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글을 잘 쓰는 사람은 장편이든 단편이든 상관없이 다 잘 쓰는 걸까? 도선생님의 단편 모음집인 <백야 외>를 읽었다. 내가 읽은 도선생님의 10번째 작품~! 드디어 10번째 이다.

이 책에는 <남의 아내와 침대 밑 남편>, <약한 마음>, <뿔준꼬프>, <정직한 도둑>, <크리스마스 트리와 결혼식>, <백야>, <꼬마영웅> 등 7개의 단편이 실려 있는데, 이 단편들을 관통하는 주제는 ‘망상‘과 ‘몽상‘이다.

이중 인상적인 단편을 소개하면,

1.아내의 불륜을 의심하고 아내의 뒤를 쫓다가 다른 사람의 집에 잘못 들어가서 그 집에 침대 밑에 숨어 겪는 이야기인 <남의 아내와 침대 밑 남편> 이야기는 도선생님 특유의 코믹한 상황설정과 풍자가 잘 드러나는 작품이며,

2.너무 행복해서 다가올 미래가 감당이 안되서 미쳐버리는 한 남자의 이야기인 <약한 마음> 역시 도선생님 특유의 장광설과 정신발작을 잘 표현하고 있으며,

3.어린 소년의 중년 부인에 대한 사랑을 그린 <꼬마영웅>은 도선생님의 아름다운 풍경묘사와 처음 사랑에 빠진, 그러나 이루어질 수 없는 대상을 사랑하는 소년의 헌신과 섬세한 심리묘사가 압권이다.

[그러나 나의 영혼은 어떤 예감처럼, 어떤 것을 통찰한 듯 거칠고도 부드럽게 괴로워했다. 나의 놀란 가슴은 어떤 기대로 인해 가볍게 떨면서 무언가를 부끄럽고도 기쁘게 간파해 나갔다. 나의 가슴은 무엇인가에 관통당한 듯 갑자기 아프게 뛰기 시작했고, 눈물이, 그렇다, 달콤한 눈물이 나의 눈에서 쏟아졌다. 나는 손으로 얼굴을 가린 채 풀잎처럼 몸을 와들와들 떨며, 지금까지 내가 알지 못했던 그런 최초의 발견과 경험에 나의 마음을 아낌없이 헌납했다. 이 순간 나의 첫 유년 시대는 막을 내렸다.]

이 문장을 읽고, 감탄할 수 밖에 없었다. 도선생님은 도박도 사랑도 다 선수였다.

4.하지만 이 책의 단편 중 가장 최고는 표제작인 <백야> 이다. 이 단편은 도선생님의 소설 중 가장 아름답고 서정적이라는 평가를 받는 작품으로,  페테르부르그의 백야 때 만난 한 소녀와의 사랑과 이별을 그린 작품이다.

‘몽상가‘인 그는 평생 몽상에 빠져 홀로 외롭게 살아가는 사람으로, 우연히 길에서 만난 ˝나스쩬까˝를 홀로 사랑하게 되고, 이를 통해 몽상에서 벗어나 현실로 돌아오길 꿈꾼다. 하지만 그녀는 그에게 자신을 사랑하지 말아달라고 약속하며, 친한 오빠 동생 사이로 지내자고 한다.

그 이유는 그녀가 기다리는 남자가 있었기 때문인데, 1년전 일 때문에 떠난 그 남자는 자신이 돌아왔을 때에도 여전히 그녀를 좋아한다면 그녀에게 청혼을 하기로 약속했었다. 하지만 그 남자는 돌아온 후에도 그녀에게 연락을 하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이렇게 기다리고, 편지를 보내도 응답이 없는 그 남자 때문에 ˝나스쩬까˝는 힘들어 하고, 곁에서 이를 지켜보던 그에게 많이 의지한다. 결국 처음 약속을 어기고 그는 결국 ˝나스쩬까˝에게 인생에 있어서 처음으로 사랑을 고백하고, 그녀도 이를 받아들인다.

하지만 받아들인지 불과 몇분만에, 그 남자가 그들 앞에 나타나게 되고 ˝나스쩬까˝는 그를 버리고 그 남자에게 가버리며,  그는 ˝백야˝의 밤길 위에 홀로 버려진다. 그녀와 함께 했던 장소와 추억을 남긴채. 결국 그의 만남과 사랑은 네번째 ‘백야‘, 즉 4일만에 끝나버리게 된다. 하지만 그는 그녀를 원망하지 않고 그녀와의 추억을 회상하며 이야기가 끝난다.

[너의 하늘이 청명하기를, 너의 사랑스러운 미소가 밝고 평화롭기를, 행복과 기쁨의 순간에 축복이 너와 함께 하기를!

너는 감사하는 마음으로 가득 찬 어느 외로운 가슴에 행복과 기쁨을 주었으니까.

오, 하느님! 한순간 동안이나마 지속되었던 지극한 행복이여! 인간의 일생이 그것이면 족하지 않겠는가?]

<백야>의 이 마지막 문장을 읽고 감탄에 감탄을 했다. 그의 지고지순한 사랑은 끝났지만 결코 좌절없이 그 순간의 행복했던 기억을 잘 간직하려고 하는, 그의 심정을 너무 잘 표현한 문장이다.

아마 <백야>의 주인공은 가장 서정적이고 순수했던 시절의 도선생님의 모습을 그린 것이 아니었을까란 생각을 했다.

단편별로 완성도와 분량의 차이가 있긴 하지만, 이 책은 <백야> 하나만으로도 읽을 가치가 충분하다고 본다.(백야는 90페이지다.)

역시 믿고 읽는 도선생님의 작품. 아직까지 만족하지 않은 작품이 없었다. 올해 도선생님 완독 목표는 계속 진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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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아 2021-05-18 17:40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단편 모음이었군요! 10권째라니 올해 목표 수월하게 달성하실듯 해요.ㅋㅋㅋ<백야>넘 기대되어 전에 찜했는데 다시 찜합니다.(다시 찜해야 보관함 최상단ㅋ)사랑도 풍자도 정신발작도 다 제스타일ㅋㅋ😳;;

새파랑 2021-05-18 18:14   좋아요 4 | URL
ㅋ 역시 독특한 스타일의 미미님~!! 도선생님의 사랑이야기 좋아요. <가난한 사람들> 과 유사한 느낌. 다른 단편들도 좋아요. 그리고 짧아서 금방금방 읽히고 ^^

붕붕툐툐 2021-05-18 19:58   좋아요 3 | URL
아, 미미님 스타일 너무 웃겨요~😂

청아 2021-05-18 20:05   좋아요 2 | URL
툐툐님 적어두심 안돼욤ㅋㅋㅋㅋ😆쉿!

blanca 2021-05-18 18:00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오, 꼭 읽어보고 싶게 만드시네요. 감사해요.

새파랑 2021-05-18 18:15   좋아요 3 | URL
저는 <백야>는 정말 좋더라구요. 깜놀합니다^^

mini74 2021-05-18 18:17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새파랑님 꿈에 도선생님 나와서 박씨 물어다 주는거 아니에요? 막 로또 번호 가르쳐 주고 ㅎㅎ그러면 좋겠어요 ㅎㅎ 새파랑님 글 읽으면 도선생님 책에 자꾸 손이 가요. 어젠가 아마존에서 한번씩 무료료 책을 풀어요 ㅠㅠ 도선생님 전집도 가끔 풀어준다고 하더리고요. 원서라서 그렇지 ㅠㅠ

청아 2021-05-18 18:37   좋아요 3 | URL
근데 혹 러시아어로 로또 불러줌어떡해요!ㅋㅋㅋㅋ

새파랑 2021-05-18 18:44   좋아요 4 | URL
박씨라니 ㅋ 제가 꿈을 잘 안꾸지만 혹시 도선생님이 알려주시면 공유하겠습니다~!! 전 무의식적으로 도선생님 책을 한권씩 담고 있어요 ^^
이번기회에 러시아어 공부를 한번 해볼까요? ㅎㅎ

scott 2021-05-18 20:50   좋아요 3 | URL
미니님 안됍니다 도끼 선생은 단 한번도 룰렛 도박에 돈을 딴 적이 없으요 ㅎㅎ
전재산 홀라당!
빚더미 앉은 분 ㅎㅎ
이런분 꿈에 나오면 클남 ㅎㅎㅎㅎ

페넬로페 2021-05-18 19:27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이 책에서 단편들의 소재가 특이하고 재밌을 것 같아 구미가 당기네요~~
백야책은 벌써 구매해놓았는데 버지니아 울프가 가로막고 있어요**
도스토예프스키의 작품을 꾸준히 읽으시는 새파랑님은 너무 대단하신데요^^

새파랑 2021-05-18 19:39   좋아요 5 | URL
다양한 선물세트 받은 기분이 듭니다 ~!★★ 저도 버지니아 울프 읽고 싶은데 이게 우선순위에 안들어 오고 있네요 ㅜㅜ 칭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또 도선생님 구매했어요^^

붕붕툐툐 2021-05-18 19:58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이야~ 열권째! 새파랑님 진짜 대단하십니다!! 북플에 도스토예프스키 바람을 불러일으키시네요!!

새파랑 2021-05-18 20:49   좋아요 1 | URL
제가 바람을 일으킨건 아니지만 ^^ 아직도 읽을게 많이 남아있더라구요 ㅎㅎ

coolcat329 2021-05-18 19:5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10권이라니 놀랍습니다. 백야 저도 갖고 있는데 다음 읽을 도스토예프스키 책은 이걸로 정했습니다. 글 잘 읽었습니다 ~~

새파랑 2021-05-18 20:53   좋아요 2 | URL
쿨켓님의 리뷰 기대됩니다 ^^ 단편중 몇개는 한번에 이해가 안되서 두번 읽은 것도 있어요. 참고하세요 ㅋ

scott 2021-05-18 20:5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알라딘 북플계에서 새파랑님은 도끼선생 마니아! 1등급
로쟈님 바로 아랫 순위로 올라가시는 中 ㅎㅎㅎ

새파랑 2021-05-18 20:58   좋아요 2 | URL
저 스콧님 글보고 찾아보니까 3위네요 ㅎㅎ 이게 찾아 들어가야 볼 수 있는지 첨 알았어요 ㅎㅎ 그래도 도끼선생님 전문가는 스콧님이시라는 ^^

청아 2021-05-18 21:05   좋아요 2 | URL
스콧님은 재야의 고수 재야의 마니아~♡ㅋㅇㅋ👍👍

cyrus 2021-05-19 21: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올해 도끼 완독 읽기에 도전하고 싶었는데, 일 때문에 계획을 진행하기 어려울 것 같아요. 독서 목표 달성하실거라 믿습니다. ^^

새파랑 2021-05-19 21:09   좋아요 0 | URL
사이러스님 많이 바쁘신가 보네요ㅜㅜ 그래도 건강 잘 챙기시길 바랍니다~!! 근데 도선생님이 남기신 책이 많으셔서 아직 먼거 같아요 ㅎㅎ

희선 2021-05-20 02: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올해 목표 멋지네요 다른 책도 보면서 도스토옙스키 책도 다 보실 수 있겠네요


희선

새파랑 2021-05-20 12:17   좋아요 0 | URL
작년에 120권 정도 읽었는데 올해 책을 더 많이 읽는거 같아요. 북플해서 그런거 같습니다ㅎㅎ 칭찬 감사합니다 ^^
 

<백야 외>에 있는 표제작 ‘백야‘ 완전 최고의 감정적인 단편이다. 그리고 ‘꼬마영웅‘도 좋다.
사랑도 잘 표현하는 도선생님 너무좋다,

어떤 놀라운 우수가 아침부터 나를 괴롭히기 시작했다. 불현듯, 모든 사람들이 외로운 나를 저버리고 나에게서 떠나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이런 기분을 느껴본적이 있다.) - P225

한순간의 아름다움이 그렇게나 빨리 그렇게나 돌이킬 수없이 시들어 버림에, 그녀가 당신 앞에서 그렇게나 기밀적으로, 덧없이 명멸함에 당신은 서러워한다. 그녀를 사랑할 시간조차 없었던 것에 당신은 애달파한다. - P232

나는 몽상가입니다. 내게 현실적인 삶은 거의 존재하지 않습니다. 지금 같은 이런 순간이 날이먼 날마다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나는 꿈속에서 그 순간들을 되새기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나는 밤새도록, 1주일 내내 당신을 꿈꿀 겁니다. 나는 내일 반드시 바로 이 시간에 이곳, 바로 이 자리에 올겁니다. 그리고 어제의 일을 회상하며 행복해 할 겁니다. 이 자리는 내게 이미 다정한 장소가 되어버렸습니다.

(몽상가가 사랑에 빠진다면 이렇게 되는거겠지?) - P240

저를 사랑해서는 안됩니다. 절대로 그건 안됩니다. 우정은 얼마든지 좋아요. 자 여기 제 손을 잡으세요. 그러나 사랑은 안 돼요. 부탁이에요. - P241

지금 당신 옆에 앉아서 당신과 이야기를 하는 이 순간 미래를 생각하는 것이 두렵습니다. 미래에는 또다시 고독과 이 곰팡내 나고 쓸모없는 삶이 있을 테니까요. 그리고 지금 이미 당신 곁에서 이토록 행복한데, 뭐 때문에 또 꿈을 꿔야 하겠습니까.

(미래가 없더라도, 현재 행복한 순간이 있었다면 그것도 나쁘지는 않을것 같다.) - P261

사실 우리는 어떤 사람들에게 그들이 우리와 함께 살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감사히 생각합니다. 나도 당신이 나를 만나 준 것에 대해, 그리고 내가 평생 당신을 기억할 거라는 데 대해 당신께 감사합니다.

(어딘가 살아있다는 것만으로 감사할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건 좋은 것이다.) - P279

오늘은 비가 구질구질 내리는 슬픈 날이었다. 마치 미래의 내 노년처럼 한줄기 빛도 비치지 않았다. 너무나 이상한 상념과 너무도 우울한 감각이 나를 온통 메우고 있다. - P281

나는 오랫동안 서서 사라져가는 그들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마침내 그 둘 모두 내 시야에서 사라졌다.

(마지막 뒷모습을 바라보는 그의 마음이란.)

- P307

너의 하늘이 청명하기를, 너의 사랑스러운 미소가 밝고 평화롭기를, 행복과 기쁨의 순간에 축복이 너와 함께 하기를!

너는 감사하는 마음으로 가득 찬 어느 외로운 가슴에 행복과 기쁨을 주었으니까.

오, 하느님! 한순간 동안이나마 지속되었던 지극한 행복이여! 인간의 일생이 그것이면 족하지 않겠는가?

(도선생님의 이런 감정을 묘사하는 문장은 자주 보지 못해서 그런지 더 와닿는다.) - P310

그러나 나의 영혼은 어떤 예감처럼, 어떤 것을 통찰한 듯 거칠고도 부드럽게 괴로워했다. 나의 놀란 가슴은 어떤 기대로 인해 가볍게 떨면서 무언가를 부끄럽고도 기쁘게 간파해 나갔다. 나의 가슴은 무엇인가에 관통당한 듯 갑자기 아프게 뛰기 시작했고, 눈물이, 그렇다, 달콤한 눈물이 나의 눈에서 쏟아졌다. 나는 손으로 얼굴을 가린 채 풀잎처럼 몸을 와들와들 떨며, 지금까지 내가 알지 못했던 그런 최초의 발견과 경험에 나의 마음을 아낌없이 헌납했다. 이 순간 나의 첫 유년 시대는 막을 내렸다.

(사랑에 대한 떨리는 경험과 성장을 너무 멋지게 표현했다) - P3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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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1-05-18 17: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도끼 선생의 자아 속에는 세상의 모든 인간 군상들로 가득 차 있는 것 같습니다. 특히 죄와벌을 읽다보면 어느날 작품속 인물들이 나한테 말걸고 있다는 착각이 들 정도로 ㅎㅎㅎ

새파랑 2021-05-18 17:09   좋아요 1 | URL
저는 죄와벌 읽으면서 ˝라스콜니코프˝에 빙의한 느낌을 받았었어요. 정신병 걸린 것 같은 기분^^
 

이제 책 읽기 시작 ㅜㅜ 안타깝다~~

하물며 늙은이도 이처럼 타락할진대, 젊은이야 어떠하리? - P36

흔히들 음악이 좋다고 말하는데, 그것은 음악적 감동이 모든 종류의 감정을 담아낸 수 있기 때문이다. 마음이 즐거운 이는 음악 속에서 기쁨을 찾고, 괴로운 이는 슬픔을 발견하기에...

(정확한 대답. 음악은 그런 기능이 있다.) - P37

언젠가 우리는 이러한 운명의 재난과 압박에 대해 철저히 애기할 것이다. 그런데 독자들도 알다시피 질투야말로 용서할 수 없는 열정이다. 더군다나 그것은 불행인 것이다.

(질투는 열정이고 불행이다.) - P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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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21-05-17 23:3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다시 도선생의 세계로... 인가요.
새파랑님, 좋은밤 되세요.^^

새파랑 2021-05-17 23:44   좋아요 2 | URL
다시 도선생님의 책을 펼쳤는데 시간이 ㅜㅜ
ㅋ 하루 마무리 잘하세요 ^^

scott 2021-05-18 00: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작품 영화도 있는데
영상이 흑백 ^ㅎ^

새파랑 2021-05-18 10:22   좋아요 1 | URL
아직 백야 까지 못읽었어요 ㅋ 근데 앞에 단편들 재미있네요 ^^
 

나에게 있어서 아주 소중한 사람이 소멸되었을때, 다른 사람이 아주 소중한  사람을 대체 하는게 가능할까?

이제 더이상 존재하지 않는 소중한 옛 사람의 그림자 때문에, 모든걸 버리고 나에게 손을 내민 새로운 사람을 배신한다면 나는 나쁜 사람일까?

줌파 라히리의 두번째 장편 소설인 <저지대>를 읽고 떠오른 두가지 질문이었다. 이 책의 키워드를 꼽아 보라면 나는 ‘상실과 극복‘이라 말하겠다.

이 작품은 켈커타에서 쌍둥이처럼 자란 두 형제인 ˝수바시˝, ˝우다얀˝, 그리고 그 둘의 부인인 ˝가우리˝의 인생이야기로, 소설의 배경은 인도의 켈커타에서 미국의 로드아일랜드 까지이며, 등장인물은 4대에 걸쳐 등장하는 대하소설급 작품이다. 총 8장에 540페이지로 되어있는데, 책의 양이나 구성 측면에너 너무 탄탄하여 읽다보면 감탄하게 된다.

현실적이고 이성적인 형 ˝수바시˝와 열정적이고 과격한 동생 ˝우다얀˝은 둘 다 머리가 좋고 서로가 서로를 소중히 여기는 형제이다. 당시 켈커타가 있는 뱅골지역은 분리운동과 좌익운동이 혼재되어 있는 복잡하고 위험한, 공권력이 강하게 힘을 발휘하는 지역이었다. 마치 우리나라라의 광복 후 또는 70년대 독재정권 시대를 연상하게 하는 사회 분위기른 보여준다.

하지만 서로 떨어져 살 수 없을 것 같던 두 형제는 성격 차이로 인해 형인 ˝수바시˝는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고, 동생인 ˝우다얀˝은 인도에 남아 평범한 선생님으로 살아가나, 은밀하게 혁명세력에 가담하여 자신의 정치적 신념을 달성하기 위해 노력한다. ˝우다얀˝은 그러면서 사랑하는 ˝가우리˝를 만나 결혼하게 되고, 그의 부모집에서 함께 살며 겉으로는 평범한 신혼 생활을 유지한다.

하지만 그는 결국 경찰에 쫓기게 되고, 경찰은 결국 그의 부모님 집까지 찾아오게 되며, 그는 급히 ‘저지대‘의 부레옥잠이 가득한 물속에 숨는다. 그 ‘저지대‘는 어린시절 두 형제가 지나다니던 추억의 장소이다. 결국 그는 경찰에 의해 발견되고, 부모님과 아내가 보는 앞에서 총살을 당한다. 이러한 장면을 목격한 그들은 큰 충격과 상실에 빠지게 된다.

동생의 사망 소식을 듣고 인도로 돌아온 형 ˝수바시˝는 충격을 받은 부모님을 보면서 그가 더이상 부모님에게 해줄 수 있는게 없다는걸 알게 된다. ˝수바시˝를 보면 죽은 동생이 생각나서 부모님은 그를 차갑게 대하고, 그는 오히려 남은 동생의 미망인인 ˝가우리˝를 걱정하게 된다. ˝가우리˝는 부모님 집에서 둘째아들을 죽인 원인이 된 것처럼 소외되어 살아가고 있었다.

˝가우리˝는 ˝우다얀˝이 죽기 전 임신을 하게되는데, ˝우다얀˝은 그 사실을 모른채 죽었다. 형인 ˝수바시˝는 그녀와 조카를 구제하기 위해 ˝가우리˝와 결혼을 하고 함께 미국으로 떠난다.  미국에서 그는 그녀의 사랑을 얻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지만 결국 그녀의 마음을 붙잡는데는 실패하고, 그녀의 딸이자 조카인 ˝벨라˝를 친딸로 받아들이고 ˝벨라˝에게 헌신하며 산다. 반면 ˝가우리˝는 인도 전통의상인 ‘사리‘를 벗어던지고, 머리를 짧게 자르며 과거를 버리고 현대의 여성으로 살아간다.

이후 이러한 엇갈린 삶속에서 그들 각자의 아픔을 간직한 인생과 이를 극복해가는 또는 적응해가는 이야기가 펼쳐진다.

이 책의 마지막 8장에는 ˝가우리˝가 첫번째 남편인 ˝우다얀˝이 총에 맞아 쓰러지는 마지막 장면을 회상하며, 그가 그녀를 기다렸던 영화관 앞에서의 행복했던 순간을 오버랩 하며 이야기가 끝나는데, 너무 아름답고 그림같은 이 장면 묘사는 이 책의 백미라 할 수 있다.

˝우다얀˝이 죽음으로써 주위사람들은 상실을 경험하고, 누구는 이를 극복하지만, 누구는 이에 매몰되어 외롭게 살아간다.

1.그의 부모님은 ˝우다얀˝을 지키지 못한 죄책감을 가지고 살아가고, 그와 너무 닮은 첫째 ˝수바시˝와 며느리인 ˝가우리˝를 밀어내며 쓸쓸한 인생을 살아간다.

2.˝수바시˝는 사랑하는 동생이 남긴 ˝가우리˝와 딸 ˝벨라˝를 자신이 보호하게 되고, 어떻해서든 ˝가우리˝의 사랑을 얻기 위해 최선을 다하지만 그녀의 마음을 얻지는 못한다.하지만 ˝벨라˝에 대한 헌신적인 사랑을 통해 결국 친딸이 아니라는걸 알게되었음에도 ˝벨라˝의 사링과 믿음을 얻게 되고, 그가 꿈꿔온 행복한 가족의 미래를 얻게 된다.

3.˝가우리˝는 ˝수바시˝와 재혼을 하게되지만  결코 그의 마음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하루하루를 학문의 힘으로 버티면 살아간다. 결국 상실을 극복하기 위한 방법으로, 그녀는 그녀의 모든 것을 버리고 떠나게 되며, 직업적으로 성공한 인생을 살지만 마지막에는 결국 과거를 회상하며 후회의 모습을 보이게 된다.

4.˝벨라˝는 어머니에게 사랑을 받지 못하고  버림받아 방황하며 살게 되지만, 결국 나중에는 진실을 알게 되며, 자신을 아껴주고 키워준 ˝수바시˝를 받아들이게 되지만, 자신을 버리고 이기적으로 떠난 ˝가우리˝는 결코 용서하지 않는다.

각자의 소중했던 사람의 상실에 대한 슬픔과 이를 극복하는 과정이 너무 절절하고 공감되게 그려져 있다. 책을 읽다보면 남겨진 ˝수바시˝의 마음도, 떠나간 ˝가우리˝의 마음도, 돌아온 ˝벨라˝의 마음도 그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상실을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이 어떻게 상실을 경험한 사람의 행동에 대해 맞다 틀리다 판단한 수 있겠는가.

위에서 언급한 내용보다 더 많은 이야기가 <저지대>의 책 속에 표현되어 있다.  특히 당시 인도ㅡ파키스탄의 분리운동과 같은 혼란스러운 상황과 뱅골지역의 혁명운동에 대한 이야기는 이러한 불행의 원인이 과연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해보게 한다.

줌파라히리의 <저지대>는 그녀의 2번째 장편소설이자 내가 읽은 2번째 작품인데, 이 책을 시작으로 그녀의 전집을 읽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지대>  이 작품에 🌟 9개를 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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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아 2021-05-16 22:06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새파랑님 🌟 이 9개라니 꼭 읽어야겠네요!! 암울한 시대 상황과 연결된 상처라니, 그럼에도 ‘아름답고 그림같은 묘사‘! 한 편의 영화같아요.^ㅇ^

새파랑 2021-05-16 22:21   좋아요 3 | URL
이 책 줄거리가 그렇게 단순하진 않은데 제가 너무 간단하게 쓴거 같아서 좀 찔립니다 ㅜㅜ 이 책은 미미님하고 잘 맞을거 같아요 ^^

페넬로페 2021-05-16 22:13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역시 편견은 나쁜건가봐요~~
줌파 라히리의 글은 장편보다 단편이 낫다는 평을 읽어 이 소설을 읽지 않았는데 새파랑님의 리뷰로 넘 읽고 싶어요~~
그들의 문화와 가족의 의미를 생각해 볼 수 있을것 같아요^^
별 9개.와우☆☆

새파랑 2021-05-16 22:23   좋아요 5 | URL
저는 <축복받은 집>보다 <저지대>가 더 좋았어요. 전 단편보다는 장편스타일? ㅋ 근데 벽돌책이어서 참고하셔야 합니다^^

바람돌이 2021-05-16 22:17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저도 별9개의 책에 곧 도전하겠습니다.

새파랑 2021-05-16 22:25   좋아요 3 | URL
이책 좋습니다~!! 전 우선 <등대로>를 읽어야 겠네요 ^^

mini74 2021-05-16 22:24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장편소설도 굉장한가봐요. 기대됩니다 *^^*

새파랑 2021-05-16 22:54   좋아요 3 | URL
저는 이런 복잡한 이야기를 납득이 가게 쓰는 작가가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게다가 뱅골지역에 대해서 찾아보게 만들고~지식 1 습득 ㅎㅎ

하나의책장 2021-05-16 23:1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당시 시대적 배경이 잘 뭍어나는 소설인가봐요. 새파랑님의 리뷰 읽고나니 꼭 읽어봐야겠단 생각이 드네요😊

새파랑 2021-05-16 23:33   좋아요 3 | URL
네~! 꼭 읽어보시고 좋으셨으면 좋겠습니다^^

bookholic 2021-05-16 23:5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이 책이 신간코너에 나왔을 때, 읽어야지 하고 생각만 하고 지나갔네요.. 엊그제인 것 같은데, 검색해보니 2014년이네요... 7년, 어디로 가버렸나요? 다시 리스트에 포함시켜야겠어요~~

새파랑 2021-05-17 00:06   좋아요 2 | URL
북홀릭님의 리스트에 포함시키게 하다니 기쁘네요^^ 저도 검색해봤어요 ㅋ 요즘 읽은 책들에 비해 그렇게 오래된 책은 아니네요. 나름 신간 ㅎㅎ

scott 2021-05-17 00:2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별 10개에서 9개!!💥
새파랑님에게 줌파는 ‘저지대‘가 👍

실화를 바탕으로 한 소설이라서 새파랑님 더더욱 몰입이 잘되신것 같습니다.
이작품 영화로 제작 될 줄 알았는데
소식이 없네요 ㅎㅎ

비오는 주말 새파랑님 ‘저지대‘에 완독 !!!

새파랑 2021-05-17 07:38   좋아요 2 | URL
정말 그런거 같아요. 왠지 실제 있었던 일인거 같은 느낌이었거든요. 정말 영화로 제작되어도 멋있을거 같아요^^

coolcat329 2021-05-17 06:1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오...글 잘 읽었습니다 ~보통 축복을 더 좋아하던데 새파랑님은 장편인 이 작품이 더 좋으셨군요. 기대됩니다.

새파랑 2021-05-17 07:42   좋아요 1 | URL
저는 단편보다는 장편을 좀 선호해서 그런거 일수도 있으니 참고 하세요^^

붕붕툐툐 2021-05-17 06:5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와~ 새파랑님 그새 다 읽으셨군요! 리뷰 읽고 싶은데, 뭔가 백지에서 시작하고 싶어서 앞만 조금 읽었어용~ 댓글보니 파랑님이 좋았다고 하셨나봐요? 저도 얼른 읽고 편안한 마음으로 리뷰 찬찬히 읽을게요!ㅎㅎ

새파랑 2021-05-17 07:47   좋아요 1 | URL
ㅋ 책 다 읽으시면 제 리뷰보고 지적 부탁드립니다~!!

행복한책읽기 2021-05-17 15:4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와. 읽었군요. 별 9개 대찬성이요!!!! 저는 사실 이 책 읽고 나니 줌파의 단편이 좀 시시하더라구요. ㅋ 다시 읽고픈 책 중 하나^^

새파랑 2021-05-17 16:42   좋아요 1 | URL
저랑 행복한책읽기님 취항이 비슷한거 같아요~! 어느정도 공감^^

프레이야 2021-05-22 17: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두껍지만 잘 읽히는 긴 서사를 담지요. 반갑습니다 새파란 님.
놀라운 장면들이 많지만 그중 가우리와 수바시 어머니와의 장면이 인상적이었어요. 벨라도 먼훗날 가우리의 삶과 마음을 이해해 볼 날이 올거라 생각됩니다. 가우리처럼 용감하고 똑똑한 여성인데다 사랑스럽기까지. 수바시의 깊고 넓은 사랑과 형제애도 울컥하지요. 줌파의 섬세하면서 단호하고 절제된 문장이 좋았어요.

새파랑 2021-05-22 18:03   좋아요 0 | URL
저도 이 책의 인물들 행동이 공감이 되고, 어떻게 보면 이기적인 모습도 다 그럴수 있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 이유가 작가의 문장표현 때문인거 같아요. 섬세하고 단호하고 절제된 문장이라는데 공감이 됩니다 ^^ 아직 그녀의 읽을 책이 많아서 행복하네요 ㅎㅎ
 

오늘 새벽에 다 읽고 밑줄 추가. 이 책 최고였다. 리뷰를 어떻게 쓸지 고민이된다. 완전 장편 대하소설~!!


마음속에 떠오른 우연의 일치에 그는 망연자실하고 어리둥절했다. 임신한 여자, 아빠없는 아이, 로드아일랜드 생활, 그가 필요한 상황...벨라의 엄마의 재연이었다. 오래전에 가우리가 그에게로 오게 된 상황의 또다른 형태였다.

(가우리는 떠났지만 벨라는 떠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 P422

마침내 그녀는 우다얀 애기를 했다. 자신은 서로 사랑한 사람에 의해 만들어졌고, 결코 사랑하지 않는 두 사람에 의해 길러졌다고 애기했다.

드루는 그녀의 손을 꼭 잡고 들었다. 나는 아무데도 안 갈거요, 그가 말했다.

(과거를 받아들이고 미래를 향해 가는 벨라~★★) - P478

이들 부부가 함께한 지난 몇년의 세월은 각자 따로 자라고 따로 살아온 삶에 대해 함께 공유한 결론이다. 남자가 그녀를 사십대에 만났으면 어땠을까 또는 이십대에 만났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은 쓸데없는 것이다. 그때라면 그녀와 결혼하지 않았을 테니까.

(나도 예전에 이런 생각을 한적이 있었다 ㅋ) - P523

벨라는 가는 곳마다 친구를 사귀고, 때가 되면 그곳을 떠난다. 떠나고 나면 그 사람들을 다시 보지 않는다. 연인을 만들거나 가정을 꾸리는 것을 벨라는 상상할 수없다. 그녀는 어느 정도 긴 시간 동안 지속적으로 연애를 해본 적이 없다.

(불쌍한 벨라~~) - P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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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아 2021-05-16 17: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 저도 이 책 괜히 표지부터 끌렸는데, 리뷰 너무 기대됩니당ㅋㅋ😄

새파랑 2021-05-16 18:41   좋아요 1 | URL
완전 강추 입니다~! 미미님이 리뷰 기대된다니 부담 ×100 이네요ㅜㅜ 이 책 내용이 많아서 다시 간단히 읽고 밤에 리뷰 쓸까 생각중입니다^^

저도 미미님 처럼 리뷰 잘 쓰고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