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가 끝나면 꿈을 꿔. 꿈을 꿔, 그러면 그것이 현실이 될지도 몰라. 세상이란 절대 보이는 것만큼 나쁘지 않아, 그러니까 꿈을 꿔, 꿈을, 꿈을...˝
너무 완벽하고 행복하게만 보이는 사람에게도 말못할 아픔이 있을 것이다. 언제나 최고로 추앙받고, 다 가진 것처럼 보이는 사람도 언제나 행복하기만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보여지는게 전부는 아니다. 중요하고 위험한건 결코 밝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산다는 것은 사람들을 오해하는 것이고, 오해하고 오해하고 또 오해하다가, 신중하게 다시 생각해본 뒤에 또 오해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서 우리는 우리가 살아 있다는 것을 안다. 우리가 틀렸다는 것을 알면서. 어쩌면 사람들에 관해서 맞느냐 틀리느냐 하는 것은 잊어버리고 그냥 흘러가는 대로 사는 것이 최선인지도 모른다.] 1권 P.62
˝필립 로스˝의 미국 3부작의 첫번째 작품인 <미국의 목가>에는 모든걸 다 가진, 완벽한 사람처럼 보였던 ˝시모어 레보브˝의 인생과 가정이 어떻게 나락으로 떨어졌는지를 적나라하게 그리고 있다.
˝시모어 레보브˝는 유대인 출신의 미국인으로 그의 별명이자 애칭은 ˝스위드˝였다. ˝스위드˝의 뜻은 ‘스웨덴 사람‘으로, 일반적인 유대인들과는 다르게 눈이 파랗고 머리카락은 황금빛이며 바이킹 같이 생겼기에 붙혀진 별명이다. 한마디로 잘생기고 운동도 잘하고 집에는 돈도 많은 엄친아였다. 갑자기 잘 생겼다고 하니 ‘벨 아미(잘생긴 친구)‘가 떠오른다.
[스위드 레보브의 삶은, 내가 아는 한, 매우 단순하고 매우 평범했으며, 따라서 딱 미국인의 기질에 맞게 훌륭했다.] 1권 P.53
이 책의 화자는 ˝주커먼˝으로, 직업은 작가다. ˝주커먼˝은 어린시절에 이웃에 살던 ˝스위드˝를 너무나 동경했었는데, 50여년이 흐른 후 어느날 우연히 둘은 마주치게 되어 과거를 회상하게 되고, 이후 ˝스위드˝는 ˝주커먼˝에게 돌아가신 자신의 아버지에 대해 글을 써달라는 부탁이 담긴 편지를 보낸다.
이후 약속을 잡고 어느 식당에서 다시 만난 두사람, 하지만 ˝스위드˝는 ˝주커먼˝에게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는 별로 하지 않고, 자신이 살아왔던 행복했던 이야기를 그에게 들려준다. 이야기를 들으면서 ˝주커먼˝은 ˝스위드˝가 무언가 큰 아픔을 가지고 있지만 그에게 밝히지 않고 있음을 눈치챈다. 그리고 어쩌면 ˝스위드˝는 자신의 아픔을 말하고 싶었기에 그에게 편지를 쓴거라고 생각한다.
고등학교 졸업 45주년 동창회에 참가한 ˝주커먼˝은 그곳에서 ˝스위드˝의 동생인 ˝제리˝를 만나게 되고 ˝주커먼˝은 ˝제리˝에게 충격적인 두가지 이야기를 듣는다. 첫번째는 이틀전에 ˝스위드˝가 죽었다는 것, 두번째는 ˝스위드˝의 딸인 ˝메리˝가 폭탄 테러범이었고, 딸 때문에 그의 인생과 가정이 박살났다는 것이었다.
[만일 자신에 대한 의문이 인생에서 너무 일찍 찾아오는 것보다 나쁜 게 있다면 그건 그게 너무 늦게 찾아오는 거야. 형의 인생은 폭탄에 의해 박살나버렸어. 그 폭발의 진짜 피해자는 시모어야.] 1권 P.111
너무 완벽해 보였던 그의 인생에서 가장 큰 아픔은 바로 딸이었던 것이다. 딸인 ˝메리˝는 어떻게 해서 테러리스트가 된 것일까? 그렇게 완벽한 가정에서 어떻게 그녀와 같은 인물이 나왔던 걸까? 이 행복해 보이던 가정은 어떻게 박살난 것일까?
작가인 ˝주커먼˝은 자신이 보고 들은 것을 바탕으로 작가의 상상력을 동원하여 ˝스위드˝의 인생을 소설로 재구성한다.
너무 완벽해서 유대인을 벗어난 유대인 이라 불렸던 ˝스위드˝는 미스 뉴저지 출신의 카톨릭교도 ˝드와이어˝와 결혼을 해서 딸 ˝메리˝를 얻는다. 부부는 딸을 애지중지 키우는데 특히 아빠인 ˝스위드˝의 딸에 대한 애정은 엄청났다. 그런데 고등학생이 된 그녀는 부모님이 걷고 있던 전형적인 미국인의 삶에 대해 거부감을 가지게 되고, 전형적으로 사는 부모님을 증오하며, 반전주의에 눈을 뜨게 되는데, 결국 베트남 전쟁을 중단시키겠다는 뜻을 보이기 위해 우체국을 폭파시키고, 이 사고로 주변에 있던 의사 한명이 사망하게 된다.
[다음 세대의 성공적인 레보브가 되는 데는 아무런 관심이 없고, 정떨어지게 분노에 찬 말이나 뱉어내는 딸, 도망자처럼 숨어 있던 곳에서 스위드를 몰아내 또다른 미국으로 완전히 보내버린 딸, 스위드 특유의 유토피아적 사고 형태를 완전히 박살내버린 딸과 그 십 년의 세월, 스위드의 성으로 침투해 그곳에 있는 모든 사람을 감염시킨 미국이라는 전염병, 그토록 갈망하던 미국의 목가로부터 스위드를 끌어내 그 대립물이자 적인 모든 것 속으로, 분노, 폭력, 반목가의 절망 속으로, 미국 고유의 광포함 속으로 집어넣은 딸.] 1권 P.139
폭파사건 이후 ˝메리˝는 종적을 감추게 되고, ˝스위드˝는 애타게 딸을 찾아다니며, 어머니인 ˝드와이어˝는 큰 마음의 상처를 입게 된다. 하지만 ˝스위드˝는 딸을 미워하지 않는다. 어떻게든 이해하려고 하고 간절히 찾기를 원하며, 자신의 딸이 결코 폭파사건을 일으킨게 아니고 다른 배후세력에 의해 이용당한 거라 믿는다. 너무나 전형적이고 이상적인 아버지의 태도를 보여주는 ˝스위드˝를 어느 누가 욕할 수 있을까? 이러한 아버지를 위선적이라고 비난하는 딸 ˝메리˝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우리 똑똑한 유대인 애들이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하느님 맙소사, 부모들이 이제 잠시 억압을 안 당하나 했더니, 아이들이 억압이 있는 곳을 찾아 달려가다니, 억압 없이는 살 수가 없는가보구나. 한때는 유대인들이 억압을 피해 달아났는데, 이제는 억압이 없는 걸 피해 달아나잖아. 한때는 가난을 피해 달아났는데, 이제는 부를 피해 달아나잖아. 미친 짓이야. 부모는 너무 잘해줘서 도저히 미워할 수 없으니까 대신 미국을 미워하는 거야.] 2권 P.44
이후 딸을 찾으려는 ˝스위드˝의 노력은 계속되나 딸에 대한 감정과 연민은 의심과 원망으로 점점 변해간다. 부인은 가정 외적인 것에 과도하게 집착하다가 결국 외도를 한다. ˝메리˝가 폭파시킨 건 미국이 아니라 ˝스위드˝의 가정과 안생이었다.
[그래, 그들의 요새는 금이 갔다. 여기 멀리 떨어진, 안전한 올드림록에서도, 이렇게 한번 벌어진 이상, 다시는 아물지 않을 것이다. 절대 회복되지 않을 것이다. 모든 것이 그들에게 맞서고 있었다. 그들의 삶을 좋아하지 않는 모든 사람, 모든 것이 맞서고 있었다. 외부에서 들려오는 모든 목소리가 그들의 삶을 비난하고 거부하고 있었다.] 2권 P.288
단지 목가적인 삶을 원했던 ˝스위드˝, 자신의 사업체를 잘 운영하고 시골에서 가족과 함께 한가로이 살려고 했던게 그렇게 큰 잘못이었던 걸까? 아니면 개인이 해결할 수 없는 사회문제에 무관심 한게 그렇게 큰 잘못이었던 걸까? 시대의 흐름과 비극에 휘말려서 자신의 모든걸 잃어버리게 된 한 사람의 처절한 인생 이야기인 <미국의 목가>는 결코 이웃나라인 미국에만 한정된게 아닌, 우리에게도, 나에게도 닥쳐올수 있는 잠재된 비극이라는 생각이 든다.
<미국의 목가>는 액자식 소설에다가 다양한 인물, 다양한 이야기들이 등장하여 다소 복잡하게 느껴지지만, 마지막에는 이 모든 것이 하나로 합쳐져서 비극성을 극대화 하는 마무리를 보여준다. 그래서 다 읽고 나서는 작가의 구성과 필력에 감탄할 수 밖에 없었다. 또한 중간중간에 등장하는 ˝필립 로스˝식의 인상적인 문장과 유머는 이 작품이 그의 최전성기 시절에 쓰여진 작품이라는 걸 느끼게 해준다.
작품들을 읽으면 읽을수록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되어지는 ˝필립 로스˝, 지금까지 내가 읽은 그의 다섯 작품(전락, 죽어가는 짐승, 에브리맨, 울분, 미국의 목가) 중 안좋았던 작품은 없었다. 그런데 더 중요한건 아직 내가 읽지 못한 그의 작품이 많다는 것이다. 그래서 왠지 행복하다. 다음 작품은 <나는 공산주의자와 결혼했다>를 읽어야 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