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사노바의 귀향.꿈의 노벨레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57
아르투어 슈니츨러 지음, 모명숙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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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22072

"행운과 여자는 억지로는 안되는 법이죠."

언제나 첫 만남은 설렌다. 어제 읽은 <카사노바의 귀향, 꿈의 노벨레> 작가인 아르투어 슈니츨러는 처음 들어본 작가였다. 게다가 흔하지 않은 오스트리아 작가인데다 츠바이크의 친구라고 한다. 그래서 잘 모르는 작가의 작품이지만 호기심 차원에서 이 책을 선택해서 읽었다. 결론은 대단히 재미있게 읽었다.



이 책에는 <카사노바의 귀향>, <꿈의 노벨레> 두 작품이 실려있는데, 간단히 리뷰해 보자면,



1. <카사노바의 귀향>

카사소바, 카사노바 말은 들어봤는데 누군지 정확히 몰라서 인터넷을 찾아보니,

[자코모 카사노바는 이탈리아 출신으로 성직자, 모험가, 시인, 소설가를 자칭한 인물이다. 프랑스어식 이름인 자크 카자노바 드생갈(Jacques Casanova de Seingalt)로도 알려져있다.
일반적으로 잘난 바람둥이의 대표격이자 난봉꾼의 대명사처럼 알려져 있는 인물로 20세기 중후반에 잠깐 재평가가 시도된 적이 있었으나, 난봉꾼 정도를 넘어 불법 매춘과 강간, 사기 행각이라는 범죄 행위가 밝혀져 재평가가 취소되었다.]



이렇게 설명되어 있었다. <카사노바의 귀향>은 베네치아에서 탈옥하여 추방된 50대의 노인 카사노바가 고향으로 복귀하기 전에 경험한 몇일간의 이야기를 작가가 재구성한 작품이다.


자유롭고 방탕한 생활을 끝내고 이제 고향인 베네치아로 돌아가고 싶었던 노년의 카사노바는 의회에 자신의 사면을 요청했고, 만토바라는 지역에서 그 결과를 기다리는 중이었다.

[고향에 돌아가기를 포기한다는 것은, 운명이 그에게 요구하는 희생중 가장 견디기 어려울 것 같았다. 보잘것없이 퇴락한 세상에서, 사랑하는 도시를 언젠가 다시 볼 수 있으리라는 희망도 확신도 없이 더 무엇을 해야 한단 말인가?] P.66



그러던 중 거리에서 옛 친구인 올리보를 만나고, 카사노바는 내키지 않았으나 올리보의 간절한 부탁에 의해 마지못해 올리보의 집에 간다. 올리보가 이렇게 간청한 이유는 카사노바의 경제적 도움 때문에 아말리아라는 여성과 결혼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카사노바의 경제적인 도움은 그냥 선의에서 나온 행동은 아니었다. 카사노바는 올리보가 아말리아와 결혼하기 이전에 먼저 그녀를 차지했었고, 경제적인 도움은 그 댓가일 뿐이었던 것이다.


이제는 세 딸의 엄마이고,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카사노바를 잊지 못했던 아말리아는 그를 보자마자 뜨거운 욕정에 쌓인다. 하지만 카사노바는 더이상 아말리아에게 어떤 감정을 느끼지 못한다. 대신 그는 올리보의 집에 잠시 머물러있던 올리보의 조카딸 마르콜리나에게 첫눈에 반해버리고 젊은 시절의 성욕을 다시한번 느끼면서 그녀에게 추근댄다.

["그렇다면 아말리아, 내가 그녀를 얻도록 주선해주오. 그게 당신에게 달려 있다는 것을 나는 안다오. 그녀에게 당신이 원하는 걸 말해주오. 내가 당신네를 협박했다고 말해요. 내가 당신 집 지붕에 불을 지를 사람이라고 말해줘요. 내가 바보라고, 정신병원에서 뛰쳐나온 위험한 바보지만, 처녀의 포옹이 나를 다시 건강하게 만들어줄 수 있다고 그녀에게 말해주오. 그렇소, 그녀에게 그렇게 말해요."] P.37



하지만 더 이상 젊은 시절의 매력이 사라져 버리고 노인이 된 카사노바는 마르콜리나를 유혹할 수 없었고, 오히려 마르콜리나의 냉대를 받는다. 예전에는 자신의 유혹에 모든 여자들이 무너졌지만 지금은 아니다. 더이상 카사노바는 자신이 생각하던 카사노바가 아니었던 것이다. 노인이 된 카사노바는 이제는 열정을 버리고 현명함을 갖춰야 하지만 자신의 신화를 버리지 못한다.

["사람들이 철학과 종교라고 부르는 게 그저 말장난에 불과한 것처럼 보여요. 다른 모든 것보다 물론 고상하기는 하지만 또한 더 무의미하기도 한 말장난요. 우리는 무한과 영원을 붙잡지 못할 거예요. 우리의 길은 출생에서 죽음으로 이어져요. 우리 각자의 가슴에 아로새겨진 법칙에 따라 살거나, 법칙에 거슬러 사는 것 외에 달리 뭐가 남아 있을까요? 순종과 반항은 똑같이 하느님에게서 나오니까요."] P.83



마르콜리나는 남성에게 전혀 관심이 없는 것처럼 행동하지만, 사실 그녀는 젊은 로렌치 소위와 비밀 연예를 즐기고 있었고, 로렌치 소위는 카사노바의 젊은 시절과 닮아있는 난봉꾼이었다. 카사노바는 두 사람의 비밀 연애를 목격하게 되고, 게다가 도박판에서 큰 빚을 진 로렌치 소위에게 큰 돈을 준다는 제안을 한다. 제안에 대한 카사노바의 요구사항은 다름 아닌 마르콜리나와 잠자리를 주선해 달라는 것이었다. 젊은 시절의 자신감은 사라지고 이제 늙고 추한 욕망만이 남아있는 카사노바. 과연 그의 추락은 어디까지 이어질까?

[나는 그 당시처럼 욕망의 온갖 격정과 청춘의 모든 활력이 혈관을 통해 흐르는 것을 느끼고 있지 않은가? 지금의 나는 그 당시와 같은 카사노바가 아닌가? 그리고 바로 내가 카사노바인데, 그 보잘것없는 늙음의 법칙이 왜 내게도 적용돼야 하는가. 남들이 그 법칙에 종속되어 있다고 해서?] P.122




2. <꿈의 노벨레>

위의 작품도 좋았지만, 개인적으론 <꿈의 노벨레>가 더 인상적이었다. 영화 <아이즈 와이즈 셧> 의 원작인 이 작품은 읽는 내내 꿈속을 걷는듯한 느낌을 받았다. 어디까지가 현실이고, 어디까지가 꿈인건지 모호한 경계 속에서 펼쳐지는 이야기는 어둡지만 대단히 매력적이었다.


의사인 프리돌린과 아내 알베르티네는 가면 무도회를 다녀오게되고, 무도회의 야릇한 분위기 때문이었을까? 두 부부는 자신들이 그동안 감추어둔 성적 욕망을 털어놓게 된다. 그런데 알베르티네와는 다르게 프리돌린은 아내가 감춰두었던 이야기를 듣고 충격에 빠진다.

["묻지 마세요." 남겨진 여자가 프리돌린에게 말했다. "그리고 그 무엇에도 놀라지 마세요. 제가 그들을 속여볼게요. 하지만 당장 말할 수 있는 것은 오랫동안 그럴 수는 없다는 점이에요. 너무 늦기 전에 도망쳐요. 지금도 도망치기에는 늦었는지 몰라요. 그리고 당신의 흔적을 추적당하지 않도록 조심하세요. 그 누구도 당신이 누구인지 알아서는 안 돼요. 걸리면 당신의 평온함, 당신 삶의 평화는 영원히 끝날 거예요. 가세요!"] P.203



두 사람은 다른 방식으로 각자의 성적 욕망을 충족시키려고 한다. 프리돌린은 현실에서 자신의 성적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여자를 찾아 나서지만 꿈과 같은 현실 세계에서 결정적인 기회가 올때마다 주저하게 되고, 반면 알베르티네는 현실과 같은 꿈속에서 자신의 성적 욕망을 충족한다. 그리고 마지막에 가서는 서로의 체험과 꿈을 또한번 털어놓는다.

["운명에 감사해야 할 것 같은데요. 우리가 온갖 모험에서 무사히 빠져나왔으니. 현실에서의 모험과 꿈속에서의 모험에서 말이에요."] P.260



현실에서 이루지 못한 욕망(프리돌린)과 꿈에서 이룬 욕망(알베르티네) 둘 사이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꿈과 현실의 경계를 어떻게 구분해야 할까? 그리고 누가 더 배신감을 크게 느낄까? 부부는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지만 감춰두었던 욕망을 서로가 알아버렸기 때문에 아마 이전과 같은 생활을 할 순 없을 것이다.

["그리고 어떤 꿈도." 그가 조용히 한숨을 쉬었다. "완전히 꿈은 아니야."] P.263


꿈이라는게 현실의 욕망이 투사된 것이라고 한다면 꿈과 현실을 구분하는 건 어쩌면 의미가 없는건지도 모르겠다.


Ps. 주말에 영화 <아이즈 와이드 셧>을 찾아봐야 겠다. 가면무도회를 어떻게 표현했을지 정말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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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22-05-20 19:2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도 꿈의 노벨레는 영화 원작이라는 것으로 알게 되었던 것 같아요. 스탠리 큐브릭의 유작이라고 많이 소개 나오면서 영화에 나온 음악이나 원작 소설에 대해서 들었거든요. 생각해보니 영화가 나온지도 이제 시간이 조금 지났네요.
새파랑님, 즐거운 주말과 기분 좋은 금요일 되세요.^^

새파랑 2022-05-20 20:03   좋아요 2 | URL
저는 전혀 모르고 저 영화도 제목만 들어봤지 본 영화는 아니더라구요 😅

레삭매냐 2022-05-20 19:2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지아코모 카사노바의 레전
더리한 삶은 돈 후앙의 그것
과 더불어 오래도록 기억될
것 같습니다.

아니 돈 후앙은 가공의 인물
이었나요.

오래 전에 본 자니 뎁 주연의
<돈 후앙> 생각이 나네요.

새파랑 2022-05-20 20:04   좋아요 2 | URL
스페인은 돈후앙, 이탈리아는 카사노바~! 둘다 실존 인물이라고 본거 같아요 ㅋ

청아 2022-05-20 20:0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오 <아이즈 와이드 셧>살짝 맛보기만 했는데 원작이라니 먼저 읽어보고싶네요!! ^^*

새파랑 2022-05-20 20:12   좋아요 2 | URL
전 영화를 안봐서 그런지 엄청 재미있게 읽었어요. 그냥 계속 읽 다가 밑줄도 못긋고 몰입해서 읽었습니다^^ 두시간? 정도면 읽으실 수 있습니다~!!

페넬로페 2022-05-20 20:1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카사노바의 진가는 나이 들어서도 퇴색되지 않아야하는 것 아닌가요 ㅎㅎ
저도 처음 들어보는 작가 입니다.
아이즈 와이드 셧, 영화가 은근히 관능적인데 원작으로 읽는 것도 좋을 듯 해요^^

새파랑 2022-05-20 20:25   좋아요 3 | URL
이 책 재미있게 읽긴 읽었는데 리뷰 쓰기가 상당히 힘들더라구요 😅 관능적(?)이라고 해야 하니 꼭 봐야겠습니다~!!

파이버 2022-05-20 20:4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아이즈 와이드 셧> 배우들 외모와 연기가 화려했던 기억이ㅎㅎ 배경만 조금다르고 내용은 거의 똑같았던걸로 기억합니다.

새파랑 2022-05-20 23:08   좋아요 2 | URL
인터넷 검새해보니까 그렇더라구요 ㅋ 오히려 책을 먼저 보는게 좋다고 하는 이야기가 많아서 안심하고 있습니다^^

mini74 2022-05-20 21:2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 아이즈 와이드 샷의 원작이군요. 생각보다 애매하게 야한데? 하면서 봤던 ㅎㅎ 전 뭘 기대한걸까요. 저도 첨 들어보는 작가에요. 욕망만 남은 카사노바라. 바람빠진 풍선같군요 ㅠㅠ 새파랑님 별 다섯개라 ㅠㅠ 읽을 책이 쌓였는데 이놈의 욕심에 살포시 담아봅니다 ㅎㅎ

새파랑 2022-05-20 23:09   좋아요 1 | URL
애매하게 야한건 뭘지 궁금하군요 ^^ 읽다보면 시간가는지 모르겠더라구요 ㅋ 꼭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건수하 2022-05-20 21:2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아이즈 와이드 셧 실제 부부가 연기하고 나중에 이혼해서 더 화제가 된 것 같아요. 영화를 볼 때 뒤를 조심하셔야 합니다. 전 관능적이라기보단 적나라하다고 느꼈어요 :)

새파랑 2022-05-20 23:11   좋아요 1 | URL
앗 ㅋ 그런가요? 완전 더 궁금합니다. 책을 읽을때는 야하다는 생각은 안들었거든요 ㅋ 뭔가 몽환적? 😅

건수하 2022-05-21 06:42   좋아요 2 | URL
전체적으로 몽환적인 분위기고 (안개도 끼어 있었던듯) 난교파티 장면이 적나라해요 :)

새파랑 2022-05-21 08:43   좋아요 1 | URL
검색들어갑니다 ^^

햇살과함께 2022-05-20 23:2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이즈 와이드 셧이 원작이 있었군요~
탐 크루즈 나온 이 영화랑 바닐라 스카이랑 비슷한 시기에 나온 것 같은데, 내용이 잘 기억안나네요?
둘다 몽환적인 분위기 였던 것 같은데..

새파랑 2022-05-21 08:44   좋아요 2 | URL
제가 처음에 착각한게 <바닐라 스카이> 보고 이 영화를 봤다고 생각한거 였어요 ㅋ 책도 한번 읽어보세요. 흥미진진합니다~!!

햇살과함께 2022-05-21 14:00   좋아요 2 | URL
그쵸 저도 항상 이 두 영화가 헷갈려요 ㅎ 책도 찾아봐야겠네요

꼬마요정 2022-05-21 00:0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꿈의 노벨레를 더 재미있게 읽었어요. 카사노바는 마지막에 반항적이고 영웅적인 면모를 잃었네요. 아이즈 와이드 셧도 재밌게 보긴 했어요, 하지만 소설이 더 좋았어요^^

새파랑 2022-05-21 08:46   좋아요 2 | URL
꼬마요정님도 꿈의 노벨레가 더 좋으셨다니 반갑네요 ^^ 벌써 한번 더 읽어보고 싶어집니다~!!

하나의책장 2022-05-21 23:4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담아놓기만 해놓고 아직 데려오진 않았었는데 새파랑님 리뷰보니 얼른 데려와서 읽어봐야겠어요🤭

새파랑 2022-05-22 12:42   좋아요 1 | URL
아직 안읽으셨군요. 잘 읽히고 재미있더라구요. 하나님 책장에 이 책이 들어오길 기대하겠습니다 ^^

희선 2022-05-22 02:3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카사노바 스스로 말한 게 많네요 성직자에 모험가 시인 소설가라니... 나중에 안 좋은 게 드러났군요 소설속 카사노바는 나이를 먹어도 철 들지 못한 사람 같기도 합니다 꼭 철 들어야 하는 건 아니지만... 사람은 거의 그렇기는 하네요 마음은 예전과 다르지 않지만 몸은 나이를 먹으니...


희선

새파랑 2022-05-22 12:44   좋아요 1 | URL
혼자 다 해먹는 카사노바입니다 ㅋ 나이를 먹을수록 현명해지고 겸손해져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카사노바는 언제나 청춘으로만 생각한거 같아요~ 하긴 젊은시절 그렇게 화려했으니 놓기가 쉽지는 않겠지만요 ^^
 

꿈의 노벨레는 대박이었다.

"그렇다면 아말리아, 내가 그녀를 얻도록 주선해주오. 그게 당신에게 달려 있다는 것을 나는 안다오. 그녀에게 당신이 원하는 걸 말해주오. 내가 당신네를 협박했다고 말해요. 내가 당신 집 지붕에 불을 지를 사람이라고 말해줘요. 내가 바보라고, 정신병원에서 뛰쳐나온 위험한 바보지만, 처녀의 포옹이 나를 다시 건강하게 만들어줄 수 있다고 그녀에게 말해주오. 그렇소, 그녀에게 그렇게 말해요." - P37

올리보가 이런 이야기를 하는 동안 카사노바는 한없이 커지는 욕망을 느꼈다. 그리고 이 욕망이 어리석고도 가망없다는 통찰은 그를 거의 절망케 했다. - P46

고향에 돌아가기를 포기한다는 것은, 운명이 그에게 요구하는 희생중 가장 견디기 어려울 것 같았다. 보잘것없이 퇴락한 세상에서, 사랑하는 도시를 언젠가 다시 볼 수 있으리라는 희망도 확신도 없이 더 무엇을 해야 한단 말인가? - P66

"때때로, 특히 오늘 같은 날에는"-사정을 아는 카사노바는 이 말에서, 깨어난 여심의 깊은 곳에서 나오는 떨리는 기도 소리를 동시에 들었다―"사람들이 철학과 종교라고 부르는 게 그저 말장난에 불과한 것처럼 보여요. 다른 모든 것보다 물론 고상하기는 하지만 또한 더 무의미하기도 한 말장난요. 우리는 무한과 영원을 붙잡지 못할 거예요. 우리의 길은 출생에서 죽음으로 이어져요. 우리 각자의 가슴에 아로새겨진 법칙에 따라 살거나, 법칙에 거슬러 사는 것 외에 달리 뭐가 남아 있을까요? 순종과 반항은 똑같이 하느님에게서 나오니까요." - P83

나는 그 당시처럼 욕망의 온갖 격정과 청춘의 모든 활력이 혈관을 통해 흐르는 것을 느끼고 있지 않은가? 지금의 나는 그 당시와 같은 카사노바가 아닌가? 그리고 바로 내가 카사노바인데, 그 보잘것없는 늙음의 법칙이 왜 내게도 적용돼야 하는가. 남들이 그 법칙에 종속되어 있다고 해서? - P122

"나는 이곳을 떠나지 않겠어요. 당신이 다시는 오지 않는다 해도, 이제 당신을 더는 보지 못한다 해도. 당신 가까이에서 살겠어요." - P168

"묻지 마세요." 남겨진 여자가 프리돌린에게 말했다. "그리고 그 무엇에도 놀라지 마세요. 제가 그들을 속여볼게요. 하지만 당장 말할 수 있는 것은 오랫동안 그럴 수는 없다는 점이에요. 너무 늦기 전에 도망쳐요. 지금도 도망치기에는 늦었는지 몰라요. 그리고 당신의 흔적을 추적당하지 않도록 조심하세요. 그 누구도 당신이 누구인지 알아서는 안 돼요. 걸리면 당신의 평온함, 당신 삶의 평화는 영원히 끝날 거예요. 가세요!" - P203

"이곳에서 중요한 것은 명예 회복이 아니라, 지금껏 입을 다물고 있던 빨간색 기사 복장의 남자가 말했다. "속죄요." - P208

수년 전부터 아내 말고는 정말 친한 사람이 없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아내와 상의할 수 없었다. 이번만이 아니라 다른 어떤 경우에도 마찬가지였다. 왜냐하면 사람은 상상하고 싶은 대로 상상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녀는 어젯밤 꿈에서 그를 십자가에 못 박히게 내버려두었던 것이다. - P248

다른 허망한 그림자들 속에 있는 하나의 그림자였다. 그 그림자는 다른 그림자들처럼 어둡고 의미도 비밀도 없었다. 그것이 그에게 의미하는 것은, 돌이킬 수 없이 썩어 없어지도록 정해진 지난밤의 창백한 시체였다. 그것 외에 다른 어떤것도 의미할 수 없었다. - P260

"운명에 감사해야 할 것 같은데요. 우리가 온갖 모험에서 무사히 빠져나왔으니. 현실에서의 모험과 꿈속에서의 모험에서 말이에요." - P263

"그리고 어떤 꿈도." 그가 조용히 한숨을 쉬었다. "완전히 꿈은 아니야." - P2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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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수하 2022-05-20 13: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대박이었다니... 저는 새파랑님의 감성을 따라갈 수가 없나봅니다 ^^
(다시 시도해보고 싶네요)

새파랑 2022-05-20 15:27   좋아요 1 | URL
꿈의 노벨레는 너무 재미있게 읽다보니 밑줄도 못그었어요 ㅜㅜ

건수하 2022-05-20 15:32   좋아요 1 | URL
그 정도였나요? ^^

새파랑 2022-05-20 15:35   좋아요 0 | URL
제가 좀 신비한 이야기 읽는걸 좋아합니다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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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와 독약 창비세계문학 28
엔도 슈사쿠 지음, 박유미 옮김 / 창비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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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22071 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군 포로에 대해 큐슈대학의 생체실험을 소재로 한 작품. 전쟁이라는 비극 안에서 인간이 얼마나 잔인해질 수 있는지, 인간의 존엄성이 어떻게 파괴되는지를 담담하게 보여준다. 책을 읽는 내내 고통스러웠다. <침묵>에 비견할만한 명작. 엔도 슈사쿠 책도 다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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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i74 2022-05-19 16:5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헉 저도 관심이 갑니다. 생체실험 하면 항상 윤동주 생각이 납니다 ㅠㅠ

새파랑 2022-05-19 17:37   좋아요 2 | URL
이 책 정말 흥미있고 좋습니다~! 엔도 슈사쿠 대단한거 같아요 ^^ 생체실험 장면에서 저도 모르게 상상하게 되서 좀 슬펐습니다 ㅜㅜ

청아 2022-05-19 17:1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사무라이>작가군여? 그 책도 그저 사두었는데;;고통스러웠는데 명작이라하시니 저도 일단 찜합니다^^*

새파랑 2022-05-19 17:38   좋아요 2 | URL
<침묵>은 더 강추입니다~! 이 작품은 좀 서늘합니다 ㅜㅜ <사무라이> 열심히 검색중인데 중고로 안나오더라구요 ㅋ
 
애쓰지 않아도 마음산책 짧은 소설
최은영 지음, 김세희 그림 / 마음산책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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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22070

˝누군가를 기다리는 사람처럼 그곳에 서 있었다. 누구를 기다리는지도 모르면서 기다리는 사람처럼.˝


왜인지는 몰라도 개인적으로는 국내문학에 손이 잘 안가는데, 아마 너무 주변에 있는 이야기 같아서 그런건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애장하는 작가님이 몇 분 있는데 그 중 한분이 최은영 작가님이다. 지금까지 최은영 작가님의 작품은 전부 읽어봤는데 다 좋았다.


이번에 나온 최은영 작가님의 단편집 <애쓰지 않아도> 역시 너무너무 좋았다. 마치 내가 평소에 생각하던 마음속 이야기를 작가님이 대신 해주는 기분이 들었다. 최은영 작가님도 ENFJ인 걸까?


모든 단편들이 다 좋았지만 몇편에 대한 감상평을 써보자면, (너무 짧아서 줄거리는 생략)



1. <애쓰지 않아도>

표제작이기도 한 이 작품이 가장 마음에 와닿았다. 이런 비슷한 경험을 해봐서 그런걸까? 주인공인 ‘나‘의 감정이 낯설지가 않았다. 나도 그런적이 몇번 있었던 것 같다. 그렇게 친하고 좋아했었는데 어느순간 멀어져 버린 사람들. 어떻게든 관계를 유지하고 싶어 노력하였지만 그럴수록 거리감만 커졌던 순간들.

[나는 어른이 되어서야 그때의 내 마음을 돌아봤다. 나는 유나의 공감을 바라서 그 말을 한 것만은 아니었다. 나는 유나에게 특별한 사람으로 인정받고 싶었고 유나가 나를 다른 아이들을 바라보는 것과 다른 시선으로 바라봐주기를 바라서 그런 말을 했다.] P.23



잊기 위해 원망도 하고 미워하려고도 했지만 그럴수록 더 아쉬움만이 남았다. 결국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어느정도 괜찮아 질 수 있었지만, 또 어떤 사람은 시간이 지나도 쉽게 버려지지 않는다. 이런건 더 오랜 시간이 지나야 잊혀지는걸까? ‘애쓰지 않아도‘ 언젠가는 아무렇지도 않게 떠올릴수 있다는걸 알았다면 조금 더 편했을까?

[나는 이제 애쓰지 않아도 유나를 별다른 감정 없이 기억 할 수 있다. 아마 영원히 그 애를 이해할 수는 없겠지만, 그런데도 나는 여전히 알고 싶다. 유나는 나를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 그 애는 지금의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P.32


그래도 궁금하긴 하다. 그 사람들은 그때 어떤 마음이었고, 지금은 또 어떤 마음인지...



2. <꿈결>

예전에 알던 사람들이 가끔 꿈에 나올때가 있다. 어쩌다 생각이 나서 추억을 떠올리다보면 그날 밤 꿈에서 보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 그 꿈을 기억하고 싶어도 금방 머릿속에서 사라져 버린다. 사람의 뇌가 원래 그런걸까, 아님 내 무의식이 지워야 한다고 강박해서 그런걸까?

[우리는 네 꿈에서 자주 만났어. 알잖아, 꿈을 기억할지 말지는 너의 선택이었다는 거. 넌 깨어나기 전에 선택할 수 있었어. 그리고 매번 기억하지 않는 걸 선택했고.] P.67



차라리 사랑한다고, 좋아한다고 말을 안하는게 더 낫지 않았을까란 생각도 하곤 한다. 사랑이라는 감정이 언젠가는 시들해지고 그래서 헤어질 수 밖에 없는 이유가 된다면, 차라리 일정한 거리를 두면서 오랫동안 함께 하는 것이 좋은것일지도 모르겠다. 뭐 결과론적인 이야기겠지만.

[나는 너를 사랑했어. 네가 나를 좋아하지 않았다면 더 좋았을 텐데, 그랬다면 모든 게 수월했을 텐데. 내가 너를 조금만 덜 사랑했더라도 우리는 이런 모습이 되지 않았을 거야.] P.62




3. <무급휴가>

다른 작가의 작품 리뷰에서도 비슷하게 썼었는데 그 사람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어떤 아픔을 간직하고 있는지 겉으로 봐서는 모른다. 내가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들도 그 사람에게는 당연한게 아닐 수도 있다. 말하지 않는다면 절대 알수없는 보이지 않는 사실들. 말해주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오해하기도 하고, 말을 해주더라도 경험해보지 않고서는 공감하기도 힘들다. 그렇다고 다가감을 멈추어야 할까?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더 다가가서 조금이라도 이해하는게 필요하다. 그게 바로 사랑이니까.

[미리는 현주를 만나고 나서야 사랑은 엄연히 드러나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사랑은 애써 증거를 찾아내야 하는 고통스러운 노동이 아니었다. 누군가의 심연 깊은 곳으로 내려가 네발로 기면서 어둠 속에서 두려워하는 일도, 자신의 가치를 증명해야만 어렵게 받을 수 있는 보상도 아니었다. 사랑은 자연스럽고 부드러운 것이었다.] P.220




쓰다보니 리뷰가 아니라 감성 에세이(?) 비슷하게 되어 버렸다. 하여튼 이 책은 많은걸 생각하게 해줘서 좋았고, 선물로 받은 책이어서 그런지 더욱 좋았다. 애쓰지 않아도 괜찮다는 위로가 필요한 분들께 이 책을 추천한다.

ps. 2022년 오늘 기준으로 70권을 읽었다. 이 추세라면 올해 독서 목표인 150권이 가능할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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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아 2022-05-19 09:5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새파랑님 써주신 감상과 최은영 작가님의 글들이 잘 어우러지는 느낌이예요^^* 작가님도 ENFJ맞을듯ㅋㅋㅋ

새파랑 2022-05-19 07:31   좋아요 3 | URL
마침 리뷰를 쓰려고 하는데 책이 옆에 없어어 막 썼어요 😅 이 책 너무 좋았습니다 ^^

bookholic 2022-05-18 18:4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이런 기세라면 150권 이미 초과달성~~^^
목표 상향 조정 요망^^

새파랑 2022-05-19 07:32   좋아요 3 | URL
아닙니다 ㅋ 후반기에는 좀 두껍고 어려운 책을 읽으려고 합니다~!!

페넬로페 2022-05-19 16:06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한국 소설이 좋은 이유는 뭔가 제목만 들어도 그 느낌이 느껴지는걸요.
특히 최은영작가의 소설이라 더 그런것 같아요~~~
벌써 70권이라니!
정말 초과달성 하실거예요^^

새파랑 2022-05-19 17:40   좋아요 5 | URL
일단 이번달 15권 채우는걸 목표로 달려보겠습니다~!! 최은영 작가님 너무 좋습니다 ^^

mini74 2022-05-19 17:17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새파랑님 문학소년 ㅎㅎ 넘 좋은데요. 150권!!! 새파랑님 대단 👍

새파랑 2022-05-19 17:40   좋아요 4 | URL
이제 더이상 소년이 될 수 없다는 ㅜㅜ 미니님은 저보다 더 많이 읽으셨을거 같아요~!!

희선 2022-05-20 02:2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애쓰지 않아도 되면 좋을 텐데, 애써도 잘 안 되는 게 많기도 하네요 사람 마음은 더 그런 듯해요 애써도 마음이 맞아야 그걸 알지 마음이 안 맞으면 잘 모르겠습니다 안 맞으면 그런가 보다 해야 할 텐데...

새파랑 님 벌써 책 일흔권이나 보셨군요 2022년에 백오십권 다 보시겠습니다


희선

새파랑 2022-05-20 07:13   좋아요 3 | URL
전 애쓰지 않아도 괜찮아~ 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ㅋ 희선님도 시집까지 하시면 70권 읽으셨을거 같은데~! 한번 세어보세요 ^^

그레이스 2022-05-20 10:3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도 읽어야합니다

새파랑 2022-05-20 11:17   좋아요 3 | URL
읽고 리뷰남겨주세요. 그레이스님은 아주 좋아하실거 같아요 ^^

책읽기.com글쓰기 2022-06-03 06: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오늘까지 상반기 읽은 책 결산해봐야 겠네요ㅎㅎ 저도 소설은 잘 안 읽는데
이책은 오늘 바로 결제해보겠습니다!!!!

새파랑 2022-06-03 06:53   좋아요 0 | URL
전 읽는 책의 90퍼센트가 소설입니다 ㅋ 나머지 10퍼센트는 시집이랑 에세이? 😅 짧아서 금방 읽으실꺼에요. 혹시 최은영 작가님 책을 아직 안보셨다면 <내게 무해한 사람> 을 추천합니다 ^^

책읽기.com글쓰기 2022-06-03 06: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감사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