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텔링이 정말 예술이다. 기억의 힘은 정말 대단한것 같다.

마틸데 피네다양은 내 태생을 모른다고 맹세한 뒤 사람의 인생이란 어디서 왔는지가 아니라 어디로 가는지가 중요하기 때문에 신경쓸 필요가 없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멘델의 유전이론을 가르칠 때는 조상이 누구인지 알아야 할 당연한 이유들이 있음을 어쩔 수 없이 수긍했다. 내 아버지가 저 어디에선가 여자아이들의 목을 치며 돌아다니는 미치광이라면 어쩔것인가? - P220

"아저씨라고 부르지 마라, 아우로라, 나는 네 아빠야. 아름다움은 때로 저주가 될 수도 있단다. 사람에게서 가장 나쁜 열정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지. 지나치게 아름다운 여자는 자신이 불러일으킨 그 욕망을 피해 갈 수가 없어." - P267

사진은 한 사람에 대한 증거이자 세상을 보는 방식이고 그 방식은 정직해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또 기술이란 현실을 왜곡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현실의 모습을 본뜨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 P279

충분한 거리와 편안한 기분으로 그 에피소드를 바라볼 수 있는 지금에야 비로소 그가 나에게 빠진 적이 한 번도 없고 단지 무조건적인 내 사랑에 신이 나 있었고, 그 결혼의 이점을 저울질해 본 게 틀림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는 아마도 나를 원했을 것이다. 우리는 둘 다 젊고 약혼자도 없었으니까. 시간이 지나면 나를 사랑하게 될 거라고 믿었을지도 모르고 그래서 어쩌면 게으름과 편의 때문에 나와 결혼했는지도 모른다. - P310

나는 디에고를 절망적으로 사랑했었고 그래서 수사나가 그에 대해 느끼는 감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 같은 상황이었다면 나도 그녀처럼 행동했을까? 아마 아니겠지만 그렇다고 단언할 수는 없었다. 실패의 느낌은 여전히 그대로였지만 증오심을 떨쳐 내고 거리를 둔 채 그 불운의 또 다른 주인공들의 입장에 설 수 있었다. - P382

"누가 너를 태어나게 했는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아, 리밍. 그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거든. 세베로는 너에게 성을 주고 너를 책임져 준 사람이다." - P405

"내가 해야 할 바를 했지, 리밍. 그러고는 곧 타오 옆에 누워 길게 입맞춤을 했어. 그의 마지막 호흡은 나에게 남아 있지....." - P429

우리는 부끄러운 부분은 잊어버리고 가장 밝은 부분과 가장 어두운 부분만 선택하여 인생이라는 널찍한 융단에 수를 놓는다. 나는 사진과 글을 통해 내 존재의 덧없는 상황을 이겨 내고 사라져 가는 순간들을 붙들어 과거의 혼돈을 벗겨 내고자 필사적으로 노력한다. 매 순간은 순식간에 사라져 금방 과거가 되어 버린다. 현실은 하루살이같이 덧없고 변하는 것이며 순수한 그리움일 따름이다. - P430

우리가 온전히 소유할 수 있는 것이라곤 결국 우리가 엮어 놓은 기억뿐이다. 각자 자기 역사를 이야기하기 위한 빛깔을 고른다. 나는 백금 사진의 영구적인 선명함을 고르고 싶다. 그러나 내 운명에는 그런 빛나는 구석이 조금도 없다. 나는 모호한 색깔들과 불분명한 미스터리, 불확실성 속에 살고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내 인생의 이야기는 세피아빛 초상의 색조를 띤다. - P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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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라디오 2023-01-17 10:5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강추인가요ㅎ!?

새파랑님 닉네임과 어울리네요ㅎ 세피아빛 초상ㅎ

새파랑 2023-01-17 18:23   좋아요 1 | URL
강추! 까지는 아니고 별 네개 반? ㅋ 리뷰 써야 하는데 아직 퇴근을 못했습니다 ㅋ

scott 2023-01-20 12:17   좋아요 1 | URL
동감합니다

새파랑님
세피아 !로 ^^

새파랑 2023-01-21 10:25   좋아요 1 | URL
세피아는 예전에 기아차 아닌가요? ㅋ

고양이라디오 2023-01-21 18:26   좋아요 1 | URL
맞아요ㅎ 세피아란 기이차있었어요ㅎ
 

역시 강추할만한 작품인것 같다. 대만족중~!!

나는 1880년 가을 어느 화요일, 샌프란시스코의 외할아버지 댁에서 태어났다. - P11

나는 내 출생에 얽힌 세세한 내용들을 먼 훗날에야 알게 되었다. 그러나 끝까지 몰랐더라면 험난한 망각 속에서 영원히 해맸을 테니 더 나빴을 것이다. - P12

"내전으로 나라가 피를 흘리는데 칼리굴라의 침대나 산다고 하더군. 물론 그는 그 일은 일체 부정했지. 분별 있는 사람이라면 어느 누구도 자신의 부정을 그대로 수긍하지는 않는단다. 설사 현장에서 들키더라도 말이야." - P15

그 후 놉 힐의 새 저택으로 이사한 것을 구실로 파울리나는 끝내 자기 방에서 제일 반대쪽 끝에다 남편의 방을 정해 주고 자신의 방문을 걸어 잠갔다. 자기 몸에 대한 불쾌감이 남편에 대한 욕망을 능가하고 만 것이다. 턱살에 가려 목선은 사라지고 가슴과 배는 주교님처럼 되어버렸다. 다리는 채 몇 분도 몸을 지탱해 주지 못했고 혼자서는 옷을 입지도 구두를 신지도 못했다. 그러나 거의 언제나 실크 옷에 눈부신 보석들을 달고 있어서 구경거리를 연출했다. 살이 겹치는 곳의 땀 냄새가 제일 골칫거리여서 악취가 나느냐고 자주 귓속말로 내게 묻곤 했다. - P23

"죽는다는 거……… 그러니까……… 그건 빨리 끝나고 품위가 지켜지는 일일까? 죽음이 다가온 걸 어떻게 알 수 있나?" "피를 토하게 됩니다, 선장님." 타오치엔은 슬프게 말했다. - P30

"여기가 소머스 부인의 찻집이란다. 이 근방에서 하나뿐인 찻집이지. 커피는 어디서든 마실 수 있지만 차는 여기서 마셔야해. 미국인들은 독립 전쟁 때부터 이 밍밍한 음료를 정말싫어 했어. 보스턴에서 반란군이 홍차 나무를 불태우는 바람에 전쟁이 시작됐거든." "그렇지만 벌써 백 년도 더 된 일이잖아요." "그래, 세베로, 그러니 애국심이라는 게 얼마나 어리석은 것이냐" - P33

"몰락한 사람들보다 더 비참한 가난이란 없어 가지지 않은 것도 가진 척 해야 하거든." - P41

"원래 편지에는 뭐라고 쓰여 있었니?"
세베로는 귓불이 발개져서 부정하려 들었지만 고모는 거짓말을 꾸며 낼 틈도 주지 않았다.
"나도 그랬거든, 얘야. 어쨌든 할아버지가 뭐라고 쓰셨는지 알아야 답장을 할 게 아니냐."
"저를 군사 학교에 보내거나 어디서든 전쟁이 나면 보내라고요." - P47

"고모님께 진 빚 평생 잊지 않겠어요." 세베로가 감동해서 말했다.ㅇ"그래야지. 잊지 않도록 하렴. 인생은 길고 긴 것, 언제 내가 네 도움을 청할지 누가 알겠니." - P48

"죽는다는 거, 황홀하지 않니? 살인은 굉장한 모험이고 자살은 실용적인 해결책이란 말씀이야. 나는 이 두 가지 생각과 게임을 벌이는 거야. 죽어 마땅한 사람들이 있어, 안 그래? 내 생각을 얘기하자면 말이지. 세베로, 나는 그냥 늙어서 죽을 생각은 없어. 옷을 고를 때와 마찬가지로 주의 깊게 내 생을 끝내고 싶어. 그래서 연습 삼아 범죄 사건들을 공부하는 거야." - P65

자신을 그렇게 철저히 무시한다는 사실에 놀라서 그의 주의를 끌어 보려고 넘어지는 척했다. 여러 개의 손이 잽싸게 달려와 그녀를 잡아 주었지만 창문 옆에 서 있던 그 댄디의 손은 예외였다. 그 남자는 그녀가 가구의 일부라도 되는 듯 전혀 관심을 두지 않고 눈길 한번 주지 않았다. 그러자 린은 상상의 나래를 펼쳐 뚜렷한 이유도 없이 그 사람이 몇 년 동안 연애 소설들에서 예고되었던 바로 그 남자이고 자기 운명의 연인이라고 정해 버렸다. 병풍 뒤에서 옷을 갈아입을 때 젖꼭지가 돌처럼 딱딱하게굳었다. - P90

1단계는 혼자서 ‘가르소니에르‘에 찾아오게 해 패거리 앞에 소개한다, 2단계는 자기들 앞에서 누드모델이 되도록 설득한다. 그리고 3단계는 그녀와 함께 잔다. 마티아스는 그걸 한 달 안에 모두 끝내겠다고 했다. - P91

내기를 폭로하기에는 이미 늦어 있었다. 세베로 자신이 린에게 빠져 있는 것과 똑같은 그 아찔한 감정으로 그녀가 마티아스에게 빠져 있다는 걸 눈치챘기 때문이다. - P95

타오 치엔이 딸에 대한 연민을 가족의 명예보다 더 소중하게 여긴다면 자신도 그래야 한다고 마음먹었다. 자신의 의무는
린을 보호하는 것이고 그 나머지는 중요하지 않으니까. 그날 찻집에서 엘리사는 세베로 델 바예에게 다정한 어조로 그런 이야기들을 했다 - P106

"나를 사랑해 달라는 게 아니야, 린, 내가 당신에게 느끼는 애정으로도 충분해." 세베로는 언제나처럼 예의 바른 태도로 말했다. "아기에겐 아빠가 필요해. 내게 두 사람을 지킬 수 있는 기회를 줘 시간이 지나면 당신의 애정을 받을 만한 사람이 될 것을 약속할게." " - P116

세베로는 대지 깊은 곳에서 긴 비명이 솟구쳐 발부터 입까지 온몸을 관통하는 느낌이었지만 입 밖으로 소리를 내지는 못했다. 울음이 안으로부터 물밀듯 밀려와 온몸을 휘감고 머릿속에서 소리 없는 폭발을 일으켰다. 침대 옆에 무릎을 꿇은 채 소리 없이 린을 부르면서 하염없이 그렇게 머물러 있었다. 함께할 수 있기를 몇 년 동안이나 꿈꿔 왔는데 이제 기회를 얻었다고 생각한 순간 돌연 그녀를 앗아간 운명이 믿기지 않았다. - P126

세베로는 뱃머리에 앉아 끝없는 바다를 멍하니 바라보면서 린을 잃은 상실감을 결코 달랠 수 없을 거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녀 없이는 살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미래가 자신에게 가져다줄 수 있는 최상의 선물은 전쟁에서 죽는 것이었다. 금방그리고 신속하게 죽는 것, 원하는 것은 그뿐이었다. - P143

"죽이는 건 별로 힘들지 않아요. 살아남는 게 더 힘들답니다. 방심하면 죽음이 당신을 배신하고 데려갈 거예요." - P164

"사실대로 말해 주세요. 언제나 진실이 가장 쉽게 이해되는 법이니까요." - P181

어쩌다 타오 할아버지와 엘리사 할머니가 생각나 울던 일은 없어졌지만 설명하기 힘든 악몽들이 규칙적으로 찾아와 나를 괴롭혔다. 내 기억 속에는 새까만 공백이 있었는데 그것은 정확하게 뭐라 규정할 수는 없지만 늘상 존재하는 위험스러운 것이었고, 나를 두려움에 떨게 하는 미지의 것이었다. 어두운 곳이나 군중 속에 있을 때면 더 심했다. 나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이는 걸 견딜 수 없었다. - P1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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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3-01-12 22:5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세피아 -영혼의 집-운명의 딸
요렇게 읽으면 아옌데 최고작들 정복 끄읏 ^^

새파랑 2023-01-12 23:14   좋아요 2 | URL
요새 눈이 좀 아파서 책을 쪼끔만 읽고 있습니다 ㅋ 장비는 다 갖췄고 이제 읽기만 하면 됩니다~!!

han22598 2023-01-14 11: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새파랑님은 여전히 열심히 읽고 쓰고 계시네요 ^^ 늦었지만,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새파랑 2023-01-14 20:43   좋아요 0 | URL
요새 좀 휴식중입니다 ㅜㅜ 어느새 포루투갈 가셨군요? 인터네셔널 하십니다~!! han님도 새해 복많이 받으세요 ^^

얄라알라 2023-01-15 13: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소설 읽고 싶어지는 겨울!! 새파랑님 서재에 자주 들어오게 됩니다^^

새파랑 2023-01-15 16:35   좋아요 0 | URL
제가 기대를 충족(?)시켜 드려야 하는데 요새 소설을 잘 못읽고 있습니다 ㅎㅎ 좀 분발해 보겠습니다~!!

그레이스 2023-01-15 14:2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강추 받습니다

새파랑 2023-01-15 16:37   좋아요 2 | URL
그레이스님 이책 완전 대하소설입니다~! <백년 동안의 고독> 느낌이 납니다 ㅋ 저 이제 절반 읽어서 오늘은 다 읽으려고 노력중인데 아직 책을 못꺼냈네요 😅

청아 2023-01-15 17:33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새파랑님 대문사진 바뀌셨네요!! 색감이 예뻐요! 아옌데 소설 저도 읽고 싶은데,
새파랑님 리뷰 기다립니다^^*

새파랑 2023-01-15 17:39   좋아요 3 | URL
프로필 사진을 하얀색으로 하다보니 제가 답글을 단건지 안단건지 구분이 잘 안되서 바꿨습니다 ^^

제가 요새 빠져있는 넬의 crash 표지 입니다~!!

scott 2023-01-15 17:48   좋아요 4 | URL
미미님 말씀에 동감 합니다
새파랑님 지난번 프로필색은 투명인이셨음😄

새파랑 2023-01-15 17:51   좋아요 3 | URL
앗 ㅋ 맞습니다 ㅋ 북플에서 제 아이디가 안보이더라구요 ㅋㅋ

셀카로 프로필을 바꿔보려 했는데 너무(?) 마음에 안들어서 그냥 또 색깔로 바꿨습니다 ㅋ

모나리자 2023-01-15 18:5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전에 종종 플친님들의 리뷰로 만났던 책이군요. 인용 문장들이 강렬합니다.
아직 이사벨 아얜데를 만나지 못한 1인입니다^^:; 세상에 읽어야 할 작가들은 왜 그렇게 많은지.ㅎ

새파랑 2023-01-15 19:04   좋아요 2 | URL
전 못만나본 작가가 모나리자님보다 더 많을겁니다 ㅋ 이 책 좋다는데 이유가 있더라구요 ㅋ 생긱보다 두꺼워서 읽는데 오래걸리네요~!!

라로 2023-01-16 06: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드디어 파랑으로!! 닉네임과 잘 맞는 프로필 사진,, 더구나 크러쉬!!!^^
 
지하로부터의 수기 열린책들 세계문학 121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지음, 계동준 옮김 / 열린책들 / 2010년 5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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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23004

"나는 병든 인간이다...……. 나는 악한 인간이다. 나는 호감을 주지 못하는 사람이다."


올해는 도선생님의 작품을 재독하고 그의 위대함을 다시한번 느껴야 겠다는 목표가 생겼다. 그래서 첫번째로 선택한 책은 <지하로부터의 수기>다. 예전에 민음사 판으로 읽었는데, 열린책들 버젼으로 재독했다. (열린책들 도선생님 버젼으로 다 모았다~!!)


갑자기... 톨스토이냐 도스토예프스키냐 라고 선택해야 한다면 난 도스토예프스키를 고르겠다. (두분 다 매우매우 좋아하는 작가에다가 두분의 책은 거의 다 읽었다.) 톨스토이의 작품이 더 가독성도 좋고 감동도 있지만, 난 톨스토이가 그려내는 상류사회의 모습 보다는 도스토예프스키가 그려내는 하류사회의 모습과 왠지 찌질하고 짠한 도선생님의 주인공 모습에 더 애정이 간다.



도선생님 작품 중 아마 찌질함으로 따지면 이 책의 '지하인'이 최고이지 않을까? 여기서 말하는 '지하인'은 정말 지하에서 사는 사람을 말하는건 아니고, 밑바닥 인생을 뜻하는 거다. 온갖 열등감에 쌓여서 과대망상을 하고, 쉽사리 사람들에게 다가가지 못하며, 자신의 부족함을 감추기 위해 겉으로 강한척, 아는척 하는 '지하인'은 나의 모습이자 평범한 우리의 모습이다. (좀 과장되긴 했지만...)

[나는 대부분의 시간을 집에서 독서로 보냈다. 나는 내 안에서 끊임없이 끓어오르는 모든 것을 외부의 감각들로 잠재우기를 원했다. 외부의 감각들 중에서 내게 유일하게 가능했던 것은 독서였다. 독서는 물론 큰 도움을 주었다. 그것은 나를 흥분시켰고, 기쁘게 했으며, 괴롭혔다. 그러나 때때로 그것은 나를 대단히 지루하게 만들었다. 그럼에도 나는 어떤 행동을 원했다. 그리고 나는 갑자기 지저분한, 지하의, 그리고 혐오스러운 행동에 뛰어들었다. 그것은 너무 보잘것없어서 악행이 되지도 못했다. 나의 불쌍하고 초라한 정열들은 내게 항상 내재하는 병적인 초조함 때문에 날카롭고 뜨겁게 타올랐다. 내 충동들은 신경질적이었고 눈물과 경련들을 수반하는 것이었다. 내게는 독서 이외에 피난처가 없었다.] P.77




이 작품은 1부 지하실, 2부 진눈깨비 때문에 로 구성되어 있는데, 2부는 크게 1. 당구장에서 무시 당하는 사건, 2. 친구들에게 따돌림 당하는 사건, 3. 직업여성인 리자에게 버림당하는 사건 으로 구분할 수 있다.


1부 지하실은 내가 왜 40년 동안 지하인으로 살아야 했는지 자기변명을 하는 수기 이다. 엉뚱하고, 괴변을 늘어놓지만 읽다보면 왜 내가 지하인이 될 수 밖에 없었는지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주변에서 봤을때는 별볼일 없이 보이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저들보다 더 영리하다고, 나는 저들이 느끼지 못하는 죄의식을 느낀다고, 저들은 쾌락을 느끼지 못한다고, 단지 정해진 방법으로만 사고할 줄 안다고 오히려 무시한다. 그리고 그는 지하인으로 살아갈 수 밖에 없음을 스스로에게 증명하면서 위로한다. 그런데 이런 말을 하고 있는 지하인이 외롭게 느껴지는 건 왜일까?

[간단히 말해서, 인간은 희극적으로 만들어졌다. 명백히 이 모든 것들에서 말장난을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2×2=4는 참을 수 없는 일이다. 2×2=4는 내 의견으로는 뻔뻔스러움 이외에 아무것도 아니다. 바로 그렇다. 2×2=4는 멋쟁이처럼 보인다. 당신 길을 가로막고 으스대며 침을 뱉는다. 나는 2×2=4 라는 것이 훌륭한 것이라는 데 동의한다. 그러나 우리가 모든 것을 칭찬해야 한다면, 2×2=5도 때때로 가장 사랑스러운 것이 될 수 있다.] P.55




2부 진눈깨비 때문에는 왜 내가 지하인이 될 수 밖에 없었는지에 대한 경험담 이야기이다. 어떻게 보면 책이 시간의 역순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오늘 눈이 내리고 있다………. 거의 젖은, 황색의 흐린 눈이. 어제도 눈은 내렸고, 또한 며칠 전에도 내렸다. 떨쳐 버릴 수 없는 그 사건을 회상했던 것은 진눈깨비 때문이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러니 이 이야기를 하는 것도 진눈깨비 때문이라고 해두자.] P.65



1부가 좀 장황하고 다소 철학적이어서 약간 어렵다면, 2부는 재미있다. 완전 웃기다. 1부에서의 까칠하고 철학적인 지하인의 모습은 없고 엉뚱하고 찌질한 지하인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변덕적이고 모순적이고 감정기복이 심하고 반복해서 실수 후회하고 또 실수하고...


지하인은 아무런 적의를 품지 않은 상대에게 혼자서만 적의를 느끼고 복수를 다짐하며 소심한 복수를 하고 혼자서 만족한다.

[나는 무심결에 길을 막고 당구대 옆에 서 있었는데, 그는 내 옆으로 지나가기를 원했다. 그는 내 어깨를 잡고 조용히, 경고나 설명도 없이, 나를 내가 서 있었던 곳에서 다른 데로 옮겨 놓았다. 반면 그는 마치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는 듯이 지나가 버렸다. 나는 차라리 맞았더라면 그를 용서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통로에서 나를 옮겨 놓은 것과, 그토록 눈에 띄게 나를 무시한 것을 결코 용서할 수 없었다.] P.79



그리고 어떻게든 친구들의 모임에 끼고 싶어 하지만 친구들은 괴상한 지하인을 탐탁지 않게 여긴다. 그럼에도 그는 어떻게는 참가하는데 거기서도 괴변만 늘어놓고 오히려 친구들을 적대적으로 대한다.

[네가 모욕했다고 ? 나는 네가 알아줬으면 한다. 존경하는 선생, 너는 어떤 상황에서도 나를 모욕할 수 없다는 것을.] P.125



게다가 지하인은 다른 사람에게 무시당하기 싫어서 겉모습을 꾸미는데 과도하게 치중하고, 자신보다 못하다고 생각되는 사람은 또 엄청 무시한다.

[그녀는 내가 어떻게 사는지 보게 될 거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나쁜 일이야. 어제 나는...... 그녀에게 영웅으로..….… 보였을 거야. 그런데 지금은, 흠! 이건 소름끼치는 일이야, 얼마나 초라하게 되어 버렸나. 내 아파트는 진짜 불결해. 그리고 어제 그런 옷을 입고 저녁 식사에 갈 용기를 냈다니! 그런데다 저 소파에 씌운 천안에 있는 것이 비어져 나온 걸 좀 봐! 게다가 내 실내복은 항상 짧지! 그건 걸레같은 옷이야……. 그녀는 이것을 모두 다 볼 거야, 그리고 아론도 보게 되겠지. 저 짐승은 그녀를 모욕할 것이 확실해. 그놈은 내게 단지 무례하게 굴기 위해 그녀를 모욕할 거다.] P.167





왜 도선생님은 이렇게 자신이 생각하는 나의 모습(1부)과 현실의 나의 모습(2부)을 대비시킨 걸까? 자칭 지식인의 모순을 풍자하려고 했던 걸까? 아니면 책을 통해 배우는 지식은 단지 이상일 뿐, 실제 현실과는 다른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던 걸까?

[결국 인간은 그의 영혼을 인생에서 오직 한 번만 드러내는 거야. 발작을 일으킬 때에만! 그래서 너는 뭘 더 원하는거야? 이 모든 것을 말했는데도 내 앞에 버티고 서서 가지 않고 왜 나를 괴롭히는 거냐?] P.187




이 작품을 다 읽고나서 나의 본성에 대해, 인간의 본성에 대해 한참을 생각했다. 온갖 괴변을 늘어놓고 어떻게든 자기합리화를 하더라도 내가 다른 사람이 될 수는 없고, 나를 보는 다른 사람의 시각을 바꿀수는 없다. 하지만 겸손과 행동이 따른다면 조금은 개선되지 않을까란 생각을 가져본다. 언제까지 지하인으로 살 수는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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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3-01-08 11:55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저도 도스토예프스키를 더 좋아한다고 생각했는데 문제는 제가 톨스토이를 제대로 읽어본 적이 없더라구요. 도선생님은 몇 권 읽었는데 톨선생은 진짜 축약본(그때는 몰랐던) 부활 외에는 읽은게 없어서요. 그래서 일단 톨스토이 최대 걸작이라는 전쟁과 평화를 읽어보고 판단해봐야겠다는..... ^^
지하인이 이런 의미군요. 저는 뭔가 수용소 이런게 연상됐거든요. ㅎㅎ
도선생 재독하신다는데 화이팅입니다. 저는 일단 톨스토이를 읽어보고 도선생으로 갈지 톨선생으로 갈지 결정하려구요. ㅎㅎ

새파랑 2023-01-08 12:03   좋아요 4 | URL
톨스토이는 일단 <전쟁과 평화>랑 <안나 케레니나> 투탑이죠 ^^

여기에 저는 <하지 무라트> 추가해서 Top3 가겠습니다~!!

Calcutta 2023-01-08 12:30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대개 한겨울에는 러시아 소설을 읽는데 저도 이번 겨울 동안 오래전에 읽은 도스토예프스키의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을 다른 번역본으로 읽고 있습니다. (아마도 바뀌진 않겠지만) 현재의 애정하는 마음은 톨스토이 쪽이 높아요. 톨스토이의 소설 중에 이반일리치의 죽음도 마음의 순위가 높습니다. 도스토예프스키 소설 다시 읽기에 응원을 보냅니다. 새파랑님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새파랑 2023-01-08 12:52   좋아요 3 | URL
역시 겨울 하면 러시아죠~! 요새는 전쟁때문에 정이 안가지만....
저도 <이반 일리치의 죽음>도 좋아합니다~!!

calcutta님도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요~!!

Calcutta 2023-01-08 13:15   좋아요 2 | URL
아.. 그리고 프루스트도 게자리^^

새파랑 2023-01-15 16:06   좋아요 1 | URL
와우~!! 다른 게자리 분들은 다 훌룡하신데 저는... 왜그럴까요? 😅

2023-01-15 16: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페넬로페 2023-01-08 14:08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저도 톨스토이보다는 도선생님파입니다.
인간을 깊이 탐구했고 가지지 못한 자에 대해 연민을 가지고 있으니까요~~
새파랑님, 도선생님 재독 좋네요.
저도 어서 ‘지하로부터의 수기‘ 읽어야겠어요^^

새파랑 2023-01-08 14:19   좋아요 2 | URL
저도 딱 페넬로페님이랑 비슷한 생각입니다~!! 연민~! 이게 좀 큰거 같아요 ㅋ 역시 천재~!!

그레이스 2023-01-15 16:29   좋아요 2 | URL
대부분 그 차이는 갖고 있죠
너무 극단적으로 차이가 날때 그럴수 있겠죠

공쟝쟝 2023-01-10 08:4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앍 이거 넘 웃겨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제 생각에 도 선생에게 어떤 의도는 없고 그냥 본인 이야기 였을 듯 ㅋㅋㅋㅋㅋㅋㅋㅋ 제 인생도 1부와 2부사이에서의 분열이라 ㅋㅋㅋㅋㅋㅋㅋ 읽어봐야겠다!!!!

새파랑 2023-01-10 18:38   좋아요 0 | URL
도선생님은 글은 너무 잘쓰지만 불쌍한 사람 인거 같아요 ㅋ 이 책의 주인공도 너무 이상(?)하지만 미워할 수 없더라구요. 저랑 좀 비슷한 느낌도 받았습니다 ㅋ 왠지 공쟝쟝님은 좋아하실거 같습니다~!!

공쟝쟝 2023-01-10 18:55   좋아요 1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설날에 들고 고향 갈게요!!

새파랑 2023-01-10 18:59   좋아요 1 | URL
기차안에서 도스토예프스키를 읽는 멋진 공쟝쟝님 모습이 그려집니다 ~!

생각해보니 차타고 가실수도 있겠군요.. ㅎㅎ

공쟝쟝 2023-01-10 19:05   좋아요 1 | URL
비행기는요? ㅋㅋㅋㅋ

새파랑 2023-01-10 19:08   좋아요 0 | URL
앗ㅋ 또 생각해보니 배 🚢 도 있습니다~!!

공쟝쟝 2023-01-10 19:10   좋아요 1 | URL
배는 아닙니다…. 고즈넉한 어촌이 배경이긴 하지만 ㅋㅋㅋ 암튼 연휴에 찜!

그레이스 2023-01-15 14:28   좋아요 1 | URL
저도 새파랑님처럼 불쌍하단 생각했습니다. 그 자신에게 분열적인 모습이 많죠.;;

새파랑 2023-01-15 16:20   좋아요 1 | URL
그레이스님 / 뭔가 자신에 대한 믿음이 부족하면 그런 분열적인 모습이 나오는걸까요? ㅋ 전 그랬던거 같아요 ㅎㅎ

독서괭 2023-01-10 16:4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새파랑님은 한작가 다 읽기도 많이 하시고 재독도 많이 하시고.. 대단하세요. 저도 이번에 고전을 재독해보니 역시 고전은 고전이라, 재독해야만 알 수 있는 부분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지하로부터의 수기> 1부와 2부가 그렇게 다르군요? 오호 흥미롭습니다 ㅎㅎ

새파랑 2023-01-10 18:39   좋아요 1 | URL
그런데 요새 몸이 좀 안좋아서 책을 못읽고 있습니다 😅
고전은 다시 읽어도 좋더라구요. 그래서 고전이 오래 살아남나 봅니다 ~!!

고양이라디오 2023-01-11 15: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아직 톨스토이는 <하지 무라트> 밖에 안 읽어봐서 도선생을 훨씬 좋아합니다ㅎ

<지하로부터의 수기>를 도선생을 처음 접했는데 진짜 충격이었습니다ㅎ 어쩜 그리 심리묘사를 탁월하게 잘하시는지 진짜 제 심리를 들여다 보는 거 같았다는...ㅎ

열린책들 버전으로 다시 읽어보고 싶네요^^

새파랑 2023-01-11 20:44   좋아요 1 | URL
전 톨스토이도 좋고 도스토에프스키도 좋고 ㅋ 짜장이냐 짬뽕이냐의 선택 입니다~! 고양이님 <전쟁과 평화> 읽으시면 좋아하실 거 같아요 ^^

고양이라디오 2023-01-13 10:36   좋아요 1 | URL
그런가요!? <전쟁과 평화> 도전해보겠습니다!

새파랑 2023-01-15 16:21   좋아요 1 | URL
<전쟁과 평화> 설날 명절에 하루 한권씩 독파하시면 완결하실 수 있습니다~!!

물감 2023-01-11 19: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찌질함 좋아하는 1인이라, 저도 도끼옹이요! 근데 두분다 한권도 안읽었다는거ㅋㅋ아 러시아 문학은 언제쯤 도전할런지...

새파랑 2023-01-11 20:46   좋아요 1 | URL
앗 ㅋ 아직 좋은 읽을 책이 남아있다는게 부럽습니다~!! 전 요새 러시아 읽고싶은 새책이 없네요 ㅜㅜ

두분다 완전 좋습니다~!!!

희선 2023-01-13 02: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도스토옙스키 소설 한번 다 보고, 2023년에는 다시 보실 계획이라니 멋지네요 다시 보면 처음과 다르게 보이는 것도 있겠습니다


희선

새파랑 2023-01-15 16:15   좋아요 2 | URL
다시 읽으려고 다짐만 했습니다 ㅋ 근데 잘 할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

페크pek0501 2023-01-16 11:0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 작품도 좋아하지만 <죄와 벌>이 더 좋았어요. 도선생이 천재구나 생각한 계기였죠. 분량이 많은 소설이지만 금방 읽을 수 있을 만큼 흥미로워요. 그다음 장면이 궁금해지거든요.
지하생활자의 수기에 관한 온라인 강의를 들었는데 이 작품이 단계별로 철저하게 계산된 작품이라고 하네요. 횡설수설하는 것 같은데 그게 아니래요. 재독해 봐야겠어요.
리뷰 쓰셔서 뿌듯하시겠습니다. 유능하십니다. 저는 이 소설은 리뷰 쓸 엄두가 안 나네요. ㅋ^^

새파랑 2023-01-16 11:53   좋아요 0 | URL
<죄와벌>도 좋습니다~!! 제가 작년에 산 도선생님 전집 세트로 다시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왠만하면 허접하더라도 리뷰를 쓰려고 하는데 잘 못쓰긴 합니다 ㅋ

서니데이 2023-02-07 20: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합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새파랑 2023-02-08 10:38   좋아요 1 | URL
서니데이님 감사합니다 ㅋ 이번달에는 안될줄 알았는데 ㅎㅎ
어제 만취(?)해서 북플을 못들어왔네요 ㅜㅜ

서니데이님도 즐거운 하루 보내시길 바라겠습니다~!!
 

열린 책들 버젼으로 재독. 역시 도선생님은 사랑이다.


나는 병든 인간이다...……. 나는 악한 인간이다. 나는 호감을 주지 못하는 사람이다. - P9

자주 그러한 것에 모순되는 엄청나게 많은 요소들이 내 자신 속에 들어 있음을 스스로 인정하곤 했다. 이런 모순적인 요소들이 내 안에서 꿈틀거리고 있음을 느꼈다. 나는 살아오는 동안 내내 그것들이 내 안에서 꿈틀거리며 몸 밖으로 나오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나, 그것을 허용하지 않았다. 의도적으로 밖으로 나오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다. 그것들은 내가 수치심을 느낄 정도로 나를 괴롭혔다. 경련을 일으킬 정도까지 나를 몰고 갔으며, 마침내 나는 염증을 느끼게 되었다. 얼마나 나는 지겨웠던가! - P11

이 쥐는 복수를 를 시작할 수도 있다. 그러나 때때로 하찮은 방법으로 어쩐지 이따금 생각난 듯이 벽난로 뒤에서 은밀하게 복수하려고 한다. 자신에게 복수할 권리가 있다는 것도, 자신의 복수가 성공하리라는 것도 믿지 않으면서, 그리고 복수하려는 시도들 때문에 오히려 자신이 복수당하는 사람들보다 1백 배는 더 고통스러우며 정작 복수의 대상은 미동도 하지 않을 것이라는 걸 알면서도 말이다. 죽어 갈 때 쥐는 그동안 이자처럼축적된 것들과 함께 모든 것을 다시 한번 기억할 것이다. - P21

도대체 어디에서 모든 현인들은 인간에게는 어떤 정상적이고 선한 욕구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얻었단 말인가? 도대체 왜 그들은 인간에게 항상 이성적으로 유익한 욕구가 필요하다고 끊임없이 생각하고 있단 말인가? 인간에게는 오직 자율적인 욕구만이 이러한 욕구의 대가가 무엇이든 혹은 어디에 달하든지 간에 필요하다. 뭐, 욕구라는 것을 제기랄 그 누가 알 수 있겠는가... - P43

간단히 말해서, 인간은 희극적으로 만들어졌다. 명백히 이 모든 것들에서 말장난을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2×2=4는 참을 수 없는 일이다. 2×2=4는 내 의견으로는 뻔뻔스러움 이외에 아무것도 아니다. 바로 그렇다. 2×2=4는 멋쟁이처럼 보인다. 당신 길을 가로막고 으스대며 침을 뱉는다. 나는 2×2=4 라는 것이 훌륭한 것이라는 데 동의한다. 그러나 우리가 모든 것을 칭찬해야 한다면, 2×2=5도 때때로 가장 사랑스러운 것이 될 수 있다. - P55

그러나 나는 인간이 진정한 고통을 즉, 파괴와 혼돈을 결코 거부하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왜냐하면 고통은 의식의 유일한 원인이기 때문이다. 의식은 인간의 가장 큰 불행이라고 처음에 내가 공언하였지만 나는 인간이 그것을 사랑하고 있으며 어떤 만족과도 바꾸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 P56

아마도 당신은, 사실 고통을 받았을 것이다. 그러나 당신은 당신의 고통을 조금도 존경하고 있지 않다. 당신 안에는 진실도 있다. 그러나 순수함은 없다. 가장 하찮은 허영에 차서 당신은 당신의 진실을 자랑하려 하고 있지만 수치스런 구경거리로 만들었다. 당신은 무엇인가를 말하기를 정말 원하고 있다. 그러나 두려움 때문에 당신은 당신의 마지막 말을 숨기고 있다. 왜냐하면, 당신에게는 그 말을 할 용기는 없고 소심함과 무례함만이 있기 때문이다. 당신은 당신의 의식을 자랑하고 있다. 그러나 당신이 하는 모든 일은 망설임이다. 왜냐하면 비록 당신의 정신이 작용하고 있더라도, 당신의 마음은 악행에 의해 더러워졌고, 순수한 마음 없이 완전하고 건전한 의식이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당신은 얼마나 불쾌한 존재이며, 주제넘고 가식에 차 있는가! 거짓말들, 거짓말들, 거짓말들! - P61

오늘 눈이 내리고 있다………. 거의 젖은, 황색의 흐린 눈이. 어제도 눈은 내렸고, 또한 며칠 전에도 내렸다. 떨쳐 버릴 수 없는 그 사건을 회상했던 것은 진눈깨비 때문이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러니 이 이야기를 하는 것도 진눈깨비 때문이라고 해두자. - P65

그러나 모든 것 중에서 가장 끔찍스러웠던 것은 내 얼굴이 정말 바보처럼 생겼다는 것을 발견했다는 것이다. 얼굴이 지적으로 보였다면 좋았을 텐데…………. 만일 내 얼굴이 대단히 지적이기만 하다면 나는 비굴한 표정까지도 감수했을 것이라고 말해도 좋다. - P71

당연히 나는 처음부터 끝까지 내 모든 동료들을 싫어했다. 그리고 그들을 모두 경멸했다. 그러나 동시에 나는 그들을 두려워하고 있었다. 때때로 나는 갑자기 그들을 나보다 더 높이 평가하는 일도 있었다. 웬일인지 이런 변화들은 그때마다 갑자기 찾아오곤 했다. 이렇듯 나는 그들을 경멸하기도 했고, 그들을 나보다 더 높이 평가하기도 했다. - P72

나는 대부분의 시간을 집에서 독서로 보냈다. 나는 내 안에서 끊임없이 끓어오르는 모든 것을 외부의 감각들로 잠재우기를 원했다. 외부의 감각들 중에서 내게 유일하게 가능했던 것은 독서였다. 독서는 물론 큰 도움을 주었다. 그것은 나를 흥분시켰고, 기쁘게 했으며, 괴롭혔다. 그러나 때때로 그것은 나를 대단히 지루하게 만들었다. 그럼에도 나는 어떤 행동을 원했다. 그리고 나는 갑자기 지저분한, 지하의, 그리고 혐오스러운 행동에 뛰어들었다. 그것은 너무 보잘것없어서 악행이 되지도 못했다. 나의 불쌍하고 초라한 정열들은 내게 항상 내재하는 병적인 초조함 때문에 날카롭고 뜨겁게 타올랐다. 내 충동들은 신경질적이었고 눈물과 경련들을 수반하는 것이었다. 내게는 독서 이외에 피난처가 없었다. - P77

나는 무심결에 길을 막고 당구대 옆에 서 있었는데, 그는 내 옆으로 지나가기를 원했다. 그는 내 어깨를 잡고 조용히, 경고나 설명도 없이, 나를 내가 서 있었던 곳에서 다른 데로 옮겨 놓았다. 반면 그는 마치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는 듯이 지나가 버렸다. 나는 차라리 맞았더라면 그를 용서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통로에서 나를 옮겨 놓은 것과, 그토록 눈에 띄게 나를 무시한 것을 결코 용서할 수 없었다. - P79

우리는 서로 강하게 부딪쳤다. 어깨 대 어깨로! 나는 조금도 양보하지 않았고 완전히 동등한 자격으로 지나쳤다! 그는 돌아보지도 않았다. 그리고 못 본 척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단지 겉치레에 불과했다. 나는 그걸 확신한다. 바로 오늘까지도 나는 그것을 확신한다! 물론 더 아픈 쪽은 나였다. 그가 더 강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문제가 아니었다. 문제가 되는 것은 내가 목적을 달성했으며, 내 긍지를 지켰다는 것이다. 나는 한 발자국도 물러서지 않았고 사람들 앞에서 그와 동등한 사회적 위치에 나 자신을 올려놓았던 것이다. 나는 완전히 모든 것에 복수한 기분에 싸여 집으로 돌아왔다. 황홀했다. - P88

나는 그것을 평범한 가난이라고 부를거야 - P115

네네네가 모욕했다고 나나나아? 나는 네가 알아줬으면 한다. 존경하는 선생, 너는 어떤 상황에서도 나를 모욕할 수 없다는 것을. - P125

아버지에게는 딸이 사랑하는 사람이 모든 사람들 중 가장 나쁜 사람으로 보이게 마련이지. 그건 항상 그래. 이것 때문에 가족들에게는 많은 문제들이 생기지. - P146

그녀는 내가 어떻게 사는지 보게 될 거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나쁜 일이야. 어제 나는...... 그녀에게 영웅으로..….… 보였을 거야. 그런데 지금은, 흠! 이건 소름끼치는 일이야, 얼마나 초라하게 되어 버렸나. 내 아파트는 진짜 불결해. 그리고 어제 그런 옷을 입고 저녁 식사에 갈 용기를 냈다니! 그런데다 저 소파에 씌운 천안에 있는 것이 비어져 나온 걸 좀 봐! 게다가 내 실내복은 항상 짧지! 그건 걸레같은 옷이야……. 그녀는 이것을 모두 다 볼 거야, 그리고 아론도 보게 되겠지. 저 짐승은 그녀를 모욕할 것이 확실해. 그놈은 내게 단지 무례하게 굴기 위해 그녀를 모욕할 거다. - P167

나는 모든 것을 과장하고 있어, 이 점이 내가 실수한 바로 그 점이야. - P169

나는 원치 않는다. 원치 않는다. 나는 단순히 그에게 급료 주는 것을 원치 않는다. 나는 원치 않는다. 왜냐하면 내가 그렇게 하기를 원하므로. - P174

결국 인간은 그의 영혼을 인생에서 오직 한 번만 드러내는 거야. 발작을 일으킬 때에만! 그래서 너는 뭘 더 원하는거야? 이 모든 것을 말했는데도 내 앞에 버티고 서서 가지 않고 왜 나를 괴롭히는 거냐? - P1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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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3-01-07 20:1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다자이오사무가 도끼옹 광팬이였을것 같습니다
첫 문장 부터 인간실격의 냄새가 😆

새파랑 2023-01-07 21:46   좋아요 0 | URL
도끼옹, 다자이오사무 다 좋습니다 ㅋ 저도 병든인간이라는 😅

페크pek0501 2023-01-10 18: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가 아끼는 애독서였어요. 읽는 동안 주인공에게 힘을 실어 주고 싶었지요.
그 주위 사람들로부터 주인공을 지켜 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으니 제가 어떤 동질감을 느꼈나 봅니다.
다시 이 책을 찾아 몇 장이라도 재독하고 싶어지네요.^^

새파랑 2023-01-10 18:34   좋아요 1 | URL
페크님 재독하시면 또다른 재미를 느끼실겁니다~!! 저도 도선생님의 주인공에게 연민이 들더라구요 ^^

파이버 2023-01-10 23:4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일력에 실려있는 문구 모두 알베르 카뮈이네요~ 달력을 만든 곳에서 작가별로 일부러 모아둔 것일까요..?
새파랑님 새해에도 즐겁게 다독하시길 응원합니다. 늘 건강하세요~

새파랑 2023-01-11 06:59   좋아요 2 | URL
맞습니다~! 23년 일력은 월별 작가가 정해져 있습니다~!!

요새 컨디션이 안좋아서 잠시 휴식중인데 다독해야겠습니다~!!
 
음예 예찬 쏜살 문고
다니자키 준이치로 지음, 김보경 옮김 / 민음사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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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23003 다니자키 준이치로의 에세이 모음집. 난 에세이보다는 소설파여서 그런지 이책에 재미를 못느꼈다. 그리고 과거 이야기인데다가 일본 느낌이 너무 많이 들어서 별로였다. 그런데 당시 기준으로 보면 다니자키 준이치로는 정말 천재였던것 같다. 관점이 남다르긴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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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3-01-09 17: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에세이 서양인들도 극찬하는 에세이

하지만 새파랑님 맘엔 들지 못했네요 ㅎㅎ

새파랑 2023-01-09 21:16   좋아요 0 | URL
제가 좀 특이합니다 😅 그래도 다니자키 준이치로 완전 좋습니다~!!

파이버 2023-01-10 23: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쏜살 문고 표지가 참 예쁘네요~ 저는 중고매장에서 쏜살문고 다니자키 준이치로 [열쇠]가 있길래 구입했습니다 ㅎㅎ 새파랑님 따라서 도전~

새파랑 2023-01-11 07:03   좋아요 1 | URL
저도 다니자키 준이치로는 <열쇠>를 처믐 읽었는데 그때는 이게 뭐야? 이랬지만 지금은 그 특유의 분위기가 좋더라구요 ㅋ 쏜살문고 표지 모아놓으면 예쁘긴 한데 좀 많이 쌥니다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