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글을 잘 쓰는 사람은 장편이든 단편이든 상관없이 다 잘 쓰는 걸까? 도선생님의 단편 모음집인 <백야 외>를 읽었다. 내가 읽은 도선생님의 10번째 작품~! 드디어 10번째 이다.
이 책에는 <남의 아내와 침대 밑 남편>, <약한 마음>, <뿔준꼬프>, <정직한 도둑>, <크리스마스 트리와 결혼식>, <백야>, <꼬마영웅> 등 7개의 단편이 실려 있는데, 이 단편들을 관통하는 주제는 ‘망상‘과 ‘몽상‘이다.
이중 인상적인 단편을 소개하면,
1.아내의 불륜을 의심하고 아내의 뒤를 쫓다가 다른 사람의 집에 잘못 들어가서 그 집에 침대 밑에 숨어 겪는 이야기인 <남의 아내와 침대 밑 남편> 이야기는 도선생님 특유의 코믹한 상황설정과 풍자가 잘 드러나는 작품이며,
2.너무 행복해서 다가올 미래가 감당이 안되서 미쳐버리는 한 남자의 이야기인 <약한 마음> 역시 도선생님 특유의 장광설과 정신발작을 잘 표현하고 있으며,
3.어린 소년의 중년 부인에 대한 사랑을 그린 <꼬마영웅>은 도선생님의 아름다운 풍경묘사와 처음 사랑에 빠진, 그러나 이루어질 수 없는 대상을 사랑하는 소년의 헌신과 섬세한 심리묘사가 압권이다.
[그러나 나의 영혼은 어떤 예감처럼, 어떤 것을 통찰한 듯 거칠고도 부드럽게 괴로워했다. 나의 놀란 가슴은 어떤 기대로 인해 가볍게 떨면서 무언가를 부끄럽고도 기쁘게 간파해 나갔다. 나의 가슴은 무엇인가에 관통당한 듯 갑자기 아프게 뛰기 시작했고, 눈물이, 그렇다, 달콤한 눈물이 나의 눈에서 쏟아졌다. 나는 손으로 얼굴을 가린 채 풀잎처럼 몸을 와들와들 떨며, 지금까지 내가 알지 못했던 그런 최초의 발견과 경험에 나의 마음을 아낌없이 헌납했다. 이 순간 나의 첫 유년 시대는 막을 내렸다.]
이 문장을 읽고, 감탄할 수 밖에 없었다. 도선생님은 도박도 사랑도 다 선수였다.
4.하지만 이 책의 단편 중 가장 최고는 표제작인 <백야> 이다. 이 단편은 도선생님의 소설 중 가장 아름답고 서정적이라는 평가를 받는 작품으로, 페테르부르그의 백야 때 만난 한 소녀와의 사랑과 이별을 그린 작품이다.
‘몽상가‘인 그는 평생 몽상에 빠져 홀로 외롭게 살아가는 사람으로, 우연히 길에서 만난 ˝나스쩬까˝를 홀로 사랑하게 되고, 이를 통해 몽상에서 벗어나 현실로 돌아오길 꿈꾼다. 하지만 그녀는 그에게 자신을 사랑하지 말아달라고 약속하며, 친한 오빠 동생 사이로 지내자고 한다.
그 이유는 그녀가 기다리는 남자가 있었기 때문인데, 1년전 일 때문에 떠난 그 남자는 자신이 돌아왔을 때에도 여전히 그녀를 좋아한다면 그녀에게 청혼을 하기로 약속했었다. 하지만 그 남자는 돌아온 후에도 그녀에게 연락을 하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이렇게 기다리고, 편지를 보내도 응답이 없는 그 남자 때문에 ˝나스쩬까˝는 힘들어 하고, 곁에서 이를 지켜보던 그에게 많이 의지한다. 결국 처음 약속을 어기고 그는 결국 ˝나스쩬까˝에게 인생에 있어서 처음으로 사랑을 고백하고, 그녀도 이를 받아들인다.
하지만 받아들인지 불과 몇분만에, 그 남자가 그들 앞에 나타나게 되고 ˝나스쩬까˝는 그를 버리고 그 남자에게 가버리며, 그는 ˝백야˝의 밤길 위에 홀로 버려진다. 그녀와 함께 했던 장소와 추억을 남긴채. 결국 그의 만남과 사랑은 네번째 ‘백야‘, 즉 4일만에 끝나버리게 된다. 하지만 그는 그녀를 원망하지 않고 그녀와의 추억을 회상하며 이야기가 끝난다.
[너의 하늘이 청명하기를, 너의 사랑스러운 미소가 밝고 평화롭기를, 행복과 기쁨의 순간에 축복이 너와 함께 하기를!
너는 감사하는 마음으로 가득 찬 어느 외로운 가슴에 행복과 기쁨을 주었으니까.
오, 하느님! 한순간 동안이나마 지속되었던 지극한 행복이여! 인간의 일생이 그것이면 족하지 않겠는가?]
<백야>의 이 마지막 문장을 읽고 감탄에 감탄을 했다. 그의 지고지순한 사랑은 끝났지만 결코 좌절없이 그 순간의 행복했던 기억을 잘 간직하려고 하는, 그의 심정을 너무 잘 표현한 문장이다.
아마 <백야>의 주인공은 가장 서정적이고 순수했던 시절의 도선생님의 모습을 그린 것이 아니었을까란 생각을 했다.
단편별로 완성도와 분량의 차이가 있긴 하지만, 이 책은 <백야> 하나만으로도 읽을 가치가 충분하다고 본다.(백야는 90페이지다.)
역시 믿고 읽는 도선생님의 작품. 아직까지 만족하지 않은 작품이 없었다. 올해 도선생님 완독 목표는 계속 진행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