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마음속에 자리한 것 가운데 복수의 칼날처럼 큰 것도, 작은 것도 없다네. 아무리 평범한 사람일지라도 그들이 품는 복수의 칼날만큼 대담하고 창조적인 건 없어. 또한 아무리 세련된 사람일지라도 그들이 품는 배신의 칼날만큼 무자비하고 창조적인 건 없다네.˝



<나는 공산주의자와 결혼했다>는 필립 로스의 미국 3부작 중 두번째 작품으로, 한 사람이 세상으로부터 매장당하는 과정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작품이다.


이 작품이 쓰여진 1950년대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것처럼 미국과 소련의 이데올로기 대결이 극에 달한 시기였다. 당시 미국에서 경쟁자를 매장시키기 위해서, 한 사람을 사회에서 지워버리기 위해서는 진실이 필요하지 않았다, 단 한가지의 낙인만 있으면 가능했다. ‘저 사람은 공산주의자다‘ 라고.


<매커시즘 : 반공주의 성향이 강한 집단에서 정치적 반대자나 집단을 공산주의자로 매도하려는 태도로 1950년대 미국의 상원의원 매카시가 국무부의 진보적 인사들을 공산주의자로 규정한 발언을 한 데서 비롯됨>


당시 미국사회를 휩쓴 ‘매커시즘‘이 <나는 공산주의자와 결혼했다>의 주요 테마다. 이야기는 화자인 ˝네이선 주커먼˝이 자신의 고등학교 시절 은사인 ˝머리 린골드(90살)˝를 현재시점인 1997년에 우연히 만나게 되어 그와의 대화로 시작한다.


˝머리 린골드˝ 에게는 동생이 한명 있는데 그의 이름은 ˝아이라 린골드˝로, 고등학교 시절  작가를 꿈꾸던 ˝네이선˝은 그의 급진적인 사상에 매료되어서 그를 따랐고, ˝아이라˝ 역시 ˝네이선˝을 데리고 다니면서 그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하지만 이후 ˝아이라˝는 주변의 고발에 의해 ‘공산주의자‘로 낙인 찍혔고, 결국 사회로부터 매장당한다.

[트루먼 씨가 국민에게 이 나라는 공산주의가 큰 문제라고 말하면, 국민들은 그 말을 믿는 이 잘나빠진 나라 때문에 정말 화가 나. 인종차별도 불평등도 문제가 안 돼. 공산주의가 문제라고, 사만 명, 육만 명, 십만 명밖에 안 되는 공산주의자가 문제라고, 그들이 인구가 일억 오천만인 이 나라를 전복시킬 거라고. 내가 바본 줄 아오? 이 빌어먹을 나라가 무엇 때문에 망해가고 있는지 얘기해볼까? 유색인종에 대한 차별, 노동자에 대한 차별 때문이오. 우리나라를 망치는 건 공산주의자가 아니오. 우리나라는 인간을 짐승처럼 취급하는 차별 때문에 저절로 망해가는 거야!]  P.217



이 작품은 ˝아이라˝가 어떻게 성장을 했고, 어떻게 성공을 했으며, 어떻게 무너지게 되고, 어떻게 매장당했는지, 그리고 ˝아이라˝의 주변 사람들이 어떻게 고통을 받았는지를 다음과 같은 형태로 보여준다.

1. 현재의 ˝머리˝가 ˝네이선˝에게 들려주는 ˝머리˝와 ˝아이라˝에 대한 이야기.
2. 과거의 ˝아이라˝가 ˝네이선˝에게 들려주는 ˝아이라˝ 자신에 대한  이야기.
3. 과거와 현재의 ˝네이선˝이 ˝아이라˝와 ˝머리˝를 관찰하고 느낀 이야기



이 작품의 줄거리를 연도별 흐름으로 간략히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이렇게 정리한 이유는 이 책의 구성이 시간의 흐름으로 되어 있지 않아서 다소 햇갈릴 수 있기 때문에, 처음 읽는 독자의 이해에 도움이 될까 해서이다. 나만 이해를 못한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1945년 : ˝아이라˝ 군 제대 후 ˝오데이˝라는공산주의자와 함께 지내면서 노동자로 일함. 그에게서 정치철학과 사회 철학, 글쓰는 방법을 배움

1946년 : ˝머리˝ 선생님 군 제대 후 선생님으로 근무하면서 ˝네이선˝과 처음으로 만남

1948년 : ˝네이선˝은 ˝머리˝의 집 근처에서 우연히 그의 동생인 ˝아이라˝와 만남. 이후 친해지게 됨. ˝아이라˝는 당시 라디오 작가이자 링컨 웅변가로 인지도가 높았고, 당시 인기 스타였던 여자 성우인 ˝이브˝와 막 결혼한 상황이었음

1949년 ~ 1951년 : 생활과 사상이 너무 상반되는 두사람의 결혼은 처음부터 위태로웠음. 미국의 전복을 꽤하는 공산주의자는 아니었지만 ˝아이라˝의 사상은 상당히 진보적이었고, 당시 이데올로기와 반공주의의 광풍속에서 그의 위치는 위태로웠음. 그리고 부인인 ˝이브˝는 ˝아이라˝와의 결혼이 네번째로, 그녀는 유대인이지만 이 사실을 감추고 유대인을 증오했으며, 자신의 딸인  ˝실피드˝에게 정신적 착취를 당하고 있었음. ˝실프드˝는 자신의 삶을 황폐하게 만든, 안정적인 가정을 만들지 못하는 자신의 엄마에 대한 증오심이 극에 달함

1952년 : ˝아이라˝와의 갈등이 극에 달한 ˝이브˝는 주변인들의 부추김에 <나는 공산주의자와 결혼했다>라는 책을 출판함(반공주의자인 ˝그랜트 부부˝가 대필함). 이후 ˝아이라˝의 주변인들은 ‘매커시즘‘에 휩쓸려서 ˝아이라˝가 정말로 공산주의자가 맞다고, 국가를 전복하기 위한 수상한 움직임을 보였다고 고발함. 그 결과 ˝아이라˝는 사회로부터 완전 매장당하고, ˝아이라˝의 형인 ˝머리˝ 역시 공산주의자의 가족이라는 이유로 사회로부터 차별을 당함.

[단 한 방에 이브는 아이라의 삶을 몰개성적 삶으로 만든 동시에 공산주의라는 유령에게 인간의 얼굴을, 그것도 자기 남편의 얼굴을 씌워준 거야. 난 공산주의자와 결혼했다. 공산주의자와 잠을 잤다, 공산주의자가 내 아이를 괴롭혔다.]  P.456



1997년 : ˝네이선˝과 ˝머리˝는 한 강좌에서 우연히 만나게 되고, 그동안의 ˝머리˝와 ˝아이라˝의 굴곡진 삶에 대해 듣게 됨



작가인 ˝필립 로스˝는 <나는 공산주의자와 결혼했다> 라는 책을 통해 이데올로기와 반공주의의 광풍 속에서 이곳에도 속하지 못하고 저곳에서도 버림받은 한 사람의 전락을 날카롭게 그리고 있는데, 특히 장대한 서사와 이야기를 풀어가는 측면에서는 전작인 <미국의 목가>보다 더 재미있었다. 상당한 분량이어서 선뜻 책을 선택하기 쉽지 않았지만 다 읽고 나서는 아주 만족스러운 작품이었다.



잘나가는 사람이 다소 날조된 선동으로 인해 쉽게 무저지는 모습은 예전 시대에만 한정된건 아니다. 오히려 정보전달이 너무나 빠른 현 시대에 이러한 광풍을 더 쉽게, 더 자주 볼 수 있다. 한 사람의 인생을 포장하는 것도, 전락 시키는 것도 한순간이다. 시간이 지나면 그것이 진실이었는지, 거짓이었는지는 중요하지 않게 된다. 현상을 바라보는 냉철하고 객관적인 시각이 어느때보다 필요한 요즘이다.


Ps 1. 다음 읽을 필립 로스의 책인 <휴먼 스테인> 이다. 미국 삼부작을 완결해 보자.

Ps 2. 야금야금 읽다보니 이제 필립 로스의 여섯작품, 일곱권을 읽었다. 아직 안읽은 그의 작품이 많아서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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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21-12-13 11:1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새파랑 님 필립 로스 읽기 여섯 작품이나! 계속 응원합니다. 페이퍼도 계속 기대할게요. 작가의 배신과 복수의 칼날에 대한 예리한 통찰, 문장이 서늘합니다. 오늘 날씨 추워요. 따뜻하게~^^

새파랑 2021-12-13 11:27   좋아요 3 | URL
오늘 날씨가 많이 춥네요 ㅜㅜ 프레이야님도 감기 조심하시고 산뜻한 한주 시작하길 바라겠습니다 ^^
아직 구매해 놓고 안읽은 작품이 네편 있어서 행복하네요 😆

페넬로페 2021-12-13 11:42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필립 로스의 작품이 새파랑님께 얼마나 좋으면 아직 읽지 않은 책이 있어 행복하다고 할까요~~
미국의 매카시즘 열풍에 대한 에피소드를 대하면 인간 하나 매장시키는것이 그렇게 쉽다는 걸 알수 있겠더라고요^^
연도별 정리 캡쳐 해두었어요.
이 책 읽을 때 참조할께요**

새파랑 2021-12-13 12:10   좋아요 3 | URL
필립로스가 글을 시원시원힌게 잘 쓰는거 같아요. 이야기도 재미있고요 ㅋ
제가 이 책을 4일 동안 읽어서인지 이야기가 햇갈려서 연도별로 한번 정리해 봤어요 ㅋ 도움이 되시면 좋겠습니다 ^^

Jeremy 2021-12-13 12:5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제가 읽은 영문책에서는 p. 284 에 나오는 구절인데
정말 미쳤다고 밖에 말할 수 없는 McCarthyism 광풍과
집단 Panic 내지 생각없이 휘둘리는 대중의 어리석음에 대한
통찰과 조소와 일침 중에서도 손 꼽힐 만한 글이라고 생각합니다.
새파랑님도 어디쯤에서 읽으셨는지 바로 생각나실 것 같아요.

“But that’s what happens.
Once the human tragedy has been completed,
it gets turned over to the journalists to banalize into entertainment.
Perhaps it’s because the whole irrational frenzy burst right through our door
and no newspaper’s half-baked insinuating detail passed me
by that I think of the McCarthy era as inaugurating the postwar triumph of gossip
as the unifying credo of the world’s oldest democratic republic.
In Gossip We Trust. Gossip as gospel, the national faith.
McCarthyism as the beginning not just of serious politics
but of serious everything as entertainment to amuse the mass audience.
McCarthyism as the first postwar flowering of the American unthinking
that is now everywhere.”

특히 In God We Trust 의 Parody 부분, 너무나 pathetic.
In Gossip We Trust. Gossip as gospel, the national faith.

“Human Stain” 은 제 생각엔 “I Married a Communist.” 보다
더 잘 쓴 책이라서 새파랑님도 좋아하실 것 같습니다.

대단하신 Joseph McCarthy 때문에 1953 년에
Arthur Miller 는 “The Crucible” 을 썼고
Ray Bradbury 는 “ Fahrenheit 451˝ 을 쓰게 되었으니
McCarthy, 나름 엄청나게 문학계에 공헌?


새파랑 2021-12-13 13:05   좋아요 3 | URL
휴먼 스테인이 더 대단하다고 해서 기대가 됩니다~! 매커시가 그래도 문학에 공헌한 바가 크네요 ㅋ
Jeremy님의 글을 열심히 독해하고 있어요 😅 토익 지문 보는 느낌이 드는군요 ㅎㅎ 휘둘리는 대중에 대한 그의 일침이 인상적인 작품이었어요 ^^

Jeremy 2021-12-13 13:24   좋아요 2 | URL
괜히 시험보는 것처럼 독해하실 필요는 없고
이게 chapter 8 초반부에 나오는 부분이니까
이 부분에 해당되는 걸 책에서 찾으시면 됩니다.

매커시가 문학에 공헌한 바는 이게 다가 아니랍니다, ㅜㅜ.
무진장 많은 저항과 비판과 조롱과 Dystopian 문학 탄생!


새파랑 2021-12-13 13:27   좋아요 2 | URL
이따 집에 가서 답을 찾아보겠습니다 ^^ 매커시가 탄생시킨 다른 작품도 접해봐야 겠어요~!!

청아 2021-12-13 12:5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작품도 꼭 읽어야겠네요!! 연도별로 정리하신것 신박합니다😆👍매커시즘은 우리나라 정치에서 아직도 은근히
활용되는듯해요. 저는 미국 삼부작을 읽을때 이 책부터 시작해야겠어요ㅎㅎ

새파랑 2021-12-13 13:07   좋아요 2 | URL
뒤에 해설(답지)이 없어서 나름 정리해 봤어요 ^^ 좀 많이 부실하지만 ㅎㅎ
혹시 미국 삼부작 읽으시면 저처럼 순서대로 읽으세요 ㅋ 미미님의 읽기가 기대됩니다 😆

coolcat329 2021-12-13 13:4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있어요. 미국의 목가보다 재밌군요~~나중에 읽을 때 새파랑님 정리 참고하면 좋겠어요.

새파랑 2021-12-13 14:08   좋아요 1 | URL
미국의 목가는 자식(?)문제 인데, 공산주의자는 이념(?)문제여서 더 재미있더라구요. 두 작품 다 미국사회에 대한 분노가 잘 나타나 있지만 ^^

Falstaff 2021-12-13 13:5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오래 전에 읽어서.... 헷갈리는데, 이 책 속에 제일 자주 거론하는 책이 토마스 페인의 <상식>인가요?

새파랑 2021-12-13 14:11   좋아요 1 | URL
역시 오래전에 읽으셨군요 ㅋ 토마스 페인이 누구인지 몰 라서 책에서 관심있게 못본거 같아요. 도스토예프스키는 나왔던거 같은데 😅
제가 한번 찾아보겠습니다~!!

mini74 2021-12-13 14:3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새파랑님 필립로스에 진심이신 분 ㅎㅎ 저도 이 책 궁금하네요. ~

새파랑 2021-12-13 16:00   좋아요 1 | URL
필립로스는 완전 진심이죠 ^^ 후기작들도 매력있는데, 미국 3부작도 색다른 느낌이 있어요~!!

페크pek0501 2021-12-13 17:1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발 빠르신 행보에 응원군도 많고요... 방문자 수도 많고요. 댓글 수도 많고요.
진도를 알 수 없는 이 행보에 새해엔 저도 동참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결심했어요. 새해엔 부지런해지기로...
새파랑 님의 기를 받아야징...ㅋㅋ

새파랑 2021-12-13 20:43   좋아요 1 | URL
이 책 좀 오래잡고 읽었어요 😅 제가 아직 초보여서 많은 분들이 격려를 해주시는거 같아요 ^^
페크님은 원래 부지런하시니까요~!
새해에는 더 많은 페크님의 글을 기대하겠습니다 ~!!

독서괭 2021-12-13 23:1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와 많이 읽으셨네요~ 그런데도 아직 많이 남아있다니 다작의 작가네요^^ 혐오와 차별이라는 테마는 어느 시대에나 통용되는 것 같습니다.

새파랑 2021-12-13 23:39   좋아요 2 | URL
필립 로스 책 아직 절반도 못읽은거 같아요 😅 차별은 그시절도 그렇고 아직까지도 있는거 같아요. 언제쯤 차별없는 세상이 올까요 ㅜㅜ

모나리자 2021-12-13 23:4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필립 로스는 미국 현대 문학의 거장이라고 하는데 벌써 많이 읽으셨네요.
대단하세요. 읽으시는 속도도 빠르시고..ㅎ 푹 빠지신 것 같은데요.
전작 완독하시길 응원할게요. 새파랑님.^^

새파랑 2021-12-14 07:49   좋아요 2 | URL
언제나 한 작가만 몰아서 읽기를 해서 그런거 같아요 ㅋ 완전 빠졌습니다~!! 응원 감사합니다 😆

그레이스 2021-12-14 16:3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이렇게 필립로스 열풍이 새파랑님의 서재로부터 시작되구요~~

새파랑 2021-12-14 17:31   좋아요 2 | URL
저도 다른 분들이 읽은 책 따라 읽은건데요 ㅋ 소세키는 그레이스님으로부터~!! 저 <태풍> 읽고 있어요 ^^

희선 2021-12-15 02:2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매커시즘 들어본 적 있는데 잘 몰랐던 거네요 미국에서는 공산주의자라면서 한 사람을 바닥으로 끌어내리기도 했군요 지금이라고 그런 일이 아주 없지 않기도 하겠습니다 지금 더하지 않나 싶기도 해요 정보도 빨리 퍼지고, 그게 진짜가 아닐 때도 있군요 필립 로스 책은 다음해에도 만나겠네요


희선

새파랑 2021-12-15 09:16   좋아요 2 | URL
지금은 그래도 좀 나아졌겠죠? 워낙 다양한 생각이 수용되니까요 ㅋ 필립 로스 책이 아주 많더라구요. 내년에는 꼭 다 읽어보고 싶어요^^
 

처음 읽는 한강 작가님의 작품. 지금까지는 너무 좋다.






반쯤 넘어진 사람처럼 살고 싶지 않아, 당신처럼,
살고 싶어서 너를 떠나는 거야.
사는 것같이 살고 싶어서. - P17

시간이 없으니까.
단지 그것밖에 길이 없으니까,
그러니까 계속하길 원한다면,
삶을. - P27

그녀의 습관들에 대해 알 만큼 안다. 이렇게 내 이름만 먼저 부르는 것은 안부 인사가 아니라 구체적이고 급한 용건이다.

(이건 완전 공감이 된다.) - P30

눈은 거의 언제나 비현실적으로 느껴진다. 그 속력 때문일까, 아름다움 때문일까? 영원처럼 느린 속력으로 눈송이들이 허공에서 떨어질 때, 중요한 일과 중요하지 않은 일이 갑자기 뚜렷하게 구별된다. 어떤 사실들은 무섭도록 분명해진다.

(눈에 대한 감정.) - P44

누군가가 먼저 전화를 걸어, 여기 눈이 오는데 거긴 어떠니, 라고 물으면 여긴 내일 온대, 라고 다른 누군가가 대답했다. 내년에는 할 수 있을까, 라고 둘 중 누군가가 물으면, 그래, 내년엔 꼭 하자, 라고 다른 누군가가 대답했다. 그러다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웃었고, 그렇게 끝없이 연기되고 있는바로 그 상태가 그 일의 성격이 되어가고 있는 거라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 P48

시작하고 싶을 때 시작해, 그 웃음에 문득 전염되어 내 마음이 밝아지면, 내 밝아진 얼굴에 안심한 인선의 눈이 더 환해졌다. 뭐, 일단 나는 계속하고 있을 테니까. 그 말이 주문처럼 나를 안심시키곤 했다. 아무리 까다로운 인터뷰 상대를 만나도, 예기치 못한 돌발 변수가 생겨도, 뷰파인더를 들여다보고 있는 그녀의 침착한 얼굴을 보면 더이상 당황할 필요도, 허둥거릴 이유도 없다고 느껴졌다. - P51

다음날 서울행 비행기에 몸을 실으며 나는 오래전 겨울에 들었던 인선의 가출 이야기를 떠올렸고, 이상하게도 그 어머니만큼이나 인선이 안쓰럽게 느껴졌었다. 만 열일곱 살 아이가, 얼마나 자신이 밉고 세상이 싫었으면 저렇게 조그만 사람을 미워했을까? 실톱을 깔고 잔다고, 악몽을 꾸며 이를 갈고 눈물을 흘린다고 음성이 작고 어깨가 공처럼 굽었다고. - P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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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영국인 아편 중독자의 고백 펭귄클래식 105
토머스 드 퀸시 지음, 김명복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 / 2011년 4월
평점 :
품절


"흥미로운 꿈을 꿀 능력이 없으면, 아편이 흥미로운 꿈을 만들어주지는 못한다."


책이 독자에게 주는 가장 큰 이점은 '간접경혐' 이라고 생각한다. 인생은 짧고, 선택은 언제나 제한되며, 경험은 한정되기 때문에 우리는 책을 통해 타인의 삶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하고, 넓은 시야와 다양한 관점을 가질 수 있다.


특히 책에서 다루는 내용이 우리가 감히 해볼 수 없는 '불법'일 경우 '간접경험'의 이점은 극대화 된다. 혹시 '아편(Opium)' 먹어본 적 있나요? 거의 대부분이, 아니 모든 사람들이 경험이 없을 것이다. 그렇다. <어느 영국인 아편 중독자의 고백>은 우리가 결코 경험할 수 없는 아편에 대한 '간접경험'의 세계로 독자를 안내한다.


19세기 초에 쓰여진 이 책은 작가인 "토머스 드 퀸시"의 아편 중독에 대한 자전적 작품이다. 소설보다는 에세이에 더 가까운 작품.


참고로 중독이라고 하면 크게 독으로 지칭되는 유해 물질에 의한 신체 증상인 중독(intoxication)과 알코올, 마약과 같은 약물 남용에 의한 정신적인 중독이 주로 문제되는 중독(addiction)을 동시에 일컫는다고 하는데, 아편은 addiction에 해당한다.(너무 당연한건가...)


이 책은 총 2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1부는 <독자들에게>, <고백 이전에 읽어야 할 이야기>라는 소제목들의 글이 쓰여져 있는데, 주로 작가가 어린 시절에 경험한 아픔과 회상을 담고 있다. 어떻게 보면 어린 시절의 이야기와 '아편 중독'의 조합은 쌩뚱맞게 보일 수 있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 아편에 중독된 작가가 환각상태에서 꾸는 꿈은 어린시절에 관한 이야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아편에 중독된 작가를 이해하고 공감하기 위해서는 1부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이다.

[슬프고 행복했던 기억들이 얼마나 우리의 가슴을 뒤흔드는가! 잠시라도 이들 기억을 떠올리면, 아무리 사소한 것들이라도, 처음 나를 아편 복용자의 낙원으로 인도했던 그 장소와 그 사람과 그 시간과 관련된 무엇이든, 신비한 중요성을 지닌 채 나타난다.]  P.83



2부는 <아편 복용의 즐거움>, <아편의 고통이 시작되다>, <아편의 고통> 이라는 소제목들의 글이 쓰여져 있다.

<아편 복용의 즐거움>에는 작가가 어떻게 아편을 접하게 되었는지, 아편이 신체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어떠한 정신적 쾌락을 주는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술에 취했거나 취해 가는 사람은 본성 중에 단지 인간적인 부분, 또는 동물적인 속성만을 불러낸다. 그렇게 느낀다. 그러나 아편 복용자는 본성 중 신적인 속성을 최대한 불러내고, 그렇게 느낀다. 도덕적 감정은 구름 한 점 없는 평정한 상태에 놓여 있고, 거대한 지성의 위대한 빛이 사방을 비춘다.]  P.87



<아편의 고통이 시작되다>에서는 초반에 느꼈던 즐거움 대신에 고통을 느끼기 시작하는 작가의 감정변화를 그리고 있다. 아편의 중독에서 벗어나기 위해 작가는 아편 복용량을 줄이게 되고, 이후 우울증이 사라지고 행복이 돌아왔음을 느낀다. 하지만 행복도 잠시, 이미 중독된 그의 몸은 아편을 간절히 원하게 된다

[그러나 이제 끝났다. 행복한 시절은 끝났다. 여름도 가고, 겨울도 갔다! 미소도, 웃음도 안녕! 마음의 평화도 안녕! 희망과 편안한 꿈들도 안녕! 위로가 되었던 축복의 꿈도 안녕! 이후 나는 3년 반 이상을 이런 축복에서 떨어져 지냈다. 이제 나는 고통 가득한 '일리아드' 에 도착했다. 그리고 그 고통을 기록해야겠다.]  P.113



<아편의 고통>에서는 아편으로 인해 고통받는 작가의 모습을 보여준다. 작가는 그 무엇도 즐겁게 읽을 수 없고, 한 순간도 인내를 가질 수 없으며, 지적 마비상태에 빠져버린다. 계속 몽롱한 수면 상태로 살아가던 작가는 1부에서 이야기한 어린시절의 꿈속에서 빠져나오지 못한다. 그리고 이어지는 어두운 우울. 아편을 끊지 못하면 결국 죽을 수 밖에 없는 운명 앞에서 작가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이전 상태에 대한 여진이 아직도 남아 있다. 꿈들은 아직도 완전히 진정되지 않았고, 폭풍이 몰아치는 끔찍한 큰 파도와 동요는 여전히 가라앉지 앉았으며, 꿈에 진을 치고 있었던 무리가 퇴각하기는 했지만 모두 떠나지는 않았고, 나의 잠은 아직도 불안하며, 아담과 이브가 멀리서 뒤돌아 바라보는 천국의 문과 같이 꿈은 아직도 끔찍한 얼굴과 불꽃 튀는 무기들로 가득하다.]  P.138




200여년 전 아편 중독의 위험이 대중에게 전혀 알려지지 않았던 시대에 처음으로 그 폐해를 알린 작가 "퀸시", 그는 이 책을 통해 30여 년간의 아편 복용으로 인한 육체적·정신적 투쟁과, 꿈과 악몽의 경계선 속에서 한 사람의 자아가 무너지는 과정을 여과없이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 이 책은 단순히 아편 중독자의 이야기가 아닌 꿈의 해석에 관한 이야기로 볼 수도 있다.



뭐든지 지나치면 안하는 것보다 못하다. 중독도 마찬가지다.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것에 빠지게 되면 자신을 잃어버릴 수 밖에 없다. 아무리 과거가 아쉽더라도, 꿈에 빠져 사는게 행복하더라도 꿈은 꿈일뿐, 현실이 아니다.



Ps. 마약(?)에 관한 이야기다 보니 리뷰를 쓰는게 정말 힘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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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아 2021-12-12 21:36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에세이에 가깝군요! 읽다보니 기억났는데 중학교때 읽은 소설 주인공이 마약 중독으로 괴로워하는 내용이었어요. 제목이 기억안나요ㅠ 이런 경험은 정말 책으로밖에 할 수 없죠. 소설의 특별함!!😊

반유행열반인 2021-12-12 21:39   좋아요 4 | URL
트레인스포팅! 앨리스의 일기!(이상한 나라에 빠진 앨리스로 재출간) 그거 말고 또 있을까요 ㅋㅋ 저도 이 책 읽을 폼만 잡다 곧 읽어야겠네요...(읽을 게 많네요...)

청아 2021-12-12 21:47   좋아요 4 | URL
헉!!열반인님 댓글보고 찾아보니 앨리스의 일기 맞는것 같아요. 당시 읽고 너무 충격적이었는데...열반인님 리뷰도 읽었는데 역자 때리고싶네요. 트레인스포팅 너무 좋아합니다~♡♡

새파랑 2021-12-12 21:48   좋아요 5 | URL
거의 자서전 입니다 ㅋ 해설하고 부록을 보니 자신의 실제이야기 90퍼센트에요 ㅎㅎ 이렇게 써도 되는거야? 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저는 영상보다는 글에 확실히 더 임팩트를 느끼는거 같아요 😅

열반인님이 ‘트레인스포팅‘ 이야기 하니 딱 생각나네요~! 중학교땐가 재미있게 본거 같은데 ^^ 역시 영화도 우울한걸 좋이하시는군요~! 간만에 Underworld 음악을 들어야 겠어요 ^^

scott 2021-12-12 22:28   좋아요 4 | URL
역쉬 ! 열반인님
맞습니다
약물중독 앨리스^^

새파랑 2021-12-12 22:59   좋아요 3 | URL
약물중독 앨리스 읽어봐야 겠군요 ^^

반유행열반인 2021-12-12 23:16   좋아요 3 | URL
두 번역본 다 절판인데 이상한 나라에 빠진 앨리스 가 청소년 문고 시리즈라서 번역이나 표현이 좀 더 낫지 않을까 싶어요. 정작 후진 번역판만 읽었지만 ㅋㅋ중고 알리미 해두시면 어딘가 있을 듯요 ㅋㅋ

페넬로페 2021-12-12 22:24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이 책이 소설로 분류되는데 작가의 자전적 이야기로 이루어진 거군요^^
마약 중독은 사실 경험해보지 않아도 그 금단현상이 너무 고통스러워 거기서 쉽게 벗어날 수 없을것 같아요.
어제 겨울호랑이님의 글에서도 이러한 중독도 환경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는 사실이 참 마음 아팠어요 ㅠㅠ
근데 일욜은 쉬는 날 아님?
북플 친구들, 다 글 올리는 날? ㅎㅎ

새파랑 2021-12-12 23:00   좋아요 4 | URL
작가가 아편 먹고 경험한 실제 이야기더라구요 ㅋ 일요일은 원래 쉬는 날이지만 밀려서요 😅 아직 읽고 리뷰 못쓴게 두권 더 있습니다 ㅋ

mini74 2021-12-12 23:11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예전 예술가들이 영감을 얻는다고 lsd복용이 유행했던 게 기억나네요. 실제로 묘한 그림들이 많았다고. 대지 속에 나오던 아편굴도 생각나네요 ~ 작가가 아편을 하면 작품이 되는군요.

새파랑 2021-12-12 23:26   좋아요 4 | URL
lsd가 있었죠~! 예전에 비틀즈 노래중에 lsd를 약어로 한 노래 제목이 생각나네요~!! 이런 마약류가 예술적 영감을 주기는 한가봐요. 그래도 저는 이런 약류는 절대 반대 합니다~ 건전한 정신 건강한 작품 ^^

희선 2021-12-13 00:5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소설보다 자기 이야기에 가까운 거군요 서른해나... 그 뒤 작가는 어떻게 됐을지... 사람은 맞서기보다 피할 때가 더 많아서 약물에 빠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꿈은 현실이 아닌데...


희선

새파랑 2021-12-13 08:47   좋아요 1 | URL
글을 보면 아편을 끊었다고 쓰고 있더라구요 ㅋ 그 과정이 참 힘들었을거 같아요~! 어차피 약이 주는 행복은 짧은 순간일 뿐인데 ㅋ 현실에서 답을 찾는게 더 현명하다는 생각을 해봅니다만 얼마나 고통스러웠으면 손을 댔을까란 생각도 들고 😅
 

아 이 책 뭐지 ㅋ










전에 복용하지 않던 사람들이 이제 먹고,
늘 먹던 사람들은 이제 더 많이 먹는다. - P37

존슨 박사는 (우리가 오랫동안 습관적으로 하던 일들 가운데) 무엇이든 마지막으로 하려고 하면 슬플 수밖에 없다는 말을 했다. (자주 하지는 않지만 이 말은 매우 감동적이다.) - P43

내가 옳았다. 나는 그를 다시는 보지 못했고, 앞으로도 영원히 보지 못할것이다. - P43

슬프고 행복했던 기억들이 얼마나 우리의 가슴을 뒤흔드는가! 잠시라도 이들 기억을 떠올리면, 아무리 사소한 것들이라도, 처음 나를 아편 복용자의 낙원으로 인도했던 그 장소와 그 사람과 그 시간과 관련된 무엇이든, 신비한 중요성을 지닌 채 나타난다 - P83

아편은 모든 고통을 사라지게 만드는 만병통치약이었다. 철학자들이 수 세기 동안 토론을 벌여왔던 행복의 비밀이 아편에 있었다. 이제 그 행복을 1페니로 사 호주머니에 넣어 다닐수 있게 되었다. 휴대용 환희가 작은 약병 속에 들어 있었다. - P84

어리석게도 사람들은 술에 취하면 "제정신이 아니다." 라고 한다. 반대로, 대다수 사람들은 술에 취하지 않았기 때문에 "제정신이 아니다." (그리스의 어느 현인이 말했듯이) 사람들은 술을 마시고 있을 때 진정한 모습을 드러낸다. 술을 마셨을 때만 제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러나 술은 인간을 어리석음과 과도함의 경계까지 몰고 간다. 어느 지점 이상으로 나갈 경우, 지적인 능력이 흩어져 없어진다. - P87

술에 취했거나 취해 가는 사람은 본성 중에 단지 인간적인 부분, 또는 동물적인 속성만을 불러낸다. 그렇게 느낀다. 그러나 아편 복용자(질병이나 아편의 부차적인 후유증으로 고통받고 있지 않는 사람)는 본성 중 신적인 속성을 최대한 불러내고, 그렇게 느낀다. 도덕적 감정은 구름 한 점 없는 평정한 상태에 놓여 있고, 거대한 지성의 위대한 빛이 사방을 비춘다. - P87

아편은 이러한 선물을 인간에게 준다. 아편은 천국의 열쇠를 가지고 있다. 오, 합당하고, 오묘하며, 강력한 아편이여! - P97

마음에서 ‘잊힐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우리의 현재 의식과 마음에 비밀스럽게 기록된 것들 사이의 장막으로 수천의 사건이 끼어 있거나 끼일 것이다. 같은 종류의 사건이 이 장막을 찢어낼 수도 있다. 그러나 장막이 있든지 없든지 쓰인 기록은 영원히 남을 것이다. 별들이 대낮의 밝은 빛 앞에서 빛을 내지 못하듯이, 기록들 위에 장막을 드리운 것은 빛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안다. 그 기록은 드러나기 위해 석양이 물러날 때를 기다리고 있다. - P124

이전 상태에 대한 여진이 아직도 남아 있다. 꿈들은 아직도 완전히 진정되지 않았고, 폭풍이 몰아치는 끔찍한 큰 파도와 동요는 여전히 가라앉지 앉았으며, 꿈에 진을 치고 있었던 무리가 퇴각하기는 했지만 모두 떠나지는 않았고, 나의 잠은 아직도 불안하며, 아담과 이브가 멀리서 뒤돌아 바라보는 천국의 문과 같이 꿈은 아직도 끔찍한 얼굴과 불꽃 튀는 무기들로 가득하다. - P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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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아 2021-12-11 22: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마약수사기관에서 좋아하지 않을듯한 소설이군요ㅎㅎ
87페이지 끄덕여집니다.🤔

새파랑 2021-12-11 23:03   좋아요 1 | URL
19세기 영국에서는 아편이 불법이 아니고 진통제로 처방받아 사용했다고 하더라구요. 이 책은 그런 아편의 폐해에 대한 투쟁의 기록이라고 하네요^^

청아 2021-12-11 23:21   좋아요 1 | URL
문장이 아름답다는 평도 있네요! 이 책이랑 같은작가의 <예술분과로서의 살인>(제목이 독특해서)도 장바구니에 담았어요^^

2021-12-11 23: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12-11 23: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12-11 23: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리뷰는 내일 좀 고민해서 써야 겠다. 완전 대만족 ^^

"이 모든 게 오류다. 지금까지 말씀하신 게 이거 아닌가요? 삶자체가 오류다. 여기에 세계의 본질이 있다. 아무도 자신의 인생을 찾지 못한다. 그게 인생이다." 내가 말했다. - P533

머리 선생님이 세상을 떠난 그날 밤처럼 눈부시게 맑은 날 밤, 나의 산 위에 마련된 이 조용한 연단 위로 실수라는 것이 주제넘게 끼어들 수 없는 저 우주가 펼쳐져 있다. 거기에서 상상할 수도 없는 것을 본다. 반목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거대한 장관, 광대한 시간의 뇌, 인간의 손길이 닿지 않고 피어오른 무수한 불덩이를 두 눈으로 직접 본다. 별은 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이다. - P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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