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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미인초 ㅣ 현암사 나쓰메 소세키 소설 전집 5
나쓰메 소세키 지음, 송태욱 옮김 / 현암사 / 2014년 9월
평점 :
N22027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타락하기도 하고 깨닫기도 하는 것과 같은 거겠지."
나쓰메 소세키의 <우미인초>는 인간의 삶과 죽음에 대한 한권의 철학책이다. 나쓰메 소세키는 인간이라는 존재를 도대체 어디까지 들여다 본 걸까? 책을 읽는동안 왠지 쓸쓸한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그 기분은 책을 다 읽고나서도 한참 이어졌다.
[죽음은 만사의 끝이다. 또 만사의 시작이다. 시간을 쌓아 날을 이루는 것도, 날을 쌓아 달을 이루는 것도, 달을 쌓아 해를 이루는 것도, 결국 모든 것을 쌓아 무덤을 이루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무덤 이쪽의 모든 다툼은 살 한 겹의 담을 사이에 둔 업보로, 말라비틀어진 해골에 불필요한 인정이라는 기름을 부어 쓸데없는 시체에게 밤새 춤을 추게 하는 골계다. 아득한 마음을 가질 수 있는 자는 아득한 나라를 그리워하라.] P.27
[우주는 수수께끼다. 수수께끼를 푸는 것은 사람들 각자의 마음이다. 마음대로 풀고, 마음대로 안심하는 사람은 행복하다. 의심하고 들면 부모도 수수께끼다. 형제도 수수께끼다. 아내도 자식도, 그렇게 보는 자신조차 수수께끼다. 이 세상에 태어나는 것은,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를 억지로 떠맡고 백발이 되어도 꾸물꾸물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밤중에도 번민하기 위해서다.] P.61
<우미인초>에 등장하는 인물이 많고, 이야기도 다소 복잡하지만 상당히 재미있다. 혹시나 나중에 책을 읽으실 분들을 위해 인물들을 간단히 정리하자면,
[고노 집안]
고노 : 갑부집 아들에 철학자로 물욕이 없으며, 아버지는 외국에서 돌아가셨고, 어머니인 수수께끼 여인은 계모이다. 상속받은 모든 재산을 계모와 동생에게 주고 집을 떠나 산에 들어가려고 한다.
후지오 : 고노의 여동생, 계모의 딸. 클레오파트라 같은 인물로, 어렸을 때 아버지가 점찍어둔 한량인 무네치카와의 결혼은 거부하고, 자신이 마음대로 할 수 있고 데릴사위로 데려올 수 있는 오노와 결혼하려고 한다.
어머니(수수께끼 여인) : 고노와 후지오의 엄마. 계산적이고 겉과 속이 다르며, 친아들이 아닌 고노를 진심으로 대하지 않는다. 그리고 자신의 미래를 뒷바라지 할 수 있는 오노를 사위로 데려오려고 수를 쓴다.
[무네치카 집안]
무네치카 : 한량에 외교관 시험에 한번 떨어진 경험이 있고, 고노의 친구이다. 고노의 동생인 후지오를 마음에 두고 있으며, 겉보기와는 다르게 가장 바른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으며 도리라는 것을 안다.
이토코 : 무네치카의 여동생으로 후지오와는 다른 바른 생각을 가지고 있다. 고노를 마음속으로 사모하고 있고, 그의 고민을 유일하게 이해하
할 수 있는 사람이다. 하지만 출가하려는 고노를 막을 수 없어서 안타까워 한다.
[오노 집안]
오노 : 학식이 뛰어나고 시도 쓰고, 박사논문을 쓰고 있는 수제다. 하지만 부모님이 없고 가난하여 스승인 이노우에의 도움을 받아 도쿄의 대학에 들어간다. 하지만 스승의 은혜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은 점점 희미해져가고, 자신의 풍족한 미래를 위해 돈도 많고 자신에게 관심있어하는 후지오에게 의도적으로 접근한다. 하지만 그에게는 오래전부터 결혼하기로 되어 있는 여인인 사요코가 있었다. 그녀는 오노의 스승인 이노우에의 딸이었다. 하지만 결혼에 관한 어떤 확약이나 계약이 있었던 아니었기에 오노는 사요코를 떠나려고 한다. 이미 마음은 떠났다.
[사요코 집안]
이노우에 : 사요코의 아버지이자 오노의 스승으로, 교토에서 생활하면서 아무것도 없었던 오노를 자식처럼 키워서 도쿄의 대학에 보낸다. 그리고 자신과 딸의 미래를 오노에게 맡기고 싶어하고, 딸과 오노가 결혼할 거라 믿는다.(그런 암시가 있었다.) 오노가 도쿄로 떠나고 5년이 지난 후, 딸과 오노를 결혼시키기 위해 교토에서 도쿄로 이사를 가지만, 오랜만에 만난 오노는 어딘가 변해 있었다. 또한 딸에 대한 오노의 애정이 식어버린 걸 어렴풋이 느낀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를 받아들이지 못한다.
사요코 : 이노우에의 딸. 오노가 도쿄의 대학에 가게 되어 5년동안 떨어져 지내지만, 그에 대한 애정을 항상 지키고 있었던 여인. 자신의 속마음을 내색하지는 않지만 이미 오노를 자신의 남편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도쿄에 와서 만난 오노는 그녀가 알고있던 사람이 아니었다. 자꾸 그녀를 피하는 오노를 보면서 왠지 모를 불안감을 느낀다. 그럼에도 그를 기다린다. 한번 주었던 마음은 쉽게 회수할 수 없었다.
(등장인물에 대해 간단히 쓰다보니 거의 줄거리가 되었다.)
이야기의 중심은 젊은 남녀의 사랑이지만 이것은 단지 소재일 뿐이고, 소세키는 캐릭터가 확실히 구분되는 각각의 인물들을 통해 인간의 도리란 무엇인지, 인간은 왜 고독한건지, 인간의 마음은 왜 변하는가에 대한 자신만의 철학을 들려준다.
[떠나는 자는 무자비하게 떠나간다. 미련도 배려도 없이 떠나간다.] P.163
[거짓말은 복국이다. 그 자리에서 탈만 나지 않는다면 그것만큼 맛있는 것도 없다. 그러나 독이 있기라도 하면 괴로워하며 피를 토하지 않으면 안 된다. 게다가 거짓말은 진실을 되살린다.] P.246
[상상하면 두려워진다. 인정에 진절머리를 치면 칠수록 무시무시한 전개를 직접 보게 될지도 모른다.] P.300
["내가 보기에 진지함이라는 건 실행이라는 두 글자로 귀착하는 거네. 입으로만 진지해지는 것은 입만 진지해지는 거지 인간이 진지해지는 게 아니네. 자네라는 한 인간이 진지해졌다고 주장한다면, 그렇게 주장하는 만큼의 증거를 실제로 보여주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네."] P.406
다만 책의 마지막 부분은 다소 아쉬웠다. "무네치카"가 "오노"를 설득하는 장면은 왠지 설득력이 떨어졌고, 이미 한번 돌아서버린 "오노"가 다시 돌아온다고 했을때 이를 받아준 "사요코"의 마음도 공감이 안되었다. 이미 사랑이 식어서 한번 떠났던 마음인데, 다시 사랑하는게 가능할까? 무엇보다도 권선징악 같은 결말이 가장 아쉬웠다.
하지만 소세키가 말하고자 했던게 이야기 자체보다는, 삶과 죽음에 대한 자신만의 철학이었다면 납득이 가는 결말이기도 하다. 누군가는 죽어야 했으니까 말이다. 이 책의 마지막 페이지에 실린 "고노"의 일기는 삶과 죽음에 대한 소세키의 철학이 응축되어 있는데, 소세키의 팬이라면 꼭 읽어봐야 된다는 생각이 든다.
[10년은 3천6백 일이다. 아침부터 밤까지 보통사람의 심신을 피로하게 하는 문제는 모두 희극이다. 3천6백 일 내내 희극을 행하는 자는 결국 비극을 잊는다. 어떻게 삶을 해석할까 하는 문제로 번민하다 죽음이라는 글자를 염두에 두지 않게 된다. 이 삶과 저 삶의 선택에 바쁘기에 삶과 죽음이라는 최대 문제를 방치한다.] P.433
Ps. 소세키 전작 목표인 14권 중 이제 11권을 읽었고, 세 작품이 남았다. (갱부, 춘분 지나고까지, 명암) 한달에 한권씩 읽으면 5월이면 전작을 끝낼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