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책을 많이 못읽었다.


아버지 마카르는 나약한 여자애처럼 아들에게 빌붙어 살며 아들의 애인들을 눈앞에서 가로채기 일쑤였고, 토요일만 되면 아들의 월급을 빼앗아 쓰려고 그의 작업장 앞에서 기다리곤 했다. 어머니가 늘 맞으면서 뼈빠지게 일만 하다 죽자, 바로 그전에 애인과 파리로 도망간 누이 제르베즈처럼, 그도 무위도식하는 아버지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도망쳤다. - P122

농장을 헐값에라도 팔고 다른 일을 했어야 했는데, 아마도 그동안 해오던 일이고 언젠가 변할 거라는 희망, 그리고 열정 때문일까요? 일단 이 빌어먹을 땅에 붙들리면 헤어나질 못해요. - P192

"당신, 다 당신 잘못이야! 야생트에게 돈을 준 게 바로 당신이잖아…… 당신은 나를 사랑한 적이 없어. 당신은 늙은 탕녀라고!" 그가 거칠게 밀쳐버리는 바람에 그녀는 힘없이 나뒹굴어 벽에 부딪히면서 주저앉았다. - P272

아내를 묘지에 묻고, 푸앙 영감은 그들 부부가 오십 년 동안 힘들게 살아왔던 집으로 혼자 돌아갔다. 그는 선 채로 빵 한 조각과 치즈를 먹었다. 그러고 나서 슬픔을 어떻게 삭여야 할지 몰라 텅 빈 건물들과 텃밭을 하릴없이 오갔다. 이제는 할일이 아무것도 없었으므로 그는 자신의 예전 땅들을 보러, 밀이 잘 자라는지 보러 고원으로 올라갔다. - P2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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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22-03-12 22: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주말에는 책 읽지 마시고, 눈에도 휴일을 주시는 것도 좋을 것 같은데요.
새파랑님, 좋은 주말 보내세요.^^

새파랑 2022-03-13 09:06   좋아요 1 | URL
제가 지금 눈만 멀쩡하고 나머지 부분이 좀 안좋아서😅 오늘은 좀 쉴까 봅니다 ㅋ
 

두께가 엄청나다. 이번 주제는 부동산과 상속이다.

농부들이 붙여준 그 별명을 듣자, 젊은 남자는 미소지었다. 이번에는 그가 소녀를 자세히 살폈다. 봉긋하게 솟은 작고 단단한 가슴, 아주 깊은 검은 눈과 도톰한 입술, 갸름한 얼굴, 익어가는 과일처럼 싱그럽고 발그레한 살갗에서 벌써 처녀티가 흐르는 모습에 그는 놀랐다. - P14

장이 부엌으로 들어가려 하자 그녀가 그의 허리를 잡았다. 그녀는 주인만으로는 성이 차지 않는 탐욕스러운 애인처럼, 사람들이 보든 말든 아무 거리낌 없이 장난스럽게 그의 몸에 자신의 몸을 비벼댔다. - P18

세자르는 준비가 되자 지반이 흔들릴 정도로 엄청난 무게로 펄쩍 뛰어 콜리슈에게 올라탔다. 콜리슈는 주저앉지 않았고, 황소는 두 다리로 콜리슈의 옆구리를 조였다. 하지만 암소 콜리슈가 너무 높고 펑퍼짐해서, 암소보다 덩치가 작은 황소는 쉽사리 올라타지 못했다. 녀석도 그것을 알고 다시 올라타려 했지만 헛수고였다. - P20

"이런, 어디서나 손이구먼! 그러니까 네 애인이 마지막 순간에 못찾아 들어간 모양이지!" - P21

"그러니까 푸앙 영감님, 생전에 두 아들과 딸에게 재산을 나눠주기로 결정하신 거지요.?" - P31

"이제 흔히 일어나는 일들을 말씀드리겠습니다. 분별력 있는 많은 이들이 재산권 포기를 비난합니다. 가족의 유대를 해치기 때문에 부도덕하다고 보는 거죠. 사실 한탄스러운 사례를 말씀드릴 수도 있는 것이, 부모가 재산을 다 나눠주고 빈털터리가 됐을 때 자식들이 아주 못되게 구는 일이 종종 있습니다." - P34

푸앙 역시 자식들이 자신의 재산을 어떻게 할지 내심 불안해서 그들을 차례로 쳐다보았다. 게을러 빠진 술꾼보다 다른 두 자식의 지독한 탐욕이 더 불안했다. 그는 불안한 마음을 떨쳐버렸다. 서로 잡아먹는다 해도 그렇게밖에 할 수 없다면 어쩌겠는가? - P35

"아! 못된 종자 같으니! 저런 놈을 키웠다니, 내가 너희들 입에 들어가는 것을 빼앗기라도 했냐!…… 정말이지 정나미가 떨어진다! 내가 죽어서 벌써 흙속에서 썩고 있었으면 좋겠다…… 너희가 이렇게까지 각박하게 굴어야겠니? 너희는 550프랑만 주겠다는 거냐?" - P40

"바보 같으니! 했잖아, 조언! 살아 있는 동안에 재산을 포기하는 바보나 비겁한 놈이 하는 짓이라고...나라면 목에 칼이 들어와도 안해... 내 것이 남의 것이 되고, 망나니 같은 자식놈들 때문에 문밖 신세가 되는 꼴은 절대로 못 보지, 암, 못 보고말고!" - P47

그 누구도 정확하고 완벽한 조세 목록을 작성할 수 없을 정도로 그것들은 빠른 속도로 늘어나 왕으로부터, 주교로부터, 영주로부터 날아들었다. 몸 하나에 세마리의 탐욕스러운 육식동물이 달려들었다. 왕은 호구조사와 인두세를, 주교는 십일조를, 영주는 이 모든 것을 부과하면서 어디서나 돈을 끌어냈다. 농부에게는 아무것도 남아나지 않았다. 땅도 물도 불도, 그들이 숨쉬는 공기조차 그들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언제나 돈을 내야 했고, 살아서도 죽어서도, 계약할 때도, 가축떼를 위해서도, 장사할 때도, 즐거운 일에도 돈을 내야 했다. - P97

"그런 게지! 그런 게야!" 푸앙 영감은 계속 말했다. "젊을 땐 뼈빠지게 고생하다가 어렵사리 흑자를 볼 때쯤이면 늙어버려 떠나야 하지..... 그렇지 않아, 로즈?" - P105

그녀는 농장 일꾼들에게는 몸을 내주며 실컷 즐기게 해주었지만, 주인에게는 자신의 힘을 높이기 위해 감질나게 주면서 자극했다. 그날 아침에도 눅눅한 그 방에서, 그는 그녀의 체취가 밴 흐트러진 침대에 누워 분노와 욕망에 사로잡혔다. 오래전부터 그녀가 자신을 끊임없이 배반하는 기미를 느껴오던 터였다. 그는 벌떡 일어나 소리쳤다. - P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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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2-03-11 23: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펄벅의 대지 인줄 알고 👆 ^^

새파랑 2022-03-12 09:32   좋아요 0 | URL
전 아직 펄벅의 대지를 안읽어 봤어요😅 (누군지도 모름 ㅎㅎ)

서니데이 2022-03-12 01: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대지, 보고 펄벅의 대지만 생각을. 근데 이 책은 에밀졸라의 책이네요.
새파랑님, 즐거운 주말과 좋은 밤 되세요.^^

새파랑 2022-03-12 09:33   좋아요 1 | URL
에밀졸라의 책인데 상당히 두껍네요.주말에 바쁠거 같아서 이 책 한권만 읽으려고 합니다 ㅋ 좋은 주말 보내세요~!!

희선 2022-03-13 01: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책 제목 보고 펄 벅을 생각했는데, 에밀 졸라였군요 에밀 졸라는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지... 새파랑 님 남은 주말 책과 함께 즐겁게 보내세요


희선

새파랑 2022-03-13 09:04   좋아요 1 | URL
ㅋ 대지는 펄벅의 것이었군요~!! 오늘은 비가 오네요 ㅋ 희선님도 남은 주말 즐겁게 보내세요 ^^
 
마리안의 변덕 20세기 프랑스 희곡선 19
알프레드 드 뮈세 지음, 김도훈 옮김 / 연극과인간 / 2011년 4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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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22041 오랜만에 읽은 희곡. 마리안의 변덕 때문에 흔들리는 클로디오, 셀리오, 옥타브 세 남성의 이야기가 웃프게 그려진다. 가장 많이 좋아했던 사람이 결국 피해자가 된다. 분량 자체가 짧고 이야기는 명쾌하지만, 해설을 보니 담고 있는 내용과 의미가 결코 단순하지 않다는걸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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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i74 2022-03-11 13:0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많이 좋아했던 사람이 피해자 ㅠㅠ 는 맞는 듯 합니다 ㅠㅠ ~

새파랑 2022-03-11 13:20   좋아요 3 | URL
이 책 너무 얇아서 100자평을 쓸까 말까 하다가 그냥 간략시 남겼어요. 다시 희곡에 대한 애정이 생겨야 하는데 😅

청아 2022-03-11 13:3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명쾌한데 깊이가 있는 작품 좋아하는데 별이3개라 고민됩니다. 80페이지에 가격도 착하네요😁

새파랑 2022-03-11 13:49   좋아요 3 | URL
깊이가 있다는건 해설보고 알았어요 😅 저는 그냥 생각없이 읽었습니다 ㅋ 시간되시면 그냥 가볍게 읽으시면 될거 같아요. 구매는 비추 입니다~!!

제가 21년 10월 1차 구매한 책(15권) 중에 이 책만 안읽어서 마져 읽었어요 ㅋ 드디어 한박스 치웠습니다 😅

scott 2022-03-11 23:4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N22041 ]요 표시는
새파랑님 서재방 보유 책들!숫!자 !😉

새파랑 2022-03-12 09:35   좋아요 1 | URL
만약 저한테 저렇게 많은 책이 있었으면 바로 북카페를 차렸을거 같아요 ㅋ

저 숫자는 저 나름대로 읽은 책들 정리하려고 붙인 거에요 ㅋ
22년에 41번째로 읽은 책입니다 ^^
 

필립 로스의 데뷔작. 중편과 단편이 수록된 책. 이후 필립 로스가 내놓는 명작들의 뼈대가 이 책에 들어있는 것 같다. 책을 읽으면서 그의 몇몇 작품이 떠올랐다.






마음은 예언자에 버금간다.

사실 입으로 말하기 전에는 우리가 가지고 있다고 말하는 감정이 존재하지 않았다. 적어도 나는 그랬다. 그러나 그렇게 말하는 순간 그런 감정을 만들어내고 소유하게 되었다. - P38

"그래서 우리는 우리 자신을 그대에게, 세상에게 바치며, 삶을 찾아 그대에게로 간다. 그리고 그대, 오하이오 주립대학에게, 그대 콜럼버스에게, 우리는 고맙다고 말한다. 고맙다. 그리고 잘 있어라. 우리는 그대를 그리워할 것이다. 가을에, 겨울에, 봄에 그러나 언젠가는 돌아올 것이다. 그때까지, 굿바이, 오하이오 주립대학, 굿바이, 적과 백의 엠블럼, 굿바이, 콜럼버스……… 굿바이, 콜럼버스……… 굿바이…..." - P172

"나는 너를 사랑했어, 브렌다, 그래서 걱정을 했던 거야."

"나도 너를 사랑했어. 그래서 애초에 그 빌어먹을 걸 얻으러 갔던 거야."

그 순간 우리는 우리가 말한 시제를 들었고, 우리 자신에게로, 침묵으로 물러났다. - P219

나는 분명히 브렌다를 사랑했다. 그러나 거기 서서, 이제는 그녀를 더 사랑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또 내가 그녀를 사랑했던 것처럼 누군가를 사랑하려면 꽤 오랜 세월이 흘러야 하리라는 것도, 내가 다른 누구에게 그런 정열을 그러모을 수 있을까? 무엇이 그녀에 대한 내 사랑을 낳았든, 그것이 그런 뜨거운 욕망 또한 낳은 것 아닐까? - P220

하루의 빛을 사람의 인생에 비유하기도 한다. 동트는 것은 출생, 해가 지는 것, 즉 가장자리 너머로 떨어지는 것은 죽음. 그렇다면 오지 프리드먼이 야생마가 뒷발로 걷어차듯 두 발로 빈더 랍비의 뻗은 두 팔을 차면서 몸을 꿈틀거려 회당 지붕에 달린 문을 통과했을 때, 그 순간에 하루는 쉰 살이었다. 쉰이나 쉰다섯살이라는 나이는 십일월의 늦은 오후를 대체로 정확하게 반영한다. - P237

누구도 좋은 쪽으로든 아니면 나쁜 쪽으로든 특별 대우를 받지 못해, 인간이 해야 할 일은 오직 자기를 증명하는 것뿐이야. - P267

문제의 발단을 찾아내려면 얼마나 멀리까지 돌아가야 하는 걸까? 나중에 시간이 더 나면 엡스타인은 이런 질문을 하게 될 터였다. 언제 시작되었을까? - P334

"당신 너무 나가는 거야, 엘리. 그게 당신 문제야. 당신은 어떤것도 적당히 할 줄을 몰라. 사람들은 그러다 자멸한다고." - P432

희생의 삶에서 한번 더 희생한다는 것이 뭐가 어렵겠습니까? 하지만 희생 없는 삶에서는 한 번의 희생도 불가능한 것이지요. - P435

어쩌면 자신이 미치는 쪽을 선택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미치는 것을 선택했다고 생각하다니! 미치는 것을 선택했다면 미친 것이 아니었다. 선택하지 않았을 때가 미친 것이었다. 그래, 그는 정신이 돈 것이 아니었다. 그에게는 봐야 할 아이가 있었다. - P4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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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22040

˝숲에서 신비를 벗겨내면 서 있는 목재만 남는다. 바다에서 신비를 벗겨내면 짠물만 남는다.˝


돌이킬 수 없는 총성 한발이 그렇게 오랜 이별을 가져올 지 신은 알고 있었을까? ˝윌리엄 트레버˝의 <루시 골트 이야기>는 운명의 장난으로 소중한 것들과 함께 할 수 없었던 ˝골트˝ 가족의 80년 인생을 차분하게 그리고 있다.


먼저 이 책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시대적 배경을 알아야 하는데, 1921년 아일랜드가 자치를 인정받기 이전까지 아일랜드의 땅은 신교도인 영국인 지주들의 차지였다. 그리고 카톨릭인 아일랜드인은 자신들의 땅을 빼앗긴 채 소작농으로 살아야 했다. 하지만 1921년 아일랜드가 영국으로부터 독립하게 되고, 영국인으로부터 지배를 받던 아일랜드인 소작농들은 그들에게 분노를 표출한다. 그리고 이러한 분노에 위협을 느낀 영국인 지주들은 아일랜드를 떠날 수 밖에 없었다.

[아일랜드에서 과거는 적이다, 아빠는 그렇게 말한 적이 있었다.]  P.21



아버지는 신교도의 지주였고, 어머니는 영국인이었기 때문에 ˝골트˝ 집안의 집인 ‘리하단‘ 역시 아일랜드인의 표적이 될 수 밖에 없었다. 어느 날 밤 ‘리하단‘을 방화하려고 아일랜드 젊은이들이 침입했고, ˝루시 골트˝의 아버지인 ˝에버라드 골트˝는 자신의 집을 지키기 위해 그들에게 총을 쏜다. 그리고 침입자 중 한명인 ˝호라한˝은 어깨에 총상을 입는다. 이후 ˝에버라드 골트˝는 부상당한 ˝호라한˝의 집을 찾아가서 사죄를 하지만 받아들여지지 않고, ˝골트˝ 가족은 생명의 위협을 느끼게 되어 아일랜드를 떠날 수 밖에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

[이 마지막 밤에 그는 너무 경솔하게 과거를 팔아넘겼고, 이어서 손쉬운 위안으로 딸과 아내를 배신했다고 자신에게 말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P.50



하지만 당시 어린 소녀였던 ˝루시 골트˝는 자신이 너무나 사랑하는 ‘리하단‘과 마을을 떠나길 원하지 않았다. 그리고 아일랜드를 떠나기 전날 밤에 아무도 몰래 집을 나간다. 자신이 없다면 부모님이 집을 떠나지 못할 거라는 단순한 생각 때문이었다. 그리고 자신만이 알고 있는 숲속의 비밀 장소를 찾아간다. 하지만 그곳으로 가는 도중 다리를 다치게 되어 걸을 수 없는 상태로 숲속에 남겨지게 된다.


딸이 사라진걸 알게 된 ˝골트 부부˝와 하인들은 그녀를 찾으러 여기 저기 돌아다니지만 찾지 못한다. 그러던 중 물가에서 그녀의 옷가지와 신발을 발견한다. 그들은 그녀가 물에 빠졌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동네 어부들에게도 수소문해보지만 ˝루시 골트˝를 보았다는 말을 들지는 못한다. 자신들이 괜히 아일랜드를 떠나겠다고 해서 딸이 그런 사고를 당했다고 자책한 ˝골트 부부˝는 결국 딸이 익사한 걸로 확신하고 아일랜드를 떠나 유럽 대륙으로 도망간다. 그리고 자신들의 아픔이 남아있는 아일랜드에는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것이며, 어디에도 정착하지 않고 떠돌아 다니며 살겠다고 결심한다.

[환경과 사건들을 먹이로 독자적인 힘을 얻은 것인지 대위, 그리고 그의 아내와 하인들을 현혹하고 있는 거짓에는 의문이 제기되지 않았고 거부되지도 않았다.]  P.57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아니면 또다른 비극이라고 해야 할까? ˝골트 부부˝가 유럽 대륙으로 떠나고 한참이 흘러 숲속에 쓰러져 있던 ˝루시 골트˝가 구조된다. 그리고 ‘리하단‘으로 옮겨지고, 집을 관리하고 있던 ˝헨리˝와 ˝브리짓˝의 보호를 받게 된다. 지인들은 ˝루시 골트˝가 살아있다는 사실을 ˝골트 부부˝에게 알리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아무 연고도 없이 유럽의 이곳 저곳을 떠돌아 다니는 ˝골트 부부˝에게 그 소식은 전해지지 못한다. ˝골트 부부˝가 한번쯤은 ‘리하단‘으로 소식을 전하는 편지를 보냈을법도 한데, 그들 부부는 자식을 잃은 고통이 다시 떠오를까봐 단 한번도 ‘리하단‘에 연락을 하지도 않았고, 궁금해 하지도 않았다.

[그가 아내와 함께 바닷가에 수없이 내려갔다는 것, 낮이나 밤이나 지옥 같은 괴로움으로 고통을 겪었다는 것, 아마도 당분간은 정처 없이 떠돌아다닐 듯하다는 것.]  P.86



어린시절 잠깐의 실수로 인해 부모님에게 큰 상처를 주었고, 그 실수로 인해 본인 역시 외롭게 남겨진 ˝루시 골트˝는 자신의 집인 ‘리하단‘을 벗어나지 않고, 부모님이 돌아오실때 까지 참회하는 삶을 살아가게 된다. 가까운 지인 이외에는 누구도 만나지 않았던 그녀의 외로움은 점점 커진다.

[한 아이가 자초한 비극, 그리고 그 이후 아이의 삶은 좋은 이야깃 거리가 되었고 낯선 사람들에게는 전설의 소재로 보였다.]  P.121



그러던 어느 날 길을 잘못 들어 자신의 집을 방문하게 된 ˝레이프˝를 만나게 된다. ˝루시 골트˝와 ˝레이프˝는 첫 만남부터 서로에게 호감을 갖는다. 그리고 그녀의 주위에 있던 어른들 역시 외롭게만 지내고 있는 그녀에게 ˝레이프˝가 친구가 되기를 바란다. 그렇게 해서 둘은 가까워 지고 서로 사랑에 빠진다.

[그가 길을 잃지 않았다면 그들은 만나지 못했을 것이다. 루시는 그 사실을, 그들이 만나지도 않았고 레이프의 존재를 알지도 못하는 상황을 생각해보려 했다. 그녀에게는 그가 난데없이 나타난 것 같았기에 그가 라하단을 떠나면 난데없는 곳으로 돌아가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것은 아닌지 궁금했다. 그녀는 절대 그를 잊지 못할 터였다. 평생 그간의 수요일 오후들, 그리고 지금 흐르고 있는 시간을 기억할 터였다. 자신이 나이가 들어, 레이프가 꾸며낸 존재였고 이 여름도 마찬가지 였다고 믿게 되는 날이 온다 해도 상관없었다. 시간은 어차피 기억을 꾸며낸 일로 바꾸어놓기 때문이었다.]  P.187



˝레이프˝는 그녀에게 사랑을 고백하고, 그녀와 결혼하고 싶다는 마음을 전한다. 하지만 부모님에게 큰 죄를 지었다고 생각하고 있는 ˝루시 골트˝는 그의 청혼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아직 부모님께 참회를 못했기 때문이다. ˝레이프˝는 계속 그녀를 설득하지만 그녀는 부모님이 고통받고 있는데 자신만 행복할 수 없다는 생각으로 이를 거부한다.

[˝떠나면 보고 싶을 거예요.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P.188



결국 ˝레이프˝는 ‘리하단‘을 떠난다. 그리고 그녀에게 계속 편지를 보낸다. 언제까지나 기다릴 거라고 말한다. 그는 기다릴 수 있을거라 믿었다. 하지만 ˝레이프˝ 역시 시간의 힘을 거스를 수는 없었고, 결국 다른 여인과 결혼을 한다. 하지만 마음한구석에는 ˝루시 골트˝에 대한 그리움을 간직한다. 언젠가 그녀의 부모님이 돌아오면 다시 만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희망과 함께...

[˝너는 나를 잊게 될 거야, 올여름도 잊을 거야. 나는 희미해지다 그림자가 되고 목소리는 웅얼거리는 소리가 되어 들리지도 않게 될 거야. 지금은 우리가 여기 앉아 있는 이 현재는 하나의 현실이지만 이건 지속되지 않을 거고, 지속될 수도 없는 현실이야.˝]  P.196



한편 ˝골트 부부˝는 유럽을 계속 돌아다니다가 마지막으로 스위스에 정착을 하는데, 하지만 그곳에서 ˝골트 부인˝은 유행병에 걸려 사망하게 된다. 자식을 잃을 슬픔에 계속 짓눌려 살았던 부인은 결국 고향에 딸이 살아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 채 그렇게 타지에서 슬픈 최후를 맞는다. 남편인 ˝에버라드 골트˝는 아내를 스위스의 묘지에 묻어두고 드디어 아일랜도로 돌아간다.

[˝이건 우리 아일랜드의 비극이야.˝ 그는 여러 번 그렇게 말했다. 이런저런 이유로 우리가 귀하게 여기는 것을 계속 떠날 수밖에 없다는 건.˝]  P.135



그리고 그곳에서 자신의 딸이 살아있다는 기쁘지만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된다. 하지만 시간이 너무 흘렀던 걸까? ˝루시 골트˝는 아버지를 한번에 알아보지 못한다. 그리고 아버지 역시 기쁨보다는 약간의 어색함을 느낀다. 또한 그녀가 사랑했던 ˝레이프˝와의 사랑을 다시 시작할 수도 없었다. 이미 너무나 많은 세월이 흘렀던 것이다. ˝루시 골트˝는 이제부터라도 과거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인생을 찾을 수 있을까? 아직까지 참회는 끝나지 않은 걸까?

[그러나 회한과 후회와 관련하여 그가 한 모든 말에도 불구하고 대위는 뭔가 해소되지 않은 것이 남아 있음을 알고 있었다. 딸의 음울한 세월은 그 나름의 뭔가를 만들어내 오래전에 딸아이를 사로잡고, 한기를 느끼게 하는 안개처럼 딸아이를 감싸고 있었다. 그렇게 보였다.]  P.260





모두에게 아픔일 수 밖에 없었다. 아직 어려서 부모님이 왜 ‘아일랜드‘를 떠나려고 했는지 몰랐던 ˝루시 골트˝는 자신의 가출 때문에 이러한 비극이 일어날 줄 짐작이나 했을까? 그리고 가족을 지키기 위해 ˝에버라드 골트˝가 쏜 한발의 총알이 가족을 찢어놓는 아픔의 시작이 될 줄 상상이나 했을까? 누구의 탓이라고 할 수도 없다. 원인을 찾자면 당시 혼란스러웠던 아일랜드의 시대 상황을 탓해야 할 것이다. 우연과 우연에 의해 발생한 비극은 어쩔 수 없이 스스로 극복하는 수밖에는 없다.




<루시 골트 이야기>는 전형적인 ˝윌리엄 트레버˝의 작품이라는 생각이 든다. ˝루시 골트˝의 기나긴 인생 이야기가 이어지는 동안 문장들은 절대 흥분하지 않는다. 차분하게 흘러간다. 게다가 책속 인물들도 수다스럽지 않다. 딱 필요한 만큼만, 아니 그보다는 약간 부족하게만 이야기한다.


또한 감정을 겉으로 드러내기 보다는 속으로 되내인다. 감정을 표현하지 않은 문장에서조차 아픔의 감정이 느껴진다. 드러나지 않은 아픔이 오히려 더 슬픈 것처럼 말이다. 그래도 책의 마지막 페이지에서 ˝루시 골트˝가 바깥을 바라봤을때 느꼈을 감정이 슬픔은 아니었으면 좋겠다.

[그녀는 창가 의자에 자리 잡고 앉아 수국의 어둑한 푸른빛을 물끄러미 내다본다. 진입로는 어슬어슬해져 나무들의 윤곽이 하늘을 배경으로 또렷하다. 매일 저녁 이 시간이면 그러듯 떼까마귀들이 내려와 풀밭을 헤저으며, 하루가 희미해지는 것을 지켜보는 동안 그녀의 벗이 되어준다.] P.379




Ps. 국내에 번역된 ˝윌리엄 트레버˝의 장편은 세작품인거 같은데 이제 다 읽었다. 개인적인 순위를 매기자면 다음과 같다.

1.여름의 끝 (95점)
2. 루시 골트 이야기 (94점)
3. 펠리시아의 여정 (93점)

(개인적으로 잔잔하고 여운이 남는 작품을 좋아함...)

그런데 ˝윌리엄 트레버˝의 하나의 작품을 다른 사람에게 추천해야 한다면 줄거리가 명확하고 스릴과 재미가 있는 <펠리시아의 여정>으로 하겠다. <여름의 끝>과 <루시 골트 이야기>는 취향에 따라서 약간 심심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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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아 2022-03-10 00:0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슬픈 가족사가 담긴 장편이네요.
부모에게 참회하느라 사랑을 놓치다니요. 😳제가 친구라면 잘 설득했을것도 같아요ㅎㅎ

새파랑 2022-03-10 07:59   좋아요 2 | URL
루시 골트에게 친구가 한명도 없었어요 ㅜㅜ 좀 슬픈 이야기인데 너무 담담하게 진행되서 더 쓸쓸하게 느껴졌어요~!

페넬로페 2022-03-10 00:0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아일랜드 배경의 소설은 시대와 환경이 주는 아픔이 많은 것 같아요.
정말 사소한 것 하나가 모두의 운명을 불행으로 빠뜨릴수 있고 생이별을 하고요.
이 책도 흥미롭고 새파랑님의 1위인 여름의 끝도 궁금해요.
저는 3번만 읽었는데 그 책도 넘 좋았어요.
3번보다 더 좋다시니 기대 만땅 입니다^^

새파랑 2022-03-10 08:01   좋아요 3 | URL
아일랜드랑 우리나라랑 약간 비슷한 느낌이 있는거 같아요~ 한 같은게 있는? 어제 휴일을 이책하고만 보냈어요 😅 <여름의 끝>을 먼저 읽어보시고 좋으시면 이책 읽으시길 추천합니다 ^^

독서괭 2022-03-10 00:4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아일랜드가 참 아픔이 많은 것 같아요. 잘 몰랐는데… <더블린 사람들> 해설을 읽었는데 아일랜드 작품은 배경지식이 좀 있어야 하겠더군요🤔
저도 3번만 읽었는데 1,2번도 궁금합니다. 2번 요약해주신 줄거리만으로도 쓸쓸하고 아픈 느낌이 물씬-!

새파랑 2022-03-10 08:04   좋아요 3 | URL
<더블린 사람들>하고 <펠리시아의 여정>을 읽으셨군요. 저도 둘다 너무 좋았어요. 배경지식이 있으면 확실히 이해가 더 잘될거 같은데 없어도 흥미롭게 읽을수는 있더라구요 ㅋ 줄거리 요약한건 책의 50퍼센트 정도고 다른 이야기도 들어있는데 필력이 안되서 다 못넣었습니다 😅

희선 2022-03-10 01:4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사람은 역사에 휩쓸리기도 하죠 그런지 모르고 살지만... 루시 골트 식구는 그랬네요 우연과 우연이 겹쳐서 슬픈 일이 되고 말았군요 누가 그렇게 될지 알겠어요 식구가 헤어져서 슬펐다 해도 나중엔 좀 나았기를 바랍니다 루시가 아버지를 바로 못 알아봤지만, 그건 시간이 흘러서 그렇겠지요


희선

새파랑 2022-03-10 08:05   좋아요 3 | URL
그만큼 많은 시간이 흘렀다는걸 보여주기 위해서 작가가 아예 못알아보게 표현한거 같아요. 그래서 좀 더 슬펐습니다 ㅜㅜ 어느 하나 행복했던 사람이 없어서 안타까웠어요 ㅜㅜ

mini74 2022-03-10 08:1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새파랑님 리뷰 제목 참 좋아요. 루시 골트에게 어울리는 제목, 옆에 있었다면 당신 잘못이 아니라고 말해주고 싶었어요 ㅠㅠ

새파랑 2022-03-10 08:25   좋아요 3 | URL
마지막에 루시 골트가 ‘나는 그때 죽었어야 했다‘ 이렇게 생각하는게 너무 슬프게 느껴지더라구요 ㅜㅜ 오랜세월 간직하고 있던 마음은거 같아서 안쓰러웠어요 ㅜㅜ

물감 2022-03-10 13:0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 새파랑님 믿고 이 책 샀는데 <여름의 끝>보다 점수가 낮다니 마음이 심란합니다.. ㅋㅋㅋㅋ그러니까 두 작품의 인상이 비슷하단거죠? ㅋㅋㅋㅋㅋ

새파랑 2022-03-10 13:43   좋아요 2 | URL
물감님 <여름의 끝> 읽으셨군요 ㅋ 비슷한 느낌의 책이 맞습니다~!! 이야기의 기간이 <루시 골트>가 좀 많이 길어요 ㅎㅎ 저는 둘 다 좋았는데 물감님은 <여름의 끝>이 별로셨다면 이 작품은 좀 걱정이군요 😅

이 작품이 더 좋다는 글도 많으니까 물감님이 한번 읽어봐주시고 알려주면 좋을거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