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나 위로가 되는 책. 영원히 간직해야 겠다.




시작은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는 일이지만 그보다 먼저 나에게 그동안 익숙했던 시간과 공간을 얼마쯤 비우고 내어주는 것에서 출발하는 것입니다 - P15

온갖 무렵을 헤매면서도

멀리만 가면 될 것이라는 믿음

그 끝에서 우리는

우리가 아니더라도 - P21

사람은 좋아하는 이에게 좋아하는 것을 건네는 법이니까요. - P31

몇 해가 지난 일이지만 이상하게도 저는 아직 그 길 어딘가를 걷고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이 탓에 과거는 가깝고 미래는 멀게 느껴집니다. - P38

과거를 생각하는 일에는 모종의 슬픔이 따릅니다. 마음이 많이 상했던 일이나 아직까지도 화해되지 않는 기억들이 슬픔을 몰고 오는 것은 당연한 일이겠지만 문제는 즐겁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남은 장면을 떠올리는 것에도 늘 얼마간의 슬픔이 묻어난다는 것입니다. 아마 이것은 켜켜이 쌓인 시간이 만들어낸 일이라 생각합니다. - P38

그해 가을 같지만 그해 가을은 아닌 곳에서 저는 잘 지내고 있겠습니다. 그해 가을은 아니지만 그해 가을 같을 곳에서 강건하게 계셔야 합니다.
- P41

저는 아무래도 이 세 가지 말을
영영 이해하지 못할 것입니다. - P65

그때 저는 침묵도 부드럽고 다정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침묵을 불편해하지 않는 사람과 함께 침묵의 시간을 보내는 일이 참 귀하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어떤 말이 침묵을 닮았고 또 어떤 말은 침묵과 거리가 멀다는 것을 그때 배웠습니다. - P67

앞으로도 저는 낯선 식당들에서 자주 혼자 밥을 먹으며 살아갈 것입니다. 꼭꼭 씹어 먹다가 저처럼 혼자 있을 법한 이에게 으레 전화를 한 통 걸기도 할 것입니다. ‘밥 먹었어?‘로 시작되어서 ‘밥 잘챙겨 먹고 지내‘로 끝나는 통화. - P73

‘저녁은 저녁밥 먹으라고 있는 것이지, 너처럼 후회하고 괴로워하라고 있는 게 아니야‘ - P91

어쩌면 기억이라고 하는 것은 특정한 장소에 반쯤 머물러 있고, 나머지 반은 우리의 머릿속에 있는 것이라는 생각도 해보았습니다.
- P97

하지만 아직까지도 숙취의 명약이라는 것은 찾지 못했습니다. 고민을 더 깊이 가져가보면 아마 그런 약은 앞으로도 나타나지 않을 것이며 또 없는 것이 당연하다는 생각도 듭니다. 어떤 괴로움이든 그것을 충분히 다 괴로워한 후에야 비로소 끝이 나는 것일 테니까요. - P122

나에게 상처를 줄 수 있는 자격은 나를 조금이린도 생각하고 걱정하고 사랑하는 사람만 가질 수 있으니까요. 빛과 비와 바람만이 풀잎이나 꽃잎을 마르게 하거나 상처를 낼 수 있지요. 빛과 비와 바람만이 한 그루의 나무를 자라게 하는 것이니까. - P133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것들이 많다는 것은 앞으로 이루어질 일들이 많다는 사실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이는 역시 저의 바람이자 희망입니다. 그리고 믿음이기도 합니다.
- P161

지상의 모든 사랑이 그러한 것처럼, 애초부터 새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거나 어쩌면 날아가기 위해 존재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 P180

누가 먼 곳에서 부르면 가야지. 당장은 못 가더라도 길이 아무리 고단해도 가야지. 멀리 있는 이를 이유 없이 부르는 사람은 없으니까. 누가 멀리서 부르면 가야지. - P181


댓글(4)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scott 2022-02-13 01: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박준 작가님 산문도 영롱하죠
[온갖 무렵을 헤매면서도

멀리만 가면 될 것이라는 믿음

그 끝에서 우리는

우리가 아니더라도 ...]

새파랑 2022-02-13 09:44   좋아요 0 | URL
제가 시를 많이 읽어보진 않았지만 박준 시인 작품은 좋더라구요 ^^

바람돌이 2022-02-13 17: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위로가 되는 책이라고요. 잘 뒀다가 제게 위로가 필요한 순간에 확 캐치해서 읽어야겠네요. ^^

새파랑 2022-02-13 17:59   좋아요 0 | URL
바람돌이님 감성(?)하고 잘 맞았으면 좋겠습니다~!! 전 완전 좋았어요 ^^
 

엄청난 책이다.


비록 오늘날 우리는 모두 그렇게 죽었지만, 우리의 쾌활함은 남아 있고, 우리는 우리 주위의 젊은 청년들의 시선 속에서 서로를 만나곤 하는 것이다. 인생은 젊다. 늙어가면서 그것은 삶과 시간을 만들고, 작별도 만든다. 그것은 내게서 모든 것을 앗아갔고 더 이상 내게 줄 것이 없다. 나는 가끔 내가 잃은 것을 되찾기 위하여 젊은이들이 자주 드나드는 장소를 찾는다. - P364

이십 년 전의 나의 무엇인가가 내게 그대로 남아 있다고, 나는 완전히 사라진 것이 아니라고, 그러면 나는 약간 원기를 회복하고, 내 검을 쥐고서 힘 있는 걸음으로 정원으로 나아가 하늘을 바라보고 칼을 쳐드는 것이다. - P364

내가 영국에 도착한 지 얼마 안 되어 어머니의 첫 편지들이 도착했었다. 그 편지들은 스위스를 통해 비밀리에 왔던 것인데, 스위스에서 어머니의 한 친구가 내게 그것들을 규칙적으로 재발송해주었던 것이다. 어떤 편지에도 날짜는 없었다. 삼 년 육 개월 후, 내가 니스로 돌아갈 때까지, 집에 도착하기 바로 전날까지, 시간을 무시한 날짜 없는 그 편지들은 어디든 꾸준하게 나를 쫓아다니게 된다. 삼 년반 동안 그렇게 하여 나는 나의 의지보다 훨씬 강한 의지와 입김에 의해 지탱되었고, 그 탯줄은 나를 살아 있게 하는 심장보다 더 강인한 심장의 용맹을 내 피에 전달해주었던 것이다. - P371

"자네가 어디서 살아 돌아왔는지 결코 자넨 모를 걸세." 그럴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신들은 탯줄을 자르는 것을 잊었었던 것이다. 운명에게 한 형태와 의미를 주고자 애쓰는 모든 인간적 손을 질투하는 그 신들은 내 몸이 피 흘리는 하나의 상처에 지나지 않게 될 때까지 내게 악착스레 달라붙었지만, 그러나 그들은 내 사랑에 대해 전혀 무지했던 것이다. 그들은 그 탯줄을 자르는 것을 잊어버렸었던 것이고, 그래서 나는 소생했다. 내 어머니의 의지와 생명력과 용기가 계속 내게 흘러와, 나를 먹여주었던 것이다. - P389

보스톤 기에서는, 조종사는 항공사나 포탄수로부터 차단판으로 격리되어 있었으므로, 공중에서는 서로를 위해 아무것도 해줄 수가 없었다. 게다가 아르노가 눈의 부상을 내게 알려온 바로 그 순간에, 나는 배에 세찬 타격을 입었다. 순식간에 피가 바지에 배어 손에 흥건히 고여들었다. - P398

아주 다행스럽게도 우리는 바로 전에 가장 중요한 곳을 보호하라고 철모를 배급 받았었다. 영국인이나 미국인들은 당연스럽다는 듯 그것을 머리에 썼다. 그러나 프랑스 인들은 모두, 그들이 훨씬 소중하게 생각하는 부분을 덮는 데 사용하고 있었다. 나는 얼른 그 철모를 들추고서, 제일 중요한 곳은 무사히 건져냈음을 확인하였다. 어찌나 안심이 되었던지 우리가 처한 상황의 심각함조차 특별히 대단하게 생각되지 않을 지경이었다.

(로맹 가리식 유머) - P398

그러나 어머니는 자신이 나를 받쳐주고 있다고 느끼지 못하면 내가 서 있을 수 없음을 잘 알고 있었고, 그래서 준비를 했던 것이었다. 죽기 앞선 몇 달 동안 어머니는 거의 이백오십 통의 편지를 썼고, 그것을 스위스에 있는 한 친구에게 보냈던 것이다. 내 아들은 알지 못할 것이다, 편지들은 규칙적으로 발송될 테니까. 바로 그거였다. 마지막으로 어머니를 만나러 성 앙트완 병원에 갔던 날, 어머니의 시선 속에서 어떤 계략의 표정을 잡아내었을 때, 어머니가 마음속으로 궁리해내었던 것은, 그리하여 어머니가 죽은 지 삼 년이 넘도록 나는 계속 내가 지탱하기 위해 필요한 힘과 용기를 어머니로부터 받았던 것이다. 탯줄은 계속 기능을 발휘하고 있었던 것이다. - P409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댓글(4)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페크pek0501 2022-02-12 11:1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세상의 악은 거의가 나쁜 상황에서 오는 것. - 흉내 내봄

새파랑 2022-02-12 12:02   좋아요 1 | URL
ㅋㅋ 잘 맞는거 같아요~!! 이날은 책을 한줄도 못읽은 날이었네요 ㅜㅜ

scott 2022-02-12 16: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새파랑님의 새벽 약속은!
열독!
쟁여둔 책 완독 하는 시간 ^ㅅ^

새파랑 2022-02-12 20:19   좋아요 0 | URL
이번주 내내 이 책만 읽은거 같아요 ㅋ 요즘은 새벽 시간만 읽고 있어요~!!
 

로맹가리를 만든건 팔할이 어머니였다.






나는 바다에 대하여 말할 줄 모른다. 내가 아는 모든 것은, 그것이 일시에 나를 내 모든 의무로부터 해방시켜준다는 것이다. 바다를 바라볼 때마다 나는 하나의 행복한 익사자가 된다. - P123

"내가 한 말을 명심해두어라. 지금부터 너는 나를 위해 싸워야 한다. 저들이 주먹으로 너를 어떻게 하건 나한텐 상관없어. 내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은 그게 아니야. 필요하다면 넌 죽기라도 해야해" - P149

서둘러야겠다는 것을, 어서 빨리 불후의 명작을 써야겠다는 것을 느꼈다. 나를 전무후무한 최연소 톨스토이로 만들어, 즉시 어머니의 고생을 보상해주고, 어머니 일생에 왕관을 가져다줄 수 있게 할 걸작을. - P180

나이는 상관없지요, 니나, 가슴이란 결코 늙지 않으니까요. 거기다 가슴에 자국을 남긴 공허나 부재는 언제까지나 남아 있어서 더욱 커지기만 할 따름이니까요. 나도 내 나이를 분명히 의식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인간관계란 성숙했을 때 활짝 피어날 수 있는 것이지요. - P196

나에겐 도망칠 권리가, 어머니의 도움을 마다할 권리가 없었다. 나의 자존심, 나의 남성다움, 나의 존엄성, 이 모든 것은 고려의 대상이 될 수 없었다. 내 미래에 대한 전설이 어머니를 살아 있게 하는 힘이었다. - P213

"왜 불합격했는지 알고 싶은가?"

"네가 귀화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너무 최근에 귀화했어, 삼 년은 길다고 할 수 없어." - P257

"넌 무엇보다, 멍청이다." - P258

나는 그때 조국 해방 전선의 유공자였고, 레지옹 도뇌르 기사장 수여자였으며, 십자 무공 훈장 소유자였다. 그리고 나는 전혀 그것을 숨기려 하지 않았다. 나는 겸손보다는 분노 때문에 훨씬 더 잘 안색을 붉히는 사람이다. - P261

"네겐 아무 일도 생기지 않는다" 하고 어머니가 고요히 말했다. 어머니의 얼굴은 완벽한 확신과 자신감의 표정을 담고 있었다. 마치 어머니는 아는 것 같았고, 운명과 협약이라도 맺은 것 같았으며, 망쳐버린 자신의 운명 대신 어떤 대가를 제공 받았고 어떤 약속을 얻어낸 것 같았다. 나 역시 그것을 확신케 되었다. - P270

"아무 일도 없을 거예요. 엄마, 약속할게요." - P270

오늘까지도, 가끔 나는 내가 알지도 못하는 사이에 내생에 가장 위대한 사랑의 곁을 스쳐 지나갔던 것은 아니었나 자문해보곤 한다. - P281

그녀가 나를 기다리고 있는 동안 그가 그녀의 인생속으로 들어왔으리라고 나는 짐작하고 있다. 그것은 물론 내 잘못이었다. 결코 사랑하는 여자의 곁을 떠서는 안 되는 것이다. 고독이 그들을 사로잡고, 의심, 실망, 그러고는 그 꼴이 되어버리니까 말이다. 아마도 그녀는 나에 대한 신뢰를 잃어버리고 내가 다시 돌아오지 않으려니 생각하고는, 자기 인생을 다시 시작하기로 결심하였으리라. - P324


댓글(2)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바람돌이 2022-02-12 03: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 로맹가리!
이 책 저도 아직 안 읽었는데 지금 사놓고 대기중이라지요. 언제 읽을지???

새파랑 2022-02-12 08:39   좋아요 1 | URL
이 책 읽으시면 로맹가리와 어머니가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드실겁니다~!!
 

천천히 읽어야겠다.


아무튼 내가 어머니의 사랑과 집안에서 나를 감싸주던 애정이란, 밖에서 날 기다리고 있는 것과는 아무 상관없는 것임을 배우게 되었던 것은 발랑틴의 덕이다. 또 인간은 어떤 것도 결정적으로 획득하고 확고히 자기 것으로 만들어 간직할 수없음도. - P89

체념하는 것은 더욱 어렵다. 나 또한 예술가로서의 생애에 발을 내디딘 그때부터 손에 펜을 들고, 몸을 둘로 접고서 다리는 허공에, 머리는 아래를 향한 채 공중그네에 매달려 이를 악물고, 근육이란 근육은 몽땅 긴장하고, 이마에 땀을 흘려가며 상상력과 의지의 막바지에 다다른 채, 나 자신의 한계에 도달한 채, 허공으로 던져진 나 자신을 발견하곤 하였던 것이 대체 몇 번이었던가? - P97

가장 극심한 긴장의 순간에도 초연한 듯 보여야 하고, 가장 격렬한 경련의 순간에도 가뿐해 보여야 하며, 보기 좋은 미소를 지어야 하고, 호흡과 대담성과 재능 부족인 양 ‘끝‘이라는 단어가 때 이르게 와버리는 것을 막기 위해 이완과 피치 못할 추락의 시간을 늦추고 비행을 연장시켜야만 하는 것이다. - P98

"심부름꾼에게 시켜서 큰 꽃다발을 보내는 것보다 네가 직접 작은 꽃다발을 손에 들고 가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라는 걸 명심해둬라. 모피 코트를 여러 벌 가진 여자들을 경계해야 된다. 그런 여자들은 언제나 그런 걸 또 한 벌 얻었으면, 하고 기대하거든,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그런 여자들한텐 가지 마라. 선물을 받을 사람의 기호를 잘 알고 분별 있게 선물을 선택하도록 해라. - P103

사는 동안 나는 많은 전투에서 이겼다. 그러나 부분적인 전투에서 아무리 많이 이겨봤자 소용없고, 전쟁에서 이길 수 없다는 생각에 익숙해지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 P121


댓글(4)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레삭매냐 2022-02-10 11:3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 책을 읽는데 왜
그렇게 많은 시간과 시
도가 필요했는지 모르겠
더라구요...

근 3번 정도 도전해서
완독한 것 같습니다.

새파랑 2022-02-10 11:47   좋아요 3 | URL
잘 안읽히나 보군요 ㅜㅜ 전 요새 갑자기 시간이 너무 안나서 주말에나 몰아 읽을수 있을거 같아요 ㅜㅜ

저도 완독해 보겠습니다~!!

서니데이 2022-02-10 22:12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이 책 2007년에 나왔는데, 아직도 판매중이네요. 로맹가리 책이라서 그런걸까요. 대부분 몇 년 지나면 품절되고 개정판이 나오는 책이 적지 않은데, 이전의 책이 계속 나와서 좋은 것 같습니다.
새파랑님, 따뜻한 하루 보내세요.^^

새파랑 2022-02-11 06:23   좋아요 3 | URL
저는 중고로 샀어요 ㅋ 이번주에 바빠서 진도가 좀 더딥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