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나에게 있어서 소세키의 최고의 작품은 산시로이다~!!


대체 그 여자는 어떤 사람일까? 세상에 그런 여자가 있을 수 있는 것일까? 여자란 그런 상황에서도 아무렇지 않게 차분히 있을 수 있는 존재일까? 교육을 받지 못한 탓일까, 대담한 것일까? 아니면 순진한 것일까? 결국 갈 수 있는 데까지 가보지 않았으니 짐작할 수가 없다. 과감하게 좀 더 가봤다면 좋았을걸, 하지만 두렵다. 헤어질 때 "당
신은 참 배짱이 없는 분이로군요"라고 했을 때는 정말 놀랐다. 23년의 약점이 한꺼번에 드러난 듯한 심정이었다. 부모라도 그렇게 정곡을찌르지는 못할 것이다.

(배짱이 없는 분이라니...) - P25

산시로는 멍하니 있었다. 곧 조그만 목소리로 "모순이다"라고 말했다. 대학의 분위기와 저 여자가 모순인지, 저 색채와 저 눈빛이 모순인지, 저 여자를 보고 기차에서 만난 여자를 떠올린 게 모순인지, 아니면 미래에 대한 자신의 방침이 두 갈래로 모순되어 있는 건지, 또는 굉장히 기쁜 것에 대해 두려움을 느끼는 것이 모순인지.. 시골 출신의 청년에게는 이 모든 것이 이해되지 않았다. 그저 왠지 모순된 것만 같았다 - P46

"자연을 번역하면 모두 인간이 되어버리니까 재미있지. 숭고하다가 위대하다든가 웅장하다든가 말이야." 산시로는 그제야 번역의 의미를 이해했다. "모두 인격상의 말이 되지. 인격상의 말로 번역할 수 없는 사람한테는 자연이 인격상의 감화를 전혀 주지 않지." - P94

세 번째 세계는 봄처럼 찬연히 흔들리고 있다. 전등이 있다. 은수저가 있다. 환성이 있다. 우스운 이야기가 있다. 거품이 이는 샴페인 잔이 있다. 그리고 그 모든 것 중 으뜸가는 것으로 아름다운 여성이 있다. 산시로는 그 여성 중 한 명에게 말을 걸었다. 한 사람을 두 번 봤다. 산시로에게는 이 세계가 가장 의미심장한 세계다. 이 세계는 바로 코앞에 있다. 다만 다가가기가 힘들다. 다가가기 힘들다는 점에서 하늘 저 먼 곳의 번개와도 같다. 산시로는 멀리서 이 세계를 바라보며 신기하게 생각한다. 자신이 이 세계 어딘가로 들어가지 않으면 그 세계 어딘가에 결함이 생길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자신은 이 세계 어딘가의 주인공이어야 할 자격을 갖고 있는 것 같다. 그런데도 원만한 발달을 간절히 바라야 할 이 세계가 오히려 자신을 속박하여 자유롭게 출입해야 할 통로를 막고 있다. 산시로는 그것이 이상했다.

(세 번째 세계는 가고싶으면서도 갈 수 없는 곳) - P107


"놀라운데요. 선생님은 뭐든지 남이 읽지 않는 것을 읽는 버릇이 있다니까." - P1234

"그 여자는 차분하지만 난폭해." 히로타 선생이 말했다. "예, 난폭하지요. 입센의 여자 같은 구석이 있으니까요." "입센의 여자는 노골적이지만 그 여자는 마음이 난폭하지. 하긴 난폭하다고 해도 보통의 난폭함과는 의미가 다르지만" - P165

"선생님은 멋대로 말하는 사람이라 때와 장소에 따라 무슨 말이든 한다네. 무엇보다 선생님이 여자를 평한다는 게 골계지, 여자에 대한 선생님의 지식은 아마 제로에 가까울 거네. 러브를 한 적이 없는 사람이 어떻게 여자를 알겠나?" - P169

과연 그렇게 생각하고 보니 무슨 일이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안색이 좋지 않다. 눈초리에 견디기 힘든 울적함이 보인다. 산시로는 이 활인화에서 받은 위안을 잃었다. 동시에 혹시나 자신이 이 변화의 원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순식간에 강렬하고 개성적인 자극이 산시로의 마음을 엄습해왔다. 변해가는 아름다움을 덧없이 여기는 공통된 정서는 완전히 그림자를 감추고 말았다. 나는 이 여자에게 그만큼의 영향력을 갖고 있다. 산시로는 이런 자각으로 자신의 모든 것을 의식했다. 하지만 그 영향이 자신에게 이익인가 불이익인가 하는 문제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 P282

얼마 후 미네코 쪽에서 입을 열었다.

"오늘은 하라구치 씨한테 무슨 볼일이라도 있었던 건가요?"

"아니요, 볼일은 없었습니다.

"그럼 그냥 놀러 온 건가요?"

"아니요, 놀러 온 건 아닙니다."

"그럼 왜 온 건데요?"

산시로는 그 순간을 포착했다.

"당신을 만나러 온 겁니다."

산시로는 이것으로 할 수 있는 말을 다 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미네코는 조금도 자극을 받지 않고, 게다가 평소처럼 남자를 취하게 하는 어조로 말했다.

(너무...늦은건가...) - P284

요시코가 말했다. 커다랗고 검은 눈이 베개를 벤 산시로의 얼굴 위로 떨어졌다. 산시로는 아래에서 요시코의 창백한 이마를 올려다보았다. 처음으로 이 여자를 병원에서 봤던 옛날 일을 떠올렸다. 지금도 울적해 보인다. 동시에 쾌활하다. 의지가 될 만한 모든 위로를 산시로의 베개 위로 가져왔다.

(검은 눈이 얼굴 위로 떨어진다.) - P326

노노미야는 초대장을 찢어 바닥에 버렸다. 이윽고 히로타 선생과 함께 다른 그림에 대한 평을 시작한다. 요지로만이 산시로 옆으로 다가왔다.

"어떤가, <숲 속의 여인>은?"

"<숲 속의 여인>이라는 제목이 안 좋네."

"그럼, 뭐라고 하면 좋겠나?"

산시로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저 입속으로, 스트레이 십, 스트레이 십, 이라고 되풀이할 뿐이었다. - P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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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1-10-08 18: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낼 모닝 리뷰 올리신다에 한 표.🖐 ^^

새파랑 2021-10-08 18:27   좋아요 1 | URL
^^ 알겠습니다. 열심히 써봐야 겠어요~!!

2021-10-08 21: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서니데이 2021-10-08 19:0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새파랑님, 즐거운 주말과 기분 좋은 금요일 저녁시간 되세요.^^

새파랑 2021-10-08 19:28   좋아요 2 | URL
서니데이님 몸 빨리 괜찮아지세요 ^^
 
에브리맨
필립 로스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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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오는 대로 받아들여, 버티고 서서 오는 대로 받아들여라. 다른 방법이 없어.˝

Everyman : 보통사람

한사람이 태어나서 죽을때까지 그리고 죽음 이후 남겨진 사람들까지,  이렇게 한 사람의 일생을 묵직하게 담아낸 책이 있을까?

˝필립 로스˝의 에브리맨을 읽고 나서 삶에 대한 욕망과 살아있음의 감사함을 느끼게 되었다. 주인공인 ‘그‘는 젊은 시절 성공한 인생을 살았었지만 결코 우리가 생각하는 도덕적인 삶을 살지는 않았다. 그는 세번 결혼을 해서 세번 이혼을 했고, 그의 아내였던 사람과 자식들에게 큰 상처를 남겼다.

그럼에도 그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살기위해 노력했고, 인생을 포기하지 않았으며, 그가 하고 싶었던 최선의 삶을 살기 위해  노력했다. 비록 그의 신체는 건강하게 태어나지 못해 언제나 생사의 갈림길에 있었지만 그는 그때마다 다시 일어났다. 결국 마지막 죽음을 피할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삶에 대한 열망을 마지막까지 놓지 않았다.

[노년은 전투가 아니다. 노년은 대학살이다.]  P.162

[목적없는 낮과 불확실한 밤과 신체적 쇠약을 무력하게 견디는 일과 말기에 이른 슬픔과 아무것도 아닌 것을 기다리고 또 기다리는 일, 결국 이렇게 되는 거야. 그는 생각했다. 이거야 미리 알 도리가 없는 거지.]  P.167


특별할 것도 없는 평범한 사람이 태어나서 늙고 병들어 죽는 이야기지만, 그 속에서 삶에 대한 위안을 주는 작품. 우리는 단지 에브리맨이다.  


Ps 1. ˝톨스토이˝의 <이반 일리치의 죽음>이 죽어가는 과정에 집중한 이야기라면, <에브리맨>은 노년의 투쟁에 집중한 이야기이다. 두 작품 모두 죽음에 대해 생각해보게 하는 멋진 명작이라는 생각이 든다. 특히 두 작품 모두 몰입감 축면에서는 최고라는 생각이 든다.


Ps 2. 이렇게 유명한 책을 지금까지 몰랐었다니... 이제라도 읽어서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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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아 2021-10-06 23:58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오 노년의 투쟁이라니 더 기대됩니다. 이제 필립 로스 이름만 봐도 일단 두근두근ㅎㅎ
새파랑님 오늘 시작하신것으로 기억하는데 금새 읽으셨네요. 저 1일1권이 소원인데 부럽습니다😆🥲

새파랑 2021-10-07 00:05   좋아요 4 | URL
필립 로스의 책은 잘 읽히더라구요 ㅋ 개인적으로 <죽어가는 짐승> 보다는 이 책이 많이 좋았습니다. 빨간맛은 아님 ^^ 미미님은 1일 2권도 가능하심 ~!!

막시무스 2021-10-07 00:22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정말로 재독하고 싶은 작품인것 같습니다!ㅎ 당분간은 새파랑님의 리뷰로 만족해야 할 듯요!ㅠ 굿밤되세요!

청아 2021-10-07 00:28   좋아요 4 | URL
ㅋㅋㅋㅋㅋㅋ막시무스님 이유는 아마도?그 책!ㅋㅋ파이팅요!!👍

새파랑 2021-10-07 07:10   좋아요 4 | URL
이 책은 재독해도 좋을 책인거 같아요 ^^ 막시무스님의 이유인 책의 즐거운 독서를 응원합니다~!!

2021-10-07 00: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10-07 07: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희선 2021-10-07 01:26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예전에 이 책 이야기 들었을 때 한번 보고 싶다 생각했지만 못 봤네요 사람은 나이 먹고 다 죽겠지요 평소에는 그런 걸 잘 생각하지 않는 것도 같아요 생각하면 지금을 좀 더 괜찮게 살지...


희선

새파랑 2021-10-07 07:14   좋아요 5 | URL
이 책 나왔을 당시에 유명했던 책 같더라구요. 리뷰도 많고^^ 한 사람의 인생을 엿보기에는 좋은 책 같아요~!!

mini74 2021-10-07 08:4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노년은 대학살이다 ㅠㅠ 가 퍽! 하고 가슴에 와닿아요 이반 일리치와는 또 다른 죽음의 이야기라니 ! 저도 찜 *^^*

새파랑 2021-10-07 10:40   좋아요 3 | URL
이 책 강추~!! 입니다 ^^ 필립 로스 너무 매력적이더라구요~!

그레이스 2021-10-07 22:54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노년에 대한 이야기 이언 매큐언 <암스테르담> 읽고 노년에 대한 생각을 진하게 했던 것 같아요^^
약간 두렵기도 하고...

새파랑 2021-10-08 06:05   좋아요 0 | URL
왠지 나의 미래 일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좀 그렇더라구요 ㅎㅎ 저도 그래서 약간 걱정이 되네요 😅

붕붕툐툐 2021-10-08 00:2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요즘 필립 로스 달리시네요? 저도 완전 관심 있는데~ 제2의 성을 읽어야 하는 관계로 다 미뤄놓고 마음만 다급하네요?ㅎㅎ
일단 담아둡니다!ㅎㅎ

새파랑 2021-10-08 06:07   좋아요 0 | URL
최근에 필립 로스 책 3권을 읽었네요. 역시 예리하심~!!
툐툐님의 제2의 성 조기 완독을 응원합니다 ^^
 

정말 강렬한 작품이다. 한 사람이 태어나서 죽을때 까지의 인생을 엿본 기분이 든다.






"현실을 다시 만들 수는 없어요." 낸시는 아버지에게 그 말을 돌려주었다. "그냥 오는 대로 받아들이세요. 버티고 서서 오는 대로 받아들이세요." - P13

그동안 그도 난공불락의 남자로 남아 있으려는 전투에서 계속 패배했다. 시간은 그의 몸을 붕괴를 막기 위해 고안된 인공장치들의 창고로 바꾸어놓았다. 이제 그 자신의 사망에 관한 생각에서 뇌관을 제거하려면 그 어느 때보다도 부지런하고 교활해야 했다. - P24

피비는 법정에서 증언대에 선 원고, 마치 사드 후작을 고발하기라도 하듯 울분을 품은 채 잔뜩 긴장하고 있었다 - 로부터 "그의 여자친구들의 긴 행렬에서 37번 이라고 일컬어졌는데, 사실 그녀는 미래를 너무 멀리 내다본 것이었으며 피비는 아직 2번에 불과했다.

(필립 로스 식의 유머 너무 재미있다.) - P41

아홉 살 때 그의 병실에 있던 다른 소년의 침대와 비슷했다. 지금까지 긴 세월 동안 그는 살아 있었고 그 소년은 죽은 상태였다 ㅡ 그런데 이제 그가 그 소년이 된 것이다. - P49

그러나 천재의 솜씨라고 부를 수 있는 대목은 이 사업체를 자기 이름이 아닌 에브리맨 보석상‘ 이라고 부른 것이다. 이 가게는 그가 일흔셋의 나이에 도매상에 재고를 팔고 은퇴할 때까지 그의 충실한 고객이 된 유니언 카운티 전역의 보통 사람 무리에게 그 이름으로 알려져 있었다.

(에브리맨..보통 사람...) - P63

그는 아버지가 세상에서 1센티미터씩 사라지는 것을 다 지켜보았다. 맨 끝까지 그 과정을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두번째 죽음 같았다. 그렇다고 첫번째 죽음보다 덜 끔찍하지도 않은 죽음. 그는 갑자기 밀려오는 감정에 실려 자신의 삶의 켜들을 뚫고 아래로, 저 아래로 내려갔다.

(죽음을 이렇게 슬프게 표현하다니...) - P67

"언제, 도대체 언제 끝을 내야 할까? 언제 가스를 켜고 머리를 오븐에 박아야 할까? 언제쯤 이만하면 됐다고 말할 수 있는 걸까? 그렇게 십 년 동안 슬픔을 안고 살았습니다. 꼬박 십 년이 걸리더군요. 그래서 슬픔은 마침내 끝이 났는데, 이제 이놈의 병이 시작되더군요." - P74

그들 가운데 한 명이 전신 마취를 원하는지 아니면 국부 마취를 원하는지 물었다. 꼭 웨이터가 레드 와인을 원하는지 아니면 화이트 와인을 원하는지 묻는 것 같았다.

(ㅋㅋㅋㅋㅋㅋㅋ) - P75

"하지만 현실을 다시 만드는 건 불가능해." 그는 작은 소리로 말하며 딸의 등을 쓰다듬고 머리카락을 어루만지고, 품 안의 그녀를 살며시 흔들었다. "그냥 오는 대로 받아들여, 버티고 서서 오는 대로 받아들여라. 다른 방법이 없어."

(그냥 그냥 받아들여야 한다...) - P83

"그렇지 않아요. 선생님은 몰라요. 의존, 무력감, 고립, 두려움. . 그게 다 아주 무섭고 창피해요. 통증이 있으면 자신을 겁내게 돼요. 그 완전한 이질감이 정말 끔찍해요."

(통증의 끔찍함이란...) - P96

열흘 뒤 밀리선트는 수면제를 잔뜩 먹고 자살했다. - P97

이제 그 어떤 것도 그의 호기심에 불을 붙이지 못했고 그의 요구에 답을 해주지도 못했다. 그의 그림도, 그의 가족도, 그의 이웃도, 아침에 널을 깐 산책로에서 그의 옆에서 조깅하는 젊은 여자들을 빼면 아무것도, 맙소사, 그는 생각했다. 한때 나였던 남자! 나를 둘러쌌던 생활! 나의 것이었던 힘! 그때는 어디에서도 이질감은 느낄 수 없었다! 한때는 나도 완전한 인간이었는데,

(노년의 슬픔..이제는 더이상 아무것도 없다.) - P135

그녀는 전화하지 않았다. 산책을 나가서도 그녀를 다시 보지 못했다. 다른 널빤지 길을 따라 조깅을 하기로 한 것이 틀림없었다. 이로써 마지막으로 크게 한 방 터뜨려보겠다는 그의 갈망은 꺾여버린 것이다.

(나이가 들어도 필립 로스의 성욕은 줄어들지 않는다 ㅋ) - P140

노년은 전투가 아니다. 노년은 대학살이다. - P162

목적없는 낮과 불확실한 밤과 신체적 쇠약을 무력하게 견디는 일과 말기에 이른 슬픔과 아무것도 아닌 것을 기다리고 또 기다리는 일, 결국 이렇게 되는 거야. 그는 생각했다. 이거야 미리 알 도리가 없는 거지.

(죽음을 기다리는 삶이란...) - P167

하지만 사람이 어떻게 자발적으로 충만함을 버리고 그 무한한 무를 선택할 수 있을까? 나라면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그냥 차분하게 누워 작별 인사를 할 수 있을까? - P1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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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가지 이야기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49
귀스타브 플로베르 지음, 고봉만 옮김 / 문학동네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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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가 버리고 간 것이 누군가에겐 소중한 것이 될 수도 있다.˝

나에게 있어서 ˝귀스타브 플로베르˝ 하면 떠오르는 작품은 <마담 보바리> 이다. 이 책을 워낙 재미있게 읽었고, 그래서 다른 책들도 읽어보고 싶었는데 생각보다 그가 남긴 작품이 별로 없어서 못읽고 읽다가 우연히 <세 가지 이야기>라는 그의 책을 알라딘 우주점에서 발견하고 구매했다.

˝귀스타브 플로베르˝의 <세 가지 이야기>에는 정직한 제목과 같이 세 가지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는데, <순박한 마음>, <구호수도사 성 쥘리앵의 전설>, <헤로디아> 세편이다.

이 중 <헤로디아>는 성경에 기반한 이야기 인데 이쪽 분야의 지식이 전무한 관계로, 재미있게는 읽었지만 확 이해하지는 못했다. 대신 나머지 두편을 소개해 보면,


1. 순박한 마음

사랑하는 누군가를 떠나보내는 마음은 언제나 안타깝다. 그럼에도 어떤 사람은 새로운 사람에게 새로운 사랑의 마음을 다시 준다. 끝나지 않는 마음을 줄 수는 없는 걸까? <순박한 마음>은 여주인공인 ˝펠레시테˝의 이별 이야기이다. 첫사랑의 배신, 조카 빅토르의 죽음, 주인집의 딸 비르지니의 죽음, 주인마님과의 헤어짐, 마지막으로 앵무새까지 그녀가 사랑했던 모든 것들을 떠나보내게 된다. 그럼에도 어떻게든 살아가는 그녀는 그녀의 마지막 사랑이 담긴 ‘앵무새‘를 박제하여 간직하고, 그녀가 이생에서 보내는 마지막 순간에 그녀의 머리 위를 날아다니는, 거대한 앵무새 한마리를 보게 된다.

[푸른빛 향연이 펠리시테의 방까지 올라왔다. 그녀는 코를 벌름거리며 신비로운 쾌락에 휩싸인채 향내음을 맡은 후 눈을 감았다. 그녀의 입술은 미소를 띠고 있었다. 마치 샘이 말라 없어져가듯, 메아리가사라지듯, 심장박동이 차츰차츰 약해지다 아주 잦아들었다. 마지막 숨을 내쉴 때, 그녀는 반쯤 열린 하늘에서 그녀의 머리 위를 활공하는, 거대한 앵무새 한 마리를 본 것 같았다.]  P.60

이야기 자체는 단조롭고 특별한 이벤트는 없지만 ˝플로베르˝는 이 작품을 통해 우리는 왜 사랑하는 것들을 떠나보내야 하는지,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에 의지해야 하는지를 묻고 있는 것 같다.



2. 구호수도사 성 쥘리앵의 전설

인간이 다른 동물을 사냥하는 것, 아니 살생을 하는 것은 죄악일까? 생존일까? 그리고 운명은 피할 수 없는 걸까? 이 작품의 주인공 ˝쥘리앵˝은 태어나면서 두가지 예언을 듣게 되는데 하나의 예언은 어머니가, 하나의 예언은 아버지가 듣는다.

어머니가 들은 첫번째 예언은 ˝그대의 아들은 앞으로 성인이 될 것이오˝ 이였기 때문에 어머니는 아들이 대주교가 될 것이라고 기대했고,

아버지가 들은 두번째 예언은 ˝그대의 아들은!.많은 피! 무한한 영광! 영원한 행복! 황제의 가문˝ 이였기 때문에 아버지는 아들이 정복자가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건강하게 성장한 ˝쥘리앵˝은 사냥에 몰두하게 되고, 점점 무자비하게 살생을 저지르게 된다. 그러던 어느날 그는 사슴가족을 잔인하게 학살하게 되고, 그는 숫사슴으로부터 ˝저주받을지어다! 저주받을지어다! 저주받을지어다! 극악무도한 놈아. 언젠가 너는 네 아비와 어미를 죽일 것이다!˝  라는 저주에 가까운 세번째 예언을 직접 듣게 된다.

자신이 자신의 부모를 죽일지도 모는다는 공포에 사로잡힌 그는 결국 부모 곁을 떠나게 되고 용병의 무리에 합류하여 나중에는 정복자로서의 위신을 떨치게 되며 황제의 딸과 결혼하게 된다. 아버지가 들은 두번째 예언이 실현된 것이다.

한편 아들의 저주받은 세번째 예언을 알지 못한 채 아들 ˝쥘리앵˝을 찾아 오랫동안 방랑하던 그의 부모는 드디어 아들이 살고 있는 성을 찾게 된다. 그런데 ˝쥘리앵˝은 마침 사냥을 나가있었다. 자신이 들은 마지막 저주 때문에 사냥을 하지 않았던 그는 하필 부모님이 방문한 날에 오랜만의 사냥을 나간 것이다. 사냥에 실패하여 살기에 가득 차 있던 그는 자신의 침대에서 잠들어 있는 부모님을 알아보지 못하고 아내의 불륜으로 오해하여 부모님을 죽이게 된다. ˝쥘리앵˝이 들은 세번째 예언이 실현된 것이다.

저주에서 벗어나기 위해 고향을 떠났지만 결국 저주가 이뤼지게 되고, 그는 심한 충격 때문에 정처없이 세상을 떠돌아다니게 된다. 그렇다면 어머니가 들은 첫번째 예언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




최근에 관련된 책을 읽어서인지 <순박한 마음>은 ˝오스카 와일드˝의 <행복한 왕자>가, <구호수도사 성 쥘리앵의 전설>은 ˝소포클래스˝의 <오이디푸스 왕>이 떠올랐다. ˝오스카 와일드˝가 ˝플로베르˝보다 동생이기는 하지만... 이 책의 기본배경이 종교이다 보니 읽다보면서 이해가 안되는 부분이 많았다.

그런데 뒤에 있는 해설에서 시대적 배경을 친절하게 잘 설명해주고 있다. <세 가지 이야기>는 ˝플로베르˝가 살던 동시대(순박한 마음), 찬란한 기독교의 시기인 중세(구호수도사 성 쥘리앵의 전설), 그리고 이교도의 시기인 고대(헤로디아) 라는 시대적 배경 속에서 욕망으로 인해 고통받는 삶을 살아야 했던 이야기로,

‘콩트‘라는 형식의 통일성과 ‘성스러운‘ 이야기라는 테마의 통일성이 조화를 이루어, ‘한 시인의 역량으로 창작된 완전무결하고, 완벽한 명작˝이라는 평가를 받았다고 한다.

해설에 있는 이런 극찬을 읽다보니 책을 다시 읽어봐야 겠다는 생각이 든다. 역시 명작은 단순히 읽는것 만으로는 파악할 수 없는건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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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1-10-06 15:46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1등.🖐 ^^

새파랑 2021-10-06 15:58   좋아요 5 | URL
^^ 👍

2021-10-06 21: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10-06 21: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붕붕툐툐 2021-10-06 16:07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2등!! 저도 가끔 느끼는 바입니다. ‘이렇게 대충 읽어서는 왜 명작인지 파악이 어렵구나.‘ 하지만 보통 저는 작품 탓을 합니다~ 하하하하하!!
읽고 싶은 책에 담아두었는데 얼른 읽어보고 싶네용😊

새파랑 2021-10-06 16:14   좋아요 5 | URL
툐토님과의 공감대 형성~! 제가 그냥 죽치고 읽는건 하는데 역사적 배경이 나오는 책은 이해하기 힘들더라구요 ㅎㅎ ‘나는 아직 부족하군‘ 하고 제 탓을 하는데 툐툐님은 책 탓이라니 😆 역시 자애명상의 대가 툐툐님~!!

청아 2021-10-06 16:33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오~일부러 역사 공부를 따로 하지 않아도 고전을 골고루 많이 읽다보면 어느정도 감각은 가지게 되겠네용! 이 리뷰 읽으며 그런 생각이 팍 들었어요ㅎㅎ2번이야기. 어머니가 들은 예언은 마지막에 이뤄지겠죠? ‘맥베스‘ 느낌도 나고 재밌게 읽었습니다🤭 영화로도 괜찮을것 같아요ƪ(˘⌣˘)ʃ미미의예언!

새파랑 2021-10-06 17:24   좋아요 5 | URL
미미님 이제 리뷰만 보고도 작품을 예측하는 기계가 되신거 같아요 😄 해설을 보면 잘쓰여 있어서 좋았습니다~! 모범답지 보는 기분? ㅋ 미미님의 예언대로 이 책도 영화가 나올거 같아요 ^^

페넬로페 2021-10-06 17:41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이 소설은 단편집이군요.
헤로디아는 성경에서 악녀인데 내용이 궁금하네요. 언제나 해설을 읽으면 제 독서의 미약함이 발견되지만 작가들이 반 정도의 해석은 독자에게 맡긴다고 하니 그냥 우리들의 해석과 느낌을 믿어보자구요^^

새파랑 2021-10-06 17:59   좋아요 5 | URL
와우 ˝헤로디아˝가 성경에서 도 악녀였군요. 이 책에서는 왠지 헤로디아를 현대적으로 해석한 느낌이 들더라구요. 전 페넬로페님의 해석과 느낌을 믿습니다 ^^

막시무스 2021-10-06 17:56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전혀 성격이 다른 3편의 단편 묶음이 아니라 형식과 ‘성스러운‘ 이야기라는 테마에서 통일성을 가지고 있는 모양이군요! 일단 플로베르는 보바리부인부터 시작해야 할 듯 합니다. 즐건 저녁시간되십시요!ㅎ

새파랑 2021-10-06 18:00   좋아요 5 | URL
보바리 부인 완전 강추 드립니다~!! 너무너무 재미있어요 ^^ 막시무스님도 저녁에 즐거운 책읽기 하시길 바랍니다~!!

희선 2021-10-07 01:2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읽어보지는 않았지만, 플로베르 하면 《마담 보바리》가 가장 먼저 생각납니다 여기 실린 이야기도 괜찮겠네요 두번째는 《오이디푸스왕》이 생각나네요 예언은 정말 이뤄질지, 거기에서 벗어나려고 하면 좀 낫지 않을까 싶은데...


희선

새파랑 2021-10-07 07:17   좋아요 4 | URL
저도 플로베르 하면 마담 보바리 밖에 몰랐는데 이제 하나가 더 늘어났답니다 ^^ 플로베르는 글을 너무 잘 쓰는거 같아요 ㅎㅎ
책에 나온 예언은 언제나 다 이뤄지는거 같더라구요 ^^

mini74 2021-10-07 09:0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별 다섯개짜리 책을 한꺼번에 두 권 !!! 플로베르의 책이군요. 저도 보바리나 알았지 ㅠㅠ 시대배경이 이래서 중요한 ㅎㅎㅎ 거군요 ~

새파랑 2021-10-07 10:36   좋아요 1 | URL
두책 합쳐도 400쪽이 안되고 자간도 넓더라구요 ^^ 미니님의 배경지식은 천재급이시 문제없음~!!
 

헤로디아는 종교적인 배경이 있어야 더 재미있게 이해할 수 있는 책인것 같다.


<헤로디아>

그녀는 분봉왕이 여론에 못 이겨 혹시 자기를 내쫓지나 않을까 염려했다. 그렇게 되면 모든 것이 끝장이었다! 어려서부터 그녀는 대제국의 주인이 되는 꿈을 키워왔다. 첫 남편을 버리고 이 남자 곁으로 온것도 그 꿈을 이루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이제는 이 남자가 자기를 속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 P115

<헤로디아>

"바빌론 의 딸아, 먼지 속에 가로누워라! 밀가루라도 빻아라! 허리띠를 풀고, 신발을 벗고, 소매를 걷고, 강을 건너라! 네 수치는 드러날 것이며, 네 치욕도 나타날 것이다. 너무도 흐느낀 나머지 네 이빨은 바스러질 것이다! 영원한 신께서 네 죄악을 용서치 않으시리라! 저주받을 여자야! 저주받을 여자야! 암캐처럼 뒈져버려라!" - P134

<헤로디아>

"무슨 소릴 하는 거요.. 무슨 소릴!" 사두개파의 요나타스가 반론을 제기했다. "계율에서 이러한 결혼을 죄라고 비난하긴 하지만, 절대적으로 금지하고 있는 것은 아니오." "그만 두시오! 다들 나한테만 불공평하구리 안티파스가 말했다. 압살롬은 자기 아버지의 부인들과, 유다는 자기 며느리와 암본은 자기 누이와", 롯은 자기 딸들과 잠자리를 같이했잖소." - P135

<헤로디아>

헤로디아는 딸 살로메를 마케루스 성채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교육시켜왔다. 분봉왕이 자신의 딸에게 빠져들게 만들려는 의도였다. 그녀의 생각은 옳았다. 이제 헤로디아의 계략대로 될 것이었다. 이윽고 춤은 채워지길 열망하는 사랑의 절정으로 치달았다. 그녀는 인도의 여사제처럼, 폭포 속의 누비아 처녀처럼, 리디아의 바쿠스 신의 여제관처럼 춤을 추었다. 그녀는 세찬 비바람에 흔들리는 한송이 꽃처럼 온몸을 사방으로 흔들어댔다. 귀에 달린 보석들이 요동치고, 등에 걸친 비단이 영롱하게 반짝였다. 그녀의 팔과 다리와옷에서는 남자들의 가슴에 불을 지르는, 보이지 않는 섬광들이 튀어나왔다 - P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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