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과 함께 행복에 대해 진지하게 이야기할 수는 없어요. 당신은 그 살아 있는 대답이니까. 신 그 자신과 함께 신의 존재에 대해 토론할 수 없는 것처럼.˝
갑자기 사강의 책이 읽고 싶어서 <마음의 파수꾼>을 선택했다. 이번달에 이미 사강의 책을 한권 읽어서 안읽으려고 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생각했다. 이런 형태의 사랑을 이야기할 수 있는 작가는 사강밖에 없다고.
사랑에는 다양한 형태가 있다. 그래도 <마음의 파수꾼>에서 다루는 사랑은 다소 특이한 형태다. 플라토닉 사랑이지만, 자신이 사랑하는 여인(도로시)을 괴롭히는 사람은 모두 없애버리는 한 남자(루이스)의 사랑. 그런데 한 남자(루이스)는 그녀(도로시)와 사랑을 나누는 다른 남자(폴)는 지켜준다. 왜냐면 다른 남자(폴)에게 문제가 생기면 그녀(도로시)가 슬퍼할 걸 알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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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대 중반의 시나리오 작가인 ˝도로시˝는 그녀를 좋아하는 40대 금발의 미남 ˝폴˝과 드라이브를 하고 있었다. 그녀 역시 그를 괜찮다고 생각은 하지만 확 끌리지는 않았다. 그런데 드리이브 도중 한 남지가 갑자기 차에 뛰어들고, ˝폴˝은 사람을 치지는 않았지만 차는 전복된다. 다행이 ˝도로시˝와 ˝폴˝은 다치지 않았지만, 차에 뛰어든 남자는 파편을 맞고 다리에 부상을 입는다. 이 남자의 정체는 무얼까?
[그는 저 멀리에 보이는, 검은색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는 집들을 향해 성큼성큼 걸어갔다. 나는 아마도 죽어가고 있을 그 청년 옆에 무릎을 꿇은 채 길 위에 홀로 남겨졌다. 갑자기 그 청년이 눈을 뜨더니, 나를 바라보고는 미소를 지었다.] P.18
차에 뛰어든 남자의 이름은 20대로 보이는 ˝루이스˝였고, 그는 사고 당시 LSD를 먹고 환각상태에서 뛰어든 것이었다. ˝도로시˝는 잘생기고 매력적으로 보이는 ˝루이스˝에게 왠지 모를 연민과 애정을 느끼게 되고, 그녀는 ˝루이스˝를 병원이 아닌 자신의 집에서 치료하게 한다. 이러한 그녀의 태도를 ˝폴˝은 못마땅해 한다. 아들뻘이긴 하지만 외간 남자와 한집에서 산다는건 누가봐도 이상하지만, 사강이 쓰니 자연스럽고 아름답게 느껴졌다.
[낮의 아름다움, 밤의 혼란, 알코올과 쾌락이 선사하는 현기증, 부드러운 바이올린 소리, 일이 가져다주는 흥분, 그리고 건강. 또한 잠이 베개 위에, 죽음의 자세 속에 우리를 다시 묶어두기 전에 각자의 앞에 놓인, 자신에게 주어진 그 모든 거대한 낮 시간 속에서 스스로를 생생하게 일깨우는 믿을 수 없는 그 행복을.] P.74
˝루이스˝ 역시 자신을 따뜻하게 대해 준, 자신을 진심으로 대하는 ˝도로시˝에게 사랑을 느끼며 그녀에게 푹 빠진다. 하지만 그가 그녀에게 원하는 사랑은 육체적 사랑이 아닌 정신적 사랑. 그는 그녀가 ˝폴˝과 외박을 해도 결코 질투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녀를 힘들게 했던, 그녀를 함부로 대했던 사람들에게 깊은 증오심을 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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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당신을 떠났어요. 그래서 벌 받은 거죠. 인생은 그런 거예요.˝
˝너 유치하구나. 하지만 고맙게도 인생은 너처럼 그렇게 유치하지 않아.˝
˝인생은 유치할 수 있어요.˝
----‐--------------------- P.50
잘생기 외모 덕분에 신인 배우로 데뷔하게 된 ˝루이스˝, 많은 여배우들이 그에게 접근하지만 그는 오직 ˝도로시˝에게만 애정을 느낀다. 그리고 그녀와 한집에 살면서 그녀와의 대화를 통해 과거 그녀를 아프게 했던 사람들을 알게 되고, 갑자기 그녀를 아프게 했던 사람들이 하나 하나씩 사고로 죽게 된다. 쳐음에 그녀는 별 생각이 없었으나, 불현듯 이 사고를 일으킨게 ˝루이스˝가 아닐까란 생각을 하게되고, 그에게 진실을 물어본다. 하지만 그는 자연스럽게 자신이 죽였다고 말한다.
[˝하지만 당신은 걱정하지 않아도 돼요. 증거가 전혀 없거든요. 그들은 당신을 괴롭히지 못할 거예요.˝] P.113
어떻게 보면 살인자이지만, ˝도로시˝가 적의를 가지고 말한 사실 때문에 살인을 하게 된 ˝루이스˝, 과연 그녀와 그의 기이한 동거의 끝은 어떻게 될까? 그녀와 결혼을 약속한 ˝폴˝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루이스가 내 손에 자기 머리를 얹었다. 손가락 사이로 뜨뜻미지근한 피가 흐르는 것이 느껴졌다. 여섯 달 전 인적 없는 길에서 이글거리는 불빛을 받으며 이 머리를 두 손으로 잡았을 때, 이것과 똑같은 피가 내 손가락 사이로 흘러내렸을 때 왜 아무런 예감을 느끼지 못했을까. 나는 그것이 궁금해졌다. 나는 루이스를 그곳에 버려두고 도망치거나 그가 죽도록 내버려두어야 했다.] P.162
책을 읽으면서 마치 영화 시나리오를 읽는 기분이 들었다. 영화화 하기에 적당한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찾아보니 놀랍게도 외국이 아닌 이 작품을 바탕으로 한 동명의 한국 영화가 있었다~!
이 책에는 온갖 사악한 것들이 등장한다. 술, 마약, 살인, 불륜, 배신, 비이성적인 사랑 등. 하지만 내용이 어둡지 않고, 오히려 사강 특유의 문체와 시적인 문장 때문에 아름답게 읽혀진다. 그리고 ˝도로시˝를 둘러싼 ˝루이스˝와 ˝폴˝의 기이한 삼각관계는 작가인 ˝사강˝이 꿈꾸는 연애 판타지라는 생각도 들었다. 자신에게 무조건 헌신하는 남자와 이성적으로 매력적인 남자와의 공존.
<마음의 파수꾼>은 사강이었기 때문에 가능한 작품이었고, 사강이었기 때문에 감성적으로 읽을 수 있는 작품이었다. 사강의 첫 작품으로 접하기에는 약간 부족한 작품이지만, 그녀의 작품을 좋아한다면 추천하고 싶다. 이번에 읽은 <마음의 파수꾼>이 내가 읽은 사강의 여섯번째 작품인데 다른 사강책도 빨리 읽어야 겠다.
PS. 혹시 사강 작품을 안읽어 보셨다면 <슬픔이여 안녕>을 먼저 추천하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