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여기선 아무것도 겁낼 게 없어요. 저자들은 모두 장님이에요. 그들은 사랑을 몰라요.˝
그렇게 많이 ˝에밀 졸라˝의 작품을 읽어보지는 않았지만 다른 작품과는 다른 가장 큰 특징을 들자면 작품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이 대부분 평범한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귀족도 없다, 재벌도 없다, 그냥 일반 시민이다. 그들의 욕구는 생존이나 사랑 같은 가장 기본적인 것으로, 그들은 미래 보다는 현재를 위한 행동을 우선으로 한다. 일반적인 우리처럼.
이러한 작품의 경향을 문학적으로 ‘자연주의‘라고 한다는데, ˝에밀 졸라˝는 ‘자연주의‘ 문학의 대표작가라 할 수 있다. <테레즈 라캥>은 ˝에밀 졸라˝의 첫 주요작품이고, 그가 ‘루공‘가와 ‘마르크‘ 가문의 일대기를 그린 ‘루공마르크 총서‘ 20권을 집필하기 전에 쓴 작품이다
이 작품의 스토리는 간단하다. 주요 등장인물은 네명인데,
1. 라캥 부인 : 카미유의 엄마, 어느정도 재산이 있고 잡화상을 한다. 아들인 ˝카미유˝를 애지중지 키운다.
2. 카미유 : 라캥 부인의 아들, 어려서부터 몸이 허약하여 어머니의 치맛속에서 살아간다. 어머니 품에서 벗어나고 싶어한다. 주인공인 ˝테레즈 라캥˝의 첫번째 남편이다.
3. 테레즈 : 라캥 부인의 조카딸, 부모를 모두 잃고 부인 밑에서 자라며, 카미유를 돌보는 역할을 하며 성장하다가 성인이 되서 본인 의지와는 상관없이 카미유와 결혼 한다.
4. 로랑 : 카미유의 친구, 철도국에서 카미유와 같이 일하며, 우연히 방문한 라캥 부인의 집에서 테레즈를 만나서 그녀의 욕망에 불을 지른다.
욕망을 숨기고 살아가던 ˝테레즈˝가 ˝로랑˝을 만나고 난 후 그와 불륜을 저지르게 되고, 둘의 사랑이 커져갈수록 자신의 사랑을 가로막는 ˝카미유˝를 증오하게 된다. 하지만 이런 사실을 전혀 모르는 나머지 두사람, ˝라캥 부인˝은 ˝로랑˝을 아들처럼 대하고, ˝카미유˝는 ˝로랑˝을 절대적으로 믿는다. 오히려 함께 있을때는 ˝로랑˝에게 유독 차갑게 대하는 ˝테레즈˝에게 좀 더 잘해주라고 핀잔을 준다.
[그녀가 한 남자를 맞아들인 것은 바로 지척에 있는 옆방이었다. 간통을 저지르며 뜨겁게 뒤엉켜 뒹굴던 곳도 바로 그 방이었다. 그런데 바로 이시간이 오면 그의 정부는 그녀에게 낯선 사람이 되고, 남편의 친구가 되고, 관심을 가져서는 안 되는 방문객이 되는 것이다. 이 가혹한 희극, 인생의 기만, 대낮의 뜨거운 포옹과 저녁의 고의적인 무관심을 비교하면서 젊은 여인의 피는 새로운 정열을 느끼고 있었다.] P.58
결국 ˝로랑˝과 ˝테레즈˝는 ˝카미유˝와 함께 여햇을 떠나고, 배를 타고 호수 한가운데로 가서 ˝로랑˝은 ˝카미유˝를 물에 빠뜨려 죽인다. 그러면서 목 밑에 상처를 입는다. 이후 연기를 통해 ˝카미유˝의 죽음을 사고로 위장하고, 오히려 친한 친구의 목숨을 마지막까지 구하려 했던 영웅으로 대우받는다.
[˝난 그를 원망친 않아.˝ 그는 마침내 이름을 대지 않고 말했다. ˝하지만 정말 우리에겐 너무 귀찮거든. 그를 떼어놓을 수 없을까? 어디 멀리 여행을 보낼 수는 없을까?˝ ˝아, 그이가 여행을 하다니!˝ 하고 젊은 여인은 머리를 흔들면서 말을 받았다. ˝그런 남자가 여행을 할 것 같아요? 다시 돌아오지 않는 여행만이 있어요. 그렇게 되면 도리어 우리가 매장될 거예요. 겨우 목숨만 붙어 있는 사람들은 절대로 죽지 않아요.˝] P.91
히지만 천성적으로 악하지 않았던 그 둘은 심한 죄책감을 느끼고, ˝카미유˝의 악령을 계속해서 보게 되는 정신 착란을 겪는다. 그리고 두 사람의 사랑 사이에는 전과 같은 열정은 없었으며, 마치 누군가에게 쫓기는 듯햐 압박을 받는다. 사랑이고 나발이고 도망치고 싶었지만 살인자의 죄가 들어날까봐 그렇게 하지도 못한다. ˝로랑˝은 ˝테레즈˝가 범죄사실을 고백할까봐 두려워하고, ˝테레즈˝는 그의 살인이 잘못된 것이라는 원망을 계속한다.
[그러나 사랑은 그들을 잡아두지 않았다. 욕정이 사라진것이다. 그들은 조용히 얘기하며, 얼굴을 붉히지도 않고 떨지도 않고 서로 바라보기만 할 뿐, 살을 아프게 하고 뼈를 삐걱거리게 했던 미친 듯한 포옹을 잊은 것 같았다. 그들은 단 둘이 만나기를 피하기까지 했다.] P.152
˝라캥 부인˝을 보살피기 위한 표면적인 목적으로 ˝테레즈˝와 ˝로랑˝은 그들이 원래 이루고자 했던 재혼을 하게 되지만 ˝카미유˝의 유령을 떨치지는 못한다. 오히려 예전에 ˝카미유˝와 ˝테레즈˝가 살던 신혼방에서 같이 살게 된 두 사람은 전보다 더 불안과 공포를 느낀다. 아무도 그들을 의심하지 않고, 증거도 없지만 두사람은 ˝카미유˝를 죽였다는 죄책감에 유령을 보고 매일매일 잠을 못이룬다.
[로랑은 두 주일 넘게 어떻게 하면 카미유를 다시 죽일 수 있을지 생각했다. 물에 던졌는데도 아주 죽어버리지 않고 매일 밤 그들의 침대로 와서 눕곤 했기 때문이다. 두 사람이 살인을 끝내고 그들의 사랑에 마음 편히 취하려는 순간, 희생자는 다시 살아나서 그들의 잠자리를 얼어붙게 만들었다. 테레즈는 과부가 아니었다. 테레즈가 죽은 자를 남편으로 갖고 있는 한, 로랑은 그녀의 두번째 남편일 뿐이었다.] P.234
˝라캥부인˝은 나이가 들어 더이상 몸을 움직일 수 없는 산 송장이 되지만, 아직 의식은 살아있고 눈으로 볼수는 있다. 이렇게 몸이 불편하지만 ˝라캥 부인˝은 자신의 노년을 지극정성으로 보살펴주누
는 ˝테레즈˝와 ˝로랑˝에 큰 신뢰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테레즈˝와 ˝로랑˝은 부인앞에서 싸우게 되면서 진실을 털어놓는다. 그리고 ˝카미유˝의 살인은 서로 때문이라고 책임을 전가한다. 전혀 몰랐던 사랑하는 아들 ˝카미유˝의 죽음의 진실을 60년만에 알게 된 ˝라캥 부인˝은 크게 분노하며, 이들에게 복수를 꿈꾼다. 하지만 몸을 움직일 수 없는 부인이 직접적으로 할 수 있는건 없었고, 단지 그 둘을 증요하며 저주할 수 밖에는 없었다.
[만약 그녀가 일어서서 목에 치미는 공포의 고함을 지르고 아들의 살인자들을 저주할 수 있었더라면 고통은 줄어들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모든 것을 듣고 모든 것을 이해한 후에도 그녀는 터질 것 같은 괴로움을 간직한 채 말없이 움직이지 못하고 있어야만 했다.] P 274
매일 매일 ˝카미유˝의 악령에 시달리던 ˝테레즈˝와 ˝로랑˝은 비슷한 시기에 같은 생각을 한다. 서로롤 없애야만 자신이 이 고통에서 빠져나올 수 있다고. 예전에 합심하여 ˝카미유˝를 살해했던 그 둘은 이제 서로에 대한 살해를 계획한다. 과연 둘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그리고 ˝라캥 부인˝의 복수는 성공할 수 있을까?
[그래서 테레즈와 로랑은 제각기 새로운 범죄를 통해 첫번째 범죄의 속박에서 빠져나갈 생각을 하게 되었다. 조그마한 평정이나마 맛보기 위해서는 반드시 상대방이 없어져야 한다는 생각을 그들은 동시에 하게 되었던 것이다. 헤어져야 한다는 긴박한 필요성은 그 둘 모두 느꼈다. 서로가 영원히 헤어지고 싶었다.] P.340
이 책을 읽으면서 두가지 인상적인 부분이 있었는데,
1. 어린시절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라캥 부인˝의 집으로 와서 그동안의 욕망을 억누르고 있다가 ˝로랑˝을 만나고나서 부터 억눌린 것들을 폭발하여 드러내는 ˝테레즈˝의 감정 변화와,
2. ˝카미유˝를 살해하고 난 후 ˝로랑˝과 ˝테레즈˝가 보여주는 불안과 정신변화의 극대화가 그것이었다.
이건 실제로 경험해 보지 않고는 쓸 수 없는 표현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너무 리얼하게 느껴졌다. 나도 경험(?)해 본게 아니어서 리얼이다 리얼이 아니다 라고 말하는게 웃기기는 하지만...
결말 부분이 다소 아쉬웠지만, 어떻게 보면 납득이 가는 결말이기도 하다. 이렇게 자극적인 내용을 공감이 가게 현실적으로 표현한 ˝에밀 졸라˝는 젊은 시절부터 남다른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이 작품은 박찬욱 감독의 영화 ‘박쥐‘의 모티프가 되었고, 뮤지컬로도 많이 상영되었다고 한다. 나만 몰랐던 유명한 작품이었다. ‘루공마카르 총서‘에 포함되어 있지는 않지만, ˝에밀 졸라˝의 마니아라면 필히 읽어봐야 할 작품이다. 일단 읽는 재미가 상당하다.
Ps. ˝에밀졸라˝ 작품을 이제 다섯권 읽었는데 아직 갈길이 먼 것 같다. 22년에는 국내 출판된 책은 다 읽어봐야 겠다.




