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22093
˝처음으로 도모에는 바보와 위대한 바보라는 두가지 말이 어떻게 다른지 알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꾸밈없이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꾸밈없이 모든 사람을 믿으며, 비록 자기가 속고 배반을 당해도 그 신뢰와 애정의 등불을 계속해서 지켜나가는 사람, 그 사람은 요즘 세상에서 바보로 보일지도 모른다.˝
가끔 나 스스로를 바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바보처럼 뻔히 아닌걸 알면서도 끝까지 해보고, 남들은 다 자기 목소리를 낼때도 침묵하며, 개인적인 이익을 얻는걸 부끄러워 했다. 그러다보면 언제나 마지막에 남아 있는건 나 자신이었다.
그런 바보같은 모습을 누군가는 진정성있게 느꼈을지도 모르지만, 대부분은 그냥 무심히 지나쳐 갔을것이다. 그래도 바보같은 사람들의 바보같은 행동은 계속된다. 애시당초 누군가가 알아주길 바라는 마음에서 바보같은 행동을 한게 아니라 그져 그렇게 바보같은 행동을 하는게 자신의 신념이기 때문이다.
<바보>의 줄거리를 간단히 소개해보자면...
어느날 ‘다카모리‘에게 한통의 편지가 날아온다.편지의 발신인은 ‘가스통 보나파르트‘(이하 가스)라는 한 젊은이로, ‘가스‘는 ‘다카모리‘의 오래된 펜팔 친구였는데, 그가 갑자기 프랑스에서 일본으로 건너온다는 편지 내용이었다. ‘가스‘는 편지에 왜 일본으로 오는지에 대한 이유는 밝히지 않았다.
[도모에는 눈을 감고 예전에 역사책에서 보았던 나폴레옹의 초상을 기억해내려고 애썼다. 흰 조끼를 입고, 그 흰 조끼에 한 손을 넣은 채 가슴을 펴고 있는 모습을……………그런 모습의 남자일까…………?! 어쨌든 나폴레옹은 키가 매우 작고 못생긴 남자였다고 한다.] P.33
편지를 받고 나서 ‘다카모리‘와 그의 여동생인 ‘도모에‘의 삶은 조금씩 바뀐다. ‘가스‘가 도대체 왜 일본으로 오는지 궁금증을 가지게 되고, 이름에서 느껴지듯이 나폴레옹의 후예인 ‘가스‘에 대한 기대를 하게 된다. 그리고 드디어 배를 타고 넘어온 ‘가스‘를 대면하게 된다. 하지만 그는 외모적으로도 뛰어나지 않고, 생각은 조금 어눌한 바보였다.
[어두운 선창의 둥근 창에서 흘러들어 오는 흰색의 광선을 등으로 받으며, 온몸 가득히 기쁨을 드러내면서 다카모리에게 손을 내민 이 남자의 얼굴은 백인인지 동양인인지 모를 정도로 햇빛에 그을렸고, 더욱이 정말 말처럼 긴 얼굴을 하고 있었다. 얼굴만 긴 것이 아니라 코도 길었다. 그리고 잇몸을 슬쩍 드러내면서 씩 웃을 때 벌리는 큰 입까지………… 정말 말상도 보통 말상이 아니었다. ] P.54
하지만 ‘가스‘는 그저그런 ‘바보‘가 아니었다. 어떤 사람도 의심하지 않고, 진심을 깨뚫어보는 순수와 지혜를 가지고 있었다. 그는 길에 버려진 강아지에게도, 자신을 협박하는 야쿠자에게도, 길거리 여성에게도, 형의 복수를 위해 살인자가 된 사람에게도 연민을 거두지 않는다. ‘가스‘는 가진게 거의 없었지만 그 없는것 마져도 자신을 스쳐간 사람들에게 모두 내어준다. 어떻게든 자신의 진심을 전해주기 위해.
[˝산다는 것, 정말 어려워요. 도모에 씨, 나 겁쟁이예요… 그렇기 때문에 평생 열심히 살지 않으면 안 돼요. 참 힘들어요.˝] P.250
그리고 그렇게 ‘가스‘를 스쳐지나간 모든 사람들은 화해와 평안을 얻게 되고, 그에 대한 기억을 마음속에 담는다. 언젠가는 다시 만날 수 있을꺼라는 기대와 함께. 그는 ‘바보‘가 아니었다. 그는 ‘위대한 바보‘였다.
[하지만 그는 단순한 바보가 아니다. 위대한 바보인 것이다. 자신의 몸을 태우면서 발산하는 작은 빛을 사람들의 인생에 언제까지나 계속해서 비추는 위대한 바보이다.] P.263
<바보>는 엔도 슈사쿠의 다른 작품에 비해 많이 밝고 약간은 교훈적이며, 읽다보면 어른을 위한 동화 같은 느낌도 준다. 작가 이름을 모르고 읽었다면 엔도 슈사쿠의 작품이라고 생각을 못했을 수도 있다. 약간 작위(?)적인 부분이 있어서 다소 아쉬웠지만 그래도 엔도 슈사쿠는 엔도 슈사쿠였다. 이야기가 흡입력이 있고 재미있으며 문장은 아름다웠다. 그리고 이 책을 읽고 나면 주변에 ˝백로˝가 있는지 찾게 될 것이다.
나도 누군가에게 ‘위대한 바보‘로 기억되고 싶다. ‘바보‘ 말고...
Ps 1.아래는 ‘히라바야시 요코‘ 라는 사람이 <바보>를 위해 지은 시라고 하는데, 이 책의 내용을 핵심적으로 잘 설명하고 있어서 옮겨본다.
---‐--------------
먼 나라에서 온
알 수 없는 남자
바보 같은 얼굴을 하고서
언제나 주인 없는 개를 데리고 다녔지
비에 젖어도, 외톨이가 되어도
믿자 저 사람들을
노래하자 잊어버린
노래를
사람들이 비웃어도 상관치 않는 바보
길가에 우두커니 서 있는 사랑스러운 바보
무얼 하러 왔을까
키 크고 빼빼 마른 사람
슬픈 어깨를 하고서
언제나 어딘가로 걷고 있네
돌로 맞아도, 누군가에게 속아도
믿자 사람의 마음을
노래하자 잊어버린 노래를
늦어도 괜찮아 바보
황혼에 쓸쓸한 바보
푸른 하늘로 돌아가버린
알 수 없는 남자
상냥한 눈을 하고서
언제나 별을 부르고 있었지
슬픈 일뿐이어서 싫지만
믿자 저 사람들을
살자 살자꾸나
어디로 갔을까 슬픈 바보
그 사람 사랑스러운 바보
---‐--------------
Ps 2. 지금까지 엔도 슈사쿠의 다섯 작품을 읽었다. 간단히 순위를 매겨보자면,
1. <깊은강> ☆☆☆☆☆
2. <침묵> ☆☆☆☆☆
3. <사무라이> ☆☆☆☆☆
4. <바다와 독약> ☆☆☆☆☆
5. <바보> ☆☆☆☆
요런 순위인데, <바보>가 나쁜건 아닌데, 엔도 슈사쿠의 작품을 처음 접하는 사람에게 막 추천할만한 작품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엔도 슈사쿠이기 때문에 좋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