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투란 무엇인가










우리는 간단히 말하려고 그저 ‘죽음‘이라고 하지만, 세상에는 사람들만큼 많은 죽음이 있다. 전속력으로 모든 방향에서 달려오는 죽음, 이런저런 사람을 향해 운명이 보낸 능동적인 죽음, 하지만 우리에게는 그것을 볼 수 있는 감각이 없다. 때로는 이삼 년이 지나서야 자기가 맡은 임무로부터 완전히 해방되는 죽음도 있다. - P10

만일 우리가 팔다리 같은 것만 가진 존재라
면, 삶은 견딜 만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우리는 마음이라 불리는 작은 기관을 가지고 있으며, 이 마음은 병에 걸리기 쉽고, 또 병에 걸린 동안에는 어떤 사람의 삶에 관계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극도로 민감해져서, 만일 거짓말이 - 우리가 하거나 남들이 했을 경우에는 별 해를 끼치지 않으므로 그 안에서 즐겁게 살아갈 수 있지만 그 사람으로 부터 와서 우리의 작은 마음에 참을 수 없는 발작을 일으키면, 외과 수술을 통해 그 마음을 제거해야 한다. 뇌에 대해서는 말할 필요도 없다. 이런 발작이 일어나는 동안에는 생각이 제아무리 무한대로 추론을 해도 발작을 완화시키지 못하는데, 이는 마치 제아무리 치통에 주의해도 치통을 다스리지 못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 P56

이렇게 우리는 현실과는 매우 다른 외관을 서로에게 제시하고 있었다. 아마도 두 존재가 마주할 때면 언제나 이런 식인지 모른다. 왜냐하면 그들 각자는 상대방의 마음속에 있는 부분을 모르고, 설령 안다고 해도 일부밖에 이해하지 못하며, 그래서 둘 다 자신에게서 가장 개인적이지 않은 부분만을 표출하거나, 또는 그들 자신이 그것을 간파하지 못해서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판단하거나, 또는 그들과 관계없는 몇몇 시시한 장점들이 보다 중요하고 기쁘게 해 주는 것처럼 보이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그들이 멸시받지 않기 위해 집착하는 몇몇 장점들을 갖고 있지 않아서 거기에 관심 없는 척, 또 그것이 바로 다른 무엇보다도 그들이 무시하고 혐오하는 것이라고 여기는 척하기 때문이다. - P266

그러나 이런 오해는 사랑에서 정점에 다다른다. 그 이유는 아이였을 때를 제외하고 우리는 자신의 생각을 정확히 반영하는 인상을 전하려 하기보다는 우리가 원하는 것을 얻기에 가장 적합하다고 판단되는 그런 인상을 전하려 하며, 또 내게서 그 생각은 집에 돌아온 뒤부터 알베르틴을 예전처럼 온순한 상태로 간직하여, 그녀가 화를 내며 더 큰 자유를 요구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 P267

우리는 타자가 보는 우리의 몸은 보지 못하며, 또 우리 앞에 있지만 타자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대상인 우리 생각을 쫓아간다. - P268

알베르틴과의 삶은 내가 질투를 느끼지 않을 때는 권태로웠고, 질투를 느낄 때는 고통스러웠다. 행복한 순간이 있었다 해도 그 행복은 오래가지 않았다. - P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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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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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2-11-17 15: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11월 13일 당신은 현명해지기 전까진 늙지 말았어야 했어
와 맘에 들어요. 다른 말로 하면 그냥 지금처럼 맹하게 있으면 안 늙을수도 있다는????? ㅎㅎ
제게는 읽지 못할 그림의 떡인 읽시찾은 책이 왜 저다지도 예쁘답니까? 민음사 나빠요.

새파랑 2022-11-18 06:28   좋아요 0 | URL
old and wise 아닐까요? ㅋ 9권 읽고 나서 세달? 지나고 10권을 읽어서인지 내용이 잘 안이어지더라구요 ㅋ

책 표지는 정말 예쁩니다 ^^
 
그림의 이면 을유세계문학전집 122
씨부라파 지음, 신근혜 옮김 / 을유문화사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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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22133

˝저는 그렇게 하고 싶지 않습니다. 왜 제가 순수하게 저절로 생겨난 사랑, 불쌍하고 애처로운 무고한 사랑을 억눌러야 하는지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저는 사랑을 그렇게 대할 수 없습니다.˝



‘사랑은 타이밍이다‘ 이 말을 제일 먼저 떠올릴 수 밖에 없는 작품이었다. 조금 더 일찍 만났더라면, 아니 오히려 조금 늦게 만났더라면 사랑의 결실이 맺어지지 않았을까?



도쿄역에서 22살의 유학생 놉펀과 20대 후반으로 보이는 끼라띠는 처음 만난다. 그녀는 놉펀의 아버지의 친구인 아티깐버디 공의 아내였는데, 부부는 태국에서 도쿄로 신혼여행 중이었다.놉펀은 왜 젊은 그녀가 나이 많은 사람과 결혼을 했는지 의아해 하면서도 자신과 비슷한 또래로 보이는 그녀에게 호감을 갖는다. (실제 나이는 서른 다섯살이었다...)

[한 사람이 내 인생에 들어와 착 달라붙은 첫날의 일들과 여러 감정은 내 기억에서 잊힐 날 없이 살아 있을 것이다. 자그마한 하얀 꽃송이가 있는 남색 복장에 흰 모자, 그리고 하얀 신발은 내 마음에 들어와 아로새겨진 숙녀의 첫 옷차림이었다. 내가 우아하고 매우 품위 있다고 느낀 차림이다.] P.18



끼라띠 역시 나이 많은 남편에게서 느낄 수 없는 감정을 놉펀에게서 느끼고, 타국에서의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놉펀과 친하게 지낸다.

[˝아름다운 것은 무엇이건 간에 나는 모두 좋아해. 하지만 바로 그거야. 나는 아름다움을 보는 경향이 있어. 거의 모든 것은 관찰할 만하고 구경할 만해. 예컨대 이 호숫가의 잔물결이 이는 수면 역시 나에게는 흥미로워. 나는 아름다움을 사랑해. 왜냐하면 아름다움은 결점과 시듦이 없는 상쾌한 감정을 발생시키기 때문이지.˝] P.47



처음에는 그저 동경이었겠지만, 먼저 사랑을 느끼고 다가간건 놉펀이었다. 그는 유학생 신분에 중산층 출신이었고, 그녀는 왕족 혈통에 이제 막 결혼을 한 유부녀 였지만 놉펀은 물러서지 않는다. 어떻게든 그녀의 사랑을 확인하고 싶어한다.

[나는 아직도 그날의 감정을 생생하게 기억한다. 내가 얼마나 행복하고 기뻤는지는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끔씩 어떤 감정이 나의 행복을 방해했다. 그것은 시시각각 가장 강렬한 무엇인가가 일어날 거라는 두려움으로 내 심장을 빠르게 뛰게 했다. 두려움이 가슴속을 오르내렸다. 나는 그걸 꽉 눌러서 밖으로 드러나지 않도록 노력했지만 상당히 힘에 부쳤다. 그것을 완전히 막기는 어려웠다, 그저 기다릴 수밖에. 나는 지쳤고 피곤했고 행복했다.] P.77



하지만 끼라띠는 이를 거부한다. 그저 친하게 지낼 뿐 사랑은 아니라고 하며, 놉펀은 아직 어려서 모른다고, 이 모든건 시간이 지나면 추억이 될거라고, 유학생인 니가 졸업해서 고국으로 돌아와 성공적인 삶을 살길 바란다고 말할 뿐이었다.

[˝내 좋은 사람이여. 마지막으로 내 조언을 받아들이길 바라. 자네는 나를 사랑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학업을 위해 조국을 떠나 일본에 왔어. 자네의 목표를 정확하게 기억해야 하고 견고하게 잡고 있어야 하네. 지난 두 달 동안 자네와 나 사이의 관계는 잊어버리게. 그건 꿈이라고 생각하게.˝] P.111



몇달이 흘러 끼라따는 남편과 함께 태국으로 돌아가게 되고, 놉펀은 다시 한번 열렬한 자신의 마음을 담아 그녀에게 편지를 쓰지만, 돌아오는건 놉펀과 다소 거리를 둔 그녀의 답장이었다. 결국 놉펀은 뜨거웠던 마음을 접을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학업에 매진하고, 성공적으로 졸업하여 고국으로 돌아간다.

[나에 대한 강렬한 감정은 적당한 때가 되면 점차 사라져 갈 것이고, 결국 나는 자네 인생에서 중요한 무엇이 아니게 될 거야. 그러면 족쇄 없이 아름답고 순수한 청년의 감정과 행복이 예전처럼 놉편의 마음으로 돌아올거야. 나는 그 시간을 기도하며 기다려.] P. 124



하지만 운명의 장난인건지, 놉펀의 마음은 이제 식었는데, 끼라띠는 그게 아니었고, 오히려 마음속에서 그에 대한 사랑을 간직하고 있었다. 도쿄에서 만났을때는 자신의 신분때문에, 이제 막 결혼했기 때문에, 상대방의 미래를 걱정했기 때문에 표현하지 못했을뿐이었던 것이다. 이제 남편도 죽고(?) 혼자가 된 끼라띠는 놉펀이 돌아오기를 내심 바라고 있었는데...

[˝생각해 보면 스스로에게 이상함을 금할 수 없어. 왜냐하면 지나온 시간에 내 행복을 이루었던 중요한 부분은 나에게 일어난 실제의 일이 아니라 오히려 단지 어떤 것에 대한 희망 또는 기대였기 때문이지. 지금에 와서도 내 삶은 아직 예전과 달라지지 않았다네. 진정한 행복은 여전히 앞날에 표류하고 있어. 나는 그것을 잡으려고 쫓아가고 희망하지. 그리고 기다리고 있어.˝] P.151



끼라띠는 놉펀에게 있어서 도쿄의 일은 이제 추억으로만 남아있음을 알게 되고, 게다가 약혼녀도 있음을 알게 된다. 이제 사랑의 고통은 끼라띠가 느끼게 된다. 과연 두 사람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자네의 사랑은 그곳에서 태어났고 그곳에서 죽었지. 하지만 다른 한 사람의 것은 죽어 가는 몸에서 여전히 자라나고 있어.˝] P 171





개인적으로는 도쿄에서 끼라띠의 태도 그리고 편지에 쓴 내용이 아쉬웠다. 끼라띠의 신분과 상황 때문에 어쩔수 없었다 하더라도 본인 역시 마음이 있었다면, 어느 정도 기대가 있었다면, 놉펀이 포기하지 않도록 여지를 남겨두었더라면 어땠을까? 아직 22살밖에 안된 놉펀이 숨겨진 끼라띠의 마음을 안다는건, 알아주길 바라는건 불가능하지 않았을까?



놉펀의 영원할수 없었던 마음도, 끼라띠의 숨겨야 했었던 마음도 다 이해는 된다. 그래서 더 안타까웠다. 왜 사랑 앞에서는 서로의 마음을 솔직하게 온전히 드러낼수는 없는 걸까? 그렇게 뜨거웠던 마음은 시간앞에서 식어버릴 수 밖에 없는걸까? 그냥 사회 통념에서 벗어나서 도망갔더라면 어땠을까? (그럼 완전 막장이구나...)



약간 뻔한 이야기이긴 했지만 나름 좋았다. 이국적인 분위기도 그렇고, 깔끔한 번역도 그렇고 작품자체가 재미있었다. 책을 읽는 중간에 혹시 끼라띠가 놉펀과의 사랑을 위해 남편을 독살(?)하는 반전이 나오지 않을까? 라는 어이없는 생각도 해봤는데, 그런 쇼킹한 이야기 없이 전형적으로 흘러갔다. 뭔가 특별한게 없어서 아쉽긴 하지만 소설을 좋아하는 분들은 만족하실거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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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22-11-16 02: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정말 때가 좀 안 맞았네요 생각해 보면 그때 만날 수밖에 없었다는 생각도 듭니다 결혼하고 가고 놉펀은 공부하러 간 거니... 놉펀 마음이 바뀌지 않았다면 좋았겠지만 그것도 쉽지 않을지도 모르죠 그저 한때 좋아한 사람이 있었지 할 수밖에 없을지도...


희선

새파랑 2022-11-16 07:13   좋아요 1 | URL
때가 맞아서 사랑이 이루어졌더라도 결국은 많은 차이 때문에 불행했을거란 생각도 듭니다 ㅋ

잠자냥 2022-11-16 08:4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ㅋㅋㅋ 독살 반전! ㅋㅋㅋ 진짜 갑자기 스릴러물 될 뻔 ㅎㅎㅎ

새파랑 2022-11-16 09:59   좋아요 1 | URL
그랬으면 더 재미있지 않았을까요? ㅋ 그러면 레베카급이었을듯 합니다 ~!

scott 2022-11-16 10: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나의 사랑이 끝났을때 당신의 사랑은 시작했다 <그림의 이면>]
요문구는 출판사에서 광고 띄지에 새겨 넣어야 함요 ^^

새파랑 2022-11-16 11:53   좋아요 1 | URL
앗 안됩니다 ㅋ <헤어질 결심> 표절입니다 😅

프레이야 2022-11-16 12:0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새파랑 님 이 책이 올해 133째인거죠^^
참 다양하게 많이 읽으십니다 :)

새파랑 2022-11-16 13:05   좋아요 2 | URL
읽은책의 97퍼센트가 소설인거 같습니다 😅 150권이 목표입니다~!!

페넬로페 2022-11-16 14: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사랑은 정말 타이밍이 100퍼 입니다.
새파랑님!
소설 많이 읽으셔서 이제 소설가로 데뷔할 타이밍 같습니다~~

새파랑 2022-11-16 16:18   좋아요 1 | URL
저같은 초딩 실력으로는 소설은 불가합니다 ㅋ 전 그냥 독후감 쓰는데 만족합니다 ^^ 전 좋아하는건 취미로만~!!

서니데이 2022-11-16 17: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작가 이름이 낯설었는데, 태국 작가인가요.
도쿄를 배경으로 태국 주인공이 등장한다니, 낯선 세계 더 낯선 사람들 같습니다.
잘읽었습니다. 새파랑님, 따뜻한 하루 보내세요.^^

새파랑 2022-11-16 18:45   좋아요 1 | URL
저도 태국작가의 책은 처음 읽어봤네요 ㅋ 우리나라랑 정서적으로 약간 비슷한 면이 있는거 같아요~!!

바람돌이 2022-11-16 20:4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소설은 역시 독살 반전이 매력 아닐까요? ㅎㅎ

새파랑 2022-11-18 06:28   좋아요 0 | URL
그런 반전 매력이 없고, 사랑 이야기이다보니 바람돌이님은 이 책 별로이실거 같아요 ^^

서니데이 2022-12-08 18: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합니다.
따뜻한 하루 보내세요.^^

새파랑 2022-12-08 20:46   좋아요 1 | URL
와우 벌써 결과가 나왔군요~!! 서니데이님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찾아봐야겠네요 ^^
 

좋다 좋다. 완전 내취향이다~!!




어쨌든 쁘리와 다른 사람 모두가 그 그림에 관심이 없는 것은 당연했다. 지극히 평범해 보이는 그림이라고 쁘리가 말했듯 말이다. 하지만 나의 경우는 - 그리고 오직 나 혼자만이 - 그 사람들과는 정반대로 생각했다. 나는 그 그림의 이면에는 인생이 있고, 그 인생이 나의 마음에 새겨져 있음을 잘 알았다. 다른 사람들에게 그 그림의 이면은 판지 한 장이고, 그 뒤는 벽이다. - P9

나는 작가가 정성을 쏟지 않은 것이 아니라 인생을 담아 그 그림을 그렸다는 사실을 너무 잘 알고 있다. 나는 지극히 평범하게 보이는 고요한 그림 속의 모든 움직임을 본다. 첫 장부터 바로 최근에 아주 슬프게 막을 내린 마지막 장까지, 모든 장면, 모든 순간의 움직임을 말이다. - P10

한 사람이 내 인생에 들어와 착 달라붙은 첫날의 일들과 여러 감정은 내 기억에서 잊힐 날 없이 살아 있을 것이다. 자그마한 하얀 꽃송이가 있는 남색 복장에 흰 모자, 그리고 하얀 신발은 내 마음에 들어와 아로새겨진 숙녀의 첫 옷차림이었다. 내가 우아하고 매우 품위 있다고 느낀 차림이다. - P18

여하튼 나는 끼라띠 여사의 경호원과 마찬가지의 명예를 부여받은 데에 특별히 높은 자부심을 느꼈다. 내 느낌으로는 끼라띠 여사 스스로도 모든 사람이 그녀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알고 있는 듯했다. 그녀는 시종일관 조용하고 온화한 자태를 보였지만, 누구든 옅은 분홍빛 얼굴 전체에 어린 그녀의 즐거움을 볼수 있었을 것이다. - P22

"그만, 그만해." 그녀는 내가 입을 다물도록 손을 내저었다. "자네와 더 이상 이 이야기는 하지 않겠네. 아는가? 놉펀, 자네는 계속해서 나를 격찬하려고 해. 그렇게 행동하는 건 자네를 망칠 걸세." - P38

결국 집으로 돌아와 몸을 뉘었을 때 나는 자문했다. 무슨 이유로 나는 끼라띠 여사의 사생활을 골똘히 고민하고 있는가? 그문제를 반드시 풀어야 할 어떤 의무나 필요성이 내게 있는가? 당시 내가 스스로를 그녀의 친한 친구라고 여겼던 것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녀 자신이 어떤 걱정이 있다고 전혀 표현하지 않았고, 나에게 그녀와 관련된 어떤 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요청하는 말을 입으로 꺼내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그녀의 개인적인 일을 깊이 고민해야만 할 무슨 이유가 있는가? 스스로에게 이 같은 질문을 던졌을 때 나는 대답할 수 없었다. 그래서이 말도 안 되는 생각을 떨쳐 내어 벗어나고자 노력했다. 이는 상당한 노력을 필요로 하는 일이었다. - P40

나는 그녀의 얼굴을 마음을 강하게 잡아끄는 그녀의 매력적이고 아름다운 얼굴을 마주하고 있는 시간에는 다른 것을 떠올린 적이 없노라고, 다른 것을 생각하기가 어렵다고 대답하고 싶었고, 거의 말할 뻔했다. 하지만 감히 직설적으로 말할 수는 없었다. 왜냐하면 무슨 이유에서 그렇게 생각했는지 나 스스로도 아직 명확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 P44

"아름다운 것은 무엇이건 간에 나는 모두 좋아해. 하지만 바로 그거야. 나는 아름다움을 보는 경향이 있어. 거의 모든 것은 관찰할 만하고 구경할 만해. 예컨대 이 호숫가의 잔물결이 이는 수면 역시 나에게는 흥미로워. 나는 아름다움을 사랑해. 왜냐하면 아름다움은 결점과 시듦이 없는 상쾌한 감정을 발생시키기 때문이지." - P47

"왜냐하면 그분의 사랑은 그분의 노년과 함께 말라 버렸기 때문이야. 사랑할 나이는 이미 그분을 지나가 버렸지. 이제 그분은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지 몰라. 그분은 나를 사랑할 수 없어. 그분에게는 사랑—내 이상 속 사랑으로 만들어 낼 것이 없기 때문이야." - P64

나는 아직도 그날의 감정을 생생하게 기억한다. 내가 얼마나 행복하고 기뻤는지는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끔씩 어떤 감정이 나의 행복을 방해했다. 그것은 시시각각 가장 강렬한 무엇인가가 일어날 거라는 두려움으로 내 심장을 빠르게 뛰게 했다. 두려움이 가슴속을 오르내렸다. 나는 그걸 꽉 눌러서 밖으로 드러나지 않도록 노력했지만 상당히 힘에 부쳤다. 그것을 완전히 막기는 어려웠다, 그저 기다릴 수밖에. 나는 지쳤고 피곤했고 행복했다. - P77

그분의 시간은 당신이 인생에서 어떤 이상을 만들어 내기에는 너무 적게 남았어. 그분은 달빛이나 호수 그리고 구애의 말에도 관심이 없어. 그분은 아름다운 것을 동경할 마음이 없어. 그분에겐 미래가 없어. 과거와 현재만 있을 뿐이야. 자네는 거기에서 어떻게 사랑이 생겨나기를 기대할 수 있지? 시멘트 길에서는 장미꽃이 피어나지 않는다네, 그대여." - P93

"저는 굉장히 난처합니다. 여사님에게 어떻게 대답해야 제가 만회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사랑이 저를 능가하는 힘을 가졌다는 사실만 확실히 압니다. 제 행동이 윤리에 어긋났다고 해도 저는 자연법칙의 통제에 놓여 있을 뿐입니다. 피하려고 노력했지만 사랑과 마주했을 때 저는 피해 나올 수 없었고 궁지에 몰렸습니다. 여사님께 부탁드립니다. 제발 이유를 가져와 말하지 마세요. 제발 윤리를 가져와 말하지 마세요. 저는 응수할 방법이 없습니다. 이것들은 자연법칙 이후에 만들어졌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모두 언제나 자연법칙의 통제 안에 있습니다." - P96

"저는 그렇게 하고 싶지 않습니다. 왜 제가 순수하게 저절로 생겨난 사랑, 불쌍하고 애처로운 무고한 사랑을 억눌러야 하는지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저는 사랑을 그렇게 대할 수 없습니다." - P107

"내 좋은 사람이여. 마지막으로 내 조언을 받아들이길 바라. 자네는 나를 사랑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학업을 위해 조국을 떠나 일본에 왔어. 자네의 목표를 정확하게 기억해야 하고 견고하게 잡고 있어야 하네. 지난 두 달 동안 자네와 나 사이의 관계는 잊어버리게. 그건 꿈이라고 생각하게." - P111

나에 대한 강렬한 감정은 적당한 때가 되면 점차 사라져 갈 것이고, 결국 나는 자네 인생에서 중요한 무엇이 아니게 될 거야. 그러면 족쇄 없이 아름답고 순수한 청년의 감정과 행복이 예전처럼 놉편의 마음으로 돌아올거야. 나는 그 시간을 기도하며 기다려. - P124

나는 끼라띠 여사가 그 편지 속에 어떤 심오한 감정을 숨겼음을 전혀 알아차리고 인식하지 못했다. 인생의 세심함과 은밀함이란, 그 당시에 알기에는 나의 이해력을 넘어서는 것이었다. - P135

그런데 나는 그다지 확신할 수 없다고 봐. 왜냐하면 아티깐버디 공이 죽은 이후에 여사가 사교 활동을 즐기지 않는 것 같다고 들었거든. 그녀는 조신하게 생활하면서 아티깐버디 공의 친한 친구들 모두의 칭찬을 받고 있어. 최근에는 누군가가 그녀에게 관심을 보였고 결혼을 타진했을 정도였는데 여사가 거절한것 같다고 들었고, 사람들은 그녀가 마음속에 은밀한 뭔가를 간직한 사람인 것 같다고들 말해. - P142

"생각해 보면 스스로에게 이상함을 금할 수 없어. 왜냐하면 지나온 시간에 내 행복을 이루었던 중요한 부분은 나에게 일어난 실제의 일이 아니라 오히려 단지 어떤 것에 대한 희망 또는 기대였기 때문이지. 지금에 와서도 내 삶은 아직 예전과 달라지지 않았다네. 진정한 행복은 여전히 앞날에 표류하고 있어. 나는 그것을 잡으려고 쫓아가고 희망하지. 그리고 기다리고 있어." - P151

"맞아, 자네는 이해하지 못할 거야. 왜냐하면 자네는 우리가 알게 된 첫날부터 나를 이해한 적이 없었으니까." 그녀의 눈빛에 비웃는 듯한 감정이 보이는 듯했다. "제가 아직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또 뭐가 있는지 제발 저한테 말씀해 주십시오." "자네는 모든 것을 이해하지 못해. 전부 이해하지 못해. 자네 자신조차도 이해하지 못해." - P170

"자네의 사랑은 그곳에서 태어났고 그곳에서 죽었지. 하지만 다른 한 사람의 것은 죽어 가는 몸에서 여전히 자라나고 있어." - P171

나는 나를사랑하는사람 없이 죽는다. 하지만 나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있어 족하다. - P1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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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인 악사 대산세계문학총서 164
블라디미르 갈락티오노비치 코롤렌코 지음, 오원교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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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22132

"다시 꿈을 꿨어요. 요즘 꿈을 자주 꾸는데...…… 아무것도 기억할수 없어요...."


<맹인악사>는 러시아 문학에서 인도주의를 대표하는 작가이자 언론인, 사회비평가, 사회활동가로 활동하며 당대 작가들은 물론 후대에 이르기까지 존경과 사랑을 받아온 블라디미르 코롤렌코의 네편의 중단편을 모은 작품이다.


러시아 문학을 좋아하지만 코롤렌코는 처음 들어본 작가였다. 우리나라에서는 널리 알려진 작가는 아닌걸로 생각되어진다. 아님 나만 모르는걸까? 이 책에 실린 네 작품 모두 좋았지만 가장 좋았던 작품은 표제작인 <맹인악사> 였다.




<맹인악사>

태어날 때부터 맹인이었던 표트르는, 불행을 안고 태어났음에도 어머니의 보살핌과 삼촌인 막심의 계략(?)에 의해 안정적으로 살아간다. 볼수는 없지만 청각을 통해 세상과 자연을 알아가고, 누구보다도 섬세한 음악적 재능을 가지게 된다.

[아마도 산모는 헤어날 길 없는 무거운 슬픔이 갓난아이와 함께 세상에 나타나 바로 무덤까지 새 생명을 따라다니려요람 위에 걸려 있다고 직감하는 듯했다. 어쩌면 이것은 완전히 허튼소리였는지 모른다. 하지만 어쨌든 간에 어린아이는 눈이 먼 채로 태어났다.] P.176



그리고 에벨리나라는 또래의 소녀를 통해 사랑이라는 감정을 알게된다. 그녀는 표트르의 든든한 친구가 되어주고, 그의 심리를 안정적으로 해주고 감성에 섬세함을 불어넣는다.

[전체적으로 이 우정은 행운의 진정한 선물이었다. 이제 소년은 더이상 완전한 고립을 추구하지 않았고, 어른들의 사랑이 그에게 줄 수없는 소통을 발견했으며, 가끔 그에게 찾아드는 예민한 정신적 평온의 순간에도 소녀가 곁에 있는 것이 기분 좋았다.] P.242



하지만 표트르는 청소년기에 들어서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되고, 이에 따른 자신의 불행을 직면하게 된다. 남과 너무나 다른 그의 처지를 한탄하게 되고, 다른 맹인들처럼 일반사람들과 관계를 끈고 살아가길 바라게 된다.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리고 운명은 어두운 구름처럼 몰려왔다. 해가 지날수록 소년의 천성적 활기는 썰물처럼 어렴풋하게 점차 사라졌지만, 영혼 속에서 끝없이 울리는 슬픈 기운은 소년의 기질로 드러나며 점점 강해졌다. 어린시절에 특별히 명확한 새로운 인상을 받을 때마다 들을 수 있었던 웃음소리는 이제는 점점 드물어졌다.] P.251



그래도 표트르에게는 그를 아끼는 가족과 연인이 있었고, 낙오자가 되지는 않는다. 그는 결국 연인과 결혼하게 되고 아이를 낳게 되는데, 그 아이가 맹인일거라는 걱정과는 달리 앞을 볼 수 있는 아이라는걸 알고 새로운 희망을 갖는다. 그리고 맹인은 절대 볼 수 없는 빛을 보게 된다. 기적이라도 일어난 걸까?

[그가 무엇을 보았고, 어떻게 보았으며, 정말로 본 것인지 등에 관해서는 전혀 알 수가 없었다. 많은 사람이 그것이 불가능하다고 말을 해도, 그는 하늘과 땅, 어머니, 아내 그리고 막심 삼촌을 보았다고 확신하며 자기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P.344



몇년 후 표트르는 수많은 청중 앞에서 행복을 주고 슬픔을 상기시킬 수 있근 맹인악사가 된다. 그리고 세상에 대한 새로운 눈을 뜬다. 그렇다, 새가 날기 위해 태어나듯이 인간은 행복하기 위해 태어난다. 불행은 일시적일 뿐이었다.

[그래, 그는 눈을 떴어. 어둡고 괴로운 이기적 고통의 자리에'그는 이제 삶의 지각을 가져왔고, 인간적 슬픔과 기쁨을 느끼며 눈을떴고, 이제 행복한 사람들에게 불행한 사람들을 상기시킬 수 있어.] P.350






태어날때부터 눈으로 세상을 못본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 난 그동안 맹인이 꿈을 못꾼다는 사실을 몰랐었는데, 이 책을 읽고 알았다. 맹인은 눈으로 세상을 본적이 없기 때문에 꿈조차 꿀 수 없다는 것을. 심지어 빛이라는 것도 볼 수 없다는 것을.


단 한번이라도 사랑하는 모습을 봤었더라면 꿈에서라도 만날수 있을텐데, 그러지 못하는 맹인의 마음은 얼마나 안타까울까? (예전에 스티비 원더가 단 한번만이라도 딸의 모습을 보고싶다고 했던 말이 생각났다.)


하지만 맹인에 대해 안타깝지만 동정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볼수는 없지만 그들은 다른 사람이 들을 수 없는 많은 소리를 들을 수 있고, 섬세하며, 뛰어난 청각능력을 가지고 있으니까, 그들 역시 행복하기 위해 태어났으니까.

단지 일반인들과 다를 뿐, 불행하다고 단정하면 안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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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의화가 2022-11-14 13:0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감각이라는 것이 참으로 신기합니다.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지 않고 극복한 케이스라고 보면 되겠네요. 저도 덕분에 러시아 작가 한 분 더 알아갑니다*^^*

새파랑 2022-11-14 16:13   좋아요 1 | URL
교훈성이 강하고 좀 늘어지는 전개라서 약간 아쉬운감이 있습니다만 좋았습니다 ㅋ

바람돌이 2022-11-14 16:2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처음 듣는 작가입니다. 대산문학은 진짜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작가들의 작품을 많이 내네요. 이런 뚝심있는 시리즈를 내는 출판사 응원하고싶습니다. ^^ 요즘 유튜브로 러시아문학 소개를 보고 있는데 아 진짜 러시아 문학작품들을 본격적으로 읽어보고싶단 생각을 많이하게 하더라구요. ^^

새파랑 2022-11-14 17:30   좋아요 1 | URL
러시아 하면 도스토에프스키 톨스토이 체호프 아니겠습니까? ㅋ 저도 러시아는 이분들빼곤 별로 안읽어본거 같아요 ㅎㅎ

mini74 2022-11-14 16: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처음 듣는 작가에요. 꿈조차 꿀 수 없다니...넘 슬픕니다.

새파랑 2022-11-14 17:32   좋아요 0 | URL
매사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야 할거 같아요 ㅜㅜ 꿈을 꿨는데 어둠밖에 안보인다면 어떨지 상상이 안됩니다~~

페넬로페 2022-11-14 17: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처음 들어보는 러시아 작가예요.
본 것이 없으면 꿈도 꿀 수 없군요.
책을 통해 늘 새로운 사실을 배우네요.
내용이 슬프면서도 감동적일 것 같습니다^^

새파랑 2022-11-14 17:32   좋아요 1 | URL
제가 감동적인건 별로 안좋아하지만 요책은 괘않았습니다 ^^

희선 2022-11-16 02: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시각장애인이라고 해도 다 다르기도 하더군요 아주 안 보이는 사람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빛이나 색이 희미하게 보이는 사람도 있어요 그렇다고 해도 잘 안 보이면 사는 게 쉽지 않겠지요 세상은 눈이 보이는 사람을 생각하고 만드는 게 많으니... 눈이 안 보인다고 해서 불행한 건 아닐 거예요 다른 걸로 보고 느끼겠지요 눈이 보이는 사람은 못 보는 걸 느낄 듯합니다


희선

새파랑 2022-11-16 10:20   좋아요 0 | URL
아 다 다르군요. 전 이 책 읽고 맹인의 심정을 약간이나마 알게되어서 좋았습니다. 눈이 보이는 사람보다 더 많은걸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