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어느 영국인 아편 중독자의 고백 ㅣ 펭귄클래식 105
토머스 드 퀸시 지음, 김명복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 / 2011년 4월
평점 :
품절
"흥미로운 꿈을 꿀 능력이 없으면, 아편이 흥미로운 꿈을 만들어주지는 못한다."
책이 독자에게 주는 가장 큰 이점은 '간접경혐' 이라고 생각한다. 인생은 짧고, 선택은 언제나 제한되며, 경험은 한정되기 때문에 우리는 책을 통해 타인의 삶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하고, 넓은 시야와 다양한 관점을 가질 수 있다.
특히 책에서 다루는 내용이 우리가 감히 해볼 수 없는 '불법'일 경우 '간접경험'의 이점은 극대화 된다. 혹시 '아편(Opium)' 먹어본 적 있나요? 거의 대부분이, 아니 모든 사람들이 경험이 없을 것이다. 그렇다. <어느 영국인 아편 중독자의 고백>은 우리가 결코 경험할 수 없는 아편에 대한 '간접경험'의 세계로 독자를 안내한다.
19세기 초에 쓰여진 이 책은 작가인 "토머스 드 퀸시"의 아편 중독에 대한 자전적 작품이다. 소설보다는 에세이에 더 가까운 작품.
참고로 중독이라고 하면 크게 독으로 지칭되는 유해 물질에 의한 신체 증상인 중독(intoxication)과 알코올, 마약과 같은 약물 남용에 의한 정신적인 중독이 주로 문제되는 중독(addiction)을 동시에 일컫는다고 하는데, 아편은 addiction에 해당한다.(너무 당연한건가...)
이 책은 총 2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1부는 <독자들에게>, <고백 이전에 읽어야 할 이야기>라는 소제목들의 글이 쓰여져 있는데, 주로 작가가 어린 시절에 경험한 아픔과 회상을 담고 있다. 어떻게 보면 어린 시절의 이야기와 '아편 중독'의 조합은 쌩뚱맞게 보일 수 있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 아편에 중독된 작가가 환각상태에서 꾸는 꿈은 어린시절에 관한 이야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아편에 중독된 작가를 이해하고 공감하기 위해서는 1부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이다.
[슬프고 행복했던 기억들이 얼마나 우리의 가슴을 뒤흔드는가! 잠시라도 이들 기억을 떠올리면, 아무리 사소한 것들이라도, 처음 나를 아편 복용자의 낙원으로 인도했던 그 장소와 그 사람과 그 시간과 관련된 무엇이든, 신비한 중요성을 지닌 채 나타난다.] P.83
2부는 <아편 복용의 즐거움>, <아편의 고통이 시작되다>, <아편의 고통> 이라는 소제목들의 글이 쓰여져 있다.
<아편 복용의 즐거움>에는 작가가 어떻게 아편을 접하게 되었는지, 아편이 신체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어떠한 정신적 쾌락을 주는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술에 취했거나 취해 가는 사람은 본성 중에 단지 인간적인 부분, 또는 동물적인 속성만을 불러낸다. 그렇게 느낀다. 그러나 아편 복용자는 본성 중 신적인 속성을 최대한 불러내고, 그렇게 느낀다. 도덕적 감정은 구름 한 점 없는 평정한 상태에 놓여 있고, 거대한 지성의 위대한 빛이 사방을 비춘다.] P.87
<아편의 고통이 시작되다>에서는 초반에 느꼈던 즐거움 대신에 고통을 느끼기 시작하는 작가의 감정변화를 그리고 있다. 아편의 중독에서 벗어나기 위해 작가는 아편 복용량을 줄이게 되고, 이후 우울증이 사라지고 행복이 돌아왔음을 느낀다. 하지만 행복도 잠시, 이미 중독된 그의 몸은 아편을 간절히 원하게 된다
[그러나 이제 끝났다. 행복한 시절은 끝났다. 여름도 가고, 겨울도 갔다! 미소도, 웃음도 안녕! 마음의 평화도 안녕! 희망과 편안한 꿈들도 안녕! 위로가 되었던 축복의 꿈도 안녕! 이후 나는 3년 반 이상을 이런 축복에서 떨어져 지냈다. 이제 나는 고통 가득한 '일리아드' 에 도착했다. 그리고 그 고통을 기록해야겠다.] P.113
<아편의 고통>에서는 아편으로 인해 고통받는 작가의 모습을 보여준다. 작가는 그 무엇도 즐겁게 읽을 수 없고, 한 순간도 인내를 가질 수 없으며, 지적 마비상태에 빠져버린다. 계속 몽롱한 수면 상태로 살아가던 작가는 1부에서 이야기한 어린시절의 꿈속에서 빠져나오지 못한다. 그리고 이어지는 어두운 우울. 아편을 끊지 못하면 결국 죽을 수 밖에 없는 운명 앞에서 작가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이전 상태에 대한 여진이 아직도 남아 있다. 꿈들은 아직도 완전히 진정되지 않았고, 폭풍이 몰아치는 끔찍한 큰 파도와 동요는 여전히 가라앉지 앉았으며, 꿈에 진을 치고 있었던 무리가 퇴각하기는 했지만 모두 떠나지는 않았고, 나의 잠은 아직도 불안하며, 아담과 이브가 멀리서 뒤돌아 바라보는 천국의 문과 같이 꿈은 아직도 끔찍한 얼굴과 불꽃 튀는 무기들로 가득하다.] P.138
200여년 전 아편 중독의 위험이 대중에게 전혀 알려지지 않았던 시대에 처음으로 그 폐해를 알린 작가 "퀸시", 그는 이 책을 통해 30여 년간의 아편 복용으로 인한 육체적·정신적 투쟁과, 꿈과 악몽의 경계선 속에서 한 사람의 자아가 무너지는 과정을 여과없이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 이 책은 단순히 아편 중독자의 이야기가 아닌 꿈의 해석에 관한 이야기로 볼 수도 있다.
뭐든지 지나치면 안하는 것보다 못하다. 중독도 마찬가지다.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것에 빠지게 되면 자신을 잃어버릴 수 밖에 없다. 아무리 과거가 아쉽더라도, 꿈에 빠져 사는게 행복하더라도 꿈은 꿈일뿐, 현실이 아니다.
Ps. 마약(?)에 관한 이야기다 보니 리뷰를 쓰는게 정말 힘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