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기 끝. 다시 읽은 1Q84는 역시 좋다. Back to the real life.
내가 지금 이 세계에서 사라져버린다 해도 그걸 알아차릴 사람은 아무도 없으리라. 어둠 속에서 비명을 질러도 그 목소리는 어느 누구의 귀에도 가 닿을 리 없다. 하지만 그래도 어떻든 죽을 때까지는 살아가는 수밖에 없고, 살아가자면 내 나름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수밖에 없다. 별로 칭찬받을 만한 일은 아니라 해도, 그것 말고는 살아갈 방법이 없으니까. - P13
"다른 세계라고 할까 내가 살고 있는 이 세계에서 몇 광년이나 떨어진 어느 소행성에 대한 아주 상세한 보고서를 읽는 것 같은 느낌이에요. 거기에 묘사된 정경 하나하나를 받아들이고 이해하는 건 가능해요. 그것도 꽤 선명하고 극명하게. 하지만 이곳에 있는 정경과 그 정경이 잘 이어지지 않아요. 물리적으로 너무 멀리 떨어져 있으니까. 그래서 한참 읽다가 다시 앞으로 돌아가서 똑같은 곳을 몇 번이나 읽게 돼요."(하루키도 프루스트는 몇번이나 다시 읽어야 되는 작품이었나 보다.) - P32
"뭔가 타인의 꿈을 바라보는 것 같아요. 감각의 동시적인 공유는 있어요. 하지만 그 동시라는 게 어떤 것인지 파악이 안 돼요. 감각은 아주 가까이에 있는데, 실제 거리는 지독히 멀리 떨어져 있어요.""그런 감각은 프루스트가 의도했던 것일까?"(잃시찾에 대한 하루키의 대답) - P32
"정말 기묘한 세계로군. 어디까지 가설이고 어디서부터 현실인지, 그 경계가 갈수록 모호해져. 이봐 덴고, 자네는 소설가로서 현실이라는 것을 어떻게 정의하겠나?""바늘로 찌르면 붉은 피가 나는 곳이 현실세계예요." 덴고는 대답했다."그렇다면 틀림없이 이곳은 현실세계네." - P72
나는 우연히 이곳으로 실려온 것이 아니다.나는 있어야 하기에 이곳에 있는 것이다. - P186
"사람 하나가 죽는다는 건 어떤 사연이 있건 큰일이야. 이 세계에 구멍 하나가 뻐끔 뚫리는 거니까. 거기에 대해 우리는 올바르게 경의를 표해야 해. 그러지 않으면 구멍은 제대로 메워지지 않아." - P194
"차가워도, 차갑지 않아도, 신은 이곳에 있다." - P217
"이렇게 된 이상, 이 세계의 어디에도 안전한 장소 같은 건 없어요." - P238
그런 전 단계 없이 갑자기 그와 단둘이 만나면 무슨 말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좋을지 아오마메는 짐작이 가지 않는다. 그 장면을 상상하면 숨이 가빠지고 머리가 멍해진다. 말해야 할 게 너무도 많다. 동시에, 막상 그 순간이 되면 해야 할 말이라고는 하나도 없을 것 같기도 하다. 그녀가 말하고 싶은 것들은, 일단 입 밖에 내면 소중한 의미가 상실되는 것들뿐이다.(입 밖에 나가면 의미가 상실된다.) - P241
"멀리까지 간다고 했지." 다마루는 말한다. "얼마나 멀어질까.""그건 숫자로는 잴 수 없는 거리예요.""사람의 마음과 사람의 마음 사이의 거리처럼." - P245
이십 년이라는 세월이 덴고 안에서 한순간에 녹아들고 한데 섞여 소용돌이쳤다. 그동안에 집적된 모든 풍경, 모든 언어, 모든 가치가 한데 모여들어, 그의 마음속에서 한 줄기 굵은 기둥이 되어 그 중심을 녹로처럼 빙글빙글 회전했다. 덴고는 말없이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한 행성의 붕괴와 재생을 목격하고 있는 사람처럼. - P263
"우리는 이제부터 어디로 이동하게 될까? 너와 나와 그 작은 것은""여기가 아닌 곳으로."아오마메는 말한다. "하늘에 달이 하나만 떠 있는 세계로. 본래 우리가 있어야 할 장소로, 리틀 피플이 힘을 갖지 않는 곳으로." - P294
"우리가 얼마나 고독했는지 아는 데는 서로 이만큼의 시간이 필요했던 거야." - P317
그녀는 공중에 가만히 손을 내민다. 덴고가 그 손을 잡는다. 두 사람은 그곳에 나란히 서서, 서로 하나로 맺어지면서, 빌딩 바로 위에 뜬 달을 말없이 바라본다. 그것이 이제 막 떠오른 태양빛을 받아, 밤의 깊은 광휘를 급속히 잃고, 하늘에 걸린 한낱 회색 오려낸 종이로 변할 때까지. - P320
8월에는 일이 좀 많아서 책도 별로 못읽고 걷기도 잘 못하고 글도 별로 못썼다. 강제 슬럼프행이었다. 그래도 기록은 남겨야 하기에 글을 써본다. 8월에는 8월이어서 8권 읽었다 ^^ 1Q84 문고판 일색이어서 8권이라 하기에 좀 부끄럽지만... 읽은 책이 워낙 없다보니 좋았던 책을 꼽는게 의미가 없어서 좋았던 책 선정은 생략해야겠다.필사도 밀려서 거의 한꺼번에 썼다. 뭐든지 밀리는건 안좋은거란 생각이 든다. 8월의 부진을 9월에는 꼭 만회해 보겠습니다~!!
N22107"사람이 사람에게 반하게 되는 이유는 아주 사소한 것일 때가 많다. 스웨터에 난 작은 구멍이라던가, 담배를 피울 때의 미묘한 손의 위치라던가."말들의 흐름 시리즈를 가끔 읽는다. 책이 얇아서 우주점에 가면 조금씩 읽었었는데, 그때 가장 재미있게 읽었던 <커피와 담배>를 중고로 구매해서 읽었다. 나의 경우 취미는 독서와 음악듣기 이지만 (북플 하시는 분들의 공통 취미가 아닐까? ㅎㅎ) 기호품은 커피와 담배다. 그래서 이 책은 소장할 수 밖에 없었다."정은" 작가님의 작품을 읽어본적이 없는데 이번기회에 한번 읽어봐야겠다. 작가님 정말 영화 저럼 다양하고 힘든(?) 인생을 사신거 같은데(순례길도 가고, 절에도 사시고, 영화도 찍고 ㅋ), 저런 분이 옆에 있으면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든다.커피와 담배에 대한 작가님의 생각에 완전 공감할 수 있었다. 내가 왜 커피를 마시는지, 담배를 피는지에 대한 이유가 이 책에 모두 설명되어 있었다. 커피를 마시는 시간은 나에게 주는 작은 사치이고, 담배를 피는 시간은 일상에서 벗어나 고독을 즐기는 순간이다. 세상에 대한 잠시동안의 침묵 같은?(담배를 같이 피는 것보다 혼자 피는 걸 좋아한다.) [커피를 마시는 허상의 이미지에 자신을 담기 위해 커피를 마시기 시작하지만 때때로 커피는 '내가 지금 바로 여기에 있다'는 걸 완벽하게 느끼게 한다. 그 순간은 내가 만들어낸 '커피를 마시는 나의 이미지’를 넘어서는 것이다. 커피는 내 몸으로 감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P.58[담배에 불을 붙이면 그것들은 안정감 같은 특수한 감정의 형태로 몸에 잠시 내려앉는다. 그것이 담배를 끊지 못하는 이유다. 담배를 피우는 것은 단순히 담배를 피우는 것만이 아니라 어떤 기억을, 감정을 잠시 소환하는 의식에 가깝기 때문이다.] P.67[커피와 담배는 고립을 고독의 상태로 만들어준다. 커피와 담배는 내가 나 자신과 함께 있게 해준다. 각자의 안에는 결코 들여다볼 수 없는 블랙홀 같은 부분이 있고 그것이 일으키는 중력의 힘이 우리를 앞으로 나아가게 한다. 스스로에 대해 모든 것을 이미 다 알고 있다면 더 알 필요가 없을 것이다.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내면의 어떤 부분이 있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하는 것만으로도 인간은 성숙해진다.] P.96요즘처럼 금연이 대세인 시대에 적당한(?) 책은 아니어서 추천하기는 좀 그렇지만, 개인적으로는 아주 재미있게 읽었다.오늘도 난 커피를 마시고 담배를 피우면서 음악을 듣고 책을 읽을 것이다.
간만에 읽은 에세이인데 좋았다. 커피와 담배는 좋을 수 밖에 없다.
그때까지 나는 스스로를 대접하고 아낀다는 의미가 뭔지 잘 몰랐다. 진정한 휴식의 의미도 몰랐다. 무엇을 원하고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본 적이 없었다. 미래를 계획한 적도 없고 그냥 되는대로 살고 있었다. 그저 세상이 나를 몰라주고 내 자리가 없다고 불평하면서. 한마디로 내가 나를 사랑하는 법을 몰랐다. 내가 나를 인정하고 대접해야 채워지는 허기를 못 알아보고 공허한 마음으로 먼 곳까지 와서 끝없이 카페를 방문하며 힘들게 900킬로미터를 걷고 있는 내 모습이 그제야 보였다. - P16
커피는 유일하게 사치를 부릴 수 있는 영역이고 내가 다른 세계로 넘어갈 수 있는 영역이었다. 커피는 내가 나를 사랑하고 대접할 수 있는 쉬운 방법이다. 커피는 민주적이다. 커피는 쉽게 손을 내밀어준다.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는 내가 발을 반쯤 걸치고 삶의 여유를 꿈꿔볼 수 있게 한다. 커피마저 없다면 내 삶은 무미건조하고 비참해질 것이다. 커피는 아무것도 아니므로 거기에 많은 것을 담을 수 있다. - P18
사람이 사람에게 반하게 되는 이유는 아주 사소한 것.일 때가 많다. 스웨터에 난 작은 구멍이라던가, 담배를 피울 때의 미묘한 손의 위치라던가. - P23
커피를마시는 허상의 이미지에 자신을 담기 위해 커피를 마시기 시작하지만 때때로 커피는 ‘내가 지금 바로 여기에 있다‘는 걸 완벽하게 느끼게 한다. 그 순간은 내가 만들어낸 ‘커피를 마시는 나의 이미지’를 넘어서는 것이다. 커피는 내 몸으로 감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 P58
나의 담배는 그렇다. 다른 사람들도 각자의 담배가 있겠지. 담배에 불을 붙일 때면 함께 불려 나오는 기억들. 방처럼 펼쳐지는 기억들. 그래서 담배를 피우는 것은 집을 들고 다니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수많은 기억으로 이루어진 집. 그렇지만 무게가 전혀 나가지 않는 집. 담배에 불을 붙이면 그것들은 안정감 같은 특수한 감정의 형태로 몸에 잠시 내려앉는다. 그것이 담배를 끊지 못하는 이유다. 담배를 피우는 것은 단순히 담배를 피우는 것만이 아니라 어떤 기억을, 감정을 잠시 소환하는 의식에 가깝기 때문이다. - P67
계속 그렇게 살았으면 훌륭한 작가가 되었을 텐데, 곧 이렇게 사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하는 회의가 들이닥쳤다. 커피와 담배 없이 숙면의 힘으로 훌륭한 작품을 생산하는 삶보다는, 그냥 커피를 마시고 담배를 피우고 괴로워하며 그럭저럭한 글을 쓰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했다. 무미건조한 삶보다는 고통도 있고 행복도 있고 많은 것들을 견디는 삶이 더 의미 있어 보였다. 아니 사실 이 모든 것은 다 핑계고 그냥 내 몸은 카페인과 니코틴을 원했다. 나는 금욕이 싫었다. 나는 그가 아무것도 원하지 않는 사람이 된 것이 싫고 미웠다. - P85
혼자 있다고 꼭 고독 속에 있는 것은 아니다. 내가 말하는 고독은 물론 ‘다른 사람이 없는 상태’를 의미하지만 이 순간 나는 나 자신을 벗 삼고 있다. 반면 내가 혼자있든 누구와 함께 있든 나 자신이 내게 결핍되어 있을때, ‘내게 결핍되어 있는 그 누구’가 다름 아닌 나 자신일 때, 이런 상태는 고립이다(반대로 사랑은 상대방이 거기 있을 때조차 그가 그리운 상태를 말한다). 고독 속에 있다는 것은 상대방이 거기, 내 안에 있다는 확신을 느끼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상대방과 내가 모두 결핍되어있는 단절도 있다. - P95
빗대어 말하면, 커피와 담배는 고립을 고독의 상태로 만들어준다. 커피와 담배는 내가 나 자신과 함께 있게 해준다. 각자의 안에는 결코 들여다볼 수 없는 블랙홀 같은 부분이 있고 그것이 일으키는 중력의 힘이 우리를 앞으로 나아가게 한다. 스스로에 대해 모든 것을 이미 다 알고 있다면 더 알 필요가 없을 것이다.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내면의 어떤 부분이 있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하는 것만으로도 인간은 성숙해진다. - P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