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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메시스
필립 로스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5월
평점 :
N22020
"우리는 아무런 근거 없이 우리 자신을 가혹하게 심판하기도 해, 하지만 잘못된 책임감은 사람을 쇠약하게 만들 수 있어."
고의는 아니었지만 나로 인해 누군가가 피해를 받는 상황이 발생한다면 어떤 생각이 들까? 현실적인 사람이라면 자신의 죄가 없다는 변명거리를 먼저 찾고 자기합리화를 하겠지만, 책임감이 강한 사람이라면 변명 보다는 죄책감을 느끼고 자기 자신에 대한 반성과 함께 용서를 구할 것이다.
당연히 후자처럼 행동하는게 맞다고 생각하지만 현실에서는 그런 사람이 결코 많지는 않다. 후자처럼 행동하다가는 모든 비난을 내가 받을 수 있기 때문에, 그리고 모든 책임을 내가 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상대가 고개를 숙일수록 더욱 모질게 대하는 사람을 우린 주위에서 너무나 쉽게 볼 수 있다.
"필립 로스"의 <네메시스>의 주인공 "캔터"는 후자와 같은 사람이다. 고의는 아니었지만 자신이 "폴리오(역병)"를 퍼뜨렸다는 사실 때문에 큰 죄책감을 느끼고 죽을때까지 불행을 안고 살아가게 된다. 그런데 이런 역병은 왜 생기는 걸까? 하느님의 의지일까? 아니면 인간에 대한 천벌(Nemesis)일까?
미국의 '위퀘이크' 유대인 거주구역에서 방과후 체육선생을 하고 있던 20대의 "캔터", 그의 또래들은 2차세계대전에 참전하지만 그는 시력이 나빠서 징집되지 못한다. 이러한 사실 때문에 마음 한구석에 죄책감을 가지고 있지만, 그는 뛰어난 운동신경과 책임감으로 인해 학생들과 부모님들의 존경과 신뢰를 받고 있었다.
무더운 여름날 야외 운동장에서 체육활동을 하고 있던 그와 학생들 앞에 이탈리아인 무리들이 나타나서 시비를 건다. 자신들은 '폴리오'를 퍼뜨리러 왔다면서 말이다. 그러면서 운동장 앞에 침을 잔뜩 밷는다. 그러나 "켄터"는 이에 위축받지 말고 이탈리아인들을 쫓아낸다. 그리고 그들이 뱉은 침을 딲아낸다.
["그전에 폴리오를 먼저 좀 퍼뜨려야지. 우리한텐 그게 있는데 여긴 없잖아. 그래서 여기 와서 좀 퍼뜨려주자고 생각했지."] P.21
이탈리아인이 원인이었을까? 아마 아닐것이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이탈리아인이 다녀간 후 "켄터"가 지도하는 학생들 중 '폴리오'에 걸린 환자들이 나타나기 시작하고, 얼마 후 예년과는 다르게 '위퀘이크'에 많은 '폴리오' 감염자들이 발생한다. 그리고 아무 죄도 없는 어린 학생들은 이 병에 걸려서 죽기까지 한다. 그들은 왜 그런 불행을 겪어야 했던걸까?
["왜 비극은 늘 그것을 당할 이유가 전혀 없는 사람에게 덮치는거요."] P.53
[다시는 나올 수 없는 상자 안에. 열두 살짜리가 영원히 열두 살짜리로 머물게 되는 상자 안에, 나머지 사람들은 매일 나이를 먹으며 살아가지만, 그는 늘 열두 살이다. 수백만 년이 흘러도 그는 여전히 열두 살이다.] P.69
"켄터"의 여자친구 "마샤"는 '인디언 힐'이라는 산속에 위치한 여름방학 캠프의 선생님으로 일하고 있었다. 고향에 있는 남자친구가 걱정된 그녀는 자신이 일하고 있는 캠프에 빈자리가 났다고 "캔터"에게 알리고, 그가 안전한 '인디언 힐'로 와주기를 바란다. 하지만 자신이 가르치고 있는 학생들을 두고 떠날 수 없었던 "켄터"는 여자친구의 제안을 거절한다. 하지만 그녀는 그가 떠나는 행동이 절대로 비겁한게 아니라면서 그를 설득한다.
[이런 때 뉴어크를 떠나는 건 절대 비겁한 일이 아냐. 난 널 알아. 네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아. 하지만 너는 지금 그대로도 아주 용감해, 인디언 힐에 온다 해도 정말이지 전혀 양심에 거리낄 것 없이 그냥 또다른 일을 하는 것일 뿐이야. 너 자신에 대한 또하나의 의무를 이행하는 것이고, 행복해지는 의무 말이야. 버키, 그저 신중하게 위험에 맞서자는 얘기야. 이건 상식이라고.] P.93
그녀의 계속되는 설득에 조금씩 흔들리던 "켄터"는 학생들이 점점 감염자가 늘어남에 따라 두려움과 혼란을 겪는 모습을 지켜면서 떠나고 싶은 마음을 굳히게 된다. 그리고 그녀에게 '인디언 힐'로 가겠다고 말한다. 죽음과 혼란의 공포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켄터", 하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학생들을 버리고 도망갔다는 죄책감을 가지고 있었다.
[두려움이 덜할수록 좋아. 두려움은 우리를 나약하게 만들어. 두려움은 우리를 타락시켜. 두려움을 줄이는 것, 그게 자네의 일이고 내 일이야.] P.110
'폴리오'의 청정지역에서, 자신의 애인과 함께, 자신이 잘하는 역할을 하면서 "켄터"는 잠시 행복한 나날을 보낸다. 그곳에 있던 학생들과 선생님들은 모두 그를 좋아했다. 그런데 그의 행복은 오래 갈 수 없었다. 그곳에서도 갑작스럽게 '폴리오' 환자가 발생한 것이었다. 그리고 "켄터"가 그곳에 오기 전까지는 청정지역이었는데, 그가 온 이후로 '폴리오' 환자가 발생했다는 것은 그가 전염병을 가지고 왔다고 의심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켄터" 본인 또한 이를 의심하게 되고 자진해서 검사를 받는다. 그리고 그는 확진 판정을 받고, 48시간이 지난 후에 "폴리오"의 고통을 경험하게 된다.
[그런 다음 포치로 나가 이제 곧 그의 밑에서 일하는 실무진이 모여들 호수를 내려다보며 스스로에게 피할 수 없는 질문을 던졌다. 내가 아니면 누가 이곳에 폴리오를 가져왔겠는가?] P.225
이후 그는 불구가 되고, 사랑하는 사람을 모두 떠나보내며, 혼자서 죄책감을 지니고 고통을 감내하는 삶을 살아간다. 몸만 망가진게 아니었다. 그의 마음은 처참히 무너져 있었다. 무엇때문에 그는 이런 고난을 겪어야 했던 걸까? 과연 신은 존재하는 걸까?
[그의 분노의 대상은 이탈리아인이나 집파리나 우편물이나 우유나 돈이나 악취가 나는 시코커스나 무자비한 더위나 호러스가 아니라, 도무지 앞뒤가 맞지는 않지만 사람들이 두려움과 혼란 때문에 유행병을 설명하기 위해 내어놓는 그 모든 원인이 아니라, 심지어 폴리오 바이러스가 아니라, 그 원천, 그 창조자 바이러스를 만든 신이었다.] P.130
[그가 자신에게 남은 명예를 보전하는 유일한 방법은 자신을 위해 원했던 모든 것을 거부하는 것이었다. 만일 마음이 약해 그렇게 하지 못한다면 그는 마지막 패배를 겪게 되는 셈이었다.] P.263
<네메시스>는 우연이라는 것이, 두려움이라는 것이 인간의 삶을 어디까지 망가뜨릴 수 있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작품이었다. 혹시 다른 선택을 했더라면 결말이 달라졌을까? 왠지 어떤 선택을 했든간에 그의 불운은 필연이었을지도 모른다. 거부할 수 없는 운명의 굴레. 책을 읽으면서 나 역시도 이런 불운과 만날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싸한 느낌이 들었다.
"필립 로스"는 <네메시스>를 끝으로 절필을 선언했다고 하며, 그래서 이 작품은 그의 마지막 작품이 되었다. 이러한 사실 때문인지 <네메시스>의 주인공 "켄터"의 결말이 그의 작품 중 가장 무기력하고 가장 안타깝게 느껴졌으며, 왠지 쓸쓸하고 힘없는 말년의 "필립 로스"와 겹쳐보였다. (실제로 그의 말년이 그랬다는 것은 아니다. 솔직히 잘 모른다 ㅎㅎ)
<네메시스>는 "필립 로스"의 다른 작품들에 비해 강한 성적 묘사나 거친 화법이 등장하지 않고, 발암을 유발하는 인물도 없다.(이탈리아인들은 제외하고...) 내가 그동안 접한 그의 작품 중 가장 읽기에 수월한 순한 맛의 작품이라고 확신한다. 하지만 순한 맛이라고 해서 작품에서 다루고 있는 문제의식까지 순한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네메시스>는 그의 작품 중 가장 묵직한 메세지를 독자에게 들려준다. 당신도 언젠가는 피할 수 없는 불운을 만날 수도 있을 거라고, 하지만 불운이 지나간 후의 인생은 당신의 의지에 달렸다고 말이다.
["자신에게 맞서지 마세요. 지금 이대로도 세상에는 잔인한 일이 흘러넘쳐요. 자신을 희생양으로 만들어 상황을 더 나쁘게 만들지 말라고요."] P.27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