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타르 풀‘ 덤블은 세 줄기로 이루어져 있었다. 줄기 하나는 잘려나간 팔처럼 뜯겨 남은 곳이 튀어 나와 있었다. 다른 두 줄기에는 꽃이 피어 있었다. 한 때는 붉었겠지만 지금은 검은색이었다. 줄기 하나는 가운데가 부러져 그 끝에 매달린 꽃은 더러워진 채 아래로 축 늘어져 있고, 다른 하느나는 검은 흙이 묻어 더러웠지만 여전히 꼿꼿하게 고개를 들고 있었다. 마치 몸의 한 부분이 찢겨나가고, 내장이 터지고, 팔이 잘리고, 눈알이 뽑힌 것 같은 모습이었다. 그러나 주위의 모든 형체를 짓밟아버린 인간에게 굴하지 않는 듯 여전히 꼿꼿이 서 있었다.] P.9
아닌걸 알면서도 어쩔수 없이 선택하는 길이 있다. 결코 이득이 없을 걸 알면서도, 끝이 안좋을 걸 알면서도, 우리는 그 길을 간다. 우리의 마음이 그 길을 걷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지금 이 길을 걷지 않으면 후회할 걸 알기 때문이다.
이 책은 톨스토이의 사후에 출판된 작품으로, 러시아의 북캅카스에 있는 체첸 지역을 배경으로 아바르인이자 산민(Mountain People)으로 살아간 영웅 ˝하지 무라트˝의 일대기를 그린 작품이다.
이 책은 ˝하지 무라트˝가 체첸 지역에서 활동하는 러시아 저항군을 떠나 러시아군에 합류하기 위해 그의 동료를 러시아군에 접선을 보내는 것으로 이야기는 시작한다.
체첸지역의 3대 이맘(러시인 저항군이며 이슬람 통치자를 지칭함)인 ˝샤밀˝의 눈 밖에 난 ˝하지 무라트˝는 원래부터 ˝샤밀˝과 사이가 좋지는 않았다. ˝샤밀˝은 자기 가족과 자가가 모시던 칸(아바르인의 통치자)의 원수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더 큰 목적을 위해 ˝하지 무라트˝는 잠시 ˝샤밀˝과 손을 잡게 되고, ‘이슬람 성전‘을 수행하기 위해 러시아 저항군에 합류하게 되며 큰 공을 세운다. 그러나 점점 커저가는 ˝하지 무라트˝의 영향력에 겁을 먹은 ˝샤밀˝은 그를 제거하려고 하고, 이를 눈치 챈 ˝하지 무라트˝는 러시아군 쪽으로 넘어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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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잠깐, 왜 이런 복잡한 관계가 형성되었는지 간단 요약해보면,
2대 이맘은 ˝감자트˝라는 인물로, 그는 이슬람 성전에 참가하지 않고 러시아군에게 합류하려 하는 아바르인의 통치자 ˝칸˝의 가족을 몰살시킨다. (이때 ˝하지 무라트˝ 가족은 ˝칸˝의 가족을 모시고 살던 집안이었고,거의 형제처럼 지냄) 이를 복수하기 위해 ˝하지 무라트˝는 ˝감자트˝를 암살하고, 간신히 살아남는다.
이후 2대 이맘의 오른팔이었던 ˝샤밀˝이 3대 이맘이 되고, ˝하지 무라트˝는 그에게 복수하기 위해 러시아군에 합류하여 아바르 지역의 사령관이 된다. 하지만 아바르 지역의 통치자의 모략에 의해 심한 모욕과 생명의 위협을 받게 되고, 그는 어쩔 수 없이 다시 ˝샤밀˝과 손을 잡고 러시아 저항군으로 돌아서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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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 무라트˝의 예상과는 다르게 러시아군은 그들 일행을 반갑게 맞이하고, 그래서 오히려 ˝하지 무라트˝ 일행은 불안을 느낀다. ˝하지 무라트˝는 러시아 저항군 시절에 특유의 용맹함으로 러시아군의 두려움 그 자체였기 때문에, 러시아 입장에서는 그의 합류가 큰 힘이 될 수 있었다.
˝하지 무라트˝의 요구사항은 단 하나, ˝샤밀˝의 손아귀에 있는 그의 가족들을 빼내 오는 것. 그는 ˝샤밀˝의 갑작스런 의심 때문에 그의 가족을 챙기지 못하고 러시아군에 합류하였고, 따라서 그의 가족의 안전이 담보된다면 체첸 지역에서 활동중인 ˝샤밀˝이 이끄는 러시아 저항군을 자신이 소탕할 수 있다고 지역(티플리스) 사령관인 ˝보론쵸프˝에게 제안한다.
이러한 ˝하지 무라트˝의 투항은 당시 러시아 황제 ˝니콜라이˝이 에게 보고되고, 황제는 그의 투항으로 혼란에 빠진 체첸지역에 대한 공격을 지시하지만 ˝하지 무라트˝가족의 구출에 대한 이야기는 점점 뒤로 물러나게 된다.
체첸지역에 대한 러시아군의 공격이 거세지고, 그의 가족의 생명이 점점 위협받고 있다는 것을 알게된 ˝하지 무라트˝는 고민에 빠지게 된다. 러시아군에 남아 명예와 지위를 얻을 것인가? 아니면 다시 러시아군을 도망쳐 죽는 한이 있더라도 가족을 구할 것인가?
그는 가족을 구하는 방안을 택한다. 그리고 ˝하지 무라트˝ 일행은 그렇게 러시아군에게서 도망치게 되고 자신을 추격하는 이들과 싸우게 된다. 그는 과연 살아 남아서 사랑하는 가족과 재회할 수 있을까? ˝샤밀˝에 대한 복수를 할 수 있을까?
책의 시작부터 끝까지 ˝하지 무라트˝는 계속 추적을 받고, 어느곳에도 머물지 못한다. 그가 돌아갈 수 있는 곳은 없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존재의 근원인 가족을 찾기 위해 돌아간다. 죽음이 그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는 죽음을 예감했다. 과거의 기억과 환영이 교차되며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갔다. 한 손에 칼을 들고 다른 한 손으로 칼에 잘려 대롱거리는 한쪽 빰을 누르며 적에게 다가서는 용감한 아부눈찰 칸의 모습이 스쳤고, 교활해 보이는 하얀 얼굴에 허약하고 혈색이 좋지 않은 늙은 보론초프 공작의 모습이 스치고 그의 부드러운 목소리도 들렸으며, 아들 유수프와 아내 소피아트, 붉은 턱수염을 기른 핏기 없는 얼굴에 눈을 가늘게 뜬 그의 적 샤밀도 보였다.] P.184
톨스토이는 생전에 이 책이 출판될 수 없다는 걸 알았다고 한다. 읽어보면 당시 실존 인물들이 등장하고 러시아 황제의 정책에 대한 비판이 포함되어 있는데 그렇기 때문이지 않을까란 생각이 든다. 그래서 그는 사후에 이 책이 출판되도록 했고, 이 책은 그의 유작처럼 남게 되었다.
톨스토이는 실존 인물이었던 ˝하지 무라트˝를 통해 자신의 인생을 글로 투영했다고 느껴진다. 당시의 시대적 위선과 현실에 맞서 싸운 ˝하지 무라트˝와 ˝톨스토이˝, 그들은 마지막까지 꺾이지 않았다. 이 책의 마지막은 너무 서글프지만 그래서 더 장엄하다.
Ps. 익숙하지 않은 이슬람 용어(이맘, 뮤리트, 칸 등) 및 다양한 지역 명칭(체첸, 캅카스, 티플리스), 그리고 특유의 햇갈리는 러시아 이름 때문에 초반에 햇갈리는 부분이 많다.(러시아 군인들은 그저 스쳐 지나가는 인물들로 읽으면 됨) 이 부분만 잘 극복하면 엄청난 감동을 느낄 수 있다.
Ps. 스콧님이 추천해 주셔서 읽게 된 📚으로 완전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톨스토이의 여섯편의 작품을 읽었는데, 어느작품 하나 안좋은게 없었지만, 개인적으로는 ˝하지 무라트˝ 이 작품이 가장 강렬한 것 같다. 거장이 남긴 최고의 유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