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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레즈 데케루 ㅣ 펭귄클래식 106
프랑수아 모리아크 지음, 조은경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 / 2011년 5월
평점 :
N22077
˝진정한 내가 된다고요? 진정한 자신이 되는 유일한 방법은 내가 스스로 만드는 거예요.˝
첫 시작이 잘못되면 계속 잘못될 수 밖에 없다. 다시 몇걸음 뒤로 돌아가더라도 잘못은 반복될 것이다. 가장 이상적인 해결책은 처음으로 돌아가서 다시 시작하는 것이겠지만, 아무렇지도 않게 새롭게 시작할 수 있을까?
프랑수아 모리아크의 <테레즈 데케루>는 잘못된 결혼으로 모든걸 잃어버린 ˝테레즈˝라는 여성이 처음으로 돌아가기 위해 저지르는 사건 내용과 왜 그녀가 그런 사건을 저지를 수 밖에 없었는지에 대한 심리적 갈등을 그리고 있다.
<테레즈 데케루>는 지방법원을 배경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한 약사로부터 고소를 당한 ˝테레즈˝, 그녀는 남편이 먹고 있던 약의 처방전을 위조하여 남편을 독살하려는 협의로 피소되었다.(다행히 남편은 죽지 않고 입원해있다.) 하지만 당시 상류층이었던 ˝테레즈˝의 아버지와 남편 ˝베르나르˝는 집안의 명예를 훼손시키지 않기 위해, 소송을 기각시키기 위해 손을 쓴다. 도대체 어떤 이유 때문에 그녀는 남편을 죽이려고 했던걸까?
[‘나는 내 죄가 뭔지 몰라, 사람들이 내게 씌우려던 범죄는 내가 원치 않았던 거야. 내가 원했던 것이 무엇인지 모르겠어. 내 안에서, 그리고 내 밖에서 맹렬히 치밀던 이 힘이 어느 방향으로 나아갈지 난 전혀 몰랐었어. 그 힘이 나아가면서 파괴한 것을 보며 스스로도 공포를 느꼈었어‘] P.39
사실 ˝테레즈˝와 ˝베르나르˝와의 결혼은 집안끼리의 결합을 위해 필요한 것이기도 했지만, ˝테레즈˝ 자신이 원한 결혼이기도 했다. 재산이 늘어나는 것도 풍족하게 사는 것도 그녀의 바램이었고, 결혼을 통한 신분 유지 역시 그녀의 선택이었다. 하지만 이 모든게 그녀의 성장배경에 의한 어쩔수 없는 선택이었다면, 그렇게 할 수 밖에 없었던 길이라면?
[테레즈, 많은 사람들이 너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할 것 이다. 하지만 수년 전부터 너를 염탐하고, 네가 가는 길목에서 너를 붙잡고, 너의 가면을 벗기던 나는 네가 존재한다는 것을 안다.] P.23
그녀는 그와 결혼을 하고 나서 깨닫는다. 이 결혼은 잘못되었다고. 그녀는 그를 사랑하지 않았고, 그와 맞지 않다는걸 신혼여행을 가지마자 알게 된다. 결혼과 동시에 찾아온 권태. 그녀는 그의 손길, 그의 숨결마져 거부한다. 하지만 참아야 하기 때문에 그냥 그렇게 모든 감정을 숨기고 살아간다. 그런데 얼미동안이나 아무렇지도 않게 살 수 있을까?
[베르나르, 황량한 시선의 이 남자는 그림의 번호가 베데커 여행안내서와 다르다고 걱정하고, 최단시간에 봐야 할 것은 전부 봤다는 데 만족하는 그런 남자였다. 그가 이렇게 쉽게 속아 넘어가는 사람이었다니! ] P.61
권태에 빠진 ˝테레즈˝에게 어떤 계기가 찾아온다. ˝베르나르˝의 여동생이자 ˝테레즈˝의 친구인 ˝안˝에게 ˝장˝ 이라는 애인이 생기는데, ˝베르나르˝의 집안은 가난하고 병악한 ˝장˝을 결코 반기질 않는다. 시어머니는 ˝테레즈˝에게 ˝안˝을 설득해서 ˝장˝과 헤어지게 도와라고 한다. 그녀 역시 큰 생각 없이 이를 받아들이고, 친구의 이별을 위해 ˝장˝과 만난다. 여기서 문제가 생긴다.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장˝을 만난 ˝테레즈˝는 그의 영향을 받아 자유로운 삶을 꿈꾸게 되고, 남편인 ˝베르나르˝에게서 느껴보지 못한 마음의 안정을 얻게 된다.
[그런데 왜 저희가 한곳에 머물러야 한다는 말입니까? 매 순간은 즐거워야 합니다. 이전의 즐거움과는 다른 즐거움을 경험해야 하는 거지요.] P.99
처음부터 ˝안˝과의 결혼에 관심이 없던 ˝장˝은 모두의 바램대로 그곳을 떠난다. 하지만 그가 떠남과 동시에 ˝테레즈˝의 마음은 공허감으로 가득 찬다. 더이상 그를 만날 수 없게된 ˝테레즈˝는 점점 더 자신의 처지를 비관한다.
[내가 장 아제베도를 자주 보았던가? 그는 10월 말에 아르즐루즈를 떠났지. 아마 우리는 대여섯 번 산책을 같이 했을 거야. 안에게 전할 편지를 같이 썼던 산책만 따로 생각나는구나. 그 순진한 청년은 안에게 위안이 될 문구들만 생각해 냈어. 그에게 아무 말 안했지만 난 그 문구들이 아주 끔찍했는데. 하지만 우리의 마지막 산책들은 전부 뒤섞여 하나의 기억같이 느껴져.] P.105
이후 그녀는 출산을 한다. 하지만 그녀는 딸에게 애정을 느끼지 못하고, 그녀보다는 자식에 더 관심을 보이는 가족들에게 서운함도 느끼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의 딸이 자신을 닮지 않기를 바라기 까지 한다. 무엇때문에 그녀는 이렇게 삶의 의욕을 잃고 권태에 빠진걸까? 남편에 대한 적개심은 커져만 간다. 그러던 어느날 그녀는 조금씩 조금씩 남편이 먹는 약의 처방량을 늘리게 된다. 그리고 남편은 결국 쓰러지고, 그녀는 피소된다. 아무리 싫더라도 꼭 그렇게까지 했어야 할까? 아니 도대체 무엇이 그녀를 범죄자로 만들었던 걸까?
[오로지 베르나르만이 끔찍한 현실, 그 자체였다. 그의 육중한 몸집, 콧소리, 단호한 어조와 그 만족스러운 태도, 이 세계에서 벗어나야 했다. 그런데 어떻게? 어디로 가야 하나? 첫 더위가 그녀를 짓눌렀다. 그녀가 죄를 범하려는 찰나에는 그 어떤 경고도 없었다.] P.121
그녀의 죄는 기각되었지만 그녀는 더이상 이전과 같이 지낼수는 없었다. 집안의 체면을 중요시하는 ˝테레즈˝의 아버지와 ˝베르나르˝는 과다 처방을 단순한 실수로 덮었고, 모두에게 쉬쉬한다. 그리고 겉으로는 행복한 가정을 연기하고 그들에게는 아무 문제가 없다는 듯이 살아간다. 음식에 독을 탈지도 모른다는 걱정 때문에 ˝테레즈˝의 식당 출입은 금지되고, 감금되다시피 하게 된다. 그런데 누구도 ˝테레즈˝의 마음의 병에 대해 관심을 갖지 않는다. 과연 ˝테레즈˝는 행복해질 수 있을까? 고독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내가 원했던 것이라고요? 뭐, 내가 원하지 않았던 것을 말하는 게 더 편하겠네요. 나는 어떤 인물인 듯 연극하고, 행동하고, 상투적인 말을 하고, 매 순간 진정한 ‘테레즈‘ 를 부정하고 싶지 않았어요. 아니에요, 베르나르, 보세요. 나는 솔직하려고 노력하고 있다고요. 내가 당신에게 하는 이야기는 왜 다 거짓처럼 들리는 걸까요?˝] P.184
약물을 과다투여한 그녀의 행위는 분명 잘못된게 맞다. 처벌받아야 함이 당연하다. 하지만 그녀가 그렇게 되기까지의 과정을 복기해 볼 필요는 있다. 그녀의 권태와 고독은 어디서부터 온건지 말이다. 자신이 선택했기에 자신이 책임져야한다고 말하기에는 그녀의 선택지가 너무 제한적이지는 않았던 걸까? 누구의 부인이 아닌, 누구의 엄마가 아닌 ˝테레즈˝ 본인으로 살고 싶었던 그녀의 미래에는 새로운 삶이 있기를 바래본다.
[‘내가 소중하게 생각했던 것은 돌로 만들어진 도시가 아니야. 강연도, 박물관도 아니야. 내가 소중하게 생각했던 그것은 도시 속에서 동요하고 어떤 폭풍우보다도 더 강한 열정이 만들어내는 살아 있는 숲이야. 어둠 속에서 아르즐루즈의 소나무 숲이 내는 신음 소리 역시 인간적이기에 감동적이었던 거야.‘] P.190
Ps.
사실 이 책을 읽은 이유는 얼마전에 인상깊게 읽었던 엔도 슈사쿠의 <깊은 강>에 이 책이 계속 등장했고, 엔도 슈사쿠가 이 책을 아주 좋아했기 때문이었다. 도대체 얼마나 좋길래 엔도 슈사쿠가 극찬을 했지? 라는 궁금증이 생겼다.
생각해보니까 나는 어떤 책을 읽고 나면 그 책에서 언급된 다른 책을 읽어보고 싶어진다. 최근에 <밑줄 긋는 남자>를 읽고나서 에밀 아자르의 <솔로몬왕의 고뇌>를 읽었었고, <콜미바이유어네임>을 읽고나서 스탕달의 <아르망스>를 너무 읽고 싶었지만 절판되어서 도저히 구할 수 없었다.(중고책 엄청 비쌈...)
책을 읽고 나니 왜 엔도 슈사쿠가 이 작품을 좋아했는지 어느정도 이해가 되었다. 작품의 배경과 성별은 다르지만 ˝테레즈˝의 공허함과 엔도 슈사쿠의 작품에 담겨있는 그 쓸쓸함이 닮았다고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구원을 받아들이는 주인공의 감정 역시 왠지 닮아보였다. 어찌되었든 자신의 정체성을 찾는다는게 쉽지는 않지만 자신밖에는 할 수 없는 일이란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