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22146 "그녀의 환심을 사기 위해서라면 부상을 당해도 억울하지 않다. 그 부상이 원인이 되어 죽음을 초래하더라도 오히려 바라는 바다."이런 작품을 쓸 수 있는 작가가 몇이나 될까? 작품의 완성도나 가치를 떠나서 이토록 노골적으로 적나라하게 자신의 성적 취항을 강하게 드러내면서도, 아주 재미있고 탐미적으로 쓸 수 있는 작가로는 다니자키 준이치로가 최고이지 않을까 싶다.너무나 정직한 제목인 <미친 노인의 일기>는 다니자키의 자아가 투영되어 있는 노인이 쓴 일기 형식의 작품이다. 이제 살날이 얼마 안남은 노인이지만 그의 성욕은 왕성하기만 하다. 특히 발에 대한 집착은 광적이면, 이러한 그의 욕구는 며느리인 사쓰코에게 향한다.[하지만 살아 있는 한 이성에게 끌리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런 생각은 죽는 순간까지 계속되리라 생각된다. . . 그렇기 때문에 여러 가지 간접적인 방법으로 변형된 성적 매력을 느낄 수 있다. 현재의 나는 그와 같은 성욕의 즐거움과 식욕의 즐거움으로 살고 있는 것 같다. 그런 나의 심경을 사쓰코만은 어렴풋하게나마 알아채고 있는 듯하다. 이 집안 식구들 중에 그것을 아는 사람은 사쓰코뿐이다.] P.25그런데 사쓰코 역시 만만한 며느리가 아니다. 그녀는 노인의 성욕이 자신을 향함을 인식하고, 자신의 물질적 욕망을 위해 노인의 추파를 아주 조금은 맞춰준다. 이미 갑을 관계가 형성되어 있기 때문에 사쓰코는 노인에게 반말을 한다. 반대로 노인은 며느리를 사쓰짱이라 부르고 싶어한다...[내 아내조차 사쓰코와 조키치의 결혼을 그렇게 심하게 반대했으니, 그 무렵까지 어머니가 살아 계셨다면 얼마나 반대를 했을까? 아마 두 사람의 결혼은 성사되지 못했을 것이 틀림없다. 아니 처음부터 댄서 출신과의 결혼은 생각지도 못했으리라. 그런 혼사가 성사되었을 뿐만 아니라 어머니의 아들인 내가 손자며느리의 매력에 빠져 그녀에게 페팅을 허락받는 대가로 300만 엔을 투자하여 묘안석을 사 주는 사건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면 어머니는 아마 놀라서 기절했을 것이다. 만일 아버지가 살아 계셨으면 나도, 조키치도 의절당했을 터다. 아니 그보다도 어머니가 사쓰코의 용모와 자태를 보신다면 어떻게 생각하실까?] P.95며느리에게 온갖 치욕, 멸시를 당하면서도 노인의 구애는 멈출 줄 모르고 오히려 더 왕성한 욕망을 보인다. 노인이 아직 죽지 않고 살아 있을 수 있었던 원동력은 바로 이 성욕이었다. 게다가 사쓰코의 발에 대한 미친 성욕은 그녀의 발 아래에서 죽고싶다는 말도 안되는 미친 욕망으로 이어진다. 노인의 미친 욕망은 이뤄질수 있을까?[가급적이면 사쓰코의 용모와 자태를 이와 같은 보살상으로 새겨서 몰래 관음이나세지로 보이게 하여 그것을 내 묘비로 할 수는 없을까? 어차피 나는 신불을 믿지 않는다. 내게 하느님이나 부처님이 있다면 사쓰코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사쓰코의 입상 아래 묻히는 것이 내 소원이다.] P.165널리 읽힌 작품은 아닌것 같은데, 막 강추하기는 망설여지지만 다니자키 준이치로의 작품에 관심이 있다면 꼭 읽어보기를 추천한다. 인기있는 막장 드라마처럼 읽는 내내 욕나오지만 읽는걸 멈출 수는 없고 매우 재미있다. Ps. 쏜살문고에서 나온 다니자키 준이치로의 선집을 하나씩 모으고 있다 ㅋ
미학이란게 이런걸까? 단편들이 특이하면서도 아름답다.
귀공자의 시선으로 보면 일 년 내내 거기서 거기인 유곽 여자에 빠져 천편일률적인 방탕을 구가하는 악우들의 하루하루가 오히려 딱하기까지 했습니다. 만일 여자에 빠지기로 하자면 평균치는 넘는 여자였으면 좋겠다, 만일 방탕을 구가하자면 늘 새로운 방탕이었으면 좋겠다, 귀공자의 마음속에는 그러한 욕망이 불타고 있었지만 그것을 만족시키기에 알맞은 대상이 눈에 띄지 않아 어쩔 수 없이 무료한 시간을 보내는 것이었습니다. - P9
기분이 우울할수록, 마음이 쓸쓸할수록 향락에 동경을 품고 가슴 뛰는 흥분을 찾고자 하는 마음속 답답함은 점점 더 쌓여 갔습니다. - P16
"이 수레의 가마 안에는 남양의 물속에 사는 진기한 생물이 있습니다. 나는 당신의 소문을 듣고 저 멀리 열대 바닷가에서 인어를 산 채로 잡아 온 사람입니다." - P20
"나는 지금까지 은근히 나 자신의 폭넓은 학식과 견문을 자랑해 왔네. 예로부터 지상에 존재하는 것이라면 제아무리 귀한 생물이라도, 제아무리 진기한 보물이라도 내가 알지 못하는 것은 없었어. 하지만 나는 여태껏 이토록 아름다운 것이 물속에 살고 있으리라고는 꿈에도 상상한 적이 없구나. 내가 아편에 취해 있을 때 늘 눈앞에 빚어지는 환각의 세계에조차 이 유완 한 인어보다 더 월등한 괴물은 존재하지 않았어. 아마 나는 인어 가격이 지금 지불한 대가의 두 배였어도 분명 그대에게서 이 상품을 사들였을 것이야." - P26
"자네는 인어가 아깝지 않은가. 그런 가격으로 나에게 넘긴 것을 이제 새삼 후회하지는 않는가. 자네 나라 사람들은 어찌하여 인어보다 보석을 더 진중하는 것인가. 자네는 어찌하여 이 인어를 자네 나라로 가져가려 하지 않는가?" - P31
그 곁에 다가가는 자는 주인인 귀공자뿐인 것입니다. 유리판 한 장을 두고 서로 떨어져 물속에서 헐떡이는 인어와 물 밖에서 고뇌하는 인간은 온종일 묵묵히 마주한 채, 한 사람은 물 밖에 나가지 못하는 운명을 한탄하고 한 사람은 물속에 들어가지 못하는 부자유를 원망하며 헛헛하고 하릴없는 시간만 흘려보내는 것이었습니다. - P36
그날 밤 그는 나를 붙잡고 예술과 체육의 관계를 도도하게 논하여 들려주었습니다. 적어도 유럽 예술의 근원인 희랍적 정신의 진수를 터득한 자는 체육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느끼지 않을 수 없다, 모든 문학과 예술은 모두 인간의 육체미에서 시작하는 것이라고 그는 말했습니다. 육체를 경시하는 국민은 결국 위대한 예술을 낳을 수 없다. - P86
"아니, 그럴 걱정은 없어. 부자가 타락하는 것은 그 재산을 더 불려 보겠다고 사업에 뛰어들 때뿐이지. 돈이 많은 자는 일하지 않고 놀기만 하면 항상 행복해." - P86
그렇지만 내가 신체 기관인 눈을 가진 이상 육안의 영역이 심안의 영역도 담당해야 한다면, 이 제한으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위해서는 육안의 상실에 큰 가치를 둘 것 이다. - P94
"내 얘기를 좀 들어 봐. - 나는 눈으로 한 번에 전체를 볼 수 있는 아름다움이 아니면, 즉 공간적으로 존재하는 색채 혹은 형태의 아름다움이 아니면 그림으로 그리거나 문장으로 써낼 가치가 없다고 믿고 있어. 그중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것은 인간의 육체야. 사상이란 아무리 훌륭해도 눈으로 보고 느끼는 게 아니지. 그래서 사상에는 아름다움이 존재할 리 없는 거야." - P97
‘인간의 육체에서 남성미는 여성미보다 열등하다. 이른바 남성미라는 것의 대부분은 여성미를 모방한 것이다. 그리스 조각에서 볼 수 있는 중성의 미라는 것도 실은 여성미를 가진 남성일 뿐이다. - P105
이런 작품을 쓸수 있는 작가가 몇이나 될까?
그런데 일흔일곱이 된 오늘날, 이미 그런 능력을 상실한 상태가 되고 나서 남장을 한 미인이 아니라 여장을 한 미소년에게 매력을 느끼는 이유는 뭘까? 청년 시절의 와카야마 지도리에 대한 기억이 오늘에 이르러 되살아난 것일까? 아무래도 그런 것은 아닌 것 같다. 그보다는 아무래도 불능이 된 노인의 성생활(불능이 되어도 어떤 종류든 성생활은 있는 법이다.)과 관계가 있는것 같다. - P11
하지만 살아 있는 한 이성에게 끌리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런 생각은 죽는 순간까지 계속되리라 생각된다. 90세가 되어서도 보란 듯이 자식을 낳은 구하라 후사노스케와 같은 정력은 없고 이미 완전한 무능력자지만, 그렇기 때문에 여러 가지 간접적인 방법으로 변형된 성적 매력을 느낄 수 있다. 현재의 나는 그와 같은 성욕의 즐거움과 식욕의 즐거움으로 살고 있는 것 같다. 그런 나의 심경을 사쓰코만은 어렴풋하게나마 알아채고 있는 듯하다. 이 집안 식구들 중에 그것을 아는 사람은 사쓰코뿐이다. 다른 사람은 한 사람도 모른다. 사쓰코는 조금씩 간접적인 방법으로 시험하며 그 반응을 보는 것 같다. - P25
뜻밖에도 나는 사쓰코의 맨발을 만져 볼 기회를 얻었다. 그녀는 소파 위에 두 다리를 쭉 뻗고 나일론 양말을 벗어서 보여 주었다. 나는 그 발을 내 무릎 위에 올려놓고 다섯 개의 발가락을 하나하나 만져 보았다. - P27
"내가 사랑의 모험을 할 수 없게 된 데 대한 분풀이로, 하다못해 다른 사람에게 모험을 시켜서 그것을 보고 즐기자는 거야. 사람이 이렇게 되면 이제 불쌍해지는 거지!""자기한테 희망이 없으니까 될 대로 되라는 거네." - P71
내 아내조차 사쓰코와 조키치의 결혼을 그렇게 심하게 반대했으니, 그 무렵까지 어머니가 살아 계셨다면 얼마나 반대를 했을까? 아마 두 사람의 결혼은 성사되지 못했을 것이 틀림없다. 아니 처음부터 댄서 출신과의 결혼은 생각지도 못했으리라. 그런 혼사가 성사되었을 뿐만 아니라 어머니의 아들인 내가 손자며느리의 매력에 빠져 그녀에게 페팅을 허락받는 대가로 300만 엔을 투자하여 묘안석을 사 주는 사건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면 어머니는 아마 놀라서 기절했을 것이다. 만일 아버지가 살아 계셨으면 나도, 조키치도 의절당했을 터다. 아니 그보다도 어머니가 사쓰코의 용모와 자태를 보신다면 어떻게 생각하실까? - P95
어머니는 1883년에 낳은 당신의 아들 도쿠스케가 아직도 이 세상에 생존하여 이 사쓰코 같은 여자, 더욱이 어머니의 손자며느리, 손자의 정처인 여자에게 매력을 느끼며 한심하게도 그녀에게 괴롭힘당하는 것을 즐기고 내 아내, 내 자식들을 희생하면서까지 그녀의 사랑을 얻으려 하는 것을 어떻게 생각하실까? 어머니가 돌아가신 1928년에서 햇수로 33 년 후에 아들이 이런 미치광이가 되고, 이런 손자며느리가 자신의 집안에 들어오게 되리라고 꿈에라도 생각하셨을까? 아니, 나도 일이 이렇게 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 P97
그녀의 환심을 사기 위해서라면 부상을 당해도 억울하지 않다. 그 부상이 원인이 되어 죽음을 초래하더라도 오히려 바라는 바다. 하지만 그녀에게 짓밟혀 죽는 것이 아니라 그녀의 개에게 짓밟혀 죽는다면 그것은 견딜 수가 없다. - P110
가급적이면 사쓰코의 용모와 자태를 이와 같은 보살상으로 새겨서 몰래 관음이나세지로 보이게 하여 그것을 내 묘비로 할 수는 없을까? 어차피 나는 신불을 믿지 않는다. 내게 하느님이나 부처님이 있다면 사쓰코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사쓰코의 입상 아래 묻히는 것이 내 소원이다. - P165
"자네 발바닥을 뜨게 해 줘. 그렇게 해서 이 백당지 색지 위에 주목으로 발바닥 탁본을 뜰 거야.""그걸 뭐에 쓰게?""그 탁본을 바탕으로 사쓰짱 발을 본뜬 불족석을 만들거야. 내가 죽으면 뼈를 그 돌 아래 묻을 거야. 그게 진정 대왕생이지." - P176
"약속대로 수영장 공사가 시작되는 것을 바라보는 것 만으로도 아버님 머리에는 여러 가지 공상이 떠오를 거야. 애들도 기대하고 있고 말이야." - P1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