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지 말라고 하는데도 가고 싶은 길이 있다. 그만해야 하는 걸 알면서도 멈출 수 없는 길이 있다.
그런 경우가 가끔 있다. 남들은 다 그렇게 하지만 나는 왠지 그렇게 하고 싶지 않고, 그렇게 하는 것이 내 신념과 양심에 맞지 않기 때문에 남들과는 다른 행동을 하게 된다. 내 마음이 꺼려하거나 부끄러운 일은 왠만하면 하고 싶지 않다.
˝조셉 콘라드˝의 <로드 짐>을 읽고 나서 왠지 격한 공감이 들었던 건 주인공 ˝짐˝의 성격과 행동이 ˝나˝와 닮았기 때문이었다. 작가인 ˝콘라드˝는 이 작품에서 ˝짐˝이 보여주는 성격을 ‘로맨틱‘하다고 표현하고 있는데, 정말 정확한 표현인 것 같다. 굽힐줄 모르는 이상주의에 혼자서 모든 고뇌를 짊어지는 ˝짐˝의 성격을 달리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사랑에 있어서만 ‘로맨틱‘이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드넓은 세계를 꿈꾸며 선원이 된 ˝짐˝은 자신이 2등 항해사로 탄 ‘패트너‘ 호에서 자신의 운명을 바꾸게 될 사건을 겪는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칠흑같은 어둠속에서 항해하던 그 배는 어떤 거대한 부유물과 충돌하게 되고, 선원들은 선저에 발생한 충격에 의해 그들이 탄 배가 곧 침몰할 것이라는 오판을 하게 된다. 당시 배에는 구명정 보다 훨씬 더 많은 승객들이 타고 있었고, 선장과 선원들은 자신들만이라도 살기 위해 승객을 내버려 둔 채 배에서 탈출하여 구명정에 타게 된다.
˝짐˝은 그들의 행동에 강한 비겁함과 혐오감을 느끼면서 탈출을 거부하고 배에 남아서 책임을 다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결국 자신의 의지와 반하게 ‘패트너‘호를 탈출하여 구명정에 승선한다. 그러면서도 자신에 대한 합리화를 계속해보지만 그럴수록 자괴감에 빠지게 된다.
[˝되돌아갈 길이 없었습니다. 저는 마치 우물 속으로 뛰어든 듯한 기분이었습니다. 깊이가 한량없는 구멍 속으로 말입니다.˝] 1권 P.171
그런데 이후 그가 탔던 ˝패트너˝호는 침몰하지 않았고, 프랑스 군함에 의해 무사히 예인되어 부두에 입항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선장과 선원들은 자신들만 살기 위해 승객을 버리고 간 파렴치한이 되어있었고, 그들은 해난재판에 회부되어 선원 자격을 박탈당하게 된다. 만약 ˝짐˝이 배에 남아있었더라면, 그래서 배를 지키고 승객들을 무사히 입항시켰더라면 그는 영웅까지는 아니었더라도 자신에게 떳떳한 사람이 되어있을텐데...
[저는 그런 지독히 부당한 일에 굴복하고 싶지 않았다고요. 도대체 그 결과가 어떻게 되었습니까? 저만 꼴사납게 난도질당하고 말았지요. 정말이지 사는 것이 괴롭습니다. 하지만 그걸 회피한다고 해서, 그걸 그런 식의로 회피한다고 해서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건 바른길이 아니었지요. 제 생각으로는, 제가 생각하기로는, 그런다고 해도 아무것도 끝낼 수는 없었을 겁니다.] 1권 P.202
그는 재판장에 서서 모든 수모를 겪게 된다. 그의 오랜 꿈이었던 선원의 박탈보다도 자존심에 상처를 받은게 아마 더 큰 고통이었을거다. 이후 그는 고향에 돌아가지도 못하고, 여기저기 항구를 떠돌아 다니게 된다. ˝짐˝에게는 재능과 매력이 있었고, 어떤 일을 하더라도 아주 잘했지만 그는 어느 한곳에 머물지 못한다.
[그는 너무 섬세하고 섬세해서 아주 불행했던 거야. 조금만 더 거친 성격이었다면 그런 마음고생을 겪지 않았을 것이고, 한숨짓거나 불평하거나 아니면 너털웃음을 웃으며 자신과 화해했을 테니까. 좀 더 거친 성격이었다면 아무 상처를 받을 수 없을 만큼 무지했겠지만, 그런 사람이라면 내게는 전혀 흥미가 없었을 테지.] 1권 P.268
결국 스스로 과거의 사건에 얽매여서 ‘이곳‘ 세상에 어울리지 못한 그는 주변의 도움으로 아무도 자신을 알아보 지 못하는 ‘저곳‘ 세상으로 들어가게 된다. 그곳은 동남아의 오지섬인 ‘파투산‘ 이었다.
[˝왜냐하면 그는 저쪽 세상에서는 살 자격이 없기 때문이오.˝] 2권 P.153
원주민들만 살고 있고, 외부와는 단절되어 있는 ‘파투산‘에서 그는 자신의 재능을 발휘하여 그곳에서 ˝투안 짐˝, 즉 ˝로드 짐˝으로 불리게 된다. 자신의 과거를 알아보지 못하는 곳에서, 다른 사람의 시선을 신경쓸 필요 없는 ‘파투산‘에서 그는 지배자의 위치로 올라서게 되어 다시한번 새로운 인생을 시작한다.
하지만 그의 새로운 인생은 오래가지 못했다. 기존 세계에서 갈데까지 가서 더이상 물러설 곳이 없던 ˝젠틀맨 브라운˝이라는 해적 선장과 일당들이 ‘파투산‘에 침입하게 되고, ˝로드 짐˝은 그들을 물리치지 못하고, 그 결과 원주민 추장의 아들은 해적들로부터 피살되게 된다.
만약 ˝로드 짐˝이 해적일당들을 모두 사살하라고 원주민들에게 명령했더라면 원주민의 피해는 없었을 것이고 그의 지위도 강화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로드 짐˝은 ˝젠틀맨 브라운˝에게서 연민과 동질감을 느끼게 되고, 해적 일행에게 아무짓도 하지말고 섬을 나간다면 목숨을 보장하겠다고 약속을 한다. 하지만 사악한 해적 ˝젠틀맨 브라운˝은 그대로 물러나지 않고 섬을 빠져나가는 척 하면서 원주민들에게 총격을 가한다. 그리고 도망을 친다.
[그들은 짐 자신이 살기에 부적합하다고 여기던 저쪽 세상에서 온 백인들이었고, 그가 버리고 온 세계는 이 백인 사자들과 함께 그를 은둔지까지 뒤쫓고 있었던 것이다.] 2권 P.249
이에 ˝로드 짐˝은 자신의 잘못으로 인해 또 한번 자기가 머물던 세계에 피해를 줬다는 죄책감을 느끼게 되고, 이번에도 역시 도망가기 보다는 이 사태에 책임을 지게 되며, 결국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게 된다. 그는 도망갈 수도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더이상 갈곳도 없었고, 자존심을 버리면서까지 살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었다. 비참한 심정으로 도망지면서 사느니 영광스러운 죽음을 맞겠다는 로맨티스트의 마지막 선택.
[그제야 짐은 이해할 수 있었다. 그는 어떤 충동적인 뛰어내림이라는 사소한 일 때문에 한 세상을 피해 나온 적이 있었는데, 이제는 자기 손수 성취한 과업이 허물어져서 머리 위로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그 자신의 백성들 사이에서 그가 부리는 하인이 안전하게 다니지도 못하게 되다니!] 2권 P.281
<로드 짐>은 상당히 어려운 책이었다. 일단 이야기가 시간 순서대로만 진행되지 않고 섞여 있어서 이해가 쉽지 않았다. 또한 전지적 시점이 아닌 관찰자의 시점으로 쓰여져 있고, 관찰자도 매우 다양하여 주인공인 ˝짐˝에 대해 정확히 알 수 없었다. 책을 읽는 내내 ˝짐˝에 대한 모호함이 가득했고, 독자는 관찰자의 입장에서 ˝짐˝을 상상하고 그의 감정을 간접적으로 추측할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러한 ˝조셉 콘라드˝의 글쓰기는 ‘인간의 복잡한 내면‘을 나타내기 위한 의도된 장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우리가 관찰하고 듣는것 만으로는 인간의 내면을 제대로 알수 없고, 인간의 내면은 안개에 쌓여 있는 불확실한 것이기 때문에 인간의 내면을 이해하는건 원래 불가능하다는 것을 독자에게 말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그를 이해할 수 있었다고 자처하지는 않겠네. 내가 볼 수 있도록 그가 허용해 준 자신의 모습은 짙은 안개속의 갈라진 틈으로 흘낏 보이는 풍경들 같았어. 그 생생하지만 순간적으로 사라지고 마는 세부 광경의 조각들은 한 지역의 전체적인 경치에 대해서 조리 있게 알 수 있도록 해주진 않아. 그 조각들은 호기심을 부추기기만 했을뿐 충족시켜 주지는 않았어.] 1권 P.119
비굴하게 사느니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으며, 마지막에는 죽음을 선택한 ˝짐˝의 모습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그는 진정한 ‘로멘티스트‘ 였다.
ps. <암흑의 핵심>도 너무 좋았고, <로드 짐>도 너무 좋았다. 다만 누군가에게 이 책들이 재미있으니 읽어보라고 추천하지는 못하겠다. 나에게는 너무 어려웠다. 하지만 새로운 스타일의 책을 읽어보고 싶어하는 분들에게는 적극 추천하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