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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의 빛
로맹 가리 지음, 김남주 옮김 / 마음산책 / 2013년 12월
평점 :
N23017
"사랑했던 유일한 여자를 잃었다는 이유로 모든 게 끝난다고 생각해보게. 그건 사랑이 없는 거라네."
조종사이자 주인공인 남자 "미셸"은 아내인 "야니크"를 홀로 집에 두고 6개월간 휴가를 떠나기 위해 공항에 가지만 비행기를 타지 않고 다시 집근처로 돌아온다.(하지만 집으로 가지는 않는다.) 부부싸움이라도 한걸까?
[나는 예감 같은 건 믿지 않지만, 무신론에 대한 믿음 또한 오래전에 잃어버렸다. “난 더 이상 그런 걸 믿지 않아"라는 언급 은 여전히 사실이지만, 한편 그 이상 기만적인 것도 없다.] P.7
"미셸"은 택시 문을 열고 내리다가 한 여자와 부딪친다. 그녀의 이름은 "리디아". 마침 달러만 있고 프랑스돈이 없던 "미셸"에게 "리디아"는 돈(택시비)을 빌려준다. 그리고 함께 한 카페에 간다. 그곳에서 두 사람은 이야기를 한다. 목적은 달랐다. "미셸"은 그녀에게 접근하지만, "리디아"는 단지 수표를 기다리는 것 뿐이라고 한다.
["사람은 늘 과장하는 법이지. 이제 끝장이라고 스스로에게 말 하기를 즐기지. 인도 피리의 짓눌린 곡조를 듣고 혼자 살아가는 거요. 할 수 있다는 걸 스스로에게 증명하기 위해서 말이오. 하지 만 낯선 이를 바라보는 눈길에는 아직 포기하지 않은 희망이 담 겨 있소.] P.22
그러던 와중에 "리디아"는 6개월전에 자동차사고로 남편과 어린 딸을 잃었다고 말한다. 집에 가지 않는 남자 "미셸"과 가족을 잃은 아픔이 남아있는 "리디아"의 만남은 이렇게 시작한다. 그런데 "미셸"은 왜 집에가지 않는걸까? 그리고 "리디아"의 말은 진심인걸까? 어딘가 아픔이 있어 보이는 그들의 비밀은 무엇일까? 그들의 하룻밤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하고, 이후 나름 반전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꼭 만나야 할 사람들이 만나지 못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데 그래! 그들은 어떻게 될까? 그들은 뭘 바라고 살까? 정말 부당한 일이야. 만약 내가 당신을 만나지 못했다면, 난 만나지 못한 당신을 증오하면서 삶을 탕진했을 거야.'] P.40
<여자의 빛> 이 책 정말 좋았다. 초반에 밑줄 치면서 읽다가 밑줄 긋는걸 포기할 정도로 재미있었다. 로맹 가리 특유의 유머와 심각한 상황에서도 진지함을 놔버리는 문장, 시종일관 취한것 처럼(실제로도 취한) 보이는 "미셸"의 모습까지 다 좋았다. "미셸"과 같은 상황에 처한다면 누가 정상일 수 있을까?
[희미한 어둠 속에서 나는 보았다. 하나의 형체가 손을 들어 올 려 내 입술을 어루만지는 것을. 내 숨결 속에 나도 모르는 어떤힘이 있어, 어떤 불굴의 나약함이 있어 내 중얼거림이 그녀에게 전달되기라도 한 것처럼.] P.142
로맹 가리의 말년(1977년)에 쓰여진 이 책은 로맹가리가 전 부인인 진 세버그에게 들려주고 싶었던 이야기가 아닐까 싶다. 로맹 가리가 생각하는 사랑, 그것은 이별하고 떠나더라도 끝나지 않는다, 그리고 삶을 계속하기 위해서는 사랑은 계속되어야 한다.
[불안감 때문에 나를 드러낼 그 어떤 시도도 할 수 없었다. 도망치는 건 불가능했다. 삶을 계속하기 위해서 는 사태를 직면하고 상대를 죽게 내버려 두고 누군가를 사랑해야 했다. 갈매기와 까마귀, 고함, 파열, 마지 막 순간들, 브르타뉴 지방의 한 장소, 내 입술에 닿는 당신의 이마, 여자의 빛, 그리고 다른 많은 버팀벽들처럼 내려앉지 않기 위해서 투쟁하는 무거운 눈꺼풀.] P.94
Ps. 난 에밀 아자르 보다는 로맹 가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