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22042
˝고맙다. 그리고 잘 있어라. 우리는 그대를 그리워할 것이다. 가을에, 겨울에, 봄에 그러나 언젠가는 돌아올 것이다. 그때까지, 굿바이, 콜럼버스, 굿바이˝
<굿바이 콜럼버스>는 ˝필립 로스˝의 데뷔작으로, 이 책에는 표제작인 중편 <굿바이 콜럼버스>와 여섯개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다. 이 책이 출판된게 1959년인데, 그가 27살때의 일이다. 그래서인지 작품이 참 풋풋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필립 로스˝도 20대 때에는 엄청난 울분에 차있지는 않았구나 하는 생각도 했다.
내가 이전까지 읽은 필립 로스의 가장 오래된 작품이 <미국의 목가>(1997년 작) 였는데, <굿바이 콜럼버스>는 이 책보다 무려 38년 전에 나왔다. 그래서인지 <미국의 목가> 이후 작품들과는 분노 표출이라든지 묘사 측면에 있어서 약간은 차이가 있었다. 그럼에도 필력은 데뷔때부터 대단했다는 생각이 든다.
이 작품에 실려있는 모든 작품의 공통된 키워드는 ‘유대인 문제‘라고 할 수 있다. 표제작인 <굿바이 콜럼버스>는 같은 유대인이더라도 부자 유대인과 가난한 유대인의 삶은 다르다는 것을, 서로 섞일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도서관에서 일하는 ˝닐˝은 부모님 곁을 떠나 숙모의 집에서 사는데, 어느날 수영장에서 ˝브렌다˝를 만나 첫눈에 사랑에 빠진다. 그리고 둘은 사귀게 된다. 그녀는 그와는 대조적으로 잘사는 집안의 딸이었지만 그녀의 집안은 ˝닐˝을 배척하지는 않고 그를 순수하게 ˝브렌다˝의 친구로 받아들이고 그를 초대해서 몇일동안 집에서 머무르게도 한다.
[˝사실 입으로 말하기 전에는 우리가 가지고 있다고 말하는 감정이 존재하지 않았다. 적어도 나는 그랬다. 그러나 그렇게 말하는 순간 그런 감정을 만들어내고 소유하게 되었다.˝] P.37
그런데 젊은 남여가 함께 있다보면 당연히 육체적인 관계도 따르는 법, ˝닐˝은 그녀에게 ‘페서리‘를 할 것을 요구한다.(이게 뭔지 몰라서 인터넷에 찾아봤다...) 처음에 ˝브렌다˝는 이걸 거부하지만(유대교 율법에 어긋나는걸까?), 결국 받아들인다. 그리고 그렇게 좋은 시간이 흘러가는데, 아뿔싸 ˝브렌다˝의 어머니가 딸의 방에서 이걸 발견한다. 그리고 대판 싸운다. ˝닐˝은 왜 이걸 방에다 숨겨놨는지 화를 내고, ˝브렌다˝는 자신에게 화를 내는 ˝닐˝에게 화를 낸다. 그런데 두 사람의 이별이 과연 ‘페서리‘ 때문이었을까? ‘페서리‘는 단지 계기 였을 뿐, 두 사람은 결국 성장 배경의 차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헤어질 수 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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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너를 사랑했어, 브렌다, 그래서 걱정을 했던 거야.˝
˝나도 너를 사랑했어. 그래서 애초에 그 빌어먹을 걸 얻으러 갔던 거야.˝
그 순간 우리는 우리가 말한 시제를 들었고, 우리 자신에게로, 침묵으로 물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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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의 개종>은 유대교에 대한 필립 로스식 의문과 유대율법을 신봉하는 사람들의 문제점을 풍자적으로 지적하고 있다. 신앙에 대한 의문을 가진 ˝오지˝에게 선생님과 어머니는 정확한 답변을 못하고 오히려 답변을 회피하고 ˝오지˝를 때린다. 결국 분노한 ˝오지˝는 학교 옥상에 올라가 자살 소동을 일으킨다.
[˝하루의 빛을 사람의 인생에 비유하기도 한다. 동트는 것은 출생, 해가 지는 것, 즉 가장자리 너머로 떨어지는 것은 죽음. 그렇다면 오지 프리드먼이 야생마가 뒷발로 걷어차듯 두 발로 빈더 랍비의 뻗은 두 팔을 차면서 몸을 꿈틀거려 회당 지붕에 달린 문을 통과했을 때, 그 순간에 하루는 쉰 살이었다. 쉰이나 쉰다섯살이라는 나이는 십일월의 늦은 오후를 대체로 정확하게 반영한다.˝] P.237
<신앙의 수호자>는 같은 유대인이라는 점을 들어서 자신의 생존과 이익을 위해 이를 악용하는 사악한 인간을 군대라는 상황에 적용하여 이야기 하고 있다. ˝막스˝ 하사는 부대에 들어온 신입병 ˝셜던˝이 계속 군인답지 않은 행동을 하지만, 같은 유대인이기 때문에 어쩔수 없이 편의를 봐주고 거짓말도 눈감아주었다. 하지만 계속되는 그의 악랄함에 결국 그를 전쟁의 구렁텅이로 직접 밀어넣어버린다. 이를 알게된 ˝셜던˝은 ˝막스˝를 반유대주의자라고 비난하지만, 독자는 안다. 누가 나쁜 놈인지. 다 읽고 나서 <휴먼 스테인>, <울분>이 떠올랐다.
[˝누구도 좋은 쪽으로든 아니면 나쁜 쪽으로든 특별 대우를 받지 못해, 인간이 해야 할 일은 오직 자기를 증명하는 것뿐이야.˝] P.267
<엡스타인>은 구세대 유대인과 신세대 유대인의 갈등을 풍자적으로 그리고 있다. 노인 ˝엡스타인˝은 겉으로는 온갖 바른척을 하면서 아랫사람을 교육하지만, 그도 결국은 욕망을 통제하지 못하는 나약한 인간일 뿐이었다. 다 읽고 나서 <미국의 목가>가 약간 연상되었다.
[문제의 발단을 찾아내려면 얼마나 멀리까지 돌아가야 하는 걸까? 나중에 시간이 더 나면 엡스타인은 이런 질문을 하게 될 터였다. 언제 시작되었을까?] P.334
<광신자 엘리>는 미국 사회에 적응하지 못한 유대인 집단을 찾아가 개화 시키려고 했던 한 변호사가 오히려 미처버려서 광신자가 되어버린 이야기이다. 주인공 ˝엘리˝는 유대교의 전통을 버리지 못하고 살아가는 유대인 집단의 교장인 ˝추레프˝를 찾아가서, 당신들의 복장과 관습이 동네의 불안을 조성하고 있기 때문에 이것들을 하지 말아달라고 요청한다. 하지만 ˝추레프˝는 이를 거부한다.
[˝당신 너무 나가는 거야, 엘리. 그게 당신 문제야. 당신은 어떤것도 적당히 할 줄을 몰라. 사람들은 그러다 자멸한다고.˝] P.432
일에 너무 몰두한 ˝엘리˝는 그들의 특이한 의복을 벗게 하기 위해 자신이 가진 좋은 옷을 그들에게 보낸다. 게다가 임신중인 아내에게도 신경쓰지 않고 오히려 자신이 맡은 변호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하기 위해 과도하게 집착한다. 결국 미쳐버린 그는 ˝추레프˝ 집단이 원래 입고 있던 이상한 옷을 자신이 입고 돌아다닌다. 하지만 미친 사람은 자신이 미친걸 알 수 없는 법이다.
[어쩌면 자신이 미치는 쪽을 선택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미치는 것을 선택했다고 생각하다니! 미치는 것을 선택했다면 미친 것이 아니었다. 선택하지 않았을 때가 미친 것이었다. 그래, 그는 정신이 돈 것이 아니었다. 그에게는 봐야 할 아이가 있었다.] P.468
처음 읽은 ˝필립 로스˝의 단편집이었는데, 나쁘지 않았다. 역시 글을 잘 쓰는 사람은 단편이든, 장편이든 상관없다는 것을 다시한번 느꼈다. 그래도 개인적으로는 ˝필립 로스˝의 장편이 내 취향에 맞는것 같다. 이야기들이 짧게 끝나서 약간 아쉬움이 있었다.
˝필립 로스˝는 <굿바이 콜럼버스>에서 이미 자신의 작품 정체성을 어느 정도 확립했었다는 생각이 든다. 시간적인 갭이 크긴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미국 삼부작‘이 떠올랐고, 특유의 언어 유희와 약하긴 하지만 그만의 울분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필립 로스˝를 좋아한다면 이 책은 꼭 읽어보기를 추천한다. 게다가 ‘유대인‘이 쓴 ‘유대인‘을 까는 이야기는 생각보다 재미있고 더 와닿았다.
Ps. 이제 <필립 로스>의 소설(자서전, 에세이 빼고) 전작도<포트노이 불평>, <유령 퇴장>, <새버쓰의 극장> 세 작품만 남았다.
추가 : 찾아보니 <위대한 미국 소설> 이라는 책도 있었다. 그럼 네 작품이 남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