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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짐승 (무선) ㅣ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15
에밀 졸라 지음, 이철의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3월
평점 :
죽을만큼 사랑한다는 말은 어쩌면 나의 사랑을 방해하는 사람을 없애거나, 본인의 죽음도 불사하겠다는 사랑의 극단적 의지를 표현하는 말인지도 모르겠다.
˝에밀졸라˝의 두번째 읽은 작품인 <인간 짐승>은 말 그대로 사랑에 눈이 먼 ‘인간 짐승‘들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다. 이 책에 등장하는 사랑을 갈구하는 모든 사람들은 결국 죽는다. 반면 돈과 명예에 눈이 먼 사람들은 살아남는다. 작가는 인간에게 가장 치명적인 것이 바로 사랑이라는 것을 표현하고자 했던 걸까?
<인간 짐승>에는 기존 소설과 같이 정말 선하거나, 정말 악하거나 하는 일반적인 주인공이 등장하지는 않는다. 다만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세명의 인물, ˝자크˝, ˝루보˝, ˝세브린˝이 사랑에 대한 각자의 사악함과 극단성을 보여준다.
책을 처음 읽었을때는 당연히 ‘루공‘가의 핏줄을 이어 받은 ˝자크˝를 가르키는 말이 ‘인간 짐승‘인줄 알았다. 그러나 책을 다 읽고 나서는 셋 다 ‘인간 짐승‘이라고 불러짐이 마땅하다고 결론지었고, 사실 사람의 본성을 인간과 짐승으로 나누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생각도 들었다.
<인간 짐승>에는 총 네번의 큰 사건을 통해 사랑에 미친 인간의 극단적인 비극성을 그린다.
1. ˝그랑모랭˝의 죽음
부부관계였던 ˝루보˝와 ˝세브린˝은 남편의 왕성한 성욕을 제외하고는 평범한 부부사이였다. 그러던 어느날 남편인 ˝루보˝는 아내인 ˝세브린˝의 단순 후견인 줄 알았던 법원장 ˝그랑모랭˝이 사실은 아내와 내연관계를 유지하고 있었음을, 어릴적부터 그녀를 성착취 했다는걸 알게 된다. 부인을 너무 사랑했던 ˝루보˝는 ˝그랑모랭˝이 살아있다는 걸 견디지 못하고, 결국 아내와 함께 ˝그랑모랭˝을 기차 안으로 유인하여 살해한다. 하지만 부부는 우연을 거듭하면서 살인 용의선상에서 벗어나게 된다. 그러나 부부의 살인사건을 목격한 이가 있으니, 바로 기관사 ˝자크˝였다.
[˝우리 같은 사람들은 돈 때문에 사람을 죽이지는 않아요. 그러려면 다른 동기가 있었어야만 할 거예요. 그런데 우리에게는 그런 동기가 아예 없어요.˝] P.200
2. ˝플로르˝의 죽음
목격자 ˝자크˝를 입막음 하기 위해서 부부는 그에게 의도적으로 접근하고, 이 과정에서 ˝자크˝는 ˝세브린˝에게 사랑을 느끼게 된다. ˝그랑모랭˝의 죽음 이후 ˝루보˝는 부인에 대한 애정이 급격히 식어버리고, 이를 대신하여 도박에 빠지게 된다. 부인인 ˝세브린˝ 역시 남편에 대한 증오가 극에 달하게 되며, 이와는 반대로 ˝자크˝와의 사랑은 더욱 깊어지게 된다.
이러한 사랑을 지켜보던 한 여인이 있었으니 그녀의 이름은 ˝플로르˝였다. 그녀는 ˝자크˝를 죽도록 사랑했으나, 그가 ˝세브린˝과 사랑에 빠지고 난 후 이를 고통스럽게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 그들의 사랑을 지켜보느니 차라리 둘을 죽여버리겠다고 선택한 ˝플로르˝는 ˝자크˝와 ˝세브린˝이 탄 기차의 충돌사고를 유발하여 기차를 탈선시켜 버린다. 그러나 이 사고로 두 사람은 죽지 않고 오히려 다른 많은 사람들이 다치거나 죽게 된다. 이에 큰 죄책감과 좌절감을 느낀 그녀는 결국 지니가는 열차에 뛰어들어 자살하게 된다. 짝사랑에 배신당한 사람의 광기에 의한 비극적인 결말.
[그녀는 너무도 고통스러웠다. 그들을 보고만 있어야 한다는 것, 그들이 그렇게 매주 사랑을 나누러 가는 모습을 보고만 있어야 한다는 것, 그것은 그녀의 한계를 넘어서는 일이었다. 이제 결코 그녀 혼자서 자크를 독차지할 수 없다는 사실이 명백해진 만큼 그녀로서는 그가 사라지고 없는 편이, 더이상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편이 차라리 나았다.] P.437
3. ˝세브린˝의 죽음
기차사고의 충격과 남편인 ˝루보˝의 난봉질에 완전히 질린 ˝세브린˝은 ˝자크˝에게 남편의 살해를 요청한다. 그의 죽음을 자살로 위장하여 다시 한번 완전범죄를 이루고, 상속받은 유산을 이용해 ˝자크˝와의 새로운 시작을 꿈꾸는˝세브린˝ 이었지만, 그녀가 모르는 한가지 사실이 있었으니 그건 바로 ˝자크˝의 여성에 대한 살인 본능이었다.
˝자크˝와 ˝세브린˝은 ˝루보˝를 유인하여 살해하기로 하고 이를 실행에 옮기기 직전에 갑작스럽게 ˝자크˝의 여성 살인 본능이 발휘되고, 결국 ˝자크˝는 그렇게나 피하고 싶었던 ˝세브린˝을 살해하고 도주하게 된다. 사랑으로도 막을 수 없었던 핏줄에 내제된 본능 앞에서 ˝자크˝는 그렇게 굴복하게 된다. 그리고 행복한 미래를 그리던 ˝세브린˝은 이유도 모른 채 갑작스럽게 죽게된다. 새로운 사랑만을 갈구하던 사람의 욕심에 의한 어이없는 결말.
[사람은 합당한 이유에서 살인을 하는 것일까? 아니다. 사람은 피와 신경의 충동 때문에, 옛날 옛적 서로 투쟁했던 기억의 잔존 때문에, 살아남아야 한다는 절박감과 강해졌다는 기쁨 때문에 살인을 하는 것이다. 그에게는 이제 욕구를 채운 나른함만이 남았다. 그는 얼이 빠진 채 스스로 납득할 거리를 찾았지만 자신의 충족된 열정 밑바닥에서 경악과 돌이킬 수 없는 것에 대한 쓰라린 슬픔 말고는 아무것도 찾을 수 없었다.] P.516
4. ˝자크˝의 죽음
다행이라고 해야할지, 불행이라고 해야할지 ˝세브린˝의 타살은 남편인 ˝루보˝의 계획으로 판결되어지고, 그는 죄를 뒤집어 쓴 채 종신형을 선고 받는다. 오히려 ˝자크˝는 사랑하는 내연녀를 잃고 슬퍼하는 모습을 보여주어 주변으로부터 동정심을 얻게 된다. 사랑하는 사람을 본인이 살해하여 상실하게 된 ˝자크˝는 그녀를 정말 죽이고 싶을 정도로 사랑했던걸까?
이제 완전한 짐승이 된 ˝자크˝는 자신의 오랜 동료이자 함께 호흡을 맞춰온 화부 ˝페쾨˝의 내연녀와 바람을 피우게 되고, 이에 질투를 느낀 ˝페괴˝는 만취한 상태에서 기차에 올라 타 ˝자크˝와 몸싸움을 벌이게 되며, 결국 둘은 기차 밖으로 떨어져서 죽게 된다. 그리고 기관사가 없는 기차는 멈출 수 없는 질주를 이어간다. 질투에 눈이 먼 사람의 분노에 의한 비참한 결말.
[기차에서 함께 떨어진 두 사람은 어마어마한 속도의 반작용으로 기차 바퀴 밑으로 빨려들어가 한 덩어리로 으스러지고 짓이겨졌다. 그토록 오랜 시간을 형제처럼 지내온 그들은 그렇게 서로를 껴안은 채 참혹한 최후를 맞았다.] P.568
이 작품에는 살인, 자살, 복수, 위증 등 범죄들이 난무하는데, 범죄의 원인 대부분은 사랑과 질투였다. 이전에 읽었던 <목로 주점>에 비해 정치적 풍자도 다소 적고, 전반적으로 어두운 분위기 이며, 유머포인트도 별로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악한 본성에 대한 통찰은 한층 날카롭다. 모든 등장인물들이 분노하고 있는 흔치 않은 작품으로 행복해 보이는 사람은 단 한명도 없었다. 그래서 그런지 이 책의 제목으로 <인간 짐승>이 정말적절하다는 생각이 든다.
Ps. 에밀 졸라의 다음 작품으로 <나나>를 읽어야 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