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행 슬로보트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윤옥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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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23009

˝한번 생겨난 것은 내 의지와 관계없이 계속 존재합니다. 기억과 마찬가지예요. 가령 잊고 싶은데 잊을 수 없는 기억이 있잖아요. 그런 것과 같죠.˝


하루키옹의 첫번째 단편집인 <중국행 슬로보트>는 이게 뭐야? 하면서도 계속 읽게 되는 하루키만의 쿨함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단편집이다. 하루키가 직접 쓴 해설을 보면, 일단 제목을 먼져 정하고 글을 썼다고 하는데, 이런 제목을 정한것도 신기한데, 이런 제목을 가지고 이런 글을 쓴건 더 신기하다.



표제작인 <중국행 슬로보트>는 중국으로 가는 배에 대한 이야기는 아니고, 주인공인 내가 살면서 만난 세명의 중국인에 대한 이야기이다. 모의고사 배치학교를 중국인 초등학교(일본에 있는)로 받아서 그곳에서 만난 중국인 초등학교 선생님, 아르바이트 장소에서 만난 중국인 여대생, 우연히 거리에서 만난 고등학교때 알고 지내던 친구인자 지금은 백과사전을 팔고 있는 중국인 남자.

[하긴 내 기억의 대부분은 날짜가 없다. 내 기억력은 지독히 부정확하다. 지나치게 부정확해서 이따금 내가 그 부정확성을 근거로 누군가에게 뭔가를 증명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기분까지 든다. 하지만 그게 대체 무엇을 증명하느냐고 한다면, 나는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 애당초 부정확성이 증명하는 것을 정확히 파악한다는 건 불가능한 일 아닐까.] P.11



나는 그들을 떠올리며 아, 중국은 너무멀다고 느끼면서 이야기는 끝난다. 그래서 제목인 <중국행 슬로보트>라고 연계가 된다. 이런 제목을 먼저 정해놓고 이렇게 이야기를 재미있게 쓰는게 가능한건지 놀랍기만 하다. 하루키의 엉뚱한 매력이 물씬 느껴지는 단편. 이래서 하루키를 끊을수가 없다.

[내가 보기에는 흔히 나오는 실수였다. 잠깐 멍하니 있다가 삐끗한 것이다. 누구나 저지를 법한 일이다. 하지만 그녀는 그렇게 생각할 수 없는 모양이었다. 작은 균열이 그녀의 머릿속에서 점점 커지더니 이윽고 돌이킬 수 없는 거대한 심연으로 바뀌었다. 그녀는 한 발짝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한 마디도 하지 않고 말 그대로 제자리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그 모습은 나에게 밤바다에 천천히 가라앉는 배를 떠올리게 했다.] P.23






<뉴욕 탄광의 비극> 역시 제목을 먼저 정하고, 내용을 써내려간 작품이라는데, 이 작품은 반대로제목이랑 내용이 전혀 연관되지 않는 느낌이 든다. 태풍이 올때마다 동물원을 찾는 친구, 그리고 그런 특이한(?) 친구에게서 나는 장례식이 있을때마다 검정 정장을 빌려입는다. 더 특이한건 친구는 검정 정장을 사고 난 후에는 장례식이 한번도 없었는데, 나는 연이어서 장례식에 가게 되고 그때마다 옷을 빌린다.

[˝번번이 미안해. 사야겠다고 생각은 하는데 영 손이 안 나가더라고. 상복을 사면 왠지 누군가가 죽는다는 걸 인정해버리는 기분이 들어서 말이야.˝

˝신경쓸 거 없어. 어차피 나는 입지도 않는데 뭘. 옷도 무의미하게 걸려 있는 것보단 누군가한테 도움이 되는 편을 좋아할 거야. 이 양복을 맞춘 후로 한 사람도 죽지 않았어.˝

˝원래 그런 거야.˝ 나는 말했다.] P.91



내가 검정 정장을 사게 되면 주변사람들이 더이상 죽지 않게 되는걸까? 그리고 검정 정장을 산다는건 누군가의 죽음을 인정하게 되는 의식인걸까? 갑자기 20대때 정말 좋아했던 외할머니가 돌아가셨을때 장례식에 가기 위해 검정 정장을 샀던 기억이 난다. 아직 버리지 않고 간직하고 있다.

[하지만 결국 죽음은 죽음일 뿐이다. 바꿔 말하면, 모자에서 튀어나오건 보리밭에서 튀어나오건 토끼는 토끼일 뿐이다. 달궈진 아궁이는 달궈진 아궁이일 뿐이고, 굴뚝에서 피어오르는 검은 연기는 굴뚝에서 피어오르는 검은 연기일 뿐이다.] P.93





반대로 <땅속 그녀의 작은 개>는 내용을 먼저 쓰고 제목은 늦게 지은 작품이라고 하는데, 개인적으로는 이 단편집에서 이 작품이 가장 좋았다. 여자친구와 함께 오기 위해 비수기의 호텔을 잡았지만 출발 직전에 여자친구랑 싸워서 혼자 호텔에 가게 되고, 도착한 호텔에 있는 나흘 내내 비가 온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

그런데 그 호텔에서 나는 혼자 온 한 젊은여자를 만난다. 그리고 이야기를 하게 되고, 그녀를 조금씩 알게 된다. 그리고 그녀가 넓은 정원이 있는 집에서 살았었다는 과거를 이야기하면서 이야기는 그녀가 어린시절 파묻었던 작은 개에 대한, 그녀가 오랫동안 숨겨왔던 또다른 이야기가 펼쳐진다.





<시드니의 그린 스트리트>는 하루키의 또다른 상징인 양사나이가 나오는 이야기다. 양사나이 하면 <양을 쫓는 모험> 이나 <댄스,댄스,댄스> 가 떠오르는데, 거의 시초인 작품이다. 도대체 양사나이 같은걸 소재로 쓰는 작가가 얼마나 될까? 다소 어처구니가 없지만 하루키니까 이해가 되는 작품이다.





<중국행 슬로보트>에는 총 7개의 단편이 실려있는데 다 좋았다. 하루키 단편집을 읽다보면 안좋은 작품도 간혹 섞여있는데 여기에는 없다. 하루키의 초기 3부작 느낌을 좋아하시는 분들에게 특히 추천하고 싶다.

역시 하루키는 봄에 읽어도 좋고 여름에 읽어도 좋고 가을에 읽어도 좋고 겨울에 읽으면 더좋다.




Ps. 이 책에서 이 문장을 읽고 빵 터졌다.

[˝난 신청곡이라는 거 싫더라. 어쩐지 비참한 기분이 들어,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처럼 시작하는 순간 벌써 끝날때를 생각하게 돼.˝] P.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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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프리쿠키 2023-02-05 14: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집밥 같은 소설같아요.
산해진미 다 갖다놔도
그리운건 단촐한 집밥이니까~!
신청곡 문장 저도 밑줄 좍~~~!!

새파랑 2023-02-05 15:36   좋아요 1 | URL
집밥같은 소설 맞는거 같아요 ㅋ 너무 익숙한데 너무 좋습니다 ~!!

청아 2023-02-05 14:5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날이 좋아서 날이 좋지 않아서 날이 적당해서
모든 날에 읽기 좋은 하루키군요^^*

새파랑 2023-02-05 15:37   좋아요 1 | URL
미미님에게도 그런 작가가 있지 않나요? 프루스트라고 ~!! 방금 존버거의 <결혼식 가는길>을 읽었는데 완전 대박 좋네요 ^^

페넬로페 2023-02-05 15: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역시 하루키는 다작 작가이군요.
이 제목은 처음 들어봐요~~
사계절의 사나이, 하루키네요^^

새파랑 2023-02-05 18:20   좋아요 1 | URL
도선생님보다 하루키가 더 책을 많이쓴거 같아요. 느낌적인 느낌입니다 ㅋ

그레이스 2023-02-06 10: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여기 리뷰하셨네요
위에서 댓글 달고 왔는데,
중국행슬로보트 좋은 느낌이었어요
여기서 다시 보니 재독하고 싶네요^^

새파랑 2023-02-06 11:56   좋아요 1 | URL
하루키는 이제 재독 삼독이 익숙한거 같아요 ㅜㅜ 언제 신작이 나올련지 ㅜㅜ

그렇게혜윰 2023-02-06 10:3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오래전에 읽었는데 갑자기 중국행슬로보트 마니아가 되었다기에 누가 리뷰를 썼나보다 했는데 새파랑님이셨네요 ㅋㅋㅋㅋ

새파랑 2023-02-06 11:56   좋아요 1 | URL
아 그렇군요~! 전 요새 알람이 안와서 몰랐었는데 ㅋ 이번달에도 하루카는 읽으려고 합니다~!!

희선 2023-03-09 02: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 책 안 읽어봤어요 예전에 좀 보다가 안 본 적 있어서... 읽었다고 해도 잘 못 보기도 했네요 일본에서 다음달에 하루키 소설 나온답니다 곧 한국에도 나오겠지요 새파랑 님 축하합니다 오늘 좋은 하루 보내세요


희선

서니데이 2023-03-13 17: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합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역시 스트레스 해소에는 책이 답이고, 하루키가 가장 정답이다.




하긴 내 기억의 대부분은 날짜가 없다. 내 기억력은 지독히 부정확하다. 지나치게 부정확해서 이따금 내가 그 부정확성을 근거로 누군가에게 뭔가를 증명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기분까지 든다. 하지만 그게 대체 무엇을 증명하느냐고 한다면, 나는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 애당초 부정확성이 증명하는 것을 정확히 파악한다는 건 불가능한 일 아닐까. - P11

그리고 그 말을 염두에 두고, 나라는 한 인간의 존재와 나라는 한 인간이 더듬어갈 길에 대해 생각해본다. 그리고 그 같은 사고가 당연히 도달하게 되는 한 지점ㅡ즉 죽음에 대해 생각해본다. 죽음에 대해 생각하는 것은 적어도 나에게는 무척 막막한 작업이다. 그리고 죽음은 왜 그런지 내게 중국인을 떠올리게 한다. - P13

내가 보기에는 흔히 나오는 실수였다. 잠깐 멍하니 있다가 삐끗한 것이다. 누구나 저지를 법한 일이다. 하지만 그녀는 그렇게 생각할 수 없는 모양이었다. 작은 균열이 그녀의 머릿속에서 점점 커지더니 이윽고 돌이킬 수 없는 거대한 심연으로 바뀌었다. 그녀는 한 발짝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한 마디도 하지 않고 말 그대로 제자리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그 모습은 나에게 밤바다에 천천히 가라앉는 배를 떠올리게 했다. - P23

"거짓말. 나랑 같이 있어봤자 즐거울 리 없어. 그럴 리 없다고, 그건 나도 알아. 정말 실수를 한 거라고 해도, 그건 실은 네가 마음속으로 그러길 바랐기 때문이야." - P30

"애초에 여기는 내가 있을 장소가 아니야." - P45

왜냐니, 나도 모른다. 어찌된 영문인지 나를 사로잡는 것은 늘 알 수 없는 것들이다. - P53

한번 생겨난 것은 내 의지와 관계없이 계속 존재합니다. 기억과 마찬가지예요. 가령 잊고 싶은데 잊을 수 없는 기억이 있잖아요. 그런 것과 같죠 - P67

"응. 말하자면 가난한 아주머니에게는 가난한 아주머니적인 소녀시대가 있고 청춘이 있었을 거야. 혹은 없었는지도 모르지.하지만 어느 쪽이든 상관없어. 세상에는 몇백만 가지의 결과를 위한 몇백만 가지의 이유가 넘쳐나 살아가기 위한 몇백만 가지의 이유, 죽기 위한 몇백만 가지의 이유,이유를 붙이기 위한 몇백만 가지의 이유. 그런 건 떨이로 파는 물건처럼 전화 한 통이면 손쉽게 구할 수 있어. 하지만 네가 찾는 건 그런 게 아니지?" - P72

그러나 그녀는 잠시 망설였다. "저기, 무슨 급한 얘기야?" "안 급해." 나는 말했다. "딱히 급한 건 아니야. 나중에 해도 상관없어." 그렇다, 시간이라면 엄청나게 많다. 만 년이든 이만년이든 나는 얼마든지 기다릴 수 있다. - P81

"마치 고장난 엘리베이터에 우연히 함께 탄 느낌이야." - P88

하지만 결국 죽음은 죽음일 뿐이다. 바꿔 말하면, 모자에서 튀어나오건 보리밭에서 튀어나오건 토끼는 토끼일 뿐이다. 달궈진 아궁이는 달궈진 아궁이일 뿐이고, 굴뚝에서 피어오르는 검은 연기는 굴뚝에서 피어오르는 검은 연기일 뿐이다. - P93

"새벽 세시에 인간은 온갖 생각이 드는 법이야. 이것저것 안가리고 누구든 그렇지. 그러니까 각자 대처법을 생각해놔야 해." - P98

"난 신청곡이라는 거 싫더라. 어쩐지 비참한 기분이 들어,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처럼 시작하는 순간 벌써 끝날때를 생각하게 돼." - P105

캥거루를 볼 때마다 과연 캥거루로 산다는 건 어떤 기분일까 항상 신기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들은 무엇 때문에 오스트레일리아 같은 투박한 곳을 저런 묘한 꼴을 하고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걸까요. 그리고 무엇 때문에 부메랑 같은 엉성한 판자조각에 맞아 간단히 죽어버리는 걸까요. - P112

‘지금도 너를 정말 좋아해.‘ 그녀는 마지막 편지에 그렇게 썼다. ‘다정다감하고 아주 훌륭한 사람이라고 생각해. 이건 거짓말이 아니야. 하지만 어느 순간,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느낌이 들었어. 왜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 나도 모르겠어. 이렇게 말하면 넌 괴롭겠지. 아무런 설명도 되지 않을 테니까. 열아홉 살이란 정말 싫은 나이야. 앞으로 몇 년쯤 지나면 훨씬 잘 설명할 수 있을 거야. 하지만 몇 년쯤 지난 뒤에는, 더 설명할 필요도 없겠지.‘ - P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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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lcutta 2023-02-01 16: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숨이 트이는 작가가 있다는 건 좋군요. 저의 경우는 어떤 극에 달하면 카프카의 변신이나 단식술사를 읽게 되는데 그러면 좀 환기가 되더군요. 1월의 일력 카뮈의 문장들이 끝이 났군요 마지막 날의 단어들이 어마합니다 운명 숙명 경멸. 1월이 성큼 지나버렸네요 2월의 작가는 누구일지요. 밀려서 쓰신 거 무지 티납니다~

새파랑 2023-02-02 11:49   좋아요 1 | URL
ㅋㅋ 밀려서 쓴거 티나나요? ㅋ
카프카의 단식술사 한번 찾아 읽어보겠습니다~!!

2월은 제가 아주아주 흡모하는 도스토예프스키 입니다 ^^

서니데이 2023-02-03 21: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하루키 선생 책이군요. 이 책도 나온지 몇 년 되었지만, 이전의 표지가 생각나서 그런지 얼마 전에 나온 신간 같아요. 최근에 하루키 선생의 신간 알림을 받았는데, 이전에 나온 책이 다시 나오는 것 같았습니다. 이제는 이전의 책들이 다시 나오지 않으면 너무 오래되어서 절판될 수 있을 것 같아요.
새파랑님, 편안한 하루 보내셨나요.
따뜻한 주말 보내시고, 좋은 밤 되세요.^^

새파랑 2023-02-04 10:19   좋아요 1 | URL
네 이 책도 나름 최근 개정판입니다 ㅋ 하루키의 신규 장편이 나온다는 소식을 본거 같기도 한데 ㅎㅎ 주말에 출장가서 정신이 없네요. 즐거운 주말 보내시길 바랍니다 ^^
 
하늘의 뿌리
로맹 가리 지음, 백선희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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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23008 소재가 아프리카 코끼리여서 그런지 지금까지 읽었던 로맹 가리의 작품과는 많이 달랐다. 게다가 등장인물들도 많고, 시점도 계속 바껴서 계속 앞부분을 찾아봐야 했다. 비단뱀이 나오는 <그로칼랭>은 좋았었는데..이 작품이 공쿠르상 수상작이었다는데 약간 의문이 든다. 그래도 완독에 만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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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3-01-31 21: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새파랑님 로맹 가리옹 완독
추카 ^^

새파랑 2023-01-31 22:49   좋아요 2 | URL
이 책 너무 두껍고 글자도 빡빡해서 힘들었습니다 ㅋ 로맹가리의 다른 책 읽기가 무섭습니다 ㅎㅎ

그레이스 2023-01-31 22: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새파랑님은 로맹가리 탐독자^^
전문가세요
저는 쌓아놓고 시작 못하고 있어요

새파랑 2023-02-01 07:54   좋아요 1 | URL
전문가는 아니고 그냥 팬? ㅋ 그레이스님 이 책은 왠만하면 나중에 읽으시는걸 추천합니다 ㅎㅎ

coolcat329 2023-01-31 23: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올해 로맹 가리 꼭 읽어 보겠습니다 ~ 새파랑님이 강추하신 새벽의 약속~

새파랑 2023-02-01 07:55   좋아요 0 | URL
이 책보다는 새벽의 약속이 훨씬 재미있습니다~! 역시 전쟁문학이 좀더 공감이 잘되더라구요 ㅋ

청아 2023-02-01 09:5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는 올해 로맹가리 읽게되면 <그로칼랭>이나 <새벽의 약속>부터!!
이 책은 사회,정치적 문제를 다루고 있는 것 같더라구요. 저도 이건 되도록
마지막에 읽어야겠어요. 완독 수고하셨어요 새파랑님^^*

새파랑 2023-02-01 12:27   좋아요 1 | URL
전 사회, 정치적 문제에 좀 취약한거 같습니다 ㅋ 미미님 23년에누 로맹가리 전작 하셔야죠 ^^

페넬로페 2023-02-01 13: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새파랑님,
로맹 가리의 작품에 대한 사랑은 올해에도 계속되네요~~
이 작가의 작품수가 은근히 많은 것 같아요^^

새파랑 2023-02-02 11:51   좋아요 1 | URL
로맹가리가 책을 엄청 많이 썼더라구요 ㅋ 다 구하기도 힘들거 같아요. 아직 안읽은게 너무 많아서 월에 한권씩은 읽으려고 합니다 ^^
 

뭔가 아쉬움이 남는 작품이다.

아프리카 인의 배가 부르게 될 때 그때는 어쩌면 코끼리의 미적 측면에도 관심을 갖게 될 것이고, 일반적인 자연의 아름다움에 대해 기분 좋은 명상을 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지금으로서는 자연은 그들에게 코끼리 배를 가르고, 거기다 이빨을 박고 물어 뜯으라고, 멍멍해질 때까지 먹고 또 먹으라고 부추기고 있었다. 또 언제쯤 고기가 생길지 모르기 때문이다. - P443

그는 몸을 숙여 코끼리의 무기력한 코를 만졌고, 주름살 사이로 그를 쳐다보고 있는 눈을 보고 웃어주었다. 그가 코끼리에게 말했다. ‘걱정 말고 가거라. 모두들 갖게 될 거야. 백인도, 흑인도, 회색인도, 황인도, 홍인도, 모두들 갖게 될 거야. 진흙탕이란 한때뿐이야. 거기서 나오게 될 거야. 넌 보게 될 거야. 마침내 그들에게 폐가 생겨나 숨을 쉬게 되는 것을.‘ - P461

나중에 그들은 틀림없이 당신을 아프리카 독립을 위해 생애를 바친 영웅으로 세상에 알릴 겁니다. - P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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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끼리는 사랑이다.


이제는 시간이 많이 남아 있지 않으며, 아마도 이젠 이미 알고 있는 것으로 만족해야 하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 P13

불을 켜자 하늘에 남아 있던 것이 자취를 감췄다. 언덕과 별들을 보려면 불 곁에서 약간 떨어져야만 했다. - P14

사람들은 외쳤죠. 러시아 남자라고? 그런 일을 당하고도 어떻게 러시아 남자를 사랑할 수 있지? 그럴 때면 그녀는 약간 기분이 상해서 어깨를 으쓱하곤 했죠. 당연히, 사랑을 하면서 국적을 고려했던 건 아니니까요. 하지만 동포들은 그녀를 무척이나 비난했죠. 이웃들은 길에서 만나도 그녀를 빤히 보며 인사조차 하지 않고 지나쳤지요. 용기 있는 사람들은 혼자 있는 그녀를 만나면 큰소리로 자신들의 생각을 말했죠. 이를테면 군대 선봉에 서서 그녀를 짓밟고 지나간 사내를 어떻게 사랑할 수 있느냐고 말입니다. - P27

장교에게는 전속을 준비할 시간이 사십팔시간 있었는데, 그는 즉각 준비를 했죠. 탈영해서 그녀와 함께 프랑스 영역으로 달아나기로 마음먹은 겁니다. 그들이 프랑스 영토를 택한 것은, 프랑스 인들이 남달리 사랑 이야기를 잘 이해한다는 평판 때문이었다고 그녀는 말했습니다. - P30

제가 만족하는 법이 없다고 말씀하시고 싶으시죠. 그렇지만 그런 걸 어쩌겠어요. 어떤 막연한 욕구, 여기 있고 싶지 않은 욕구가 생기는 걸요. - P32

- 독일 사람이오?
-네.
그의 얼굴이 살짝 밝아졌다. 그는 가방을 바에다 내려놓았다.그렇다면 우리는 동포나 다름없군요. 나도 조금은 독일인인 셈이오. 말하자면 거기 정착해 살았으니까요. 나는 전쟁 때 끌려가서 이년 동안 여기저기 수용소에서 생활을 했소. 영원히 그곳에 남을 뻔도 했죠. 그 나라에 정이 들어서. - P53

나는 코끼리를 잡지 않아요. 코끼리들과 함께 살 뿐이오. 코끼리를 좇고 연구하느라 몇 달씩 보내곤 하지요. 좀더 정확히 말하자면 코끼리를 보고 감탄하죠. 사실 난 코끼리가 될 수만 있다면 무엇이건 내놓을 거요. 좀 전에 당신이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난 독일 사람에 대해 특별히 나쁜 감정이 없어요. 내가 싫어하는 건 훨씬 광범위한 것입니다. - P54

그래서 개머리판으로 이놈을 쳤죠. 이 못된 놈이 코끼리 떼 주위를 어슬렁거리는 걸 다시 보는 날이면 내 이놈을 묵사발 내놓을 거라고, 그리고 코끼리들도 가만 있지 않을 거라고 하비브에게 전하시오. 그뿐이오. 안녕히 계시오. - P55

원주민들에게는 적어도 구실이 있다. 그들 식량에 단백질이 모자란다는 구실이다. 그들은 먹기 위해 코끼리를 사냥한다. 코끼리가 그들에게는 고기인 것이다. 그러니 코끼리를 보호하려면 먼저 아프리카의 생활 수준이 향상되어야 한다. 이는 자연보호를 위한 모든 캠페인의 선결조건이다. 그러나 백인들은 어떤가? 그들은 ‘스포츠‘로 사냥을 한다. 총질의 ‘아름다움‘을 위해? 그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그의 부드러운 갈색 눈에는 그 어떤 말보다 분명한 비탄의 표현이 담겨 있었다. 그녀는 첫마디에 곧 명료하게 이해했다. 이 사람에게도 고독이 문제라는 것을. - P57

그들이 건드릴 수 없는 무언가가 우리에게 아직 남아 있다는 사실, 그들이 우리에게서 앗아갈 수 없는 어떤 허구, 어떤 신화가 있어 그것이 우리를 지탱하게 해준다는 사실이 그들을 미치게 만들었죠. - P61

그리고 그가 마음 깊이 느끼고 있는 어떤 것을 말로 표현하다 보면 그 의미가 달라져버려 그것을 전달하지 못할 뿐 아니라, 말을 하면서 자기 자신도 알아들을 수 없다는 것 또한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 가끔은 생각만으로 충분한지, 생각이 단순히 모색에 그치는 것은 아닌지, 참된 시각은 다른 곳에 있는 게 아닌지, 인간의 뇌 속에 아직 사용되지 않고있는 신경이 있어서 언젠가 이 생각들을 무한한 비전의 영역으로 몰고 가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곤 했다. - P80

파리에서는 어떻게 해서든 정치적 테러라는 보고를 받고 싶었던 모양일세. 내가 보고서 내용을 견지하니까 그들은 정말 빈정거리는 어조로 내게 대꾸하더군, 만일 이 사건이 조직적인 행동과 관련된 것이 아니라면, 난 용서받을 여지가 없을 거라고 말일세. 정말이지 그들은 내가 단지 차드에서 마우마우 테러 집단을 길러내지 않았다는 이유 때문에 내 책임을 다 못했다고 질책하는 것 같았네. 결국 그 사람들은 식민지 정책이 반란 폭동이나 학살에 이르지 않는 한 성공한 것이 못 된다고 생각하는 자들이야. 어떤 의미로는 그들 생각이 옳을지도 모르지만. - P86

그러나 신문기자들은 계속해서 그를 둘러쌌다. 모렐이 반기를 들기 전에 지사님께 청원서를 제출했는데 늘 거절당했다는 얘기가 있던데 사실입니까? 이 사건이 세상에 대단한 관심을 불러일으켰는데, 대중의 동정은 모렐 편, 코끼리 편으로 기울지 당국 편으로는 기울지 않는 것 같습니다. 아프리카에서 해마다 삼만 마리의 코끼리를 죽인다는 것, 그것이 모두 당구공과 페이퍼나이프를 만들기 위해서라는 것이 사실입니까? 현재 금렵지구가 충분치 않다는 것이 사실입니까? - P101

개인적으로는 물론 그들이 어떤 민족주의자들이건 상관 않소. 흑인이건 백인이건, 황인이건 홍인이건, 구세대이건 신세대이건 말입니다. 내 관심을 끄는 건 오직 자연의 보호뿐이오. - P154

내가 그들에게 요구하는 것은 코끼리 사냥을 금한다는 선언뿐이오. 그것만 실현되면 나는 곧 항복할 것이오. 그들이 나를 감옥에 넣을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나를 단죄할 프랑스 법정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소. - P158

그제야 그에 대한 나의 첫인상이 얼마나 그릇된 것이었나를 깨달았습니다. 나는 그의 신화에 어울리는 사내를 발견하게 되리라고 기대하며 그를 맞으러 나갔지요. 그리고 그의 단순함과 작은 키, 약간 거친 그의 얼굴에 실망했습니다. 그러나 그 단순함이란 사람들이 이야기를 지어내고 천진성에 관해 끊임없이 말하는 모든 민중의 영웅들에게서 볼 수 있는 그런 단순함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지금 나는 그를 전혀 다르게 보고 있어요. - P161

가엾은 모렐. 그 사람은 불가능한 상황 속으로 뛰어들었습니다. 인간들과 더불어 인간적인 이상을 옹호하려고 하는 그 모순을 해결한 사람은 지금껏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안녕히 가십시오. - P186

그러면 드 생드니 씨, 왜 그녀가 내 이름 앞에 ‘드라는 말을 붙였는지 모르겠더군요) 어떤 사람이 당신들에게, 당신들의 잔인성에, 당신들 얼굴에, 당신들 목소리에, 당신들 손에 질렸다고 해서 당신은 그 사람이 미쳤다고 보세요? 그 사람이 당신들, 당신네 학자, 당신네 경찰, 당신네 기관총과 더는 조금도 닮고 싶지 않다고 해서 그 사람을 정신병원에 가둬야 합니까? 요즈음엔 그런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을 아셔야 해요. 다만 그 사람들은 그가 하는 행동을 할 용기가 없을 뿐이죠. 너무 비겁하거나 너무 지쳤거나 너무 냉소적이기 때문이죠. 그러나 그런 사람들은 그이를 이해합니다. 아주 잘 이해하지요. 그 사람들은 그들의 사무실로, 수용소로, 군대로, 공장으로 가서 복종해야 하는 걸 지긋지긋해하지요. 그래서 할 수 있는 사람은 그이를 생각하고 미소 짓지요. 나처럼 말이에요. - P190

오, 그런 얼굴 하지 마세요. 동정 따윈 필요 없어요. 많은 남자가 내 위를 덮치고 지나간 건 사실이에요. 그러나 피할 수 없는 건 체념하고 받아들여야죠. 남자들이 바지를 벗었을 때 하는 것으로 그들을 판단할 순 없어요. 정말 더러운 짓을 할 땐 오히려 옷을 입고 하지요. - P191

- 만약 아무도 데려가지 않으면 저 개들을 어떻게 하나요?
- 일주일을 놔두었다가 그 후엔 가스실로 보내죠. 가죽은 회수하고 뼈는 젤라틴과 비누를 만들죠………… - P272

- 이슬람에서는 이것을 ‘하늘의 뿌리‘라고 부르오. 멕시코 인디언들에게는 이것이 ‘생의 나무‘로, 모두들 그 앞에 무릎을 꿇고는 눈을 들어 아프도록 가슴을 두드린다오. 모렐 같은 고집쟁이들이 청원서며 투쟁위원회, 보호조합 등을 통해 밖으로 드러내려 애쓰는 어떤 보호 욕구 말이오. 그들은 가슴속에 깊이 묻힌 이 하늘의 뿌리들을 드러내려는 겁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정의 욕구, 자유 욕구, 또는 사랑의 욕구에 응하려고 나름대로 애를 썼지요. - P273

모렐, 자네를 기다리고 있는 것에 대해 자네가 환상을 품지 말았으면 하네. 자네야 괘념치 않겠지만. 바보 같은 짓을 하는 것은 이긴다는 확신이 있어서 그러는 것 아닌가. 자넨 이길 거야. 그렇지만 내 분명히 말하는데, 자넨 총에 맞아 죽을 거야. - P291

그자에게 그런 괴벽이 생긴 건 나치 수용소에 있을 때였다고 뒤파르크는 주장하더군요. 거기서는 그게 밀실공포증과 철조망에 맞서 싸우는 수단이었던 것 같소. 자기들이 아프리카의 자유스런 공간을 질주하는 큰 코끼리 떼라고 상상한다 말이오! 그게 아직도 그자 마음에 남아 있는 거죠. - P323

알고 있소. 모두들 코끼리를 끌어들이는 걸 교활하다고 여기는데. 하지만 코끼리를 위해서 무언가를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소. 저마다 코끼리를 자기 자신에게 맞는 것과 연결시킨다면, 난 그럼 된 거요. 나머지야 뭐, 그들이 공산주의자건, 티토주의자건, 민족주의자건, 아랍인이건, 체코 인이건 상관없소. 그런 건 난 관심없소. 그들이 합의만 한다면 난 된 거요. - P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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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23-01-26 19:3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하늘의 뿌리>야말로 로맹 가리
에서 세계적 명성을 안겨준 책인
데...

정작 사서 읽지 않고 뻐팅기고만
있네요. 그것 참.

새파랑 2023-01-27 23:17   좋아요 2 | URL
완전 벽돌책입니다~!! 나름 열심히 읽고 있는데 진도가 안나가네요 ㅋ 제가 완독해 보겠습니다~!!

희선 2023-01-27 02: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코끼리는 사랑이다 코끼리가 나오는지... 제가 얼마 뒤 볼 그림책에 코끼리 나와요 그게 생각나서... 새파랑 님 오늘 좋은 하루 보내세요


희선

새파랑 2023-01-27 23:18   좋아요 1 | URL
이 책의 주인공이 코끼리입니다 ㅋ 희선님도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서니데이 2023-01-28 16: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새파랑님, 주말 날씨가 차갑습니다.
따뜻하고 좋은 주말 보내세요.^^

새파랑 2023-01-29 12:10   좋아요 1 | URL
그러게요 ㅜㅜ 카페 가려다가 추워서 집콕중입니다 ㅜㅜ

감기조심하시고 주말 잘 보내시길 바라겠습니다~!!

희선 2023-01-31 02:4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새파랑 님 일월 마지막 날이에요 어느새 2023년 한달이 가는군요 며칠 추웠는데 좀 풀렸습니다 일월 마지막 날 잘 보내고 이월 잘 맞이하세요 새파랑 님 이월에 건강하게 지내세요


희선

새파랑 2023-02-01 12:26   좋아요 1 | URL
이제 2월이 되버렸네요 ㅋ 희선님에게 2월은 좀 더 즐거운 달이 되시기를 바라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