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책들 35주년 세트 1주 1권 읽기의 첫번째 책으로 ‘제임스 조이스‘의 <죽은 사람들>을 읽었다. 사실 대다수 사람들이 그렇듯이 열린책들 35주년 책 20권 중 많은 책들을 이미 읽었을 것이다. 나만 해도 11권은 읽은 책이었다. 하지만 이번 기회에 다시 한번 읽어보자는 생각이 들었고, 앞으로 20주 동안 한권씩 읽기로 했다. 우선 안읽어본 책을 먼저 읽기로 했고, 그래서 고른 첫번째 책이 <죽은 사람들> 이었다.
‘제임스 조이스‘ 하면 일단 떠오르는 작품이 <율리시스>일 것이다. 이 책은 정말 어렵다는 말을 많이 들어서 아직 읽으려는 생각을 해보지 않았고, 그래서인지 ‘제임스 조이스‘의 책을 아직까지 읽어보진 않았다. 저번달에 우연히 중고매장에서 구매한 <젊은 예술가의 초상> 한권만 가지고 있을 뿐. 그런데 열린책들 35주년 책들 중 무엇을 읽을지 고민하다가 이 책을 선택했는데, 와 이렇게 좋은 작품을 이제서야 읽었다는게 후회될 정도로 좋았다.
<죽은 사람들>에는 ‘제임스 조이스‘의 단편집 <더블린 사람들>에 수록된 세편의 단편만을 수록한 책이다. 단편의 제목은 <애러비>, <가슴 아픈 사건>, <죽은 사람들>이다. <더블린 사람들>에 있는 단편 15편 중 3편의 단편을 엄선해서 편집한 책이기 때문인지 3편의 완성도가 상당히 높게 느껴진다.(내 생각)
1. 애러비
이웃집 누나를 짝사랑하는 소년의 설레임을 담은 이야기다. 누구가를 좋아하면 그 사람을 위해 무언가를 해주고 싶은게 사랑의 마음이다. 이웃집 누나는 소년에게 ‘애러비 바자‘에 가느냐고 묻게 되고, 소년은 누나에게 선물을 사다주겠다고 말한다. 이것이 소년과 누나의 첫 대화였다. 이 대화는 소년의 마음에 행복을 불어넣었고, 소년은 어떻게는 바자에 가서 선물을 사겠다는 의지를 불태운다.
우여곡절 끝에 바자에 가게 된 소년은 그러나 선물을 사지 못하고 돌아서게 된다.
[어둠 속을 바라보면서 나는 허영심에 속고 놀림당한 어리석은 내 자신을 보았다. 그리고 내 눈은 괴로움과 분노로 타오르고 있었다.] P.19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무엇하나 해주지 못하고 돌아설 때의 그 안타까운 심정은, 어리고 무기력한 자신에 대한 비애는 어떤 느낌일까?
2. 가슴 아픈 사건
외로운 중년 남성 ˝더피˝는 우연히 음악회에서 ˝시니코 부인˝을 만나게 되고, 그녀와 정신적 공감대를 형성하게 된다. 그와 그녀는 점점 많은 시간을 함께보내게 되고, 이러한 만남은 그의 날카로운 삶을 감성적으로 변화시킨다.
하지만 정신적 관게만을 추구하던 ˝더피˝와는 다르게 외로운 삶을 살아왔던 ˝시노코 부인˝은 그와 좀 더 가까운 관계를 바라게 되고, 이러한 그녀에게 환멸을 느끼게 된 그는 교제를 그만두게 된다.
[그가 말했다. 모든 관계는 슬픔으로 이어지기 마련이라고.] P.30
그렇게 그는 그녀를 떠나게 되고 4년이 흐른 어느 날, 그는 ˝시노코 부인˝에 대한 안타까운 소식을 듣게 된다. 그리고 그가 그녀의 삶과 행복을 거부했다는 죄책감과 비슷한 감정을 느끼게 되고, 혼자라는것을 깨닫게 된다.
[이제 그녀가 사라지고 없자 그는 매일 밤 그 방에 혼자 앉아 있었을 그녀의 삶이 얼마나 외로웠을지 이해가 되었다. 그의 삶 역시 외로운 삶이 될 것이다. 그가 죽을때까지, 더이상 존재하지 않게 될 때까지, 누군가의 기억으로만 남게 될 때까지...그를 기억해 줄 사람이 혹시라도 있다면.] P.37
왜 그때 그는 그녀의 손을 놓았던 걸까? 아니 왜 놓쳤던 걸까? 그렇지 않았더라면 혼자가 아니었을텐데. 이제 그에게는 침묵에 싸인 밤만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었다.
3. 죽은 사람들
사람은 같은 공간에 있어도 다른 생각을 하고, 같은 노래를 들어도 다른 감정을 가진다. ˝게이브리얼˝은 그의 부인 ˝그레타˝와 함께 이모댁에서 열리는 무도회의 참석하게 된다. 진보적 작가인 ˝게이브리얼˝은 무도회에서 자신의 미래지향적인 성향을 드러내면서 과거에 머물면 안된다고 사람들에게 이야기 한다.
하지만 그의 부인은 ˝그레타˝는 무도회에서 우연히 ‘오림의 처녀‘라는 노래를 듣게 되고, 그 노래와 관계된 옛 추억을 떠올리게 된다. 이런 추억에 빠진 그녀를 바라보는 남편 ˝게이브리얼˝은 그녀에게 어떤 신비한 감정을 느끼게 된다.
[그녀의 자세에는 그녀가 마치 어떤 것의 상징인 듯한 우아함과 신비로움이 있었다. 그는 멀리서 들려오는 음악에 귀를 기울으며 어둠속에 있는 여성은 무엇인가, 무엇의 상징인가, 스스로에게 물어보았다. 그가 화가였다면 그는 그녀의 그런 모습을 그림으로 그렸을 것이다. 그 그림을 그는 멀리서 들려오는 음악이라고 부를 것이다. 그가 화가였다면. ] P.94
하지만 숙소로 복귀한 후 ˝게이브리얼˝은 부인인 ˝그레타˝가 무도회에서 어떠한 것을 떠올렸는지, 그동안 어떤 감정을 가지고 그와 살아왔는지 알게 되고 이에 부끄러움을 느끼게 된다. 부인인 ˝그레타˝가 품고 있던 감정은 오래전 병으로 죽은 그녀의 첫사랑에 대한 기억. 도대체 그녀는 이 감정을 어떻게 갑자기 떠오르게 된 걸까?
[그들 모두 망령이 되어 가고 있었다. 늙어서 비참하게 시들어 사라지는 것보다 차라리 열정이 가득한 영광의 순간에 다른 세상으로 용감히 뛰어드는 편이 더 나을 것이다] P.113
죽은 사람들은, 떠나간 사람들은 남아있는 우리들의 삶에 얼마만큼이나 영향을 주는 걸까? 감추어져 있던 상대방의 감정을 알게 되었을 때 우리는 얼마만큼 받아들일 수 있을까? 이해할 수 있을까? <죽은 사람들>은 이에 대한 답을 간접적으로 알려주고 있다.
세 단편이 모두 좋지만 그래도 역시 단편 <죽은 사람들>이 최고였다. 이야기 흐름도 너무 매끄러웠지만 특히 마지막 눈내리는 아일랜드의 풍경을 묘사한 문장은 정말 압권이었다.
[눈은 삐뚤어진 십자가들과 묘석들, 작은 문의 창살들, 앙상한 가시나무들 위에 두껍게 쌓여 있었다. 그리고 눈이 부드럽게 살포시 전 우주에, 살포시 부드럽게, 마지막 종말을 향해 하강하듯이, 모든 산 자들과 죽은 자들 위에 내려앉는 소리를 들으며 그의 영혼도 천천히 희미해져 간다.] p.115
짧은 단편 세편을 읽었을 뿐이지만 나는 이미 ˝제임스 조이스˝의 팬이 된 것 같다. 그의 다른 책들을 빨리 만나봐야 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