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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해, 여름 손님 (양장) ㅣ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안드레 애치먼 지음, 정지현 옮김 / 잔(도서출판) / 2018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N22032
˝어쩌면 내가 처음부터 하고 싶었던 일은 영원히 기다리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루어질 수 없는 일을 시작하는건, 끝이 좋지 않을거라 예상되는 일을 시작하는건 많은 각오를 필요로 한다. 그럼에도 어떤 사람은 그 일을 시작한다. 그 이유는 끝은 슬프겠지만 그 과정 속에서 기쁨을 발견할 수 있다는 막연한 희망 때문일지도 모른다.
[절대로 오랫동안 바라볼 수 없지만, 왜 그럴 수 없는지 알려면 계속 바라봐야만 했다.˝] P.19
이탈리아의 작은 별장에서 스물넷의 대학생 올리버와 열일곱의 학생 엘리오는 그 해 여름 운명처럼 만난다. 그리고 엘리오는 그에게 즉각적인 사랑을 느낀다. 무엇 때문이었는지 모르지만 엘리오는 올리버 앞에서만 서면 떨린다, 그의 앞에만 서면 작아진다, 마음을 숨긴다. 그는 남자였고, 나도 남자였으니 어떻게든 마음을 숨기는게 맞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마음은 그렇게 숨겨지는게 아니었다.
[내가 무엇을 원했을까? 가차 없이 속마음을 인정할 준비가 되어 있는데도 왜 내가 뭘 원하는지 알 수 없었을까? 어쩌면 그에게 최소한으로 바란 건 내가 잘못되지 않았다고, 또래보다 덜한 인간이 아니라고 말해 주는 것이었으리라. 내가 그의 발아래에 너무도 쉽게 떨어뜨려 버린 존엄성을 그가 고개숙여 주워 준다면 더 바랄 게 없을 터였다.] P.44
그의 행동, 그의 말 한마디, 그가 입고 있는 옷, 그가 보내는 눈빛에 엘리오는 무너진다. 그리고 마음속에서, 꿈속에서 그의 몸짓을 떠올린다. 그의 마음도 나와 같다면 얼마나 좋을까, 나는 왜 그에게 끌리는 걸까, 나와 너무 닮았기 때문일까?
[그의 한마디에 행복해질 수 있다면 쉽게 절망에 빠질 수도 있다는 것을 그때는 몰랐다. 불행해지고 싶지 않으면 그런 작은 행복을 조심해야 한다는 것을.] P.69
그런데 그때 마법이 일어났다. 올리버 역시 엘리오의 마음과 같았던 것이다. 그도 엘리오에게 끌렸지만 자신의 마음을 숨겨왔던 것이다. 그리고 엘리오만 알고 있는 비밀의 언덕에서 그들은 떨리는 첫 키스를 한다. 하지만 그들은 첫 키스 후 그들의 관계가 더 나가는 것에 대해 죄책감을 느끼고 망설이게 된다. 여름이 끝나면 그들은 헤어질 수 밖에 없었고, 그들의 관계는 용인될 수 없었으니까.
[죽도록 원하지만 시작하면 참을 수 없을지도 모르니 아예 시작하지 않겠다] P.123
[세월이 흘러 그가 여전히 이 책을 가지고 있다면 보고 가슴 아프기를 바랐다. 그보다는 언젠가 그의 책을 살펴보던 누군가가 이 작은《아르망스》를 발견하고 1980년대 이탈리아 어딘가에서 누가 침묵 속에서 쓴 글인지 물어본다면 더 좋을 것 같았다. 그때 그가 슬픔처럼 확 솟구치되 애석함보다는 덜 강렬한 감정을 느꼈으면 했다. 어쩌면 나에 대한 연민이라도.] P.136
하지만 이성보다는 감정에 몸을 맞긴 그들은 더이상 침묵을 참지 못한다. 그리고 자정이 넘은 시각 앨리오는 올리버의 방으로 넘어간다, 서로의 사랑과 강렬한 끌림을 확인한다. 서로의 육체에 몸을 맞긴다. 이 시간의 끝에는 어떤 고난이 기다리고 있을지, 어떤 마음의 변화가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체.
[˝네 이름으로 나를 불러 줘, 내 이름으로 너를 부를게.˝ 태어나 처음 해 본 일이었다. 그를 내 이름으로 부르는 순간 나는 그 전에, 어쩌면 그 후에도 타인과 공유한 적 없는 영역으로 들어갔다.] P.171
이 책을 읽고나서 작년에 읽었던 <모리스>와 <어둠속에서 헤엄치기>가 떠올랐다. 동성애를 다루고 이루어 질 수 없는 사랑을 그렸다는 측면에서는 비슷하지만, 동성애의 정밀(?)한 묘사에 있어서는 차이가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그해 여름 손님>이 앞의 두 작품에 비해 많이 세밀(?)하게 묘사 되어서인지 약간 거부감이 들었다.
첫사랑의 설레이는 감정에 대한 묘사는 너무 아름답고 공감이 되었으나, 그 사랑이 너무 육체(?)적인 면에 집중되어 있어서 다소 비현실적으로 다가왔다. 그해 여름이 끝나고 두 사람이 어쩔 수 없이 헤어진 이후 서로에 대한 그리움을 감추고 살아가야 했던 이야기는 많이 애틋하고 좋았지만 초반부는 좀 그랬다. 특히 복숭아와 수영복 관련 이야기는 많이 충격이었다.
그럼에도 엘리오의 첫사랑에 대한 감정변화와 이에 대한 묘사, 그리고 오랜 세월이 지난 후에도 올리버에 대한 향수를 가지고 살아가는 이야기는 깊은 울림이 있었다.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함께 있었던 시간이 짧더라도, 같이 있을 수 없다 해도, 오랜 시간이 지나더라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나도 너와 같아. 나도 전부 다 기억해.˝ 나는 잠시 멈추었다. 당신이 전부 다 기억한다면, 정말로 나와 같다면 내일 떠나기 전에, 택시 문을 닫기 전에, 이미 모두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이 삶에 더 이상 할 말이 남아 있지 않을 때, 장난으로도 좋고 나중에 불현듯 생각나서라도 좋아요, 나에게는 큰 의미가 있을 테니까, 나를 돌아보고 얼굴을 보고 나를 당신의 이름으로 불러 줘요.] P.310
Ps. <콜미 바이 유어 네임> 영화를 보진 않았지만, 영화를 먼저 보고 이 책을 읽는게 좋겠다는 다른 분들의 생각에 공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