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도 좋다.


여자는 그 어둠 속에서, 어둠보다 더 어두웠다. 여자의 부축을 받아 이부자리 쪽으로 걸음을 옮기면서도 어째서인가 그에게는 그녀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아니 여자뿐만 아니라, 모든 것의 윤곽이 뿌옇기만 했다. 이부자리에 쓰러지고 나서도 아직도 열심히 모래 위를 달리고 있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꿈속에서도 쉬지 않고 달렸다.…………. 그런데도 잠은 얕았다. 삼태기를 운반하는 소리도, 멀리서 개 짖는 소리도, 고스란히 기억에 남아 있다. 여자가 밤참을 먹으러 돌아왔다가 머리맡에 있는 등잔에 불을 붙이는 것도 알고 있었다. 도중에 한 번 물을 마시러 일어났다가 그대로 잠이 깨고 말았다. 그렇다고 여자를 거들러 나갈 만큼의 기력은 없었다. - P195

불현듯, 새벽빛 슬픔이 북받친다………. 서로 상처를 핥아 주는 것도 좋겠지. 그러나 영원히 낫지 않을 상처를 영원히 핥고만 있는다면, 끝내는 혓바닥이 마모되어 버리지 않을까? - P198

납득이 안 갔어……… 어차피 인생이란 거 일일이 납득하면서 살아가는 것은 아니지만 - P198

어떤 생활이든 해답이야 없을 게 뻔하지만………뭐 조금이라도 마음을 달래줄 수 있는 것이 많은 쪽이 왠지 좋을 듯한 기분이 들거든 - P210

<그녀, 지금쯤 뭘 하고 있을까?>………어제까지의 일이 먼 옛날 일처럼 느껴졌다. - P210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거의 다 읽었는데..어치 결론이 나려나


통계상으로도 연 수백 건에 달하는 실종 신고서가 접수되나 발견될 확률은 의외로 적다고 한다. 살인이나 사고로 실종됐다면 확실한 증거가 남아 있을 것이고, 납치 같은 경우라도 관계자에게는 일단 그 동기가 명시되는 법이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도 속하지 않는 실종은 단서 잡기가 몹시 힘들다. 가령 그런 경우를 순수한 도망이라고 한다면, 대다수의 실종이 그 순수한 도망에 해당될 것이다. - P9

그러나 그 논리적인 추리도, 시체가 발견되지 않은 탓에 논외가 되고 말았다. 이렇게 하여 아무도 그가 실종된 진정한 이유를 모르는 채 7년이 지나, 민법 제30조에 의해 끝내 사망으로 인정되고 말았다. - P11

남자의 목적은 모래땅에 사는 곤충을 채집하는 것이었다. 물론 모래땅에 사는 곤충은 몸집도 작고 색도 별로 눈에 띄지 않는다. 하지만 웬만한 마니아가 되면 나비나 잠자리쯤은 거들떠보지도 않게 된다. 그들 마니아들이 노리는 것은, 자기의 표본 상자를 화려하게 장식하는 일도 아니고 분류학적 관심도 아니고 물론 한방 약재를 찾는 것도 아니다. 곤충 채집에는 훨씬 더 소박하고 직접적인 기쁨이 있다. 새로운 종을 발견하는 것 말이다. 신종 하나만 발견하면, 긴 라틴어 학명과 함께 자기 이름도 곤충도감에 기록되어 거의 반영구적으로 보존된다. 비록 곤충이란 형태를 빌려서이기는 하나 오래도록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을 수 있다면, 노력한 보람도 있는 셈이다. - P15

‘모래 암석 파편의 집합체. 때로 자철광, 주석, 그리고 간혹 사금을 포함하고 있다. 직경 1/16~2mm - P18

물론 모래는 생존에 적합하지 않다. 그렇다면 정착은 과연 생존에 절대적으로 불가결한 것인가. 정착을 부득불 고집하기 때문에 저 끔찍스런 경쟁이 시작되는 것은 아닐까? 만약 정착을 포기하고 모래의 유동에 몸을 맡긴다면 경쟁도 성립하지 않을 것이다. 실제로 사막에도 꽃은 피고 벌레와 짐승도 산다. 강한 적응력을 이용하여 경쟁권 밖으로 벗어난 생물들이다. 예컨대 그의 길앞잡이속처럼………. - P20

난, 이래 봬도 모래에 대해서는 웬만큼 알고 있는데 말 이죠, 모래란 말입니다, 이렇게, 일년 삼백육십오일 움직이는 겁니다……… 그러니까, 유동이 바로 모래의 생명이란 말입니다……… 절대로 한곳에 머물지 않는..….… 물 속에서도 공기 속에서도,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그래서, 살아 있는 생물은 보통 모래 속에서 살아남지 못하는 것입니다…………… 세균도 마찬가지죠……… 아아, 그러니까, 즉 청결의 대명사 같은 것이란 말입니다. 방부제 역할은 하겠지만, 썩게 하다니, 말도 안됩니다……… 그런데 하물며, 부인, 모래 자체가 썩다니요………… 그리고 무엇보다, 모래란 어엿한 광물이란 말입니다. - P32

이렇게까지 고생을 하면서 왜 이 부락에 눌러붙어 살지 않으면 안 되는 거요? 도무지 이유를 모르겠군……… 모래란, 그렇게 만만한 것이 아니라고! 이런 식으로 모래를 거역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면 큰 오산이오. 어이가 없어서!……………이런 짓은 못하겠어, 못해… 나 참,동정의 여지가 없군! - P44

사람들이 흔히 가리는 부분은 그렇게 고스란히 드러내놓고 있는데, 반대로 아무거리낌 없이 드러내놓는 얼굴만 수건으로 가리고 있다. 물론 눈과 호흡기를 모래로부터 보호하기 위해서일 테지만 그 대조가 나체의 의미를 한층 부각시키고 있는 것 같았다. - P48

미친 듯 소리를 지른다. 뭐라 말하면 좋을지 몰라,의미도 없는 말을 내뱉는다. 그저 있는 힘을 다해 고함을 지른다. 그렇게 하면 이 악몽이 놀라서 눈을 번쩍 뜨고 뜻하지 않은 실수에 벌벌 떨면서 그를 모래 구멍 속에서 꺼내줄지도 모른다는 듯이. 그러나 튀어나온 목소리는 가냘프고 맥이 없었다. 게다가 도중에 모래에 빨려들고 바람에 흩날려, 어디에 닿을지 허망하기만 하다. - P53

뭐, 좋아……… 인간은 각자 타인에게는 통용되지 않는 신조라는 것을 갖고 있으니까……… 모래를 쓸어내리든 뭘 하든, 멋대로 해보시라고. 하지만 나는 절대로 참을 수 없어. 이제 신물이 난다고! 아무튼 나는 여기를 떠나겠어………… 허술히 보면 안 되지……… 마음만 먹으면, 여기서 도망치는 것쯤 문제없으니까 말이야……… 마침 담배도 떨어졌고……… - P68

미안해요…… 하지만, 정말 여기서 나간 사람은 아직 없어요……… - P116

그러나 겁을 먹어서는 안 된다. 바다에 표류하는 사람이 기아와 갈증으로 쓰러지는 것은 생리적인 결핍보다 오히려 결핍에 대한 공포 탓이라고 한다. 졌다고 생각하면 그때부터 패배가 시작되는 것이다. 코끝에서 땀이 떨어졌다. 또 몇 분의 1cc 수분을 빼앗겼다고 신경을 쓰는 것 자체가 적의 술수에 빠져들었다는 뜻이다. 물컵에서 물이 증발하는데 시간이 얼마나 걸리는지를 생각해 보라. 불필요한 소동을 피워 시간이라는 말을 충동질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 P120

아래를 보아서는 안 된다………. 보라, 바로 저기가 지상이다………. 사방 어디든, 세계의 끝까지 자유롭게 걸어갈 수 있는 길이 뻗어 있는 지상이다………. 지상으로 올라가면, 모든 것은 추억이라는 수첩 사이에서 말린 꽃이 될 것이다………. 독초든 육식 식물이든, 엷고 반투명한 한 장의 꽃잎이 되어, 거실에서 녹차를 마시면서 전등빛에 비춰보며 늘어놓는 경험담의 양념이 된다. - P164

…………아래를 보면 안 된다, 아래를 보면 안 된다! 등산가든 빌딩 청소부든 텔레비전 송신탑의 전기공이든 공중그네를 타는 곡예사든 발전소의 굴뚝 청소부든, 아래에 신경을 쓰면 그때가 바로 파멸의 순간이다. - P165

살려줘!
늘 정해져 있는 말! …………아무렴 어떠랴………. 다 죽어가는 판에 개성 따위가 무슨 소용이 있나. 판으로 찍어낸 싸구려 과자 신세라도 좋으니, 아무튼 살고 싶다! ………이제$곧 가슴까지 묻히고, 턱까지 묻히고, 코밑까지 빠지면…………. 그만! 이제 그만! 제발 살려줘! ……………무슨 일이든 약속하겠어! …………제발 부탁이니까 살려줘! 살려달라고. - P192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페크pek0501 2022-07-07 17: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위의 책을 검색해 보다가 민음사에서 시리즈로 사기열전이 나왔다는 걸 알게 됐어요. 저는 두꺼운 책으로 샀는데 이렇게 낱권으로 나오다니 후후~~~. 민음사에서 나올 줄 알았으면 민음사 걸로 샀을 텐데 하는 생각이...
<모래의 여자>, 기대되는 책이네요. 어떤 내용일까요?

새파랑 2022-07-07 18:15   좋아요 0 | URL
요책 영화로도 있더라구요 ㅋ 모래의 늪에 빠진 기분입니다. 그냥 읽고나면 체념하는 기분이 듭니다 ㅎㅎ

제가 오늘이나 내일 리뷰를 써보겠습니다 ㅋ
 

N22087

˝사랑이 눈먼 것이라고들 말하지만, 너한테는 눈먼 상태가 어쩌면 세상을 보는 한 방식인지도 모르겠구나.˝


사링에 빠지는 건 한순간이다. 거기에 어떤 합리적 이유를 찾을 필요는 없다. 일단 마음에 들어왔다면, 연이라는 끈을 놓지 않는다면 그 관계는 끝나지 않는다.


로맹 가리의 마지막 작품인 <노르망디의 연>은 사랑에 대한 그의 생각이 집결된 사랑의 서사시이다. 이 책에서 그는 다양한 종류의 사랑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그래도 이야기의 핵심은 남여간의 사랑이다.


이 작품의 배경은 2차 세계 대전 시기의 노르망디이다. 1차 세계 대전에서 부모님을 여윈 소년 ˝뤼도 플뢰리˝는 삼촌인 ˝앙브루아즈 플뢰리˝와 함께 사는데, 삼촌의 직업은 우체부이지만, 그 지역에서는 연(Kite)의 장인(또는 미치광이)으로 알려져 있다. 삼촌은 각양각색의 연을 만들어 하늘에 날린다. 삼촌이 연을 통해 날리고자 했던 건 무엇이었을까?

[그러니까 그 사람들이 나를 미친사람으로 여겼다는 거냐. 생각해보거라. 그 멋진 신사들과 아름다운 숙녀들이 옳아. 한 평생을 연에 바친 사람이라면 어느 정도 광기가 있는 게 분명해. 다만 해석이 문제 될 뿐이지. 그것을 ˝광기˝라고 부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숭고한 불꽃˝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어. 그 둘을 구분 하기가 때론 어렵지. 하지만 네가 정말 누군가를 혹은 무언가를 좋아한다면 네가 가진 모든 것을, 심지어 너의 전부를 바치거라. 그리고 그 나머지엔 마음 쓰지 마라.]  P.18



그러던 어느날 숲에서 한적하게 낮잠을 자고 있던 ˝뤼도 플뢰리˝는 금발의 한 소녀를 만난다. 그녀의 이름은 ˝릴리˝로, 폴란드 귀족의 딸이었다. 단 한순간에 사랑에 빠진 ˝뤼도˝, 하지만 첫 만남 이후 ˝릴리˝는 폴란드로 돌아가고, 몇년동안 그녀를 보지 못한다.

[6월 중순에 배가 잔뜩 불러서 깜박 잠이 들었다가 눈을 떴을 때, 내 앞에는 커다란 밀짚모자를 쓴 샛노란 금발의 소녀가 보였다. 그 아이는 나를 엄하게 쳐다보고 있었다. 나뭇가지 아래엔 응달과 양달이 있었는데, 오랜 세월이 흐른 오늘날까지도 내 눈엔 이 명암의 유희가 릴라 주위에서 한 번도 그친 적이 없었던 것 같다. 당시에는 이유도 본질도 이해하지 못했던 그 감동적인 순간에 나는 어떻게 보면 예고를 받은 셈이었다. 본능적으로, 어떤 내적 힘인지 약점인지 모를 뭔가에 이끌려 행동을 했는데, 그것이 결정적이고 돌이킬 수 없는 행동이 되리라는 건 전혀 예감하지 못한 채였다. 그 엄격한 금발의 환영에게 딸기 한 줌을 내밀었던 것이다.]  P.25



그런데 여기에 놀라운 사실이 드러나는데, 주인공의 혈통인 ˝플뢰리˝ 집안은  대대로 기억력이 엄청 좋아서 과거의 일을 현재처럼 선명하게 기억한다는 것이다. ˝릴리˝를 볼 수 없었지만 ˝뤼도˝는 그녀를 마치 옆에 있는것처럼 느낀다. 매일매일 그의 앞에 찾아오는 그녀, 하지만 실체는 아니다. 눈을 감아야만 보이는 그녀. 이것도 병인걸까? 하지만 그런 좋았던 기억을 박제할 수 있다는게 한편으로는 부럽기도 하다.

[나는 공부를 했고, 작업실에서 나의 후견인을 도왔다. 하지만 흰옷 차림으로 손에 밀짚모자를 든 금발의 소녀가 내 곁에 찾아오지 않는 날은 드물었다. 에르비에 선생님이 아주 정확히 말했듯이 이건 분명히 ˝기억력 과잉˝이었다.]  P.27

[내가 ˝나의 귀여운 폴란드 여자˝라고 부르던 그 애를 보지 못한지 거의 4년이나 되었지만 내 기억은 조금도 흐려지지 않았다. 내 기억 속의 그 애는 손을 대보고 싶을 정도로 이목구비가 아주 섬세했고, 움직일 때마다 조화로운 생동감이 느껴졌다.]  P.32



4년이 지났지만 ˝뤼도˝는 여전히 그리워하며, 그녀를 처음 만났던 숲으로 간다. 그리고 눈을 감고 환상속에서 그녀를 만난다. 그런데 눈을 떠보니 실제의 ˝릴리˝가 있었다. 믿어지지 않은 일, 하지만 매일매일 그녀를 기억속에서 봤기 때문인지 지금의 재화가 마치 어제 일처럼 낯설지 않았다.

[4년 전부터 나를 기다린 것 같네………그녀가 웃었다. 그리고 설탕도 잊지 않았네!  /  난 절대 아무것도 잊지 않아. /  나는 모든 걸 너무 쉽게 잊는데 네 이름도 기억이 나지 않아..]  P.33



이후 ˝뤼도˝와 ˝릴리˝는 연인이 된다. 꿈 많고 경쾌한 귀족집안의 ˝릴리˝에 반해, 부모 없이 가난하게 자란 ˝뤼도˝는 그녀에게 썩 어울리는 사람은 아니었지만, 한번 시작한 사랑을 결코 멈추지 않았다. 집착에 가까운 ˝뤼도˝에 비해 ˝릴리˝의 사랑은 강도는 약했지만, 그녀 역시 ˝뤼도˝를 마음 한구석에 담아두고 있었다. 그래도 마음의 불균형은 한쪽을 애타게만 할 뿐이다.

[널 사랑해. 하지만 사랑이 모든 것의 끝은 아니야. 나는 너의 절반이 되고 싶지 않아. 너, 이 끔찍한 표현 알아? ˝나의 반쪽은 어디에 있나?˝ ˝나의 반쪽을 못 보셨나요?˝. 5년, 10년 뒤 너를 다시 만나게 될 때 나는 심장에 강렬한 충격을 받고 싶어. 하지만 오랜 세월 동안 매일 저녁 집으로 돌아오는 너를 보면 심장에 충격을 받을 일은 없을 거야. 벨소리밖에 못 듣겠지….]  P.152



그러던 중 마침내 2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고 독일은 폴란드를 침공한다. ˝릴리˝의 집안은 전쟁의 포화속에서 소식이 끊기게 되고, ˝뤼도˝는 그녀의 소식을 여기저기 찾아 해맨다. 하지만 그녀에 대한 소식은 들을 수 없었다. 

[나는 최선을 다했다. 잘 버텨내야만 했고, 릴라도 내게 그러길 요구했다. 내가 포기한다면 절망에 빠질 게 분명했고, 그건 그녀를 잃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었다.]  P.180



노르망디 역시 독일의 지배하게 들어가게 되고, ˝뤼도˝는 프랑스 레지스탕스에 합류한다. 그렇게 그녀에 대한 생각을 잊을 수 있는 신성한 일에 몰두하면서도 언젠가는 그녀가 돌아올 거라는 믿음을 잃지 않는다. 과연 언제 다시 만날 수 있을까? 다시 만났을 때는 그시절의 모습과 감정이 남아있을까?

[누군가를 정말 사랑한다는 것이 어떤 건지 넌 몰라. 아무것도 용서하지 않으면서도 모든 걸 용서하지.]  P.162

[-네가 계속 나를 잊는다면 끝이 될 거야, 뤼도, 끝이라고, 네가 나를 잊을수록 나는 점점 더 그저 하나의 추억이 되고 말 거야.
-난 너를 잊지 않아. 너를 감추는 것뿐이야. 너도, 타드도, 브뤼노도 난 잊지 않아. 너도 알잖아. 독일 군인들에게 자기 삶의 이유를 들킬 때가 아니라는 것. 저들은 그런 걸로 사람들을 총살하고 있어
- 아주 자신만만하고 아주 평온해졌구나. 자주 웃네. 마치 내게 아무 일도 일어날 수 없다는 듯이 말이야.
-내가 자신만만하고 평온한 한 너한테는 아무 일도 일어날 수 없을 거야.
- 네가 뭘 알아? 그리고 내가 죽었다면 어쩔 거야?]  P.270





로맹 가리의 <노르망디의 연>은 2차세계대전 이라는 암울한 비극 속에서도 유머를 잃지 않고 희망을 꿈꾸는 다양한 사람들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요리를 통해 프랑스의 자존심을 지키는 프랑스인도 나오고, 전직 포주이지만 귀부인으로 변신하여 독일군의 첩보를 빼내는 프랑스인도 나오며, 히틀러의 악행을 두고볼 수만은 없어서 그를 암살하려는 음모를 실행하는 독일인까지 그들은 저마다의 신념을 지키기 위해 나아간다.


전쟁이라는 것 자체는 너무나 비극적이고 모든 걸 파괴하지만, 그럼에도 추락시킬 수 없는 것들이 있다. 정의, 자존심, 연민, 그리고 사랑... 로맹 가리가 ‘노르망디의 연‘을 통해 하늘로 띄우고자 했던건 바로 이런게 아니었을까? 전쟁은 참혹하지만 인간은 절대 참혹하지 않다. 그리고 로맹가리는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사랑을 놓지 않았다.


[희망이 종종 우리에게 장난을 치곤 하는데, 어쨌든 우리는 그런 장난 덕에 산다. ]  P.277





Ps 1. <노르망디의 연>은 크게 ‘뤼도와 릴리의 만남과 이별‘, ‘프랑스 레지스탕스 활동‘, ‘독일군의 몰락‘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실제 책에서는 ‘프랑스 레지스탕스 활동‘에 관한 이야기가 더 재미있고 상세하게 그려져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뤼도와 릴리‘ 이야기가 더 좋았다. 그래서 리뷰도 이걸 위주로 써봤다.


Ps 2. 이 책은 여러모로 로맹 가리의 첫번째 장편소설인 <유럽의 교육>과 닮아 있다. 두 작품 모두 전쟁속에서 피어나는사랑을 그리고 있는데, <노르망디의 연>이 좀 더 사랑에 치우쳐있다.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노르망디의 연>이 더 좋았다. 로맹 가리의 작품에서 사랑은 절대 뺄 수 없는 소재인것 같다.


Ps 3. 지금까지 읽은 나만의 로맹가리 Top 3
1. 노르망디의 연
2. 새벽의 약속
3.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



댓글(15) 먼댓글(0) 좋아요(3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coolcat329 2022-07-05 07: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2차 세계대전이 배경이군요.
새벽의 약속 새파랑님 강추로 사놨는데 이 책도 보이면 사야겠습니다. 근데 저는 사랑은 별로라...😅😅

새파랑 2022-07-05 08:05   좋아요 1 | URL
다행히 이 책은 품절이라고 합니다~!!! 전 중고로 구매 ㅋ
사랑이야기보다는 레지스탕스(?) 이야기가 주류고 더 재미있습니다 ㅋㅋ 새벽의 약속은 좀 감동이고 이 책은 좀 애틋함? 후회하지 않으실거에요~!! 중고에서 보이면 냉큼 구매하세요 ^^

청아 2022-07-05 10: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새파랑님 프사 바뀌셨네요? ^^
p.277도 그렇고 멋진 말들이
많이 담긴 소설이군요?! 품절이라니 미리 사두길 잘했습니다ㅋㅋㅋ

새파랑 2022-07-05 11:35   좋아요 1 | URL
역시 책부자 미미님은 가지고 이미 가지고 있으시군요 ㅋ 프사는 너무 더워서 바꿔봤습니다 ^^ 좋은 문장이 많더라구요 ㅋ

바람돌이 2022-07-05 14: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읽을 때마다 최애작이 갱신되다니 역시 로맹가리가 대단한거겠죠?
노르망디의 연도 킵해놓습니다. ^^

새파랑 2022-07-05 16:51   좋아요 0 | URL
제 스타일은 에밀 졸라보다는 로맹 가리 인거 같습니다 ^^

그레이스 2022-07-05 20: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로맹가리도 많이 읽으셨죠?
새로 읽은 책이 계속 1위 탈환을 하는군요^^
저는 collection 인 상태 그대로예요.

2022-07-05 20: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7-06 06: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페넬로페 2022-07-06 18: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로맹가리 작품 중 1번, 당연 읽어야겠어요
사랑하는 사람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는 것이 불행하기는 하지만 또 그런 시절에도 사람들이 살아내는 걸 보면 인간의 힘이 위대한 것 같아요^^

새파랑 2022-07-07 08:37   좋아요 1 | URL
로맹가리 본인이 2차세계대전에서 드라마틱하게 활약해서인지 이야기가 더 진실되게 느껴지더라구요. 역시 로맹가리란 생각을 했습니다 ^^

희선 2022-07-07 02: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한번 본 걸 잊지 않는다니 부럽네요 책읽기에 아주 좋은 재주군요 한번 보고 기억하고 다시 만났는데 전쟁이 일어나서 슬펐겠습니다 전쟁이 일어나도 사람은 살아가기도 하는군요 사랑이 있기에 세상이 무너지지 않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희선

새파랑 2022-07-07 08:38   좋아요 0 | URL
사랑 하나만 믿고 살아가는 주인공의 이야기가 아주 인상적이었습니다 ^^ 기억력이 너무 좋은것도 안좋은거 같아요. 잊어야 할건 좀 잊어야 하는데 ㅎㅎ

페크pek0501 2022-07-07 17:4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희망이 종종 우리에게 장난을 치곤 하는데, 어쨌든 우리는 그런 장난 덕에 산다. ] P.277
- 그래도 희망이 없는 것보단 있는 게 낫다고 봅니다. 희망이 있는 동안은 살만 하거든요. 어젠가 실망할지라도...

277쪽의 표현이 좋네요.^^

새파랑 2022-07-07 18:14   좋아요 2 | URL
전 로맹가리의 저런 감성적인 문장이 너무 좋더라구요 ㅋ 가능성은 낮더라도 미약하나마 희망이 있는게 좋겠죠? ^^
 
미국의 목가 1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17
필립 로스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필립로스의 작품은 80퍼센트 이상 좋지만 가장 추천하고픈 시리즈는 미국 삼부작이고, 그 중에서 가장 좋았던 작품은 <미국의 목가>다. ‘산다는 것은 사람들을 오해하는 것이고, 오해하고 오해하고 또 오해하다가, 신중하게 다시 생각해본 뒤에 또 오해하는 것이다.‘ But 이 책은 절대 오해가 아니다..

댓글(11) 먼댓글(0) 좋아요(3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페넬로페 2022-07-05 00:0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와, 100자평 짱입니다^^👍👍

새파랑 2022-07-05 06:25   좋아요 2 | URL
^^ 이 책에서 저 문장이 젤 인상적이었습니다~!!

청아 2022-07-05 10:5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얼마전에 영화로 먼저 봤는데 감동적이었어요.ㅠㅠ 소설을 꼭 읽어야겠습니다. (영화 보다 더
자세할것 같아 기대^^)

새파랑 2022-07-05 11:24   좋아요 3 | URL
이 책 영화도 있군요 ㅋ 역시 영화도 광 미미님~!! 이 책은 필립 로스 중 그나마 순한맛(?) 입니다~!!

페넬로페 2022-07-05 13:53   좋아요 2 | URL
미미님,
영화제목이 소설제목이랑 똑같은가요?
아메리칸 패스토럴?

청아 2022-07-05 13:57   좋아요 2 | URL
페넬로페님~♡ 영화 제목은 <아메리칸 패스토럴>이예요!!

그레이스 2022-07-05 20:31   좋아요 2 | URL
예!
영화도 같은 이름요
나름 잘 만들었어요
어두운 부분이 있긴한데...

바람돌이 2022-07-05 14: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책은 안봤는데 필립로스가 미국 3부작이 좋군요. 미국 3부작 중에서는 휴먼 스테인 읽었는데 좋았습니다. 미국의 목가도 이렇게 멋진 100자평이니 꼭 읽어야겟네요. ^^

새파랑 2022-07-06 06:40   좋아요 0 | URL
휴먼스테인이랑 미국의 목가랑 둘다 좋았던거 같아요 ㅋ 그냥 썼는데 멋진 100자평이라니 감사합니다~!!

그레이스 2022-07-05 20: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피립로스는 미국의 목가!

새파랑 2022-07-06 06:41   좋아요 0 | URL
맞습니다~!! 필립로스는 장편도 좋고 중편(?)도 좋습니다~!!
 

로맹 가리의 명작 중 하나이지 않을까?


릴라는 흰 반코트를 입고 베레모를 쓰고 있었다. 팔에 책 몇권을 끼고 있었다. 그녀는 계단을 내려와 내가 있는 쪽으로 다가오더니 미소 띤 채 장갑 낀 손을 내게 내밀었다.

- 안녕, 뤼도 다시 보게 되어 기뻐. 그렇잖아도 너를 찾아가려던 참이야. 어떻게 지내?

나는 벙어리처럼 묵묵히 있었다. 이번에는 내 안에서 경악 같은 것이 올라오더니 두려움으로, 그리고 공포로 변하는 게 느껴졌다. - P294

저런 네가 그 애를 너무 만들어낸 거야. 4년 동안의 부재는 상상에 너무나 큰 몫을 남기지. 꿈이 땅에 닿을 땐 늘 충격이 생기는 법이야. 생각이 몸을 갖게 되면 제 모습을 닮지 않게 되지. 프랑스를 되찾게 될 때면 우리가 어떤 얼굴을 하게 될지 몰라! 사람들은 이렇게 말할 게다. "이건 진짜 프랑스가 아니야. 다른 프랑스야!‘ 독일인들이 우리에게 상상력을 너무 많이 안겼어. 그들이 떠나고 나면 재회는 잔인할 게다. 그렇지만 네가 그 애를 다시 찾게 될 거라고 뭔가가 내게 말해주는구나. - P298

사랑에는 모든 걸 집어삼키는 탁월한 재능이 있지. 너는 네 기억으로 살았다고 생각했겠지만 사실은 상상으로 산거야. - P298

나는 떠올린다
흘러간 날들을
그리고 운다……. - P362

릴라가 다시 나의 비밀스러운 삶에 함께 살게 된 것이 이제 두달 남짓 된다. 나는 거의 잠을 자지 않았고 일부러 자지 않았는데, 신경쇠약 상태가 그녀가 나타나기 좋은 조건이었기 때문이다. 거의 매일 밤 그녀를 불러낼 수 있었다. - P370

릴라는 분수 옆 의자에 앉아 있었다. 머리가 삭발된 채였다. 손에이발기를 든 미용사 시노가 입가에 미소를 띠고 살짝 물러나서 자기 작품에 감탄하고 있었다. 릴라는 여름 원피스 차림으로 무릎 위에 두 손을 모은 채 의자에 얌전히 앉아 있었다. 몇 초 동안 나는 움직이지 못했다. 그러다 내 목구멍에서 찢어지는 소리가 울부짖음이 튀어나왔다. 나는 시노에게 달려들어 그의 얼굴을 주먹으로 치고, 릴라를 품에 안고 군중을 헤치고 데리고 나왔다. 사람들이 양옆으로 물러났다. 이미 행해졌고, 이루어진 뒤였다. 사람들은 ‘어린 여자‘에게 점령군과 함께한 잠자리의 대가를 치르게 한 것이다. 훗날 이상황을 되돌아볼 수 있게 되었을 때 끔찍한 짓거리 너머로 남은 건 내가 어린 시절부터 알았던 그 모든 친근한 얼굴들에 대한 기억이었다. 바로 그것이야말로 흉측했다. - P410

이 이야기를 마침내 끝내려 한다. 더 잘 말할 수는 없겠기에. - P425


댓글(2)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scott 2022-07-03 23: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나는 떠올린다
흘러간 날들을
그리고 운다]


새파랑님 이 책 완독 하 신 후

눈물이 가득!^^
.·´¯`(>▂<)´¯`·.

새파랑 2022-07-04 00:00   좋아요 1 | URL
눈물을 한가득 품고 리뷰를 쓰고 있던 찰나에 갑자기 일(?)이 생겨서 리뷰 쓰는걸 잠시 접었습니다 ㅜ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