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22036
˝내 머리는 내 가슴을 억제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나쓰메 소세키가 큰 병을 앓고 난 후, 새해 첫날부터 시작해서 춘분지나고 까지 쓸 예정이라서 지은 제목인 <춘분 지나고까지>는 제목이랑 직접적으로 연관이 없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런데 왠지 제목과 책의 내용이 잘 어울린다는 느낌이 드는건 왜일까?
<춘분 지나고까지>는 소세키의 다른 작품들과는 다르게 구성도 약간 특이한데, 여러 단편들들 묶어 놓은 연작 소설이다. 총 7개의 쳅터로 구성어 있고, 모든 이야기의 한 구석에는 이 책의 메인 케릭터인 ˝게이타로˝가 있는데, 어떤 작품에서는 주인공으로, 어떤 작품에서는 화자로 나온다. 7개의 쳅터는 크게 세가지 이야기로 구분할 수 있다.
1. 모리모토 이야기
˝게이타로˝와 같은 하숙집에서 사는 ˝모리모토˝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는 어느 관청에서 일을 하고 있는데 어떤일을 하는지, 어떤 생각을 하는지 궁금증만 자아낼 뿐 ˝게이타로˝에게는 속시원하게 이야기 하지 않는다. 하지만 다양한 인생경험을 쌓아온 그는 ˝게이타로˝에게 신기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일자리를 구하고 있는 ˝게이타로˝에게 자신이 일하는 직장을 소개해주겠다고 한다. 하지만 어느날 그는 밀린 방세만을 남긴채 감쪽같이 사라지고, 이후 ˝게이타로˝에게 편지를 보내서 자신은 현재 만주에 있고 자신의 물건인 뱀 머리가 새겨진 지팡이를 가지라고 한다. 그리고 더이상 ˝모리모토˝는 책에서 등장하지 않는다. 하지만 ˝게이타로˝는 그가 준 지팡이를 가지고 진기한 경험을 하게 된다.
[아무튼 젊을 때는 뭐든지 색다른 것을 해보고 싶어 하는 법이지. 그런데 그 색다른 일을 다 해보고 나서 생각해보면 어쩐지 바보 같고, 그런 일이라면 하지 않는 게 훨씬 나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 뿐이네.] P.35
(중간평가 : 이야기 자체가 재미있지만 이게 뭐지?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2. 게이타로 이야기
결국 직장을 못구한 그는 친구인 ˝스나가˝에게 부탁을 하고, ˝스나가˝는 사업가인 이모부 ˝다구치˝에게 ˝게이타로˝의 취직을 부탁한다. ˝게이타로˝는 ˝다구치˝의 집을 방문하고 그로부터 일자리를 주겠다는 확약을 받는다. 몇일이 지난 후 ˝게이타로˝는 ˝다구치˝로부터 한통의 편지를 통해 임무를 지시받는다. 그 편지에는 눈섭 사이에 커다란 점이 있는 한 남자를 정찰하고 보고하라고 쓰여 있었다. 그리고 그는 지정된 장소에서 한 남자를 기다린다. 아무리 기다려도 남자는 나타나지 않았고, ˝게이타로˝는 그곳에서 예쁘지는 않지만 자신의 눈길을 끄는 20대의 한 여자를 발견한다.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것과 같은 그녀, ˝게이타로˝는 그녀를 남몰래 처다보고 미행한다. 그런데 마침 자신이 정찰해야 할 남자가 나타났는데, 그 남자는 바로 그녀가 기다리던 사람이었다. 40대 중반으로 보이는 이 남자와 그녀는 무슨 관계일까?
(중간평가 : 추리소설?처럼 보였던 이 이야기는 결국 ˝다구치˝의 장난으로 밝혀진다. 만약 내가 현실에서 ˝다구치˝의 장난을 당했다면 한대 때렸을 것이다.)
3. 스나가 이야기
사실 이 책의 진정한 주인공은 ˝게이타로˝의 친구인 ˝스나가˝이며, ˝스나가˝의 이야기가 이 책의 메인이었다. 이 책이 두꺼워서 언뜻 손이 안간다면 213페이지 부터 시작하는 <스나가의 이야기> 부터 읽어도 괜찮을 것 같다.
˝스나가˝에게는 ˝지요코˝라는 사촌 여동생이 있고, 그녀는 ˝다구치˝의 딸이다. 그와 그녀의 부모님은 두 사람이 성인이 되면 결혼을 시키고 싶어했고, 이 바램은 특히 ˝스나가˝의 어머니에게서 강했다.
성격적으로 내향적인 ˝스나가˝는 외향적이고 자신의 감정에 솔직한 ˝지요코˝에게 다소 부담을 느낀다. 그녀에 대한 그의 마음 한구석에 사랑이라는 감정이 약간은 있는 듯 했지만, 자기와 너무나도 달랐던 그녀와의 결혼이 자신에게는 불행이 될거라 미리부터 겁을 먹고 그녀를 멀리하려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지요코˝ 는 계속해서 그에게 다가온다. 그리고 그에게 호감이 있음을 내비치지만 ˝스나가˝는 결코 마음을 열지 않는다.
[나는 늘 생각한다. ‘순수한 감정만큼 아름다운 것은 없다. 아름다운 것만큼 강한 것은 없다‘라고, 강한 사람이 두려워하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 내가 만약 지요코를 아내로 맞이한다면 아내의 눈에서 나오는 강렬한 빛을 견딜 수 없을 것이다. 그 빛이 꼭 분노를 드러내는 것이라고는 할 수 없다. 인정의 빛도, 사랑의 빛도, 혹은 깊은 사모의 빛도 마찬가지다. 나는 분명 그 빛 때문에 꼼짝하지 못할 게 뻔하다. 그것과 같은 정도로 또는 그 이상으로 빛나는 것을 그녀에게 답례로 돌려 주기에는 감정에 좌우되기 쉬운 나는 너무나 모자라다.] P.244
˝스나가˝는 ˝지요코˝에게 접근하는 다른 남자 때문에 극심한 질투심을 느끼기도 한다. 그리고 언뜻 내비치는 ˝지요코˝의 행동에 설레이기도 한다. 하지만 그녀에게 다가가지 못하고, 그녀와의 결혼을 추진하려 하는 어머니의 행동을 멈추게 하지도 않으며 다만 자신의 결정을 미룰 뿐이다. 도대체 무엇이 문제인걸까? 자신의 마음을 알 수 없어서 그런 것일까, 아니면 다른 문제가 있는 걸까? 그러고 보니 왜 어머니는 그렇게 ˝지요코˝와의 결혼을 강하게 원하는 걸까?
[사물의 진상은 모를 때야 알고 싶은 법이지만 막상 알고나면 오히려 모르는 게 약이라며 지나간 옛날이 부러워 지금의 자신을 후회하는 경우도 적지 않은데, 자신의 결론도 어쩌면 그와 비슷한 것일지도 모르겠다고 쓴웃음을 지으며 말하고는 단상에서 물러갔다.] P.321
(중간평가 : 나름 소세키식의 반전이 숨어 있다. 그리고 지레 겁을 먹고 다가서지 못하는 ˝스나가˝의 비겁함이 결코 낯설지 않다. 예전의 내 모습을 보는 것 같다.)
소세키의 작품들이 다 그렇듯이 물 흐르듯 잘 읽혔지만 <춘분 지나고까지>는 그의 다른 작품들에 비해 ‘아~ 좋다‘는 느낌이 들지는 않았다. 게다가 연작 소설이어서 그런지 약간 산만하기까지 했다.
(아니면 책을 읽는 나의 마음이 산만해서 그렇게 느껴졌을지도 모르겠다.)
개인적으로 이 책이 나쁘지는 않았지만 소세키를 전작하려고 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그렇게 추천하고 싶지는 않다.
Ps. 지금까지 현암사 소세키 전집 14편 중 12편을 읽었고, 이제 전작까지는 두편(갱부, 명암) 남았다. 벌써부터 아쉽다. 전작 후에 종합 페이퍼를 써봐야 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