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22069
˝인간이 음양화합의 성과를 올리는 일은 머지않아 다가올 음양불화의 이치를 깨닫기 위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누구에가나 명암은 있다. 아무리 밝아 보이더라도, 남부러울 것이 없어 보이는 사람이라도 밝힐 수 없는 어둠은 있다. 그런데 그 어둠은 보이지 않는다. 보이는게 전부는 아니다. 당신은 옆에 있는 사람의 모든 것을 안다고 자신할 수 있는가?
소세키의 마지막 작품이자 현암사 소세키 소설 전집의 마지막 작품인 <명암>은 미완성 작품이다. 만약 완성되었더라면 소세키 작품중에 가장 뛰어난 작품으로 남지 않았을까란 생각이 든다. 이 작품 역시 그동안 소세키가 주로 다루었던 인간의 마음을 다루고 있는데, 겉으로 들어나는 밝은 ˝명˝과 결코 드러낼 수 없는 어두운 ˝암˝을 평행적으로 그리고 있다. 특히 책을 읽어나갈수록 도대체 감추고 있는 어두운 ˝암˝이 무엇인지 궁금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몰입감이 대단했다.
이 책의 줄거리는 복잡하지는 않다. 주인공인 ˝쓰다˝는 직장이 있지만 풍족한 삶을 위해 부모님에게 매달 생활비를 받고 살아가는 젊은이이고 그에게는 이제 결혼한지 얼마 안되는 부인 ˝오노부˝가 있다. ˝쓰다˝는 처음에는 연말 보너스 같은게 나오면 부모님께 돈을 갚는다고 약속을 하고 생활비를 받았지만, ˝쓰다˝는 부모님이 그냥 주는 돈이라 생각하고 돈을 갚지 않는다. 자신의 이름처럼 그냥 물쓰듯이 돈을 쓴다. (조크 입니다.)
[˝올케언니하고 결혼하기 전의 오라버니는 좀 더 정직했어요. 적어도 좀 더 솔직했어요. 근거도 없는 말을 한다고 생각하는 게 싫으니까 사실을 있는 그대로 말하겠어요. 그러니까 오라버니도 제 질문에 솔직하게 대답해주세요. 오라버니는 올케언니하고 결혼하기 전에 아버지한테 이번 같은 거짓말을 한 적이 있나요?˝] P.299
이에 열받은 ˝쓰다˝의 아버지는 생활비 송금을 끊어버리는데, 하필 이때 ˝쓰다˝는 치질 수술을 받아야 하는 상황에 처하게 되고, 당장 돈이 없는 곤경에 처하게 된다. 하지만 부인인 ˝오노부˝는 이러한 상황을 크게 염려치 않고 평소의 풍족한 삶을 이어나가려 한다.
[이 육체는 언제 어떤 변을 당할지 모른다. 아니, 지금 바로 이 육체안에 어떤 변고가 일어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나는 전혀 모르고 있다. 무시무시한 일이다.] P.18
[정신세계도 마찬가지다. 정신세계도 전적으로 마찬가지다. 언제 어떻게 변할지 모른다. 그리고 나는 그렇게 변하는 것을 본 것이다.] P.19
하지만 ˝쓰다˝는 자신의 불편한 속내를 결코 부인에게 드러내려 하지 않는다. 그는 그녀와 결혼할때 자신의 부를 과장해서 표현했고, 그녀에게는 언제나 과도하게 자신만만한(무심한?) 태도를 보인다. 자신의 생각을 숨기고 부인에게는 언제나 밝은 ˝명˝ 만을 보이려고 한다. 하지만 그에게는 부인에게 결코 말할 수 없는 ˝암˝이 분명히 있었다. 과연 그 ˝암˝은 무엇일까?
[오히데의 입에서 새어 나온 뜻밖의 문구 중에서 맨 처음 오노부의 귀를 때린 것은 ‘사랑‘ 이라는 말이었다. 이 진부하고 흔해빠진 한마디가 얼마나 오노부 앞에 복병처럼 새로운 정취를 느끼게 했는지는 전후의 맥락 없이 단독으로 돌발했다는 것이 주요 원인임에 틀림없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 말이 두 사람 사이에서 아직 대화의 소재로 쓰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P.376
사실 ˝오노부˝도 그렇게 다르지는 않다. 고모부인 ˝고바야시˝ 집에서 자랐지만 어릴적부터 풍요롭게 성장했던 그녀는 특출난 외모는 아니지만 총명함으로 인해 주위로부터 선견지명이 있고 사람보는 눈이 정확하다는 칭찬을 듣고 자랐다. 그리고 그녀가 선택했던 ˝쓰다˝ 는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명˝ 만 있을 것 같은 괜찮은 사람으로 여겨지게 된다.
[결혼해서 반년 넘게 살고 있는 지금, 쓰다에 대한 오노부의 생각은 변했다. 하지만 쓰다에 대한 쓰기코의 생각은 손톱만큼도 변하지 않았다. 쓰기코는 어디까지나 오노부를 믿었다. 오노부도 이제 와서 전에 했던 말을 취소할 여자가 아니었다. 어디까지나 선견지명으로 하늘의 축복을 받을 수 있었던 소수의 행운아로서 쓰기코 앞에 자신을 내세우고 있었다.] P.197
하지만 ˝오노부˝는 결혼을 하고 나서 ˝쓰다˝에게도 ˝암˝이 존재함을 느끼게 되지만, 언제나 뛰어난 선견지명이 있다고 주위의 칭송을 받던 그녀는 자신의 결혼에 어떤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결코 남들에게 말할 수 없었다. 게다가 남편에게 어떤 ˝암˝이 있는지 예상조차 못한다. 그리고 남편 주위의 사람들이 말하는 것을 들으면서 자신만 모르는 무언가의 비밀이 남편에게 있음을 짐작하게 된다. 아무도 그녀에게 속시원하게 이야기 해주지 않고 자신이 없을때 뒤에서만 이야기하지만, 그렇다고 대놓고 묻지도 못한다. 과연 ˝쓰다˝가 가진 ˝암˝은 무엇일까?
[˝제발 저를 안심시켜주세요. 도와준다 생각하고 안심하게 해주세요. 저는 당신 말고 기댈 데가 없는 여자니까요. 당신이 떠나면 저는 그것으로 무너져야 하는 불안한 여자니까요. 그러니 제발 안심하라고 말해주세요. 단 한마디라도 좋으니까 안심하라고 말해주세요.˝] P.451
겉으로 보이기에는 너무나 잘어울리고 서로가 서로에게 배려하는 부부이지만 사실 서로에게 안좋은 면은 철저히 숨기고 솔직하지 못한 그 둘의 관계, 게다가 주변 사람들은 서서히 두사람을 압박해가면서 두 부부 사이에, 그리고 주변사람과 미묘한 신경전을 벌인다. 도대체 어떤 문제가 있길래 사람들은 솔직하게 말하지 못하는 걸까? 왜 다른 사람은 다 알면서도 나만 몰라야 하는 사실이 존재해야만 하는 걸까?
[자기 일밖에 생각할 수 없는 오라버니하고 올케언니는 인간으로서 다른 사람의 친절을 받아들일 자격을 잃어버렸다는 게 제 생각이에요. 다시 말해 남의 호의에 감사할 수 없는 사람으로 절하되었다는 뜻이에요. 오라버니하고 올케언니는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어요. 어디에도 부족함이 없다고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르지요. 하지만 제가 보기에 그것은 자신들한테 엄청나게 불행한 일이 될 거예요. 인간답게 기뻐하는 능력을 처음부터 빼앗긴 것이나 마찬가지로 보이거든요. ] P.325
치질 수술을 마친 ˝쓰다˝는 어떻게든 과거의 아픔인 ˝암˝의 세계로 돌아가서 이를 해결하려고 하고, ˝오노부˝는 자신의 선택이 옮았음을 보여주기 위해 ˝쓰다˝를 ˝명˝의 세계로 끌어 올리려고 한다. 과연 두 부부의 미래에는 어떤 세계가 기다리고 있을까?
[˝자네한테는 너무 여유가 많다고. 그 여유가 자네를 너무 사치스럽게 만드는 거라네. 그 결과 좋아하는 것을 손에 넣자마자 곧바로 다음 것을 원하게 되지. 좋아하는 것을 놓쳤을 때는 발을 동동 구르며 분해하는 거고.˝] P.488
소세키의 <명암>은 독자에게 인간과 인간 사이에는 결코 건널 수 없는 강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마지막으로 말하고 있다. 알면 알수록, 가까이 다가갈수록 더욱 어려운 인간의 마음, 그리고 겉으로 보이는 밝은 ˝명˝만 본다면 우리는 그 사람의 절반도 채 모르는거다. 언제나 드러나는건 아주 일부분이니까.
[˝러시아 소설, 특히 도스토옙스키의 소설을 읽은 사람이라면 반드시 알고 있을 거네. 사람이 아무리 미천해도, 또 아무리 교육을 받지 못했다고 해도 때로는 그 사람의 입에서 눈물이 흘러내릴 만큼 고마운, 그리고 조금도 겉으로 꾸미지 않은 지고지순한 감정이 샘물처럼 흘러넘친다는 사실을 누구나 알고 있을 거네. 자네는 그걸 허위라고 생각하나?˝] P.106
소설이 미완성이다보니 책을 다 읽고 나서도 아쉬움이 많이 남는 작품이었다. 도대체 소세키가 그린 <명암>의 결말은 무엇이었을까? 개인적으로는 파국이 아니었을까? 소세키의 작품중에 해피엔딩인 작품이 별로 없었으니까. 누군가가 소세키가 끝내지 못한 이야기의 끝을 맺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해본다.
Ps. 드디어 현암사 소세키 시리즈를 완독했다. 이제는 아직 못구한 책 세권을 구매하고, 종합 페이퍼를 써봐야 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