 "버나비"와 "베르나르", 하지만 사랑에 대한 두 사람의 생각이 달랐다. 그녀와 결혼하여 영원한 사랑의 비상을 꿈꿨던 "버나비",  하지먀 "베르나르"는 그와의 사랑은 일시적일 뿐이며, 열기구가 예측할 수 없는 바람에 기댈 수 밖에 없듯이 그에 대한 그녀의 사랑은 일시적일 뿐이라고 생각하여 그의 청혼을 거절한다.

[모든 사랑 이야기는 잠재적으로 비탄의 이야기이다. 처음에는 아니었대도, 결국 그렇게 된다. 누군가는 예외였다해도, 다른 사람에겐 어김없다. 때로는 둘 모두에게 해당되기도 한다.]  P.60

[그는 3개월 동안 그의 능력껏 그녀를 사랑했고, 그녀 역시 마찬가지였다. 다만, 그녀의 사랑에 타임스위치가 내장되어 있었던 것 뿐이다.]  P.101



그리고 "버나비"는 그녀를 떠나고 이후 다른 여인과 결혼한다. "베르나르" 역시 그녀의 말과는 다르게 다른 남자와 결혼한다. 그렇게 둘의 사랑은 끝이 났지만, "버나비"는 그녀를 잊지 못하고 하늘에 떠있는 기구 안에서 그녀와 함께 비상하지 못함을 안타까워 한다.

[그는 그들이 커플이 되어, 떨어져 있던 것을 하나로 이어, 하나의 삶을 이루어가는 모습을 그려보았다. 그의 상상 속에서 그들은 언제나 움직이고 있었다. 그는, 그들은, 위로 날아오르고 있었다.]  P.81

[지금, 하늘에 둥둥 떠있는 그의 귀에는 오로지 그녀의 음성만 들려왔다. 몽 셰르 카피텐 프레드, 수많은 세월이 흘렀는데도 그 말에 여전히 가슴이 아렸다.]  P.104




<깊이의 상실>

이 책의 하이라이트는 바로 마지막 장인 <깊이의 상실>이다. 이 장에서 "줄리언 반스"는 그가 너무나 사랑했던 아내를 갑작스럽게 잃고나서 그가 느꼈던 절망의 감정을 처절하게 표현하고 있다. 너무나 사랑했기에 그의 상실감은 너무나 컸었고, 아내 없이 혼자서 지내야 했던 그의 삶은 처절하기만 하다. "줄리언 반스"는 슬픔을 토해내지 않는다. 그저 담담하게 이야기한다. 그래서 더 아련하게 읽었다. 누군가의 영원한 부재는 슬프기만 하다.

[그렇게 사라진 빈자리는 애초에 그 자리에 있었던 것의 총합보다 크다. 이는 수학적으로는 가능하지 않은 일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감정적으로는 가능하다.]  P.109

[누군가가 죽었다는 사실은 그들이 살아 있지 않다는 것을 의미할지 모르지만, 그렇다고 그들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하는 건 아니다.]  P.169



첫장에서 마지막장으로 갈수록 배경의 고도가 위에서 아래로 낮아지는데, 반대로 슬픔은 마지막 장으로 갈수록 더 깊어진다. 상실은 너무나 슬프다. 그래도 살아남은 사람은 어떻게든 견뎌야 한다. 그래야 사랑을 기억할 수 있으니까, 그래야 사랑은 끝나지 않으니까 말이다.

댓글(20) 먼댓글(0) 좋아요(4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레삭매냐 2022-02-04 19:30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줄리언 반스의 책을 제법
읽었는데 이 책은 읽었는지
읽지 않았는지 기억이 가물
가물하네요...

새파랑 2022-02-04 19:34   좋아요 3 | URL
이 책은 그렇게 유명한 책은 아닌거 같아요. 전 제목에 끌려서 먼저 읽었는데 아주 만족했습니다 ㅋ 다 읽고 나서 딴 책을 읽을 수 없었어요 ^^

청아 2022-02-04 19:43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60페이지의 대목은 유명한지 많이 들어본것 같아요! 별이 다섯개인데다 208페이지라니 바로 찜입니다. 새파랑님 불금 즐겁게 보내세요😄

새파랑 2022-02-04 20:12   좋아요 4 | URL
페이지가 적은데 종이가 두꺼워서 책은 두툼합니다 ^^ 이 책 좋아요 ㅋ 읽다보면 책을 내려놓을 수 없어요. 미미님도 아름답게 금요일 보내세요 😆

페넬로페 2022-02-04 20:16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하늘, 땅, 죽음~~
내용이 의미심장할 듯 해요^^
그 중에서 역시나 죽음은 제일 힘든것 같아요^^
자유를 갈망하지만 결국 돌아올 수밖에 없는 인간의 숙명이 참 슬픕니다^^

새파랑 2022-02-04 20:22   좋아요 5 | URL
최근에 읽은 책들이 다 좀 슬픈 책들이었어요 ㅜㅜ 오늘은 좀 안슬픈 책을 꺼내야 겠어요 ^^ 페넬로페님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mini74 2022-02-04 20:20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소설과 에세이의 경계인가요. 그 줌이 또 흡입력을 높인다니 ~~ 새파랑님 소설읽기 따라쟁이는 넘 힘듭니다 헉헉 ㅋㅋ 그녀의 사랑에 타임스위치가 내장되어 있었던 ~ 문장 은근히 슬픈데요 ㅜㅜㅜ

새파랑 2022-02-04 20:27   좋아요 5 | URL
새로움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겐 저런 타임스위치가 있는거 같아요 ㅋ 갑자기 내 사랑의 유통기한은 만년으로 하고 싶다는 이야기가 떠오르네요 ^^ 전 원래 에세이파였는데 최근에는 소설이 더 좋아요 ~!

coolcat329 2022-02-04 20:39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줄리언 반스 이런 책도 있군요.
새파랑님이 좋아할 제목 맞네요~^^

새파랑 2022-02-04 20:42   좋아요 4 | URL
제가 요런 제목의 책이랑 내용에 많이 약해요 ^^ 두번째 세번째 이야기는 너무 좋았어요 ~!!

그레이스 2022-02-04 21:08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배경의 고도와 슬픔의 깊이의 대조,,, 읽고 싶게 만드는 문장입니다👍

새파랑 2022-02-04 21:58   좋아요 4 | URL
그레이스님은 이 책 좋아하실거란 생긱이 들어요~! 두번 읽을수 밖에 없는 책입니다 ^^

바람돌이 2022-02-05 14:21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줄리언 반스에 다시 도전해봐야겠군요.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가 딱히 안맞아서 살짝 비켜가는 작가였는데 말이죠.

새파랑 2022-02-05 16:18   좋아요 3 | URL
제가 예감은 아직 안읽어봤지만 제가 읽어보고 차이점을 알려드리겠습니다^^

희선 2022-02-06 01:0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어떤 만남이든 끝이 있지요 가장 슬픈 게 죽음으로 헤어지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언제나 슬퍼하면 안 될지도 모르겠군요 세상을 떠난 사람을 기억할 사람은 산 사람이니... 기억하면 그 사람은 아직 산 걸지도...


희선

새파랑 2022-02-06 08:00   좋아요 3 | URL
언제나 헤어짐은 슬픈거 같아요. 그래도 언제까지 계속 슬퍼할 수는 없으니 가끔씩 좋았던 순간을 기억하는것만으로 위안을 삼는게 좋은거 같아요~~

물감 2022-02-06 21:0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줄리언 반스 작품 요새 눈독 들이는 중이에요. 읽기 쉬운 편인가요?

새파랑 2022-02-06 21:32   좋아요 2 | URL
저도 두권 밖에 안읽어봤지만 어려운 편은 아니더라구요. 읽다보면 계속 읽게 됩니다 ㅎㅎ 제가 최근에 읽은 ˝윌리엄 트레버˝보다는 쉽게 읽을 수 있었어요 ㅋ 근데 제가 읽은 책(시대의 소음, 사랑은 그렇게...)이 다 정통(?) 소설은 아니어서 확답은 못드리겠습니다. 전 다음 작품으로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를 읽어보고 싶네요~!!

쑤양 2022-02-09 20: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줄리언반스 책은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만 읽었는데 이 책도 도전해 봐야 겠어요~

새파랑 2022-02-09 20:15   좋아요 0 | URL
저는 반대로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에 도전해 보겠습니다~!! 이 책 좋았어요 ^^ 쑤양님에게도 좋았으면 하네요~!!
 

늦게 퇴근한데다 리뷰쓴다고 책을 한줄도 못읽었다 ㅜㅜ


댓글(8)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scott 2022-02-04 00:0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새파랑님
담번엔 리뷰 쓰니
정시에 퇴근 시켜 달라고 해보세요! ㅎㅎ

반즈옹! 새파랑님 2월의 책 ^ㅅ^

새파랑 2022-02-04 06:30   좋아요 3 | URL
리뷰 쓰는게 밀려서 새 책 읽기 시작을 못하고 있어요 😅 앞으로는 리뷰를 쓰고 새책을 읽어야 할거 같아요~!!

청아 2022-02-04 09:5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그런 날도 있는 거죠뭐! 새파랑님 인간미 풀풀 더 멋져요ㅎㅎ😉

새파랑 2022-02-04 10:15   좋아요 2 | URL
문제는 이 책 리뷰도 써야한다는데 있습니다 😅 빨리 쓰고 트레버를 마라러 가야겠습니다~~!!

서니데이 2022-02-04 19:1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 저 책 저도 가지고 있습니다.^^
새파랑님, 오늘 날씨 춥습니다. 따뜻하고 좋은 주말 보내세요.^^

새파랑 2022-02-04 19:27   좋아요 2 | URL
이 책을 가지고 있으시군요. 감동적인 작품이었습니다. 전 그냥 슬프더라구요 ㅜㅜ

mini74 2022-02-04 21:1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리뷰 넘 귀여워요 새파랑님 ㅎㅎ

새파랑 2022-02-04 21:56   좋아요 2 | URL
ㅋㅋ 이건 리뷰가 아닙니다 ^^ 아 아직 오늘걸 못썼네요 ㅎㅎ
 
네메시스
필립 로스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N22020

"우리는 아무런 근거 없이 우리 자신을 가혹하게 심판하기도 해, 하지만 잘못된 책임감은 사람을 쇠약하게 만들 수 있어."


고의는 아니었지만 나로 인해 누군가가 피해를 받는 상황이 발생한다면 어떤 생각이 들까? 현실적인 사람이라면 자신의 죄가 없다는 변명거리를 먼저 찾고 자기합리화를 하겠지만, 책임감이 강한 사람이라면 변명 보다는 죄책감을 느끼고 자기 자신에 대한 반성과 함께 용서를 구할 것이다.


당연히 후자처럼 행동하는게 맞다고 생각하지만 현실에서는 그런 사람이 결코 많지는 않다. 후자처럼 행동하다가는 모든 비난을 내가 받을 수 있기 때문에, 그리고 모든 책임을 내가 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상대가 고개를 숙일수록 더욱 모질게 대하는 사람을 우린 주위에서 너무나 쉽게 볼 수 있다.



"필립 로스"의 <네메시스>의 주인공 "캔터"는 후자와 같은 사람이다. 고의는 아니었지만 자신이 "폴리오(역병)"를 퍼뜨렸다는 사실 때문에 큰 죄책감을 느끼고 죽을때까지 불행을 안고 살아가게 된다. 그런데 이런 역병은 왜 생기는 걸까? 하느님의 의지일까? 아니면 인간에 대한 천벌(Nemesis)일까?



미국의 '위퀘이크' 유대인 거주구역에서 방과후 체육선생을 하고 있던 20대의 "캔터", 그의 또래들은 2차세계대전에 참전하지만 그는 시력이 나빠서 징집되지 못한다. 이러한 사실 때문에 마음 한구석에 죄책감을 가지고 있지만, 그는 뛰어난 운동신경과 책임감으로 인해 학생들과 부모님들의 존경과 신뢰를 받고 있었다.


무더운 여름날 야외 운동장에서 체육활동을 하고 있던 그와 학생들 앞에 이탈리아인 무리들이 나타나서 시비를 건다. 자신들은 '폴리오'를 퍼뜨리러 왔다면서 말이다. 그러면서 운동장 앞에 침을 잔뜩 밷는다. 그러나 "켄터"는 이에 위축받지 말고 이탈리아인들을 쫓아낸다. 그리고 그들이 뱉은  침을 딲아낸다.

["그전에 폴리오를 먼저 좀 퍼뜨려야지. 우리한텐 그게 있는데 여긴 없잖아. 그래서 여기 와서 좀 퍼뜨려주자고 생각했지."]  P.21



이탈리아인이 원인이었을까? 아마 아닐것이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이탈리아인이 다녀간 후 "켄터"가 지도하는 학생들 중 '폴리오'에 걸린 환자들이 나타나기 시작하고, 얼마 후 예년과는 다르게 '위퀘이크'에 많은 '폴리오' 감염자들이 발생한다. 그리고 아무 죄도 없는 어린 학생들은 이 병에 걸려서 죽기까지 한다. 그들은 왜 그런 불행을 겪어야 했던걸까?

["왜 비극은 늘 그것을 당할 이유가 전혀 없는 사람에게 덮치는거요."]  P.53

[다시는 나올 수 없는 상자 안에. 열두 살짜리가 영원히 열두 살짜리로 머물게 되는 상자 안에, 나머지 사람들은 매일 나이를 먹으며 살아가지만, 그는 늘 열두 살이다. 수백만 년이 흘러도 그는 여전히 열두 살이다.]  P.69



"켄터"의 여자친구 "마샤"는 '인디언 힐'이라는 산속에 위치한 여름방학 캠프의 선생님으로 일하고 있었다. 고향에 있는 남자친구가 걱정된 그녀는 자신이 일하고 있는 캠프에 빈자리가 났다고 "캔터"에게 알리고, 그가 안전한 '인디언 힐'로 와주기를 바란다. 하지만 자신이 가르치고 있는 학생들을 두고 떠날 수 없었던 "켄터"는 여자친구의 제안을 거절한다. 하지만 그녀는 그가 떠나는 행동이 절대로 비겁한게 아니라면서 그를 설득한다.

[이런 때 뉴어크를 떠나는 건 절대 비겁한 일이 아냐. 난 널 알아. 네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아. 하지만 너는 지금 그대로도 아주 용감해, 인디언 힐에 온다 해도 정말이지 전혀 양심에 거리낄 것 없이 그냥 또다른 일을 하는 것일 뿐이야. 너 자신에 대한 또하나의 의무를 이행하는 것이고, 행복해지는 의무 말이야. 버키, 그저 신중하게 위험에 맞서자는 얘기야. 이건 상식이라고.]  P.93



그녀의 계속되는 설득에 조금씩 흔들리던 "켄터"는 학생들이 점점 감염자가 늘어남에 따라 두려움과 혼란을 겪는 모습을 지켜면서 떠나고 싶은 마음을 굳히게 된다. 그리고 그녀에게 '인디언 힐'로 가겠다고 말한다. 죽음과 혼란의 공포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켄터", 하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학생들을 버리고 도망갔다는 죄책감을 가지고 있었다.

[두려움이 덜할수록 좋아. 두려움은 우리를 나약하게 만들어. 두려움은 우리를 타락시켜. 두려움을 줄이는 것, 그게 자네의 일이고 내 일이야.]  P.110



'폴리오'의 청정지역에서, 자신의 애인과 함께, 자신이 잘하는 역할을 하면서 "켄터"는 잠시 행복한 나날을 보낸다. 그곳에 있던 학생들과 선생님들은 모두 그를 좋아했다. 그런데 그의 행복은 오래 갈 수 없었다. 그곳에서도 갑작스럽게 '폴리오' 환자가 발생한 것이었다. 그리고 "켄터"가 그곳에 오기 전까지는 청정지역이었는데, 그가 온 이후로 '폴리오' 환자가 발생했다는 것은 그가 전염병을 가지고 왔다고 의심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켄터" 본인 또한 이를 의심하게 되고 자진해서 검사를 받는다. 그리고 그는 확진 판정을 받고, 48시간이 지난 후에 "폴리오"의 고통을 경험하게 된다.

[그런 다음 포치로 나가 이제 곧 그의 밑에서 일하는 실무진이 모여들 호수를 내려다보며 스스로에게 피할 수 없는 질문을 던졌다. 내가 아니면 누가 이곳에 폴리오를 가져왔겠는가?]  P.225



이후 그는 불구가 되고, 사랑하는 사람을 모두 떠나보내며, 혼자서 죄책감을 지니고 고통을 감내하는 삶을 살아간다. 몸만 망가진게 아니었다. 그의 마음은 처참히 무너져 있었다. 무엇때문에 그는 이런 고난을 겪어야 했던 걸까? 과연 신은 존재하는 걸까?

[그의 분노의 대상은 이탈리아인이나 집파리나 우편물이나 우유나 돈이나 악취가 나는 시코커스나 무자비한 더위나 호러스가 아니라, 도무지 앞뒤가 맞지는 않지만 사람들이 두려움과 혼란 때문에 유행병을 설명하기 위해 내어놓는 그 모든 원인이 아니라, 심지어 폴리오 바이러스가 아니라, 그 원천, 그 창조자 바이러스를 만든 신이었다.]  P.130

[그가 자신에게 남은 명예를 보전하는 유일한 방법은 자신을 위해 원했던 모든 것을 거부하는 것이었다. 만일 마음이 약해 그렇게 하지 못한다면 그는 마지막 패배를 겪게 되는 셈이었다.]  P.263





<네메시스>는 우연이라는 것이, 두려움이라는 것이 인간의 삶을 어디까지 망가뜨릴 수 있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작품이었다. 혹시 다른 선택을 했더라면 결말이 달라졌을까? 왠지 어떤 선택을 했든간에 그의 불운은 필연이었을지도 모른다. 거부할 수 없는 운명의 굴레. 책을 읽으면서 나 역시도 이런 불운과 만날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싸한 느낌이 들었다.


"필립 로스"는 <네메시스>를 끝으로 절필을 선언했다고 하며, 그래서 이 작품은 그의 마지막 작품이 되었다. 이러한 사실 때문인지 <네메시스>의 주인공 "켄터"의 결말이 그의 작품 중 가장 무기력하고 가장 안타깝게 느껴졌으며, 왠지 쓸쓸하고 힘없는 말년의 "필립 로스"와 겹쳐보였다. (실제로 그의 말년이 그랬다는 것은 아니다. 솔직히 잘 모른다 ㅎㅎ)


<네메시스>는 "필립 로스"의 다른 작품들에 비해 강한 성적 묘사나 거친 화법이 등장하지 않고, 발암을 유발하는 인물도 없다.(이탈리아인들은 제외하고...) 내가 그동안 접한 그의 작품 중 가장 읽기에 수월한 순한 맛의 작품이라고 확신한다. 하지만 순한 맛이라고 해서 작품에서 다루고 있는 문제의식까지 순한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네메시스>는 그의 작품 중 가장 묵직한 메세지를 독자에게 들려준다. 당신도 언젠가는 피할 수 없는 불운을 만날 수도 있을 거라고, 하지만 불운이 지나간 후의 인생은 당신의 의지에 달렸다고 말이다.

["자신에게 맞서지 마세요. 지금 이대로도 세상에는 잔인한 일이 흘러넘쳐요. 자신을 희생양으로 만들어 상황을 더 나쁘게 만들지 말라고요."]  P.273

댓글(10) 먼댓글(0) 좋아요(3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mini74 2022-02-03 22:36   좋아요 7 | 댓글달기 | URL
저도 피할 수 없는 운명이란 생각했어요. 지금과 너무 닮아 무서운 ㅎㅎ 새파랑님 필립로스 책도 거의 다 읽으신건가요 ~

새파랑 2022-02-03 22:56   좋아요 6 | URL
제가 휴먼스테인2를 읽었는데 체크를 안했더라구요 ㅋ 지금까지 필립로스 책은 10권 읽었네요 ^^ 코시국을 떠올리게 하는 책이었습니다~!!

페넬로페 2022-02-03 23:38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이 소설의 소재가 지금 우리의 상황과 좀 비슷해 보이네요. 전염병을 퍼뜨리는 사람이 되지 않고자 먼저 자신을 차단시키고 가두는 일상이 떠오릅니다.
사람에게 주어진 행복과 불행은 공평하지 않은 것 같아요. 전 고통 총량의 법칙 같은건 없다고 생각해요.
벌써 필립 로스의 작품을 10편이나 읽으셨네요 👍😊📕

새파랑 2022-02-03 23:46   좋아요 5 | URL
미래를 예측한 필립 로스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ㅋ 정말 지금 상황과 비슷한 분위기와 감정이 느껴졌어요. 불행이 오더라도 이를 잘 극복하는게 필요하다는 생각도 해봤습니다 ^^

scott 2022-02-04 00:0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필립 로스는 새파랑님에게 피할수 없는 작가!ㅎㅎ

이 리뷰 담달
이달의 리뷰로
당선 된다에
제 엄쥐를 👍

새파랑 2022-02-04 06:31   좋아요 3 | URL
이 책을 읽고 필립 로스가 더 좋아졌습니다 ㅋ 아직도 읽을 책이 절반은 더 남은거 같아서 기분이 좋네요 ^^

희선 2022-02-04 01:21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소설에는 피할 수 없는 운명을 맞는 사람이 나오기도 하죠 그런 일은 누구한테나 일어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 일이 일어났을 때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모를 것 같아요 여기 나오는 켄터와 다르지 않을 듯합니다


희선

새파랑 2022-02-04 06:32   좋아요 4 | URL
피할수 없는 일은 즐겨라고 하는데 불운은 그렇게 할 수 없겠죠? 저도 켄터랑 비슷하게 행동했을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ㅜㅜ 코로나의 불행이 빨리 끝났으면 좋겠네요~!!

청아 2022-02-04 09:56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역시 필립로스 전문가 새파랑님!👍 110페이지 문장 다시 봐도 날카롭네요!! 켄터 입장에서 아무렇지 않기는 힘들것 같아요. 여자친구의 도움을 받았더라면 전혀 다른 이야기가 되었겠죠? 앞쪽이 그런대로 평이하게 흘러가서 오히려 계속 불안해하며 결말로 읽으며 갔던 기억이 납니다.덕분에 다시 감동이 느껴져요^^*

새파랑 2022-02-04 10:17   좋아요 2 | URL
전 예전에 미미님 리뷰를 실눈뜨고 읽어서 결말을 모르고 읽었는데 읽으면서도 설마 설마 했는데 설마가 사람집더라구요 😅 그래도 너무 좋았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