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도 정말 좋다. 두번 읽었다. 세번 읽어야 겠다.














이렇게 세상의 첫 막이 내리면 다른 무언가가 시작된다. 대개는 따분한 무언가다. 글을 읽게 되면서부터 우리는 자신에게 무가치한 희생만을 요구하는 것들을 사게 된다. 말하자면 교실에 앉을 자리 하나, 혹은 사무실이나 공장에서 떠맡는 직책 하나. 그러고 나면 우리는 단념한다. 우리는 꼭 읽어야 하는 것만 의무적으로 읽는다. 거기에 기쁨은 없으며 즐거움조차 누릴 수 없다. 복종이 있을 따름이다. 학업을 마칠 때까지, 사막의 입구에 다다를 때까지 중요한 건 오직 복종이다. 그다음에 우리는 아무것도 읽지 않는다. 신문조차도 우리는 집에 책이 한 권도 없는 사람들 가운데 하나가 된다. 작가들에게는 참으로 수수께끼 같은 사람들이다. 모래 속에 묻힌 집들이랄지, 마귀든 책이든 세상 무엇도 침투할 수 없는 삶들이다. 그들에게도 간혹 사전은 한 권 있다.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약삭빠른 영업사원이 팔고 간 백과사전도 있다. 하지만 읽기 위한 책은 아니다. 아이들을 위해, 미래를 위해, 궂은날을 위해 예비해 둔, 가구나 다름없는 책. 참나무로도 소나무로도 만들어지지 않은 좀 이상한 가구다. 손도 대지 않을, 월부로 구입한 스무 권짜리 작은 종이 가구. - P13

책을 읽지 않는 삶은 우리를 잠시도 놓아주지 않는 삶이다. 신문에 나오는 이야기들처럼 온갖 잡다한 것들의 축적으로 질식할 듯한 삶이다. - P16

사랑은 아무 데도 없다. 전시에 부족한 식량처럼, 죽어가는 사람의 짧은 호흡처럼, 사랑도 모자란다. 놀이에 몰두해 있는 아이에게 시간이 모자라듯 사랑도 그렇게 부족하다. 사랑을 하려면 시간이 필요한 법이다. 정말로 많은 시간이 필요해서, 우리 안에 자리한 사랑의 욕구를 채워주기엔 시간은 늘 역부족이다. 우리 안에 자리한 목소리와 피의 요구, 창공 같은 그 목소리에 흐르는 우윳빛 피의 요구를 채워주기에는 말이다. - P35

오랫동안, 오랫동안 기다리지 않으면 안된다. 그것이 사랑의 본성이다. 기다리고 기다리고, 또 기다려야 한다. 이 사실 이야말로 사랑이 갖춘 위엄이자, 사랑의 놀라운 특성 이다. 소음과 부산함으로부터 최대한 멀리 떨어져, 온갖 발작으로부터도 훌쩍 떨어져, 차분한 마음으로 기다려야 한다. 참을성 있게 기다려야 한다. 사랑은, 그리고 사랑의 가볍고 경쾌한 자각이자 더없이 겸허한 형상이며 각성한 얼굴인 시(詩)는, 심오한 기다림이고 달콤한 기다림이다. 부드럽고도 오묘하게 반짝이는 희망이다. - P36

내가 책을 읽는건, 보기 위해서예요. 삶의 반짝이는 고통을, 현실에서보다 더 잘 보기 위해서예요. 위안을 받자고 책을 읽는 게 아닙니다. 난 위로받을 길 없는 사람이니까. 무언가를 이해하려고 책을 읽는 것도 아니에요. 이해해야 할 건 하나도 없으니까. 내가 책을 읽는 건 내 삶 속에서 괴로워하는 생명을 보기 위해섭니다. 그저 보려는 겁니다. - P88

글을 쓰기 위해 필요한 것은 거의 없다. 가난한 삶만 있으면 된다. 너무 가난해 아무도 원치 않는 삶, 신 혹은 사물들을 피난처로 삼는 삶이다. 그곳에는 무가 차고 넘친다. 왁자지껄한 소음과 수많은 문들로 이루어진, 자체의 풍문들로 길을 잃은 삶과는 반대되는 삶이다. 그런 삶들을 가지고는 제대로 글을 쓸 수 없다. 그런 삶에서는 말할 거리가 하나도 없으니까. 우리는 오로지 부재 속에서만 제대로 볼 수 있고, 결핍 속에서만 제대로 말할 수 있다. 구걸하는 이 여인의 순결한 얼굴을 보려면 노트를 한 장 한 장 넘겨볼 수밖에 없다. 저녁 시간 차곡차곡 쌓이는 그 글들을 바라볼밖에. 어린아이의 잠 속에서 불어나는 엄청난 유산이다. - P91

우리 안엔 아무것도 없다. 아무도 없다. 색깔도 형태도 없는 기다림이 있을 뿐. 무언가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다. 이 기다림은 공기와 공기가 섞이듯 우리 안에 존재한다. 그 무엇과도 닮지 않은, 지루함의 절정이라고나 할 수 있는 기다림. 이 기다림이 그곳에 항시 존재 했던 건 아니다. 우리가 항시 무였던 것도, 그 누구도 아닌 사람이었던 것도 아니다. 유년기의 우리는 전부였고, 신은 우리 영역의 미미한 일부에 불과했었 다. 풀밭 속의 풀잎 같은 존재라고나 할까. - P119

유년기가 끝나면서 기다림이 시작되었다. 우리 자신이 죽은 이후로 우리는 기다리기 시작했다. - P119

내 고독의 물방앗간에 당신은 새벽처럼 들어와 불길처럼 나아갔다. 당신은 내 영혼 속에 범람하는 강물처럼 들어왔고, 당신의 웃음이 내 영토를 흠뻑 적셨다. 내 안으로 돌아오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암흑천지에 큰 태양 하나가 돌고 있었다. 만물이 죽은 땅에 옹달샘 하나가 춤추고 있었다. 그토록 가녀린 여자가 그렇게나 큰 자리를 차지하다니, 놀라운 일이었다. - P121

사랑 밖에서는 아무것도 알 수 없다. 사랑 안에는 알 수 없는 것들뿐이다. - P121

시간이 흘렀다. 세월이 불타버린 문턱에 재 한 줌 남지 않았다. 우린 태초의 해맑은 나뭇잎들 곁에 그대로 남아있다. 당신은 그 작은 파티 드레스를 한 번도 벗지 않았다는 듯이, 나는 거기서 만물의 순진성을, 이 땅 위에 실현된 어느 성탄의 기적을 끊임없이 예감했 다는 듯이. 사랑은 언제나 우리의 얼굴에서 어둠을 걷어내고 순결한 아이의 얼굴을 되돌려준다. 시간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이. 사랑이 전부라는 듯이. - P122

그런 다음 당신은 떠나버렸다. 배신을 한 건 아니었다. 당신 안에 나 있는, 굴곡이 단순한 같은 길을 따라간 것일 뿐. 당신은 눈처럼 하얀 작은 드레스도 가지고 가버렸다. 이 드레스는 더 이상 내 삶에서 춤추지 않았고 내 꿈속에서 맴돌지도 않았다. 내가 잠을 청하며 눈을 감은 순간 눈꺼풀 밑에서 펄럭였을 뿐. 눈과 세상 사이, 바로 그곳에서. 세월의 바람을 맞으며 열에 들떠 펄럭였다. 비애의 뇌우가 그것을 가슴 위로 내리쳤다. 금 간 유리창 위로 내려지는 덧문처럼. - P122

부재를 경험하지 않은 사람은 사랑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 부재를 경험한 사람은 자신이 무(無)임을 자각한다. 임박한 죽음 앞에서 몸을 떠는 짐승의 막연한 자각이다. - P123

당신이 내 고독의 원인은 아니다. 고독은 당신보다 훨씬 앞서 내 안에서 잠자고 있었다. 당신은, 그것을 깨어나게 한 당신은 그 고독을 가장 닮은 여자일 뿐. - P124

사랑이 끝나는 순간 세 동방박사가 모습을 드러낸다. 우수와 침묵과 기쁨. 그들이 푸른 대기 속을 천천히 나아간다. 어둠의 왕관과 황금눈물을 가지고서. 유년기에서 걸어 나온 이들이다. 그들은 영혼 속으로 침투해 들어간다. 천천히. 날마다 조금씩. 우수와 침묵과 기쁨. 언제나 같은 순서다. 침묵이 한복판에, 중심에 있다. 침묵의 희고 작은 드레스. - P12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 페이퍼는 10월 1일에 쓰려고 했으나 좀 바빠서 이제야 남긴다...  10월에는 11권을 읽었다. 오랜만에 10권 넘게 읽은 달이었다. 쫌만 노력하면 올해 100권 읽기가 가능할지도... 당분간 모임을 줄이고 독서에 집중해보자 ㅋ 오늘도 집을 나서면서 가방에는 책 다섯권을 넣고 나왔다. 과연 얼마나 읽을지는 모르겠지만..


이번달에 읽은 책들은 대부분 좋았다. 이중  <라우루스>, <운명의 꼭두각시>, <독일인의 사랑>은 내 인생책 목록에 추가해야 할 작품이었다. 그리고10월에 읽은 책은 아니지만 11월(1일)에 읽은 <그리움의 정원에서>는 위의 세 작품보다 더 좋았다.


앞으로 누군가에게 책을 선물해야 한다면 나는 <침묵>과 <그리움의 정원에서>를 선물할 것이다.


여러 작가의 단편을 읽을 수 있었던 <죽음의 책>도 좋았고, 표지는 좀 마음에 안들었지만 너무나 감성적이었던 <풀꽃>도 좋았고, 한국 문학을 다시 돌아보게 했던 <채식주의자>도 좋았고, ‘파스칼 키냐르‘라는 작가에 대한 관심을 가지게 만든 <세상의 모든 아침>도 좋았다.


11월에는 10월보다는 더 좋은 작품을 더 많이 읽을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


댓글(23) 먼댓글(0) 좋아요(3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행복한책읽기 2023-11-04 11:1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새파랑님. 안녕하세요. 여전히 책 많이~~ 읽고 성실히 기록하고 있군요. 새파랑님 꾸준함에 박수가 절로 쳐졌어요. 저는 좀 바쁠 뿐. 잘 지내고 있어요. 오늘 북플에 들어왔다 딱 보이셔서 인사 남기고 가요. 어쩌도 또 올게요. ^^

새파랑 2023-11-04 11:16   좋아요 2 | URL
책읽기님 오랜만입니다. 정말 반갑습니다~!! 자주는 아니더라도 가끔씩은 북플 하러 오세요. 책도 많이 읽으시고 항상 건강하시길 바라겠습니다 ^^

청아 2023-11-04 14:4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5권을 넣어 다니신다니
역시 소설을 애정하는
새파랑님입니다 ^^

11월에도 파이팅하세요! 저도
소설 좀더 읽고 싶어요.

새파랑 2023-11-04 16:03   좋아요 3 | URL
독서기계 미미님 감사합니다 ^^

다섯권 넣고 나왔는데 무겁기만 하네요 ㅋㅋㅋ

미미님도 11윌 화이팅 입니다~!!

얄라알라 2023-11-05 12:41   좋아요 2 | URL
저도 1~2권은 늘 들고 다니지만, ˝5권˝이라 하셨을 때 저절로 어꺠가 쓰윽 내려 앉았어요 ㅎ

그래도 100권 채우실 수 있다는 기대에 가까워지시네요!

얄라알라 2023-11-05 12:42   좋아요 2 | URL
^^ 독서기계 미미님 ^^
독서 장독대~~^^

장처럼 오래 묵혀가며 ‘내 것‘ 으로 삼는 생각의 시간이 드러나는 미미님의 서재

새파랑 2023-11-05 13:33   좋아요 1 | URL
다섯권이지만 다 얇은 책이어서 얄라 님의 두권의 책 두께보다 더 얇을거 같습니다~!!

반유행열반인 2023-11-04 19:1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 새파랑님 북적이 보고 제 거도 보니까 저는 10월에 9권 봤더라구요. 바쁘신 와중에도 열심히 독서하시는 거 여러모로 좋네요. 건강도 잘 챙기시길 빕니다. 술파랑 이런 별명 말고 건(강)파랑 걷(는)파랑 독(서)파랑 이런 보뱅 읽는 사람 어울리는 별명으로 가죠 ㅎㅎㅎㅎ

새파랑 2023-11-04 20:02   좋아요 1 | URL
열반인 님도 10월은 슬럼프셨군요 ㅋ

제가 술은 자주 마시지만 그래도 나름 건강합니다 ㅋㅋ 그래도 저는 술파랑이 마음에 듭니다 ~!!

하나의책장 2023-11-05 11: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10월도 알차게 읽으셨네요^^

새파랑 2023-11-05 12:10   좋아요 1 | URL
하나 님 오랜만입니다~!! 하나 님 처럼 많이 읽지는 못했지만 좋은 작품을 많이 만나서 좋았습니다~!!
즐거운 일요일 보내시갸 바라겠습니다~!!

러블리땡 2023-11-05 20: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올해 100권!!! 완전 응원합니다 ㅎㅎ 화이팅

새파랑 2023-11-06 10:14   좋아요 0 | URL
러블리땡님 오랜만입니다~!! 많이 읽는게 중요하진 않지만 그래도 100권은 읽어야 하지 않을가란 생각이 듭니다 ㅋㅋ 응원 감사합니다~!!

고양이라디오 2023-11-06 13: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새파랑님 100권 응원합니다!ㅎㅎ 저도 올해 100권이 목표였는데 20권 남았네요!! 열심히 읽어봐야겠어요!!

전 10월 6권 읽었네요ㅠㅠㅋ

새파랑 2023-11-06 23:34   좋아요 1 | URL
오~! 80권이면 목표달성 무조건 하시겠군요~!! 10월에는 부진하셨으니 11월, 12월에는 각 10권씩 읽으셔서 100권 채우시죠~!!

고양이라디오 2023-11-06 23:36   좋아요 1 | URL
열심히 해야 가능할 거 같은데요ㅎㅎ

새파랑님도 함께 100권 파이팅!

새파랑 2023-11-06 23:38   좋아요 1 | URL
고양이라디오님은 2,000퍼센트 가능하다고 확신 합니다. 같이 열심히 하시죠~!@

2023-11-08 12: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11-09 00: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yamoo 2023-11-09 14: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좋은 책 많이 읽으셨네요. 100권 읽기 응원하겠습니다!ㅎㅎ

저도 한 때 100권읽기 도전해서 딱 1번 성공했습니다. 주로 인문 사회 원전 읽기가 많은 저로서는 그래도 문학이 많이 포함될수록 목표달성이 용이했던 듯합니다..ㅎㅎ 성공한 해 문학은 딱 절반이었던 걸로 기억합니다..ㅎㅎ

그림움의 정원! 저도 꼭 읽어보겠어요!! 불끈~

새파랑 2023-11-09 14:33   좋아요 0 | URL
저는 90퍼센트가 소설, 10퍼센트가 에세이여서 ㅋ 가능할거 같은데 잘 안되네요. 생각보다 리뷰(좀 허접하지만..) 쓰는 시간이 오래걸리더라구요 ㅋ 당분간 리뷰는 한번에 쓰려고 합니다 ㅋㅋㅋ

전 능력부족으로 원전 읽기는 불가하다는 ㅜㅜ

Yamoo님도 화이팅입니다~!!

희선 2023-11-11 00: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십일월 오늘이 가면 삼분의 일이 가는군요 하루하루 잘 갑니다 어제도 그렇고 오늘도 춥겠습니다 새파랑 님 감기 조심하시고 이달에 만나고 싶은 책 즐겁게 만나세요


희선

새파랑 2023-11-11 10:56   좋아요 1 | URL
희선님 오래간만입니다. 날씨가 급작스럽게 추워졌는데 감기는 안걸리셨나요? 이달에도 열심히 책을 읽으려고 노력중입니다 ^^
 
그리움의 정원에서
크리스티앙 보뱅 지음, 김도연 옮김 / 1984Books / 2021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N23071

완벽하다. 글의 진정성을 점수로 표현한다면 <그리움의 정원에서>는 1,000점 짜리 작품이다. 그리움이라는 감정을 이보다 아름답게 더 잘 표현한 작품이 있을까?


아무런 가식도 없고, 어떤 꾸밈도 없고, 오직 진심만이 느껴진다. 이 책을 읽고 난 후 여운이 강하게 남아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단지 그리움에 대해 생각했다. 그리움이란 무엇일까? 내게는 어떤 그리움이 남아있는가?


<그리움의 정원에서>는 에세이이다. 저자인 '보뱅'이 사랑하는 여인이었던 '지슬렌'에 대한 그리움을 그린 작품이다. 그녀가 '보뱅'의 부인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서로 연인이었던 것 같지도 않다. 친구라고 하는게 더 맞을지도 모른다. 아니, 어쩌면 이런 관계가 진정한 '소울메이트'가 아닐까?


'보뱅'이 '지슬렌'을 알고 지낸 기간은 16년이고, 그녀는 44살이 되던 해 갑작스런 병으로 인해 인생을 마감한다. '보뱅'은 그녀가 죽은 후 자신만의 정원을 만들어 그녀를 그리워하는 마음을 문장으로 심는다. 현생에 없더라도, 옆에 없더라도, 누군가가 기억하고 그리워한다면 결코 사라진 거라 할 수 없다. 내 주위 모든 곳에서 떠올릴 수 있으니까.



[우리는 잠깐 살기 위해, 찰나에 불과한 삶을 살기 위해 두 번 태어나야 한다. 육신으로 먼저 태어나고 이어서 영혼으로 태어나야 한다.] P.17


[나는 너에 대한 험담은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결코 참을 수 없었다. 아주 조금이라도 네게 상처 주는 말, 아무리 조심스러운 비난도. 그런 말을 들으면 난 잊지 않고 마음에 담아둔다. 그렇다고 앙심을 품는 건 아니지만 한 번이라도 너에 대해 의혹을 발설하는 자들과 나 사이에는 메울 수 없는 깊은 심연이 생긴다. 그것이 내가 사랑하는 방식이며, 내가 아는 유일한 사랑법 이다. ] P.38


[짧지 않았다. '단' 5분뿐이었어도 전혀 지슬렌, 산책은 완벽했다. 완벽하지 않을 수 없었다. 네가 웃으며 거기 있었으니까.] P.65


[아뇨, 나는 아무것도 후회하지 않아요. 사람들이 내게 했던 좋은 일도 나쁜 일도 내겐 모두 똑같답니다. 아무것도 아니고, 별것도 아니에요. 나는 아무것도 후회하지 않아요. 내 삶, 내 기쁨은 오늘 당신과 함께 시작하니까요.] P.91


[지슬렌, 너는 바로 그런 사람이었다. 지금도 여전히 그렇다. 너로 인한 그리움과 공허와 고통마저도 내 안으로 들어와 나의 가장 큰 기쁨이 된다. 그리움, 공허, 고통 그리고 기쁨은 네가 내게 남긴 보물이다. 이런 보물은 결코 고갈되지 않는다. 이제 내가 해야 할 일은 죽음의 시간이 올 때까지, '지금'에서 '지금'으로 가는 것뿐 이다.] P.110


[1995년 여름, 나는 일을 잃고, 뼛속까지 사무치는 한기에 떨고 있다. 온종일 내가 하던 진짜 일은 너를 바라보고 너를 사랑하는 것이었다. 16년 동안, 그늘에 앉아 길에서 춤추는 너를 바라보았고, 그 일만으로도 나는 세상에서 가장 바쁜 남자였다.] P.114


[무덤에서 돌아오는 길에 불현듯 깨달음에 이른다. 광활하게 펼쳐진 풍경속에, 땅과 드넓은 하늘의 한결같은 아름다움 속에, 지평선 어디에나 네가 있다는 것을 나는 그곳에서 너를 본다. 네 무덤에서 등을 돌리고 나서야 비로소 너를 본다.] P.118

댓글(20) 먼댓글(0) 좋아요(3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반유행열반인 2023-11-04 10:2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아 저한테는 그리움/정원 다 탈락 키워드인데 심지어 보뱅이네…보뱅 읽는 맑은 마음 가지규 싶다 ㅋㅋㅋㅋ

새파랑 2023-11-04 17:17   좋아요 2 | URL
이 책은 열반인 님에게는 안맞을수도 있습니다... 열반인 님은 ‘쌔버스의 극장‘ 스타일이시니까 ㅋ

그런데 또 시를 좋아하시니 괜찮을거 같기도 하고...

보뱅 완전 순수한 사람인게 글에서 느껴집니다~!!

반유행열반인 2023-11-04 19:12   좋아요 0 | URL
아니 새파랑님 제가 새버스 읽으라고 놀린 게(? 괴롭힌 건가) 충격이 크셨군요 ㅋㅋㅋ 저는 글이 맑고 깨끗하다고 작가 순수하다 여기면 정말? 하고 오히려 더 의심하거든요… 뭐 어때 남은 글이 읽는 이에게 순수하게 읽힘 그걸로 좋은 일 한 거죠 ㅎㅎㅎ읽는 마음이 (조금이라도) 깨끗해서 그런 글들 잘 읽는 게 아닐까 싶어요.

새파랑 2023-11-04 19:52   좋아요 1 | URL
날카로운 분들이 의심이 많으신 편이더나구요. 전 의심이 별로 없습니다 ㅋㅋㅋ

더이상 읽지 못하고 있는 ‘새버쓰의 극장‘이 아직도 제 책상 책탑(읽다만 책들 모아놓은 곳) 중간에 있습니다 ㅜㅜ

blanca 2023-11-04 10: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보뱅 작품 중 거의 유일하게 안 읽은 작품인데 이건 꼭 읽어야 할 것 같네요.

새파랑 2023-11-04 10:34   좋아요 1 | URL
전 이책을 처음 읽었는데 너무 좋네요ㅜㅜ

<작은 파티 드레스> 이 책은 이번에 샀는데 완전 기대중입니다 ㅋ

이 작품 너무 좋았습니다. 완전 제스타일...

페넬로페 2023-11-04 11:1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는 ‘가벼운 마음‘ 읽고 아직 리뷰 쓰지 못하고 있는데 이 책은 완벽하군요.
꼭 읽겠습니다~~

새파랑 2023-11-04 17:17   좋아요 2 | URL
전 11월 1일부터 보뱅의 책을 다 모이기로 다짐했습니다 ㅋ 페넬로페 님의 가벼운 마음 리뷰가 기대되는군요~!!

그레이스 2023-11-04 14:0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가슴아프고 아름다운 책이었습니다.♡

새파랑 2023-11-04 17:17   좋아요 1 | URL
그레이스 님은 이미 읽으셨군요~! 완전 제 취향의 책이었습니다~!! 감동에 감동~~!!

은오 2023-11-04 16: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1000점이라니?! 😱😱😱😱😱
저는 <가벼운 마음> <흰 옷을 입은 여인> <작은 파티 드레스> 읽었어요! 환희의 인간이랑 이거 남았네요. ㅋㅋㅋ 보뱅 너무 좋아요 ㅠㅠㅠㅠㅠ

새파랑 2023-11-04 17:17   좋아요 1 | URL
은오 님도 보뱅 많이 읽으셨군요~! 진작 읽을걸 후회중입니다 ㅜㅜ
지슬렌에 대한 보뱅의 마음이랑
잠자냥 님에 대한 은오 님의 마음이랑 비슷한 것 같습니다~!

은오 2023-11-04 17:22   좋아요 1 | URL
하.. 2093년에 잠자냥님이랑 영혼결혼식 올릴 저 같군요 ㅜㅜ

잠자냥 2023-11-04 17:26   좋아요 1 | URL
엥…?!

새파랑 2023-11-04 17:29   좋아요 1 | URL
2093년이...

올까요? ㅋ

포기하시면 안됩니다. 쫌만 노력하시면 실제 결혼식도 가능할거 같습니다~! 요즘 잠자냥 님이 은오님께 흔들리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

잠자냥 2023-11-09 16:32   좋아요 1 | URL
푸하 언제 이런 댓글이......

yamoo 2023-11-09 14: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새파랑 님, 첫 줄 읽고 바로 장바구니에 넣었습니다요!!
얼마나 강력한지 저도 좀 경험해 봐야 겠으요~~~^^

새파랑 2023-11-09 14:31   좋아요 0 | URL
Yamoo님에게 잘 맞으시면 좋겠습니다~!! 전 이런 말랑말랑한것도 좀 좋아하는데~ 안맞으실수도 있습니다 ㅋ

희선 2023-11-11 00: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보뱅이 알면 좋아하겠습니다 1000점짜리라니... 지슬렌은 갑자기 죽다니 그런 거 생각하니 슬프기도 하네요 보뱅은 더 그랬겠습니다 지슬렌은 세상에 없다 해도 아주 없는 건 아니기도 하네요


희선

새파랑 2023-11-11 10:57   좋아요 0 | URL
더이상 보뱅이 알수 없어서 슬프네요ㅜㅜ 보뱅의 다른 책을 읽었는데 이 책만큼 좋지는 않네요 ㅎㅎ 즐거운 주말보내세요~!!
 
독일인의 사랑
프리드리히 막스 뮐러 지음, 김영진 옮김 / 자화상 / 2021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N23070

한 어린이가 있었다. 그의 신분은 높지 않았지만 누구보다도 순수한 마음을 지니고 있었다. 그는 귀족이라는 계급에 위축되지도 않고 친하게 지낼 수 있는 매력적인 아이었다.

[사랑을 아는 사람이라면, 사랑에는 크다거나 작다거나 하는 척도나 비교가 있을 수 없음을 알고, 오로지 온 마음, 온 영혼, 온 힘과 온 정성을 다해야만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을 안다. ] P.22



어느날 그는 마리아라는 후작의 딸을 보게 된다. 아름다운 그녀, 하지만 병약했던 그녀는 침대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말수도 없다. 그럼에도 그는 그녀에게 호감을 갖는다. 하지만 다가갈 수 없는 존재라는 생각 때문에 섣불리 다가가지 못한다.

[우리는 거의 인사조차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인사에 응답이 없는 경우 얼마나 아픈 상처를 입는가를, 인사를 나누고 악수를 했던 이들과 헤어진다는 것이 얼마나 가슴을 에는 듯이 슬픈 일인가를 알기 때문이다. 영혼의 날개는 깃을 뽑히고 꽃잎들은 거의 찢기고 시들어버린다. 고갈될 수 없는 사랑의 샘에는 단지 몇 방울 물 밖에 남아 있지 않다. 이 단 몇 방울의 물에 매달려 우리는 혀를 축이고 갈증으로 타 죽는 것을 겨우 면하는 것이다. 이 몇 방울의 물을 가지고도 우리는 사랑이라 부른다.] P.23



그러던 찰나에 어떤 상황이 일어나고, 그 순간 그의 마음속에 그녀가 강하게 박힌다. 사랑이었다, 표현할 수는 없었지만. 그리고 더이상 어린이가 아니었던 그는 이제 마리아가 있는 성으로 놀러가지 못한다. 세월은 흐르고 그도 이제 대학생이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그녀에 대한 기억은 그의 마음속에 머물러 있었다.

[아무튼 나의 모든 사고는 부지중에 그녀와의 대화 형식으로 바뀌었다. 내 안에 있는 모든 선한 것, 내가 지향 하는 모든 것, 내가 믿는 모든 것, 나의 좀 더 나은 모든 자아는 그녀에게 속해 있었다.] P.42



‘그녀도 나를 기억하고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아직 그곳에 있을까?‘ 어느날 그의 간절한 바램이 이루어진다. 마리아거 그에게 자기를 보러 와달라는 편지를 보낸것이다. 신의 뜻일까?

[˝내가 이렇게 오래 살게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어. 견신례를 받고 너에게 이 반지를 주던 날, 나는 곧 세상을 떠나리라고 생각했어. 그런데 이토록 여러 해를 살아 오며 여러가지 아름다운 일을 즐기고 있으니. 물론 괴로움도 많았지만, 그런 것은 빨리 잊는게 현명할 테지. 이제 진정으로 작별의 시간이 임박해온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 1시간, 1분이 얼마나 소중한지 몰라. 안녕, 내일 늦지 않도록 해.˝] P.53



그는 설레는 마음으로 마리아를 만나러 간다. 여전히 병약한 신세였지만 두 사람 사이에서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두 사람은 종교와 문학이라는 소재를 가지고 서로 이야기하면서 각별한 우정을 나눈다. 비록 마리아의 건강때문에 오래 이야기할 수는 없었지만, 그녀와 같은 공간에 있는것 만으로, 그녀와 이야기하는것 만으로 그는 하루하루가 너무 행복했다.

[˝그렇지만 사랑에 관한한, 타인이 사랑하고 있는지, 아닌지를 아는 것은 실로 어려운 일이라는 생각을 자주 했어. 왜냐하면 사랑에 있어서는 그것이 가짜라는 징표가 없기 때문이지. 그래서 나는 생각했어. 스스로 사랑을 아는 사람 말고는 누구도 타인의 사랑을 알 수 없다고. 또 그가 자신의 사랑을 믿는 한도 내에서만 타인의 사랑도 믿게 되는 것이라고.˝] P.59



이 행복이 계속되었으면, 마리아도 나와 같은 마음이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그녀의 건강 때문에, 그녀와의 신분차이 때문에 그는 그녀를 떠날 수 밖에 없었다. 왜 그렇게 사랑하면서도 다른 이유 때문에 떠나는걸까?

[아, 단 한 번 사랑하고 나서 영원히 고독해져야 한단 말인가! 단 한 번 믿고나서 영원히 절망해야 한다니! 한 번 빛을 보고나서 영원히 장님이 되고말다니! 이것은 엄연한 고문이다. 인간이 행하는 여타 모든 고문도 이 고문에 비하면 실로 아무것도 아닐 것이다.] P.83



결국 그는 자신이 잘못생각했음을 알고 다시 그녀를 만나기 위해 돌아갈 결심을 한다. 다시 만날 수 있을까? 그녀는 아직 이 세상에 남아 있을까?

[그녀를 뒤쫓아가, 저승에서라도 그녀를 다시 만나 그녀도 나를 사랑하고 있으며 나를 용서한다는 말을 듣지 않고 견딜 수 있을까? 아, 인간은 왜 이다지도 삶을 유회 하는 것일까. 하루하루가 마지막 날일 수도 있으며, 잃어버린 시간은 곧 영원의 상실임을 생각하지 않고, 왜 이렇듯 자신이 행할 수 있는 최선의 것과 누릴 수 있는 최고의 아름다움을 하루하루 미룬단 말인가.] P.92



프리드리히 막스 뮐러가 쓴 유일한 소설인 <독일인의 사랑>을 이제서야 읽었다. 나도 제목은 들어봤을 정도로 유명한 작품이었는데, 난 왜 이제서야 읽은건지 아쉽다. 요즘에는 만나기 힘든 정말 순수한 사랑이야기이다. 누군가에겐 심심할수도, 유치할수도 있겠지만 나는 정말 좋았다. 이런게 바로 진정한 사랑이 아닌가란 생각을 했다. 사랑이 꼭 결혼을 염두해야만 하는것도 아니고, 육체적인 열망을 해야만 하는것도 아니다. 그런건 진정한 사랑이 아니다.

[˝왜냐고? 마리아! 어린아이에게 왜 태어났느냐고 물어봐. 꽃에 왜 피었냐고 물어봐. 태양에왜 비추냐고 물어봐. 내가 너를사랑하는 건 그럴 수밖에 없기 때문이야.˝] P.138



지난주에 다 읽었으나 너무 좋아서 리뷰를 못쓰고 있다가 오늘 다시 읽고 리뷰를 쓴다. (마찬가지로 윌리엄 트레버의 신작도 너무 좋아서 리뷰를 못쓰고 있다...) 200페이지도 안되는 짧은 소설이지만 감동은 어느 장편보다도 깊었다. 사랑은 참 불가사의한 수수께끼다.

댓글(10) 먼댓글(0) 좋아요(3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잠자냥 2023-11-02 22: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술파랑이 술 사랑하는 마음 떠올리면 사랑을 잘 알 텐데요.

새파랑 2023-11-03 06:18   좋아요 1 | URL
ㅋㅋ어제는 안마셨습니다. 책 1권 살 수 있습니다~!!

페넬로페 2023-11-02 22: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독일인의 사랑‘ 을 분명 읽었는데 내용이 가물가물합니다.
저는 사랑을 대하는 새파랑님의 순수한 마음을 배우고 싶네요.
트레버의 작품, 아껴가며 읽고 있어요^^

새파랑 2023-11-03 06:21   좋아요 1 | URL
큰 사건(?) 같은게 없어서 오래되셨다면 기억이 안나실거 같아요 ㅋ 최근에 토마스 만 읽다가 포기하면서 ‘역시 독일소설은 좀 딱딱해‘ 생각했는데 이 책은 완전 반대더라구요~!

트레버 완전 좋습니다. 재독해야되는데 ㅡㅡ

청아 2023-11-02 22: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소설 읽고 너무 좋으면 오히려 리뷰를 바로 쓰기가 힘들더군요.
그런 책이 지금 몇 권인지...하....역시 두 번은 읽어야 하나봅니다ㅋㅋ

고갈될 수 없는 사랑의 샘!! 뭔가 술파랑님이랑 잘 맞는 표현ㅋㅋ

새파랑 2023-11-03 06:22   좋아요 1 | URL
제가 책 읽고 바로 리뷰 쓰는 스타일이 아닌데다 주말이 끼다보니 리뷰를 늦게 썼습니다 ㅋ 그래서 기억이 잘 안나서 다시 읽은것도 있다는...

미미님 이책 안 읽으셨다면 강추입니다~!!

거리의화가 2023-11-03 08: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새파랑님은 소설 애정가!ㅎㅎ 저도 이 소설 어렸을 적 읽었던 것 같은데 기억이 하나도 안납니다ㅠㅠ 리뷰 읽다보니 사랑과 고독은 따라오는 것인가 싶네요. 트레버 신작 리뷰도 기대해봅니다^^*

새파랑 2023-11-03 09:35   좋아요 1 | URL
ㅋ 역시 화가님은 읽으셨군요~!! 제가 얼마전에 <그리움의 정원에서>를 읽었는데 다음은 이책 리뷰를 써보려고 합니다. <그리움의 정원에서>도 <독일인의 사랑> 만큼 완전 좋습니다 ㅜㅜ

트레버는 재독 먼저하고...

사랑이 사람을 고독하게 하는것 같습니다~!! (조용필의 킬리만자로의 표범 인용..)

2023-12-08 11: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12-08 13: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모든 문장에 밑줄을 긋고 싶었다. 완벽한 책을 발견했다.




네 죽음은 내 안의 모든 걸 산산이 부서뜨렸다.
마음만 남기고.
네가 만들었던 나의 마음. 사라진 네 두 손으로 여 전히 빚고 있고, 사라진 네 목소리로 잠잠해지고, 사라진 네 웃음으로 환히 켜지는 마음을.
사랑한다. 그것 외에 무슨 말을 쓸 수 있을까. - P13

우리는 잠깐 살기 위해, 찰나에 불과한 삶을 살기 위해 두 번 태어나야 한다. 육신으로 먼저 태어나고 이어서 영혼으로 태어나야 한다. - P17

나는 너에 대한 험담은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결코 참을 수 없었다. 아주 조금이라도 네게 상처 주는 말, 아무리 조심스러운 비난도. 그런 말을 들으면 난 잊지 않고 마음에 담아둔다. 그렇다고 앙심을 품는 건 아니지만 한 번이라도 너에 대해 의혹을 발설하는 자들과 나 사이에는 메울 수 없는 깊은 심연이 생긴다. 그것이 내가 사랑하는 방식이며, 내가 아는 유일한 사랑법 이다. - P38

자유와 지혜와 사랑은 세 단어이나 똑같은 말이다. 각 단어가 다른 두 단어와 유리되면 알맹이도 의미도 없는 텅 빈 언어가 되어버리므로. - P44

짧지 않았다. ‘단‘ 5분뿐이었어도 전혀 지슬렌, 산책은 완벽했다. 완벽하지 않을 수 없었다. 네가 웃으며 거기 있었으니까. - P65

10년 후, 너는 어디에 있을까. 변함없이 이 침묵 속에 있을까. 일상의 시간들과 함께 하지 않으면서도 그 시간들에 스며든 부드러움 속에 변함없이 있을까. 일상의 시간들과 함께 하지 않고서도, 그 시간들과 함께 흐르지 않고서도. - P83

아뇨, 나는 아무것도 후회하지 않아요.
사람들이 내게 했던 좋은 일도 나쁜 일도 내겐 모두 똑같답니다.
아무것도 아니고, 별것도 아니에요.
나는 아무것도 후회하지 않아요.
내 삶, 내 기쁨은 오늘 당신과 함께 시작하니까요. - P91

지슬렌, 너는 바로 그런 사람이었다. 지금도 여전히 그렇다. 너로 인한 그리움과 공허와 고통마저도 내 안으로 들어와 나의 가장 큰 기쁨이 된다. 그리움, 공허, 고통 그리고 기쁨은 네가 내게 남긴 보물이다. 이런 보물은 결코 고갈되지 않는다. 이제 내가 해야 할 일은 죽음의 시간이 올 때까지, ‘지금‘에서 ‘지금‘으로 가는 것뿐 이다. - P110

1995년 여름, 나는 일을 잃고, 뼛속까지 사무치는 한기에 떨고 있다. 온종일 내가 하던 진짜 일은 너를 바라보고 너를 사랑하는 것이었다. 16년 동안, 그늘에 앉아 길에서 춤추는 너를 바라보았고, 그 일만으로도 나는 세상에서 가장 바쁜 남자였다. - P114

무덤에서 돌아오는 길에 불현듯 깨달음에 이른다. 광활하게 펼쳐진 풍경속에, 땅과 드넓은 하늘의 한결같은 아름다움 속에, 지평선 어디에나 네가 있다는 것을 나는 그곳에서 너를 본다. 네 무덤에서 등을 돌리고 나서야 비로소 너를 본다. - P118

지슬렌, 이제는 안다. 이제야 네 뜻을 안다. 그러므로 나는 네가 없는 삶을 여전히 축복하고, 계속해서 사랑할 것이다. 나는 점점 더 깊이 이 삶을 사랑한다. 그러한 사랑이 맑은 샘가에서, 궁전 계단에서 노래가 되어 흘러나온다. - P118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