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와 감동과 인생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작품. 최고였다.




















여자 형제들은 서로에 대해 모든 것을 알고 있든지 혹은 아무것도 모르고 있든지둘중 하나다. - P7

우물에 관해서 생각하고 있었어. 니나는 천천히 말했다. 온갓 아름다움이란 것이 일시적이고 다만 얼마 동안 빌려온 것이라는 것을 알아버린 사람, 그리고 우리가 인간들 틈이나 나무와 극장과 신문 사이에 있으면서도 마치 차가운 달 표면에 앉아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고독하다는 것을 알아버린 사람은 누구나 다 우울하지. - P65

물론 뜻밖의 말은 아니었다. 나 자신도 그전에 이미 수백 번이나 생각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말했다. 그애는 네가 갖고 있는 조용한 세계에서는 살 수 없을 거다. 뜨거운, 소란, 변화들이 있어야 하는 애다. 그애는 많은 모험을 무릅 쓸 그런 종류의 여자다. - P73

내 인생에는 전혀 방해물이 없었다. 상처도 없었다. 지금까지 모든 일은 잘되어 왔다. 분명히 그러나 또한 아무것도 얻지 못했다. 아무것도. 나는 자기 배를 항구에 매어둔 상인과 같다. 배를 내보내야 돈을 벌어올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배를 바다에 내보내는 것은 위험했으며, 나는 본래 모험에 적합한 인간이 아니었다. 결코 아니었다. 그러나 위험을 무릅쓰지 않는 남자가 무슨 가치가 있다는 말인가! - P75

출발하기 바로 직전, 그녀가 내 쪽을 잠시 보았을 때 나는 그녀의 얼굴에서 나이가 들고 많은 경험을 한 나중의 모습을 보았다. 용서하는 얼굴, 아량이 넘치는 얼굴이었다. 눈에는 많은 것을 알고 있는 듯한, 그러면서 생을 경멸하지 않는, 고형잃은 자의 우울한 안식이 깃들여 있었다. 나는 이전보다 더 그녀를 사랑한다. 그러나 나는 그녀를 다시 만나지 않을 것이다. - P100

사람은 자기 자신에 대해 이야기해서는 안 됩니다. 순전한 이기심에서 나은 것이라 해도 안 됩니다. 왜냐하면 마음을 쏟아버리고 나면 우리는 이전보다 더욱 비참하고 두 배나 더 고독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자기 속을 보이면 보일수록 타인과 더욱 가까워 진다고 믿는 것은 환상입니다. 가까워지기 위해서는 말없는 공감이 제일입니다. - P127

나는 자유룹게 있어야 한다는 것 외에는 분명히 알고 있는 것이 없습니다. 나는 내 속에 수백 개의 가능성이 있는 것을 느껴요. 모든 것은,나에게 아직 미정이고 시작에 불구합니다. 그런데 내가 어떻게 자신을 어떤 것에다 고정시킬 수 있겠습니까. 나는 정말 내가 누구인지 모릅니다. 당신에겐 이상하게 들릴지도 모르겠습니다만 나는 정말로 나를 모릅니다. - P127

이렇게 니나와 절연한 채 사는 것이 견딜 수 없다. 나는그녀가 찾아올 때를 대비해서 집 밖으로 한 걸음도 나가지 않는다. 어리석은 짓이다. 니나는 오지 않을 것이다. 지금은 아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나는 끊임없이 그녀가 오기를, 혹은 그녀에 대한 소식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그녀를 염려하는 나의 불안은 점점 커져간다. - P185

그럴 것이 전에는 이런 수상한 시대에는 자식이 없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지금은 전혀 없는 것보다는 그것을 잃고 슬퍼하는 편이 낫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처음으로 나는 슬픔도 재산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나 지금 내 나이는 마흔여덟이다. - P233

아침이었다. 새해 아침이었다. 새로운 밝은 기분이 다가오는 것을 느낀다. 수년 전부터 알지 못하고 지냈던 생의 위기가 극복되었다고 느낀다. 이제 나는 알았으니 더 이상 그것으로 미망에 빠지지 않을 것이다. 나는 니나를 사랑한다. 나는 절대 잃을 수 없는 새로운 순화된 방식으로 니나를 사랑한다. 나를 구원한 그 고통에 대해서 니나에게 감사한다. 지난밤의 눈물은 내 인생의 경직된 궁핀함을 씻겨 내려가게 했다. 남아 있는 것은 이 새로운 밝은 기분의 어두운 밑바닥인 체념의 슬품이다. 니나는 내가 가지려고 했고 되기를 원했던 모든 것에 대한 비유일지 모른다. 그렇게라도 항상 있어주면 좋겠다. 니나는 생 자체에 대한 비유이다. - P277

당신은 사는 게 별 의미가 없다는 것을 나만큼 잘 알고 있어요. 우리는 생의 의미를 알려고 했어요. 그래서는 안 되는 거죠. 만약 의미를 묻게 되면 그 의미는 결코 체험할 수 없게 돼요. 의미에 대해 묻지 않는 자만이 그 의미가 뭔지 알아요. - P319

우리는 어떤 대화를 나누었다. 나는 이것을 다시 떠올리기가 부끄럽다. 물론 나는 여느 때처럼 어두운 쪽 강변에 남아 있었고 니나는 더 밝은 반대편에 있었다. 그 사이에는 다리가 없었다. 그러나 한 사람이 부르면 다른 사람은 알아들었다. 니나가 돌아가기 전 우리가 나눈 마지막 말들 뒤에 남은 측량할 길 없는 침묵의 시공에서 우리는 그 어느때보다도 서로 밀착해 있다고 느꼈다. 나는 말했다. 내가 어둡고 출구가 없어 보이는 낭하를 끝없이 가고 있을 때마다 나에게 문을 열어준 것은 당신이었다고. 당신은 왔으며 당신과 함께 양지바르고 학 트인 대지가 펼쳐져 있었소. 나는 비록 이 대지에 발을 들여놓지는 못했지만 그 대지를 본 것으로 나의 지난 암담함은 구제될 수 있었소. - P368

나는 말할 수 있는 것을 말하지 않았다. 너를 사랑하기 때문이야, 라고 말하지 못했다. 다만 미소를 지었을 뿐이다. 니나는 나를 쳐다보았다. 여전히 당황한 눈빛이었으나 점차 깨닫고 있었다. 그리고 나지막이 물었다. 왜 당신은 <할 수 있었다> <이었다> <하려고 했다>라고 말하는 거죠? <할 수 있다> <이다> <하려고한다>라고 하지 않고? - P3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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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살롬, 압살롬!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99
윌리엄 포크너 지음, 이태동 옮김 / 민음사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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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25003 미국 남북전쟁 시기를 배경으로 왜 남부가 패배하였는지, 왜 노예제도가 불합리한지, 왜 인간의 욕심이 추한건지를 '서트펜'이라는 인물을 중심으로 그린 작품. 시점과 화자의 계속되는 변화로 한번에 이해하기는 어렵지만 이게 인물들의 비극성을 더욱 인상깊게 해준다. 대단함이 그냥 느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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팽이
최진영 지음 / 창비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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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25002 내가 가장 좋아하는 최진영 작가님의 두번째 단편집. 초창기의 날카로움과 어두움과 다듬어지지 않은 날것의 느낌을 잘 느낄 수 있다. 이정도로 강하게 쓰는 한국작가님이 또 있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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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한 내세 민음사 모던 클래식 7
러셀 뱅크스 지음, 박아람 옮김 / 민음사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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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25001 버스사고로 많은 어린이들이 희생당한 비극적인 사고, 그리고 이와 관계된 사람들의 시선에 따라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숨겨진 사연들이 조금씩 드러난다. 누군가에게는 비극이 누군가에겐 기회가 될 수 있다는 것과 한번 파괴된 관계는 예전처럼 회복될 수 없다는 걸 다시 한번 알게해준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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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곡 2025-01-13 14: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달콤한 내세‘ 저는 오래 전 영화로 봤는데 단번에 내용이 잘 이해가 되지는 않았던 기억이 어렴풋이 납니다 원작이 있었군요

새파랑 2025-01-14 07:17   좋아요 1 | URL
서곡님 감사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이 작품이 영화로도 있군요. 책을 읽으면서 사연이 너무 안타까웠습니다. 내 주위에서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일거 같아 더 무서웠습니다....

희선 2025-01-14 00: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목은 달콤한 내세인데 그렇게 달콤한 이야기는 아닐 듯 싶네요 죽은 다음 이야기가 나오는 건지... 숨은 사연이 나오는군요 사람 사이는 한번 틀어지면 다시 돌아가기 어렵겠습니다


희선

새파랑 2025-01-14 07:21   좋아요 1 | URL
영어 제목이 The sweet Hereafter 인데 이걸 달콤한 내세라고 번역하는게 맞는건가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제목이 좀 역설적인 느낌? 영화같은 작품이었습니다~!!

서곡 2025-01-16 13: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영화 ‘달콤한 내세‘에 지금은 감독 겸 각본가(오스카 각색상도 탔어요)로 더 알려진 캐나다 여배우 사라 폴리가 나와요...폴리는 앨리스 먼로 마거릿 애트우드 미리엄 테이브스 등 자국 여성작가들의 작품을 영상화했지요 반 남은 이 달 새해 1월 잘 보내시기 바랍니다~

새파랑 2025-01-16 18:18   좋아요 0 | URL
아하 그렇군요~!! 감사합니다. 서곡님도 남은 1월 즐겁게 보내시길 바라겠습니다~!!
 

역시 김연수작가님. 사랑의 정의에 대한 명쾌하고 유쾌한 답을 주는 작품.

하지만 사랑이 끝나면 이 모든 가능성이 사라진다. 사랑의 종말이 죽음으로 비유되는 까닭은 그 때문이다. 사랑이 끝나고 나면 우리는 원래의 자신으로 되돌아가는데. 그러면서 무한히 확장됐던 ‘나‘는 죽어버린다. 진우의 말처럼 한번 끝이 난 사랑을 다시 되돌릴 수 없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죽음은 비가역적인 과정이다. 사랑의 종말도 그와 마찬가지다. 확장이 끝난 뒤에는 수축이 이어지게 된다. 사랑이 끝나게 되면 우주 전체를 품은 수 있을 만름 확장했던 ‘나‘는 원래의 협소한 ‘나‘로 수축된다. 실연이란 그 크나큰 ‘나‘를 잃어버린 상실감이기도 하다. - P43

처음에는 두 사람이 함께 빠져들었지만, 모든게 끝나고 나면 각자 혼자 힘으로 빠져나와야 하는 것, 그 구지레한 과정을 통해 자신이 어떤 종류의 인간인지 뼛속 깊이 알게 되는 것, 그게 바로 사랑이다. - P44

기억이 아름다율까. 사랑이 아름다율까? 물론 기억이다. 기억이 더 오래가기 때문에 더 아름답다. 사랑은 두사람이 필요하지만, 기억은 혼자라도 상관없다. 사랑이 지나가고 나면 우리가 덧정을 쏟을 곳은 기억뿐이다. - P105

사랑했던 기억만은 영수증처럼 우리에게 남는다. 한때 우리가 뭔가를 소유했었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증거물. 질투가 없는 사람은 사랑하지 못한다고 말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기억이 없는 사람은 사랑했다는 증거를 제시할 수가 없다. - P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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