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한가운데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8
루이제 린저 지음, 박찬일 옮김 / 민음사 / 199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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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25006


˝당신은 사는 게 별 의미가 없다는 것을 나만큼 잘 알고 있어요. 우리는 생의 의미를 알려고 했어요. 그래서는 안 되는 거죠. 만약 의미를 묻게 되면 그 의미는 결코 체험할 수 없게 돼요. 의미에 대해 묻지 않는 자만이 그 의미가 뭔지 알아요.˝



다 읽고 나서 이 책의 제목에 대해 생각했었다. 왜 책 제목이 <삶의 한가운데> 일까?


전후 독일의 가장 뛰어난 작가로 평가받는 ‘루이제 린저‘의 작품이자 세계 젊은이들에게 ‘니나‘신드롬을 일으킨 작품이라는 <삶의 한가운데>는 두명의 주인공이 등장 한다. 의사 ‘슈타인‘과 그보다 20살 어린 여성 ‘니나‘.


의사 ‘슈타인‘은 ‘니가‘가 19살일때 자신의 진료실에서 환자로 온 그녀를 처음 알게된다. 한눈에 반한다. 그리고 무려 18년동안 그녀를 사랑한다. 하지만 그녀는 그를 좋아했을지도 모르지만, 연민했을지도 모르지만 그의 사랑을 받아주지 않는다. 오직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고 자신의 감정이 이끄는대로 삶을 살아간다.

[나는 자유롭게 있어야 한다는 것 외에는 분명히 알고 있는 것이 없습니다. 나는 내 속에 수백 개의 가능성이 있는 것을 느껴요. 모든 것은, 나에게 아직 미정이고 시작에 불구합니다. 그런데 내가 어떻게 자신을 어떤 것에다 고정시킬 수 있겠습니까. 나는 정말 내가 누구인지 모릅니다. 당신에겐 이상하게 들릴지도 모르겠습니다만 나는 정말로 나를 모릅니다.] P.127



그런 ‘니나‘는 삶의 한가운데를 살아가고, 의사 ‘슈타인‘은 삶의 가장자리에서 그녀를 바라보기만 한다. 그리고 그녀가 연락하거나 요청하면 다 들어준다. 바보처럼 달려간다. 두려움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렇게 니나와 절연한 채 사는 것이 견딜 수 없다. 나는그녀가 찾아올 때를 대비해서 집 밖으로 한 걸음도 나가지 않는다. 어리석은 짓이다. 니나는 오지 않을 것이다. 지금은 아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나는 끊임없이 그녀가 오기를, 혹은 그녀에 대한 소식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그녀를 염려하는 나의 불안은 점점 커져간다.] P.185



‘니니‘가 얼마나 자유분방하냐고 하면, 그녀는 반나치즘 활동도 하고, 주위 동료들의 정치적 망명도 도우며, 수용소에 갇히기도 한다. 그뿐만 아니다. 그녀는 첫 남편이 있는 상태에서 다른 남자의 아이를 임신했었고(나중에 이 아이의 아버지는 ‘슈타인‘의 절친으로 밝혀짐...), 아이를 임신한 상태에서 자살을 기도하기도 하며, 이후에도 여러번 결혼과 이혼을 반복한다. 첫번째 남편의 자살도 돕니다. 그녀의 가십은 한두가지가 아니다...


그럼에도 ‘슈타인‘은 ‘니나‘가 찾아오면 무조건 돕니다. 연락이 없을때는 그녀가 살았던 흔적을 찾아가기도 하고, 평생 독신으로 살아가면서 ‘니나‘를 기다린다. 기회가 없었던 것도 아니다. ‘니나‘ 역시 ‘슈타인‘에게 호감을 느낀 적이 있었고, 안정된 의사부인의 삶을 살까 하고 망설인 적도 있었다.


하지만 신념이 너무 확고한 ‘니나‘는 생의 의지가 강했기에 결코 안주하는 삶을 살 수 없었다. ‘슈타인‘에게 ‘니나‘는 손을 뻗어도 결코 잡을 수 없는 사람이었다. 왜 그는 ‘니나‘에게 빠지게 된걸까? 왜 포기하지 못한 걸까? 아마 처음 본 순간부터 ‘슈타인‘에게 ‘니나‘는 자신의 삶 그 자체가 되버렸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나는 니나를 사랑한다. 나는 절대 잃을 수 없는 새로운 순화된 방식으로 니나를 사랑한다. 나를 구원한 그 고통에 대해서 니나에게 감사한다. 지난밤의 눈물은 내 인생의 경직된 궁핍함을 씻겨 내려가게 했다. 남아 있는 것은 이 새로운 밝은 기분의 어두운 밑바닥인 체념의 슬품이다. 니나는 내가 가지려고 했고 되기를 원했던 모든 것에 대한 비유일지 모른다. 그렇게라도 항상 있어주면 좋겠다. 니나는 생 자체에 대한 비유이다.] P.277



이 책은 ‘슈타인‘이 ‘니나‘에게 보낸 편지와 ‘슈타인‘이 죽기 직전까지 ‘니나‘만을 위해 18년간 쓴 일기장과 ‘니나‘와 니나의 언니와의 짧은 대화로 이루어 져있다. 나는 이 책을 두번 읽었는데 한번은 ‘슈타인‘의 입장으로, 한번은 ‘니나‘의 입장으로 읽었다.


‘슈타인‘이 바보 같기도 했지만 왠지 그의 순애보가 낯설지 않았고, ‘니나‘가 ‘슈타인‘을 매몰차게 끊어 냈더라면 어땠을까란 생각을 하다가도, 그랬다면 ‘슈타인‘이 자살하지 않았을까란 생각도 들었다. ‘슈타인‘은 어떻게 해서라도 ‘니나‘와의 끈이 이어지길 바랬을거 같다.

[나는 여느 때처럼 어두운 쪽 강변에 남아 있었고 니나는 더 밝은 반대편에 있었다. 그 사이에는 다리가 없었다. 그러나 한 사람이 부르면 다른 사람은 알아들었다. 니나가 돌아가기 전 우리가 나눈 마지막 말들 뒤에 남은 측량할 길 없는 침묵의 시공에서 우리는 그 어느때보다도 서로 밀착해 있다고 느꼈다. 나는 말했다. 내가 어둡고 출구가 없어 보이는 낭하를 끝없이 가고 있을 때마다 나에게 문을 열어준 것은 당신이었다고. 당신은 왔으며 당신과 함께 양지바르고 확 트인 대지가 펼쳐져 있었소. 나는 비록 이 대지에 발을 들여놓지는 못했지만 그 대지를 본 것으로 나의 지난 암담함은 구제될 수 있었소.] P.368



너무나 삶을 사랑해서 언제든지 사랑도 버릴수 있었던 ‘니나‘는 너무 자유분방하고 충동적이며 신념이 완고하여 가까이 하면 인생 꼬이기 딱 좋은 사람인것 같으면서도, 동시에 옆에 있다면 감정적으로 끌릴 수 밖에 없는 매력적인 사람이었다.


‘슈덜린‘은 바보같지만 연민이 느껴지는 사람,
‘니나‘는 이기적이지만 결코 미워할수 없는 사람 .


어차피 삶은 자기가 선택하는 거니까 누구의 탓도 할 수 없고, 제3자가 맞다 틀리다 평가할 필요도 없다. 삶은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 삶을 사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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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25-01-23 05: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다른 사람이 어떻게 살든 그걸 뭐라 하지 못하겠습니다 둘 다 이해하기 어려운 사람이네요 저런 사람도 있는가 보다 할 수밖에 없겠습니다


희선

새파랑 2025-01-23 17:57   좋아요 1 | URL
둘다 이해는 쫌 안되지만 그렇다고 이상하지는 않습니다. 충분히 그럴수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 책을 읽고 나서 백석 시인의 시집을 샀다.


벨라는 여행 가방 속에 들어 있는 기행의 노트를 떠올렸다. 서양식대로 페이지를 넘기면 결말부터 읽게 된다는, 세로로 써내려간, 동양의 글자들. 인생을 거꾸로 산다면 어떻게 될까? 결말을 안뒤에 다시 대조국전쟁을 거쳐 십대 시절로 돌아간다면? 장차 시인이 되리라는 것을 알고 있는 상태에서 네크라소프의 시를 읽는다면? 애는 전쟁에 가서 돌아오지 못할 거야, 라고 생각하며 급우와 대화를 니눈다면? 그렇다면 원래보다 더 슬플지는 모르겠으나 그 순간에 더욱 집중하긴 할 것이다. 미래는 생각하지 않아도 되고 과거는 잘 알고 있으니, 오로지 현재에만, 지금 이 순간에만. - P26

인생의 질문이란 대답하지 않으면 그만인 그런 질문이 아니었다. 원하는 게 있다면 적극적으로 대답해야 했다. 어쩔 수 없어 대답하지 못한다고 해도 그것 역시 하나의 선택이었다. 세상에 태어날 때 그랬던 것처럼. 자신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고, 그러므로 그건 자신의 선택이 아니라고 말해도 소용없었다. 그리고 선택한 것에 대해서는 어떤 식으로든 책임을 져야만 했다. 설사 그게 어쩔 수 없이 선택한 것일지라도. - P35

고백 : 숨긴 일이나 마음속에 생각하는 바를 그대로 솔직히 말하는 것


자백 : (해당 기관이나 조직 또는 남들 앞에서) 자기가 져지른 죄과에 대하여 스스로 고백하는 것 또는 그러한 고백 - P87

이 세상을 살아가는 한, 아무리 혹독한 시절이라도 언젠기는 끝이 납니다. 사전에서 ‘세상‘의 뜻풀이는 이렇게 고쳐야 해요. 영원한 것은 없는 곳이라고. - P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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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리 제임스 - 나사의 회전 외 7편 현대문학 세계문학 단편선 31
헨리 제임스 지음, 이종인 옮김 / 현대문학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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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25005 <나사의 회전>은 흥미로웠지만...그렇게 재미있지도 않고 읽는게 힘들었음. 학술 논문 읽는 기분으로 10일동안 읽음. 완독했다는데 의의를 둬야겠다. 그래도 현대문학 단편집 완전 좋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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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olcat329 2025-01-21 19: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읽으시느라 고생많으셨어요. 표지만 봐도 그 때의 고통이 떠오릅니다.

새파랑 2025-01-22 11:47   좋아요 0 | URL
아 쿨캣님 읽으셨군요~! 처음부터 시작을 안하면 편했을텐데 ㅋ 괜히 책장에서 꺼냈나? 하는 생각을 잠깐 했었습니대 ㅋ
 
사랑이라니, 선영아
김연수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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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25004

˝처음에는 두 사람이 함께 빠져들었지만, 모든게 끝나고 나면 각자 혼자 힘으로 빠져나와야 하는 것, 그 구지레한 과정을 통해 자신이 어떤 종류의 인간인지 뼛속 깊이 알게 되는 것, 그게 바로 사랑이다.˝


김연수 작가님의 작품을 이제 2/3정도 읽은거 같은데, 그의 장편은 깊이가 있고 많은 사전연구를 했구나 하는 느낌이 드는 반면, 단편은 감성적이고 감각적이며 감동적이라는 느낌이 든다.


<사랑이나니, 선영아>는 사실 장편이라고 하기에도 그렇고 단편이라고 하기에도 그런 중편이다. 그래서 그런지 내가 생각하는 김연수 작가의 장편과 단편의 느낌이 절반씩 섞인 작품이었다.


이렇게 찌질한데도 세련되고 공감이 가는 사랑이야기라니, 읽는 내내 즐거웠다. 단편영화를 보는 느낌이었다. 게다가 이야기 중간에 순간순간 표현되는 작가님의 사랑에 대한 문장은 공감 그 차체였다.


˝기억이 아름다울까. 사랑이 아름다울까? 물론 기억이다. 기억이 더 오래가기 때문에 더 아름답다. 사랑은 두사람이 필요하지만, 기억은 혼자라도 상관없다. 사랑이 지나가고 나면 우리가 덧정을 쏟을 곳은 기억뿐이다.˝(105p)


˝사랑했던 기억만은 영수증처럼 우리에게 남는다. 한때 우리가 뭔가를 소유했었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증거물. 질투가 없는 사람은 사랑하지 못한다고 말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기억이 없는 사람은 사랑했다는 증거를 제시할 수가 없다.˝ (106p)



주요 등장인물은 세명이다. 선영(직장인, 광수의 아내), 광수(증권맨, 13년간 선영을 짝사랑 후 결혼), 진우(작가, 선영의 옛사랑, 자유연애 신봉자?). 세명은 13년전 대학 동기이고, 선영과 진우는 오래전에 연인이었지만 진우가 사랑했던 기억조차 떠올릴 수 없을 만큼 오래전에 헤어졌다.(광수도 이 사실을 알고 있다...)


광수와 진우는 13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친구(?)인 상황인데, 광수가 진우에게 선영과 결혼한다는 걸 알리고 한 술집에서 선영을 소개시켜준다. 진우는 처음에 아름다워진 선영을 못알아본다. 그리고 곧 친구의 아내가 될 선영에게 호감을 느낀다.


이후 세 사람의 기억, 의심, 사랑을 둘러싼 재미있는 이야기가 펼쳐진다. 광수는 두 사람의 사이와 선영의 사랑을 의심하며, 선영은 좋아하는것과 사랑하는 것 사이에서 주저하며, 진우는 우정보다는 욕정(사랑이 아닌...)을 앞세워 선영에게 질척거리며 자신이 평소 주장했던 쿨한 사랑의 정의를 스스로 무너뜨린다.


기억이 남이 있지 않은데도 사랑했었다고 할 수 있을까? 질투없는 사랑이 가능하기나 한걸까? 좋아하는 것과 사랑하는 것의 차이는 뮐까? 이 책에 그 답이 들어있다. 김연수 작가님은 천재다~!


˝왜 우리는 사랑을 ‘맺거나‘ 사랑을 ‘이루지‘ 않고 사랑에 ‘빠지는‘ 것일까? 그건 사랑이란 두 사람이 채워넣을 수 있는 가장 깊은 관계이기 때문이다. 자신이 가진 것을 모두 집어넣어도 그 관계는 채워지지 않는다. 정열, 갈망, 초조. 망설임, 투정, 침착, 냉정, 이기심, 헌신, 질투, 광기. 웃음, 상실, 환희, 눈물, 어둠, 빛., 몸, 마음, 영혼 등 그 어떤 것이든 이 깊은 관계는 삼켜버린다. 모든 게 비워지고 두 사람에게 방향과 세기만 존재하는 힘, 그러니까 사람들이
사랑이라고 부르는 원초적인 감정의 움직임만 남을 때까지 그 관계 속으로 자신이 가졌던 모든 것을 밀어넣는 일은 계속된다.˝ (45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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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요정 2025-01-19 23: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와, 김연수 작가님 책이 엄청 많네요. 이제 2/3 라니... 작가님 책 많이 쓰셨네요. 저도 읽어보고 싶습니다. ㅎㅎ

새파랑 2025-01-20 08:07   좋아요 1 | URL
아직 못산 책도 있는듯합니다ㅋ 엄청 다작하셨더라구요 ~!! 강추합니다. 재미도 있어요~!!

페넬로페 2025-01-20 10: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새파랑님, 김연수 작가의 작품 완독하고 계시는군요. 그래도 한국 작가 중 김연수 작가의 책을 저도 많이 읽었는데 예전에 읽어 리뷰를 남기지 못한 것 같아요.
기회되면 재독하고 싶어요.

새파랑 2025-01-21 09:26   좋아요 1 | URL
김연수 작가님 너무 좋습니다 ㅋ 저랑 비슷한 부분이 있어서 더 공감이 됩니다~! 사인회 가보고 싶어요 ㅋ

자목련 2025-01-21 09:3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런 책탑은 사랑입니다!!!
김연수 작가의 소설은 그냥 삽니다. 읽지도 못하면서 ㅎㅎㅎ

새파랑 2025-01-21 16:10   좋아요 0 | URL
어제 또 세권 샀습니다 ㅋ 김연수 작가님 너무 좋습니다~!!!

희선 2025-01-22 01: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김연수 작가 책 많이 보셨군요 예전에 조금 읽기는 했는데... 지금도 잘 못 읽지만, 예전엔 더 못 읽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김연수 작가 소설 좋아하는 사람 많은데... 이 책도 읽었는데 하나도 생각이 안 나네요


희선

새파랑 2025-01-22 11:46   좋아요 0 | URL
김연수 작가님 중단편이 시점이랑 시기가 자주 바껴서 좀 안읽히는 측면이 있습니다~! 저도 몇달 지나면 내용 생각이 하나도 안나요 ㅡㅡ
 

재미와 감동과 인생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작품. 최고였다.




















여자 형제들은 서로에 대해 모든 것을 알고 있든지 혹은 아무것도 모르고 있든지둘중 하나다. - P7

우물에 관해서 생각하고 있었어. 니나는 천천히 말했다. 온갓 아름다움이란 것이 일시적이고 다만 얼마 동안 빌려온 것이라는 것을 알아버린 사람, 그리고 우리가 인간들 틈이나 나무와 극장과 신문 사이에 있으면서도 마치 차가운 달 표면에 앉아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고독하다는 것을 알아버린 사람은 누구나 다 우울하지. - P65

물론 뜻밖의 말은 아니었다. 나 자신도 그전에 이미 수백 번이나 생각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말했다. 그애는 네가 갖고 있는 조용한 세계에서는 살 수 없을 거다. 뜨거운, 소란, 변화들이 있어야 하는 애다. 그애는 많은 모험을 무릅 쓸 그런 종류의 여자다. - P73

내 인생에는 전혀 방해물이 없었다. 상처도 없었다. 지금까지 모든 일은 잘되어 왔다. 분명히 그러나 또한 아무것도 얻지 못했다. 아무것도. 나는 자기 배를 항구에 매어둔 상인과 같다. 배를 내보내야 돈을 벌어올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배를 바다에 내보내는 것은 위험했으며, 나는 본래 모험에 적합한 인간이 아니었다. 결코 아니었다. 그러나 위험을 무릅쓰지 않는 남자가 무슨 가치가 있다는 말인가! - P75

출발하기 바로 직전, 그녀가 내 쪽을 잠시 보았을 때 나는 그녀의 얼굴에서 나이가 들고 많은 경험을 한 나중의 모습을 보았다. 용서하는 얼굴, 아량이 넘치는 얼굴이었다. 눈에는 많은 것을 알고 있는 듯한, 그러면서 생을 경멸하지 않는, 고형잃은 자의 우울한 안식이 깃들여 있었다. 나는 이전보다 더 그녀를 사랑한다. 그러나 나는 그녀를 다시 만나지 않을 것이다. - P100

사람은 자기 자신에 대해 이야기해서는 안 됩니다. 순전한 이기심에서 나은 것이라 해도 안 됩니다. 왜냐하면 마음을 쏟아버리고 나면 우리는 이전보다 더욱 비참하고 두 배나 더 고독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자기 속을 보이면 보일수록 타인과 더욱 가까워 진다고 믿는 것은 환상입니다. 가까워지기 위해서는 말없는 공감이 제일입니다. - P127

나는 자유룹게 있어야 한다는 것 외에는 분명히 알고 있는 것이 없습니다. 나는 내 속에 수백 개의 가능성이 있는 것을 느껴요. 모든 것은,나에게 아직 미정이고 시작에 불구합니다. 그런데 내가 어떻게 자신을 어떤 것에다 고정시킬 수 있겠습니까. 나는 정말 내가 누구인지 모릅니다. 당신에겐 이상하게 들릴지도 모르겠습니다만 나는 정말로 나를 모릅니다. - P127

이렇게 니나와 절연한 채 사는 것이 견딜 수 없다. 나는그녀가 찾아올 때를 대비해서 집 밖으로 한 걸음도 나가지 않는다. 어리석은 짓이다. 니나는 오지 않을 것이다. 지금은 아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나는 끊임없이 그녀가 오기를, 혹은 그녀에 대한 소식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그녀를 염려하는 나의 불안은 점점 커져간다. - P185

그럴 것이 전에는 이런 수상한 시대에는 자식이 없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지금은 전혀 없는 것보다는 그것을 잃고 슬퍼하는 편이 낫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처음으로 나는 슬픔도 재산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나 지금 내 나이는 마흔여덟이다. - P233

아침이었다. 새해 아침이었다. 새로운 밝은 기분이 다가오는 것을 느낀다. 수년 전부터 알지 못하고 지냈던 생의 위기가 극복되었다고 느낀다. 이제 나는 알았으니 더 이상 그것으로 미망에 빠지지 않을 것이다. 나는 니나를 사랑한다. 나는 절대 잃을 수 없는 새로운 순화된 방식으로 니나를 사랑한다. 나를 구원한 그 고통에 대해서 니나에게 감사한다. 지난밤의 눈물은 내 인생의 경직된 궁핀함을 씻겨 내려가게 했다. 남아 있는 것은 이 새로운 밝은 기분의 어두운 밑바닥인 체념의 슬품이다. 니나는 내가 가지려고 했고 되기를 원했던 모든 것에 대한 비유일지 모른다. 그렇게라도 항상 있어주면 좋겠다. 니나는 생 자체에 대한 비유이다. - P277

당신은 사는 게 별 의미가 없다는 것을 나만큼 잘 알고 있어요. 우리는 생의 의미를 알려고 했어요. 그래서는 안 되는 거죠. 만약 의미를 묻게 되면 그 의미는 결코 체험할 수 없게 돼요. 의미에 대해 묻지 않는 자만이 그 의미가 뭔지 알아요. - P319

우리는 어떤 대화를 나누었다. 나는 이것을 다시 떠올리기가 부끄럽다. 물론 나는 여느 때처럼 어두운 쪽 강변에 남아 있었고 니나는 더 밝은 반대편에 있었다. 그 사이에는 다리가 없었다. 그러나 한 사람이 부르면 다른 사람은 알아들었다. 니나가 돌아가기 전 우리가 나눈 마지막 말들 뒤에 남은 측량할 길 없는 침묵의 시공에서 우리는 그 어느때보다도 서로 밀착해 있다고 느꼈다. 나는 말했다. 내가 어둡고 출구가 없어 보이는 낭하를 끝없이 가고 있을 때마다 나에게 문을 열어준 것은 당신이었다고. 당신은 왔으며 당신과 함께 양지바르고 학 트인 대지가 펼쳐져 있었소. 나는 비록 이 대지에 발을 들여놓지는 못했지만 그 대지를 본 것으로 나의 지난 암담함은 구제될 수 있었소. - P368

나는 말할 수 있는 것을 말하지 않았다. 너를 사랑하기 때문이야, 라고 말하지 못했다. 다만 미소를 지었을 뿐이다. 니나는 나를 쳐다보았다. 여전히 당황한 눈빛이었으나 점차 깨닫고 있었다. 그리고 나지막이 물었다. 왜 당신은 <할 수 있었다> <이었다> <하려고 했다>라고 말하는 거죠? <할 수 있다> <이다> <하려고한다>라고 하지 않고? - P3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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