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다른 관심사가 생겨서 리뷰를 못쓰고 있다. 그래도 책은 꾸준히 읽는다. 그리고 최근에 알라딘 만권당 서비스를 이용중인데, 밀리의 서재나 yes24보다 괜찮은거 같다. 책도 많아 보이고. 잠시 시간날때 읽으려고 한다. 그래도 난 여전히 종이책이 좋다.


마지막 리뷰를 쓴 이후 읽은 책이 7권이다. 간단히 리뷰해 보면,


N25041. <바람이 분다, 가라> 한강

한강 작가님 작품 중 가장 재미있는 작품이 아닐까 싶다. 일단 서사가 있고, 추리소설처럼 결말이 예측 불가능해서 손을 놓을 수 없었다. 사람의 마음은 달의 뒷면과 같아서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불행은 세대를 넘어도 끝나지 않는다. 그렇게 불행함에도, 연악하더라도 인간의 살고자 하는 의지는 강하다. 바람이 불어도 가야 하는게 인간이고 인생이라는 걸 말해주는 작품. 단 한명이라도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살아갈 수 있다.

[내가 아픈 곳은 달의 뒷면 같은 데에요. 피 흘리는 곳도, 아무는 곳도, 짓무르고 덧나는 곳, 씩어가는 곳도 거기에요. 당신에게도, 누구에게도... 나 자신에게도 보이지 않아요.]  P.219




N25042. <샌프란시스코에서 온 신사> 이반 부닌

내가 좋아하는 이반 부닌의 새로나온 작품. <가벼운 숨결>, <창의 꿈>을 제외하고는 처음 읽는 듯 했다. 초반부에 실려있는 표제작과 <창의 꿈>, <수호돌>과 후반부에 실려있는 <일사병>, <옐라긴 소위 사건>, <미탸의 사랑>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초반부는 약간 톨스토이 느낌이라면 후반부는 이반 부닌 특유의 사랑이야기 인데, 나는 후반부 작품들이 좋았다.  내가 이 책에 기대했던 것도 그런거고. 이반 부닌을 처음 접한 분들 보다는 몇번 읽어본 분들에게 추천하고 싶다.

[˝가장 큰 희극이 뭔지 알아? 네가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면 네가 사랑하는 그 사람이 너를 사랑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아무리 설득해도 믿을 수가 없다는 거지. 바로 그게 문제야, 창. 그렇지만 삶이란 얼마나 멋진가. 정말 멋져!˝]  P.51




N25043. <정신과 의사>  마샤두 디 아시스

알라딘 ˝만권당˝ 서비스 가입 후 처음 읽은 책. 예전부터 읽고 싶었으나 구매하기는 좀 꺼려졌었는데, 이렇게 이북으로 읽으니 좋았다. 표제작인 <정신과 의사>가 중편이고, 나머지는 단편임. 표제작이 가장 좋았고 인상깊었다. 정신적으로 불균형한 사람은 모두 정신병원에 가야 한다면 아마 대다수의 사람이 정신병원에 가야할 건데, 그렇다면 정신적으로 불균형한 사람이 정상인거고 오히려 정신적으로 균형잡힌 사람이 비정상적인게 아닐까? 이런 흥미로운 이야기가 담겨 있으니 안읽어 보신 분들께 이 표제작만이라도 읽어보시기를 추천한다.

[셋째, 이러한 조사와 통계적 사실로부터 정한 이론은 기존의 것이 아니라 그 반대의 것이라는 확신을 갖게 되었고, 따라서 기능이 불균형한 사람들을 정상적인 표본으로 여겨야 하며 오히려 그러한 균형이 지속되는 사람들이야말로 모두 병리학적 가설 사례라고 인정해야만 했다.]  P.157




N25044. <우리의 연애는 모두의 관심사>

제목과 표지에 이끌려 구매한 작품. 정말 어떤 사람의 연애가 모두의 관심사일까? 난 반대로 무관심할 거라 생각했는데 말이다. 그런데 책을 읽어보니  모두의 관심사는 아니고 주변의 관심사 정도는 될거 같다. 장강명, 차무진, 소향, 정명섭 작가님들이 단편들이 한작품씩 실려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장강명 작가님의 작품이 가장 좋았고, 다른 작품들도 찾아 읽고 싶어졌다.




N25045. <흰> 한강

어쩌다 보니 한강작가님의 작품을 두편이나 읽었는데, 산문같은 소설이었다. 흰색에 관한 이야기인데, 내가 생각하는 흰색은 순수에 가까웠는데, 그건 흰색이 아니라 하얀색이었다. 작가님이 말한 흰색은 삶과 죽음 이었다. 특별한 서사는 없지만 시각적인 묘사가 강렬하고 읽는 내내 눈밭에 있는 기분이었다. 슬프지만 아름답고, 연약해 보이지만 강한 인간을 그린 작품이라고 하고 싶다. 죽지마라 제발. 다시 숨을 쉬어바 제발.

[죽지 마. 죽지 마라 제발

말을 모르던 당신이 검은 눈을 뜨고 들은 말을 내가 입술을 열어 중얼거린다. 백지에 힘껏 눌러쓴다. 그것만이 최선의 작별의 말이라고 믿는다. 죽지 말아요. 살아가요.]  P.133




N25046. <슬픈 카페의 노래> 카슨 매컬러스

국적을 불문하고 사랑에 대해  ‘빠지다‘ 라는 표현을 쓰는데 탁월한 표현이라고 본다. 사랑에 대해 이성적으로, 계산적으로 접근하는 사람들은 아마 제대로 된 사랑을 안해본 사람들이지 않을까란 생각이 든다. 사랑은 분석할 수 없다. 어느 한순간 별다른 이유 없이 빠지고, 괴로워 하면서도 빠져 나올 수 업ㅎ는게 사랑이다. 타인이 거기에서 이유를, 불합리성을 찾는건 무의미하다. 이 책은 이런 사랑의 속성을 너무나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중편에다가 재미있어서 순식간에 읽을 수 있다.




N25047. <가난한 사람들> 도스토예프스키

만권당 가입 기념 다시 시작하는 도스토예프스키 전작 읽기. 다시 읽으니 예전에 안보이는 것들이 보였다. 가난이 비극인 건 사람을 비참하게도 하지만 정신적으로도 빈곤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가난은 삶도 사랑도 지키지 못하게 한다. 가난은 또 가난을 불러오는데 이는 구조적인 문제인건지, 개인의 문제인건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았다. 19세기 도스토예프스키가 그린 가난은 현재에 적용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다. 대가의 시작을 알린 작품. 러시아 문학을 좋아하는 분들께 적극 추천한다.

[이제는 제가 살아 있으므로 당신이 살아 있고, 당신은 저의 기쁨, 슬픔, 감정만 바라보며 살고 계십니다! 그런 당신을 바라보는 저는 어떨지 한번 생각해 보세요. 남의 일 때문에 항상 그렇게 마음을 쓰시고 깊이 동정하시다가는, 당신은 정말 이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이 되실 거예요.]  P.1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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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괭 2025-05-15 12: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 만권당 좋다고요? 밀리보다 낫다면 가능성이 있네요. 알라딘 흥해라~ㅎㅎ

새파랑 2025-05-15 13:58   좋아요 1 | URL
지금 가입하면 첫달은 꽁짜 이후 50퍼센트 할인인가 그래요 ㅋ 삼성카드 만드시면 알라딘 할인도 되고 좋습니다~!!

다락방 2025-05-15 15: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만권당 좋다고요? 2

그나저나 최근 생긴 다른 관심사는 뭐죠? 네?

잠자냥 2025-05-15 16:13   좋아요 0 | URL
테니스

다락방 2025-05-15 16:22   좋아요 0 | URL
아?!
곧 잠자냥 님과 대결하나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새파랑 2025-05-15 16:51   좋아요 0 | URL
앗 ㅋㅋㅋ 맞습니다 ㅋㅋㅋ 그러나 전 테린이일뿐...

저는 만권당 좋던데요?

페넬로페 2025-05-15 19: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다양한 작가의 작품 읽으시네요.
만권당이 밀리보다 낫다고요?
북플이나 알라딘 서버가 자주 불안정해 신뢰가 안 갔거든요~~

새파랑 2025-05-16 10:52   좋아요 1 | URL
밀리보다 제가 좋아하는 분야의 책이 많아보이더라구요 ㅋ 요새 잡식성으로 읽고 있습니다~!!

바람돌이 2025-05-16 09: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바람이 분다 가라가 제일 재밌군요. 음 기억하고 읽어보겠습니다. 한강 작가님 작품 사실 다 재미는.... ㅎ

새파랑 2025-05-16 10:53   좋아요 1 | URL
바람이 분다는 쪼끔 재미있습니다 ㅋ 내용이 많이 무겁긴 하지만요 ㅋ
 

재독. 역시 도스토예프스키. 가난이 무서운가, 정신적 빈곤이 무서운가.

아아, 앞으로 저는 어떻게 될까요, 제 운명은 대체 어떻게 전개될까요? 불확실한 내일과 보장 없는 미래 그리고 앞으로 제게 어떤 일이 일어날지 짐작도 할 수 없는 현실만 생각하면 전 괴롭기만 합니다. 과거는 돌이켜 보는 것조차 무서워요. 잠깐만 회상을 해도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으니까요. 저를 파멸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은 사악한 사람들 때문에 저는 앞으로도 수많은 세월을 울고 울고 또 울어야겠지요. - P19

하지만 나는 그때 그와 무슨 얘기들을 나누었는지 생각이 잘 나지 않는다..! 다만 그때그때 머릿속에 떠오르는 얘기, 가슴속에서 솟아나오는 애기, 털어놓을 수밖에 없던 애기들 등 할 수 있는 모든 얘기를 다 했었다는 것밖에는. 우리는 행복에 가까운 감정을 느꼈다... 아아, 그것은 정녕 슬픔과 기쁨이 공존하는 시간이었다. 그 일을 돌이켜 보는 지금도 나는 슬픔과 기쁨을 동시에 느끼고 있으니..... 추억은 기쁜 것이든 슬픈 것이든 항상 괴로운 것이다. 최소한 나한테는 그렇다. 그러나 그 괴로움은 또 달착지근한 것이다. - P75

처음 나는 잠이 들지 않기 위해서 책을 읽었고, 시간이 좀 지나자 진지하게, 그리고 나중엔 책속으로 몰입하게 되었다. 그때까지 알지 못했던 낯설고 새로운 것들이 갑자기 한꺼번에 내 눈앞에 펼쳐졌던 것이다. 새로운 사상과 새로운 느낌들이 거센 물결처럼 한꺼번에 가슴속으로 밀려 들어왔다. 그런 흥분이 거세어질수록, 새로운 느낌을 받아들이는 것이 당황스럽고 벅찰수록, 나는 점점 더 깊이 그 낯선 느김에 빠져 들었고, 그 느낌은 점점 더 달콤하게 내 영혼을 뒤흔들어 놓았다. 새로운 느낌들은 한꺼번에내 가슴속에 들어와 북적거렸고 잠시도 쉴 틈을 주지 않았다. 기이한 혼돈 상태가 나의 존재를 뒤흔들었다. 하지만 그런 정신적인 충격도 나라는 사람을 완전히 뒤바꿀 만큼 혼란을 야기하지는 못했다. 나는 공상 속에 사는 사람이었고, 그것이 나를 지켜 주었던 것이다. - P76

하지만 지금부터는 모두 슬프고 괴로운 추억뿐이다. 내 인생에서 어두웠던 순간의 이야기가 시작되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손에 취고 있는 펜도 더 이상 써 내려가기 싫다는 듯 천천히 움직이고 있다. 여태껏 나는 이 애기를 조금이라도 늦게 하려고 행복했던 나날들의 아주 소소하고 상세한 일상까지 기억 속에서 끄집어내어 각별한 애정을 가지고 몰입하며 써 내려왔던 모양이다. 하지만 행복은 너무도 짧았다. 그 자리는 슬픔, 암울한 슬픔이 곧 대신했으니까. 불행이 언제 끝날지는 오직 신만이 아는 일이었다. - P87

당신이 저를 사랑하신다는 거, 저 잘 알고 있어요. 굳게 믿고 있어요. 그러니 선물로 그것을 상기시키는 일 따위는 정말 불필요한 일입니다. 당신이 선물을 주실 때마다 제가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아세요. 선물을 장만하시느라 당신이 어떤 희생을 치르시는지 잘 알고 있거든요. - P103

어떻게 하면 당신에게 아주 작은 도움이라도 되드릴 수 있을까요? 제가 무엇 때문에 그렇게도 당신께 필요하다는 겁니까? 제가 당신에게 뭐 좋은 일을 해드린 게 있어요! 영혼으로 당신과 하나가 되어 당신을 깊이,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다는 것밖에는 없잖습니까! 하지만 ㅡ 아, 슬픈 내 운명이여! ㅡ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사랑뿐, 다른 좋은 일을 해드릴 수도 없고 당신의 은혜에 보답을 해드릴 수도 없잖아요. 더 이상 저를 붙잡지 마세요. 잘 생각해 보시고 당신 결정을 말씀해 주세요. 기다리겠습니다. - P129

저는 당신에게 익숙해졌습니다. 당신이 자꾸 이러시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아십니까? 저는 네바 강으로 갈 수밖에 없고 일은 거기서 끝나는 겁니다. 정말이에요, 바렌까, 그렇게 될 거예요. 당신이 없는 곳에서 저 혼자 남아 할 일이 뭐가 있겠습니까? - P131

아무 도움도 안 된다는 것인지, 한 번 더 생각해 보서요. 당신은 저에게 큰 도움을 주고 계십니다, 바렌까 당신이 얼마나 좋은 영향을 끼치고 계신데요. 지금 이렇게 당신에 대해 생각만 해도 저는 즐거워지는 걸요.... 가끔 당신께 편지를 쓰고 제 모든 감정을 거기에 토로하고 거기에 대한 자세한 답장도 받는걸요. - P131

가난한 사람은 까다로워요. 가난한 사람은 보통 사람과 다른 눈으로 세상을 쳐다보고 길거리를 지나는 사람들을 곁눈질로 쳐다봅니다. 주변을 항상 잔뜩 주눅이 든 눈으로 살피면서 주위 사람들의 한 마디 한 마디에 신경을 씁니다. - P158

이제는 제가 살아 있으므로 당신이 살아 있고, 당신은 저의 기쁨, 슬픔, 감정만 바라보며 살고 계십니다! 그런 당신을 바라보는 저는 어떨지 한번 생각해 보세요. 남의 일 때문에 항상 그렇게 마음을 쓰시고 깊이 동정하시다가는, 당신은 정말 이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이 되실 거예요. - P180

옛 추억에 홈뻑 젖어 저는 어린아이처럼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습니다. 모든 게 너무도 생생합니다. 손에 잡힐 듯 생생합니다. 지나간 날들은 눈앞에서 선명한데 현재의 삶은 흐리멍덩하고 어둠 속에 가려져 있습니다....! 어떻게 끝이 날까요, 대체 어떻게 이 모든 일이 끝나게 될까요? - P206

마침내 결론을 내렸습니다. 저는 그에게 시집을 가렵니다. 저는 그의 청혼에 승낙을 해야만 합니다. 그는 제게 치욕스러웠던 과거를 벗겨 주고, 저의 명예로운 이름을 되돌려 주고, 앞으로 닥쳐올 고난과 가난과 불행에서 저를 구해 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입니다. 지금 생활에서는 제가 무엇을 기대할 수 있겠습니까. - P252

우리가 함께한 시간은 이것으로 끝입니다! 즐거웠던 추억 중에서 새 생활로 가져가는 것은 거의 없습니다. 그래야 당신에 대한 회상이 더 값질 테니까요, 그렇게 해야 당신이 저의 가습속에서 더 소중하게 남으실 테니까요. 당신은 이 세상 단 하나뿐인 저의 친구입니다. 여기서 절 사랑해 준 사람은 오로지 당신 한 사람뿐이었습니다. 당신이 얼마나 절 사랑하셨는지 저는 다 알고 있습니다! 저의 미소 하나로, 제가 쓴 한 줄의 편지로 당신은 행복을 느끼셨지요. 당신은 이제 저를 떨어 내셔야 합니다! 당신 혼자 어떻게 여기 남으시죠! 착하고 더없이 소중한, 단 하나뿐인 나의 친구여, 당신은 이제 누구를 보고 사시죠! 제 책과 재봉대와 쓰다 만 편지는 당신께 드리고 갑니다 처음 몇 줄만 씌어진 편지를 보시거든, 제게서 듣고 싶으신 이야기를 마음속으로 그리며 읽어 주세요. - P2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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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문같은 소설에 딱 맞는 작품. 아침부터 우울해졌다.


죽음이 매번 그녀를 비껴갔다고, 또는 그녀가 매번 죽음을 등지고 앞으로 나아갔다고 생각한다.
죽지 마. 죽지 마라 제발.
그 말이 그녀의 몸속에 부적으로 새겨져 있으므로.
그리하여 그녀가 나 대신 이곳으로 왔다고 생각한다.
이상하리만큼 친숙한, 자신의 삶과 죽음을 닮은 도시로. - P36

이제 당신에게 내가 흰 것을 줄게.


더럽혀지더라도 흰 것을,
오직 환 것들을 건넬게.


더이상 스스로에게 묻지 않을게.


이 삶을 당신에게 건네어도 괜찮을지. - P39

하얀 나비 한 마리가 십일월 아침 갈대숲 옆에 날개를 집고 누위 있있다. 여름이 지나고는 나비들을 전혀 보지 못했는데, 그동안 어디서 버터왔던 것일까? - P50

물과 물이 만니는 경계에 서서 마치 영원히 반복될 것 같은 파도의 움직임을 지켜보는 동안(그러나 실은 영원하지 않다ㅡ지구도 태양계도 언젠가 사라지니까), 우리 삶이 찰나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또렷하게 만져진다. 부서지는 순간마다 파도는 눈부시게 희다. 먼 바다의 잔잔한 물살은 무수한 물고기들의 비늘 같다. 수천수만의 반짝임이 거기 있다. 수천수만의 뒤척임이 있다(그러나 아무것도 영원하지 않다). - P58

얼어붙은 거리를 걷던 그녀가 한 건물의 이층을 올려다본다. 성근 레이스 커튼이 창을 가리고 있다, 더럽혀지지 않는 어떤 흰 것이 우리 안에 어른이른 너울거리고 있기 때문에, 저렇게 정갈한 사물을 대할 때마다 우리 마음은 움직이는 것일까? - P70

왜냐하면, 당신은 언젠가 반드시 나를 버릴 테니까.
내가 가장 약하고 도움이 필요할 때.
돌이킬 수 없이 서늘하게 등을 돌릴 테니까.
그걸 나는 투명하게 알고 있으니까.
그걸 알기 전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되었으니까. - P97

죽지 마. 죽지 마라 제발

말을 모르던 당신이 검은 눈을 뜨고 들은 말을 내가 입술을 열어 중얼거린다. 백지에 힘껏 눌러쓴다. 그것만이 최선의 작별의 말이라고 믿는다. 죽지 말아요. 살아가요. - P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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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5-05-10 19: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지금 책 다음에 읽으려고 줄 세워놨는데 우울이라니요? ㅠ.ㅠ 근데 한강 작가 책을 읽으면서 안 우울한게 이상한거겠죠?
 

특이한 스타일의 작품이었다. <정신과 의사>가 가장 좋았다.




카밀루는 진심으로 그녀에게서 도망치고 싶었지만, 이미 그럴 수 없었다. 히타는 마치 뱀처럼 그의 주위를 돌아다니며 그를 온통 감싸고, 그의 육신이 경련을 일으켜 파열하게 만들고, 그의 입에는 독을 떨어뜨렸다. 그는 현기증이 날 정도로 그녀에게 압도당했다. 고뇌와 공포, 회한과 욕망, 그 모든 것이 뒤섞여 그를 어쩌지 못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내면의 싸움은 오래가지 않았고, 승리는 황홀했다. 양심의 가책이여, 안녕! - P13

평범한 사람과 천재의 생생한 이미지! 한 사람은 눈물과 그리움을 지니고 현재를 응시하지만, 다른 한 사람은 오로라의 광채를 지니고 미래를 바리본다. - P98

하지만 실상 불행은 아주 천천히 다가왔다. 그는 풍요로움에서 총족함으로, 충족함에서 평범함으로, 평범함에서 가난으로 그리고 가난에서 아주 빈곤함으로 점진적으로 다가섰다. 그가 거리 끝에 나타나기라도 하면 모자를 벗어 땅바닥까지 내려 인사하던 사람들이 5년이 지난 지금은 아주 친근하게 그의 어깨를 치거나 코를 가볍게 튕기면서 그를 멍청이 바보라고 놀려대었다. 그래도 코스타는 언제나 순박한 미소를 지었다. - P105

나는 과학과 아무 관련이 없소. 하지만 우리가 정상적이라고 추정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미쳤다는 이유로 격리되고 감금된다면, 그 박사가 미친 사람이 아니라고 누가 말할 수 있겠습니까? - P127

셋째, 이러한 조사와 통계적 사실로부터 정한 이론은 기존의 것이 아니라 그 반대의 것이라는 확신을 갖게 되었고, 따라서 기능이 불균형한 사람들을 정상적인 표본으로 여겨야 하며 오히려 그러한 균형이 지속되는 사람들이야말로 모두 병리학적 가설 사례라고 인정해야만 했다. - P157

시망 바카마르치 박사는 행복하고 슬퍼서, 아니 슬프기보다는 훨씬 더 행복하서 고개를 숙였다. 그의 다음 행동은, 스스로 카자베르지 병원에 수용되는 것이었다. - P1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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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이반 부닌. 너무 좋다. 처음 읽는 작품들이 많아서 더 좋았다.

샌프란시스코에서 온 노인의 시체는 신세계의 해안에 있는 집으로, 무덤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일주일간 수많은 모욕과 인간들의 무관심 속에 항구의 창고에서 다른 창고로 옮겨다닌 시체는 마침내 바로 얼마전까지 구세계로 가는 그를 퍽이나 융숭하게 대접했던 그 유명한 배에 다시 타게 되었다. 하지만 이제 그는 산 자들에게서 감추어졌다. 타르를 칠한 관 속에 넣어져 캄캄한 선창 깊이 내려보내졌다. - P36

"가장 큰 희극이 뭔지 알아? 네가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면 네가 사랑하는 그 사람이 너를 사랑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아무리 설득해도 믿을 수가 없다는 거지. 바로 그게 문제야, 창. 그렇지만 삶이란 얼마나 멋진가. 정말 멋져!" - P51

그렇게 창의 낮과 밤은 단조롭게 흐른다. 세상은 마치 기선처럼 어느 날 아침 갑자기 부주의한 눈에는 보이지 않는 물속 암초에 전속력으로 부딪히는 것이다. 어느 겨울 아침 잠에서 깬 창은 방안을 지배하고 있는 거대한 고요에 놀란다. 그는 곧바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선장의 침대로 뛰어든다. 그리고 창백하게 굳은 열굴에 눈이 빈쯤 열려있고 고개는 뒤로 떨군 채 이동도 없이 누워 있는 선장을 본다. 그 눈을 본 창은 그의 다리를 쳐서 넘어뜨렸거나 거리를 달리던 자동차에 치인 것처럼 절망적인 울음소리를 낸다. - P60

처음 만난 순간부터 집요하게 미타를 원하고 갈구하던 카타가 있었다. 그리고 안타깝지만 그런 카타와 전혀 닮지 않은 평범한 원래의 카타가 있었다. 그러나 그때만 해도 미타가 지금과 같은 느낌을 경험하지는 않았다. - P245

무언가가 그녀를 그에게서 떨어지도록 만드는 것 같았다. 미타는 교장에 대헤 편안하게 생각할 수 없었다. 하지만 교장은 큰 문제가 아니었다! 교장 말고도 또다른 관심사들이 카타의 마음을 차지한 것 같았다. 누가? 무엇이? 미타는 알지 못했다. 그는 카타 때문에 모든 것에 대해, 모든 사람에 대해 질투심을 느꼈는데, 특히 그녀가 그몰래 무언가를 시작한 것이 분명하다고 상상하며 질투심에 불타올랐다. 그가 느끼기에는 뭔가 불가항력적인 힘이 카타를 그에게서 먼 어딘가로, 혹은생각만 해도 끔찍한 어떤 것으로 끌어가고 있는 것 같았다. - P246

"이해할 수가 없어요. 당신은 왜 나를 사랑하는 거죠? 당신 생각에 내 모든 것이 그렇게 천박하다면 말이에요! 도대체 나에게 뭘 원해요?"

그러나 그 자신도 그녀를 사랑하는 이유를 알지 못했다. 그녀 때문에, 그 사랑 때문에, 그 사랑의 긴장된 힘으로 인해 점차 늘어만 가는 요구 때문에 그는 누군가를 혹은 무언가를 끊임없이 질투했고, 질투로 인한 같등이 커질수록 그의 사랑은 줄어들기는 커녕 더욱더 커져가는 듯했다. - P250

그가 그녀에게 느끼는 감정은 무엇인가? 사랑이라 불리는 것인가, 아니면 정열이라 불리는 것인가? 그녀의 외투 단추를 끄르고 천국처럼 매혹적인 가슴에 입을 맞출 때, 그 가슴이 영혼을 뒤흔들 만큼 순종적이고 순진무구할 정도로 부끄러움을 모르는 듯 열려 있을 때 그를 거의 기절할 정도로 죽음 직전의 황홀경으로 이끄는 것은 카타의 영혼인가 아니면 육체인가? - P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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