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관심한 이>
"그럼 제가 혼자 있게 되잖아요." 마들렌이 황급히 말했다. 그러나 그녀는 무관심이 최고라는 격언, "내가 그를 사랑하지 않으면 그는 나를 사랑한다"를 거의 무의식적으로 떠올리기라도 한 듯 서둘러 덧붙였다. "당신 말이 맞아요. 약속이 있다면 어서 가셔야지요. 그럼 안녕히." - P15
<무관심한 이>
그녀가 느낀 터무니없는 실망감과 그것의 강도 높은 잔인함과 진정성 사이는 얼마나 거리가 먼지 가늠하면서, 그녀는 자신이 단순히 객관적인 사건과 사물로 이루어진 삶을 살기를 멈췄음을 깨달았다. - P20
<무관심한 이>
그때부터 그 시기의 초상화와 관계된 모든 예술 작품에 대한 기억이 그에 대한 생각과 연결되어 새로운 존재감을 갖게 되었다. 이제 그녀의 사랑은 미적 취향의 영역에 편입되었다. 그녀는 그를 닮은 한 젊은 청년의 초상화를 담은 사진을 암스테르담에서 보내도록 주문했다. - P23
<무관심한 이>
그녀가 도저히 낄 수 없도록 그의 일정을 꽉 채우는 그 무엇에 대한 질투일까? 아니면 그가 떠난다는 사실로 인한 괴로움, 그때까지 그녀를 하루에 열 번 보러 오게 만드는 욕망을 그가 느끼지 않고 그저 한 번만 올 것 이란 사실로 인한 괴로움일까? - P24
<밤이 오기 전에>
사랑하는 이들에게 어려운 말을 해야 할 때 최대한 부드럽게 말함으로써 상대방이 조금이라도 더 견디기 쉽게 하려는 이의 말씨로 그녀가 말했다. - P37
<밤이 오기 전에>
"내게 준 것이 없다고요? 내가 당신에게 요구하지 않을수록 당신은 내게 더 많이 주었어요. 우리의 우정에 감성이 작지 않은 자리를 차지하는 만큼 당신이 내게 준 것은 실제로 더 많습니다. - P39
<밤이 오기 전에>
우리는 함께 울었다. 슬프면서 무한한 조화의 일치. 우리의 합체된 연민은 이제 우리 자신보다 거대한 대상을 향했고, 우리는 그것을 위해 마음껏 자유롭게 눈물을 흘릴 수 있었다. 나는 가여운 눈물로 흥건히 젖은 그녀의 두 손을 닦아주었다. 하지만 금방 다시 새로운 눈물로 젖어들었고 그녀는 한기를 느꼈다. 그녀의 손은 분수대에 떨어지는 창백한 나뭇잎처럼 차가워졌다. 우리는 그 순간만큼 그렇게 아파했던 적이, 또 좋았던 적이 없다. - P44
<추억 1>
저 끝없이 푸른 바다를 보는 건 정말 매력적이에요. 모래사장에 와서 부서지는 파도는 저를 슬픔에 빠지게 하는 생각들이고, 동시에 이제는 작별을 고해야 하는 희망들이에요. 저는 책을 많이 읽고 있어요. 시의 음악성은 가장 소중한 추억을 떠올리게도 하고 저를 황홀하게 만들지요. - P51
<추억 1>
제가 그때 조금만 덜 이기적이거나 조금만 덜 못되게 굴었더라면 하고 후회하는건 사실이지만, 당시의 추억은 지금까지도 저를 행복하게 해줘요, 이대로 포기할 수는 없어요. 가끔 저도 어쩔수 없을 만큼 제 운명에 반항하고 싶어지죠. - P52
<추억 2>
사랑은 거대한 입김을 내뿜는 생각에도 스며들어 그것을 약화시키기는커녕 한층 풍요롭게 만들었다. 하지만 내가 사랑에 대해서 알게 된 사실은 무엇인가? 그것의 신비를 풀었던가? 그것의 슬픈 향기와 내음 외에 나는 무엇을 더 알게 되었던가? 어느새 사랑은 떠나버렸고 그 자리에 남겨진 깨진 병에서 향기는 한층 순수하게 뿜어져 나왔다. 그리고 그때의 희미한 방울 하나가 지금까지도 내 삶을 감싸고 있다. - P61
<ㅇㅇㅇ 부인의 초상>
그녀의 매력은 신성함의 향기가 덧입혀져 한층 더 은은함을 풍겼다. 좋아하는 대상을 존경하는 경우는 드물다. 그러나 니콜의 풍요롭고 그윽한 아름다움에서, 그녀의 너그러운 자비심과 온 존재에서 발산하는 거대한 심성의 매력과 충만함을 느끼는 것은 귀한 경험이다. - P72
<어느 대위의 추억>
이후 나는 그를 다시는 보지 못했으며, 결코 다시 보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당신도 알다시피 나는 그의 형상을 제대로 기억조차 하지 못하고, 그는 석양을 머금은 무언가 따스하고 황금빛이 어린, 그럼에도 완전히 알지 못하고 미완성이기에 약간 슬픈, 그저 감미로운 추억으로 기억될 뿐이다. - P97
<대화 1>
어떤 장소들 중에는 마치 행복을 위해 존재하는 듯한 곳이 있습니다. 그곳에서는 모든 것이 행복을 환영할 준비를 하고 있는것 같지요. 아름다움은 인내심 있게 기다리고, 침묵은 조용히 관찰하며, 고독은 안전하게 숨을 장소를 제공하고, 우정은 세심하게 보살펴줍니다. 그런 장소에 가면 행복을 갈구하는 마음이 그 어떤 장소에 있을 때보다 더 커지지요. 또한 그곳에서보다 더 자신이 불행하다고 느끼는 곳도 없습니다. - P103
<대화 1>
조금 전 당신과 함께 정말 즐거웠어요. 정말로, 아! 하지만 이와 같은 강렬한 감정을 그녀가 다른 이들과 함께 느꼈을 것이라 생각하면! 그러면 제가 느낀 즐거움보다는 괴로움이 더 커집니다 - P108
<추억 1>
우리는 우리의 즐거움을 선택하면서 동시에 고통을 스스로 결정합니다. 고통은 즐거움의 이면에 불과하기 때문이죠. 만약 즐거움이 무엇인지 경험하지 못했다면 질투도 몰랐을 겁니다. 질투한다는 것은 사랑하는 여인이 다른 이와 나누는 즐거움을 상상하는 것이기 때문이죠. 타인의 삶을 상상하기 위해 우리는 그들에게 우리네 삶을 투영합니다. - P109
<대화 1>
당신은 언제쯤 그녀를 사랑하기를 멈출 수 있을 것 같나요?
다른 여인을 사랑하게 될 때, 새 군주가 등장하기 전에는 여전히 옛 군주의 이름에 복종하게 되는 입니다. 스스로가 그러지 않기를 바라는데도 말입니다. - P111
<폴린 드 S>
이미 계속 보고 있던 것을 새삼 다시 보게 되었다고 놀랄 일이 무엇이겠는가! 의사가 직접 사형선고를 내리지 않는 이상 우리는 그 사실을 의식하지 못하지만 결국 누구나 모두 죽는다. 그럼에도 우리는 삶에 고귀하게 작별을 고하기 위해 죽음을 사색하는 자들을 볼 수 있다. - P142
<사랑한다는 인식>
절대로, 절대로, 나는 그녀가 내게 반복한 이 말을 되뇌었다. 그녀의 말을 기다릴 때 흐른 끔찍한 침묵과 그 이후에 뒤따른 절망은 그녀의 말과 동일한 고집스러움으로 내 심장이 다음 말을 되풀이하게끔 만들었다. 영원히, 영원히. 이제 서로에게 치명적이 된 이 두 후렴구는 깊은 상처를 끝없이 휘저으며 매우 가깝고도 깊게 들렸다. - P145
<사랑한다는 인식>
그녀가 나를 사랑하거나 아니면 내가 더 이상 그녀를 사랑하지 않기를, 하지만 이 중 한 가지는 불가능하고, 저는 다른 나머지는 원하지 않습니다. 창조하신 최초의 빛처럼 저의 눈물을 비추소서. - P146
<요정들의 선물>
되돌려받길 기대하지 않으면서 줄 수 있다는 것은 씁쓸하지만 분명 감미롭단다. 사람들이 네게 상냥하지 않아도 너는 그들을 상냥하게 대할 기회를 누릴 것이고, 다른 이들에게는 불가능한 자비를 품은 자의 자부심을 느끼며 고통받는 자들의 지친 발에 신비하고도 놀라운 향기를 아낌없이 뿌리게 될 거야. - P165
<그는 그렇게 사랑했다>
그는 그렇게 온 세상을 돌아다니며 사랑했고 또 고통을 받았다. 그러나 신은 그의 마음을 너무나 자주 바꾸게 만들어 그는 자신을 고통스럽게 만든 이가 누군지, 어디서 사랑에 빠졌는지 제대로 기억조차 할 수 없었다. 너무나 절실하게 기다렸던 순간들, 다시는 오지 않을 것만 같은 순간들, 죽음 너머로조차 영원히 간직하고 싶은 순간들이었건만, 아이들이 그토록 소중히 만든 모래성이 밀물에 쓸려 흔적조차 남지 않듯, 다음해 그에게는 그에 대한 어떤 기억도 남아 있지 않았다. 시간은 바다처럼 모든 것을 가져가고 파괴한다. 그러나 거친 파도를 통해서가 아니라 아이들 놀이와 같이 잔잔하고 무사태평하며 확실한 흐름에 의해서다. - P1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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