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호프는 단편도 잘쓰고, 희곡도 잘쓰네~! 멋진 단편을 읽는 기분으로 희곡을 읽었다. 너무 좋다. 안타까운 사랑과 인생의 이야기.






<바냐 아저씨>
나는 앉아 눈을 감고는, 이렇게 말이야, 생각하지. 백 년, 2백 년 후에 사는 사람들, 우리가 이렇게 그들을 위해 길을 냈는데, 그들이 우리를 좋게 기억해 줄까? 유모, 아마 그렇지는 않을 거야.

사람들이 기억하지 않더라도 신께서는 기억하실 겁니다.

(누군가는 기억해 줄 것이다...) - P151

과거는 하찮은 일에 바보같이 닳아 버렸다. 현재도 무섭도록 허망하다. 바로 이게 나의 삶이고 나의 사랑입니다. 그걸 어디로 치우고 어떻게 해야 한단 말입니까? 내 감정은 구멍으로 기어든, 햇빛처럼 헛되이 사라집니다. 나 자신도 사라집니다.

(바나 아저씨가 느끼는 심정.) - P171

<벚꽃동산>
나는 내 돈 뿐만 아니라 남의 돈도 다루기 때문에 늘 주위에서 많은 사람들을 보고 삽니다. 그런데 일을 좀 해보면 정직하고 제대로 된 사람이 별로 없다는 것을 금방 알 수 있습니다. 이따금 잠이 오지 않으면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하느님, 당신은 우리에게 거대한 숲과 끝없는 벌판과 지평선을 주셨나이다. 그러니 이런 곳에서 살기 위해서는 우리들도 실제에 맞게 거인이 되어야 할 겁니다.

(러시아적인 스케일의 생각이 필요하다. 큰땅, 큰사람.) - P263

류보비 안드레예브나 :
진실이랴뇨? 당신은 진실이 어디에 있고 거짓이 어디에 있는지 알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마치 시력을 잃은 듯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요. 당신은 힘든 문제들을 모두 대담하게 해결하지만, 그건 당신이 젊고 또 자신의 문제로 고난을 겪어 보지 않았기 때문 아닌가요? 당신은 용감하게 미래를 바라보지만, 그건 당신이 젊고 또 자신의 문제로 고난을 겪어 보지 않았기 때문 아닌가요? 당신은 용감하게 미래를 바라보지만, 그건 현실이 당신의 젊은 눈에 가려서 무서운 것이 보이지 않고 예상되지도 않기 때문 아닌가요? - P276

알다시피 나는 여기서 태어났어요. 여기서 나의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할아버지께서 사셨죠. 이 집을 사랑합니다. 벚꽃동산이 없는 생활은 상상도 할 수 없어요. 그러니 꼭 팔아야 한다면, 이 동산과 함께 나를 팔아요.

(과거 때문에 현재를 인식하지 못하는 것은 잘못일까?) - P277

아냐 : 벚꽃 동산은 팔렸어요, 이제는 없어요. 이것은 사실, 사실리에요.그렇지만 울지 마세요, 엄마. 엄마에게는 생활이 남아 있어요. 그리고 훌륭하고 순수한 영혼이 있잖아요...함께 이곳을 떠나요, 떠나요...이곳보다 더 화려한 새 동산을 만들어요. 새로운 동산을 보시면, 기쁨이, 깊고 편안한 기쁨이 엄마의 영혼에 깃들 거에요, 마치 석양의 태양처럼 미소짓게 될 거에요. 엄마! 우리 떠나요,

(뿔뿔이 흩어져 버린 그들 가족은 새로운 동산을 찾을 수 있을까?) - P288

<갈매기>
뜨레쁠례프 : 나는 외롭습니다.아무도 따뜻하게 감싸 주지 않지요. 땅 속데 갇혀 있는 듯 춥습니다. 그래도 무엇을 써도 온통 건조하고 냉담하고 우울합니다. 여기에 남아 줘요. 니나, 부탁합니다. 아니면 나와 함께 떠나요. - P142

뜨레쁠례프 : (슬프게) 당신은 당신의 길을 찾으셨군요.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알고 있군요. 하지만 나는 공상과 환상의 혼돈 속을 헤매고 있습니다. 도대체 왜, 누구에게 필요한지도 모릅니다. 나에게는 신념도 없습니다. 소명이 무엇인지도 모릅니다. - P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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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1-07-16 16: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벚꽃 동산>에는 진짜 명문장이 있습니다.

˝인생은 아주 천박해. 원수라 해도 이런 인생을 권하고 싶지 않아.˝ (33쪽)



새파랑 2021-07-16 16:26   좋아요 0 | URL
이책 완전 좋아요 😭 이 문장도 찾아봐야 할거 같아요. 책은 새벽에 다 읽었어요 😊

scott 2021-07-16 22: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낼 새파랑님
벚꽃 동산
리뷰 쓰신다에 한표 던짐 🤚🤚🤚🤚🤚

새파랑 2021-07-17 08:24   좋아요 1 | URL
리뷰는 어제 다 썼는데 불금이어서 퇴근 후에 책도 못읽고 북플도 못했어요 ㅜㅜ
스콧님 예측대로 오늘 리뷰 올림 😊 미래 예측 AI 스콧님~

희선 2021-07-17 03: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단편뿐 아니라 희곡도 마음에 드셨군요 희곡 여러 편 보셔서 즐거웠을 것 같네요 체호프 희곡은 짧은 것도 있더군요 그런 것도 무대에서 할 수 있을지... 짧은 거 여러 편 하면 될지...


희선

새파랑 2021-07-17 08:25   좋아요 2 | URL
ㅋ 정말 짧은 희곡 한편만 무대에서 하기에는 힘들거 같아요. 희선님 완전 예리하심👍
 

체호프가 쓴 희곡은 또 이렇게 매력이 있구나. <갈매기>는 너무 좋았다. 뜨레쁠례프의 정신적 고통이 절절히 느껴졌다.


<기념일>

쉬뿌친 : 꾸지마 니꼴라이치, 당신은 정말 알 수 없는 사람이오. 훌륭하고 멋진 사람이면서, 여자들한테는 뱃사람처럼 거칠게 구니 말이오. 정말 그렇소, 여자들을 왜 그렇게 미워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소

히린 : 저도 당신이 왜 그렇게 여자들을 좋아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 P46

히린 : 부인 어께 위에 있는 것은 머리입니까, 아닙니까?

메르추뜨끼나 : 나는 내 권리만을 바라는 겁니다. 남의 것을 원하는 게 아니지 않습니까?

히란 : 부인, 어깨 위에 있는 것이 머리인지 아닌지 묻지 않았습니까? 더이상 부인하고 실랑이할 시간이 없습니다. 안녕히 가십시오.

메르추뜨끼나 : 그려면 돈은?

히린 : 한마디로 부인 어깨 위에 있는 것은 머리가 아니라 바로 이것이로군요.

(정말 희극이다. ㅎㅎ) - P57

<갈매기>

니나 : 당신의 어머니는 괜찮아요, 두렵지 않지요. 하지만 뜨리고린 씨는...그분 앞에서 연기한다는 게 두렵고 부끄러워요...유명한 작가라서...젊으신가요?

뜨레쁠례프 : 그렇습니다.

니나 : 그분의 단편들은 정말 놀라워.

뜨레쁠레프 : (차갑게) 모릅니다. 읽지 않아서.

니나 : 당신의 희곡은 연기하기 힘들어요. 살아있는 인물이 없거든요.

뜨레블례프 : 살아있는 인물! 현실을 그대로 그려도 안되고 어떻게 돼야 한다고 묘사해도 안 됩니다. 현실을 꿈속에서 보듯 그렇게 그려야 합니다.

니나 : 당신의 희곡에는 움직임이 적어요. 낭독 같지요. 내 상각으로는 희곡에는 반드시 사랑이 담겨야 하는데...

(이러한 두 사람의 초반에 나눈 대화가 결국 결말로 이어진다.) - P73

무엇부터 시작할까요? 예를들어, 사람이 밤낮으로 달 하나만을 생각한다면 강박 관념이 새입니다. 나에게는 그런 나만의 달이 있지요. 써야 한다, 써야 한다, 써야 한다 하는 하나의 생각이 밤낮으로 잠시도 내 머리에서 떠나지 않습니다...한 작품을 끝내자마자 곧바로 다음 작품을 써야 합니다. 그리고 또 다음, 이렇게 말립니다...역마차를 갈아타듯 끊임없이 글을 씁니다. 다른 일은 생각조차 못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멋지고 화려한 것이 무엇인지 당신에게 묻고 싶군요.

(작가로써 글을 쓴다는 것의 어려움) - P100

대중들은 책을 읽으면서 <그래, 재미있고 재주도 있어...재미있기는 하지만 똘스또이에 비하면 아직 멀었어> 아니면 <괜찮은 작품이야, 하지만 뚜르게네프의 아버지와 아들이 훨씬 낫지> 합니다. 관 두껑을 덮을 때까지 계속 재미있고 재주도 있어야만 합니다. 그 이상은 없죠. 그리고 죽고 나면, 아는 사람들이 무덤 옆을 지나면서 이렇게 말할 겁니다. <여기에 뜨리고린이 누워 있지. 괜찮은 작가였지만, 뚜르게네프보다는 못했지> - P102

이따금 사람들은 걸으면서 잠잡니다. 바로 그것처럼 지금 나는 당신과 이야기하면서도, 잠자며 그 여자 꿈을 꾸는 것 같습니다. 달콤하고 신비로운 꿈이 나를 사로잡았습니다...나를 그냥 놔두십시오... - P117

(갈매기를 보며) 기억나지 않는군요! 기억나지 않습니다!

그리고 무대 오른편에서 총소리가 들린다. 모두 놀란다. - P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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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아 2021-07-15 09:3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희곡에서 희곡 얘기를 하다니 이런거 너무 좋아요! 틀을 깨는 거ㅋㅋㅋㅋ머리 위에 뭐가 있다는건지 궁금하네요. 그래도 꾹참고 저는 일단 다른 체호프 부터ㅋㅋ(๑✧◡✧๑)V

새파랑 2021-07-15 09:40   좋아요 2 | URL
미미님 체호프의 다른 책을 집에서 찾지 못하시면 이번달에 책 사시는거겠죠? 😉

청아 2021-07-15 09:42   좋아요 2 | URL
어제 못찾을거라고 장담하시길래 찾고야 말았어요ㅋㅋ다 뒤졌는데 아주 가까운 곳에 있더라구요😭

새파랑 2021-07-15 20:45   좋아요 2 | URL
앗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결과네요 😐 과연 7월에 책을 살건지 안살건지 흥미진진 하네요~!

scott 2021-07-16 00:58   좋아요 2 | URL
미미님 7월!
리뷰만 올리신다에 한표 ✋🤚✋🤚✋🤚✋🤚

새파랑 2021-07-16 06:39   좋아요 2 | URL
이제 더 이상 미미님께 책을 사실거라는 말을 하면 안될거 같아요. 너무 의지가 강하셔서... 그냥 몰래 사는지 안사는지 관찰만 해야겠어요 😏

청아 2021-07-16 09:23   좋아요 2 | URL
🙆‍♀️🙆‍♀️🙆‍♀️🙆‍♀️🙆‍♀️

서니데이 2021-07-15 20:3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희곡의 인물들 이름이 된소리가 많아서, 창비에서 나온 번역서 같은 느낌이예요.
열린책들도 러시아어를 그렇게 표시하는 군요.
새파랑님, 오늘도 더운 하루 잘 보내고 계신가요.
시원하고 좋은 저녁시간 되세요.^^

새파랑 2021-07-15 20:46   좋아요 3 | URL
러시아 사람이름은 너무 어려운 거 같아요 ㅜㅜ 넵 에어컨 빵빵 켜고 좋은 저녁 보내세요~!!

scott 2021-07-16 01:0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체호프
.역마차를 갈아타듯 끊임없이 글을 쓰다
그리 일찍 세상을 떠났네요 ㅠ.ㅠ


새파랑 2021-07-16 06:40   좋아요 2 | URL
그러게요. 너무 일찍 떠났더라구요 ㅜㅜ 완전 매력적인 체호프 아저씨 😢

독서괭 2021-07-16 15: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거침없이 나아가는 희곡 순례!

새파랑 2021-07-16 15:54   좋아요 1 | URL
이번주는 2편 읽었어요 ㅋ 1편만 읽었어야 하는데 😐 불금에는 뭘 읽어야 하나 행복한 고민중입니다 😊

잠자냥 2021-07-16 16:00   좋아요 1 | URL
아아니, 불금에 술 마실 궁리가 아니라, 뭘 읽을까 고민하는 이 채콴자 0_o

독서괭 2021-07-16 16:02   좋아요 1 | URL
서로를 채콴자라 부르는 이 채콴자님들..

새파랑 2021-07-16 16:06   좋아요 1 | URL
전 아직 잠자냥님 수준의 채콴자는 아닌데요 😐 이번주에 많이 마셔서 오늘은 자제하려구요 ^^ 근데 장담은 못함....

희선 2021-07-17 03: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몇해 전에 체호프 희곡 <갈매기> 영화로 만들었더군요 갈매기가 좋으셨다니... 영화는 어땠을지...


희선

새파랑 2021-07-17 08:28   좋아요 1 | URL
<갈매기>가 영화도 있나보네요. 완전 재미있을거 같아요. 찾아봐야 겠어요. 희선님도 모르시는게 없는듯 합니다. 😊
 

체호프 연속 읽기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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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21-07-14 22: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국내에 번역된 체호프의 단편소설이 워낙 많고, 그중에 정말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어서 희곡에 눈길이 잘 가지 않아요. <벚꽃 동산> 아주 오래전에 읽었는데, 줄거리가 1도 기억나지 않아요.. ㅎㅎㅎ

새파랑 2021-07-14 22:19   좋아요 1 | URL
저는 채호프 희곡 첨보는데 초반은 다 희곡이네요 ^^ 사이러스님이야 워낙 오랫동안 책을 읽으셔서 기억이 안나실거 같기도 합니다 😊

서니데이 2021-07-14 23:2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요. 전에 읽었는지 기억이 하나도 안나고, 제목만.^^;
희곡은 소설과는 서술이 달라서 조금 덜 읽게 되는 것 같아요.
새파랑님, 더운 하루, 시원하고 좋은 밤 되세요.^^

새파랑 2021-07-15 07:02   좋아요 1 | URL
오늘은 새벽독서로 전향했어요 ^^ 그래도 더워서 에어컨을 안틀수가 없네요

scott 2021-07-15 00: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안톤 체호프의 희곡에는 특유의 정서가 배어 있습니다.

때론 슬프고

때론 희망에 차있고

때론 시끌벅적하고

때론 적막한
정서가 각각의 인물들이 주고 받는 대사에 깊이 박혀 있죠

체호프가 남긴 여러편의 희곡 중에 ‘벚꽃 동산‘은 삶 전체를 포괄하는 작품 !




새파랑 2021-07-15 07:03   좋아요 1 | URL
역시 스콧님~! 이제 마지막에 있는 벚꽃동산 읽을 차례에요 ^^ 완전 기대되네요. 앞에 있는 희곡들도 너무 좋아요 😊
 
지루한 이야기 창비세계문학 53
안톤 파블로비치 체호프 지음, 석영중 옮김 / 창비 / 2016년 1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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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정점에 올라간 사람이 이제 내려올 일만 남았을때, 인생의 끝이 점점 보이기 시작할때, 어떤 기분이 들까?

단편의 황제인 체호프의 단편집 <지루한 이야기>를 읽고 나서 든 생각이다. 지금까지 체호프의 작품은 민음사에서 나온 <체호프 단편선> 딱 1권 읽어 보았는데 정말 좋았었다. 다른 작품을 읽어봐야지 계속 생각했는데, 주말에 우연히 서점에서 이 책을 발견했고 수록된 세작품을 살펴보니 모두 읽어보지는 않아서 바로 구매했다. 이게 바로 책과의 운명적인 만남인가 했다.

이 책에는 <지루한 이야기>, <검은 옷의 수도사>, <개를 데리고 다니는 여인> 세 작품이 수록되어 있는데, 모두 특색있고 너무 좋았다. 왜 체호프, 체호프 하는지 완전 공감이 갔다.


<지루한 이야기>

의과대학 교수인 "니꼴라이"는 직업적인 면에서 모든 걸 성취한 사람이다. 그리고  아름다운 아내와 사랑스러운 딸도 있다. 하지만 이 남자 삶에 있어서 불행해 보이고 모든것에 불만이 많아 보이며 어딘가 불안해 보인다. 왜?

사랑스러운 가족은 그의 명성보다는 경제적인 것에 불만을 가지고 있고  이제는 그를 감정적으로 소외 시킨다. 게다가 그 역시 가족에게 실망을 느끼고 가족으로터 소외받는 길을 택한다. 또한 사람들과의 만남에 짜증을 느끼며, 만사에 무관심을 느끼게 된다. 왜?

[전반적으로 내 영혼 속에 무언가 견딜 수 없는 게 있다는 느낌이 든다. 더이상 램프도 책들도 마룻바닥 위의 그림자도 거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도 참을 수가 없다. 보이지 않고 이해할 수 없는 어떤 힘이 나를 거칠게 아파트에서 끌어낸다.] 57페이지


그 이유는, 인생의 정점에 있었던 "니꼴라이"는 이제 내려올 일만 남은 인생이 되었고, 그저 삶의 피날레만을 망치지 않기 위해 기다려야만 하였으며, 게다가 자신의 건강상태를 봤을 때 남아있는 날들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결국 그는 인생의 모든 걸 이루었지만, 60여년의 삶을 돌이켜보면서 자신의 인생을 실패한 것으로 간주한다. 인생에 대한 답을  얻지 못한 채.

<지루한 이야기>는 이런 상황에 처한 1인칭 주인공 "니꼴라이"의 삶의 결말 부분을 담담하게 그리고 있다.  이제 지루함만 느껴야 하는 인생이 되었기에 단편의 제목이 '지루한 이야기' 인 것 같다. 책의 내용은 결코 지루하지는 않다. 다만 인생의 피날레를 기다리는 인생이 지루할 뿐이다.

지나간 아름다운 추억조차 지루하게 느껴지는 순간이 오면 어떤 기분이 들까? 나도 나중에는 저런 생각을 하게 되는 걸까? 삶의 피날레 순간이 다가오면 인생에 대한 답을 얻을수 있을까? 정답은 없다고 생각한다. 그저 살아 나가야 할 뿐. 인생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게 하는 무거운 작품.




<검은 옷의 수도사>

혹시 살면서 헛것을 본 적이 있나요? 이 단편은 주인공인 박사 "꼬브린"이 신경쇠약에 걸리게 되고, 이 때문에 '검은 옷의 수도사'를 보게 되는 정신질환을 갖게 되고, 결국 비참힌 결말을 맞는 이야기이다.

그는 자신의 후견인의 딸인 "따냐"에게 연정을 느끼게 되고 그녀와 결혼한다. 하지만 어느 순간 예전에 우연히 들었던 것 같은 전설인 '검은 수도사'에 대한 이야기를 "따냐"에게 갑자기 이야기 하게 되고, 이후 이상하게도 그의 눈앞에 '검은 수도사'가 계속 나타나며 그는 '검은 수도사'를 전설이 아닌 사실로 믿게 된다. 그리고 '검은 수도사'는 어느 순간 그의 정신을 지배하게 된다. 그리고 모든 것을 환멸하게 된다.

[그는 지극히 평범하고 하찮은 행복의 댓가로 삶이라는 것이 인간에게 얼마나 많은 것을 요구하는지를 생각했다.] 163페이지


그의 정신질환은 점점 심해지게 되고, 점점 예민해지고 과격해지게 되며 자신을 환자 취급하는 장인어른과 "따냐"에 대해 적대적인 감정을 점점 키워가게 된다. 결국 그의 가정은 파탄이 나고 "따냐"는 그를 증오하게 되며, 그 역시 비극적인 최후를 맞는다.

갑작스럽게 환영이 등장하고 이야기가 급박하게 전개되며 왜 그가 갑자기 정신질환을 갖게 되었는지에 대한 설명이  구체적으로 언급되지는 않지만,

망상에 빠진 사람의 사랑에 대한 감정이 증오의 감정으로 바뀌게 되는 묘사와 정신질환에 따른 불행한 인새의 표현이 대단히 인상적이었다. 그는 왜 미쳐야만 했던걸까?




<개를 데리고 다니는 부인>

내가 생각하는 가장 체호프 적인 작품으로, 진정한 사랑의 감정이란 어떤건지, 왜 어떤 감정은 그렇게 쉽게 변하면서 어떤 감정은 시간이 갈수록 점점 강해지는 지에 대한 답을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가정이 있음에도 바람기가 가득한 남자 "구로프"는 러시아의 휴양지인 '얄따'에서 '개를 데리고 다니는 여인'은 "안나"를 우연히 만나게 된다. 첫 만남에서 그녀에게 호감을 느낀 그는 그녀에게 의도적으로 접근한다. 애정없는 결혼생활을 하고 있던 "안나"는 잠시 기분전환을 위해 휴양지인 "얄따"에 방문한 것이었고, 이곳에서 근 역시 "구로프"의 접근을 거부하지 않았으며, 둘은 그렇게 연인이 되었다.하지만 휴양지에서의 밀애는 오래 가지 못하고 그들의 만남은 한여름밤의 꿈처럼 한달만에 끝난다.

그러나 "구로프"가 지금까지 만난 여인들과 다르게 순수함을 가지고 있던 "안나"는 그에게 특별한 의미를 주었고, 이러한 이유로 "구로프"는 기존에 만났던 여인들과는 다르게 그녀에게 특별한 감정을 가지게 되었으며 어디에 있든 무엇을 보든 "안나"를 떠올리는 상태까지 이르렀다.

[안나는 꿈에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그림자처럼 어디든 그를 쫓아다녔다. 눈을 감으면 그녀가 살아 숨쉬는 듯 보였는데, 그 모습은 실제의 그녀보다 더 아름답고 더 젊고 더 다정했다.
그녀는 저녁마다 책장에서, 벽난로에서, 방구석에서 그를 바라보았고, 그는 그녀의 숨소리와 옷자락이 부드럽게 사각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거리에서는 여자들을 눈길로 뒤쫓으며 혹시라도 그녀와 닮은 여인이 있나 두리번거렸다.] 185페이지


결국 그는 그녀가 살고 있는 도시로 무작정 찾아가서 그녀를 만나게 된다. 그런데 그녀 역시 애정없는 결혼생활에 계속 지쳐 있었고, 그녀를 찾아온 "구로프"와 다시 한번 사랑에 빠지게 된다.

둘의 사랑은 어떻게 될까? 그 결말은 알 수 없지만 그 둘의 사랑은 금방 끝나지는 않겠지만 위험하고 어려운 사랑을 지속하게 될 것이라는 것을 암시하며 이야기는 끝난다.

[그는 조금만 더 견디면 해결책이 나올 것이고 그렇게 되면 새롭고 아름다운 삶이 시작될 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두 사람 모두 분명하게 깨달았다. 종착지까지는 아직도 멀었으며 가장 어렵고 복잡한 일은 이제 방금 막 시작되었을 뿐이라는 것을.] 198페이지


단순하게 보면 불륜이야기지만 체호프는 어떻게 그와 그녀의 감정이 어떻게 변하는지를 너무 공감이 되게 아름다운 문장으로 표현하고 있다. 그래서 두번 읽었다.



세 단편 모두 나에게는 감탄을 주는 작품이었다. 어떤 작품은 인생의 덧없음에 대해, 어떤 작품은 자기애에 대한 과도한 망상에 대해, 어떤 작품은 과도한 감정에 휩쓸린 사랑에 대해 생각하게 해주었다.

<지루한 이야기> 단편집은 읽는 재미가 있으면서도 동시에 무언가를 생각할 수 있게 해주는 작품이었다. 제목만 지루한 이야기지 전혀 지루하지 않은 이야기들. 체호프의 단편은 많은 감정을 들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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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i74 2021-07-14 19:39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도선생님에서 체선생님으로 가시는 겁니까 ㅎㅎ 사랑이 움직이다니요!!! ㅎㅎㅎ 저도 살포시 찜 !

새파랑 2021-07-14 20:06   좋아요 5 | URL
하루키랑 도선생님은 고정픽입니다 😊

레삭매냐 2021-07-14 19:31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우리 친구 브랜던이도 체홉은
아주 인정하는가 봅니다.

개데부도 한 번 읽어 보고
싶은데, 읽어야 할 책들이
사방에서 쌔리 보고 있어서리...

새파랑 2021-07-14 20:07   좋아요 6 | URL
여기 있는 작품 다 좋더라구요. 저도 오랫동안 쌔리보는 애들이 아직 많은데 최근에 산 체호프 희곡 읽고 있어요 😐

coolcat329 2021-07-14 19:44   좋아요 7 | 댓글달기 | URL
아 읽어야 할 책이 ㅠㅜ 다행히 돈은 안 나가네요. 있거든요. 😅😅

새파랑 2021-07-14 20:09   좋아요 6 | URL
언제나 읽어야할 책이 넘쳐 나는게 문제인거 같아요. 근데 행복한 고민인듯 합니다😊

청아 2021-07-14 19:48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오~제목 재밌어요!ㅋㅋㅋㅋ‘지루한 이야기‘ 줄거리가 김영하 팟케스트에서 들은 체호프의 ‘공포‘를 떠올리게 하네요. 체호프 단편집이 어딘가 있었는데 읽어봐야겠습니당. ㅡ책/작가와도 인연과 운명이 있다고 믿는 미미🤭

새파랑 2021-07-14 20:13   좋아요 5 | URL
팟케스트에 공포랑 입맞춤이 있더라구요 ^^ 공포는 민음사에서 나온 체호프 단편선에도 있어요. 곧 운명처럼 선택하시길 바라겠습니다 😄 근데 미미님 하도 책이 많이 쌓여있어서 못찾으실거 같음...

반유행열반인 2021-07-14 20:52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책 제목 진짜 겸손해요. 진짜진짜 재밌는- 따위 제목 붙이는 현대 작가들과 출판사들은 반성하라 ㅋㅋㅋ

새파랑 2021-07-14 20:58   좋아요 5 | URL
열반인님 댓글보고 ‘재미있는‘으로 상품검색해 봤어요 ^^ 생각해보니 책제목을 <지루한 이야기>단편 제목으로 선정한 청비는 대단한거 같아요 😊

붕붕툐툐 2021-07-14 20:52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러시아 작가 전문가 새파랑님, 이번엔 체호프군요~ 저도 대학 때 체호프 책을 꽤 읽었었는데 그래서 <개를 데리고 다니는 부인> 제목 너무 친숙한데, 내용을 읽어봐도 생각이 나질 않네요. 이럼 안 읽은 거겠죠?ㅎㅎㅎㅎ
새파랑님의 러시아 작가 질주 응원합니다!!ㅎㅎ

새파랑 2021-07-14 21:00   좋아요 6 | URL
희곡 전문가 툐툐님이 저에게 러시아 작가 전문가라 해주시니 영광이네요😄 역시 대학때부터 탁윌한 독서가셨군요~!!

scott 2021-07-14 20:55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삶의 피날레 순간이 다가오면 인생에 대한 답을 얻을수 있을까? ]
오늘의 밑줄 쫘악!✍
이책은 제목과 커버 색깔때문에 읽고 싶은 욕망을 가라앉게 만듭니다.
그럼에도 새파랑님의 리뷰는 항시 러시아 문학💥납니다.

새파랑 2021-07-14 21:02   좋아요 6 | URL
이 책의 색깔은 좀 그렇지만 창비 문학 시리즈 매력있는거 같아요 😊 역시 문학은 러시아! 천연자윈도 러시아! 보드카도 러시아!

페넬로페 2021-07-14 22:09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그 유명한 체선생님을 아직 만나보지 못한 부끄러운 사람이 여기에 있습니다. 이 단편들 넘 좋을것 같아요^^이 무궁무진한 러시아작가들을 어이할까요~~어서 만나야할텐데 ㅠㅠ
새파랑님은 이렇게 잘 읽으시니 책을 마구마구 사셔도 됩니다^^팍팝👍👍

새파랑 2021-07-14 22:23   좋아요 4 | URL
저도 이제 두권째 인걸요 ^^ 저는 이책도 좋은데 민음사에서 나온 <체호프 단편선>을 먼저 읽기를 추천드립니다 ^^ 저도 이번달은 이제 책 구매 참는중 😔

희선 2021-07-14 23:54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책과 단편 제목인 지루한 이야기와 다르게 지루하지 않은 이야기였군요 나이를 먹고 자기 삶을 돌아봤을 때 좋은 게 더 많으면 좋을 텐데, 지루한 이야기에 나온 사람은 그런 게 없었군요 남은 삶이 지루하다니... <개를 데리고 다니는 부인>은 제목은 많이 들어봤습니다 이 소설은 어디에나 들어있을지도 모를 일이네요 두 사람이 그걸로 끝나지 않는군요 여기에는 나오지 않았지만 두 사람 앞으로 조금 힘들겠습니다 그런 일 잘 넘어갈지...


희선

새파랑 2021-07-15 07:06   좋아요 6 | URL
전혀 지루하지 않은 이야기 들이었어요 ^^ 개를 데리고 다니는 부인은 표제작인 책이 몇 권 있더라구요. 완전 여운이 남는 작품들이라 대만족 했습니다 😊

초딩 2021-07-15 09:09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잘 한 이야기
검은 옷의 수도사
개를 데리고 다니는 부인
모두 여운이 오래 남는 것 같아요

말씀하신 것처럼 어렵다는 단편인데
전혀 단퍈 같지 않았어요
카프카처럼 단절로 맺음하지도 않고요 ㅎㅎㅎ

새파랑 2021-07-15 09:21   좋아요 5 | URL
이 책읽으니 체호프 다른 단편도 다 읽고싶은 생각이 들더라구요~! 완전 좋았습니다 ^^

하나의책장 2021-07-16 01:1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지루한 이야기는 우리 주변에 있을 법한 이야기라 더 와닿는 것 같아요! 짤막하게 들려주신 단편들 다 읽어보니 바로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마구마구 들어요😍

새파랑 2021-07-16 06:37   좋아요 2 | URL
정말 좋았어요~!! 책 많이 읽으시는 하나님도 좋아하실거 같아요 😊 교훈보다는 뭔가를 생각하게 하는 작품집입니다~!!

scott 2021-08-06 15:3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새파랑님 이달의 당선작 추카~*

새파랑 2021-08-06 15:58   좋아요 2 | URL
앗 결과가 나왔군요. 역시 스콧님 엄청 빠르네요. 완전 감사합니다 ~!!

독서괭 2021-08-06 15:31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엇 읽은 것 같은데 좋아요를 안 눌렀었나봐요. 좋아요 누르고, 당선 축하드립니다^^

새파랑 2021-08-06 16:00   좋아요 2 | URL
감사합니다. 이 책이 당선작이라니 좋네요. 역시 책이 좋으니 된거 같아요 😊

mini74 2021-08-06 15:4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새파랑님 축하드려요 *^^*

새파랑 2021-08-06 16:01   좋아요 2 | URL
감사합니다~!!. 전 리뷰 많이 썼더고 주는듯 🙄

청아 2021-08-06 15:5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오오 새파랑님 2관왕 축하드려요!!!(엄지척)ㅎㅎ♥

새파랑 2021-08-06 16:04   좋아요 2 | URL
아 ㅋ 2관왕은 아닌거 같은데 ㅎㅎ 항상 끌어주는 미미님 감사합니다 😊

잠자냥 2021-08-06 15:5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새파랑님 저 적립금 빨리 주세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농담입니다)

새파랑 2021-08-06 16:12   좋아요 3 | URL
앗! 이래서 적립금은 함부로 걸면 안되는군요 🙄

알라딘은 적립금 이전이 가능하게 해달라!
(다소 소극적...)

그레이스 2021-08-06 16:5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축하드려요~♡

새파랑 2021-08-06 17:02   좋아요 3 | URL
감사합니다. 8월의 즐거운 선물이네요 😊

물감 2021-08-06 17:11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새파랑님, 당선 축하요 ㅎㅎ

새파랑 2021-08-07 09:07   좋아요 1 | URL
물감님 감사합니다~!! 이 책 너무 좋았어요 😊

페넬로페 2021-08-06 17:45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매번 읽고 싶은 책을 산더미같이 알려주시는 새파랑님의 당선은 당연하다고 생각해요.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려요**

새파랑 2021-08-07 09:08   좋아요 1 | URL
저는 북플 보고 매번 읽고 싶은 책이 산더미처럼 쌓이네요 ㅎㅎ 감사합니다. 페넬로페님 ^^

초딩 2021-08-06 17:57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새파랑님 이달의 당선 축하드립니다!

새파랑 2021-08-07 09:08   좋아요 1 | URL
멋진 초딩님 감사합니다~!!

서니데이 2021-08-06 18:5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새파랑 2021-08-07 09:09   좋아요 1 | URL
화사한 서니데이님 감사합니다~!!

희선 2021-08-07 00:2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새파랑 님 축하합니다 댓글을 쓰면서 좋아요를 안 눌렀다니... 지금 눌렀습니다 일부러 안 누른 거 아니고 잊어버린 거예요 가끔 그럴 때가 있네요 재미있게 읽고 쓰신 거여서 기쁘겠습니다 다른 책도 마찬가지겠지만...


희선

새파랑 2021-08-07 09:11   좋아요 3 | URL
전 재미있어도, 없어도 리뷰를 쓰는거 같아요. ㅎㅎ 재미있게 읽고 쓴 리뷰여서 더 뿌듯하네요. 희선님 감사합니다 😆

bookholic 2021-08-07 06:2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새파랑 님, 이달의 당선작 축하합니다....
이번 주말도 도선생님과 함께 하시나요?^^

새파랑 2021-08-07 09:12   좋아요 3 | URL
북홀릭님 언제나 감사합니다. 이번주말은 도선생님은 잠깐 내려놓으려구요 ^^

하나의책장 2021-08-14 02:3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역시 새파랑님!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려요^^

새파랑 2021-08-14 07:41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 역시 라고 해주셔서 부끄럽네요 ㅎㅎ
 

역시 체호프의 단편은 대단하다. 감성적인 글과 여운있는 결말은 독자로 하여금 다양한 감정을 가지게 한다. 너무 좋은 책~!!








그는 지극히 평범하고 하찮은 행복의 댓가로 삶이라는 것이 인간에게 얼마나 많은 것을 요구하는지를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하면 인생에 남는건 무엇일까?)
- P163

발코니 아래에서 세레나데를 연주하는 소리가 들려왔고, 검은 옷의 수도사가 그에게 소곤소곤 알려주었다. 그는 천재이며 허약한 육신이 균형을 상실해서 더이상 천재를 위한 껍질이 되어줄 수 없기에, 오로지 그 이유 하나 때문에 죽어가고 있다고.
- P165

<개를 데리고 다니는 부인>

요컨데 여성과의 모든 교제는 처음에는 인생을 다채롭고 유쾌하게 해주는 일종의 가볍고 신나는 모험이 될 수 있지만 신사들, 특히 굼뜨고 우유부단한 모스끄바 신사들에게는 예외 없이 극도로 복잡한 문제를 야기하고 결국에 가서는 고통스러운 상황으로 이어진다는 사실을 깨달았던 것이다.

그러나 흥미로운 여성과 새로 만날 때면 이 경험은 어쩐 일인지 기억속에서 사라지고 그는 다시 생의 의욕으로 넘쳐 모든 것을 단순하고 재미있게만 여겼다.

(사랑의 고통은 새로운 만남으로 인해 사라진다.)
- P171

"당신 생각 할거에요. 추억속에 간직할께요"  그녀가 말했다. "신의 가호가 함께하길, 저를 나쁘게 기억하지 마세요. 우린 이제 영원히 헤어져요. 그래야만 해요. 처음부터 만나지 말았어야 할 사람들이니까요."

(그런데 만나지 말았어야 할 만남은 없다.)
- P182

안나는 꿈에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그림자처럼 어디든 그를 쫓아다녔다. 눈을 감으면 그녀가 살아 숨쉬는 듯 보였는데, 그 모습은 실제의 그녀보다 더 아름답고 더 젊고 더 다정했다.

그녀는 저녁마다 책장에서, 벽난로에서, 방구석에서 그를 바라보았고, 그는 그녀의 숨소리와 옷자락이 부드럽게 사각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거리에서는 여자들을 눈길로 뒤쫓으며 혹시라도 그녀와 닮은 여인이 있나 두리번거렸다.

(사랑에 빠지면 나타나는 현상. 어디에나 있을 것 같은 기분.) - P185

지금 자신에게 그녀보다 더 가깝고 더 소중하고 더 중요한 사람은 이 세상에 단 한사람도 없다는 것을 그는 분명히 깨달았다. - P189

그 순간 불현듯 그날 저녁 역에서 안나를 배웅할 때 모든 게 끝났다고, 그리고 다시는 그녀를 볼 수 없을 거라고 스스로에게 중얼거렸던 일이 기억났다. 하지만 끝이라는 데 이르기까지는 아직도 먼 길을 가야 하는지!

(관계를 끝내는데 까지는 먼 길을 가야한다.) - P191

"너무 괴로웠어요. 언제나 당신 생각만 했어요. 당신 생각만으로 살았어요. 잊고 싶었어요. 정말로 잊고 싶었어요. 그런데 대체 왜 오셨나요?"

(괴로워서 잊고 싶은 마음이란~) - P192

그에게는 두개의 삶이 있다. 하나는 원하는 사람은 누구나 보고 알 수 있는 공공연한 삶, 다른 하나는 비밀스럽게 흘러가는 삶.

(나에게도 그런 두개의 삶이 있는 것 같다.) - P194

그녀는 도대체 왜 그를 이토록 사랑하는 것일까? 그는 여자들에게 어제나 그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으로 보였고, 여자들은 그에게서 그가 아닌 다른 사람, 그들이 자기네 인생에서애타게 찾아 헤매던 어떤 사람, 그들의 상상력이 만들어낸 그 사람을 사랑했다. 그들은 나중에 자기네가 실수했다는 것을 깨달은 후에도 여전히 그를 사랑했다. 그런데 그들 중 단 한사람도 그와 함께 하는 동안 행복해하지 않았다. - P196

그는 조금만 더 견디면 해결책이 나올 것이고 그렇게 되면 새롭고 아름다운 삶이 시작될 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두 사람 모두 분명하게 깨달았다. 종착지까지는 아직도 멀었으며 가장 어렵고 복잡한 일은 이제 방금 막 시작되었을 뿐이라는 것을.

(둘의 사랑으 미래는 어려움만이 보인다. 그리고 그것은 이제 시작이었다.) - P1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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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1-07-14 14:5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지루한 이야기>에서 ˝아빠는 바닐라 맛이야.˝ 이 대사를 잊을 수가 없네요. ㅎㅎㅎ

새파랑 2021-07-14 15:42   좋아요 2 | URL
바닐라가 최고 맛있는 아이스크림이었나봐요. 전 피스타치오~!! 예전에는 그렇게 사랑스러운 딸이었는데 나이 들어서는 감정이 변했다는게 안타깝더라구요 ㅜㅜ

잠자냥 2021-07-14 15:26   좋아요 2 | URL
네, 그런 인생의 모순을, 쓰디쓴 진실을 이 아이스크림 하나로 표현했다는 게 정말 체호프의 대단함을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새파랑 2021-07-14 15:54   좋아요 2 | URL
전 오늘부터 체호프의 작품세계로 빠져들어야 할거 같아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