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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충 극장 ㅣ 열린책들 세계문학 204
카렐 차페크 지음, 김선형 옮김 / 열린책들 / 2012년 6월
평점 :
"꽃, 개, 고양이는 물론이고 새해의 결심이나 치통까지도 우리는 호기심을 가지고 살펴보아야 마땅하다. 그것이 <진짜로 존재하는 것> 이므로"
체코 하면 어떤 작가가 떠오르나요? 어떤사람은 <변신>의 "카프카"를, 어떤사람은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의 "쿤데라"를 떠올리실것 같다. 저는"쿤데라"가 떠오르네요. 그런데 엄밀한 의미에서는 이들을 체코 작가라고 할 수는 없다고 한다. "카프카"는 자신의 작품을 독일어로, "쿤데라"는 자신의 작품을 프랑스어로 주로 썼으니 체코 출신이긴 하나 체코 작가라고 하기에는 논란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체코어로 글을 쓴 체코 작가 중 가장 유명한 사람은 누구일까? 이번에 내가 읽은 <곤충 극장>의 작가인 "카렐 차페크"가 바로 이러한 조건에 부합한 가장 유명한 작가라고 한다. 유명한게 꼭 훌륭하다는걸 의미하는 건 아니지만.
<R.U.R : 로섬의 만능 로봇>이란 연극 작품을 통해 우리가 현재 쓰고 있는 로봇이란 단어(체코어로 Robota가 노동을 뜻한다고 한다.)를 만들어낸 "차폐크"는 유럽의 파시즘과 나치즘이 유행하던 1900년대 초반에 활동하던 작가다. 그는 탁월한 글솜씨로 노벨문학상 후보에 오르기도 하였지만 당시의 정치성향을 반대하여 결국 수상하지 못했다는 일화도 있는데, 그래서 인지 그의 작품 속에는 당시 정치를 풍차하는 내용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다.
이번에 내가 읽은 <곤충 극장>에는 <곤충 극장>, <마르코풀로스의 비밀>, <하얀 역병> 등 세 작품이 실려 있는데, 내용들이 모두 인간사회에 대한 비판과 존재의 이유를 다루고 있으며, 특히 등장인물(곤충) 한명 한명(한마리 한마리) 모두 생동감있는 대사를 구사하여 마치 살아 숨쉬는 사람들(곤충들)의 대화를 듣는 기분이 들었다.
1. 곤충극장
"카프카"의 <변신>도 그렇고 이 작품도 그렇고 작가들은 왜 인간을 곤충에 빗대어 작품을 썼을까? 생각없이 본능에 사는 인간들과 곤충은 다를바가 없다는 것을 표현하기 위해 그랬던 걸까? 이 작품에 등장한 곤충들은 모두 인간의 사악하고 나약한 측면을 여실히 보여준다.
술에 만취하여 등장한 "여행자"는 갑자기 곤충들의 세계로 빠지게 되어 그들의 행동을 관찰하고 대화를 들을 수 있게 된다. 곤충의 세계에서 그는 욕망만을 뒤쫓아 살아가는 '나비', 무가치한 것들에 대해 삶을 허비하는 '쇠똥구리', 자신의 번영을 위해 살인을 일삼는 '맵시벌', 어리석게도 희생되는 '귀뚜라미', 맹복적인 투쟁을 추구하는 '개미들'을 관찰하게 된다. 그리고 독자에게 이야기 한다. 인간이나 곤충이나 다를 바 없다고.
이 작품의 마지막 부분에서 '여행자'는 '하루살이', '번데기'와 함께 등장하면서 인간의 삶 역시 결국 영원할 수 없다는, 하루살이와 다를 바 없다는 주제를 암시하면서 작품은 끝난다.
[비겁한 놈, 넘어진 사람 목을 조르다니! 놔, 한순간만- 달란 말이야. 살게 해줘! 살게 해달라고! 꺼져 버려! 할 말이 너무나 많단 말이야! 어떻게 살아야 할 지 이제는 안단 말이야!] P.100
이 작품의 "여행자"는 생의 마지막 순간에 삶의 방법에 대해 알게 되었으나 이미 늦은 후 였다. 하지만 우리는 아직 아니다.
2. 마르코풀로스의 비밀
이러한 존재에 대한 "차페크"의 고민은 다음 작품인 <마르코풀로스의 비밀>에서 더욱 구체화 되어 나타난다. 만약 당신에거 영원히 살 수 있는 영생이 주어진다면 당신은 받아들이겠는가? 만약 우리가 죽지 않는다면 삶에는 의미가 있을까? 이 작품은 늙지도 죽지도 않는 "에밀리아"라는 30대 외모를 가진 오페라 가수를 통해 삶이 의미가 있는 건 인간의 생명이 유한하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독자에게 말하고 있다.
[아무도 3백 년 동안 사랑할 수는 없어. 아니, 희망할 수도 글을 쓸 수도, 노래할 수도 없어. 3백 년 동안 눈을 똑바로 뜨고 살 수는 없는 거야. 견딜 수가 없으니까. 모든게 차갑고 무감각해져. 선에도 무감하고, 악에도 무감하고. 천국에도, 이승에도 무감해져. 그러다 보면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알게되지. 아무것도. 죄도, 고통도, 심지어 대지도, 아무것도. 오로지 의미를 지는 무언가만 존재하는 법이야.] P.225
결국 이 작품의 등장인물들은 영생이 아닌 인생을 택한다.
3. 하얀 역병
이 작품 역시 인간의 삶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으나 위의 두 작품들과는 다른게 절대권력, 당시의 파시즘과 나치즘을 비판하기 위해 쓰인 작품이다. 세계의 강대국이면서 전쟁을 통해 힘을 유지하고 있던 한 나라가 있었는데, 어느날 중국에서 온 역병이 유행하게 되고, 이 유행병은 전 세계로 퍼져 나가게 된다. (왠지 코로나를 연상케 한다.). 이 병이 무서운 점은 50살이 되면 무조건 걸리게 되고, 걸리면 살점이 떨어져 나가고 무조건 죽는 병이며, 마땅한 치료제가 없는 상황이었다.
그러던 어느날 이 병을 치료할 수 있는 백신을 개발한 "갈렌"이란 의사가 등장하게 되고, 그는 그 나라를 지배하는 총사령관에게 자신의 요구사항을 들어주면 백신 치료법을 공개하겠다고 제안한다. 그의 제안은 더이상 군수물자를 생산하지 않고 전쟁에서 물러나는 것, 즉 세계의 평화였다. "갈렌"이 생각했을때는 자신의 백신으로 역병이 치료되더라도 전쟁으로 인해 사람들이 죽어나가기 때문에 이러한 조건 없이 백신 치료법이 제공된다면 결국 사람이 죽는건 똑같기 때문에 무의미하다는 것이다.
전쟁광인 총사령관은 이를 거부하고 주변국에 대한 선제공격을 지시하지만, 자신도 역병에 걸린 것을 알게 되고 가족들의 설득에 의해 "갈렌"의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하고 그를 자신의 집으로 부른다. 그러나 총사령관의 집으로 가던 "갈렌"은 총사령관의 선제공격 지시로 선동된 군중들 속을 통과하면서, 길을 비켜달라는 요청과 함께 '전쟁을 반대하고 평화를 지켜야 한다'는 말을 하게 되고, 그는 성난 군중들의 폭력에 의해 살해되고 만다. 그리고 그렇게 백신 치료법은 소멸되게 된다.
["우리 총사령관을 중상하고 있다!", "가로등에 목매달아!", "쏴버려" 등의 고함소리,. 폭력적이고 시끄러운 소요 속에 군중이 갈렌을 에워싸고 포위를 좁힌다. 잠시 후 군중이 흩어지자 왕진 가방을 꼭 움켜쥔 채 땅바닥에 쓰려져 있는 갈렌의 모습이 드러난다.] P.322
이 책을 읽고 인생이 아름다운 것은 인간은 곤충과 다르게 이성과 감정을 가지고 있고, 유한한 삶이기 때문에 살아가는 동안 의미있는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하며, 서로를 미워하기 보다는 상생의 미래를 제시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카렐 차페크"의 희곡집 <곤충 극장>은 너무나도 인간적인 작품이라는 생각이 든다. 유머가 넘치고 풍자적인, 그러면서도 치열한 고민이 담겨져 있는 희곡 작품을 읽고 싶은 사람들에게 이 작품을 적극 추천한다.
어쨋든 매주 희곡 1편 읽기는 멈추지 않고 진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