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카미 하루키의 위스키 성지여행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이윤정 옮김, 무라카미 요오코 사진 / 문학사상사 / 200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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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N22149

"만약 우리의 언어가 위스키라고 한다면, 이처럼 고생할 일은 없었을 것이다. 나는 잠자코 술잔을 내밀고 당신은 그걸 받아서 조용히 목 안으로 흘려 넣기만 하면 된다. 너무도 심플하고, 너무도 친밀하고, 너무도 정확하다."



역시 하루키가 쓰면 특별해 보이지 않은 위스키 성지 여행도 특별해진다. 별거 아닌 위스키 마시는 이야기가 이렇게 재미있어도 되는걸까?


나는 술 마시는걸 좋아한다. 그렇다고 많이 마시지는 않고 이틀에 한번만 마시자는 원칙이 있다. 그리고 같이 마실때는 왠만하면 네명 이내로 마시려고 한다. 다섯명이 넘으면 이야기 집중이 안되더라는.


그리고 혼술을 좋아한다. 보드카를 마실때는 탄산수와 섞어 마시고, 위스키를 마실때는 언더락으로 마시는데, 돈이 없어서 비싼 술을 마실 수는 없지만 나름의 방식으로 즐기고 있다. 그리고 책보면서 혼자 마시는 술이 너무 좋다.

["맛 좋은 아일레이 싱글 몰트가 코앞에 있는데, 왜 일부러 블렌디드 위스키 같은 걸 마신단 말이오? 그건 천사가 하늘에서 내려와 아름다운 음악을 연주하려는 순간에 텔레비전 재방송 프로그램을 트는 거나 마찬가지가 아니겠소?"] P.37



이번에 하루키의 <위스키 성지 여행>을 읽고 나서 스코틀랜드와 아일랜드의 위스키가 너무 마시고 싶어졌다. 도대체 어떤 맛이길래 하루키는 이렇게 맛깔나게 글을 쓴걸까? 위스키의 맛이 하루키의 문장속에 잘 녹아 있어서 술 취한 기분으로 책을 읽었다. (응?)

[아일랜드를 여행하노라면, 그처럼 온화한 아일랜드적인 나날들이 조용히 우리 앞에 하나하나 쌓여간다. 이 나라에 있으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말투나 걸음걸이가 조금씩 느려진다. 하늘을 바라보거나 바다를 바라보는 시간이 차츰 길어진다. 하지만 그것이 실로 다시는 경험하기 힘든 멋진 나날이었음을 사무치게 느끼게 되는 것은 좀더 나중의 일이다.] P.88



그리고 어디 먼곳으로 여행을 떠나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위스키의 맛과 함께 여행을 부르는 에세이. 내가 에세이를 그렇게 좋아하지 않아서 많이 읽어보진 않았지만, 내가 읽은 에세이 중 가장 매력적인 작품이었다.

[그럴 때면, 여행이라는 건 참 멋진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새삼스레 든다. 사람의 마음속에만 남는 것, 그렇기에 더욱 귀중한 것을 여행은 우리에게 안겨 준다. 여행하는 동안에는 느끼지 못해도, 한참이 지나 깨닫게 되는 것을. 만약 그렇지 않다면, 누가 애써 여행 같은 걸 한단 말인가?] P.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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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의화가 2022-12-28 13:1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취한 기분으로 책을 읽지 않으셨을까 싶은~ㅎㅎㅎ 요즘은 보드카나 위스키를 제법 많이 마시는 모양이예요! 짧고 굵게 가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구요. 예전처럼 부어라 마셔라 하지 않고~^^; 저도 혼술을 하긴 합니다만 예전처럼 자주는 못 마시게 되네요.
어느 도심의 호텔에 가서 위스키 한잔하며 여행 즐기는 것도 좋지 않을까요?ㅎㅎㅎ

새파랑 2022-12-28 13:52   좋아요 1 | URL
소맥 마시는 것 보다는 가볍게(?) 요런거 몇잔 마시는게 전 좋더라구요 ㅋ 위스키 여행을 떠나보고 싶네요 ^^

청아 2022-12-28 14:4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새파랑님 은근 애주가시네요ㅋ 저는 여행가면 낮술도 하게 되더라구요. 여행지 자체로
안주가 되는 느낌? 아일랜드에 대한 글 마음에 듭니다. 술도 그렇고 뭐든 조금 지난뒤에
제대로 음미하게 되는 것 같아요.^^*

새파랑 2022-12-28 14:57   좋아요 2 | URL
역시 술은 낮술이죠 ㅋ 아일랜드라는 나라 참 마음에 듭니다~!! 언젠간 가보고 싶어요 ^^

그레이스 2022-12-28 23:1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런 책도 있네요
여행기 몇권 갖고 있는데 이제는 테마여행까지, 새파랑님은 진정한 하루끼 빠이십니다.^^

새파랑 2022-12-29 17:04   좋아요 2 | URL
전 하루키가 너무너무 좋습니다 ^^ 하루키 싸인 받고 싶습니다~!!

2022-12-29 16: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새파랑 2022-12-29 17:04   좋아요 1 | URL
헛 😅 전 그렇게 많이는 안마십니다 ㅋ

페넬로페 2022-12-29 21:5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혼술하면서 책 읽는 기분, 좋지요!
위스키 한 두번 마셔봤는데 인용하신 첫문장 넘 맘에 와 닿아요.
율리시스때문에 아일랜드 가고 싶은데 이 나라는 위스키의 성지이기도 하네요^^

새파랑 2022-12-31 08:18   좋아요 2 | URL
아일랜드는 정말 매력적인 나라인거 같아요 ㅋ 혼술 책읽기 정말 좋죠 ^^

서니데이 2022-12-29 22:2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 책 2000년대 초반에 나온 문학사상사의 책이네요. 예전에 무라카미 하루키 책은 문학사상사에서 출간된 책이 많았어요. 지금은 절판이라는 것은 아쉬운데, 나중에 제목이 달라져서 또 나올 수도 있겠고, 개정판이 그 사이 나왔을 수도 있겠지요. 하루키 선생의 책들은 이 시기에 많이 나왔는데, 요즘에는 기출간된 책이 많아서 그런지 새로 나오는 책은 적고 이전의 책들이 다시 나오는 것 같아요.
새파랑님, 따뜻한 연말 보내세요.^^

새파랑 2022-12-31 08:20   좋아요 2 | URL
개정판 버젼 표지랑 제목이 더 마음에 들었는데 이 책이 중고로 있길래 그냥 샀습니다 ㅋ

mini74 2022-12-30 20:2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앗 전 이 책 도서관에서 빌려 읽었어요 새파랑님 ~ 술을 잘 몰라서 ㅎㅎㅎ 아이가 하이볼 만들아 준 적 있는데 그건 맛있더군요.
연말이라 바쁘게 보내신건 아닌지 ㅎㅎ 즐거운 연말 보내세요 새파랑님 *^^*

새파랑 2022-12-31 08:21   좋아요 2 | URL
요새는 일보다는 모임이 많아어 바쁜거 같아요 😅 미니님은 와인이 어울리십니다~!!

서니데이 2022-12-31 17:3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새파랑님, 오늘은 올해의 마지막 날이예요.
따뜻한 연말 보내시고, 새해에도 건강하고 행복한 시간 되세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새파랑 2022-12-31 22:26   좋아요 3 | URL
서니데이님 감사합니다~!! 즐거운 2023년 맞으시길 바라겠습니다 ^^

희선 2023-01-01 00:5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직 먼 곳에 가기에 어렵기도 하네요 다시 그런 날이 올지... 그래도 어딘가에 가고 싶은 사람은 갈지도 모르겠습니다 새파랑 님도 언젠가 가고 싶은 곳에 가시기를...

새파랑 님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2023년에도 책 즐겁게 만나세요 늘 건강 잘 챙기세요


희선

독서괭 2023-01-01 09:1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새파랑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새해엔 더 좋은 책들 많이 만나시길요^^
 

하루키는 정말 천재다. 여행기가 이렇게 재미있을수가 있을까?




만약 우리의 언어가 위스키라고 한다면, 이처럼 고생할 일은 없었을 것이다. 나는 잠자코 술잔을 내밀고 당신은 그걸 받아서 조용히 목 안으로 흘려 넣기만 하면 된다. 너무도 심플하고, 너무도 친밀하고, 너무도 정확하다. - P15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우리의 언어는 그저 언어일 뿐이고, 우리는 언어 이상도 언어 이하도 아닌 세상에 살고 있다. 우리는 세상의 온갖 일들을 술에 취하지 않은 맨 정신의 다른 무엇인가로 바꾸어 놓고 이야기하고, 그 한정된 틀 속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다. - P16

그러나 예의적으로, 아주 드물게 주어지는 행복한 순간에 우리의 언어는 진짜로 위스키가 되기도 한다. 그리고 우리는-적어도 나는 늘 그러한 순간을 꿈꾸며 살아간다. 만약 우리의 언어가 위스키라면, 하고. - P16

아일레이 위스키를 좋아하는
열광적인 팬에게 있어서
‘아일레이의 싱글 몰트‘라는
말은 은혜로운 교조님의 신탁과도 같은 것이다.

"Islay and whisky come almost as smoothly off the tongue as Scotch and water" - P27

"블렌디드 위스키-소위 스카치-는 안 마십니까?" 내가 그런 질문을 하자, 상대방은 다소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비유를 하자면, 결혼을 앞둔 자기 누이동생의 용모나 품성에 대해 남이 험담을 늘어놓을 때 지을 법한 표정이었다. "물론 마시지 않아요" 하고 그는 대답했다. - P37

"맛 좋은 아일레이 싱글 몰트가 코앞에 있는데, 왜 일부러 블렌디드 위스키 같은 걸 마신단 말이오? 그건 천사가 하늘에서 내려와 아름다운 음악을 연주하려는 순간에 텔레비전 재방송 프로그램을 트는 거나 마찬가지가 아니겠소?" - P37

아이가 태어나면 사람들은 위스키로 축배를 든다. 그리고 누군가 죽으면, 사람들은 아무 말 없이 위스키 잔을 비운다. 그것이 아일레이 섬이다. - P64

아일랜드
로스크레아의 퍼브에서,
그 노인은 어떻게 튤러모어 듀를 마셨는가?

어디를 가도 풍경은 아름답지만, 이상하게도 그림엽서처럼 아기자기하게 꾸며 놓은 듯한 느낌은 들지 않는다. 아일랜드의 아름다움이 우리에게 내미는 것은 감동이나 경탄보다는 오히려 위안과 진정(鎭)에 가까운 것이다. 세상에는 입을 열기까지는 다소 시간이 걸리지만, 일단 말문이 트이면 온화한 어조로 몹시 재미난 이야기를 들려주는 사람이 있는데(그리 많지는 않지만), 아일랜드는 그런 느낌이 드는 나라이다. - P85

아일랜드를 여행하노라면, 그처럼 온화한 아일랜드적인 나날들이 조용히 우리 앞에 하나하나 쌓여간다. 이 나라에 있으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말투나 걸음걸이가 조금씩 느려진다. 하늘을 바라보거나 바다를 바라보는 시간이 차츰 길어진다. 하지만 그것이 실로 다시는 경험하기 힘든 멋진 나날이었음을 사무치게 느끼게 되는 것은 좀더 나중의 일이다. - P88

퍼브란 꽤 심오한 곳이다. 말하자면, ‘율리시즈‘적으로 심오하다. 비유적으로, 우화적으로, 단편적으로, 종합적으로, 역설적으로 호응적으로, 상호 참조적으로, 켈트적으로, 전 세계적으로 심오하다. - P108

그는 그 위스키를 마셨다.한 모금 마시고 뭔가를 생각하고, 또 한 모금 마시고는 뭔가를 골똘히 생각했다. 그가 무엇을 생각하는지 물론 나로서는 알 도리가 없다. 코드를 잡는 버드 파웰의 왼손의 리듬이 만년에 들어 간간이 느려지는 것이 의식적인 건지, 아니면 단순히 기술적인 원인에서 비롯된 건지에 관해 생각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어젯밤 마이크 타이슨이 라스베가스의 링 위에서 대전 상대의 귀를 물어뜯은 것은 감량으로 인한 스트레스와 무슨 관련이 있는 건 아닌가 하는 고찰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 - P119

그럴 때면, 여행이라는 건 참 멋진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새삼스레 든다. 사람의 마음속에만 남는 것, 그렇기에 더욱 귀중한 것을 여행은 우리에게 안겨 준다. 여행하는 동안에는 느끼지 못해도, 한참이 지나 깨닫게 되는 것을. 만약 그렇지 않다면, 누가 애써 여행 같은 걸 한단 말인가? - P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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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2-12-27 12: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죽음보다 두려움이 더 무섭습니다.

새파랑 2022-12-27 18:48   좋아요 1 | URL
앗 ㅋ 저는 누가 기억해줄 수 있는 사람이 별로 없을거 같아서 죽는게 더 무섭습니다 😅 요 문장 좋아요~!!

모나리자 2022-12-27 22: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다시 하루키로 넘어가셨군요.ㅎ
하루키와 위스키 성지 여행도 재미있을 것 같네요.
며칠 남은 12월 좋은 마무리 하시고 새해에도 화이팅 하세요. 새파랑님.^^

새파랑 2022-12-28 07:27   좋아요 1 | URL
돌고돌아 하루키 입니다 ㅋ 하루키 에세이 너무 재미있네요~!!
 
알 수 없는 발신자 - 프루스트 미출간 단편선
마르셀 프루스트 지음, 윤진 옮김, 뤼크 프레스 해제 / 문학동네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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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22148 현암사에서 나온 프루스트의 단편집인 <밤이 오기 전에>랑 수록된 작품이 동일하다. 대신 이 책의 해설이 더 풍부하고 (재독해서 그런거겠지만) 이해하기 수월했다. 두 작품 중 한 작품만 읽어도 되지만, <잃시찾>을 조금이라도 읽었던 사람에게는 이 책이 더 좋을 듯 하다. 다시 읽어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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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빛 죽음 쏜살 문고
다니자키 준이치로 지음, 양윤옥 옮김 / 민음사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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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22147 다니자키 준이치로의 탐미주의를 그대로 느낄 수 있는 3편의 초창기 단편이 실려있는 작품. 그에게는 어떤 것이라도 아름답기만 하다면 문제가 없는듯하다. 심지어 죽음 조차도. 개인적으로는 첫번째 단편집인 <소년>이 더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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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2-12-26 12:1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제목부터가 유미주의, 탐미주의 색이 짙습니다.^^

새파랑 2022-12-26 13:13   좋아요 2 | URL
표지부터 완전 그렇습니다~!! 표지에 뿌리고 있는게 금가루라는 ㅋ
 
미친 노인의 일기 쏜살 문고
다니자키 준이치로 지음, 김효순 옮김 / 민음사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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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22146

"그녀의 환심을 사기 위해서라면 부상을 당해도 억울하지 않다. 그 부상이 원인이 되어 죽음을 초래하더라도 오히려 바라는 바다."


이런 작품을 쓸 수 있는 작가가 몇이나 될까? 작품의 완성도나 가치를 떠나서 이토록 노골적으로 적나라하게 자신의 성적 취항을 강하게 드러내면서도, 아주 재미있고 탐미적으로 쓸 수 있는 작가로는 다니자키 준이치로가 최고이지 않을까 싶다.


너무나 정직한 제목인 <미친 노인의 일기>는 다니자키의 자아가 투영되어 있는 노인이 쓴 일기 형식의 작품이다. 이제 살날이 얼마 안남은 노인이지만 그의 성욕은 왕성하기만 하다. 특히 발에 대한 집착은 광적이면, 이러한 그의 욕구는 며느리인 사쓰코에게 향한다.

[하지만 살아 있는 한 이성에게 끌리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런 생각은 죽는 순간까지 계속되리라 생각된다. . . 그렇기 때문에 여러 가지 간접적인 방법으로 변형된 성적 매력을 느낄 수 있다. 현재의 나는 그와 같은 성욕의 즐거움과 식욕의 즐거움으로 살고 있는 것 같다. 그런 나의 심경을 사쓰코만은 어렴풋하게나마 알아채고 있는 듯하다. 이 집안 식구들 중에 그것을 아는 사람은 사쓰코뿐이다.] P.25



그런데 사쓰코 역시 만만한 며느리가 아니다. 그녀는 노인의 성욕이 자신을 향함을 인식하고, 자신의 물질적 욕망을 위해 노인의 추파를 아주 조금은 맞춰준다. 이미 갑을 관계가 형성되어 있기 때문에 사쓰코는 노인에게 반말을 한다. 반대로 노인은 며느리를 사쓰짱이라 부르고 싶어한다...

[내 아내조차 사쓰코와 조키치의 결혼을 그렇게 심하게 반대했으니, 그 무렵까지 어머니가 살아 계셨다면 얼마나 반대를 했을까? 아마 두 사람의 결혼은 성사되지 못했을 것이 틀림없다. 아니 처음부터 댄서 출신과의 결혼은 생각지도 못했으리라. 그런 혼사가 성사되었을 뿐만 아니라 어머니의 아들인 내가 손자며느리의 매력에 빠져 그녀에게 페팅을 허락받는 대가로 300만 엔을 투자하여 묘안석을 사 주는 사건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면 어머니는 아마 놀라서 기절했을 것이다. 만일 아버지가 살아 계셨으면 나도, 조키치도 의절당했을 터다. 아니 그보다도 어머니가 사쓰코의 용모와 자태를 보신다면 어떻게 생각하실까?] P.95



며느리에게 온갖 치욕, 멸시를 당하면서도 노인의 구애는 멈출 줄 모르고 오히려 더 왕성한 욕망을 보인다. 노인이 아직 죽지 않고 살아 있을 수 있었던 원동력은 바로 이 성욕이었다. 게다가 사쓰코의 발에 대한 미친 성욕은 그녀의 발 아래에서 죽고싶다는 말도 안되는 미친 욕망으로 이어진다. 노인의 미친 욕망은 이뤄질수 있을까?

[가급적이면 사쓰코의 용모와 자태를 이와 같은 보살상으로 새겨서 몰래 관음이나세지로 보이게 하여 그것을 내 묘비로 할 수는 없을까? 어차피 나는 신불을 믿지 않는다. 내게 하느님이나 부처님이 있다면 사쓰코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사쓰코의 입상 아래 묻히는 것이 내 소원이다.] P.165





널리 읽힌 작품은 아닌것 같은데, 막 강추하기는 망설여지지만 다니자키 준이치로의 작품에 관심이 있다면 꼭 읽어보기를 추천한다. 인기있는 막장 드라마처럼 읽는 내내 욕나오지만 읽는걸 멈출 수는 없고 매우 재미있다.


Ps. 쏜살문고에서 나온 다니자키 준이치로의 선집을 하나씩 모으고 있다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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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하수 2022-12-25 22: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다니자키 준이치로 초기작들이 이런 성애소설이 많다죠?^^
저도 오래전 대표작인 <미친사랑 > 읽다 깜놀했던 기억이 있어요.
거기서도 풋페티시즘이 적나라하게 나오거든요. 참... 뭐라 평하기 곤란한 장면들이 많았는데 그 다음에 읽었던 책은 에로티시즘과 전혀 닿지않아서 의외였던 경험이 있어요. 흥미로운 작가이긴 합니다.

새파랑 2022-12-26 09:12   좋아요 0 | URL
어디가서 다니자키 준이치로 팬이라고 하기에는 약간 눈치보이지만 좋아합니다 ㅋ <미친 사랑> 보다 이 작품이 더 충격(?) 적이긴 합니다 ㅋ

그당시에 이런 작품을 썻다는데 놀랍기만 합니다~!!

희선 2022-12-26 01: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목부터 《미친 노인의 일기》라니... 욕하면서 재미있게 보게 되는 거군요 며느리 발이라니... 며느리는 며느리대로 자기가 바라는 게 있었네요 다른 것 때문에 오래 살면 더 좋을 텐데 싶기도 합니다 소설이니 그럴 수도 있겠지 해야겠네요


희선

새파랑 2022-12-26 09:13   좋아요 0 | URL
그런데 준이치로의 일대기를 보면 왠지 실제로도 그랬을거 같은 생각이 듭니다 ㅋ 완전 재미있어요 ~!!

coolcat329 2022-12-26 08: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죽지 않고 살게 하는 원동력이 성욕이라니 괴로울 거 같아요.ㅠ 변태같지만 본인도 괴로울겁니다. 그것도 며느리라니 ㅠ
현실에서 이런 노인은 노망난 변태겠지만 문학은 이런 인물을 그래도 이해하고픈 마음이 들게 하니 참 좋습니다.

새파랑 2022-12-26 09:14   좋아요 1 | URL
이해하고픈 마음이 별로 들지는 않습니다 ㅋ 완전 미친 노인이에요. 그런데 왜 이렇게 재미있는지 ㅋ 이게 문학의 힘인거 같기도 합니다~!!

청아 2022-12-26 12: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다니자키 준이치로는 문학을 매개로 욕망에 충실한 삶을 살았네요. 내년에는 그의 작품을 꼭 읽어야겠어요. 제 생각에 페티시즘을 느끼는 남성들은 여성이 되고싶은 열망도 얼마간 있는것 같아요ㅋ

새파랑 2022-12-26 13:11   좋아요 1 | URL
앗 ㅋ 그런 이유도 있는걸까요? 정신건강(?) 다니자키 준이치로 작품은 안읽는걸 추천하지만, 미미님은 독서기계시니 문제 없을거 같아요~!!

페넬로페 2022-12-26 18:2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완전 미친, 막장 드라마네요.
그래도 이 소설을 욕하면서 읽어갈 수 있다는건 작가의 필력때문인 것 같습니다.
사랑과 욕망은 자기 뜻대로는 제어가 안되어 저런 사람도 존재할 듯 합니다^^

새파랑 2022-12-26 21:40   좋아요 1 | URL
필력이 ㅋ 장난 아닌거 같아요. 한번 손에 잡으면 놓을수가 없습니다 ~!! 이런 작품을 쓸 수 있는 사람은 흔하지 않은거 같아요 ㅋ

페넬로페님하곤 완전 상극인 작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