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네 마음과 내 마음은 대체 어디까지 통하고 있고 어디서부터 떨어져 있을까?˝
살아가면서 가장 알 수 없는건 어떤걸까? 우주의 신비? 인체의 신비? 주식과 부동산 시장의 전망? 나는 단연코 인간의 마음이라고 생각한다. 한 사람이 한 사람의 마음을 절대로 알 수 없다. 아무리 가까워지 더라도, 그 사람과 오래 같이 지내더라도, 예전보다 더 알 수는 있겠으나 완벽히 아는건 불가능하다. 아니 사이가 가까워지고 오래될수록 더 알 수 없게 될 수도 있다. 미쳐 알지 못했던 마음이 있음을 알게 될지도 모른다. 그만큼 알기 힘든게 사람의 마음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놓는 다리는 없다.] P.375
이러한 마음의 어려움을 별로 신경쓰지 않는 사람들은 인간관계를 힘들어 하지 않고, 아닌걸 알면 쉽게 마음을 접으며, 어디서든지 무난하게 그리고 행복하게 살아갈지도 모른다. 이 책의 주인공이자 동생인 ˝지로˝ 처럼 말이다.
[˝형님한테 제가 이런 말을 하면 무척 실례가 될지도 모르지만, 남의 마음 같은 건 아무리 학문을 한다고 해도, 연구를 한다고 해도 이해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해요. 형님은 저보다 뛰어난 학자니까 물론 그걸 알고 있겠지만, 아무리 가까운 부모 자식이라고 해도, 형제라고 해도 마음과 마음은 그냥 통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 뿐이고 실제로 상대와 자신의 몸이 떨어져 있는 것처럼 마음도 떨어져 있는 거니까 어쩔 도리가 없는 일 아닐까요?˝] P.139
하지만 모든 사람이 그런건 아니다. 속칭 예민한 사람들은 상처받을까봐, 버림받을까봐 쉽게 마음을 열지 못하고 이를 들키지 않기 위해 겉으로는 강한 척을 한다. 먼저 다가가지 않는다. 그러면서 상대방의 마음을 궁금해한다. 이러한 궁금증이 사랑이라면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도 있지만, 괴로움이라면 격한 의심에 빠질 것이다. ˝지로˝의 형인 ˝이치로˝ 처럼 말이다.
[˝책을 연구한다거나 심리학적인 설명을 한다거나 하는 그런 번거로운 연구를 말하는 게 아니잖아. 지금 내 눈앞에 있고 가장 가까워야 한 사람, 그 사람의 마음을 연구하지 않고서는 안절부절못할 만큼의 필요성에 맞닥뜨린 적이 있느냐고 묻는 거야.˝] P.137
아내인 ˝나오˝의 마음을 얻을 수 없었고, 남편인 자신에게만 어쩐지 차갑게 대한다고 느낀 형 ˝이치로˝는 그녀의 마음에 대해 미칠듯한 의혹과 불신을 갖게 되고, 결국 아내와 사이가 좋은 동생 ˝지로˝를 의심하게 된다. 그녀가 사랑하는 건 자신이 아니라 동생이라고 말이다. 그러면서 동생에게 자신의 아내와 함께 하룻밤을 보내면서 정조를 시험해 달라고까지 요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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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수님한테 무슨 일 있어요?˝ 나는 어쩔 수 없이 형에게 되물었다.
˝나오는 너한테 마음이 있는 게 아닐까?˝
형의 말은 너무나 갑작스러웠다. 또한 평소 형이 지니고 있는 품격 에도 맞지 않았다.
˝어째서요?˝
˝어째서냐고 물으면 곤란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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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형인 ˝이치로˝ 의심은 타당한 것이었을까? 동생인 ˝지로˝는 정말로 형수님에 대한 마음이 아주 조금이라도 없었을까? 아내인 ˝나오˝는 왜 자신의 남편에게만 더 거리를 두는 걸까? 그녀는 어떤 마음을 가지고 있던걸까? ˝지로˝ 역시 전혀 알수 없는 형수님의 마음을 궁금해 하기는 마찬가지다.
[˝어떤 서간에서 그 사람은 이런 말을 했어. 나는 여자의 용모에 만족하는 사람을 보면 부럽다. 여자의 몸에 만족하는 사람을 봐도 부럽다. 나는 무슨 일이 있어도 여자의 영혼, 이른바 정신을 얻지 못하면 만족할 수 없다. 따라서 아무리 해도 내게는 연애 사건이 일어나지 않는다.˝] P.138
아내에 대한 의심이 극에 달할수록 ˝이치로˝는 신경쇠약에 빠지게 되고, 결국 ˝지로˝와 가족들의 도움으로 ˝이치로˝는 지인인 H씨와 함께 요양차 여행을 떠나게 된다. 그리고 H씨는 ˝지로˝에게 편지를 보내어 ˝이치로˝와 겪은 일상을 편지로 알려준다. 그리고 현재 형의 상태가 심각하다는 경고를 한다.
[˝형님이 괴로워하는 것은 그가 뭘 해도 그게 목적이 되지 않을뿐 아니라 수단조차 되지 않는다고 생각해서네. 그냥 불안한 거지. 그러니 가만히 있을 수 없는 거네. 형님은 차분히 누워 있을 수 없으니까 일어난다고 하네. 일어나면 그냥 일어나 가만히 있을 수 없으니까 걷는다고 하네. 걸으면 그냥 걷고 있을 수 없으니까 달린다고 하네. 이미 달리기 시작한 이상 어디까지 가도 멈출 수 없다고 하네. 멈출 수 없는 것뿐이라면 그래도 괜찮겠지만 시시각각 속력을 높이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하네.˝] P.363
[구름에 싸인 태양을 보고 왜 따뜻한 빛을 주지 않느냐고 다그치는 것은 그렇게 다그치는 쪽이 억지일 걸세. 나는 이렇게 함께 있는 동안 가능한 한 형님을 위해 그 구름을 걷어내려 하고있네. 자네나 어르신들도 형님에게 따뜻한 빛을 바라기 전에 우선 형님의 머리를 에워싸고 있는 구름을 걷어내주는 게 좋을 걸세. 만약 그걸 걷어낼 수 없다면 가족인 자네나 어르신들에게 슬픈 일이 생길지도 모르네. 형님 자신에게도 슬픈 결과가 되겠지.
나도 슬플 거네.] P.413
이 책의 주인공이자 화자는 동생인 ˝지로˝이지만 개인적으로는 형인 ˝이치로˝를 중심으로 책을 읽어 나갔다. 그가 느꼈을 고독, 의심, 괴로움, 절망이 ˝지로˝의 서술을 통해 고스란히 느껴졌다. 왜 사람들은 상대방의 마음 때문에 고통을 느끼는 걸까? 절대로 알 수 없는 상대방의 마음은 왜 알고싶은걸까? 마음에 대한 궁금증은 언제나 미스테리다.
<친구>, <형>, <돌아오고 나서>, <번뇌>의 4개의 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서로 상반대는 특징의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하여 사람의 마음이라는게 얼마나 다양하고 이에 따라 얼마나 다양한 인생을 살아가는지를 보여준다. 결코 특정 지을 수 없는 인간의 마음, 그래서 인간관계가 흥미로운지도 모른다.
이 책을 읽고나니 자연스럽게 소세키의 다음 작품인 <마음>을 재독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북플을 하기전에 읽은 책이여서 기록된게 없다보니 내가 어떤 감상으로 읽었는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왠지 새로운 관점으로 <마음>을 읽을 수 있을것 같다. 사람이 사람 때문에 얼마나, 어떻게 극단적으로 고독해질 수 있는지를 소세키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약간 무십기까지 하다.
PS 1. 소세키의 장편 열네작품 중 여덟작품을 읽었다. 50퍼센트를 돌파했다. 소세키 작품도 꼭 완독해봐야 겠다.
PS 2. 지금까지 읽은 소세키 작품 중 <행인>이 가장 좋은 것 같다. 왠지 최근에 읽은 작품으로 계속 바뀌는 것 같긴 하지만... 개인적인 취향으로는 초기작 보다는 연애 3부작과 에고 3부작이 확실히 좋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