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대왕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9
윌리엄 골딩 지음, 유종호 옮김 / 민음사 / 200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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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극한 상황에 처하게 된다면 이성적인 판단이 우선할까? 현실적인 판단이 우선할까? 그에 앞서서 과연 인간의 본성은 선한 걸까? 악한 걸까?

영국의 노벨문학상 수상자 ˝윌리엄 골딩˝의 첫 장편소설인 <파리 대왕>은 극한 상황에 처한 인간이 얼마나 잔인해 질 수 있는지 보여주는 작품이다. 세계대전이 한창인 시대를 배경으로, 영국 소년들이 탄 비행기가 격추되게 되고 열명 남짓한 소년들이 무인도로 추락하게 된다. 어른도 없다. 소녀도 없다. 오직 소년들만이 무인도로 떨어지게 된다.

소년들은 생존과 화합을 위해 투표를 통해 리더를 뽑게 되고, 열두 살인 ˝랠프˝가 선출된다. 리더십이 뛰어난 ˝랠프˝는 지적 능력이 뛰어난 ˝돼지소년˝과 함께 무인도에서 탈출하기 위해서는 자신들이 조난되었다는 신호를 보내는게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인식하고  ‘봉화‘ 를 최우선 과제로 수행한다. 하지만 이에 대립하여 ˝잭˝이라는 소년이 이끄는 집단이 등장하게 되고, 이들은 자신들의 식욕과 정복욕을 충족하기 위해 맷돼지 사냥을 ‘봉화‘보다 우선하여 수행하려 한다.

[스스로를 돌아봐! 전부 몇 명이야? 그런데도 연기를 올리기 위해 불 하나 제대로 피워대지 못한단 말이야? 아직도 모르겠어? 불을 꺼뜨리게 되면 우리가 죽게 된다는 것을 깨닫지 못한단 말이야?]  P.118


즉 소년들은 미래의 탈출이 자신들의 생존의 최우선이라는 이성적 판단을 하는 ˝랠프˝ 측과 현재의 욕구를 위한 근시안적인 판단을 하는 ˝잭˝ 측으로 양분되게 된다. 초반에는 엄연히 리더로 선출된 ˝랠프˝의 영향력이 컸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구성원들의 나태로 ˝랠프˝의 지시는 먹히지 않게 되고,  대부분의 소년들은 당장 자신들의 욕구를 충족시켜 줄 수 있는 ˝잭˝에게 돌아서게 된다.

이러한 상황과 더불어 무인도의 숲 속에서 거대한 괴물, ˝파리대왕˝을 보았다는 소문이 돌게 되고 소년들은 공포에 빠지게 된다. 정확한 실체가 확인되지는 않았지만 괴물이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소년들은 큰 혼란에 빠지게 된다. 보이지 않은 공포, 이것은 아직 성숙하지 못한 인간들의 불안이 만들어낸 환상으로 무인도에 갇힌 소년들의 심리적 동요를 상징한다고 할 수 있다. 과연 괴물은 실제하는 걸까?

[그건 털이 많았어. 그 짐승의 머리 뒤로는 무엇인가 움직이는 것이 있었는데, 아마 날개인 모양이야. 게다가 그건 움직이고 있었어.]  p.147


이러한 혼란의 틈 속에서 ‘불‘을 둘러싼 패권 다툼 끝에 ˝잭˝의 패거리들은 반대파인 ˝돼지소년˝과 ˝사이먼˝을 살해한다. 결국 실권을 장악한 ˝잭˝은 기존의 리더이자 자신의 사냥을 계속 반대하는 주인공 ˝랠프˝를 죽이려고 한다. 이제 혼자남게 된 ˝랠프˝는 살기 위해 ˝잭˝ 일당으로부터의 도주를 시작한다. ‘봉화‘도 꺼지고, 더이상 자기 편이 없는 ˝랠프˝는 자신을 죽이려는 ˝잭˝을 피해 살아남아 무사히 무인도를 탈출 할 수 있을까?

원래 책을 읽으면 밑줄을 많이 긋는데 이 책은 스토리가 흥미진진해서 밑줄 그을 시간 없이 책을 읽었다. 도대체 ‘파리대왕‘은 언제 나오는 거야? 라는 기대감이 책을 읽어나가는 원동력이었다.

다만 일부에서 말씀하신 번역에 문제가 있다는 말은 인정해야 할 것 같다. 약간 매끄럽지 않은 문장이 일부 있고, 실제로 자주 쓰지 않는 말들이 다수 나온다. 당장 떠오르는 단어는 ‘공지‘가 있는데, 이는 비어있는 땅을 의미하는 것 같았지만 잘 안쓰는 단어여서 어색했다. 그리고 ˝잭˝ 일당의 사냥꾼을 지칭하는 ‘오랑케‘라는 단어도 계속 나오는데 이게 적절한 번역인지 의문이 들었다. 도대체 ‘오랑케‘의  영단어는 무엇이었을까 궁금해졌다. 바바리안? 이 외에도 뭔가 상당히 어색한 느낌을 주는 단어들이 꽤 있었다.

그럼에도 이러한 번역 문제가 작품의 내용을 이해하거나 배경을 그리는 데에는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개인적으로이 책을 읽기 위한 팁을 드리자면 문장을 정독하기 보다는 전체적인 이야기의 흐름에 따라가면서 읽는게 좋을 것 같다.

극한상황에 처한 인간의 욕망, 비이성적인 행동  그리고 미지의 공포에 대한 불안을 섬세하게 그린 <파리대왕>은 냉혹한 현실주의가 판을 치는 현실세계를 축소판처럼 보여주는 작품이다. 해설을 보면 ˝인간 본성의 결함에서 사회의 결함의 근원을 찾아내려는 것˝ 이 작품의 주제라고 하는데, 어느정도 수긍이 간다. 또한 작품 곳곳에 다양한 상징들이 존재한다고 하니 이를 찾아보는 것도 책읽는 재미를 높여줄 것 같다. 소년들이 갖힌 무인도는 에덴동산을 상징한다고 한다.


PS 1.  ˝랠프˝의 도주와 ˝잭˝ 일당의 추적, 그리고 해군 장교를 만나는 작품의 마지막 부분을 읽으면서 영화 <아프칼립토>가 떠올랐다. 아마 이 영화의 대본을 쓴 사람이 <파리 대왕>을 참고했나 보다.


PS 2. 이 책은 <변신>, <곤충극장>과 같은 곤충시리즈는 아닌 것으로 확인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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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1-09-09 20:16   좋아요 2 | URL
저 하루키 찐팬~!! 저는 하루키랑 알랭드 보통 읽고 책의 세계에 빠졌던거 같아요 😆

그레이스 2021-09-09 21:13   좋아요 2 | URL
남들이 뭐라든 그런 책이 인생책이죠 👍

희선 2021-09-10 00: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PS 2 재미있네요 지금 생각하니 예전에 이 제목 봤을 때 곤충인 파리라는 거 잘 몰랐던 것 같아요 파리가 대체 뭘까 했던 것 같습니다 요새 다른 분이 쓴 거 보고 파리가 악마와 상관있다는 말을 봤네요 그건 서양에서만 그런 거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듭니다 지금 찾아보니 기독교군요 ‘돼지 머리를 덮은 파리 때 = 파리신 바알 = 성경의 악마 = 소년들의 야만성’ 이라는 말이 있군요


희선

새파랑 2021-09-10 06:30   좋아요 1 | URL
희선님이 말씀하신 내용이 딱 맞아요 ㅋ 저는 맷돼지 머리를 덮은 파리들을 상상하니 좀 섬뜩 했었어요. 그리고 제목이 파리대왕 이어서 저는 커다란 파리(?)를 상상했는데 악마라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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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만에 다 읽었다. 번역이 좀 이상한 부분이 있긴 하지만, 언제 파리대왕이 나오는지 궁금해서 열심히 읽었는데...이런....

어디선가 본 듯한 영화를 본 기분이 든다.

물가를 걸어가다가 홀연 깨달아지는 바가 있어 그는 놀랐다. 이승의 따분함을 깨우친 것 같았다. 이승에서의 모든 도정은 그때그때 즉흥적으로 정해지는 것이며, 세상살이의 태반은 발걸음을 조심하는데 보내지는 것이 아니냐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 P110

다시금 그는 격에 맞지 않게 야릇한 명상에 빠졌다. 만약 위에서 비치는 경우와 아래쪽에서 비치는 경우에 얼굴이 다르게 보인다면 대체 얼굴이란 무엇인가? 아니 얼굴뿐만 아니라 사물이란 무엇인가?
- P113

스스로를 돌아봐! 전부 몇 명이야? 그런데도 연기를 올리기 위해 불 하나 제대로 피워대지 못한단 말이야? 아직도 모르겠어? 불을 꺼뜨리게 되면 우리가 죽게 된다는 것을 깨닫지 못한단 말이야?
- P118

그건 털이 많았어. 그 짐승의 머리 뒤로는 무엇인가 움직이는 것이 있었는데, 아마 날개인 모양이야. 게다가 그건 움직이고 있었어.
- P147

그리고 사이먼의 전면에는 ‘파리대왕‘이 막대기에 매달려 씽끗거리고 있었다. 마침내 사이먼은 눈을 뜨고 다시 쳐다보았다. 흰 이빨과 몽롱한 눈과 피가 보였다.  그리고 태곳적부터 있어 온 피할 길 없는 인식이 그의 응시를 떠받치고 있었다. 사이먼의 오른편 관자놀이가 지끈지끈 아파왔다. - P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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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정 2021-09-09 07: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대단하심다, 하루만에^^저는 첫 페이지 읽다가 표류. ...읽어야지 하면서 이상하게 잘 안 읽히더라구요

새파랑 2021-09-09 08:35   좋아요 1 | URL
저도 잘 읽히는건 아니었는데 그냥 꾸역꾸역 읽었어요 😅
 

깜빡하고 책탑 페이퍼를 안쓸뻔 했다. 언제나 매월 1주는 부담없이 책을 구매할 수 있어서 좋다. 저번달에 산 책중 10퍼센트도 안읽었지만 그래도 어쩔수 없이 사게 된다. 아마 나는 책 읽는 것보다 구매하는걸 좋아하나 보다.

9월 1주에 11권을 구매했다. 이중 중고는 5권, 새책은 6권이다. (사진 위쪽 5권이 중고, 아래쪽 6권이 새책)
경제적인 책구매를 하는 나란 인간이란...

책에 밑줄긋는걸 좋아해서 왠만하면 구매를 하는 편이다.

이번에 구매한 책들도 모두 플친님들이 추천해주신 책이다. 나도 언젠가는 책을 추천하는 날이 오기를 바라며~!!

1.전락 : 열린책들 35주년 세트의 <이방인>을 재독하고 나서 갑자기 ˝까뮈˝의 책을 더 읽고 싶어졌다.

2.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 : ˝로맹 가리˝ 책을 아직 읽어보지 않아서 구매했다. 제목부터 너무 마음에 든다.

3. 산시로 : 페넬로페님 리뷰를 읽고 구매. 왠일로 우주점에 이 책이 있어서 바로 뛰어갔다.

4. 친구들과의 대화 : ˝샐리루니˝의 <노멀 피플>을 아주 재미있게 읽었었는데, 최근에 이 작품도 북플에 자주 언급되어서 구매

5. 테레즈 라캥 : ˝에밀 졸라˝를 아직까지 안읽어본 1인...

6. 섬 : 스콧님이 추천해주신 책~! ˝장 그르니에˝ 세트로 사려고 했으나 혹시 몰라서 우선 1권만 구매했다.

7. 독서공감, 사람을 읽다, 8. 잘 지내나요 : 북플 셀럽 다락방님이 내신 책이라는걸 최근에 알았다. 어쩐지 북플에 쓰신 리뷰에서 작가의 향기가 느껴졌었는데 역시나~!

9. 기 드 모파상 : 모파상은 사랑. 모파상 단편집 2권이 있지만 미미님이 구매하셨길래 따라서 구매한 책~ 아직 안읽은 단편들이 많이 있기를 바래본다. 엄청 두껍다.

10.11. 율리시스 : 제임스 조이스 완독에 도전해본다.


북플님들 즐거운 독서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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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1-09-08 18:35   좋아요 5 | URL
밑에 두권의 두께가 상당하더라구요 ㅋ 위압감이...
아 로맹가리랑 에밀아자르 같은 사람인가요? 🙄 <자기앞의 생> 사놓고 아직 안읽었는데 ㅋ 제가 아는게 없네요 😅

초딩 2021-09-08 19:03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옴마야 멋져요~
전락 반갑네요 ㅎㅎ

새파랑 2021-09-08 19:23   좋아요 4 | URL
전락 읽으셨군요~!! 초딩님 리뷰를 찾아봐야 겠어요 ㅋ

페넬로페 2021-09-08 19:18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이번엔 저한테도 사놓은 책 중 일치하는게 좀 있어 반가워요~~
산시로 읽고 감상이 좋으시면 좋겠어요.
이럴때 폴스타프님의 말씀을 전합니다.
저는 책임 못 집니다 ㅋㅋ

새파랑 2021-09-08 19:24   좋아요 5 | URL
페넬로페님 취항이랑 저랑 비슷하셔서 완전 좋을거라 기대하고 있습니다. 일치하는 책이 많다니 좋네요 😄

파이버 2021-09-08 19:31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2번책(새들페루) 넘 좋았어요 6번책(섬)은 저는 구판으로 가지고 있는데 아직 안읽어본^^;; 책탑의 아래 주춧돌? 벽돌들이 대단하네요 새파랑님 9월독서도 퐈이팅!!입니당~

새파랑 2021-09-08 19:48   좋아요 5 | URL
<새들 페루> 좋다는 분들이 많군요. 그냥 사봤는데 탁월한 선택이었군요~!! 집에가서 섬을 읽을것이냐 새들페루를 읽을것이냐 고민이네요 🙄 파이버님 응원 감사합니다 ^^;

다락방 2021-09-08 19:53   좋아요 5 | URL
또 끼어들기) 새들 페루 진짜 최고에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ㅌ

새파랑 2021-09-08 19:57   좋아요 2 | URL
다락방 작가님까지 말씀하신다면 요걸로 😄

막시무스 2021-09-08 19:57   좋아요 5 | URL
다들 원하시는데 새파랑=새들 페루! 모드로 가시죠!ㅎ 저는 읽지 않았지만 제목으로 별4개는 깔고 갈것 같아요!ㅎ

새파랑 2021-09-08 19:59   좋아요 5 | URL
제목이 시처럼 느껴져요 ㅋ 저도 제목때문에 골랐어요 ㅎㅎ 이렇게 좋다고 사시면 새책살껄 😅

scott 2021-09-08 20:55   좋아요 4 | URL
새들 페루 추천 .🖐 저도 ^^

새파랑 2021-09-08 20:59   좋아요 4 | URL
<파리대왕> 리뷰 쓰고 바로 읽어보겠습니다~🤭

붕붕툐툐 2021-09-08 23:42   좋아요 3 | URL
전 새들 페루 읽은 거 같은데 왜 좋았던 기억이 없는 거죠? 이렇게 많은 추천을 받다니! 저도 다시 읽어봐야겠어요!

붕붕툐툐 2021-09-08 23:4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새파랑님~ 아이콩~ 이 좋은 구경을 못할 뻔 했네요!!! 정말 성실하게 읽고 쓰시는 새파랑님 보고만 있어도 흐뭇합니당!! 9월 독서도 파이팅!!
참, 폴스타프님이 율리시스 어느 출판사 누구 버전이 좋다고 하셨으면 공유 부탁해요!ㅋㅋㅋㅋㅋㅋ

새파랑 2021-09-09 06:59   좋아요 2 | URL
<율리시스> 읽으시게요? ㅋ 안타깝게도 <율리시스>는 어느 출판사가 좋다고는 알려주시지 않았습니다 😅 툐툐님 읽을때 같이 읽어야 겠어요~!!

붕붕툐툐 2021-09-09 07:12   좋아요 2 | URL
ㅋㅋㅋㅋㅋㅋ저 기다리다간 평생 못 읽으실 수도.. 비밀댓글 유추 실패네요~ㅋㅋㅋㅋㅋㅋㅋ

그레이스 2021-09-09 00:03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스크롤하다 눈이 어질어질 합니다
새파랑님 페이퍼의 매력!

scott 2021-09-09 00:05   좋아요 3 | URL
우린 셀럽 새파랑님 책탑 구경 재미로 바글,바글 ^ㅎ^

새파랑 2021-09-09 07:01   좋아요 2 | URL
뭔가 잘 쓴글도 아닌데 제가 논란(?)이 될만한 작품들만 보여드린거 같아요😅

희선 2021-09-10 00: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달에도 책 많이 사셨군요 벌써 읽으신 것도 있고 읽고 있는 것도 있군요 율리시스... 가장 두껍지 않을까 싶네요 새파랑 님 책 즐겁게 만나세요


희선

새파랑 2021-09-10 06:21   좋아요 1 | URL
9월에는 구매를 줄여야 겠어요 😅 즐겁게 만나야할 시간이 많았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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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락 창비세계문학 11
알베르 카뮈 지음, 유영 옮김 / 창비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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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삶을 사랑합니다. 이것이 바로 진정한 내 약점이지요.]  P.75


전락 : 아래로 굴러 떨어짐. 나쁜 상태나 타락한 상태에 빠짐

1956년 발표된 "알베르 까뮈"의 마지막 작품인 <전락>은 우선 제목부터 인상적이다. 프랑스어로 La Chute 라고 한다.

"까뮈"의 작품은 <이방인>하고 <페스트> 밖에 몰랐었지만, 얼마전 <이방인> 재독을 통해 "까뮈"의 다른 작품들도 읽어야 겠다는 생각을 했고, 알라딘 우주점 오프라인에서 이 책을 발견하고 바로 구입했다. 사실 "까뮈"여서 구입했다기 보다는 '창비세계문학'이어서 구매한게 더 크긴 하지만...

전직 변호사이고 현재는 속죄판사인 "끌라망스" 라는 인물이 주인공에게 말하는 형식으로 쓰여진 <전락>은 구성이 다소 특이하다. 화자의 수다스러운 말만 존재하고, 주인공인 청자의 말은 단 한번도 등장하지 않는다. 오직 "끌라망스"만 말하고 상황을 설명한다. 연극으로 친다면 1인 모노 드라마와 같은 구성이다.

하지만 이런 구성이 독자로 하여금 화자인 "끌라망스"의 말에만 집중하게 하고, 작품의 주제를 좀 더 선명하게 부각시키고 있다. 내가 생각하는 이 작품의 주제는 '인간의 이중성과 속죄'가 아닐까 한다.

모든 걸 갖추고 있고, 모두에게 사랑받으며 하고자 하면 뭐든지 할 수 있었던 변호사 "끌라망스"는 어느날 다리 위에서 투신자살을 시도하려는 여자를 목격하게 된다. 하지만 그는 그 여자를 그냥 지나치게 되고 결국 여자는 강물로 투신을 한다. 아직 늦지 않았기에 그는 다리 아래로 가볼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돌아보지 않고 그 자리를 그냥 떠나게 된다. 그리고 이 사실을 누구에게 알리지 않는다.

이후 그는 이때의 죄책감과 무력감으로 인해 "전락"하게 된다. 그의 인생은 그때부터 내리막길로 내려가게 된다. 주변사람들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던 그의 관점은 부정적으로 바뀌게 되고, 그는 주변인들을 감시하고 비난하는 심판자로 인식한다. 또한 "전락"을 통해 '인간의 이중성'에 대한 깨달음을 얻게 된다.


[그래서 우리는 자신보다 나은 사람들에게 속내를 털어놓는 경우가 극히 드물지요. 이들에게 말하느니 차라리 교제를 피해버릴 겁니다. 이와 반대로, 우리와 비슷해서 우리와 같은 약점을 지닌 사람들에게 속을 털어놓게 됩니다. 결국 제 행실을 바로잡고 싶지도 않고, 더 나아지고 싶지도 않은 거지요. 그러자면 먼저 자기한테 결함이 있다는 판결을 수용해야 할 테니까요. 우리는 다만 동정받기를 원하고 자신의 길 안에서 격려받고 싶은 것뿐입니다.]  P.82


[우리는 어느 누구의 결백도 단언할 수 없는 반면 모든 이들의 유죄성은 확실히 장담할 수 있습니다. 모든 인간은 자신 외에 다른 모든 이들의 범죄를 증언하고 있기 때문이지요. 바로 이것이 내 신념이자 바람이기도 합니다.]  P.107


[때로는 진실을 말하는 사람보다 거짓을 말하는 사람의 속이 더 훤히 드러나 보일 때가 있지요. 진실이란 빛처럼 눈을 멀게 하지만 거짓은 아름다운 석양 같아서 각각의 물체를 돋보이게 해주거든요.]  P.118


결국 "끌레망스"는 변호사에서 치안판사로, 프랑스에서 네덜란드로 '전락'하게 되고, 마지막에 그는 과거 여인이 투신한 '쎈 강변'으로 돌아가 그녀를  구할 수 있었다면 하는 후회를 해보지만 너무 늦은 뒤였다. 이미 떨어져 버린 건 돌아오지 않으니까 말이다.



"까뮈"의 자전적 글이라는 느낌이 강하게 드는 마지막 작품 <전락>은 쉽게 읽히는 책은 아니고,  읽으면서 자꾸 이전 페이지로 돌아가게 된다. 나는정말 어려웠다. 하지만 "까뮈"가 쓴 인간의 이중성에 대한 적나라한 통찰은 나 자신을 돌아보게 하고, 나를 부끄럽게 만들었다. 마치 나 자신을 해부하는 느낌을 주는 인상깊은 문장들이 책속에 가득하다. 한번 읽어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책으로 곧 다시 읽어봐야 겠다.


PS. 노래가 빠질 수 없지. 이 노래를 아시는 분은 별로 없겠지만 이 책의 내용과 어울려서 소개한다.

"이승열" <돌아오지 않아>
https://youtu.be/x3UQEawJPug

하지만 밤은 까맣게 내려
하늘거리는 잎새를 누르고
계절은 다시 돌아온대도
떨어져 버린 넌 돌아오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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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아 2021-09-08 10:34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1등? 🤭 가수 이승열님 보컬이 독특해 미생 주제곡이 떠올랐는데 그 분 맞네요!✌새파랑님 올려주신 이 리뷰와도 가사가 너무 잘 어울리고요. 변호사에서 판사로 전락했다는게 이해가 잘 되지 않았는데 치안판사는 명예직이군요. p.118의 발췌문이 특히 눈에 들어옵니다.

새파랑 2021-09-08 10:48   좋아요 7 | URL
1등😊 책에는 속죄판사라고 나오더라구요. 정확히 뭐가 좋은지는 저도 잘 😅
새벽에 깨서 다 읽었는데 완전 어려웠어요 ㅡㅡ 근데 문장들이 하나같이 다 완전 좋아요~!!
이승열님 광팬입니다 ㅎㅎ

그레이스 2021-09-09 07:54   좋아요 8 | 댓글달기 | URL
미생 OST ‘날아‘ 좋아해요!

저는 까뮈를 고등학교 불어 쌤때문에 읽게 되서 넘 일찍 읽었어요
이방인, 1도 모르고 그저 감상적인 독후감만 썼던 기억이...
지드의 <배덕자>랑 스토리가 엉켰던 웃지못할 상황도...ㅋㅋ
페스트, 이방인, 시지프의 신화, 그 외 읽었는데 전락은 못읽었네요
리스트에 올려요!

새파랑 2021-09-08 10:49   좋아요 7 | URL
<날아 >도 좋고 이곡들어 있는 앨범도 좋아요~!! 그레이스님이면 이 책 그냥 이해하실거 같아요. 저에겐 난관이었어요 😅

2021-09-09 07: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그레이스 2021-09-09 07:54   좋아요 1 | URL
저의 잘못된 기억일 수 있겠네요
댓글 고침

2021-09-09 08: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그레이스 2021-09-09 08:48   좋아요 1 | URL
기억이 이렇게 되기까지 과정을 더듬어 보니 미생 ost듣고 좋아서 누구지? 정동하? 했다가 이승렬? 목소리가 비슷한데 그럼 부활 싱어중 하나인가? 했다가 아니네? 까지 갔는데, 아니네를 잊고 말았어요.
기억의 상실과 편집...
좌절!

mini74 2021-09-08 11:39   좋아요 7 | 댓글달기 | URL
오호 저도 몰랐어요 ㅠㅠ 이런 책이 있군요 ! 인간의 이중성에 대한 성찰 ㅠㅠ 어렵다니 쪼금 겁도 나지만 읽어보고 싶어요 ~~

새파랑 2021-09-08 11:55   좋아요 5 | URL
어려워도 제 수준에서 어려운거지 미니님이야 가볍게 읽으실거 같아요~!! 저는 이 책을 읽고 많은 반성을 했습니다 ㅜㅜ

행복한책읽기 2021-09-08 11:56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저는 제목만 알고 있었는데. 요즘의 제가 읽어야 할 책이네요. 까뮈는 작품도 멋지지만 사람 자체도 좋은 듯해요. 쉽게 읽히지 않는 책을 쉽게 풀어주셔 일단 입문한 느낌이어요. 이 책은 당장 읽고프네요. 도서관 달려가겠음요^^

새파랑 2021-09-08 12:21   좋아요 5 | URL
까뮈는 일단 외모부터가 너무 멋진거 같아요 😆 뭔가 아우라가 있어요 ㅋ 책읽기님의 해설이 필요합니다~!!

독서괭 2021-09-08 12:06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어려운 책이군요. 그래도 새파랑님 글 보니 읽어보고 싶어집니다. 뭔가 도움받을 해설서를 곁들여 읽는 편이 좋겠네요🧐

새파랑 2021-09-08 12:23   좋아요 5 | URL
저는 꾸역꾸역 읽었어요 😅 까뮈는 어려운거 같긴 해요 ㅎㅎ 북플에도 그렇게 리뷰가 많지는 않더라구요~

페넬로페 2021-09-08 12:58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까뮈 읽기는 이방인과 페스트 이후로 딱 멈추어 버린것 같아요
이 책의 무엇이 우리를 부끄럽게 하고 해부하게 하는지 정말 궁금합니다~~
꼭 읽어야겠어요^^
이승열???
진짜 처음 들어보는 가수입니다~~
노래 들어볼께요^^

새파랑 2021-09-08 13:13   좋아요 5 | URL
까뮈의 통찰력 있는 문장에 좀 놀라게 되더라구요. 역시 노벨상 탄 사람 같더라구요. 제가 이해를 완벽히 해서 설명드리고 싶지만 그게 안되는 ㅎㅎ 이승열 노래 완전 좋아요. 인기곡 듣다 보시면 익숙한 노래도 많으실거에요😄

막시무스 2021-09-08 13:04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어렵네요! 자살방조도 아니고 떨어지는걸 목격하고 느끼는 죄책감과 무력감은 어떤 느낌일지 호기심 충만중입니다!ㅎ

새파랑 2021-09-08 13:16   좋아요 6 | URL
그 방조한 사건을 계기로 생각이 완전히 바뀌게 되더라구요. 범죄는 아니지만 모두가 자신을 심판하는 것 같은 감정을 느끼게 됩니다. 죄지었는데 걸리지 않더라도 마음속으로 찔리는 기분과 비슷한? ㅎㅎ 어렵긴 한데 와! 하는 느낌이 들어요 🙄

2021-09-08 15: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9-08 15: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붕붕툐툐 2021-09-09 00:0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오~ 이방인도 페스트도 잼나게 읽어서 이 책도 도전하고 싶은데 새파랑님이 꾸역꾸역 읽으셨다니 도전하기 좀 겁나네요~ 모든 걸 읽어내시는 분이신데!! 하긴 이것도 읽어 내셨구나!ㅎㅎㅎㅎ

새파랑 2021-09-09 07:10   좋아요 1 | URL
문장이 그렇게 이해가 안되는건 아닌데, 스토리가 아닌 혼자만의 독백처럼 책이 쓰여져 있어서 진도가 팍팍나가지는 않더라구요. 툐툐님의 명상에 딱 어울리는 책입니다~!!

희선 2021-09-10 00: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읽지는 않았지만 카뮈 하면 《이방인》 《페스트》가 생각나는데, 이런 소설도 있군요 소설과 노래가 어울리는군요 떨어지면 다시 돌아오지 못하는... 그래도 사람은 바뀔 수 있을지도 모를 텐데 하는 생각도 조금 듭니다


희선

새파랑 2021-09-10 06:19   좋아요 0 | URL
말씀하신 두 작품이 워낙 유명해서 그렇지 다른 작품도 꽤 있더라구요. 까뮈는 책 제목을 너무 잘 짓는것 같아요. 전락 이라니 ㅎㅎ 이 음악은 뮤직비디오랑 보면 좀 슬픕니다 ㅜㅜ
 

다락방님의 책은 조금씩 읽어나가야 겠다.
‘책을 읽다‘가 아닌 ‘사람을 읽다‘라는 제목이 너무 좋다.






가장 큰 감사는 역시 알라디너들에게 돌린다. 부족한 내 글을 재미있게 읽어주고, 멋진 댓글을 남겨주고, 최고의 공감을 표현해주었다. 그들이 있기에 읽고 쓰는 걸 즐겁게 할 수 있었다. "고맙습니다. 나의 소중한 알라디너들." - P9

영화 <제인 오스틴 북클럽>에서 그릭은 조셀린이 좋아하는 작가인 제인 오스틴의 소설을 모두 읽는다. 그는 조셀린에게 관심이 있어서 그녀가 좋아하는 작가의 책도 읽고 싶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그녀도 자신이 좋아하는 작가의 책에 관심을 가질 거라 기대했다.

(나도 그런 적이 있어서인지 글을 보고 완전 공감했다...) - P23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에ㅔ 좋아하는 작가의 소설책을 선물했던 순간들이 생각난다.다니엘 글라타우어, 줌파 라히리, 로맹 가리, 조너선 사프란 포어의 소설을 선물하곤 했는데, 내가 선물한 책을 읽고 감상을 말해주었던 상대들도 떠오른다.

그들은 내가 선물한 책을 읽으며 책을 선물해준 나에 대해 생각하고 그 책을 읽으며 나를 떠올렸을까. - P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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